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디와 나
장폴 뒤부아 지음, 함유선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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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제목만 본다면 정치색이 가득하다. 하지만 전혀 정치와 상관없다. 물론 케네디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케네디가 죽을 때 차고 있었던 시계와 관계있다. 그것이 비록 사실인지 아닌지 정확하지 않지만 말이다. 이 소설은 케네디와 나로 이어지는 과정을 다루면서 어느 날 전혀 글을 쓸 수 없게 된 한 소설가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권총을 샀다는 문장으로 시작하여 다시 글을 쓰게 되는 그 순간까지 이어진다.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화자와 가족과 주변사람들의 삶은 풍자적이고 뒤틀려 있고 우스꽝스럽다. 

열 권의 책을 내었고 세 아이의 아버지인 마흔다섯 살의 사무엘은 어느 날 갑자기 글을 쓸 수 없었다. 책을 쓸 수 없으니 아내는 다시 언어치료사로 취직을 했고, 그 병원의 이비인후과 의사와 불륜을 저지른다. 아이들은 아버지에게 관심이 없고,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애정이 사라졌다. 권태와 무력감이 그를 지배한다. 그러다 산 권총은 그의 기분을 순간적으로 좋게 만든다. 2년 동안 쓸 수 없었던 글을 쓰게 만들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이때부터 그의 삶은 새로운 단계로 들어가게 된다. 그 첫 걸음이 바로 아내의 불륜상대에게 진찰을 받는 것이다.

불륜상대인 의사에게 진찰을 받으면서 그의 상상력은 멈추지 않는다. 기대와 빈정거림이 교차하고 모든 것을 말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린다. 이런 그의 입장에서 이야기의 한 줄기가 진행된다면 그의 아내는 또 다른 한 줄기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부부가 서로 번갈아 가면서 이끌어 가는데 그 중심엔 언제나 사무엘이 있다. 그의 갑작스런 절필과 무관심은 아내로 하여금 일탈로 이어지게 만들고, 그 일탈은 그녀 자신의 바람이라기보다 상황이 만든 현실이다. 정부에게 실망하지만 어느 순간 다시 그에게 몸을 허락하고, 다시 멀리하는 상황은 남편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처음 사무엘의 행동을 보면서 이렇게 뒤틀릴 수가 있나 생각했다. 어른으로 아버지로 참으면 될 텐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이빨을 둘러싸고 벌어진 사태를 보면서 왠지 모르게 그를 응원하게 되었다. 자신의 학력을 위해 아빠의 이를 치료한 의사를 두둔하는 딸이나 직장 때문에 비호하는 아내의 모습에서 가족이란 테두리가 없어져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아빠나 남편의 고통이 아니라 자신들의 현재와 미래의 이익이다. 특히 권위로 무장하고 환자를 무시하는 의사를 볼 때 공감대는 더욱 높아진다. 

이 불안하고 무관심한 부부가 공감대를 형성하는 순간은 바로 자신들의 세계가 침입 당했을 때다. 딸 사라의 남자 친구 한스가 그들에게 조언을 할 때 이 둘은 공통의 적이 생긴 것이다. 물론 이 공감대는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사무엘이 갑자기 집착을 가지게 되는 케네디의 시계는 환멸과 허무와 무관심을 세계를 깨트리는 역할을 한다. 조롱과 빈정거림과 순간적인 폭력을 보여줬던 그가 젊은 시절의 활기와 용기를 다시 찾는데 큰 역할을 한다. 

사무엘이 총을 산 것이나 아내가 추운 날씨에 수영을 한 것은 살아온 흔적을 지우려는 서투른 의지라는 작가의 말에서 이 부부가 느낀 삶의 현실을 깨닫게 된다. 따뜻하고 친밀하고 상호의존적인 가족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개인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사람이 아닌 지위나 권위나 물건에 집착하는 지도 모른다. 마지막에 사무엘이 지하로 내려가서 안정을 찾는다. 이것은 외부의 시선과 관계 속에서 느낀 무력감이나 불안이 좁고 어둡고 안락한 환경의 지하와 집착하던 물건을 가지게 됨으로써 바뀌게 된다. 반대로 아내는 남편의 서재 속에서 갇혀 있던 감정을 해소하고 새롭게 나아갈 힘을 얻는다. 이 대조가 앞의 대립과 익숙함을 넘어 부부 사이를 새롭게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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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비 2010-04-05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보았습니다^^
 
쾅! 지구에서 7만 광년
마크 해던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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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해던을 처음 만난 것은 역시 그의 출세작인 <어느 날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이다. 아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난다. 보통 이렇게 긴 제목을 가진 책을 좋아하지 않는데 그 당시는 어떻게 읽게 되었다. 그리고 단숨에 읽고 반했다. 지금 책장 한 곳에 고이 모셔져 있다. 캐릭터와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상당히 좋았다. 누군가가 재미있냐고 묻는다면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는 책이다. 그런 그가 책을 다시 내었다. 원제는 이다. 

