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샷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안재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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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금요일 오후 5시. 소총을 든 남자가 등장한다. 미니 밴을 타고 주차장 2층으로 간다. 총을 꺼내고 쏠 준비를 한다. 공공광장으로 나오는 사람들을 향해 총격을 가한다. 모두 여섯 발이고, 다섯 명이 죽는다. 무차별살인이다. 광장은 혼돈에 빠지고,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인다. 여러 사람이 911에 전화를 하고, 경찰은 신속하게 현장으로 다가온다.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현장을 장악하고 증거를 수집한다.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증언으로 사건 현장이 재구성되고, 수집된 증거는 재빨리 분석된다. 불과 여섯 시간 만에 용의자가 드러난다. 너무나도 명확한 증거와 재빠른 사건처리는 박수를 쳐주고 싶다. 이렇게 용의자 제임스 바가 체포된다.

여기까지 정말 단 한숨도 쉬지 않고 읽었다. 잭 리처가 등장하기 전인데도 말이다. 그의 여동생이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한 덕분에 그곳 변호사가 그를 방문한다. 교과서적인 증거에 변호사는 의욕도 없다. 그의 유죄를 확신하던 변호사에게 그가 요구한 것은 하나다. 잭 리처를 데려오라는 것이다. 이 멍청한 변호사는 리처를 정신과 의사 정도로 생각한다. 이 정보를 얻은 동생이 탐정을 고용해 그의 흔적을 찾는다. 어디에도 그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던 중 감옥에서 바는 폭행을 당하고 사경을 헤매게 된다.

리처는 플로리다에서 편하게 쉬고 있다가 뉴스를 통해 이 사건을 알게 된다. 이제 그는 현장을 향해 온다. 그가 온 목적이 바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서 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다. 바가 이라크 전쟁 당시 벌인 사건 때문에 그를 죽이기 위해서 온 것이다. 이 사실에 변호사와 그의 여동생은 놀란다. 그에게 그런 과거가 있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그가 사경을 헤매고, 증거가 너무나도 명확하기에 리처는 떠날 생각을 한다. 그런데 그가 왜 나타났는지 몰랐던 무리들이 괜히 나선다. 혹시 그가 그 사건을 다시 파헤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 조그마한 착각이 길 떠나려던 리처를 그곳에 잡아두게 된다. 이제 리처는 먼저 시비를 걸어온 적 때문에 사실에 한걸음 더 다가가게 된다. 

시리즈 아홉 번째 소설이다. 두 번째 소설 다음에 갑자기 아홉 번째다. 만약 세 번째였다면 <탈주자>를 먼저 읽었을 것이다. 내년에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이 출간을 앞당긴 것은 아닐까 막연한 추측을 한다. 그리고 변함없이 주저함 없이 나아가는 리처의 모습을 매력적이다. 거구에서 품어내는 힘과 헌병 수사대에서 닦은 수사능력은 이번 소설에서 극대화된다. 너무나도 분명한 증거 때문에 그가 손쓸 수 있는 여지가 줄었는데 그의 존재와 활약이 그 틈새를 자꾸 벌려준다. 적들이 느끼는 초조함이 많아질수록 리처의 추리는 더 정확해진다.

리처의 과거는 이번에도 조금씩 드러난다. 과거는 현재의 그를 만들었고, 방랑자 기질은 변함없다. 독불장군처럼 혼자 모든 것을 처리할 것 같지만 사건을 하나씩 풀어가는 도중에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는다. 검사장 딸이자 바의 변호사인 헬렌과 사건 현장을 가장 먼저 방송한 아나운서 야니와 탐정 프랭클린 등이 그들이다. 마지막엔 전직 해병의 도움까지 받는다.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을 마무리하는 것은 역시 잭 리처다. 그가 품어내는 열정과 냉기와 액션은 눈을 떼기가 어렵다. 그냥 쉴 새 없이 읽게 된다.

