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위해 사는 법 - 삶과 죽음의 은밀한 연대기
기타노 다케시 지음, 양수현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기타노 다케시는 나에게 영화감독의 이미지가 더 강하다. 그에 대한 정보를 얻다 보면 코미디언으로 더 대단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차이는 한때 영화를 좋아해서 유명한 작품과 감독들을 찾아본 때문이다. 이때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는 대단한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소위 말하는 세계적인 영화제 상을 엄청 받은 것이다. 그런데 그의 영화를 보면서 많이 졸았다. 재미없었다. 나와 취향이 달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얼굴 표정을 보면 영화배우가 맞나?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 책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하나는 사고 직후 병원에 있으면서 생각한 것을 정리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고 전에 쓴 독설을 실었다. 이 나누어진 부분들을 읽으면서 앞부분의 느낌이 뒤로 가면서 혼란스러워졌다. 시간 순으로 보면 독설이 앞이고, 병원의 단상들이 뒤일 텐데 뒤바뀐 순서가 이 혼란을 부채질한다. 이 때문에 그에 대한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독설에 담긴 내용들이 민감한 사항들이 많고, 그의 정확한 정치성을 모르다 보니 글자 그대로 해석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단순히 한 인기 연예인이 생각나는 대로 갈겨 쓴 글이라고 생각하면 마음 편하지만 작가와 이 책을 낸 한국 출판사를 생각하면 단순하게 생각할 수 없다.

사고를 당한 후 생각들을 정리한 글부터 사실 나의 신경을 살짝 긁어 놓았다. 너무 적나라한 것이야 받아들이는데 무리가 없지만 나의 생각과 충돌하는 부분이 늘어나면서 조금 불편했다. 솔직함을 넘어서 오만하고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생각들은 욕이 살짝 튀어나오는 부분도 생긴다. 특히 자신의 오스트리아의 하루를 형무소의 시간과 비교하는 대목에선 그가 느끼는 감정이 얼마나 피상적이고 자기중심적인지 알 수 있다. 그가 만약 한국 군대에서 근무를 했다면 이런 생각을 절대 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불편한 감정도 많지만 솔직함과 날카로운 인식은 그를 또 다르게 보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가 5천 명이 죽었다고 말하면서 개인을 말살하고 묶어 생각한 것을 그는 5천 건으로 풀어낸 것이다. 사회문제 이전에 개인문제임을 인식하고 있다. 이것은 다시 지금 아이티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사람들이 죽고 파묻힌 현장을 보면서 안타까워하지만 밥을 먹으면서 보고 금방 잊어버리는 지금의 모습을 생각하면 참 날카로운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중력을 사색할 때는 왠지 모르게 건담 시리즈가 생각났고, 깨달았다고 말하는 사람을 퍼즐 푼 것으로 보는 장면에선 깊이가 느껴졌다. 

붉은 색으로 나누어진 독설들은 우리의 현실과 연결시키면 더욱 불편해진다. 일본 헌법이나 침략전쟁을 반성하고 사죄하지 않는 것에 대한 그의 글은 일본인에게 통쾌함을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마 이 모든 것이 싸움에 진 탓으로 돌리는 유치한 행동으로 보인다. 정치인에 대한 공격과 일본사람들에 비판과 질타는 거침없다. 자유의 개념을 정확하게 말한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이다 평등으로 넘어가면 강자의 논리가 넘실거린다. 남성우월주의가 노골적으로 표현되고, 교육이나 외교문제로 넘어가면 대안 없는 비판과 무책임한 말로 가득하다. 

삶과 죽음의 은밀한 연대기란 부제가 붙어 있지만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역시 독설들이다. 이 독설 이전과 이후의 변화가 궁금한데 어떨지 모르겠다. 그의 생사관은 특별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단지 단상을 통해 드러난 사색과 관찰에서 가끔 뛰어난 점이 보일 뿐이다. 그가 자신이 하고자 한 말을 모두 하여 통쾌하고 유쾌할지 모르지만 그 글을 읽고 생각을 걸러내는 입장에선 굉장히 불편하다. 일반적인 삶과 죽음에 대한 단상을 읽고 싶다면 그다지 권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기타노 다케시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에겐 그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많은 글들이 담겨 있다. 그의 정치성향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 책은 구성 때문에 더욱 불편하고 가끔은 짜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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