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좀비 - 엄마가 좀비가 된다면 어떻게 할래? 생각학교 클클문고
차무진 지음 / 생각학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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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좀비가 되었는데 장르는 코믹 호러다.

처음 코믹 호러 이야기란 소개를 보고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엄마가 좀비가 되었는데 어떻게 코믹함이 들어갈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하지만 이 의문은 이야기가 점점 더 진행되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좀비와 다른 좀비라는 설정이 덧붙여졌기 때문이다.

단순히 다른 좀비란 설정만 가지고 이런 설정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작가의 필력과 세부적인 설정이 이것을 가능하게 했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그 상황 때문에 살짝 웃는 순간들이 생긴다.


아빠의 불륜. 용서 없는 엄마의 힘겨운 나날.

아들은 자발적으로 은둔형 외톨이처럼 집에 박혀 아주 가끔 학교에 나간다.

우연히 외출한 아들 녹현은 다이소에서 근무하면서 진상 고객 때문에 고생하는 엄마를 본다.

엄마를 위로하고 착한 아들이 바로 된다면 좋겠지만 그런 현실은 없다.

엄마는 아들이 학교에 나가길 바라고, 아들은 전교 1등을 하니 무슨 상관이냐고 대든다.

이 갈등의 원인은 엄마가 가차없이 좇아낸 아빠의 부재 때문이다.

남편을 내보낸 후 엄마는 경력 단절과 싸우면서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 쉽지 않다.

아들 녹현은 자신의 방을 쓰레기로 가득 채우고, 더 반항적으로 나간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보이지 않는다.

방을 뒤지다 좀비로 변한 엄마를 발견한다.

녹현을 물려고 한다. 바로 엄마를 발로 찬다. 방에 가둔다.

보통의 좀비 소설이라면 좀비가 더 무섭게 달려들고, 주인공은 생존을 위해 좀비를 죽일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런 종류의 좀비 소설이 아니다.

세상이 좀비 바이러스로 가득 차 지금 죽이지 않으면 멸망할 정도의 세계가 아니다.

뉴스에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해 사회 문제가 된다는 방송도 없다.

녹현은 일단 엄마를 가두고, 어떻게 이 상황을 넘어갈지 고민한다.

좀비가 된 엄마를 죽일 수 업기에 생기는 문제가 하나씩 흘러나온다.


가장 먼저 좀비를 굶길 수 없다. 굶기면 더 사납고 시끄럽다.

엄마에게 먹일 생고기를 사러 간다. 당연히 피가 뚝뚝 떨어진다.

이 소설의 재미 중 하나는 이런 상황에서도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다는 것이다.

싼 호주산이나 미국산 대신 한우를 산다. 선지는 덤이다. 물론 엄마의 돈이다.

비싼 식재료는 그만큼 모아 놓은 돈을 빠르게 소진시킨다.

아빠에게 전화해 돈을 보내달라고 요청한다. 사정은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여기에 가끔 간 학교에서 학교 일진 동민이 그를 기다린다.

50만 원짜리 게임 아이템 분실 문제로 녹현이를 갈구는 중이다.

학교도 집도 녹현이에게 안전한 곳이 아니다.


무섭고 무겁게 이야기를 풀어갈 수도 있지만 작가는 조금 가볍게 진행한다.

녹현을 물려는 엄마를 때리고 두들기고 수면제를 넣은 음식으로 재운다.

몰래 집밖으로 나간 좀비 엄마를 찾아 힘들게 데리고 온 적도 있다.

이런 현실은 알게 되는 친구도 나타난다.

이때 좀비 엄마를 상대하는 이들에게 그 어떤 긴장감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 좀비 바이러스가 어떤 종류인지 알려주는 인물이 나타난다.

여기서 이야기는 또 한 번 뒤집어지는 상황을 마주한다.

좀비가 된 사람이 정상으로 돌아온 일이 있는 것이다. 아주 로맨틱한 방식으로.