그의 탁월함을 다시 느끼게 되는 것은 역시 마지막 장면이다. 육체적 능력이 뛰어난 것도 눈길을 끌지만 하나의 단서에서 시작하여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추리능력은 더욱 대단하다. 분명한 사실에서 시작하여 그 분명함에서 의문을 품고, 빠진 증거에 주시하고, 연결되는 다른 사건을 주목한다. 무작위의 본질이란 부분에서 단서를 찾아내고, 점점 진실에 다가가는 모습은 앞에 벌어진 사건을 새롭게 재구성하고 돌아보게 만든다. 모든 사건이 해결되고 난 후 그는 조용히 떠난다. 이 장면을 보면서 현대판 셰인을 생각한다. 액션에서 시작하여 멋진 추리로 마무리되는 그 과정이 단숨에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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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 사무라이 2
에이후쿠 잇세이 원작, 마츠모토 타이요 지음, 김완 옮김 / 애니북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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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드디어 2권이 나왔다. 원래 한 권씩 찔끔찔끔 나오는 만화를 잘 보지 않는다. 한꺼번에 전권을 읽길 좋아한다. 그런데 착각과 우연으로 1권을 읽었다. 그 후 그 거친 그림과 그 속에 살아있는 섬세한 묘사와 재미난 이야기 전개 때문에 반했다. 1권에서도 말했듯이 잘 몰랐다면 이런 그림체의 만화를 손에 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일반적인 예쁜 그림체의 만화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작품에서도 경험한 것이지만 이런 경향은 속독과 그 만화를 제대로 즐길 수 없었던 여유와 나쁜 습관 탓이었다. 

2권에선 1권에서 중요한 관찰자 역할을 했던 소년 칸키치의 역할이 많이 사라졌다. 대신 새로운 이야기를 들고 나왔다. 앞부분은 연쇄살인자를 등장시켜 호기심과 긴장을 불어넣었고, 후반에선 사악한 기운을 풍기는 사냥꾼을 등장시켜 다음에 벌어질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이런 큰 흐름 속에 변함없이 펼쳐지는 소소한 일상과 소이치로의 낯설고 신기한 경험들은 그의 매력을 강하게 발산한다. 어느 부분에선 영화 <셰인>을 나도 모르게 연상하게 만든다. 

소이치로의 검술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1권에서 대충 보여주었다. 살기가 너무 강한 그의 검술을 꺽기 위해 애검 쿠니후사를 팔지만 그 검의 영혼은 그를 맴돌며 재결합을 요구한다. 이것은 아직 살기를 완전히 씻어내지 못한 현실과 그에게 닥쳐올 미래를 암시한다. 그중 일부가 바로 연쇄살인이고, 사악한 기운 가득한 사냥꾼의 등장이다.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함정수사를 하고, 살인범이 나타나는 순간 그의 몸속에 잠자고 있던 살기는 폭발한다. 숨겨져 있던 과거의 일부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리고 뒤에 이어지는 사건 처리는 그 시대의 삶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냥꾼의 등장은 한편으론 소이치로의 또 다른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다음 권에서 본격적으로 이 둘의 대결이 펼쳐지겠지만 소이치로의 과거를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이 부분은 정말 다음 권에 대한 갈증을 부채질한다. 사무라이 만화니 멋진 대결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비록 그 결투 장면이 화려한 영상이나 긴 긴장감을 불러오지 않지만 그 간결함 속에 느껴지는 긴장과 강렬한 폭발력은 정말 일품이다. 

이 작품을 정말 매혹적으로 만드는 것은 검술 대결이나 살인자의 등장이 아니다. 오히려 소이치로 주변에 살고 있는 이웃들이다. 그를 연쇄살인범으로 오해했던 츠네나 그에 대한 연심을 품고 글을 배웠던 오카츠나 관찰자 역할을 했던 칸키치 등이 바로 그들이다. 작가는 이들을 통해 그 시대의 현실과 삶의 풍경을 드러내고, 소이치로가 느끼는 환상의 무거움과 잔혹함을 덜어낸다. 이것은 그와 쿠니후사의 대화 속에서도 잘 나타난다. 하지만 탁월한 능력과 숨겨진 과거는 결코 그를 평화롭게 놓아두지 않는다. 원작이 있고 이것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다음 권을 기다린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동시에 기다림이 주는 설레임을 오랜만에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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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위해 사는 법 - 삶과 죽음의 은밀한 연대기
기타노 다케시 지음, 양수현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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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기타노 다케시는 나에게 영화감독의 이미지가 더 강하다. 그에 대한 정보를 얻다 보면 코미디언으로 더 대단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차이는 한때 영화를 좋아해서 유명한 작품과 감독들을 찾아본 때문이다. 이때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는 대단한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소위 말하는 세계적인 영화제 상을 엄청 받은 것이다. 그런데 그의 영화를 보면서 많이 졸았다. 재미없었다. 나와 취향이 달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얼굴 표정을 보면 영화배우가 맞나?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 책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하나는 사고 직후 병원에 있으면서 생각한 것을 정리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고 전에 쓴 독설을 실었다. 이 나누어진 부분들을 읽으면서 앞부분의 느낌이 뒤로 가면서 혼란스러워졌다. 시간 순으로 보면 독설이 앞이고, 병원의 단상들이 뒤일 텐데 뒤바뀐 순서가 이 혼란을 부채질한다. 이 때문에 그에 대한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독설에 담긴 내용들이 민감한 사항들이 많고, 그의 정확한 정치성을 모르다 보니 글자 그대로 해석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단순히 한 인기 연예인이 생각나는 대로 갈겨 쓴 글이라고 생각하면 마음 편하지만 작가와 이 책을 낸 한국 출판사를 생각하면 단순하게 생각할 수 없다.

