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맨 유나 린나 스릴러
라르스 케플레르 지음, 이정민 옮김 / 오후세시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이 작품을 읽기 전까지 <샌드맨>하면 닐 게이먼의 그래픽노블이 먼저 떠올랐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유나 린나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인 이 소설이 나에게 아주 강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악당이 등장했다. 그의 이름은 유레크 발테르다. 하지만 이것은 그의 본명이 아니다. 이 연쇄살인범의 무서움을 작가는 아주 잘 묘사하고 있다. 한니발 렉터와 견주어도 조금의 손색이 없는 악당이다. 어쩌면 더 잔인할지도 모르겠다. 그가 살인을 하는 방식이 더 무시무시하기 때문이다.

 

유나 린나라는 이름을 보고 여자라고 착각했다. 그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남자 형사다. 13년 전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연쇄살인범 유레크 발테르를 잡은 것도 그다. 하지만 유레크의 죄를 완전히 밝혀내는 데는 실패했다. 그가 묻혀있던 사람을 끄집어내는 것을 발견하고, 실종자들과 그의 관계를 파악하는데 성공했지만 딱 거기서 멈추었다. 법원은 현장범이었던 관계로 그를 구속하고 특별 보호 관찰하는 격리구역에 가둔다. 그는 일반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악의 연쇄살인범으로 불린다. 물론 그에 대해 아는 사람에 한해서다. 그에 대한 두려움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인물이 그를 잡은 유나임을 감안하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에 대한 두려움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이야기는 바로 유나가 아내와 아이를 죽은 사람으로 만든 것이다. 유레크의 무서움은 유나에게 직접 피해를 가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의 실종이다. 보통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협박하면 약간의 두려움을 가질지 모르지만 무시할 것이다. 하지만 유레크는 다르다. 그와 함께 유레크를 잡은 사무엘의 아내와 자식들이 실종되고, 이들을 찾던 그가 절망에 빠져 자살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그는 극심한 공포에 사로잡힌다. 항상 자기 가족을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의 앞 권에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공포가 그대로 전달된다. 이런 공포 중 하나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보여주는 사연이 하나 더 나오는데 정말 무시무시하다.

 

유레크가 격리수용된 구역에 한 명의 정신과 의사가 들어온다. 그의 이름은 안데르스 뢴이다. 그에게 주어진 일은 유레크의 방에서 그가 만든 칼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가 일반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은 연쇄살인범이란 것을 알려준다. 근육주사를 놓아 무력한 상태의 유레크지만 안데르스는 알 수 없는 공포에 짓눌려 있다. 그의 상사는 옷을 뒤져 편지를 찾으라고 하지만 유레크가 주장하는 의견에 동조한 그는 편지가 없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집에 와서 이 편지를 붙인다. 특별한 내용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편지 한 통이 지금까지 잊고 있던, 13년 전에 죽었다고 생각했던 한 아이를 현실 세계로 불러낸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한다.

 

소설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진행된다. 하나는 유나, 다른 한 명은 여형사 사가, 마지막은 레이다르다. 13년만에 나타난 아이의 아버지가 바로 레이다르다.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지만 아이들의 실종과 이혼과 아내의 자살로 살아있는 시체처럼 사는 인물이다. 다른 사람처럼 그가 자살하지 않고 살고 있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그의 삶은 피폐해져 있다. 아들이 살아 돌아오자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깨닫고 딸이 돌아오지 못한 것을 자책한다. 초반과 마지막에 상당한 비중을 지니고 등장하는데 이 사건의 원인을 알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가는 일반적인 형사가 아니다. 비밀경찰이다. 미카엘이 살아서 돌아온 후 어떤 방법을 사용해도 유레크로부터 동생 펠리시아를 구해낼 방법을 찾지 못하자 차선책으로 선택한 대안이다. 격리구역에 넣어서 유레크로부터 정보를 끄집어내는 역할을 맡는다. 사가는 아주 아름답지만 운동으로 다져진 몸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어릴 때 엄마의 죽음과 관련된 트라우마를 안고 살고 있다. 격리구역에서 유레크와 만나면서 그녀의 내면은 흔들리고 불안해진다. 유레크와 접촉했던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잘 아는 유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사가가 격리구역 안에서 겪게 되는 사건들은 이 소설의 또 다른 긴장감을 불어넣어준다.

 

유나. 그는 유레크를 잡았지만 그의 그 어떤 정체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미카엘의 귀환과 그에게서 얻게 된 정보와 사라가 잠입한 후 설치한 도청으로 13년만에 사건의 핵심에 다가간다. 그의 두려움과 경계심과 끈질긴 노력이 함께 어우러져 어둠 속에 잠겨 있던 사건을 하나씩 밝은 곳으로 끄집어낸다. 하지만 그는 어느 한 순간도 유레크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심을 내려놓지 않는다. 이미 파트너 사무엘의 죽음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또 그가 느끼는 공포는 읽는 내내 긴장감을 준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사건이 이어지면서 잠시도 긴장감을 내려놓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최고의 형사다.

 

읽는 내내 의문이 하나 있었다. 왜 유레크는 사람들을 납치한 후 바로 죽이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미카엘이 동생과 함께 캡슐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13년 동안 살았던 것은 어떤 이유였을까? 그리고 자식들의 실종과 죽음이 과연 모두를 죽음으로 내몰 정도의 강한 충격을 주었을까 하는 것이다. 레이다르처럼 거의 시체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것을 잊으려고 하면서 힘들게 사는 사람도 있을 텐데 말이다. 이런 의문이 이어지는 와중에 드러나는 진실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 소설로 가장 특이하면서도 잔혹한 살인마를 한 명 만났다. 쉽게 잊을 수 없는 연쇄살인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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