녹현이 좀비 엄마를 집에 가둔 후 일어나는 상황은 곰곰이 생각해볼 내용이 많다.

항상 부모의 돌봄 아래 있는 열여섯 소년이 이제는 엄마를 돌봐야 하는 상황을 마주한 것이다.

무슨 일을 벌일지 몰라 전전긍긍해야 한다. 가둔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

아주 위험한 상황이 몇 번이나 있었지만 다른 사람의 도움과 좀비 엄마의 잔존 이성이 이를 막았다.

이런 장면이나 상황 등이 엄마를 좀비에서 깨어나게 하는 일고 엮인다.

조금은 뻔한 방식으로 마지막을 풀어내지만 그 과정은 재밌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는 미화된 과거의 속내가 그대로 담겨 있다.

어린 녹현의 실수나 착각은 이 부분을 더욱 부각시킨다.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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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드 에어포트
무라야마 사키 지음, 이소담 옮김 / 열림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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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도 서점 이야기>로 먼저 다가온 작가다. 재밌게 읽었다.

이후 후속작이 나온 것을 봤지만 책만 구해놓고 읽지 않고 있었다.

신작인 이 소설을 봤을 때 <오후도 서점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책을 손에 들고 가볍게 읽기 시작했는데 가슴 따뜻한 이야기들이 조금씩 흘러나왔다.

무대는 공항이고, 이곳을 스쳐 지나가거나 공항 서점에서 근무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내가 공항을 갔을 때를 생각하면 많이 다른 분위기와 이야기가 나온다.

언제나 바쁘게 오고 간 곳이 공항이기 때문이다.

오래 전 한 번 가본 일본 공항의 모습을 떠올리기에는 역시 그곳에 머문 시간이 부족했다.

아마 다시 공항에 간다면 이전과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최근 많이 보는 구성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면 그 다음 사람이, 그리고 또 그 다음 사람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구성이다.

첫 번째 이야기는 만화가의 삶을 그만 두고 귀향하는 료지의 이야기다.

학창 시절부터 연재를 했지만 큰 대박은 없는 만화가다. 그렇다고 연재를 쉴 정도는 아니다.

공항에 온 이유는 귀향, 요리집을 하는 형이 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이 공항에서 그는 자신의 삶을 차분하게 돌아본다.

그 중심에는 전 연인과 절친이 있었다. 이 둘은 나중에 결혼했고, 료지에게 청첩장을 보냈다.

전 여친과 헤어진 이유, 자신의 삶이 망가진 순간, 요리 만화로 인기를 얻은 과거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공항에서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를 만나 자신이 웃는 초상화를 그린다.

이 웃음 이야기를 보면서 아내가 아이가 퇴근길에 나에게 다가올 때 내가 짓던 미소가 떠올랐다.


다음 주인공은 료지의 만화를 좋아하는 공항 서점 직원 유메코다.

유메코의 할머니는 동네 서점을 운영하신 분인데 어릴 때 돌아가셨다.

할머니 기일에 공항에 와서 생긴 에피소드 하나는 아주 비현실적이지만 환상적이다.

과거를 회상하고, 과거와 조우하고, 좋아하는 만화가도 만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냥 스쳐 지나가는 공간의 특성 때문에 단골이 있기 힘든 공항 서점.

하지만 비행기에서 재밌게 읽을 책을 고르는 손님들.

이 손님들 중 두 명이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한 명은 여배우이고, 다른 한 명은 이번에 신작을 낼 예정인 신인문학상 수상자다.

이 두 명이 다음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배우 이름은 마유리, 신인 작가 이름은 메구미다. 둘은 중학생 때 단짝이었다.

중년의 배우는 이제 빛나기 보다 자신의 나이에 맞는 역할들을 주로 연기한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한 메구미는 드디어 작가가 되어 첫 소설을 내게 되었다.

이 두 사람이 헤어졌던 그 공간에서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후 우연히 만났다.

