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맨 유나 린나 스릴러
라르스 케플레르 지음, 이정민 옮김 / 오후세시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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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작품을 읽기 전까지 <샌드맨>하면 닐 게이먼의 그래픽노블이 먼저 떠올랐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유나 린나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인 이 소설이 나에게 아주 강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악당이 등장했다. 그의 이름은 유레크 발테르다. 하지만 이것은 그의 본명이 아니다. 이 연쇄살인범의 무서움을 작가는 아주 잘 묘사하고 있다. 한니발 렉터와 견주어도 조금의 손색이 없는 악당이다. 어쩌면 더 잔인할지도 모르겠다. 그가 살인을 하는 방식이 더 무시무시하기 때문이다.

 

유나 린나라는 이름을 보고 여자라고 착각했다. 그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남자 형사다. 13년 전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연쇄살인범 유레크 발테르를 잡은 것도 그다. 하지만 유레크의 죄를 완전히 밝혀내는 데는 실패했다. 그가 묻혀있던 사람을 끄집어내는 것을 발견하고, 실종자들과 그의 관계를 파악하는데 성공했지만 딱 거기서 멈추었다. 법원은 현장범이었던 관계로 그를 구속하고 특별 보호 관찰하는 격리구역에 가둔다. 그는 일반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악의 연쇄살인범으로 불린다. 물론 그에 대해 아는 사람에 한해서다. 그에 대한 두려움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인물이 그를 잡은 유나임을 감안하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에 대한 두려움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이야기는 바로 유나가 아내와 아이를 죽은 사람으로 만든 것이다. 유레크의 무서움은 유나에게 직접 피해를 가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의 실종이다. 보통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협박하면 약간의 두려움을 가질지 모르지만 무시할 것이다. 하지만 유레크는 다르다. 그와 함께 유레크를 잡은 사무엘의 아내와 자식들이 실종되고, 이들을 찾던 그가 절망에 빠져 자살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그는 극심한 공포에 사로잡힌다. 항상 자기 가족을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의 앞 권에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공포가 그대로 전달된다. 이런 공포 중 하나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보여주는 사연이 하나 더 나오는데 정말 무시무시하다.

 

유레크가 격리수용된 구역에 한 명의 정신과 의사가 들어온다. 그의 이름은 안데르스 뢴이다. 그에게 주어진 일은 유레크의 방에서 그가 만든 칼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가 일반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은 연쇄살인범이란 것을 알려준다. 근육주사를 놓아 무력한 상태의 유레크지만 안데르스는 알 수 없는 공포에 짓눌려 있다. 그의 상사는 옷을 뒤져 편지를 찾으라고 하지만 유레크가 주장하는 의견에 동조한 그는 편지가 없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집에 와서 이 편지를 붙인다. 특별한 내용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편지 한 통이 지금까지 잊고 있던, 13년 전에 죽었다고 생각했던 한 아이를 현실 세계로 불러낸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한다.

 

소설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진행된다. 하나는 유나, 다른 한 명은 여형사 사가, 마지막은 레이다르다. 13년만에 나타난 아이의 아버지가 바로 레이다르다.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지만 아이들의 실종과 이혼과 아내의 자살로 살아있는 시체처럼 사는 인물이다. 다른 사람처럼 그가 자살하지 않고 살고 있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그의 삶은 피폐해져 있다. 아들이 살아 돌아오자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깨닫고 딸이 돌아오지 못한 것을 자책한다. 초반과 마지막에 상당한 비중을 지니고 등장하는데 이 사건의 원인을 알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가는 일반적인 형사가 아니다. 비밀경찰이다. 미카엘이 살아서 돌아온 후 어떤 방법을 사용해도 유레크로부터 동생 펠리시아를 구해낼 방법을 찾지 못하자 차선책으로 선택한 대안이다. 격리구역에 넣어서 유레크로부터 정보를 끄집어내는 역할을 맡는다. 사가는 아주 아름답지만 운동으로 다져진 몸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어릴 때 엄마의 죽음과 관련된 트라우마를 안고 살고 있다. 격리구역에서 유레크와 만나면서 그녀의 내면은 흔들리고 불안해진다. 유레크와 접촉했던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잘 아는 유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사가가 격리구역 안에서 겪게 되는 사건들은 이 소설의 또 다른 긴장감을 불어넣어준다.

