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언어의 온도 : 말과 글에는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있다
이기주 지음 / 말글터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갑자기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다. 잘 모르는 작가인데 출간된 지 좀 된 상태에서 인기가 점점 올라갔다. 최근에 더 인기를 얻은 것 같다. 호기심은 있지만 밀린 책들이 많아 그냥 지나가려고 했는데 우연히 무료 전자책으로 다운받을 수 있었다. 얼마 전에도 공짜 전자책을 잔뜩 받아놓고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적이 있어 살짝 걱정했다. 하지만 책 내용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긴 이야기를 풀어낸 것도 아니라 시간 날 때 조금씩 읽으면 되었다. 목차를 본 후 자신감을 얻었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간단한 에세이다. 다양한 분량으로 말(言), 글(文), 행(行) 3부로 나누었다. 일상에서 자신이 본 것, 읽은 것, 들은 것, 행동한 것들을 아주 세심하게 다루었다. 하나의 소재나 주제를 아주 잘 다듬어 내 놓았는데 읽는 동안 아주 차분해지는 느낌이었다. 글을 읽으면서 이런 느낌을 오랫동안 받은 것이 참 오랜만이다. 말의 어원을 찾아 풀어낸 것은 사실 별 다른 인상을 받지 않았지만 각각의 이야기 속에 담긴 감정은 조용히 가슴 한 곳으로 파고들었다. 만약 책으로 단숨에 읽었다면 기분이 많이 처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정제된 문장으로 감정을 상당히 가렸다. 읽기에 불편함은 없지만 왠지 심심한 기분도 들었다. 에피소드들이 잔잔한 순간만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어떻게 보면 모범생의 잘 정리된 글 같다고 해야 하나. 좋은 글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깊이 빠지게 만들지 못한다. 다 읽고 난 지금도 몇 개의 에피소드만 겨우 머릿속에 남아 있을 뿐이다. 자신의 생각들을 풀어내었는데 이 생각에 감정이 열정적으로 실리지 않아 너무나도 이성적으로 보는 순간이 많았다. 감정이입보다 관찰자의 시선으로 보았다고 해야 하나.

 

책이나 영화를 본 후 자신의 감상을 풀어낸 부분은 서평을 쓰는 나에게 참고 자료가 될 만하다. 너무 하나의 형식으로 흘러가는 듯한 요즘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 작품들에 대한 해석은 나와 갈리는 경우가 꽤 있다. 다른 경험과 환경 탓일 것이다. 어떤 부분에서는 상당히 교훈적인 글도 보인다.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글을 쓰다 그렇게 흘러갔는지 알 수 없지만 조금 아쉬운 대목이다. 인터넷에서 본 게시글이 정리된 채로 나온 경우도 있다. 먼저가 어떤 것인지 잘 알 수 없지만. 가볍게 읽기에도 좋고, 이야기 속에서 뭔가를 찾기도 좋다. 각자의 경험에 달렸다. 작가가 적당한 온기란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 글 속에는 너무 적당한 온기가 많아 내가 조금 풀어진 느낌이다. 아직 이런 글이 나에게는 맞지 않은 모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고심령학자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 한국 장르문학 작가 중 가장 인지도가 높은 작가가 아마도 배명훈일 것이다. 이 인지도는 그가 꾸준히 책을 내는 것과 그 작품들이 어느 수준 이상이란 점이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의 작품과 읽는 작품의 괴리감은 언제나 존재한다. 초기 작품에서 받은 인상이 너무 강해 최근에 읽은 작품들은 과연 SF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그냥 분야가 다양하다고 하기에는 그가 꾸준히 발표한 작품들의 유사성이 살짝 보인다. 고고심령학자란 단어가 처음 나온 것도 단편 <누군가를 만났어>였지 않은가.