하나의 사건으로 좋지 않게 헤어졌고, 그 동안 서로 연락도 없었지만 아직 그 시절을 기억한다.

연기자인 마유리는 방송에서 쉽게 볼 수 있지만 주부였던 메구미는 신인상을 받으면서 알게 되었다.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오랜 세월 속에 바뀐 외모 때문에 서로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서점에서 우연히 만나 눈물을 흘리면서 재회의 기쁨을 나눈다.

그리고 드디어 밝혀지는 과거의 비밀. 예상한 것이지만 어렸기에 아쉬웠던 마무리.


마지막 이야기로 넘어가면 또 다른 사연이 흘러나온다.

만남과 헤어짐, 떠남과 돌아옴의 공간인 공항을 배경으로.

그리고 앞에 잠시 나온 사람들이 교차하는 순간이 생기고, 작은 인연을 맺는다.

이런 공간을 배경으로 계속 연작 소설을 내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은 제각각 수많은 사연들을 가지고 있으니까.

가슴 따뜻한 이야기들이 읽는 내내 즐거움을 주고, 내가 공항에서 보낸 시간들을 떠올린다.

나라면 수십 년 만에 만난 친구와 데면데면하지 않고 아주 반갑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우연히 비행기에서, 공항에서 몇 년 만에 만난 친구와 후배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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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1 사일로 연대기
휴 하위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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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로 연대기 3부작 중 첫 번째 이야기다.

애플 TV+로 이 시리즈가 제작되면서 이번에 기존 <울>과 함께 나머지 두 편도 같이 출간되었다.

프리퀄인 <시프트>와 후속작인 <더스트> 등이다.

처음 <울>이 나왔을 때 크게 관심이 없었다. 살까? 말까? 고민하다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이번에 시리즈로 나오면서 운 좋게 책을 받아 읽게 되었다.

그리고 이 소설에 대한 몇 가지 평을 보았는데 1부와 2부의 평이 대단히 좋아 기대되었다.

하지만 그 평과 달리 나의 취향은 뒤로 넘어가고, 세계가 확장되면서 더 맞아 떨어졌다.

특히 줄리엣의 생존과 사일로의 비밀이 하나씩 드러날 때 더욱 재미있었다.


자비 출간의 성공작 중 한 편이다.

1부를 아마존 킨들 전자책으로 출간했는데 후속작 요청이 있어 계속 썼다.

단편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1부이지만 작가가 창조하는 세계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사일로 안에는 시장과 보안관 있고, 공간은 지하로만 확장된다.

지하 140 층이 넘는 아주 깊은 곳으로 인류의 영역은 깊어진다.

작가는 여기서 왜 밑으로만 확장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마지막 5부에서 알려준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이 세계관의 중요한 설정 중 하나이고, 다른 이야기와 이어진다.

초기 단편에 잠깐 나온 이야기를 시리즈 확장과 연결시킨 부분은 이야기의 유기성을 더 높인다.


사일로 속에서 사람들은 석유로 발전을 하고, 땅속으로 파고들어 필요한 재료를 수급한다.

땅 속에서 수경재배로 채소와 과일을 키우고, 죽은 인간은 비료로 활용된다.

시장은 선출직이고, 가장 핵심적인 부서는 IT부서다.

보안관 홀스턴은 아주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3년 전 아내가 청소형으로 죽었다.

아내가 청소형을 받기 전 남긴 자료를 쫓으면서 그 또한 청소형에 처해진다.

1부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나의 머릿속에 만들어진 이미지는 줄리엣의 청소형으로 바뀐다.

이렇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생략된, 혹은 의도된 세상의 이미지가 조금씩 바뀐다.

그리고 이 좁고 깊은 세계 속 인류가 얼마나 되는지 머릿속에서 셈을 해본다. 쉽지 않다.


사일로의 이미지를 간단하게 하면 고층 빌딩을 지하로 뒤집어 넣은 것과 닮았다.

그런데 이 고층은 엘리베이터가 없다. 걸어서 아래 위를 움직여야 한다.