이번 책에는 내역이 있다. 원래 <그리드즈비 스푸드베치!>란 제목으로 18년 전에 나온 적이 있다. 당시 무명이었던 탓인지 아니면 조금 허술한 탓이었던지 많이 팔리지 않았다. 하지만 아주 희귀작이 분명한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은 성 필립 앤 제임스 학교의 학생들 때문에 작가는 다시 옛날 물건과 짜임새 등을 새로 손봐서 내놓았다. 그 후는 제목처럼 쾅! 하고 대박이 났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은 사람이나 읽을 사람에겐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전작처럼 매력적인 캐릭터와 기발한 전개가 이어진다. 주인공 짐보는 공부도 못하고 집중력도 좋지 못한 사고뭉치다. 그의 절친한 친구 찰리는 사고뭉치에 말썽쟁이다. 짐보는 데스 메탈을 좋아하는 베키 누나의 거짓말에 속아 두려움에 떤다. 이것을 상담하기 위해 찰리를 찾아가게 되고, 찰리가 아이디어를 낸다. 교무실에 무전기를 두고 도청을 하자는 것이다. 이 조그마한 일이 보통의 꼬맹이들이 벌일 수 있는 모험에서 엄청난 사건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된다. 바로 학교의 두 선생이 내뱉는 이상한 대화들 때문이다. 

사실 초반에 적극적으로 의문을 가지고 미행하고 조사하는 인물은 찰리다. 짐보는 친구에게 끌려 다니는 정도다. 그런데 이 둘의 조사를 통해 수상한 것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키드 선생의 집은 무대 세트 같고 그 집에서 발견된 수상한 단어와 기록들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한 것들이다. 두 아이의 호기심 가득한 모험에서 단순한 해프닝으로 이어질 것 같은 느낌을 가지려는 찰나에 반전이 펼쳐진다. 이 아이들의 조사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그가 보여준 무시무시한 위력은 짐보를 움츠려들게 만든다. 하지만 겁 없는 찰리는 멈추지 않는다.

짐보의 본격적인 모험이 펼쳐지는 것은 찰리의 실종부터다. 찰리가 비밀을 풀고 사라진 것이다. 이때부터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된다. 짐보가 사실을 알기에 제거하려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이것을 본 베키 누나와 그녀의 애인이 그를 구한다. 무시무시한 그들에게서 탈출하여 이 둘은 찰리가 간 것 같은 장소 코루이스크로 간다. 이 여행은 또 다른 모험의 시작이자 두 남매의 정이 돈독해지고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어지는 놀라운 세계는 sf세계로 우릴 인도한다. 

전체적으로 빠르고 간결하면서도 재미있게 진행된다. 각 등장인물들이 주는 재미가 상당하다. 실직한 아버지가 아들이 준 요리책으로 뛰어난 요리사로 다시 태어나거나 실직한 아버지의 무력함을 대신해 아들을 위기에서 구해주는 엄마나 순간의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도마를 던지는 찰리의 엄마 등이 주는 웃음과 즐거움은 아주 커다. 거기에 데스 메탈의 팬으로 무시무시한 몽둥이를 휘두르는 베카 누나는 뒤로 가면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이들보다도 두 악동의 활약이 더 눈부시다. 특히 겁 많지만 친구를 위해 좌충우돌하는 짐보의 활약은 아주 유쾌하다. 찰리의 호기심은 거침없다. 이 두 악동의 활약은 귀엽고 유쾌하고 즐겁다. 하지만 실제 생활에서 마주한다면 어떨까? 살짝 이런 생각이 든다. 단숨에 읽고 숨을 잠시 고르고, 이 두 악동을 머릿속에서 떠올리고 살짝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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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의 소리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3
이시다 이라 지음, 김성기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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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선 언제나 사건 사고가 발생한다. 크고 작은 이런 사건 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욕망과 수많은 의지가 충돌하고 자라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번화가인 이케부쿠로에서 많은 일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 일들 중 일부는 마코토가 찾아낸 것이고, 일부는 사건 때문에 그를 찾아온 것들이다. 이번에 펼쳐지는 네 건의 사건들은 욕망과 이익에 사로잡힌 사람들 이야기다. 그리고 이번에는 G보이스의 황제와 함께 많은 활약을 펼친다.

표제작 <뼈의 소리>는 말 그대로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소리가 뭔지 물으면서 시작한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분명하다. 그리고 공원에서 노숙자를 공격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자신들의 불만을 노숙자에 대한 공격으로 풀려고 하는 아이들의 폭력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런데 이 사건들 속에 특이한 것이 있다. 노숙자들의 뼈를 부러트린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전작처럼 범인은 쉽게 짐작되지만 인간의 가진 욕망이 빗나갈 경우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 잘 알려준다. 하지만 이 놀라운 사건보다 씁쓸한 것은 꼬맹이들의 폭력이 사건 해결 후에도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다.

