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치
로렌조 카르카테라 지음, 최필원 옮김 / 펄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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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잔혹하고 끔찍한 적을 통쾌하게 깨부순다. 이 적들은 예상을 초월한다. 작가는 이 악당들에 대한 묘사에 조금도 주저함이 없다. 읽으면서 이런 일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면서 금방 사라졌다. 수많은 인간들의 잔혹한 취미나 기호에 대해 읽은 적이 있지만 이렇게 적나라한 적은 많지 않았다. 이런 적들을 그냥 둔다는 것은 독자인 나에게도 용납되지 않는다. 사형 제도를 그렇게 좋게 생각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보여준 보복과 응징은 고개를 끄덕이고 통쾌함을 주었다. 그 뒤에 남는 것은 물론 씁쓸함과 세상의 무서움이다.

 

소설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여섯 명의 경찰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부머, 데드아이, 제르니모, 핀스, 콜롬보 부인, 짐 목사 등이다. 이들은 경찰 각 부분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들의 활약은 사고 등으로 인해 중단된다. 부상 정도가 심해 정상적인 경찰 활동을 할 수 없다. 명예퇴직한 후 각각 다른 분야에서 일을 한다. 이런 그들을 하나로 불러 모으는 사건이 생긴다. 마약범 루시아를 잡는 일이다. 물론 이들은 현재 경찰이 아니다. 2부는 바로 루시아로 이어지는 과정이자 부머와 데드아이가 다시 재결합하게 되는 사건을 다룬다. 프롤로그에 다루어진 열두 살 소녀의 실종 사건이다. 부모가 여행을 간 사이 뉴욕에 오빠와 놀러왔다가 사라진 제니퍼 수색이다. 제니퍼의 아버지가 부머에게 찾아달라고 요청했고, 부머는 아직도 몸속에서 끓고 있는 경찰의 피로 인해 수사를 시작한다.

 

뼈 속까지 경찰인 이들에게 일상의 고요함은 쉽게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머와 데드아이가 제니퍼를 찾기 위해 움직인 것도, 루시아를 처단하기 위해 동료를 모은 것도 이 때문이다. 도청 전문가 핀스를 제외하면 모두 현장에서 뛰었고, 각 분야에서 최고였다. 이런 인물들이 그냥 하루를 보내거나 도어맨이나 보험판매인 등으로 사는 것은 죽는 것보다 오히려 못한 일일 수 있다. 그리고 강한 동료애는 자신들이 잃어버렸던 감정을 다시금 느낄 수 있게 만든다. 이들은 자신들의 조직을 아파치라고 부르고, 경찰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을 한다. 바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여야만 하는 경찰을 넘어 목숨을 걸고 적과 싸우는 것이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1982년이다. 1997년에 출간되었는데 왜 그 시절을 무대로 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슬리퍼스>와 관계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시대이자 새로운 변화가 불어오던 시기였기 때문일까? 이런 의문이 먼저 생긴다. 그리고 여섯 명의 주인공들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미국의 어두운 이면이 강하게 부각된다. 어느 정도 과장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이들을 부상으로 몰고 간 사건들은 한국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 이유는 총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끔찍했던 지존파 사건이나 다른 연쇄살인 등을 생각하면 꼭 그렇게 단정지을 수도 없을 것 같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야기가 얼마나 많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세 가지 이야기에 깜짝 놀랐다. 먼저 열두 살 제니퍼를 강간하고 폭력을 가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그녀를 끔찍한 수집가에게 넘기려고 한 것이다. 신체 일부를 집에 장식하고 진열하는 악당에게 말이다. 여기에 또 하나가 더해진다. 아기를 이용한 마약 거래다. 아기를 죽인 후 그 속을 파내고 그 안에 마약을 넣어서 전달하고 다시 돈을 채워 가져오는 거래 방식이다. 이 거래를 루시아가 고안한 것이다. 그녀의 마약 거래가 더 활성화될수록 더 많은 아기가 필요해진다. 정말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일이다. 이런 악당을 그냥 조용하게 감옥에 가둬둔다는 것이 가능할까 의문이다. 이런 엄청난 악당들과 아파치는 싸워야 한다.