사고를 당한 후 생각들을 정리한 글부터 사실 나의 신경을 살짝 긁어 놓았다. 너무 적나라한 것이야 받아들이는데 무리가 없지만 나의 생각과 충돌하는 부분이 늘어나면서 조금 불편했다. 솔직함을 넘어서 오만하고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생각들은 욕이 살짝 튀어나오는 부분도 생긴다. 특히 자신의 오스트리아의 하루를 형무소의 시간과 비교하는 대목에선 그가 느끼는 감정이 얼마나 피상적이고 자기중심적인지 알 수 있다. 그가 만약 한국 군대에서 근무를 했다면 이런 생각을 절대 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불편한 감정도 많지만 솔직함과 날카로운 인식은 그를 또 다르게 보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가 5천 명이 죽었다고 말하면서 개인을 말살하고 묶어 생각한 것을 그는 5천 건으로 풀어낸 것이다. 사회문제 이전에 개인문제임을 인식하고 있다. 이것은 다시 지금 아이티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사람들이 죽고 파묻힌 현장을 보면서 안타까워하지만 밥을 먹으면서 보고 금방 잊어버리는 지금의 모습을 생각하면 참 날카로운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중력을 사색할 때는 왠지 모르게 건담 시리즈가 생각났고, 깨달았다고 말하는 사람을 퍼즐 푼 것으로 보는 장면에선 깊이가 느껴졌다. 

붉은 색으로 나누어진 독설들은 우리의 현실과 연결시키면 더욱 불편해진다. 일본 헌법이나 침략전쟁을 반성하고 사죄하지 않는 것에 대한 그의 글은 일본인에게 통쾌함을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마 이 모든 것이 싸움에 진 탓으로 돌리는 유치한 행동으로 보인다. 정치인에 대한 공격과 일본사람들에 비판과 질타는 거침없다. 자유의 개념을 정확하게 말한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이다 평등으로 넘어가면 강자의 논리가 넘실거린다. 남성우월주의가 노골적으로 표현되고, 교육이나 외교문제로 넘어가면 대안 없는 비판과 무책임한 말로 가득하다. 

삶과 죽음의 은밀한 연대기란 부제가 붙어 있지만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역시 독설들이다. 이 독설 이전과 이후의 변화가 궁금한데 어떨지 모르겠다. 그의 생사관은 특별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단지 단상을 통해 드러난 사색과 관찰에서 가끔 뛰어난 점이 보일 뿐이다. 그가 자신이 하고자 한 말을 모두 하여 통쾌하고 유쾌할지 모르지만 그 글을 읽고 생각을 걸러내는 입장에선 굉장히 불편하다. 일반적인 삶과 죽음에 대한 단상을 읽고 싶다면 그다지 권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기타노 다케시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에겐 그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많은 글들이 담겨 있다. 그의 정치성향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 책은 구성 때문에 더욱 불편하고 가끔은 짜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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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관계 사립탐정 켄지&제나로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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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켄지 & 제나로 시리즈를 모두 읽었다. 개인적으로 시리즈의 첫 권부터 읽은 사람이 부럽다. 앞으로 두 권이나 더 남았기 때문이다. 이번 시리즈에선 사랑하지만 주변에서 맴돌고 다가가지 못했던 두 연인이 하나로 연결된다. 그리고 앞의 두 작품에서 강하게 켄지를 사로잡았던 아버지의 그림자가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잔혹한 악당들이 등장한다. 이들을 상대하는 것은 강한 용기와 인내와 과감한 결단력이 필요하다. 이미 앞에서 엄청난 경험을 한 이 콤비가 강력한 협력자를 잃은 상태에서 그 위험한 관계 속으로 빠져든다.