<서 일번가의 테이크아웃>은 한 소녀와의 만남으로 시작한다. 그 아이의 엄마는 엄청난 글래머에 매춘녀다. 그런데 그녀가 일하는 곳은 외국인들이 힘을 발휘하는 곳이다. 그녀가 몸을 파는 것을 이 지역을 장악한 야쿠자가 좋아하지 않는다. 불법인 매춘을 경찰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 이번에 마코토는 엄마의 힘을 빌린다. 상가번영회 사람들이 동원되어 그녀를 도와주려고 나서는데 아주 단순하지만 대단하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생계를 위해 몸을 팔수밖에 없는 여성들의 아픔이나 현실을 외면하고 전시행정으로 숨겨진 매춘처를 발견했다고 홍보하는 경찰과 기자들의 눈 가리고 아웅거리는 현실이 먼저 생각났다. 

지역 통화권을 다룬 <황록색 하느님>은 현실 그 뒤에 숨겨진 욕망이 의욕적이고 거대한 기획을 무너트리는 것을 보여준다. 이케부쿠로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통화 파운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 이야기는 잘못된 시작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 정확히 보여준다. 처음엔 단순히 위조지폐 문제였지만 뒤로 가면서 밝혀지는 사실은 잘못된 시작해서 비롯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통화권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와 신뢰는 약간 비현실적인 부분이 있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그리고 한때 우리나라에 범람했던 수많은 상품권들이 생각났다.

이번에도 역시 마지막 이야기 <한여름의 광란>의 분량이 가장 많다. 다루고 있는 소재는 레이브 파티와 마약이다. 일단 마약이라고 하면 거부반응이 일어나는 한국의 현실에서 마약을 한 채로 레이브 파티를 즐기는 이들의 모습에 공감대를 형성하기는 쉽지 않다. 대마초와 담배 중 어느 것이 더 사람에게 나쁜가 하는 의문도 있지만 그 외 다른 마약들이 사람들을 어떻게 만드는지 매체를 통해 보았기에 현행법 상 마약으로 불리는 것에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다. 하지만 이 소설에선 이 두 소재를 하나로 묶고 있다. 레이브 파티의 흥을 돋우는 역할을 가벼운 마약이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네이크 바이트’로 불리는 마약이 등장하면서 문제가 생긴다. 이 마약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와 같다. 가벼운 마약에서 시작한 사람들이 이 마약을 가볍고 쉽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면 역시 마약은 마약이다. 오랜만에 펼쳐지는 마코토의 로맨스도 파티의 열기와 더불어 즐거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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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읽는 소년 작가정신 청소년문학 2
쇼지 유키야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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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지 유키야의 소설은 따뜻하다. 겨우 두 권 정도 밖에 읽지 않았지만 그 속에서 느낀 감상이 그렇다. 일상에 뿌리를 두고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 소설도 그렇다. 하지만 시간적 공간적 배경은 현실이 아니다. 먼 훗날이 되지 않을까 짐작되는 시간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썼다. 그리고 낯선 ‘바람과 물의 엑스퍼트’라는 존재를 등장시켜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게 만든다. 이 소설은 바로 바람의 엑스퍼트의 아들인 아치의 시선에서 부두마을의 사계절 동안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아치의 아버지는 바람의 엑스퍼트다. 그가 이사 온 후 부두마을에서 발생하는 여름의 폭풍우가 사라졌다. 매년 이 때문에 많은 문제가 생겼던 마을 사람들은 그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그의 장남 아치는 색에 대한 특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고, 쌍둥이 키사와 토아는 밤과 낮의 운행에 따라 서로 번갈아가면서 잠들고 깨어난다. 처음엔 단순히 특이하다고 생각만 했는데 뒤로 가면서 이 능력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조금은 알게 되면서 색다르게 다가왔다. 

아치의 색에 대한 특별한 능력은 리틀 아티스트로 불릴 정도로 뛰어나다. 하지만 현재 그의 나이는 열두 살이다. 그리고 밤낮을 교대하면서 잠들고 깨어나는 두 쌍둥이 동생 키사와 토아는 어머니가 죽은 후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소년이 누려야 하는 일상을 빼앗았다는 의미다. 그렇지만 그의 곁에는 좋은 친구들과 마음 따뜻하고 친절한 마을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아치의 아버지 후가 씨의 능력에 큰 도움을 받았고,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이들을 좋아한다. 덕분에 후가의 아이들은 편안하고 즐겁게 생활하게 된다.