 

유나. 그는 유레크를 잡았지만 그의 그 어떤 정체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미카엘의 귀환과 그에게서 얻게 된 정보와 사라가 잠입한 후 설치한 도청으로 13년만에 사건의 핵심에 다가간다. 그의 두려움과 경계심과 끈질긴 노력이 함께 어우러져 어둠 속에 잠겨 있던 사건을 하나씩 밝은 곳으로 끄집어낸다. 하지만 그는 어느 한 순간도 유레크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심을 내려놓지 않는다. 이미 파트너 사무엘의 죽음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또 그가 느끼는 공포는 읽는 내내 긴장감을 준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사건이 이어지면서 잠시도 긴장감을 내려놓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최고의 형사다.

 

읽는 내내 의문이 하나 있었다. 왜 유레크는 사람들을 납치한 후 바로 죽이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미카엘이 동생과 함께 캡슐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13년 동안 살았던 것은 어떤 이유였을까? 그리고 자식들의 실종과 죽음이 과연 모두를 죽음으로 내몰 정도의 강한 충격을 주었을까 하는 것이다. 레이다르처럼 거의 시체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것을 잊으려고 하면서 힘들게 사는 사람도 있을 텐데 말이다. 이런 의문이 이어지는 와중에 드러나는 진실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 소설로 가장 특이하면서도 잔혹한 살인마를 한 명 만났다. 쉽게 잊을 수 없는 연쇄살인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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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살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6
나카마치 신 지음, 현정수 옮김 / 비채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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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살의> 이후 두 번째로 읽은 나카마치 신의 소설이다. 이 소설의 원작은 <산책하는 死者>였는데 재간하는 과정에서 <천계살의>로 바뀌었다. 이 살의 시리즈는 아직 세 편 정도 남아 있는 모양이다. 원래는 살의 시리즈가 아니었는데 재간되는 과정에서 시리즈로 묶인 모양이다. 비채에서 이 시리즈를 내면서 이 소설을 응용편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말해 나는 잘 모르겠다. 다 읽고 난 후 뜬금없이 등장한 인물이 명탐정이 되는 장면들을 읽고 약간은 어색했다. 앞에 깔아둔 설정들을 가장 잘 설명하기 위한 존재라는 부분에서는 동의하지만 개인적으로 깔끔한 마무리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잘 짜인 소설이다. 서술 트릭을 이런 방식으로 풀어낸 소설을 알고 있지만 이 작품보다 뒤에 나왔다. 그 부분을 생각하면 대단하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만 놓고 본다면 그렇게 좋아하는 방식이 아니다. 하지만 읽는 내내 작가가 의도한 방식으로 나의 추리가 이루어졌다. 한 마디로 작가에게 끌려다닌 것이다. 물론 하나의 가능성을 계속 생각했고, 그것이 사실로 밝혀졌지만 작가가 만들어낸 길을 차분하게 따라간 것은 사실이다. 이번에는 속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하고 상당히 신경을 쓴 채로 읽었는데도 말이다. 내가 다른 가능성을 예상한 것은 늘 말하지만 지금까지 읽은 추리소설의 경험 덕분이다. 추리 실력 때문이 아니라.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면 네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사건, 추궁, 수사, 진상 등으로. 사건은 이 소설 속 작가인 야규 데루히코가 실제 사건을 모델로 한 추리 소설을 <추리세계>란 잡지에 문제 편으로 내놓은 것으로 가미나가 아사에 살인 사건을 다룬 부분이다. 아사에 살인 사건의 개요를 설명해준다. 이 장을 읽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범인을 작가는 다음 부분에서 뒤집는다. 이런 작가의 치밀하게 연출된 지시에 따라 나의 추리는 심하게 흔들린다. 예상한 인물이 범인이 아니라고 할 때 다시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한다. 너무 빤한 부분이라 실망할 수도 있었는데 다음 이야기로 이어진다.

