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타의 일기 밀리언셀러 클럽 146
척 드리스켈 지음, 이효경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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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뻔해 보이는 소재다. 히틀러의 아이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소설에서도 히틀러의 아이들은 직접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 단지 그의 추종자들과 비밀을 밝히는 주인공의 대결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런 대결 구도가 아니다. 제국을 꿈꾸는 추종 세력을 다루지 않는다. 히틀러의 아기를 가진 여자의 일기를 둘러싼 욕망과 여기서 비롯한 폭력과 복수가 있다. 처음에 책 소개 글에서 유대인 여자가 히틀러의 아기를 가졌다고 했을 때 상상한 것과는 너무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곧 화려한 액션과 잔혹한 복수 속으로 빠르게 빠져들었다.

 

게이지 하트라인. 미군 특수부대 출신이다. 크레타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중 실수로 두 아이를 죽인다. 이 실수는 그의 잘못이 아니지만 엄청난 스트레스를 그에게 가져다준다. 선글라스가 없으면 이 스트레스를 피할 수 없을 정도다. 이 소설이 끝날 때까지 이 기억은 그를 뒤흔든다. 결정적인 순간에 이 기억이 그를 주저하게 만들고, 이 주저함이 비극을 불러온다. 특수부대 출신의 전투 능력은 시작 부분에서 비행기 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짧지만 강렬하게 보여준다. 이 능력을 이용하면 높은 소득을 얻을 수 있지만 크레타의 악몽은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모니카. 그가 사랑하는 여자다. 크레타의 악몽이 그녀와의 사랑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모니카가 먼저 한 발을 내딛는다. 이 한 발이 그의 삶에 빛을 가져다준다. 그가 크레타에서 겪었던 사건을 말하고, 이제까지 숨기고 있던 그의 과거를 밝힌다. 더없이 밝은 미래만 있을 것 같았던 이들에게 엄청난 벽이 나타난다. 그것은 게이지가 발견한 일기에서 비롯한 것이다. 게이지가 프랑스 정보부의 의뢰로 도청장치를 설치하러 갔다가 발견한 일기 뭉치다. 일기를 쓴 사람은 그레타, 그녀는 자신이 유대인인 걸 숨기고 한 정치인의 집 가정부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 정치인이 바로 히틀러다. 조금 더 낭만적으로 이야기를 풀면 히틀러가 그녀를 사랑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런 말랑한 연애는 없다. 대신 강간이 있다. 권력으로 그녀를 겁탈한다. 자신이 유대인인 것을 숨겼는데 만약 히틀러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그녀는 바로 죽었을 것이다. 여기서부터 내가 책소개에서 기대한 것과 틀어지기 시작했다.

 

유대인 여자가 히틀러의 아이를 가졌다고 했을 때 상상한 것과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일기의 내용도 모르는 무리가 엄청난 큰돈이 될 것이란 이유만으로 게이지와 모니카를 좇는다. 게이지에게 일을 준 장은 자신이 의뢰한 일이기 때문에 일기의 소유권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프랑스 깡패들은 모니카의 오빠가 살기 위해 내뱉은 말 때문에 이들은 뒤좇는다. 이 과정에 갱 두목의 절친한 부하를 죽인 것은 타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물론 그 이전에 다른 원인을 나열할 수도 있다. 모니카가 믿었던 책을 팔고 있는 오빠를 찾지 않았거나, 일기를 찾자마자 홀로코스트센터 등에 알리거나 자신이 바라는 금액이 아니니 도청 일을 하지 않거나 미군 특수부대를 그만두지 않거나 등으로 계속 올라갈 수 있다. 그리고 거기서 크레타와 다시 만나게 된다.

