다리 위 미친 여자
쑤퉁 지음, 문현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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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열네 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쑤퉁의 소설집이다. 처음 쑤퉁이란 작가를 만난 것도 사실 소설집이었다. 그때는 이 작가의 작품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그 매력을 알게 된 것은 장편이었다. 어느 문학 카페인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그의 작품에 대한 호평을 보고 쌓여있던 마일리지로 몇 권을 샀다. 장편소설은 중단편과 달리 읽는 재미가 있었다. 아마 그때부터 쑤퉁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 조금씩 무너진 것 같다. 그리고 그 당시는 중국 현대 작가들의 작품이 주는 재미에 흠뻑 빠져있었다. 

열네 편.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언제나처럼 모든 단편이 마음에 든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것은 표제작 <다리 위 미친 여자>, <토요일>, <좀도둑>, <슬픔의 춤>, <대기 압력> 등이다. 이 작품들이 좋았던 것은 개인적 경험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다리 위 미친 여자>에선 정말 미친 여자와 하나의 물건에 빠진 여자의 신경전과 파국이 마음에 들었고, 그렇게 하나의 물건에 빠진 사람의 심리에 공감을 했기 때문이다. 약간 정신이 나간 그녀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는 분노가 일었고, 그녀가 보여준 마지막 몸부림과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현대인의 무관심과 남의 일이란 사고가 그대로 드러나 가슴이 아팠다.

<토요일>을 읽으면서 그들을 도와준 사람을 서서히 배척하는 행동에 깜짝 놀랐다. 놀란 것은 그 행동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 속에서 내가 겪은 일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가해자와 피해자 둘 모두였는데 나의 이기심이 살짝 부끄러워졌다. <좀도둑>은 어릴 때 돈 많은 친구들의 장남감이나 도구들에 가졌던 부러움과 가슴 한 곳에 꿈틀거렸던 욕심이 되살아나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슬픔의 춤>은 추억과 현실 속에 드러난 옛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어릴 때 경험했던 일들이 현재 속에서 흥미롭게 펼쳐지고, 그 후일담이 삶의 모순을 보여주는 것 같다. <대기 압력>은 나라면 어떻게 그 선생을 대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과거의 추억과 현실의 대비가 만들어내는 장면들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수양버들골>은 자동차 사고가 과연 누구의 것인지 의문이 생겼고, <의식의 완성>은 현실과 환상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궁금하다. <거대한 아기>의 실체가 허구인지 아니면 상상력의 결과물인지 호기심을 자극하며 그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술자리>가 만들어내는 욕망과 질투의 감정들은 은연중에 가슴 한 곳으로 파고들고, <신녀봉>을 앞두고 사라진 두 남녀와 한 남자가 마지막에 보여준 기묘한 미소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8월의 일기>가 과연 나의 어린 시절 방학 숙제와 닮은 듯하면서도 너무 다른 모습에 놀란다. 하나의 미망에 사로잡힌 소녀의 행동과 심리가 긴장감을 주는 것이 <물귀신>이고, <하트 퀸>에 대한 집착은 <좀도둑>의 에피소드를 연상하게 만든다. <집으로 가는 5월> 역시 과거와 물건에 대한 집착을 다루는데 나의 모습이 조금씩 보여 놀랐다.

중국 현대의 삶을 현실적으로 다루고, 환상을 교차시키는 그의 재능이 이번 단편집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공감대를 형성하는 부분이 많은 것은 그 속에 우리의 삶과 비슷한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고, 낯설었던 것은 다른 문화 탓일 것이다. 과거를 이야기할 때 특히 문화의 차이를 많이 경험하는데 이것은 자본주의화 이후 세계인들의 삶이 점점 비슷해지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생각한다. 읽는 재미는 곳곳에 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아직은 개인의 취향 탓으로 완전한 재미를 누리기 힘들다. 아직은 그의 장편이 더 나의 호흡과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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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스 - 2010년 퓰리처상 수상작
폴 하딩 지음, 정영목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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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퓰리처상 수상작이다. 이 상은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은 상이다. 하지만 이 문학상을 받은 작품을 학창 시절에 읽고 혼난 적이 있다. 그 이후 잘 읽지 않다가 최근에 읽으면서 감탄한 작품이 몇 있다. 이렇게 이 상은 개인 취향을 많이 탄다. 그럼 이번 수상작은 어떨까? 왠지 모르게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간단한 이야기 구조인데 말이다. 책 분량에 비해 많은 시간이 걸린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첫 문장 “조지 워싱턴 크로스비는 죽기 여드레 전부터 환각에 빠지기 시작했다.”는 참으로 인상적이다. 이 간결한 문장 속에 작가가 앞으로 할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 환각은 허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 속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이 문장으로 시작하여 조지와 그의 아버지 하워드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과거는 현재의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서 그 시대 사람들의 삶과 사고를 엿볼 수 있다. 