 

경찰과 FBI에서 정보를 얻어 몰래 활동을 하려고 하는데 경찰 내부의 배신자가 이들의 정체를 알려준다. 이들은 이제 어둠 속이 아닌 밝은 곳에 드러난 상태다. 적들에게 노출되었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상할 것이 없다. 최악의 상황이다. 긴장감이 고조된다.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되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들이 벌어진다. 하지만 이들은 잔혹하고 끔찍한 적을 통쾌하게 깨부순다. 많은 희생을 치룬 후에. 후속편 <체이스>가 발표되었다고 하니 기대해본다. 뼈 속까지 경찰이었지만 그 한계를 벗어던진 이들이 과연 어떤 활약을 다시 보여줄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한 쪽에 32줄의 촘촘한 편집이 요즘 같은 시기에 낯설고, 읽기 약간 어려운 점도 있지만 그들이 활약에 몰입하는 순간 잊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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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 마리아
다니엘라 크리엔 지음, 이유림 옮김 / 박하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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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분단되어 있던 독일이 하나로 합쳐지던 여름의 이야기다. 주인공 마리아는 브렌델 농장에서 산다. 왜 이 농장에서 사는 걸까? 읽으면서 답은 찾지 못했다. 마리아는 이 집 다락방에서 남자 친구 요하네스와 함께 머문다. 열여섯의 소녀가 동거를 하는 것이다. 그 나라 분위기가 그런 것인지 아니면 특이한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많이 낯설다. 마리아가 요하네스에게 느끼는 감정은 ‘사랑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녀는 사랑으로 단정짓지 않았다.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낌새가 이상했다. 왜 이런 표현을 한 것일까 하고.

 

소설의 무대가 되는 곳은 서독이 아닌 동독의 한 시골이다. 이 당시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처럼 비밀경찰 슈타지가 생활 곳곳에 스며있었다. 누군가 조금만 실수를 해도 비밀경찰이 이들을 데리고 사라진다. 이것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이다. 일상의 흐름 속에 평화로운 시골 농장의 풍경과 삶이 있다면 이 이면에는 슈타지에 의해 뒤흔들렸던 삶도 있다. 전체주의의 강요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익숙해지며 자신의 삶을 잃어가는 아이도 있었다. 이런 것은 이제 과거다. 현재를 살면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거대한 변화의 폭풍이 밀려온다.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아니 알 수 없다.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으니. 이 흐름 속에 한 소녀가 사랑을 알게 된다. 제목처럼 그 여름, 마리아의 사랑 이야기다.

 

작가는 왜? 라는 물음 대신 현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마리아가 왜? 브렌델 농장에 살게 되었는지 보다 살고 있는 현재를, 갑작스럽게 헤너에게 끌린 마리의 심리를 그려낼 때도 왜? 라는 물음보다 그 감정과 그 모습을 표현하는데 더 노력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열여섯 살 소녀의 순수하고 강렬한 사랑이 우리 앞에 드러난다. 이때 헤너의 나이는 마흔이다. 이들의 불안하고 관능적인 사랑을 보면서 나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한 편의 소설이 있다. <롤리타>다. 아직 읽지 못한 소설이지만 줄거리를 알고 있다 보니 이 둘의 나이 차이가 연상 작용을 한 모양이다. 언젠가 <롤리타>를 읽게 되면 이 소설이 떠오를지 궁금하다.

 

마리아의 부모는 이혼했다. 아빠는 그녀보다 겨우 세 살 더 많은 러시아 여자와 재혼했다. 엄마와 살면서 모녀 사이를 돈독하게 만들지 않고 브렌델 농장에서 학교도 가지 않으면서 시간을 보낸다. 이런 그녀의 손에는 한 권의 소설이 들려 있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다. 이 소설의 내용과 현실의 삶은 대비되는 부분이 있다. 마리아의 감정과 현실을 표현하는데 이 소설의 일부가 인용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을 더 정확하게 알려면 원작과 대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워낙 오래 전에 읽은 책이라 내용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다보니 소설 속 내용만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녀가 소설 속 여자들 중 솔직하고 열정적인 창녀 그루센카를 더 좋아한다고 한 것처럼.

