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심령학자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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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장르문학 작가 중 가장 인지도가 높은 작가가 아마도 배명훈일 것이다. 이 인지도는 그가 꾸준히 책을 내는 것과 그 작품들이 어느 수준 이상이란 점이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의 작품과 읽는 작품의 괴리감은 언제나 존재한다. 초기 작품에서 받은 인상이 너무 강해 최근에 읽은 작품들은 과연 SF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그냥 분야가 다양하다고 하기에는 그가 꾸준히 발표한 작품들의 유사성이 살짝 보인다. 고고심령학자란 단어가 처음 나온 것도 단편 <누군가를 만났어>였지 않은가.

 

고고심령학은 공식적으로 존재하는 학문이 아니다. ‘심령학적인 관찰을 통해 고고학적인 질문에 대한 찾고자 하는 학문’으로 정의된다. 이 정의를 간단히 설명하면 천 년 전에 죽은 혼령이 하는 말을 직접 들어 그 당시 언어를 재구성한다는 것이다. 설명은 쉽지만 현실에서 이것이 가능할까? 하는 물음이 따라온다. 속된 말로 혼령을 계속해서 봐야 한다는 말이다. 김은경이 고고심령학을 사람들이 그만 두는 이유 중 가장 먼저 꼽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무서워서 그만 둔다. 그리고 이 혼령을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은경의 경우 이것을 보지 못한다. 보는 사람의 시선과 행동으로 파악할 뿐이다.

 

천문대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서울 도심에 나타난 벽으로 넘어간다. 그런데 이 벽은 실체가 눈으로 보이는 벽이 아니다.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높이가 30미터가 넘는 거대한 벽이다. 촬영도 되지 않고 카메라에도 찍히지 않는다. 이 현상은 심령현상으로 생각하고, 요새빙의라는 용어가 떠오른다. 이때 이 용어를 만든 한나 파키노티가 등장한다. 한국에서 스위스로 입양된 그녀는 전 세계를 돌면서 체스의 원형 게임인 차투랑가의 변종을 수집한다. 한나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고고심령학보다 체스의 문화사가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그녀의 이 작업은 요새빙의 현상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국 고고심령학계의 거장 문인지 박사의 제자인 조은수는 박사의 사후 그의 기록을 정리, 기록하는 일을 한다. 단순해 보이는 이 작업이 한국에서 발생한 요새빙의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실제 은수가 서울과 천문대를 오가며 하는 일은 현상을 보고, 경험하고, 자료를 정리하는 것이다. 은거 고수와 같은 그의 능력은 현장에서 그 빛을 발한다. 이 과정에서 은경이 은수 옆에 있다. 은경의 자발적인 조사는 관련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일들을 하나의 현상으로 이어준다. 고고심령학이 얼마나 많은 학문을 통해 발전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서울의 특정 지역에 성벽이 나타난다는 설정은 비현실적이다. 이 비현실을 논리로 풀어내는 것이 소설가의 역할이다. 이것을 위해 작가는 고고심령학의 정의를 내리고, 혼령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것을 연구하는 고고심령학자들을 등장시켰다. 그리고 이것을 과학으로 증명하려는 학자도 나온다. 한국고고심령학연구소 이한철 대표가 대표적이다. 현대의 과학 기기를 통해 확인하고 증명하고 조사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실제 고고심령학 분야에서 전문성을 드러내기에는 조금 부족하다. 그의 연구소 직원들이 더 많이 등장한다.

 

성벽의 존재는 종말의 징후와 연결된다. 종말징후론은 현실로 나타났을 때 그 징후를 알 수 있다. 징후들이라고 했던 것이 사실이 아니었던 역사는 사후적인 연구와 연결된다. 파편적으로 등장했던 성벽이 하나로 이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작가는 이 과정을 파편적인 이야기로 나열한 후 하나로 통합한다. 처음 읽을 때는 뭔 딴소리인가? 하지만 그 조사와 연구가 맞물리고, 그 상황을 이해하게 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만약 예상한 대로 이어지지 않으면 징후들은 사실이 된다. 작가의 이런 전개 방식과 구성들이 놀라움과 기발함을 던져주지만 가끔은 모호함으로 남기도 한다. 가끔은 이 모호함이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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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9-01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명훈 작가 이번 책을 통해 여러 가지 배운게
많습니다.

이러다가 정말 팬이 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