이야기를 중심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인물은 하워드다. 물론 이런 하워드를 과거 속에서 불러낸 인물은 그의 아들 조지다. 하워드의 아버지는 목사였지만 정신병을 앓았고, 하워드 역시 간질을 가지고 있다. 이런 병력은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나오지 않고 이야기 진행 속에 천천히 나온다. 이 과거 병력은 왜 조지가 죽기 전 환각에 빠지게 되었는지 설명하는 하나의 열쇠이기도 하다. 유년시절 이런 병은 불안과 공포를 불러온다. 이 병 때문에 아버지가 사라졌다면 더욱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작가는 이 공포를 그려내지만 그의 떠남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자세히 보여주지 않는다.

하워드의 직업은 땜장이이자 행상인이다. 그의 행상을 따라가다 보면 그 시대 민중들의 삶과 사고와 제조업체의 영업 전략이 드러난다. 공황 전이 시간배경인데 그 시대 사람들은 변화보다 기존 제품을 더 좋아하고, 쓸데없는 낭비를 경계할 정도로 근검절약하고 있다. 하지만 업체는 제품을 조금 손 본 후 다른 제품인 것처럼 광고하고 가격을 올린다. 이 수법을 보면서 현재 한국 제조업체들이 어쩌면 그렇게 똑같이 적용하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것이 단순히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말이다.

조지의 환각은 시간 순으로 펼쳐지지 않는다. 이 뒤섞인 시간이 바로 우리의 시간 감각인지도 모른다. 이 혼란과 환각 속에서 그가 만나는 아버지의 모습은 어쩌면 그리움이고 어떻게 보면 공포인지 모른다. 아버지의 간질 발작을 보고 느낀 공포와 그가 떠난 후 만난 잠시 동안의 시간이 이것을 대변한다. 특히 그가 죽기 전 본 환각의 시간이 바로 아버지와의 짧은 만남임을 생각하면 그리움은 이 소설 전체를 지배하는 감정이다. 아내나 자식이나 손자들과 함께한 행복한 시간들도 많을 텐데 말이다.

흥미로운 부분이 곳곳에 보이지만 계속 집중력을 유지하며 읽기엔 취향의 영향을 너무 받는다. 문장의 리듬을 쫓는데 그것이 단숨에 읽히지 않는다.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어야 한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매력적일 수 있지만 맑은 정신을 계속 유지하면서 읽지 않으면 너무나도 힘든 책읽기다. 그래서 가끔은 집중력과 흐름을 잃기도 한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후 아무 쪽이나 펼쳐 조금 읽으면 그 문장에 흥미를 가지고 집중하게 된다. 문제는 바로 거기서 멈춘다는 것이다. 언젠가 느리게 읽기에 성공한다면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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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해요 2011-01-07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읽었습니다.
 
종이 여자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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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욤 뮈소의 신작이다.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올라갔다. 뭐 베스트셀러라서 이 소설을 읽은 것은 아니다. 그의 작품을 늘 재미있게 읽었기에 그렇다. 중간에 한두 작품 정도가 약간 매너리즘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마 몇 권을 연속으로 읽으면서 비슷한 전개와 상황에 조금은 질렸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 읽은 책은 개인적으로 재미있고 좋았다. 늘 익숙한 구성과 예정된 결말을 향해 달려가지만 한 번 잡으면 변함없이 끝까지 정신없이 읽게 만든다. 약간 무겁고 난해한 책을 읽고 난 후라면 더 좋은 책이다.

<천사 3부작>으로 갑자기 성공한 작가 톰 보이드와 타고난 미모와 능력으로 세계 음악계를 놀라게 한 오로르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 둘의 간략한 정보를 제공한 후 그들의 연애 이야기를 짧게 보여준다. 그리고 오로르에게 차인 톰이 등장한다. 이 이별은 그를 완전히 폐인으로 만든다. 폐인이 된 그가 보여준 몇 가지 행동과 그를 좋아하는 독자들의 편지를 짧게 교차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의 문을 연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버림받은 남자의 망가진 모습은 결코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부를 이루었지만 이것은 자신을 파괴하는데 이용될 뿐이다. 그러다 찾아온 밀로의 고백은 그가 파산했음을 알려준다. 하지만 그는 이것에 집중할 정신이 없다. 아직 오로르에게 차인 실연의 여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그에게 폭풍우 치던 어느 날 한 여자가 나타난다. 그녀는 자신이 그가 창조한 소설 속 여자인 빌리라고 말한다. 아무리 약물 중독 상태에 빠져 있다고 하지만 이것을 순순히 믿을 정도는 아니다. 몇 가지 실험을 거치는데 놀라운 놀랍도록 비슷하다. 정말 그녀는 소설 속에서 나온 진짜 빌리일까?