 

사춘기 소녀의 혼란스럽고 열정적인 사랑 이야기와 통일되는 과정 속에 있는 독일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전체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옮겨가는 와중에 밀려들어오는 풍요와 가치관의 혼란은 마리아와 헤너의 갑작스런 관계의 변화와 불안하고 격정적인 감정과 맞닿아 있다. 변화는 진행되고 작가는 이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브렌델 농장의 가장 지크프리트가 더 커지고 생산적인 농장을 열정적으로 계획하고 실천하는 모습은 동시에 마리아와 헤너의 관계도 돌발적인 관계가 아닌 일상의 반복으로 이어진다. 이때 마리아는 이 관계를 더 분명하고 명확하게 표현하려고 욕심을 낸다. 이성적 판단보다 가슴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열정에 굴복한 것이다. 그리고 비극이 생긴다. 독일은 통일되고, 마리아의 뜨겁고 화창한 여름은 이렇게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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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10-07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뭐 상관도 없는 이야기인데요...
저는 표지에 나오는 사람의 무릎이 처음에는 엉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 햐~ 이게 무슨 사진이야????` 하고 조금 놀랐는데
자세히 보니 무릎이더군요....그럼 그렇지.. 조금 안도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쓸데없는 이야기를 지껄여서...ㅜㅜ

행인01 2015-10-07 17:48   좋아요 0 | URL
한 번도 엉덩이로 본 적이 없는데 그런 착시가 일어날 수도 있군요^^;
 
페이크 픽션
배상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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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용산 철거민 참사 사건을 동기로 쓴 소설이다. 이 비극적인 참사 사건만 놓고 이야기를 풀었다면 굉장히 무거운 소설이 되었을 텐데 여기에 황당한 설정을 과장되게 집어넣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게 만들었다. 이 과장된 설정은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 황 감독이란 존재에서 비롯한다. 그가 쓴 시나리오는 우디 앨런을 닮은 프로듀스와 후배에게 아이디어를 도용당하고, 영화 출연만 오로지 기대하고 있던 동거하던 전직 배우이자 여자 친구 성숙과 헤어지기 싫어 사채업자에게 신장을 담보로 제공한다. 이때만 해도 이 사람 정말 재수가 없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본격적이 비극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그가 담보를 제공한 사채업자는 한때 영화 엑스트라로 활동한 적이 있다. 이런 경험과 함께 영화를 만든다는 황 감독의 만남은 자연스럽게 영화 제작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영화 시나리오다. 사채업자가 원하는 시나리오는 시대착오적이고 말도 되지 않는 내용이다. 이보다 더 문제는 제작비다. 2천만 원 빌린 돈에 이자까지 포함하여 2천4백만 원으로 영화를 찍어야 한다. 실제 이 돈은 이미 다 썼고 수중에는 한푼도 없다. 영화를 만들지 않으면 그에게 올 것은 장기 적출과 시골에 계신 부모님에 대한 알고 싶지 않는 폭력이다. 영화가 자본과 인력으로 만들어지는 현실을 생각하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고민과 고뇌와 불면의 밤을 거친 후 한 가지 대안을 찾는다. 바로 휴대폰으로 영화를 찍는 것이다.

 

촬영 장비를 마련했다고 끝이 아니다. 배우도 섭외해야 한다. 불쌍한 영화배우 지망생을 여러 명 면접보지만 그 누구 하나 마음에 더는 인물이 없다. 그러다 늘 시켜먹던 고수냉면 배달부가 놀라운 무술 실력을 보여준다. 그의 이름은 삼룡이다. 이소룡, 성룡에 이어서 액션 스타가 될 것 같다고 치켜세우는 인물이다. 순진한 그는 할아버지 밑에서 무술을 익혔지만 자신을 숨긴 채 세상이 어지러우면 도울 생각만 하고 있다. 이 순진한 청년이 황 감독의 감언이설과 흉계에 의해 이전까지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액션 영화에 발을 담근다. 리얼 액션이라고 부르는 것을 넘어서 진짜 싸움의 현장을 영상으로 담아내는 것이다. 실제 조폭들의 싸움 현장에 투입되어 싸우는데 삼룡이는 이것을 영화라고 생각한다. 물론 황 감독은 아주 어렵고 힘들게 얻은 영화의 무대다.