늘 그렇듯이 시작은 누군가를 찾아달라는 부탁이다. 부탁을 하는 방식이 특이하다. 패트릭과 앤지를 미행하고, 이들이 다가가자 기절시킨 후 깨워서 의뢰를 한다. 의뢰내용은 사라진 딸을 찾아달라는 것이다. 이들 앞에 이미 패트릭의 선생이었던 제이 베커가 조사를 했다. 그는 뛰어난 명탐정이다. 그가 딸의 흔적을 찾고, 살아있다고 말하고 오는 중 삼십 킬로미터 사이에 사라진 것이다. 높은 수임료에 혹한 이 둘은 제이의 보고서를 토대로 다시 하나씩 새롭게 조사한다.

조사를 하면서 마주한 첫 번째 난관은 슬픔치유원이란 단체다. 대부호 트레버 스톤의 딸 레지나의 흔적이 마지막으로 이어진 곳이다. 그녀가 슬픔에 빠진 것에는 이유가 있다. 트레버 부부가 폭력배들의 공격을 받았고, 이때 트레버의 아내가 죽은 것이다. 그 앞에 레지나의 남자친구가 익사해 죽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가 암으로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이 삼중 공격이 그녀를 힘들게 만든 것이다. 이 엄청난 마음고생이 슬픔치유원이란 심리치료원으로 그녀를 데리고 간 것이다. 그런데 이 단체 이상하다. 보통의 심리치료단체와 그 성격이 다르다. 힘겹게 가지고 나온 자료로 조사를 하니 이상한 종교단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여기서 제목과 연관시켜 종교단체의 비리를 파헤치면서 사건이 벌어질 것이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아니다. 이 치유원의 수뇌가 부바 일당의 무력 앞에 너무 쉽게 무너지면서 레지나의 흔적은 다른 곳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녀를 데리고 떠난 놈이 단체의 돈 이백만 불을 가지고 달아났다. 위험한 놈으로 소문난 그와 달아난 그녀가 과연 살아있을까? 그녀를 찾았다고 말하고 사라진 제이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의문이다. 그 놈의 마지막 흔적이 있던 곳, 플로리다로 그들은 떠난다. 이곳에서 마주하는 사실들은 앞에 벌어진 사건이나 단체를 잊게 만들 정도로 끔찍하고 잔혹하면서 무시무시하다.

제목에서 풍기는 종교적 색채는 사실 뒤로 가면서 사라진다. 그의 전작들처럼 인간에 대한 탐구와 연민과 사랑과 믿음과 불신 등이 뒤섞인다. 자본의 폭력이 드러나고, 인간의 약점을 노린 단체의 폭력과 착취와 약탈이 벌어진다. 연쇄살인범이 수십 명을 죽였다고 하지만 자본의 폭력은 한 나라를 기아와 폭력으로 밀어 넣는다. 사실을 왜곡하고, 겁주고, 협박하고, 약자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이들에겐 인간의 존엄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하나의 도구나 수단일 뿐이다. 이 악당을 상대하려고 하자 주변에서 멈추라고 말한다. 너무나도 거대한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이 소설이 지닌 매력이 발휘된다. 무모할 것 같은 도전과 굴하지 않는 용기가 통쾌함을 주는 것이다. 물론 이 속엔 늘 변함없는 씁쓸함이 깔려있다.