 

추궁은 <추리세계>의 미녀 편집자 하나즈미 아스코의 시각으로 진행된다. 아스코는 야규의 해결 편을 얻고자 하지만 그는 자살한 것으로 밝혀진다. 놀라운 것은 야규가 제안한 추리소설 집필 방식이다. 문제 편을 읽고 자신과 다른 작가가 해결 편을 쓴다는 것이다. 해결 편 작가로 야규가 추천한 인물은 오노미치 유키코다. 탤런트 겸 소설가다. 오노미치가 추리소설을 좋아한다는 것은 알지만 과연 수락할지는 의문이다. 아스코는 그녀를 찾아간다. 작가를 밝히기 전에는 좋아했지만 문제편 작가가 야규라는 사실에 놀라면서 거절한다. 아스코는 다른 작가를 찾아갔다가 문제 편이 실제 있었던 사건이고, 실명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녀가 이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한다.

 

재미난 설정 중 하나가 추궁에서 아스코가 조사하는 것과 별개로 수사란 장이 있다는 것이다. 아스코는 문제 편을 기초 삼아 소설 속 등장인물들을 만나고, 현장을 둘러본다. <추리세계> 잡지 편집자답게 이런 조사 내용을 가지고 추리한다. 그런데 가장 먼저 용의자가 된 사람이 죽는다. 범인은 다른 사람이 분명하다. 조사가 더 깊게 진행되면서 새로운 사실이 나오고, 이 모든 살인 사건이 누군가를 범인이라고 분명하게 가리키고 있다. 추리가 자연스럽게 그 방향으로 흘러간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죽음이 일어난다. 범인을 누굴까? 의문이 생긴다. 그리고 이야기는 수사 장으로 넘어간다.

 

수사 장에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인물들이 또 바뀐다. 이제는 형사들이다. 진짜 프로들이 본격적으로 사건을 수사한다. 그들의 수사는 아스코 등이 추리한 것을 다시 확인하고 사실임을 밝혀낸다. 더 많은 전문 인력과 수사가 덧붙여져 새로운 사실을 알아낸다. 여기서 나의 추리는 또 한 번 농락당한다. 가능성이 점점 사라지면서 남는 것이 몇 없다. 설마라고 생각한 것이 진짜로 변한다. 읽으면서 어색하고 돌출되었다고 생각한 것들이 하나씩 단서로 바뀐다. 숫자, 사람, 날짜, 살인의도 등이 힘을 조용히 발휘한다. 앞에서 말한 아쉬운 부분은 뒤로 하고. 결코 낯설지 않은 서술 트릭의 매력이 읽고 난 후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며 나의 추리가 어디에서 잘못되었을까 되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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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질문 - What is Your Wish?
오나리 유코 글.그림, 김미대 옮김 / 북극곰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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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를 의인화한 남녀를 등장시켜 ‘만약에’란 단어를 넣어 서로 질문을 주고받는 것을 다룬 그림책이다. 이 책 속에 나오는 질문들은 흔히 연인들이 자신들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던지는 질문이다. 이것을 작가는 간결하고 귀여운 그림체와 문장으로 표현했다. 어떻게 보면 닭살이 돋을 질문도 있지만 극적인 효과를 노리지 않은 담담한 그림체와 답으로 가슴 한 곳을 따뜻하게 데운다.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던 질문은 작은 벌레로 변해 코 위에 앉았을 때다. 답변은 기발하다. “한 번 날아봐”와 더불어 여행비용이 반값이라고 좋아한다. 그리고 살며시 입 맞추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말한다. 작은 벌레가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림은 간략한 선과 가벼운 색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처음 읽을 때는 따뜻하다는 느낌이었다. 다시 한 번 이 글을 쓰기 위해 뒤적이다 보니 섬세하게 느낌을 표현한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위에 말한 작은 벌레 이야기에서 붉게 물든 얼굴을 보여준다. 남자가 침대에서 책을 열심히 읽을 때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사랑하지”라고 답했을 때 그 표정은 정말 사실적이다. 그리고 다시 질문을 던지는데 역시 닭살이 돋는다. 하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한 질문들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 던질 수 있는 질문들로 읽고 보다보면 입가에 미소가 살짝 떠오른다. 책을 받아서 단숨에 읽었는데 읽고 난 후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아내다. 그녀가 읽으면서 보일 반응 한두 가지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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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의사들 - 그곳에 히포크라테스는 없었다
미셸 시메스 지음, 최고나 옮김 / 책담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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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지옥의 히포크라테스다. 히포크라테스가 의미하는 바가 의사임을 생각하면 지옥은 어딜까? 현대 역사에서 의사들이 가장 참혹한 행동을 한 것으로 꼽는다면 2차 대전 당시의 나치의 수용소일 것이다. 이 책은 2차 대전 당시 나치의 의사들을 다룬다. 보통 그 시절 희생자들을 다룬 것을 감안하면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던 몇 명의 의사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낯설다. 아우슈비츠로 대표되는 2차 대전 당시 수용소의 몇 곳만 알고 있는데 그보다 더 많은 수용소에서 아주 잔인하고 비인간적이고 참혹한 실험이 진행되었다. 그렇게 길지 않은 분량이지만 적지 않은 의사들이 나온다.