 

그레타의 일기가 이야기 중간중간 나와서 어떻게 그녀가 히틀러의 아이를 가지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이 분량은 사실 그렇게 많지 않다. 아이를 낳기 위해 달아나야 했고, 새로운 사랑을 만나는 과정도 짧게 나온다. 솔직히 말해 이 일기를 숨기고 발견하게 된 것에 약간의 허술함이 있다. 이 허술함을 지워줄 이야기가 보이지 않는다. 이 소설에서 일기는 게이지의 활약을 돋보이기 위한 하나의 소재일 뿐이다. 발칙하고 놀라운 상상이지만. 그리고 매력적인 조연들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글레브 조직의 두목 니키 밑에서 이성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려는 2인자 마르셀과 재독미군수사관 엘리스 대위다. 엘리스가 놀라운 수사관 능력을 보여주면서 시선을 끌었다면 마르셀은 조금 다른 매력이다. 바로 이성과 포기다. 이성은 불필요한 행동이나 살인을 자제하자고 하지만 니키의 잔혹함은 이것을 넘어간다. 이때 포기가 생긴다. 하지만 그 한계는 언제 넘어갈지 모른다. 가끔 보여주는 텅 빈 허무함과 포기가 일상에 찌든 월급쟁이들과 겹쳐보였다. 너무 오버인가. 아무튼 매력적인 인물들이 많이 나오고, 게이지의 다음 활약은 어떤 것인지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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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나와 세계 - 인류의 내일에 관한 중대한 질문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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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라는 저서 하나로 우리나라를 뒤흔든 저자의 신작이다. 이 저서를 사놓고 묵혀둔 것이 몇 년 되었다. 두께와 내용 때문에 쉽게 손이 나가지 않는다. 워낙 평이 좋아 이번에 나온 이 책에 큰 관심을 두었다. 두께도 그렇게 두툼하지 않아 읽기에 부담이 없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세계적인 석학이란 말이 너무 무색한 내용들이 너무 많았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로마 루이스대학교의 교수들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일곱 번의 강연을 기초로 꾸민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니라면 그의 자료 조사와 비전공 분야의 공부가 나의 지식과 너무 다른 것 때문일 것이다.

 

다른 나라도 이 강연을 기초로 책으로 엮은 것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서문도 한국 독자를 위한 것이 있다. 역자의 글이 없었다면 이 책이 강연을 바탕으로 했다는 것을 모를 뻔 했다. 글 중간 중간에 한국을 말하면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예전에 외국 아이돌 그룹이 나라별로 제목을 바꾼 것이 떠올랐다. 너무 비약일까? 개인적으로 가장 만족한 부분은 역시 5장과 6장이다. 그의 경험과 전공이 결합되어 있고, 얼마 전에 읽은 책과도 조금 연관성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내용도 그렇게 깊이 있는 것은 아니다.

 

국가의 빈부를 지리적 요인과 제도적 요인을 나누어 설명한 1장과 2장은 약간의 거부감도 있었지만 참고할 내용이 많았다. 지리적 요인 중 토양에 대한 부분은 새로웠다. 이전에 다른 책에서 쉽게 본 부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연자원의 저주를 풀어내면서 지리적인 부분에만 집중하면서 가장 중요한 핵심을 빠트리면서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제 상식이 된 제국주의 혹은 자본주의의 탐욕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제도적 요인에서 궁극인을 찾아야 한다고 했는데 그의 글은 표면에 머물고 있다. 대표적으로 코스타리카의 예가 한국과 비교하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중국을 다룬 3장은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이 과연 충분히 납득할 만한 내용인지 의문이다. 중국 고대사에 대한 인식이 너무 얕아 중화사상의 역사관을 그대로 받아적은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티베트를 옛날부터 중국의 한 지역으로 표현한 것이나 ‘남중국인이 열대권 동남아시아인의 조상이기 때문’이란 단정적 표현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최근 다양한 민족을 하나의 중국으로 만들기 위해 역사를 왜곡한 결과를 너무 쉽게 받아들이고 있다. 재미난 것은 중국 일당독재 때문에 미국 같은 세계 최강국이 될 수 없을 것이란 말이다. 정화의 대항해를 너무 확대한 듯한 글도 가정이 너무 심하다.