사계절 동안을 다루고 있지만 한 계절마다 조그마한 일들이 발생한다. 봄에는 물의 엑스퍼트가 등장하여 감소하고 있는 어획량에 대한 어부들의 근심과 걱정을 알려주고, 후가 씨가 오기 전 마을에서 벌어진 쌍둥이 사건에 대한 신비로운 이야기를 펼쳐 보여준다. 여름엔 아치의 예술품과 초자연적 현상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가을로 가면 그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일하는 성냥공장에서 주최하는 세계적인 콩쿠르인 성냥탑 콩쿠르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겨울엔 앞에 벌어진 수많은 의문과 사건들이 하나씩 해결되기 시작한다. 

작가는 이 모든 이야기를 잔잔하면서 따뜻한 시선으로 이끌어간다. 유일한 대립관계를 보여주는 장면이 아마 어획량 감소 때문에 생계를 걱정한 어부들이 바뀐 바람길 탓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걱정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한 것이기 보다 생계를 걱정하게 되면서 발생한 것이다. 이 때문에 불려온 물의 엑스퍼트 미즈야는 이 소설에서 바람과 물의 엑스퍼트가 어떤 존재인지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아치의 두 동생은 각각 다른 매력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고, 그의 친구들은 아이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순진함과 열정과 우정으로 활기를 불어넣어준다. 

이 소설의 원제는 키사토아다. 바로 아치의 두 동생 이름이다. 일본어로 아토사키란 단어를 거꾸로 한 것이라고 한다. 그 뜻은 앞뒤다. 그리고 다른 등장인물들의 이름도 각각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모두 읽고 난 후 역자 후기로 알게 되어 조금 아쉽지만 재미있는 설정이다. 또 작가는 무리하게 이야기를 끌고 가기보다 바람의 흐름처럼 자연스럽고 때로는 강풍을 동반한 모습으로 이어간다. <도쿄밴드왜건>에서도 이어지는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이 작품도 그렇다. 아마 매력적인 캐릭터와 따뜻한 이야기가 그런 마음을 불러온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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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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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츠 이치의 17세 데뷔작이다. 중편 분량의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와 단편 <유코>, 두 편이 실려 있다. 아직 이 작가의 장편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다. 단편집을 읽으면서 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생각했다. 이번 작품집도 그런 점에서 실망을 시키지 않는다.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는 섬뜩하다. 한 소녀의 우발적인 살인과 그 사체를 처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과정을 죽은 자의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죽은 자의 목소리지만 전혀 감정이 담겨있지 않다. 관찰자의 시선으로 말할 뿐이다. 그것은 그녀가 죽는 순간마저 그렇다. 죽는 순간의 공포나 고통을 담기보다 그 장면을 서술할 뿐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사체 처리를 둘러싼 이야기들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의문을 자아낼 정도다.

아홉 살 소녀 사쓰키가 친구 야요이에게 죽임을 당했다. 단지 야요이가 좋아하는 친오빠 켄을 좋아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친구의 사체를 본 순간 야요이는 당황하고 두려워한다. 정상적인 반응이다. 그런데 이때 나타난 켄은 다른 반응이다. 냉정하고 두려움이 없다. 보통의 수순이라면 친구가 실수로 떨어져 죽었다고 어른들에게 알리겠지만 그는 사체를 사람들 몰래 처리하려고 한다. 먼저 닫히지 않은 도랑을 발견하고 그 속에 사체를 숨긴다. 그곳을 주위 땅과 변함없이 보이도록 사후 작업도 한다. 그런 후 태연하게 둘은 집으로 돌아온다. 

그 마을엔 연속적인 실종사건이 다섯 건이나 발생했다. 그런 와중에 사쓰키가 사라진 것이다. 사쓰키의 엄마가 돌아오지 않은 딸을 찾아 야요이 집으로 온 것은 당연하다. 이 순간 두 남매의 반응은 다르다. 켄은 냉정을 유지한 반면 야요이는 공포와 불안감을 느낀다. 이 감정들에 먹히려는 순간 켄은 도움의 손길을 뻗친다. 켄의 냉정과 대담함은 이 소설을 읽는 동안 과연 열한 살 소년이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자아낸다. 바로 그 부분에서 재미가 만들어지기는 한다. 두 남매의 감정 변화와 제대로 사체를 처리하기 위한 대담하고 지속적인 노력이 놀라움과 끔찍함을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에 드러나는 반전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유코>는 서술트릭을 사용했다. 읽는 동안 계속 생각한 것을 마지막에 뒤집어 버린다. 물론 서술트릭이 뛰어난 작품들에 비해 충격의 강도는 약하다. 하지만 긴장감과 으스스한 분위기로 집중하게 만든다. 가정부 키요네의 시선에서 대부분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이 속에 함정이 있다. 물론 작가는 단서를 숨겨놓고 마지막에 가서야 펼쳐 보여준다. 전작에서도 이런 부분이 있는데 약간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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