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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빠이 여행자 마을
이민우 지음 / 북노마드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은 곳은 ‘빠이’다. 여름 휴가 어디로 갈까? 고민하고 있던 중 이 책 소개글에서 <론리 플래닛>이 “빠이, 여행자들의 메카!”라고 한 부분에서 그냥 넘어갔다. 어떤 곳이기에 이런 찬사를 받는 것일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일하는 짬짬이 시간을 내어 빠이를 검색했다. 이전에 태국 여행기에서 본 곳이다. 그때는 그냥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있는 곳이구나! 하는 정도였다. 다시 다른 사람들의 여행기를 뒤져본다. 호불호가 갈라지는 곳이다. 그냥 가서 둘러보고 나만의 여행을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졌다. 하지만 휴가를 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이런 저런 우여곡절 끝에 빠이로 왔다.
사실 빠이에 오기 전 책을 읽고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없었다. 치앙마이에서 일요시장을 다시 볼 것을 포기하고 미니버스를 예약했다. 누구는 빠이 가는 길에 토하기도 했다지만 나에겐 그냥 좀 고불고불한 길이고, 예전에 가끔 넘곤 했던 대관령과 비슷했다. 함께 탄 프랑스 가족들의 이쁜 언니들이 눈길을 끄는데 꼬마와 자꾸 눈이 마주친다. 가볍게 서로 웃는다. 이렇게 치앙마이에서 3시간을 달려 온 곳이 빠이다. 너무나도 조그마한 마을이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작은 호텔에 들어가 짐을 풀고 마을을 간단하게 한바퀴 돈다. 가려고 마음먹은 곳을 찾아다니지만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너무 빠른 속도로 걷고 지나가다 보니 놓친 모양이다.
이렇게 하루를 보낸 후 펼친 이 책은 전날 본 곳이 몇 곳이 나와 반가웠고, 무슨 뜻인지 몰랐던 것을 알려준다. 하지만 이 책은 빠이 여행안내서가 아니다. 그가 이곳 빠이에서 만난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것을 기록하고 인상을 남긴 것이다. 빠이라는 지명이 어떻게 생겼는지 추론하고, 어떤 외국인이 처음에 이곳을 방문했는지, 1세대 게스트하우스 중 지금도 남아 있는 두엉 게스트하우스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왜 이곳에 온 사라들이 떠나지 못하고 머물거나 다시 돌아오는지 알려준다. 단지 며칠 머물다 갈 예정이고, 낯선 사람과 말도 터지 못한 내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인터뷰 중 두엉의 것은 특히 인상적이다. 빠이의 변화와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연히 잘 곳 없는 여행자들을 재워준 것이 게스트하우스의 시작이란 것과 지금 같은 우기에 일주일 정도 그들도 여행을 떠난다는 것과 귀머거리 아들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그 아들이 하는 조그마한 가게는 밤 열시에 문을 닫고, 역시 귀머거리인 아내와 함께 수화를 나누며 걸어가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본다. 떠나는 날 그냥 무심코 본 곳이 두앙레스토랑이다. 생각보다 큰 규모로 성장했다.
작가가 카피라이터라 그런지 그가 만난 사람 중 광고 일을 한 사람이 많다. 방콕도 우리처럼 일에 빠져 제대로 휴가를 가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그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이 일상을 벗어나 여기에 매혹되고, 긴 시간을 머문다. 혹시 내가 길가다 본 그가 그들 중 한 명이 아닐까 괜한 상상을 한다. 나보다 몇 년 전 그리고 작가보다 한두 해 먼저 온 사람들이 지금의 빠이를 많은 개발로 많이 변했고 변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스쿠터를 빌려 타고 밖으로 조금만 나가면 무수히 짓고 있는 건물들로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곳은 태국의 다른 도시와 다르게 조용하다. 성수기인 겨울엔 어떨지 모르지만 늦게 문을 열고 빨리 문을 닫는 곳이 많다. 늦은 밤 커피 한 잔 하려고 나가도 이미 문을 닫았을 정도다. 뭐 몇 곳은 늦게까지 음악과 술과 대화로 열기 가득하지만 말이다.
사실 이곳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몰랐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일도 조금하고, 책도 읽고, 스쿠터 타고 여기저기를 마구 달리지만 작가의 말처럼 그냥 나 자신을 자유롭게 풀어놓는다. 작가처럼 긴 시간을 머문다면 나 또한 그처럼 외국인과 짧은 영어로 이야기를 할지도 모른다. 그가 만났고, 지금도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오기 전에 읽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이상을 했다. 나로 하여금 빠이로 오게 만들지 않았는가! 그리고 며칠 동안 그냥 해먹에서 쉬다 간 젊은 친구가 작가에게 아무 것도 하지 않아서 고맙다고 하는 대목에선 깊은 여운을 남긴다. 거기에 대한민국 여행자 미스터 원의 이야기는 혹시 만나면 필요한 여비를 제외하고 모두 주고 싶을 정도로 대단함과 감동을 준다.
책 속의 이야기가 현실 속에서 만나는 재미는 생각한 것보다 크거나 혹은 감동이 없다. 그것은 이곳 빠이도 마찬가지다. 책 속에 다루어진 이야기가 사실 그대로 전하고 있다고 하여도 지나가면서 보기엔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수박 겉핥기식 여행이 주는 아쉬움인지도 모른다. 과장된 표현이 살짝 느껴지지만 그 바탕은 변함이 없다. 저녁 전 한 잔의 커피를 마시기 위해 간 곳이 이미 문을 닫았다. 강가에 있는 방갈로는 다음에 오면 이곳을 숙소를 정해라고 손짓한다. 만약 이 책을 읽고 빠이에 온다면 작가나 나와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빠이를 즐기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고, 앞에 놓인 현실을 무시하기엔 나 자신이 너무 현실적이다. 빠이를 떠나며 다음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