 

4장에서 개인의 위기와 국가의 위기를 다룬 것을 보면서 세월호 사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42년 코코넛 그로브 나이트클럽 화재 사건으로 492명이 죽었다. 이 사건으로 그 유가족이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말하면서 사회적으로 어떤 치료가 병행되었는지 간략하게 말하는데 한국은 아직도 진실이 미궁 속에 빠져 있다. 진상 조사에서 가족들은 제외되어 있고, 비겁하고 비열한 언론 조작들이 난무한다. 저자가 과연 한국의 세월호 사건을 알고 있었다면 어떻게 연결시켰을까 하는 의문도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아주 단편적이고 표면적이다. 테러에 대한 인식이 지극히 초보적이다. 빈부격차를 그 이유로 내세웠는데 종교를 이유로 든 사람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구분이 잘 가지 않는다.

 

마지막 장에서 세계가 직면한 중요한 문제 3가지를 말한다. 기후 변화, 부의 불평등, 환경자원의 관리 등이다. 당연히 간단하게 말하고 지나가는 방식이라 크게 와 닿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문제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면 석학의 말이 하나의 안내판 역할을 할 것이다. 유럽연합의 어선에 대한 막대한 지원금이 수자원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한 부분은 놀라웠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아마 이런 부분들이 곳곳에 나와 나의 생각과 너무 다른 이 책을 끝까지 읽게 한 것인지 모르겠다. 저자에 대한 평가는 그의 역작인 <총, 균, 쇠>를 읽을 때까지 조금 유보해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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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고 스트레스클리닉 소설Blue 4
김근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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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우가 작년에 세계문학상을 받은 후 처음으로 낸 청소년 소설이다. 수상작인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어쩌면 이전에 판타지 소설을 쓰던 시절과 조금 더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의 능력이나 이야기 구성이 그렇게 느껴졌다. 주인공 오자서가 보여준 싸움 능력과 마지막 싸움에서 보여준 잔혹한 장면은 일반적인 청소년 소설에서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판타지의 주인공처럼 무적은 아니다. 그 당시 공부한 듯한 싸움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묘사되어 있어 더욱 그렇게 생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스트레스클리닉. 알기 쉬운 이름이다. 여기에 우수고란 학교 이름이 붙었다. 학교에 스트레스를 치료하는 곳이 있단 말인가? 그냥 이름만 놓고 보면 좋은 학교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니다. 우수고에 대한 설명부터 나오는데 상상을 초월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막장 드라마의 한 장면 같은 일들이 평범하게 벌어지는 학교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똥통 학교다. 이런 학교에 오자서는 전학을 왔다. 이전 학교에서 사고를 쳤기 때문이다. 이 사고는 인터넷을 통해 전국에 알려졌다. 교사 폭행이다. 잘 알지 못하면 ‘이런 패륜이 있나?’하고 분노할 이야기다. 이전에 다녔던 학교가 최고의 외고였던 것을 감안하면 그의 추락은 더 깊다.

 

보통의 소설이라면 순간적으로 분노를 참지 못한 학생의 추락을 다루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근우는 똥덩어리들과의 이야기를 선택했다. 액션을 넣었다. 로맨스도 넣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강하게 와 닿지는 않는다. 첫 장면은 학교에 늘 있는 양아치 무리가 그에게 끝없는 굴종을 요구한다. 이때 한 소녀가 등장한다. 소피아다. 아름답다. 빵 셔틀 정도는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소피아의 멱살을 잡으면서 바뀐다. 간단한 무술 동작으로 세 명의 학생들을 제압한다. 보통 이런 양아치는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더 많은 인원이 모여 그를 괴롭히려고 한다. 옥상에서 싸움이 벌어지려고 하는 순간 한 무리의 학생들이 나타난다. OHSC 멤버들이다.