빌리와 톰의 만남은 현실과 환상의 만남이다. 그들이 밀로의 부가티 차를 몰고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후 벌어지는 모험은 한 편의 로드무비를 보는 듯하다. 이 과정에서 그와 그녀는 하나의 계약을 맺는다. 그것은 그녀가 그와 오로로를 다시 결합하게 만들어주는 것과 천사 3부작 마지막 권을 마무리해서 그녀를 소설 속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그런데 오로르와의 결별 후 치명적인 병이 생겼다. 백지증후군이다. 어떤 글도 쓸 수 없다. 몇 차례 영감이 떠오르지만 컴퓨터만 켜면 두려움이 밀려온다. 쉽게 고쳐질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바로 여기부터 다시 시작한다.

폐인으로 변한 베스트셀러 작가 톰, 그가 소설 속에서 창조한 여자라고 주장하는 빌리의 동행과 여행은 소소한 재미를 준다. 그녀에게 버림받는 순간 세상이 끝난 것 같은 그지만 이 여행을 통해 세상과 다시 접촉하게 된다. 시간 단위로 쪼개고, 공간을 나누어 이야기를 빠르게 풀어내는 방식은 변함없다. 각 장마다 하나의 문장을 인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첫사랑에 빠진 소년 같은 그와 친구들의 과거가 하나씩 밝혀지고, 새로운 관계가 모험 속에 펼쳐진다. 책 중간중간에 대문호에 대한 그의 찬양과 한국 독자를 위한 조그마한 배려도 즐거움을 준다. 뮈소의 작품을 좋아하는 작가라면 역시라고 외칠 것이고, 처음 만났다면 그의 다른 작품에 빠져들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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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소녀
로버트 F. 영 지음, 조현진 옮김 / 리잼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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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작가다. 몇몇 SF문학의 거장을 제외하면 이름을 알고 있는 작가가 얼마 되지 않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의 이름이 우리에게 알려진 것이 일본 애니메이션 ‘클라나드(Clannad)’를 통해서였다는 사실도 낯선 이유 중 하나다. 이 애니 속에 표제작 <민들레 소녀>의 문장이 반복되었는데 이것을 한국 독자들이 인상적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검색엔진에서 클라나드를 치니 많은 글들이 보인다. 애니의 평도 좋은데 또 볼 것이 늘어난 것 같다.

모두 열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약간 낯선 느낌을 준다. 아마 기존 SF단편에서 본 느낌과 조금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작가의 독특한 이력도 눈길이 간다. 죽기 전까지 학교 수위로 일했다니 놀랍다. 아마 이것은 나의 선입견이 작용한 탓일 것이다. 서문이 이것을 약간 거든다. 하지만 무엇보다 SF문학을 공상과학소설로 번역한 것이 가장 크다. SF문학 전문 번역가라면 결코 사용하지 않을 단어이기 때문이다.

사실 분량을 보고 빠르게 단숨에 읽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단숨에 읽기는 했지만 예상한 속도보다 더디게 읽혔다. 재미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문장과 시들과 그가 그려내는 미래의 모습이 생각에 잠기게 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SF문학으로만 단정할 수 없는 단편도 있다. 오히려 판타지소설의 느낌이 강하게 드는 작품도 있다. 옮긴이의 말에서 이 작품을 커트 보네거트의 <나라 없는 사람>과 비교하는 대목이 있는데 사놓고 읽지 않은 소설에 대한 관심을 부쩍 강하게 느끼게 만든다. 

가장 쉽고 편하게 읽고 인상적인 작품은 바로 표제작 <민들레 소녀>다. 시간 여행과 사랑을 다루고 있는데 처음에 약간 밋밋한 느낌을 주었지만 뒤로 가면서 펼쳐지는 반전이 단숨에 강한 여운을 던져주었다. 그 이후에 나오는 단편들은 문화 비판적인 성격이 강한 작품들이 많다. 미국 소비문화와 점점 기계에 의존하는 생활에 빠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다루는데 한 편 한 편이 의미심장하다. 미래를 다루고 있지만 현실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고 재미있다.