2부부터 서로 다른 층으로 걸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보여준다.

나선형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특히 다리가 단련되지 않았다면 더욱더.

줄리엣을 만나 보안관 직책을 맡게 하려는 시장과 부보안관의 심층 이동이 2부의 주 내용이다.

늙은 두 사람에게 이 여행은 결코 쉽지 않고, 왠지 모를 긴장감이 흐른다.

이 긴장감을 작가는 늙은 시장의 힘든 심층으로의 여행인 것처럼 포장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 긴장감이 사실이라는 장면을 보여주며 끝낸다.


이 소설에서 IT부는 과거의 기록을 보관하는 곳이다.

과거 사일로의 폭동에 대한 기록도 여기에 있다. 이 폭동은 반복적이었다.

사람들은 이 폭동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각 부서 간의 교류는 제한되어 있다.

갇힌 공간 속 닫힌 교류와 알력은 시장과 보안관의 힘으로 균형을 이룬다.

하지만 실제 권력은 어두운 곳에서 IT부가 휘두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정보인 사일로의 비밀을 가진 곳이 IT부다. 당연히 한두 사람만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이 비밀이 흘러나오는 것은 IT부의 욕심과 청소형을 받은 사람의 예상하지 못한 행동 때문이다.

오염된 지상으로 나가 바깥 세상을 비추는 렌즈를 울로 닦는 형벌이 청소형이다.

일종의 사형제도인데 짧은 시간 안에 두 명의 보안관이 이 청소형을 선고받았다.


사일로에 갇힌 인류가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비장하고 아름답다.

각자의 역할에 따라 구역이 나누어지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어우러져 살아간다.

문제는 각자가 가진 사명감이 다르고, 숨겨진 의도가 끼어들어 이 삶을 비튼다는 것이다.

이 비밀이 드러날 때 사람들은 폭도로 변한다. 반복된 역사다.

그리고 하나의 사일로가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면서 영속성을 가진다.

그런데 왜 사일로란 이름일까? 이 부분에 대해서도 책 속에 나온다.

프리퀄과 후속편이 궁금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단편에서 발전한 소설임을 생각하면 드라마가 어떻게 구성되었을 지 궁금하다.

오랜만에 디스토피아를 묵직하게 다룬 재밌는 소설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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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어사 - 지옥에서 온 심판자
설민석.원더스 지음 / 단꿈아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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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선생 설민석과 웹 소설가 원더스가 힘을 합쳤다.

둘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장편 소설인데 지분이 어떤 지 살짝 궁금하다.

설민석이란 이름을 지우면 가끔 보는 판타지 웹 소설과 별 차이가 없다.

일부 이야기는 읽으면서 드라마로 만들면 좋을 것 같다고 느꼈다.

전체적인 완성도나 짜임새는 묵직함이나 탄탄함과 거리가 조금 있다.

조금 아쉬운 대목이지만 빠르고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시리즈를 염두에 둔 소설이다 보니 앞으로 각각의 인물들 사연도 풀어낼 것이 남아 있다.


때는 조선 정조 시대다.

정조가 꿈을 꾸는데 그 꿈을 파자로 해석하니 요괴가 된다.

오래 전 임진왜란 같은 큰 일도 그 사전에 징조가 있었다.

왕의 행렬 도중에 한 소녀가 넘어진다. 이 아이가 바로 벼리다.

벼리의 아버지는 요괴가 되었고, 벼리는 아버지를 구해달라고 요청한다.

자신이 꾼 예지몽과 죽은 자를 보는 벼리의 만남. 그리고 그 중간 다리 역할을 한 사도세자.

요괴가 난동을 부려 나라가 혼란으로 빠져드는 것을 막으려는 정조.

벼리와 다른 인재들을 모아 나라에 준동하는 요괴의 원한을 풀어주려고 한다.


처음 벼리가 정조 앞에 넘어진 후 7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모인 인재들이 바로 백원, 광탈, 무령 등이다.