 

OHSC는 우수고 스트레스클리닉의 약자다. 겉으로는 문학부 동아리 모임이다. 이 모임은 오자서의 입부를 강력하게 권한다. 이전에 저지른 일과 자괴감 등이 교차하면서 이 이상한 무리에 가입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소피아도 이 동아리 일원이다. 이들은 오자서의 가입을 위해 온갖 수단을 다 사용한다. 성 희롱까지 연출한다. 오자서의 반응은 ‘그럼 신고하세요’ 다. 이런 김새는 일이 있나. 담임까지 가세하여 그의 입부를 권유한다. 사실 여 담임이 이 모임의 담당 교사다. 이들이 보여주는 행동과 대사는 전혀 학생의 긴장감도 없고 멍청해 보인다. 대화는 또 얼마나 유치한가. 그런데 재미있다. 늙은 꼰대라서 그런가?

 

평범하지 않을 것이 뻔한 학교생활에 문제가 생긴다. 그의 자전거가 사라진 것이다. 첫 장면의 양아치 정범석이 가져갔다. 그를 데리고 자신들의 아지트로 간다. 그곳에는 이전에 우수고를 다니다가 퇴학당한 도끼라는 양아치가 있다. 도끼는 조폭을 꿈꾼다. 이전에 다녔던 학교 후배를 모아 조직을 만들려고 하는데 쉽지 않다. 이런 때 오자서의 사건이 터진 것이다. 이 현장에 또 다른 한 명이 같이 갔다. 소피아다. 그냥 무릎 꿇고, 몇 대 맞는 것으로 상황을 벗어나려고 하는데 꼬인다. 칼이 등장하고, 이 칼로 오자서의 손을 찌르라고 하면서부터다. 이때 정범석에게서 놀라운 말이 나온다. 평범한 삶을 꿈꾸는 말이다. 도끼는 폭발하고, 오자서는 분노하면서 달아난다. 다시 싸움이 벌어지고, 상처를 입지만 이긴다. 팔에 칼이 찔린 것 때문에 병원에 가야 하나 이를 거부한다. 둘은 오자서의 할아버지가 그에게 물려준 집으로 간다. 여기서 소피아의 이야기가 나온다. 아직 오자서의 사연은 숨겨져 있다.

 

이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는 양아치들로부터 오자서를 보호하려는 OHSC 멤버들의 이상한 동행과 협력과 마지막 대결이다. 그리고 왜 그 좋은 학교에서 교사를 폭행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사연까지. 이 장면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작가에게 눈길을 돌렸다. 어디까지 자신의 경험담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느 순간인가부터 화를 내야 하는데 그 화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고, 화 내는 사람을 이상하게 쳐다본다. 건강하지 못한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오자서란 이름을 아버지가 왜 지어주었고, 이 이름에 걸맞은 행동을 보여준 그의 다음 행동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그래서 책을 덮은 후 오자서의 다음 학교생활이 궁금해졌다. 1년에 한 권 정도 시리즈로 내주면 좋을 텐데. 아니면 영화나 미니시리즈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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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탐정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9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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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 료의 유일한 단편집이다. 유일하다고 했지만 실제 그가 낸 책은 모두 여섯 권에 불과하다. 이 중 한 권은 에세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일본 하드보일드 작가 중 가장 좋아하는데 내놓은 작품이 너무 적다. 아주 불만이다. 이 여섯 권의 출간물 중에 번역된 것도 네 권뿐이다. 이 또한 불만이다. 한 편으로는 아직 읽지 않은 작품이 있다는 사실에 괜히 흐뭇해지기는 한다. 그래서 하라 료의 책이 나온다고 하면 눈이 평소보다 더 오랫동안 머문다. 하드보일드 소설에 그렇게 빠진 적이 없는데 이 작가는 나를 사로잡았다.