<21세기 중고차 매장에서>에 나오는 빅 짐이 스티븐 킹의 소설 <언더 더 돔>에 나오는 것을 보았는데 단순히 이름만 같은 것인지 아니면 킹의 오마주인지 궁금하다. <당신의 영혼이 머물 자리>는 호시 신이치인지 츠츠이 야스타카의 단편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유사한 결말을 보여준다. 곳곳에 이런 흔적이 보이는데 모두 기억나지 않는 것이 아쉽다. 단순히 나의 착각인지 아니면 그의 명성을 알려주는 것인지 좀더 정보를 얻어야 할 것 같다. 

분명히 이 작품집은 오락성이 강하지 않다. 멋지고 긴장감을 불러오는 전쟁도 없고 미래에 대한 탁월한 묘사도 없다. 하지만 미래 속에 현실을 담아내고, 그 속에서 오늘의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이 단편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문장은 클라나드에 나온 문장이 아니라 “사람들은 피라미드와 요새, 태양의 신전을 왜 만들었는지 궁금해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궁금한 건 어떻게 만들었는가, 라는 부문이었다.”(238족)라는 문장이다. ‘왜’보다 ‘어떻게’에 더 많은 비중을 두면서 목적보다 수단에 목매는 현실을 보여준다. 작가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고, 작품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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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5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16
김종일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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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가 벌써 5권이나 나왔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다. 사실 첫 권이나 두 번째 권이 나왔을 때만 해도 곧 끝날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국의 협소한 장르문학 시장을 생각하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미스터리 장르도 고전을 하는데 공포라면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한다. 일단 다음 이야기가 나오길 기대하지만 이번 단편선은 개인적으로 그렇게 만족스럽지 않다. 낯선 작가들이 많이 나온 것은 좋은 현상이지만 이야기의 구성과 풀어내는 힘이 전작들에 비해 약해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이 시리즈가 계속 나오기에 가능한 것이다.

모두 열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늘 평균 이상을 보장하는 김종일의 <놋쇠 황소>는 굉장한 긴장감과 힘을 보여준다. 영화 <올드 보이>의 한 대사로부터 시작하여 학창시절 피해자였던 친구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가해자가 편히 잔다는 속담을 뒤집어 보여주면서 풀어내는 학창시절 잔혹사는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마지막 복수의 장면은 어딘가에서 본 듯하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우명희의 <늪>은 고문기술자를 화자로 내세웠다. 80년대 암울했던 현실을 대공 고문실의 공포스러운 장면으로 되살려준다. 연쇄살인사건을 겉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 이야기는 고문을 가하는 자의 시선을 담고 있고, 역사의 한 순간과 어두운 결과가 가슴 한 곳을 묵직하게 만든다.

이종권의 <오타>는 공포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공포영화의 공식을 빠르게 답습하는 듯하여 더욱 그렇다. 장은호의 <고치>는 어느 정도 결과를 예상할 수 있는 전개라 아쉬움을 준다. 좀더 남편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긴장감을 하나씩 높여갔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류동욱의 <시체X>는 기차에 몸을 던진 시체의 정체에 대한 궁금점을 잘 다루고 있다. 시간과 환상이 뒤섞여 있는데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힘이 조금 약하다. 모희수의 <기억변기>는 이미 익숙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SF문학에서 다룬 소재를 공포와 연결시켰는데 역시 결말이 쉽게 예상된다. 화자의 변화를 좀더 깊숙하게 다루었다면 익숙한 소재를 뛰어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임태훈의 <네모>도 역시 낯익은 SF 설정이다. 서울에만 나타난 알 수 없는 존재를 다루고 있는데 요즘 펼쳐지고 있는 개발독재에 대한 문화 비판적 성격이 강하다. 네모로 불리는 물체의 등장과 사람들의 변화를 좀더 유기적으로 다루고 분량을 늘렸다면 좋았을 것 같다. 엄길윤의 <벗어버리다>도 현대 소비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옷의 반격으로 볼 수도 있는데 공포가 약하다. 황태환의 <살인자의 요람> 역시 현대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중반까지는 갇힌 곳의 정체를 알 수 없었지만 마지막으로 가면서 금방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무서운 현실은 읽고 난 후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 단편인 이종호의 <오해>는 제목처럼 나 자신도 이야기의 전개를 오해하게 만들었고,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계속 생각하게 만든다. 일상에서 벌어질 수 있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오해가 어떤 결과를 유발하는지 잘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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