 

고고심령학은 공식적으로 존재하는 학문이 아니다. ‘심령학적인 관찰을 통해 고고학적인 질문에 대한 찾고자 하는 학문’으로 정의된다. 이 정의를 간단히 설명하면 천 년 전에 죽은 혼령이 하는 말을 직접 들어 그 당시 언어를 재구성한다는 것이다. 설명은 쉽지만 현실에서 이것이 가능할까? 하는 물음이 따라온다. 속된 말로 혼령을 계속해서 봐야 한다는 말이다. 김은경이 고고심령학을 사람들이 그만 두는 이유 중 가장 먼저 꼽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무서워서 그만 둔다. 그리고 이 혼령을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은경의 경우 이것을 보지 못한다. 보는 사람의 시선과 행동으로 파악할 뿐이다.

 

천문대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서울 도심에 나타난 벽으로 넘어간다. 그런데 이 벽은 실체가 눈으로 보이는 벽이 아니다.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높이가 30미터가 넘는 거대한 벽이다. 촬영도 되지 않고 카메라에도 찍히지 않는다. 이 현상은 심령현상으로 생각하고, 요새빙의라는 용어가 떠오른다. 이때 이 용어를 만든 한나 파키노티가 등장한다. 한국에서 스위스로 입양된 그녀는 전 세계를 돌면서 체스의 원형 게임인 차투랑가의 변종을 수집한다. 한나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고고심령학보다 체스의 문화사가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그녀의 이 작업은 요새빙의 현상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국 고고심령학계의 거장 문인지 박사의 제자인 조은수는 박사의 사후 그의 기록을 정리, 기록하는 일을 한다. 단순해 보이는 이 작업이 한국에서 발생한 요새빙의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실제 은수가 서울과 천문대를 오가며 하는 일은 현상을 보고, 경험하고, 자료를 정리하는 것이다. 은거 고수와 같은 그의 능력은 현장에서 그 빛을 발한다. 이 과정에서 은경이 은수 옆에 있다. 은경의 자발적인 조사는 관련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일들을 하나의 현상으로 이어준다. 고고심령학이 얼마나 많은 학문을 통해 발전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서울의 특정 지역에 성벽이 나타난다는 설정은 비현실적이다. 이 비현실을 논리로 풀어내는 것이 소설가의 역할이다. 이것을 위해 작가는 고고심령학의 정의를 내리고, 혼령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것을 연구하는 고고심령학자들을 등장시켰다. 그리고 이것을 과학으로 증명하려는 학자도 나온다. 한국고고심령학연구소 이한철 대표가 대표적이다. 현대의 과학 기기를 통해 확인하고 증명하고 조사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실제 고고심령학 분야에서 전문성을 드러내기에는 조금 부족하다. 그의 연구소 직원들이 더 많이 등장한다.

 

성벽의 존재는 종말의 징후와 연결된다. 종말징후론은 현실로 나타났을 때 그 징후를 알 수 있다. 징후들이라고 했던 것이 사실이 아니었던 역사는 사후적인 연구와 연결된다. 파편적으로 등장했던 성벽이 하나로 이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작가는 이 과정을 파편적인 이야기로 나열한 후 하나로 통합한다. 처음 읽을 때는 뭔 딴소리인가? 하지만 그 조사와 연구가 맞물리고, 그 상황을 이해하게 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만약 예상한 대로 이어지지 않으면 징후들은 사실이 된다. 작가의 이런 전개 방식과 구성들이 놀라움과 기발함을 던져주지만 가끔은 모호함으로 남기도 한다. 가끔은 이 모호함이 매력적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17-09-01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명훈 작가 이번 책을 통해 여러 가지 배운게
많습니다.

이러다가 정말 팬이 되겠어요.
 
콩고양이 7 - 민폐 삼형제
네코마키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제가 민폐 3형제다. 그리고 새로운 식구가 또 늘었다. 길고양이 그레이다. 이 책 앞부분의 에피소드들은 이 민폐 3형제가 벌이는 행동들이다. 식탐에 관한 에피소드와 열심히 뛰어노는 고양이들과 시바 견의 모습은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아주 재미있다. 평화로운 집안에서 작은 분란을 일으키지만 그것이 결코 과한 모습은 아니다. 물론 마담 북슬의 입장은 조금 다를 수 있다. 이 3형제가 도와준다고 하는 것들 대부분은 민폐다. 하지만 그 모습이 귀엽다. 짧은 에피소드 속에서는 이전 이야기 속에서 간단하게 처리된 이들의 활동이 집중적으로 그려진다. 그래서 앞부분은 조금 낯설기도 하다.

