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림의 연인들 안전가옥 쇼-트 18
김달리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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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가옥 쇼트 18권이다.

안전가옥 앤솔로지 <빌런> 속 ‘우세계는 희망’에서 처음 만났다.

이번 소설은 메타버스 속 부부와 현실의 부부 사이의 문제를 다룬다.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인물은 모두 세 명이다. 다미, 석영, 초영 등이다.

이 세 명이 번갈아 가면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대단한 건축가 고선의 딸 고다미가 있다.

그녀의 남편 석영은 메타버스 밀림에서 다른 여자와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

그 결혼의 대상이 바로 닉네임 초코페인 이초영이다.


다미와 석영의 신혼 여행 이야기는 그들의 환상과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환상은 에단 호크 주연의 <비포 선라이즈>이고, 현실은 석영이 다미처럼 부자가 아니란 것이다.

하지만 석영은 아주 잘 생긴 남자고, 다미는 그를 사랑한다.

이 둘은 서로 사랑했다. 이 사랑에 작은 균열이 생긴 것은 두 집안의 경제적 차이 때문이다.

다미에게는 별것 아닌 것이 석영에게는 아주 힘든 일이다.

대표적인 사건이 석영이 부모의 집 사기에 휘말린 것이다.

아내가 잘 차지 않는 보석 중 하나를 팔려다 얼마나 비싼 것인지 알게 된다.

이 사실이 아내에게 알려지면서 생기는 문제는 석영의 가슴에 큰 상처가 된다.

물론 이런 일이 있다고 부부 사이가 틀어지는 것은 아니다,


석영은 메타버스 밀림의 플랫폼 직원이다.

이 밀림 속에 직원들은 누구나 하나씩 비밀 계정을 가지고 있다.

결혼한 유부남이 다른 팀 사람과 게임 속에서 부부 사이로 지내기도 한다.

석영은 처음에는 그냥 호기심에서 이 밀림에 접속해 돌아다녔다.

우연히 초코페라는 여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다른 의도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이 우연한 만남과 메타버스 속 마약의 사용은 쾌락을 극대화시킨다.

단순한 질문을 던지게 되는데 그것은 이런 가상 현실 속 만남을 어떻게 볼 것인가다.

현재의 기술이라면 그냥 하나의 놀이로 볼 수 있지만 미래는 또 다르다.

현실과 별 차이 없는 메타버스가 그들의 육신과 정신을 거의 동기화시킨다.


석영이 늘 초코페를 찾고, 말하는 햇수가 늘어난 것도 이런 이유다.

현실의 불만족을 메타버스 속 여성에게서 대안을 찾고 만족한다.

이 메타버스는 성인들만 가입이 가능한데 늘 그렇듯이 미성년자들이 부모 아이디를 도용한다.

이들은 밀림 속에서 매춘 등을 하면서 돈을 번다.

초코페 이초영도 이런 미성년자 중 한 명이다.

석영은 초코페가 미성년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현실에서 만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초코페는 나타나지 않았고, 초영의 부모가 석영의 정체를 알고 나타났다.

이유는 이 부부를 협박해서 돈을 뜯어내려는 속셈이다.

다미는 합의금 몇 억을 주는 것보다 자신의 자존심이 더 우선이다.


이 세 명의 남녀가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살아간다.

어느 순간은 그 감정이 밖으로 드러난다. 그렇다고 이 감정에 완전히 휘둘리지는 않는다.

밀림은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마약의 유통을 막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이 마약이 그들의 중요한 수익원 중 하나다.

마약을 먹고 하룻밤의 쾌락에 빠지는 남녀들이 수없이 많다.

다미도 밀림에 가입해 이런 쾌락 속에 빠진다. 이 부부 뭐지?

현실의 불만을 메타버스 속에서 해소하려고 하지만 그 쾌락은 한정적이다.

여기에 자신의 뒤틀린 욕망을 충족하려는 시도가 현실과의 경계를 지운다.

이 소설의 마지막은 이런 문제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길지 않는 이야기는 메타버스란 가상 공간과 현실의 문제를 그대로 보여준다.

자신이 바란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투영해 사랑을 갈구한다.

다미는 자신의 눈앞에서 죽은 엄마를, 낳지 못한 자식에 대한 사랑을 초영에게 투영한다.

석영에 대한 사랑을 다른 사람과의 원 나이트와 그의 모습을 덧씌워 해결한다.

초영은 다미의 거대한 부에 끌린다. 영악하게 자신을 포장한다.

반면에 석영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상황 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이들의 감정과 행동이 뒤섞이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간결하게 처리된다. 아쉬운 대목이다.