이번 시리즈에서 부바는 앞에 잠깐 활약하고 사라진다. 불법무기를 소지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간다. 항상 위험한 상황에서 그들의 뒤를 봐주던 그가 없어진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캐릭터였기에 아쉽다. 그리고 이번에도 켄지는 실타래처럼 얽인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낸다. 사라진 딸을 찾는다는 단순한 조사가 양파까기처럼 새롭고 눈물 나는 일들로 이어지는 것이다. 하나의 단서를 찾고 의문을 풀어내면 다른 단서가 드러나고 다시 의문이 생긴다. 이런 반복과 위협과 폭력 속에 마주하는 진실은 추악하고 지저분하고 잔혹하다. 작가가 책 마지막에 “장식도 가식도 없는 아름다움은 성스러우며, 인간의 존경과 숭배를 받을 자격이 있다.”(436쪽)고 한 말의 의미가 자연스럽게 가슴에 와 닿고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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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탐 - 넘쳐도 되는 욕심
김경집 지음 / 나무수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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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책 욕심을 부채질한다. 부제를 보면 넘쳐도 되는 욕심이라고 한다. 점점 좁아지는 공간과 비어가는 지갑을 생각하면 순간 고개를 갸웃하지만 곧바로 자기위안의 말로 삼아버린다. 책 좋아하는 사람에게 책을 탐하는 욕망을 자제하라는 것은 얼마나 큰 고통인지 알기 때문이다. 저자가 책 읽기를 위해 차를 없앤 것에 비해 최근 나는 차를 몰고 출퇴근하는 기회가 늘었다. 덕분에 일주일에 한 권 정도 덜 읽게 되었다. 이런 작은 공감으로 기분 좋게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의 기획은 베스트셀러 대신 책꽂이에 꽂혀 있는 보석 같은 책을 찾아서 알리는 것이다. 너무 많은 책으로 질리게 하는 대신 하나의 이야기에 두 권의 책을 비교하면서 비슷하지만 다른 즐거움을 누리게 만들었다. 가능한 최근작을 골랐는데 이 부분을 안타까워했지만 절판된 책들이 많은 현실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그리고 네 개의 장으로 나누어서 내가 읽었거나 가지고 있거나 읽고 싶게 만들면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희망, 정의, 정체성, 창의적 생각이 저자가 잡은 네 주제다. 희망의 장에서 만난 책들은 상당히 가지고 있고, 몇 권은 읽은 것들이다. 특히 <나무를 심는 사람>에 대한 글에서 나의 감동과 같은 부분이 많아 공감대가 쉽게 형성되었다. 우연히 보게 된 애니가 나를 완전히 사로잡아서 시간도 공간도 잊게 만들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희망을 말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쉬운 삶을 산 사람보다 도전하고 노력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다. <잠수복과 나비>는 지금까지 그냥 묵혀두고만 있었는데 작가에 대한 사연이 새삼 다른 감동으로 다가온다.

정의를 탐하는 책은 역사와 관련된 책들이 많다. 제목 때문에 읽지 않은 책이 다시 나를 유혹하고, 오래전에 아주 즐겁게 읽은 <닥터 노먼 베쑨>은 퇴색하는 기억을 되살려준다. 착한 경제에서 만나게 되는 새로운 사실은 다시 나의 현재를 돌아보게 만들고, 서양사 중심의 세계사에 대한 나의 불만을 살짝 눌러줄 책을 찾게 되어 기뻤다. 좋아하는 작가 밀란 쿤데라의 소설과 새롭게 주목하고 있는 하진의 작품에 대한 분석은 내가 몰랐던 새로운 사실과 또 다른 방향으로 소설 읽기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정체성을 다룬 장에선 이전에 읽었지만 그 재미를 누리지 못한 책을 다시 끄집어내어 읽고 싶게 만든다. 나의 취향과 독서법에 맞지 않아 지루하게 느껴졌거나 아직 어려서 그 재미를 몰랐던 책들이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두 번이나 읽었지만 그 매력을 아직도 발견하지 못한 <호밀밭의 파수꾼>을 과연 다시 읽어야 하나? 고민하게 만들고, 동양철학 공부를 좀더 심도 있게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생긴다. 삶의 여유가 생기면 여기에 소개된 책들이 새롭고 더 많은 의미를 가지고 나에게 말을 걸 것 같은 느낌이다.

마지막 장은 개인적으로 가장 낯선 분야다. 가끔 과학이나 예술과 관련된 책을 읽지만 지루하고 힘들고 어렵다. 한때 가장 좋아했던 한국작가 고 이청준에 대한 글에선 그리움과 추억이 생각나고, 연속으로 읽으면서 그 어둠에 매몰되어 중단했던 고 김소진도 새롭게 다가왔다. 이런 기억보다 더 강렬하게 가슴에 와 닿은 것은 김승옥, 이문열, 조세희, 김성동 등에 대한 짧은 평이다. 안타깝고 아쉬운 현실이다. 그리고 <감응의 건축>을 읽으면서 저자가 받은 감동이 무주로 나의 마음이 향하게 만든다. 언제 시간 내어 한 번 다녀와야 할 것 같다. 

저자의 책에 대한 깊은 내공은 부럽다. 다양한 분야와 깊이 있는 분석과 이해는 앞으로 배워야 할 점이다. 그가 책꽂이 꽂힌 책에서 우연히 발견한 기쁨은 나 자신도 많이 누렸기에 동감한다. 그리고 나 자신이 건성으로 읽은 듯한 책을 마주할 때는 부끄러움을 느끼고, 사놓고 몇 년을 묵히고 있는 책을 만날 때는 올해는 꼭 읽어야지 하는 다짐을 하게 만든다. 책을 읽으면서 읽고 난 지금도 분명한 것 하나 있다. 그것은 사고 싶고 읽고 싶은 책들이 아주 많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집이 더 좁아지고 지갑은 더 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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