 

새 식구 그레이를 처음 만난 것은 두식이다. 자기가 엄마라고 생각하는 고양이와 닮았다. 친근하게 다가가는데 두식이를 공격한다. 겁 많은 두식은 물러난다. 이 길고양이의 기세에 완전히 눌린 것이다. 이 모습은 이번 권이 끝날 때까지 이어지지만 작은 사건을 통해 아주 조금 가까워진다. 그 거리를 좁히는 과정 속에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면들로 이어진다. 그레이의 입양과 그레이가 친근감을 가지는 사람과 적대감을 가지는 사람으로 나누어진다. 적대감을 보이는 사람은 아버지가 유일하다. 아마 두식이와 함께 산책을 한 것 때문이 아닐까?

 

반가운 장면도 하나 있다. 할아버지 내복씨가 자는데 콩알과 팥알과 두식이가 뛰어든 것이다. 그러다 깬 그가 이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 강을 건널 뻔했다는 말을 한다. 민폐 3형제 때문에 죽음의 강을 건너가는 것을 그만두게 된 것이다. 이러니 내복씨가 이 반려동물들을 더욱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그가 아주 아끼는 가발 위에서 놀던 고양이를 다루는 모습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이런 사랑들이 이 책 곳곳에 나타난다. 집안 사람들이 반려동물들의 방해로 문제가 생겨도 화를 내지 않고 다시 하고, 다른 방법을 찾는다. 이 장면들은 현실에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점점 늘어나는 새 식구와 이야기들은 처음에 느낀 어떻게 이야기를 이어갈까 하는 의문을 충분히 지웠다. 오히려 등장하는 동물이 많아짐으로써 더 풍성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인간과 두식이의 견해 차이는 피상적으로 드러난 모습 너머의 사실을 알려준다. 고양이와 두식이의 인식 차이도 마찬가지다. 그레이를 두고 벌어지는 몇 가지 에피소드는 다음에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기대하게 만든다. 단순화된 그림 속에 각각의 동물들에게 강한 개성을 부여한 후 보여주는 이 에세이는 깊은 애정과 오랜 관찰이 없다면 탄생할 수 없는 작품이다. 언제나처럼 다음 이야기를 기다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스 집시 - 두근거리는 삶을 살아라
나호.마호 지음, 변은숙 옮김 / 연금술사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두근거리는 삶이라! 중년을 넘어가는 나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두근거리는 삶이 찾아오지만 가지고 있는 것과 환경 등이 이 삶을 좇게 만들지 않는다. 아주 두꺼운 현실이다. 나 같은 중늙은이들이 늘 하는 말은 ‘10년만 젊었어도’ 같은 나이 탓이다. 냉정하게 나 자신에게 10년만 젊었어도 이런 두근거림을 좇아갔을까 하고 묻는다면 그 답은 분명히 ‘아니다’이다. 일시적으로 두근거림을 좇아갈 수는 있지만 계속해서 좇는 것은 실제로 아주 힘든 선택이다. 수많은 여행자들의 이야기 속에서 두근거림과 열정을 발견하지만 그 이후의 불안 역시 엿보았기 때문이다.

 

나호와 마호는 어떨까? 이 둘은 쌍둥이 자매다. 책 속 대부분의 이야기는 마호의 것이다. 마호는 자신이 좋아하는 직업을 가졌지만 만족하지 못한다. 다른 학교에 또 다니지만 이 또한 만족스럽지 않다. 소유하지 않는 삶을 사는 남자 친구도 있었지만 그녀가 선택한 삶을 살기로 한 순간 헤어진다. 이런 마호의 삶은 우리가 흔히 보는 안정적이고, 차근차근 스펙을 쌓기 위해 노력하는 청춘과 분명히 다르다. 알바도 하지만 수중에 돈은 없다. 미래에 대한 확신도 없다. 이런 그녀에게 우연이 이어진다. <연금술사>란 책이다. 이 우연을 필연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다. 그러다 선택한 첫 배낭여행지가 페루다.