 

사채업자는 자신의 인생을 영화로 담기를 바라고, 어느 순간 사채업자의 연인이 된 성숙은 여주인공이 되고 싶다. 이때부터 영화 제작은 두 상전을 모신 아주 어려운 제작환경 아래에서 진행된다. 이 과정 속에 작가는 영화에 대한 이해와 다양한 영화 이야기를 녹여내면서 순진한 삼룡이를 타락의 현장 속으로 밀어넣는 황 감독을 좀 더 세밀하게 보여준다. 이 황당한 설정 속에서 비현실적인 존재감을 뽐내면서 인간미를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삼룡이다. 그의 무술은 실전적이고 효율적이라 이전에 나온 액션 장면과 차별된다. 최고의 액션 배우가 한참 꼬인 황 감독을 만나면서 자신의 삶도 같이 꼬인 것이다. 이 꼬임을 절정은 바로 용산 철거민 참사 사건이다.

 

이야기는 용산 철거민 참사가 있은 지 5년이 지난 현재와 그 사건이 있기까지의 과거를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그리고 현재 황 감독이 운영하던 만화방도 철거의 운명 아래 놓인다. 이 두 사건은 동일하다. 하지만 사건을 대처하는 방식이 다르다. 더 큰 생존이 걸려 있던 용산 철거민은 처절하게 투쟁하였고, 황 감독은 그냥 무력하기만 하다. 이 대비되는 모습은 절박함의 차이일까? 아니면 자본이 법의 이름으로 가하는 폭력에 대처하는 방식의 차이일까? 작가는 이 둘을 비교하지 않고 과거에 더 많은 비중을 두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자본의 편에 선 공권력이 불러온 비극이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었는지 아주 잘 보여주면서 말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그들이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도 같이 보여준다. 이런 현실에 순간적으로 분노하지만 곧 둔감해지는 나 자신이 너무 쉽게 보인다. 무섭다. 문제는 이것도 순간일 뿐이다.

 

소설이 보여주는 과거가 암울한 것은 그 비극의 결말을 알기 때문이다. 황당하게 진행되는 이야기가 웃기고 즐겁고 재미있지만 그 이면에 깔린 아픔과 비극과 고통은 조용히 가슴속으로 스며든다. 현재 시점에서 삼룡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등장하여 그때의 복수를 하지만 이것은 잠시 동안의 통쾌함 그 이상이 아니다. 세상은 변한 게 없기 때문이다. 아니 더 열약해졌다. 이런 세상에 황 감독이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다. 기록하는 것이다. 영화를 위해 촬영한 것들을 편집해서 세상에 내놓는 것이다. 황당했던 액션 영화가 자연스럽게 다큐멘터리로 변한다. 이 부조화를 독자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은 인간이 사라지고 자본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재미와 사회 문제를 잘 조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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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밤 : 시 밤 (겨울 에디션)
하상욱 지음 / 예담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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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점 장르 구분을 확인하면 시로 분류되어 있다. 이것을 왜 찾아보았느냐고? 읽으면서 이 시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좋게 말하면 언어유희지만 거의 말장난에 가까운 이 글들을 과연 시라고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기발한 발상에 감탄하고 통찰력이 돋보이는 글도 있다. 한 페이지에 몇 글자 적혀 있지 않고, 어딘가에서 본 듯한 시들도 있는 이 책을 단숨에 읽으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계속 고민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가 알고 있는 시와 너무 다르기 때문에 그 알을 깨기가 쉽지 않다.

 

그의 글은 인터넷을 떠도는 수많은 짤방이나 유머와 아주 닮아 있다. 작가 소개를 사진으로 표현했는데 작가와 소와 개의 사진으로 채워놓았다. 작가의 말은 말 사진 하나가 딸랑 있다. 목차는 목을 차는 사진 하나. 어디서 본 듯하지만 기발한 시작은 다음 글로 넘어가면서 재미와 즐거움을 주었지만 동시에 이 얼마나 종이의 낭비인가 하는 아쉬움을 주었다. 작가의 글이 주는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한 구성이라고 하지만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이것은 뒤에 손글씨로 넘어가면서 더 심해졌다. SNS 시인의 책은 이렇게 밖에 나올 수 없는 것일까?