백원은 힘이 장사이고, 청룡언원도에 기를 실어 요괴를 벨 수 있다.

광탈은 하루 사이에 천 리를 달릴 수 있다.

미래를 보는 무령은 기생 출신으로 금줄로 결계를 펼칠 수 있다.

여기에 하나 더 해지는 것이 정조의 꿈에 염라대왕과 함께 나타난 신수 해치다.

해치는 벼리를 특별히 아끼고, 죄를 판별하고 형을 내린다.

신수인 만큼 능력도 아주 뛰어나다. 인간과 함께 일을 하는 것은 처음인 듯하다.


이번 책에서 다루는 사건은 모두 네 개다.

첫 에피소드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후 천대받다가 죽은 반쪽이 사연이다.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영특한 머리를 가지고 있는 반쪽이.

이런 장애아를 낳았다는 사실 때문에 무시당하고 마음에 짐을 지고 있던 엄마.

엄마의 사랑은 뒤틀려 형에게 향하고, 반쪽이는 숨기고 싶은 과거다.

형의 과거 급제를 도와주고, 사업하는데도 힘을 보탠다.

형을 형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현실, 그리고 숨겨진 있던 비밀과 죽음.

모성애의 환상을 깨트리는 이야기와 사연들. 그래도 엄마요, 형인 반쪽이.


계급을 내세우고, 자신들의 지위를 폭력으로 휘두르는 자들.

임진왜란 당시 전쟁의 폐허 속에서 사람에게 먹힌 후 남은 뼈를 거둔 승려.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살인으로 덮으려는 추악하고 잔인한 행위.

스님이 돌아오길 기다리면서 죽은 동자승들. 그 영혼의 순수함은 그래서 더 강하게 다가온다.

죽기 전 바람 때문에 다른 요괴에게 부림을 당하던 스님들.

그리고 용루사에서 용을 먹고 머물고 있는 거대 요괴.

이 대결은 이 소설에서 가장 화려하고 역동적이며 판타지에 충실하다.

사실 이 에피소드를 보면서 드라마로 만들면 어떤 식으로 연출할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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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슬픔의 거울 오르부아르 3부작 3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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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전반부를 관통하는 역사를 다룬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다.

이 3부작 중 먼저 읽은 것은 <오르부아르>이다.

2부에 해당하는 <화재의 색>은 아직 읽지 못했는데 찾아보니 역시 두툼하다.

최근 두툼한 책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지고 있다. 시간과 체력의 문제 때문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이라면, 좋아하는 장르라면 주춤하지만 곧 달려든다.

아마 올해가 가기 전 2부도 읽지 않을까 생각한다. 단언하지는 못하겠지만.


한참 세계문학을 읽을 때 20세기 초 1,2차 대전과 관련된 소설을 읽었다.

역사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았고, 그 나라의 문화도 잘 몰랐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등장하는 사람들의 감정을 이해하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여기에 나의 취향에 맞지 않는 부분도 있어 기억에 남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

이때의 기억 중 일부를 이 3부작 중 두 편을 읽으면서 새롭게 했다.

영화나 드라마 등으로 많이 각색되고, 과장된 이야기가 아닌 현실의 이야기로 말이다.

이 소설의 앞부분은 그 유명한 마지노선에 대한 것이다.

히틀러의 독일을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고 믿었던 그 마지노선 속 현장이다.

이제 우린 그 마지노선이 얼마나 쉽게 무너졌고, 프랑스가 얼마나 빨리 무너졌는지 안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풀어갈 때 주인공을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명을 내세운다.

각각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내세우면서 그 시대의 풍경을 더욱 복합적으로 그려낸다.

탈영병, 헌병, 아이를 바라는 여성, 사기꾼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 중에서 가장 놀라운 인물은 사기꾼 데지레인데 그는 필요에 따라 그의 역할을 바꾼다.

한 살인여성을 변호하는 변호사로, 국방 방송의 왜곡된 정보 전달자로, 엉터리 신부로.