더 깊이 파고들어 심리적인 문제들을 더 강렬하게 부각시킬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실제 미래에 이런 메타버스가 생긴다면 나의 선택을 어떤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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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피플 상상초과
김구일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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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첫 장편 소설이다.

안전가옥 앤솔로지 <빌런> 중 ‘송곳니’에서 처음 만났다.

그때 기록을 보면 이 앤솔로지 중에서 가장 흥미 있게 읽었었다.

작가의 이력과 장르와 출판사 브랜드가 이 책을 선택하게 했다.

특히 초능력이란 단어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눈길이 간다.

그리고 이 초능력이 한 박사의 유전자 조작의 결과라고 할 때 눈이 더 반짝인다. 

이런 기대를 가지고 읽는데 단편과 다른 구성과 설정이라 약간 아쉬운 부분이 있다.

좀더 많은 이야기를 넣을 수 있는데 많은 가지를 쳐낸 느낌이다.


이 소설의 도입부는 아주 현실적이다.

제로가 다른 사람이 먹다 남긴 음료수를 받아 마시고, 카페 남자 화장실에서 대충 씻는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보는 부주의한 손님의 테이블 위 노트북을 들고 나온다.

이때 그를 본 한 손님이 말한다. 자리를 치우고 가라고.

이 신형 노트북을 가지고 고물상 하는 김 사장을 찾아간다. 장물이라 겨우 30만 원을 받는다.

김 사장은 이런 도둑질 말고 자신과 함께 일하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제로는 마더를 기다리고, 돌봐야 할 친구 원, 투가 있다.

이 아이들은 버려진 마을의 폐가에 모여 조용히 살아간다.


몇 년 전 무더위 속에 이 소년들이 집밖으로 나가 은행에 간 적이 있다.

시원한 바람, 시원한 정수기 물, 구걸로 얻은 돈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친절하지 않다. 그들을 협박하고 때리고 가두는 어른들이 있다.

겨우 십 대 초반인 이들은 그 어떤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갇혀 있었다.

제로의 관찰력으로 탈출하는데 들킨다. 이때 그들을 숨겨준 인물이 바로 김 사장이다.

이 세 소년의 정체는 마더는 오지 않고, 투의 병세가 심해지면서 밝혀진다.

투는 당뇨병을 앓고 있고, 지속적으로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한다.

제로가 택시를 잡아타고, 마더가 근무하는 강원도 세온 병원으로 간다.

그리고 이 세 소년이 유전자 조작과 그 부작용의 결과물이란 사실이 알려진다.

물론 이것은 마더 자영과 그녀를 통해 이 아이들을 찾으려는 윤철의 이야기를 통해서다.


열다섯 소년들이 가진 초능력은 특별하지만 세상을 뒤집을 정도는 아니다.

제로는 외견상 별다른 문제가 없고, 탁월한 두뇌와 뛰어난 관찰력을 가지고 있다.

원은 괴력을 발휘하지만 햇볕을 쬐면 몸에 이상이 생기는 모양이다.

투는 아주 뛰어난 청각을 가지고 있어 멀리서 나누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지만 당뇨병 환자다.

이 능력들을 적재적소에 사용한다면 무적이겠지만 이들은 아직 그 활용에 서투르다.

그리고 윤철에게 쫓기는 상황에서 이 능력은 한정적으로 활용할 수밖에 없다.

특히 윤철이 권총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행동에 제약에 걸린다.


작가는 한정된 공간과 사람들을 그렇게 길지 않은 이야기 속에 넣었다.

재밌는 것은 박성호 박사의 연구에 반대 데모를 하는 사이비 종교 집단이다.

이들이 제로 등의 존재를 알고 접근해서 아이들을 자기 종교의 희생자로 만들려고 한다.

외롭고 힘들게 산 아이들에게 그들이 보여준 따뜻한 행동은 원과 투를 사로잡는다.

물론 놀라운 통찰력을 가진 제로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한정된 공간 속에서 윤철 일행이 나타나고, 이들은 같이 마주하고 싸우고 도망친다.

이때 도와주는 사람이 나타나는데 바로 김 사장과 명주의 딸 소이다.

이 이전에 명주와 제로의 에피소드가 몇 번 등장해 이 상황을 설명한다.


상당히 좋은 가독성으로 빠르게 끝까지 달려가게 한다.

예상을 뛰어넘은 장면들이 연속적으로 나온다.

윤리와 양심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의 이익이 우선인 사람도 있다.

몰랐던 자식이 나타났지만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엄마의 마음도 눈길이 간다.

누구는 자신이 만든 상황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해 마음의 짐을 덜어낸다.

반전을 설계하지만 그 반전에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한다.

이야기가 생략된 부분의 아쉬움을 이런 상황들이 채워준다.