 

이 생체 실험을 한 의사들이 한결 같이 변명으로 내세우는 말이 있다. 바로 의학의 진보와 인간의 건강을 위해서라는 말이다. 반인류적인 행동을 희석시키기 위한 그들의 주장은 희생자들의 증언에 의해 많은 사실들이 밝혀진다. 그리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몇 가지 사실을 저자는 뒤집는다. 뭐냐고? 인간 생체 실험이 의학의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는 주장이다. 실제 결과물을 놓고 본다면 이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이런 생체 실험을 통하지 않고도 가능한 것들이 많았다. 실험의 결과물들이 실제 전쟁에서 그 효과를 그렇게 많이 발휘하지 못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 책의 1장과 마지막 장인 15장은 누구나 한 번쯤 읽어볼 필요가 있다. 뉘른베르크 강령이 왜 중요한지 알려주고, 미국 등의 승전국들이 2차 대전 후 나치들을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어떻게 이용했는지, 또는 우대했는지 알려주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것이 나치뿐이지만 우리에게는 일본의 그 유명한 731부대가 있다. 이 부대의 실험 자료들이 미국으로 흘러가 미국 의학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는 소문이 있는데 이 부분도 더 많은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 옛날에 중국에서 만든 <마루타>라는 영화가 731부대의 잔혹한 실험을 보여준 적이 있는데 이 책에 묘사된 몇몇 장면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솔직히 말해 이 책에 나온 인물 중 아는 사람은 딱 두 명이다. 힘러와 멩겔레다. 멩겔레의 이야기는 읽으면서 우리의 친일 역사와 겹쳐지면서 더 분노하게 되었다.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과거사가 현대 역사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요제프 멩겔레의 별명이 죽음의 천사였다는 말보다 그의 선택에 의해 하룻밤에 1500명이 죽었다는 사실에 더 놀란다. 그 유명한 가스실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바라는 바를 실현하기 위해 이 죽음의 의사들이 실험한 내용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라 사실로 다가오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이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진실이다. 이 나쁜 의사들 중 몇 명은 천수를 누렸는데 이렇게 된 과정의 몇몇은 분노를 자아낸다.

 

전후 혼란기에 이런 의사들을 찾아내어 처벌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희생자들의 증언과 조사가 진행되면서 나온 인물이 이 정도이니 더 많은 의사들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히틀러가 채식을 하면서 동물 실험을 반대한 반면 인간 실험은 허용했다는 부분이다. 이 의사들이 자신들의 관심 분야 연구를 위해 어떤 행동을 했는지 볼 때 작가가 더 자세하게 묘사하지 않은 것에 감사할 정도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저자도 잠시 말한 부분인데 2차 대전 이후에도 이와 비슷한 인간 실험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우리가 알고 있는 유럽국가에서 말이다. 물론 그 대상은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일부 나라지만.