 

모두 여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이 책이 출간된 것도 1997년으로 나온다. 실제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80년대다. 이제는 아련한 기억 속의 시대다. 작가는 한국인을 등장시켜 한국 역사에 있었던 중요한 사건 하나를 소재로 사용한다. 바로 그 유명한 김대중 납치사건이다. 그리고 88 서울 올림픽도 나온다. 이 사건들이 이야기의 중심은 아니다. 단지 배경 이야기 중 하나일 뿐이다. 그 시대와 인물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라고 해야 할까. 내가 알고 있는 사건들이 나올 경우는 이처럼 흥미롭겠지만 모르는 사건이라면 그냥 지나갈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불친절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단편집엔 공통적인 부분이 하나 있다. 십대 소년 소녀들이다. 사와자키가 이들의 탐정이 되는 것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다. 의뢰가 들어오고, 조사를 하다 보니 그들과 이어진다. 그렇다고 이 십대들의 이야기를 사회문제와 깊숙하게 연관시켜 풀어내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시대의 모습 중 일부를 간결하면서 강렬하게 표현했을 뿐이다. 물론 나의 무지 때문인지 모르지만 첫 단편은 약간 의외의 내용이다. 은행 강도가 나오기 때문이다. 일본에 은행 강도가 많았다고 말하는데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작가가 그냥 적은 것인지 사실인지. 물론 아주 큰 은행 강도 사건들이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렇게 자주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부분이 어색하게 다가올 뿐이다.

 

<소년이 본 남자>는 한 초등학생의 의뢰가 예상하지 못한 사건으로 이어진다. 처음에는 하룻 동안의 보디가드 역할이었는데 은행 강도 사건으로 바뀐 것이다. 이 현장을 직접 경험한 사와자키는 이 사건의 뒤에 감추어져 있던 진실을 파헤친다. 간결하면서도 묵직하다. <자식을 잃은 남자>는 미스터리 요소보다 한국인이 등장하고 그와 연결된 사건들 때문에 시선을 끌었다. 앞에 적은 그 사건들 말이다. 한 뺑소니 사건이 과거를 불러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널어놓게 한다. <240호실의 남자>는 하나의 의뢰가 끝난 후 그 의뢰자의 죽음으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한다. 자신이 살인자라고 주장하는 속에 진실은 미묘하게 숨겨져 있다. 그가 말하는 징크스에 괜히 한 번 더 눈길을 준다.

 

<이니셜이 ‘M'인 남자>는 한 통의 잘못 걸려온 전화로 시작한다. 자살하겠다는 전화다. 보통 소녀가 아닌 여자 가수다. 아마 연예인이 아니었다면 제대로 알지도 못했을 사건이다. 자신이 하나의 알리바이가 된 사건이지만 사와자키의 촉은 그 뒤에 숨겨진 진실에 좀 더 다가간다. 십대의 불안과 충동은 예상하지 못한 결과로 이어진다. <육교의 남자>는 손자를 찾는 할머니 이야기다. 하지만 할머니도 손자도 이야기의 중심은 아니다. 이 조사를 한 탐정이 육교에서 굴러 떨어진 사건에서 의문이 생긴다. 범인은 누굴까 하고. 그런데 나의 호기심은 그 손자가 저지른 사건들이 무엇이기에 그렇게 숨길까 하는 의문으로 이어졌다. 잔혹한 십대 범죄의 총합 같다. 거대한 재산은 바쁜 소식과 불안 등과 엮이면서 다른 사건을 부른다.

 

<선택받은 남자>는 한 소년의 전화가 어머니를 불안하게 만들고, 이것이 사와자키의 의뢰로 이어진다. 재미난 점은 사와자키와 함께 소년의 찾는 시의원 출마자 구사나기다. 나의 삐딱한 시선은 구사나기의 반전을 끝없이 기대했다. 그러나 이것은 미스터리를 오랫동안 읽은 탓에 벌어진 나쁜 상상일 뿐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집중을 못했는데 권말에 나온 <탐정을 지망하는 남자>와 이어지면서 나를 즐겁게 만들었다. 이 간단한 단편은 사와자키가 어떻게 탐정이 되었는지, 십대들이 흔히 상상하는 세계가 얼마나 허황된 환상인지 적나라하게 말해준다. 책으로 엮지 않았다면 나오지 않았을 단편이라 더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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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윤후명 소설전집 1
윤후명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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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후명의 소설을 오랜만에 읽었다. 처음에 윤후명 소설전집 1권이라고 해서 옛날 작품들만 실려 있다고 착각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한 편을 제외하고 모두 신작이다. 그 한 편은 신춘문예 당선작품인 <산역>이다. 마지막에 나오는데 앞에 나온 아홉 편과 분명히 다른 이야기와 구성이다. 작가와의 사전 인터뷰를 보면 이 소설전집이 하나의 소설이 되기를 바랐고, <산역>이 강릉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라 같이 실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시도이자 편집이다.