 

세 번의 이야기가 있지만 실제 이야기는 페루로 떠나기 전 일본과 페루 여행이다. 솔직히 말해 떠나기 전 그녀의 삶은 시시했다. 하지만 이 책 곳곳에 깔려 있는 신비주의적 분위기는 유지된다. 이 신비가 폭발하는 곳은 당연히 페루다. 그곳에서 마호는 성스러운 진실을 경험한다. 개인적으로 봤을 때 이 경험은 환각이자 착각이자 자기몰입이다. 이 경험은 그녀로 하여금 기존과 다른 삶을 살게 하는 힘을 준다. 여행은 길어지고, 이 경험은 공유된다. 그리고 자매는 스스로를 어스 집시라고 부르고, 적은 돈으로 긴 여행을 시작한다.

 

처음 이 책에서 기대한 것은 이런 것이 아니다. 몇 장의 사진과 인생의 경험을 새롭게 하는 여행기 정도였다. 일본에서의 시간을 이렇게 길게 다룰지도 몰랐다. 실제로 마호가 페루가 가서 경험한 것들은 아주 운이 좋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여행 준비도 제대로 한 적이 없고, 인맥이 없었다면 그냥 좌절하고 돌아왔을 수준이기 때문이다. 많은 장기 배낭여행자들이 자신들의 경험 끝에 늘 주의 주는 것도 바로 이런 것이다. 몸으로 부딪혀 해결해야하는 순간도 있지만 계속적인 행운을 바라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두근거림과 표지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이 있지만 냉정하게 말해 비현실적이다.

 

내가 비현실적이라고 하는 것은 나의 관점이다. 새로운 세상을 새로운 시각에서 보고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은 자신의 기준을 세우고, 준비하고, 부딪혀야 한다. 어떻게 보면 저자는 이 부분을 누락했다. 자신의 경험에 매몰되어, 신비로움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 살짝 뺀 것인지도 모른다. 두 쌍둥이가 같은 꿈을 꾼다거나 표지가 맞거나 하는 것들에 더 집중한 것 같다. 살짝 기대한 여행지의 정보는 다 빠져 있다. 어떻게 보면 자기계발서의 연장선이다. 에세이 느낌보다 뒤로 가면 소설의 느낌이 더 강해진다. 좋게 말하면 가독성이 좋은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뭔가 첨가 혹은 누락된 이야기다.

 

오래 전 한국에서 <연금술사>가 대히트를 쳤을 때 나는 재미없었다. 취향과 맞지 않았고,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 새롭지도 흥미롭지도 않았다. 잠언의 나열은 진부한 언어의 유희일뿐이다. 만약 그 경험을 본인이 했다면 달랐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마호가 경험한 것은 다른 모습이다. 이 다름을 어디에 더 무게를 둘 것인지는 개인의 선택이다. 두근거림을 좇고자 한다면 마호처럼 자신만의 표지를 따라가면 된다. 하지만 그 표지에 대한 확신과 노력과 인내와 용기가 필요하다. 마호처럼 자기혐오를 극복하고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자세는 기본이다. 결국 다시 자신의 발견으로 돌아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은유의 힘
장석주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인이 작심하고 쓴 시에 대한 책이다. 은유에 대해 이보다 더 자세하게 쓴 책이 있을까? 현재까지는 모르겠다.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시를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서다. 시인이 되기 위해 노력한 적이 없다 보니 읽는 시나마 좀더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시집을 읽을 때 쉽게 다가오는 시들도 있지만 무슨 말인지 통 이해할 수 없는 시가 더 많았다. 시어들이 만들어내는 이미지 중 몇 가지를 잡아낼 때도 있지만 아주 파편적이다. 이때마다 학창시절의 수업을 원망한다. 왜 좀 더 시에 대해 더 많이 알려주지 않았나 하고.

