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슬픔의 거울 오르부아르 3부작 3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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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전반부를 관통하는 역사를 다룬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다.

이 3부작 중 먼저 읽은 것은 <오르부아르>이다.

2부에 해당하는 <화재의 색>은 아직 읽지 못했는데 찾아보니 역시 두툼하다.

최근 두툼한 책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지고 있다. 시간과 체력의 문제 때문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이라면, 좋아하는 장르라면 주춤하지만 곧 달려든다.

아마 올해가 가기 전 2부도 읽지 않을까 생각한다. 단언하지는 못하겠지만.


한참 세계문학을 읽을 때 20세기 초 1,2차 대전과 관련된 소설을 읽었다.

역사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았고, 그 나라의 문화도 잘 몰랐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등장하는 사람들의 감정을 이해하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여기에 나의 취향에 맞지 않는 부분도 있어 기억에 남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

이때의 기억 중 일부를 이 3부작 중 두 편을 읽으면서 새롭게 했다.

영화나 드라마 등으로 많이 각색되고, 과장된 이야기가 아닌 현실의 이야기로 말이다.

이 소설의 앞부분은 그 유명한 마지노선에 대한 것이다.

히틀러의 독일을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고 믿었던 그 마지노선 속 현장이다.

이제 우린 그 마지노선이 얼마나 쉽게 무너졌고, 프랑스가 얼마나 빨리 무너졌는지 안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풀어갈 때 주인공을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명을 내세운다.

각각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내세우면서 그 시대의 풍경을 더욱 복합적으로 그려낸다.

탈영병, 헌병, 아이를 바라는 여성, 사기꾼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 중에서 가장 놀라운 인물은 사기꾼 데지레인데 그는 필요에 따라 그의 역할을 바꾼다.

한 살인여성을 변호하는 변호사로, 국방 방송의 왜곡된 정보 전달자로, 엉터리 신부로.

그 이전에는 학교 선생과 비행기 조종사까지 맡은 적이 있다.

그는 갑자기 나타났다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아주 멋지게 해낸 후 갑자기 사라진다.

왜곡된 방송을 할 때 그가 보여준 이야기는 작가가 지어낸 허구가 아니란 점에서 놀랍다.

이 이야기를 읽다 보면 왜, 어떻게 프랑스가 그렇게 빨리 쉽게 무너졌는지 알 수 있다.


루이즈의 벗은 몸을 보고 싶다고 요청한 식당 단골 고객인 의사.

그와 함께 호텔에 가서 옷을 벗는데 갑자기 총을 꺼내 자신의 머리를 쏜다.

공포, 두려움 등으로 옷을 벗은 채 방밖으로, 호텔밖으로 달려나간다.

그리고 그녀의 불운하고 불행했던 과거가 조금씩 흘러나온다.

자살한 의사가 죽은 엄마의 연인이었다는 사실. 임신해 아들을 낳은 적 있다는 과거.

이런 사실을 알기에 그녀와 멀어지고자 한 의사의 아내와 그 딸.

엄마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게 되면서 그녀의 삶은 또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런데 이 루이즈가 <오르부아르>에 잠시 나왔던 그 소녀라고 한다.

이 때문에 <화재의 색>을 먼저 읽었어야 하나? 하는 의문이 있었지만 상관없다고 한다.


마지노선에 근무하는 두 군인, 가브리엘과 라울.

수학교사 출신의 하사 가브리엘, 군수품으로 장사를 하는 라울.

이 둘은 엮이고 꼬인 관계다. 아니 가브리엘이 라울에 종속되었다. 도둑질 하나로.

엉터리 정보와 허술한 군비로 프랑스 군대는 독일의 전차 군단을 마주한다.

당연히 박살난다. 이 와중에 가브리엘과 라울은 작은 전공을 세운다.

하지만 이 둘은 자신의 부대로 복귀하지 않고 탈영병이 된다.

무법자처럼 살고 싶은 라울에게 이 탈영병 생활은 자신이 바라는 대로 할 수 있는 기회다.

하지만 이 시간은 짧게 끝나고, 약탈한 집에서 군인에게 잡힌다.

이들이 갇힌 감옥의 죄수들이 전쟁 중 남으로 이동하는 과정은 허술하기 그지없다.

작가는 이렇게 역사의 사실 속에 이 둘을 넣어서 그 현실을 비튼다.


중간부터 나온 헌병 상사 페르낭.

이 소설에서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아내를 후방으로 보낸 후 기동헌병인 자신의 업무를 충실하게 이행한다.

단 한 가지 소각 대상이었던 돈자루를 하나 살짝 빼놓은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는 라울 등이 있는 죄수들의 이동을 감시하고 도와주는 헌병대원 역할을 한다.

페르낭은 비효율적이고, 비능율적이고, 비인도적인 군에서 인간성을 제대로 보여준다.

천 명이 넘는 죄수를 이송하는 작업이 얼마나 위험하고 허술한 지 알려준다.

재밌는 점은 그가 훔친 돈의 일부가 이 죄수들의 식량을 구하는데 쓰였다는 것이다.

먼저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며 자신의 임무에 충실한 그는 또 다른 매력남이다.


이렇게 작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뒤섞고, 엮고, 꼰다.

서로 다른 곳에 있던 사람들이 돌고 돌아 한 곳에서 만난다.

그 과정과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작가는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낸다.

황당한 일도 있고, 재밌는 일도 있고, 순간의 열정에 감탄하는 순간도 있다.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없는 시대와 상황들이다. 그런데 재밌다.

이 재미는 잘 짜인 구성과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엮여서 만들어진 것이다.

아!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쥘 씨도 있다. 평생 한 여자를 사랑했던 그.

그리고 마지막 에필로그는 아주 강렬한 후일담이다. 삶을 압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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