 

작가의 말에서 이 단편집을 ‘강릉 호랑이에 대한 소설’이라고 말한다. 모르고 읽었을 때 왜 자꾸 강릉 호랑이와 처녀 머리가 나올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강릉이란 단어와 더불어 가장 의미있는 단어가 바로 강릉 호랑이, 처녀 머리, 헌화가, 바다, 시, 어머니 등이기 때문이다. 연작소설이란 이름을 붙여도 전혀 어색함이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양한 나라, 인물, 상황, 시간 등을 배경으로 쓴 소설이지만 공통적인 부분이 계속해서 나오기 때문이다.

 

작가의 시와 소설을 모두 읽은 것도 아니고 몇 편이라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 상태라 소설 속에 인용된 시나 단편들이 실제 작품들과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지 모른다. 이 긴 문장을 쓴 것은 각 단편 속에 나오는 시들과 단편들 때문이다. 어떤 작품에서는 아예 노골적으로 자신의 이름이 나와 사실과 허구 사이의 경계를 무너트리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작가의 작품은 그대로 적어 놓고 이름은 같이 표기하지 않은 것이다. 덕분에 저질 기억력을 탓하며 인터넷으로 정확한 이름을 검색해야만 했다.

 

소설 속에서도 나오지만 작가는 강릉의 문화작은도서관 명예관장이다. 이 제안이 이 작품집을 쓰게 된 계기라고 한다. 여덟 살에 떠나 일흔 살이 되어 돌아왔다고 하는데 이 말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상징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강릉이라는 지명으로 한정한 듯하지만 실제 그 지역은 강원도 전역이라고 해도 그렇게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물론 내륙지방은 조금 제외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잘 다니지 않는 대관령이 계속해서 나오지만 검색하니 평창과 강릉의 경계에 있는 고개라고 한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윤후명의 소설은 나의 가슴 깊은 곳으로 파고들지 못했다. 한두 편 정도는 관심을 끌고, 흥미로웠지만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나의 호기심을 조금씩 차단했다. 강릉 호랑이와 처녀 머리가 반복되면서 더욱 그랬는지 모른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었던 작품은 <알타이족장께 드리는 편지>다. 편지란 형식을 빌려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고대사와 엮은 부분은 조금 생각이 갈렸지만 ‘아름답다’란 말에 대한 집착이 시선을 끌었다. <바위 위의 발자국>은 몽환적인 부분이 있는데 하일지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도 살짝 들었다.

 

<핀란드 역의 소녀>는 그림에 대한 감상이 엇갈리지만 탈북자에 대한 이야기가 조용히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과거의 이야기 속에 다른 이야기를 넣어 조금 복잡하게 만드는데 이 부분에 제대로 적응을 하면 큰 재미를 느끼지만 왠지 이 단편집에서는 그렇게 강하게 느끼지 못했다. 현실과 추억과 환상과 기억들이 시와 뒤섞이면서 살짝 집중력을 깨트린 것이다. 더 집중해서 읽었다면 문장의 호흡과 시를 많이 즐겼을지 모르지만 아직 작가와의 궁합이 맞지 않는 모양이다. 예전에 멋모르고 시집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랄까. 다음에 다른 소설집을 다시 읽고, 구성에 적응한다면 집에 사놓고 묵혀놓은 소설의 먼지를 털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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