 

학창시절 배운 시는 암기였다. 은유를 이해하게 만들기보다 시험을 위해 외우는 대상으로 만들었다. 그러니 제대로 된 감상이 이루어질 리가 없다. 졸업 후 우연히 그 시들을 읽으면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고, 그 지독한 감성에 놀랐던 것을 떠올리면 그 시절 그것들을 누리지 못한 것이 아쉽다. 조지훈의 <승무>보다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가 더 좋은 시라고 했을 때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도 시라는 것을 단어 그 이상으로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을 읽고 그렇게 놀랐던 것도 나의 굳은 생각들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나의 시에 대한 공부가 얼마나 부족한지 깨닫는다. 그보다 먼저 시인들, 시집에 대해 너무 몰랐다.

 

책을 읽다가 은유에 대해 멋지게 설명하는 장면들을 만난다. 밑줄치고 외우고 싶은 문장들로 가득하다. 좋은 시와 나쁜 시에 대한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 서정시의 의미를 되새긴다. 하지만 다 읽은 지금도 머릿속은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는다. 아직 은유에 대해, 시에 대해, 시인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재가 아닌 허상의 세계라고 했을 때, 말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말을 버려 의미의 부재에 이르게 한다고 했을 때 시에 한 발짝 다가간 듯한 착각을 한다. 이런 착각은 이 책을 몇 번씩 곱씹고 체화하는 하는 시간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 탓이다. 안다고 생각하고 충분히 그 의미를 풀어내지 않은 탓이다. 시인이 휘트먼의 <풀잎>을 몇 개월 동안 읽고 있다고 한 것을 보면 분명해진다.

 

시가 우리 삶을 축약하고 이미지화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은유로 표현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소리를 형상화해서 보여준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재 세계가 아닌 허상을 통해 세계를, 현실을 드려내준다고 했을 때 좀 더 시에 다가갔다. 거울의 이미지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장르소설이나 영화로까지 이어지는 현실을 생각할 때 상상력이 지닌 힘과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어려운 시를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하는 문제는 아직도 나에게 남겨진 문제지만 좀 더 읽고 좀 더 분석하고 더 많은 상상력을 동원하면 살짝 문을 열어주지 않을까. 아직은 더 많은 노력과 열정이 필요한 분야다.

 

많은 시들과 시인들이 책 속에 나온다. 낯익은 이름도 많지만 낯선 시인도 적지 않다. 나의 시 세계가 어딘가에서 멈췄다는 것을 깨닫는다. 새로운 시인의 발견은 또 다른 세계로 나를 인도하지만 멈춘 그곳에서는 과거로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여러 작가의 글 속에서 시인들을 한 명씩 발견해내지만 그 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래서인지 낯선 시인들의 이름이 나왔을 때 반가웠다. 그들의 시를 이해하는 것은 둘째 문제다. 인식의 공간이 넓어졌다는 부분에서 반가운 일이지만 시간 부족에 시달리는 현실에서 소장욕구만 높아진다는 문제로 넘어간다. 뭐 이것이 단순히 시에 한정된 문제는 아니지만.

 

시는 은유다. 시는 머리만의 언어가 아니라 몸의 언어다. ‘몸은 세계와 대면하는 접혀 있음이다.’라고 할 때 그곳에는 과거의 시간들, 상처, 기억들이 숨어 있다. 열린 것만 생각했는데 접혀 있는 곳을 들여다봐야함을 깨닫는다. 전체가 아닌 일부라고 했을 때 그 작은 공간과 시간 속에 세상의 비밀이 담겨 있는 것을 살짝 엿본다. 이 책은 시를 해설하기도 한다. 시를 풀어내고 그 이미지를 눈앞에서 펼쳐 보여준다. 시인의 광범위하고 깊은 독서가 없었다면 이런 작업이 나올 수 없다. 내가 늘 장석주의 책을 읽으면서 감탄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