 

그의 시는 SNS를 통해 짧게 발표되는 듯한데 몇 줄 되지 않는 분량으로 우리의 감성을 살짝 흔들어놓는다. “일상 탈출이던 당신이/ 이젠 일상이 돼버려서”에서 오래된 관계의 변화를 짧게 표현하고, “나를 성장시킨 건 이별이 아니었다 / 함께 있던 시간이지”라고 했을 땐 잠깐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이별보다 함께 한 시간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우리가 너무 쉽게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 변했어’는 사실 / ‘너 (내 맘에 안 들게) 변했어’ 더라”라는 글에서 과연 이 변화가 혼자만의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남녀차별 안 합니다 / 남녀구별 할 뿐이죠”라는 글 옆에는 몇 장의 사진이 찍혀 있다. 금방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나의 둔감함에 놀랐지만 차별과 구별의 의미가 이렇게 분명할 수가 없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살짝 피어올랐다. 만남과 헤어짐에 대한 변명을 녹여낸 “‘너를 갖고 싶다’며 다가왔고 / ‘나를 찾고 싶다’며 떠나갔네”에서 비겁한 변명이라고 외치고 싶었다. 또 비슷한 운을 사용하여 집중하지 않으면 그 의미를 쉽게 알 수 없는 글들이 많아 짧은 글이지만 집중해야 했다. 이런 말장난이 재밌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개콘의 한 장면 같은 글들이 지닌 한계성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읽기 싫은 늦은 밤에 이 책을 끄집어내어 시 읽는 밤을 만든다면 미소가 살짝 지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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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terotopia 2015-10-05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사람 시인이라고 부르는 게 좀 탐탁치 않아요. 아무리 통찰과 유머가 어느 정도 준수하다 하더라도 하이쿠보다 짧은 걸 시라고 부르는 건 좀. 꾸준히 쓴다는 점은 박수칠 일이지만, 그 내용물이 책이 되는 순간 얘기는 달라지겠죠. 그냥 블로그나 인스타에 떠도는 짤방이나 자체 제작 엽서 같은 거로 판매하거나 그런다면야 모르겠지만, 책으로 묶어서 시 코너에 배치해두는 것 자체가 넌센스 같아요. 수십 년 활동한 시인들 시는 1쇄 넘기기도 힘든 판국에, 물론 상품 구매야 구매자들 마음이지만. 그냥 어떻게 하면 대중 독자들이 움직이는지를 정말 잘 파악한, 시대의 어떤 흐름을 잘 캐치한 그런 사람이겠죠. 여튼 그렇네요.
 
소호의 달 런던의 강들 시리즈
벤 아아로노비치 지음, 조호근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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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강 시리즈 2권이다. 1권인 <런던의 강들>은 아직 읽지 않았다. 보통 시리즈가 순서대로 나오면 1권부터 읽는데 2권부터 읽어도 무리가 없을 것 같아 선택했다. 실제 읽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시리즈지만 각 권이 독립적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물론 시리즈이기 때문에 이어지는 부분도 많다. 이것은 나중에 읽으면서 채워나가면 된다. 지금까지 읽어온 수많은 미스터리 시리즈에서 이미 봐온 것들이다.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독자라면 1권부터 읽는다면 더 좋을 것이다. 그럼 2권을 보면서 몇 가지 궁금했던 것을 해결하고 갈 수 있으니까.

 

시리즈 2권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시선을 끌었던 것은 ‘21세기형 마법사 도제’란 단어였다. 현대와 판타지가 엮어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비현실적이지만 이것을 현실 속에 논리적으로 풀어낼 때 그 재미가 더 늘어나기 때문이다.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마법사들이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원거리 저격이 가능해지고, 강력한 폭발물이 만들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인간 집단의 조직된 힘은 몇몇 마법사의 능력만으로 결코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작가가 판타지 속 마법사의 능력을 더 키워놓는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단지 긴장감이 더 떨어질 뿐이다.