빠른 진행과 인간의 욕망을 솔직하게 그려낸 부분은 아주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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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 교유서가 소설 2022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김이은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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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정은영의 <임산부 로봇이 낳아드립니다> 이후 두 번째로 읽는다.

이 얇은 단편집에는 두 편이 실려 있다.

표제작 <산책>과 <경유지에서>이다.

이 두 편 모두 짧은 단편이라 빠르게 읽을 수 있다.

개인적 취향만 놓고 본다면 이번 단편집이 더 마음에 든다.

좋아하는 장르는 분명 SF인데 이야기를 풀어가는 문장이니 이야기는 이 소설이 더 마음에 든다.


<산책>은 신도시로 이사 온 여경의 집에 집들이 온 윤경의 시선을 담고 있다.

단지 안에 수목이 십 미터도 넘고, 각 동 사이의 간격도 상당히 떨어져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아이들이 먼저 인사를 한다.

실제 신도시 아파트 아이들이 이런 행동을 하는지 모르지만 서울 아파트와는 사뭇 다르다.

단지 속에 쉼터가 있고, 집밖을 조금만 나가도 쉽게 산책할 수 있다.

더 넓어진 공간, 높아진 삶의 질. 하지만 서울까지의 출퇴근 시간은 더 늘어났다.

집에 모든 것을 걸고 사는 한국인에게 이런 좋은 장점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집값이다. 강남에 대한 환상이다. 씁쓸한 대목이다.


<경유지에서>는 읽으면서 이화의 행동에 놀랐다.

초급반 영어 강사 에릭에게 자신의 집 주소와 문 비밀번호를 쪽지로 전달한다.

능청스럽게 에릭은 빈집에 들어와 누워 있는다.

이 둘은 길지 않은 시간 동거한다. 이화의 이런 행동은 무엇 때문일까?

어머니의 죽음 이후에 찾아온 거대한 상실감 탓일까?

이화는 에릭의 작은 일탈들을 그대로 받아준다.

제대로 거절할 줄 모르는 그녀의 삶이 만들어낸 현실적 대응이다.

에릭은 또 어떤가? 그는 영어 사용자란 것 하나만 믿고 동아시아를 돌아다닌다.

한국 영어 시장의 현실과 한 여성의 상실감이 맞물려 강한 인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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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그 길 끝에 행복이 기다릴 거야 - 흔들리고 지친 이들에게 산티아고가 보내는 응원
손미나 지음 / 코알라컴퍼니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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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손미나의 여행 에세이를 읽었다.

출간 목록을 찾아보니 <스페인 너는 자유다> 이후 처음인 것 같다.

다른 책들의 표지가 낯익고 몇 권을 사 놓은 것 같은데 읽은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 우선 순위가 계속 밀려 읽지 못한 모양이다.

이 책도 한때 나의 산티아고 순레길 열정이 없었다면 밀렸을 것이다.

팬데믹 이전, 작가처럼 프랑스길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상상을 했다.

한때 산티아고 순례길 예세이나 팟캐스트를 아주 열심히 읽고 들었다.

이 책에서 그 이전의 흔적을 살짝 바랐고, 그 열정을 다시 깨우고 싶었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그때의 열정은 많아 수그러들었고, 불완전한 기억으로 계속 비교하면서 읽었다.


홀로 간 산티아고 순례길이 아니다.

일본인 사진작가 레이나, 청년 영상감독 이지환 군이 함께 한 일정이다.

다른 사람과 함께 했다고 그녀가 걸은 800킬로미터를 대신 걸어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동행자들이 그녀의 순례길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보여주지 않은 것은 조금 아쉽다.

작가와 자연풍경을 멋지게 찍은 사진작가가 레이나라는 것은 알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함께 한 일행과 그 길을 어떻게 느끼고, 즐기고, 힘들어 했는지가 나왔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이 에세이 속에서 생략된 그들의 감상은 어쩌면 또 다른 시각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은 어느 순간 글보다 더 강하게 마음에 와 닿았다.


이 순례길을 다녀온 사람들의 수많은 이야기는 모두 제각각이다.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가 중요한 책도 있고, 순례길 정보에 집중한 책도 있다.

이 책에도 나온 배낭의 무게 부분은 많은 배낭 여행자들이 하는 말이다.

버리고 가도 될 텐데, 가지고 가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하고 그들은 말한다.

우리가 잠깐 배낭을 들고 다닐 때 결코 느낄 수 없는 일이 이 순례길에서는 생긴다.

여행이 길어지면 점점 더 많은 것을 내려놓고 걷게 된다고 한다.

좀 걸어본 사람들은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이다.

500미리 물 병 하나가 나중에 얼마나 무겁게 다가오는 지 알게 되는 그 순간도 있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들이 이 책에서는 자세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아주 힘든 길임에는 분명하다.

