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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타의 일기 ㅣ 밀리언셀러 클럽 146
척 드리스켈 지음, 이효경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어떻게 보면 뻔해 보이는 소재다. 히틀러의 아이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소설에서도 히틀러의 아이들은 직접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 단지 그의 추종자들과 비밀을 밝히는 주인공의 대결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런 대결 구도가 아니다. 제국을 꿈꾸는 추종 세력을 다루지 않는다. 히틀러의 아기를 가진 여자의 일기를 둘러싼 욕망과 여기서 비롯한 폭력과 복수가 있다. 처음에 책 소개 글에서 유대인 여자가 히틀러의 아기를 가졌다고 했을 때 상상한 것과는 너무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곧 화려한 액션과 잔혹한 복수 속으로 빠르게 빠져들었다.
게이지 하트라인. 미군 특수부대 출신이다. 크레타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중 실수로 두 아이를 죽인다. 이 실수는 그의 잘못이 아니지만 엄청난 스트레스를 그에게 가져다준다. 선글라스가 없으면 이 스트레스를 피할 수 없을 정도다. 이 소설이 끝날 때까지 이 기억은 그를 뒤흔든다. 결정적인 순간에 이 기억이 그를 주저하게 만들고, 이 주저함이 비극을 불러온다. 특수부대 출신의 전투 능력은 시작 부분에서 비행기 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짧지만 강렬하게 보여준다. 이 능력을 이용하면 높은 소득을 얻을 수 있지만 크레타의 악몽은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모니카. 그가 사랑하는 여자다. 크레타의 악몽이 그녀와의 사랑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모니카가 먼저 한 발을 내딛는다. 이 한 발이 그의 삶에 빛을 가져다준다. 그가 크레타에서 겪었던 사건을 말하고, 이제까지 숨기고 있던 그의 과거를 밝힌다. 더없이 밝은 미래만 있을 것 같았던 이들에게 엄청난 벽이 나타난다. 그것은 게이지가 발견한 일기에서 비롯한 것이다. 게이지가 프랑스 정보부의 의뢰로 도청장치를 설치하러 갔다가 발견한 일기 뭉치다. 일기를 쓴 사람은 그레타, 그녀는 자신이 유대인인 걸 숨기고 한 정치인의 집 가정부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 정치인이 바로 히틀러다. 조금 더 낭만적으로 이야기를 풀면 히틀러가 그녀를 사랑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런 말랑한 연애는 없다. 대신 강간이 있다. 권력으로 그녀를 겁탈한다. 자신이 유대인인 것을 숨겼는데 만약 히틀러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그녀는 바로 죽었을 것이다. 여기서부터 내가 책소개에서 기대한 것과 틀어지기 시작했다.
유대인 여자가 히틀러의 아이를 가졌다고 했을 때 상상한 것과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일기의 내용도 모르는 무리가 엄청난 큰돈이 될 것이란 이유만으로 게이지와 모니카를 좇는다. 게이지에게 일을 준 장은 자신이 의뢰한 일이기 때문에 일기의 소유권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프랑스 깡패들은 모니카의 오빠가 살기 위해 내뱉은 말 때문에 이들은 뒤좇는다. 이 과정에 갱 두목의 절친한 부하를 죽인 것은 타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물론 그 이전에 다른 원인을 나열할 수도 있다. 모니카가 믿었던 책을 팔고 있는 오빠를 찾지 않았거나, 일기를 찾자마자 홀로코스트센터 등에 알리거나 자신이 바라는 금액이 아니니 도청 일을 하지 않거나 미군 특수부대를 그만두지 않거나 등으로 계속 올라갈 수 있다. 그리고 거기서 크레타와 다시 만나게 된다.
그레타의 일기가 이야기 중간중간 나와서 어떻게 그녀가 히틀러의 아이를 가지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이 분량은 사실 그렇게 많지 않다. 아이를 낳기 위해 달아나야 했고, 새로운 사랑을 만나는 과정도 짧게 나온다. 솔직히 말해 이 일기를 숨기고 발견하게 된 것에 약간의 허술함이 있다. 이 허술함을 지워줄 이야기가 보이지 않는다. 이 소설에서 일기는 게이지의 활약을 돋보이기 위한 하나의 소재일 뿐이다. 발칙하고 놀라운 상상이지만. 그리고 매력적인 조연들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글레브 조직의 두목 니키 밑에서 이성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려는 2인자 마르셀과 재독미군수사관 엘리스 대위다. 엘리스가 놀라운 수사관 능력을 보여주면서 시선을 끌었다면 마르셀은 조금 다른 매력이다. 바로 이성과 포기다. 이성은 불필요한 행동이나 살인을 자제하자고 하지만 니키의 잔혹함은 이것을 넘어간다. 이때 포기가 생긴다. 하지만 그 한계는 언제 넘어갈지 모른다. 가끔 보여주는 텅 빈 허무함과 포기가 일상에 찌든 월급쟁이들과 겹쳐보였다. 너무 오버인가. 아무튼 매력적인 인물들이 많이 나오고, 게이지의 다음 활약은 어떤 것인지 기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