 

피터 그랜트. 그가 전편에서 어떤 활약을 펼쳤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는 런던 수도경찰국의 초자연적 사건을 수사하는 부서인 폴리 소속이다. 이 부서의 유일한 상사이자 직원은 그의 마스터인 나이팅게일 경감이다. 피터는 그에게서 마법을 배우고 있다. 이 소설의 설정 중 하나가 2차 대전을 거친 후 대부분의 마법사가 죽거나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 마법이란 것이 혼자 배우고 싶다고 그냥 익혀지는 능력이 아니라 재능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 같다. 당연히 이 재능은 노력과 연습을 통해 발전한다. 피터가 매일 나이팅게일에게 훈련을 받고 연습을 하는 것도 이런 과정을 통해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 속 몇몇 장면에서 이것을 잘 보여준다.

 

마법이 시전된 곳에는 흔적이 남는다. 이것을 베스티기움이라고 부른다. 복수는 베스티기아다. 일반 경찰이 사건 현장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하면 바로 폴리로 연락한다. 초자연적인 무엇인가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번 사건은 재즈 연주자 사이러스 윌킨슨이 연주 후 심장마비로 죽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돌연사의 경우 그가 출동하지 않지만 그의 몸 상태나 약물 검사 결과 등이 너무 정상이라 부검의가 그에게 연락한 것이다. 이 의사의 이름은 왈리드 박사다. 그는 폴리의 의료 상담역이기도 하다. 피터는 시체에게서 베스티기아를 느낀다. 재즈인 <바디 앤 소울>이 들린 것이다. 이 사건은 폴리가 조사해야 하는 사건이 된다.

 

피터는 폴리 소속이 되기 전 일반 경찰이었다. 실제 폴리 소속이 되었다고 해도 수사 방법이 아주 특별해지는 것은 아니다. 보통의 경찰처럼 현장을 둘러보고 피해자의 집에 가서 단서를 모으는 행동을 한다. 그가 일반 경찰과 다른 것은 단지 베스티기아를 느낀다는 것 정도다. 물론 이것을 느꼈다고 사건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피터는 사이러스와 함께 연주한 동료를 찾아가서 단서를 찾는다. 그 이전에 그는 아버지를 찾아간다. 아버지 리처드 로드 그랜트는 아주 유명했던 트럼펫 연주자였다. 그의 도움으로 그가 들은 <바디 앤 소울>이 누가 연주한 것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여기서부터 아주 풍부한 재즈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불행하게도 내가 아는 것이 적어 그 재미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

 

단 하나의 사건이라면 그냥 넘어갈 수 있지만 이상한 사건이 또 발생한다. 재즈 연주자가 심장마비로 죽은 사건이 또 있다. 여기에 끔찍하게 죽은 남자도 한 명 있다. 성기가 이빨로 물어뜯긴 남자 시체가 등장한 것이다. 이렇게 사건은 점점 더 늘어나고 연관성을 찾아내려는 피터의 노력은 계속된다. 이 과정 속에 마법사의 역사와 교육 기관 등이 나오면서 작가가 만들어가는 세계에 구체성을 더한다. 개인적으로 보안을 위해 80년대 컴퓨터를 이용하는 장면을 보고 가장 안정적인 보안은 구식이라는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더 느끼게 되었다. 여기에 마법사가 마법을 사용하면 왠지 모르지만 전자기기들이 망가지는 현상이 펼쳐진다. 과학이 더 발전해서 더 정밀해지고 섬세해질수록 마법이 더 큰 힘을 발휘하게 되는 설정이다.

 

작가의 이력에 그 유명한 <닥터 후> 각본가가 있다. 그 때문인지 아주 가끔 <닥터 후> 이야기가 등장한다. 런던이란 도시에 대해 잘 모르기에, 또 그 중에서 소호란 동네를 잘 모르기에 얼마나 현실에 충실하게 재현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장면들을 통해 머릿속으로 그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여왕폐하란 단어는 영국이란 것을 일깨워주고, 피터의 활약과 입담은 약간 늘어진다고 하는 순간 다시 몰입하게 만든다. 현대과학이 만들어낸 기기를 잘 사용하지 못하는 나이팅게일과 컴퓨터를 이용해 데이터를 정리하고 추출하는 피터는 대조된다. 이런 비교가 가끔 예상을 벗어나는 경우도 있다. 이때 작은 재미를 준다.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등장하여 비현실의 세계로 인도하지만 그 속에서 펼쳐지는 사건들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관심을 두어야 할 시리즈가 또 하나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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