그 이전에는 학교 선생과 비행기 조종사까지 맡은 적이 있다.

그는 갑자기 나타났다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아주 멋지게 해낸 후 갑자기 사라진다.

왜곡된 방송을 할 때 그가 보여준 이야기는 작가가 지어낸 허구가 아니란 점에서 놀랍다.

이 이야기를 읽다 보면 왜, 어떻게 프랑스가 그렇게 빨리 쉽게 무너졌는지 알 수 있다.


루이즈의 벗은 몸을 보고 싶다고 요청한 식당 단골 고객인 의사.

그와 함께 호텔에 가서 옷을 벗는데 갑자기 총을 꺼내 자신의 머리를 쏜다.

공포, 두려움 등으로 옷을 벗은 채 방밖으로, 호텔밖으로 달려나간다.

그리고 그녀의 불운하고 불행했던 과거가 조금씩 흘러나온다.

자살한 의사가 죽은 엄마의 연인이었다는 사실. 임신해 아들을 낳은 적 있다는 과거.

이런 사실을 알기에 그녀와 멀어지고자 한 의사의 아내와 그 딸.

엄마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게 되면서 그녀의 삶은 또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런데 이 루이즈가 <오르부아르>에 잠시 나왔던 그 소녀라고 한다.

이 때문에 <화재의 색>을 먼저 읽었어야 하나? 하는 의문이 있었지만 상관없다고 한다.


마지노선에 근무하는 두 군인, 가브리엘과 라울.

수학교사 출신의 하사 가브리엘, 군수품으로 장사를 하는 라울.

이 둘은 엮이고 꼬인 관계다. 아니 가브리엘이 라울에 종속되었다. 도둑질 하나로.

엉터리 정보와 허술한 군비로 프랑스 군대는 독일의 전차 군단을 마주한다.

당연히 박살난다. 이 와중에 가브리엘과 라울은 작은 전공을 세운다.

하지만 이 둘은 자신의 부대로 복귀하지 않고 탈영병이 된다.

무법자처럼 살고 싶은 라울에게 이 탈영병 생활은 자신이 바라는 대로 할 수 있는 기회다.

하지만 이 시간은 짧게 끝나고, 약탈한 집에서 군인에게 잡힌다.

이들이 갇힌 감옥의 죄수들이 전쟁 중 남으로 이동하는 과정은 허술하기 그지없다.

작가는 이렇게 역사의 사실 속에 이 둘을 넣어서 그 현실을 비튼다.


중간부터 나온 헌병 상사 페르낭.

이 소설에서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아내를 후방으로 보낸 후 기동헌병인 자신의 업무를 충실하게 이행한다.

단 한 가지 소각 대상이었던 돈자루를 하나 살짝 빼놓은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는 라울 등이 있는 죄수들의 이동을 감시하고 도와주는 헌병대원 역할을 한다.

페르낭은 비효율적이고, 비능율적이고, 비인도적인 군에서 인간성을 제대로 보여준다.

천 명이 넘는 죄수를 이송하는 작업이 얼마나 위험하고 허술한 지 알려준다.

재밌는 점은 그가 훔친 돈의 일부가 이 죄수들의 식량을 구하는데 쓰였다는 것이다.

먼저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며 자신의 임무에 충실한 그는 또 다른 매력남이다.


이렇게 작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뒤섞고, 엮고, 꼰다.

서로 다른 곳에 있던 사람들이 돌고 돌아 한 곳에서 만난다.

그 과정과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작가는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낸다.

황당한 일도 있고, 재밌는 일도 있고, 순간의 열정에 감탄하는 순간도 있다.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없는 시대와 상황들이다. 그런데 재밌다.

이 재미는 잘 짜인 구성과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엮여서 만들어진 것이다.

아!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쥘 씨도 있다. 평생 한 여자를 사랑했던 그.

그리고 마지막 에필로그는 아주 강렬한 후일담이다. 삶을 압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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