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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소녀
로버트 F. 영 지음, 조현진 옮김 / 리잼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낯선 작가다. 몇몇 SF문학의 거장을 제외하면 이름을 알고 있는 작가가 얼마 되지 않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의 이름이 우리에게 알려진 것이 일본 애니메이션 ‘클라나드(Clannad)’를 통해서였다는 사실도 낯선 이유 중 하나다. 이 애니 속에 표제작 <민들레 소녀>의 문장이 반복되었는데 이것을 한국 독자들이 인상적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검색엔진에서 클라나드를 치니 많은 글들이 보인다. 애니의 평도 좋은데 또 볼 것이 늘어난 것 같다.
모두 열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약간 낯선 느낌을 준다. 아마 기존 SF단편에서 본 느낌과 조금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작가의 독특한 이력도 눈길이 간다. 죽기 전까지 학교 수위로 일했다니 놀랍다. 아마 이것은 나의 선입견이 작용한 탓일 것이다. 서문이 이것을 약간 거든다. 하지만 무엇보다 SF문학을 공상과학소설로 번역한 것이 가장 크다. SF문학 전문 번역가라면 결코 사용하지 않을 단어이기 때문이다.
사실 분량을 보고 빠르게 단숨에 읽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단숨에 읽기는 했지만 예상한 속도보다 더디게 읽혔다. 재미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문장과 시들과 그가 그려내는 미래의 모습이 생각에 잠기게 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SF문학으로만 단정할 수 없는 단편도 있다. 오히려 판타지소설의 느낌이 강하게 드는 작품도 있다. 옮긴이의 말에서 이 작품을 커트 보네거트의 <나라 없는 사람>과 비교하는 대목이 있는데 사놓고 읽지 않은 소설에 대한 관심을 부쩍 강하게 느끼게 만든다.
가장 쉽고 편하게 읽고 인상적인 작품은 바로 표제작 <민들레 소녀>다. 시간 여행과 사랑을 다루고 있는데 처음에 약간 밋밋한 느낌을 주었지만 뒤로 가면서 펼쳐지는 반전이 단숨에 강한 여운을 던져주었다. 그 이후에 나오는 단편들은 문화 비판적인 성격이 강한 작품들이 많다. 미국 소비문화와 점점 기계에 의존하는 생활에 빠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다루는데 한 편 한 편이 의미심장하다. 미래를 다루고 있지만 현실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고 재미있다.
<21세기 중고차 매장에서>에 나오는 빅 짐이 스티븐 킹의 소설 <언더 더 돔>에 나오는 것을 보았는데 단순히 이름만 같은 것인지 아니면 킹의 오마주인지 궁금하다. <당신의 영혼이 머물 자리>는 호시 신이치인지 츠츠이 야스타카의 단편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유사한 결말을 보여준다. 곳곳에 이런 흔적이 보이는데 모두 기억나지 않는 것이 아쉽다. 단순히 나의 착각인지 아니면 그의 명성을 알려주는 것인지 좀더 정보를 얻어야 할 것 같다.
분명히 이 작품집은 오락성이 강하지 않다. 멋지고 긴장감을 불러오는 전쟁도 없고 미래에 대한 탁월한 묘사도 없다. 하지만 미래 속에 현실을 담아내고, 그 속에서 오늘의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이 단편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문장은 클라나드에 나온 문장이 아니라 “사람들은 피라미드와 요새, 태양의 신전을 왜 만들었는지 궁금해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궁금한 건 어떻게 만들었는가, 라는 부문이었다.”(238족)라는 문장이다. ‘왜’보다 ‘어떻게’에 더 많은 비중을 두면서 목적보다 수단에 목매는 현실을 보여준다. 작가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고, 작품을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