800킬로미터면 서울 부산 왕복 거리다. 40일 동안 걸어서 완주해야 한다.

다른 책에 의하면 이 길을 한 번에 걷지 않고 나눠 걷거나 필요에 의해 버스를 타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평지만 걸어도 쉽지 않은데 그 길이 경사가 심하고, 비와 땡볕 속에서 걸어야 한다면 어떨까?

아름다운 풍경도 육체의 피곤 앞에서는 가끔 그냥 풍경으로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반대로 그 풍경이 잠시 그 육체의 고통을 지워주는 순간도 있다.

이런 순간을 글로 표현하는 것보다 사진 한 장이 더 분명하게 보여준다.

어떤 풍경은 한국에서도 본 것 같다고 느껴진다. 착각일까?


이 힘든 길을 걸으면서 작가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가끔 자기계발서 같은 결론으로 이어지는 부분은 나의 취향과 동떨어져 있다.

하지만 계속해서 던지는 질문과 나름의 대답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많지는 않지만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소개도 좋았다.

특히 열 살 아들과 함께 마지막 코스를 걷는 엄마 이야기는 나를 돌아보게 한다.

감히 나라면 시도조차 못할 일이다. 그 짜증을 어떻게 온전히 다 받아낼 것인가.

하지만 이런 생각이 나와 아이의 삶에 새로운 가능성을 막고 있는지 모르겠다.

만약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다면 이 책은 적당하지 않다.

그러나 자기계발이나 그 길에 대한 간단한 감상 등을 원한다면 나쁘지 않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런 힘든 여정은 삶의 과정 중 한 부분이다.

한국 도착 후 부은 다리 이야기는 아주 현실적이고, 어중간한 거리는 걷는다는 부분에 눈길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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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이의 무지개
양선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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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혹스러운 소설이다.

일반적인 서사가 있는 소설을 기대했는데 전혀 아니다.

부분적으로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지만 전체적인 흐름 파악이 힘들다.

더 섬세하게, 더 진중하게 읽으면 이해가 좀더 쉬웠을까? 모르겠다,

작가는 “허구에 대한 가짜 허구를 쓰고 싶었다.” 라고 말한다.

이것은 “소설에 대한 소설, 소설을 위한 소설, 소설을 향한 소설을 쓰는 사람”이었다는 말과 이어진다.

솔직히 이 문장을 보고 막연하게 공감했다.

아마도 소설 속에 소설이란 단어가 나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4편이 실려 있는데 어느 한 편 쉽게 읽히는 소설이 없다.

첫 단편 <가면의 공방>부터 혼란스러웠다.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이해해야 하는지.

서사가 없는 듯 있는데 주인공의 서사는 또 아니다.

현실에 뿌리를 둔 이야기가 아니고 환상 문학이 갑자기 끼어든 듯한 느낌이다.

그렇다고 환상 문학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지도, 구성되어 있지도 않다.

<거위와 인육>으로 넘어가면 천사와 악마가 뒤섞인다.

푸아그라와 거위 농장과 해방, 다시 억압의 순간으로 넘어가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천사를 소인배 천사라고 부르는 것이나 허풍쟁이 악마란 호칭은 또 무엇인가?


표제작 <클로이의 무지개>는 이야기의 교차와 중첩이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자이로스코프호의 쌍둥이 선원과 미스터리 스마일과 앵무새 클로이.

자이로스코프의 분실과 미스터리 스마일의 실종, 클로이의 혼란스러운 비행.

클로이의 깃털과 쌍둥이 선원의 파손된 후의 배와 만나는 순간.

미스터리 스마일과 거인의 만남, 거인의 눈 속에 있던 자이로스코프.

읽다 보면 시간의 순서가 뒤섞인 듯하고 공간도 비현실적이다.

여기에 자이로스코프호의 침몰과 그 배에 실린 황금 등의 유물 탐사가 끼어든다.

뜬금없이 나오는 오무아무아는 또 무슨 의미일까?


<프록코트 혹은 꼭두각시 악몽>은 자신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그’가 등장한다.

거울 보면 얼굴을 알 수 있지 않느냐? 는 물음이 이 소설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프루프록 씨의 저택 묘사는 읽으면서 쉽게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았다. 상상력의 빈곤이다.

나의 머리를 더 복잡하게 한 것은 ‘아를르캥의 유서’다.

독특하게 문장을 표현한 것과 원숭이가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다.

‘그’가 나가는 마켓은 무엇이고, 그가 찾는 자신의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무겁고 어려운 듯한 전체 이야기 속에서 가볍고 재밌는 순간들도 나온다.

그런데 이해는 어렵다. “인간의 편이 아닌 소설의 편에 선 작가”란 서평가 금정연의 말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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