 

읽으면서 저자의 분노에 공감하고, 그 잔혹한 행동에 치를 뜬다. 실험 윤리와 인간의 존엄이란 것이 확립되지 않은 시기라는 말로 이것을 피해가려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 대상이 당신이나 당신 가족이라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하고 묻고 싶다. 물론 이런 사람들은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실제 상황이라면 완전히 다르겠지만. 참혹하고 불편한 역사의 사실을 다루지만 결코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 될 이야기의 일부가 담겨 있다. 역사가 중요한 이유를 설명하는데 충분한 자료가 될 것 같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또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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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드런 액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은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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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는 이언 매큐언의 소설이다. 최근에 문학 팟캐스트 방송에 그의 소설 <속죄>가 알려지면서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다. 나의 경우 이전부터 그의 소설을 좋아했다. 줄리언 반스와 같은 다른 영국 유명 작가의 소설을 읽을 때 집중과 몰입이 힘들었던 것과 비교해서 이언 매큐언은 늘 이야기 속으로 나를 끌고 들어갔다. 최근 10년 이내에 가장 좋아하는 영국 작가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 것도 모른 채 읽었던 <암스테르담> 이후 단 한 편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다. 그리고 이번 소설도 마찬가지다.

 

칠드런 액트. 아동법이다. 이 소설의 소개 글에서도 백혈병에 걸린 소년이 종교적 신념으로 수혈을 거부하는 상황을 먼저 내세웠다. 작가가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은 부분이 이 아동법 부분이라고 한다. 소설을 쓰기 위해 아동법 관련 판결문을 많이 읽었다고 하는데 소설에 나오는 몇몇 판결문은 그 영향 덕분인지 아주 멋지다. 이 소설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되는 여호와의 증인 신자 소년에 대한 판결문에서 이런 장점이 아주 잘 드러난다. 물론 수사학적인 부분이 정치와 종교를 감안하여 서술되다보니 약간 둘러가는 표현이 있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한 판사의 판결은 정확하고 분명하다. 이때 사용한 문장이 분명 법원 판결문이라 건조할 텐데 이상하게 나에게는 그 건조함 너머의 감정이 살짝 다가온다.

 

영국 고등법원 판사인 피오나 메이가 주인공이다. 그녀는 어느 일요일 밤 남편에게서 황당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것은 아내와의 섹스가 없었고, 자신의 열정을 실현하기 위해 다른 여자와 연애를 하겠다는 선언이다. 배우자의 부도덕이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인데 읽으면서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 다음 왜 이 둘의 섹스가 없었는지 피오나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 부부의 나이가 피오나 오십아홉 살, 남편 잭이 육십한 살임을 감안하면 놀라운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아니면 나의 선입견이 문제일 수도 있다.

 

판사인 그녀에게 하나의 급한 소송이 들어온다. 그것은 바로 소개 글에 인용된 백혈병 소년의 수혈 논쟁이다. 여호와 증인의 가정에서 태어난 소년은 종교적 신념에 의해 수혈을 거부한다. 병원은 소년이 아직 열여덟 살이 아니고, 의학적 치료를 위해서라도 수혈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부모와 아이의 거부를 법원 판결 후 집행하고자 하는 의사의 의지다. 과학적으로 검증된 수혈을 단순히 종교적인 이유로 거부함으로서 죽게 된다는 것이 비정상적으로 여겨진다. 피오나의 직무 혹은 사명은 아이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합리적이고 합법적인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법적 성인이 되는데 이제 겨우 3개월 남은 애덤을 만나러 간다.

 

종교적 신념. 참 어려운 부분이다. 비종교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애덤이 수혈을 거부하는 것이 자신의 의지인지 아니면 부모의 의지가 투영된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부모도 역시 아들이 죽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단지 종교가 이것을 거부하니 자신들도 어쩔 수 없다. 자신들이 수혈을 중지해달라고 법원에 요청까지 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진짜 속내가 드러나는 것은 피오나의 판결 때문이다. 애덤과 피오나가 병원에서 함께 보낸 시간은 그녀가 판결문을 쓰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애덤에게도 역시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피오나가 판결을 위해 겪게 되는 몇 가지 이야기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소년이다. 하지만 이야기 전체를 끌고 나가는 것은 피오나의 일상과 삶이다. 남편과의 불화와 자신의 판결에 의해 죽게 된 한 아이. 물론 이 아이는 그녀의 판결이 아니었다고 해도 죽었을 것이다. 이런 가족과 아동에 대한 법률적 판결을 내려야 하는 그녀의 삶을 날카롭고 건조하고 정확한 문장 속에 풀어놓았다. 이것은 상황을 외부에서 좀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판결과 현실의 문제가 엮인 듯하면서 따로인 현실을 만들어내면서 법정 밖에서 그녀의 판결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다시 그녀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도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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