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춰진 생물들의 치명적 사생활
마티 크럼프 지음, 유자화 옮김 / 타임북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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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에 관심을 가진 것은 학창시절 생물을 비롯한 과학에 약했던 과거 때문이다. 그 후 나름대로 과학관련 책을 읽었지만 변함없이 낮은 기억력과 이해력으로 형편없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을 발견했을 때 자극적인 제목 때문에 생물 관련 서적이 아닌 약간 므흣한 내용을 담은 로맨스 소설 등으로 착각했다. 책 내용을 보기 위해 목차를 보았을 때도 변함없이 자극적이었다. 원작이 그런 것인지 아니면 번역 과정에 흥미위주로 바뀐 것인지 모르지만 상당히 도발적인 시도다. 덕분에 시선을 확실히 끌기는 했다.

모두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같은 종 동물 간의 상호작용, 다른 종 동물 간의 상호작용, 동물과 식물 간의 상호작용, 곰팡이, 세균과의 상호작용 등이다. 이 상호작용들이 낯설지만은 않다. 아마도 학창시절이나 살아가면서 본 몇몇의 책이나 다큐멘터리 등에서 비롯한 기억 덕분일 것이다. 시험을 위해 열심히 외운 몇몇 단어들은 반가웠고, 조금 더 확장된 경우는 새로움과 신선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저자의 의도다. 이것을 “단순히 세상 모든 것을 서로 연관 지어보고, 이 멋진 자연사를 나누고 싶다는 열정”(8쪽)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학술적 논평이 아닌 동식물 관계에 얽힌 이야기들로 풀어낸다.

먼저 같은 종 동물 간의 기본적인 상호작용으로 짝짓기를 이야기한다. 이 짝짓기가 멋지거나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기 위한 수컷의 필사적인 노력은 인간의 그것을 능가할 정도다. 그리고 생존을 위해 그들이 펼치는 노력과 협력 등은 내셔널지오그래픽 등의 프로그램에서 가끔 본 것이지만 각 개체 마다 각양각색이라 놀랍고 이색적이었다. 다른 종 동물 간의 상호작용은 그렇게도 낯익은 공생과 기생에 대한 것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널리 알려진 악어와 악어새는 없지만 페더슨청소새우 같은 다양한 새우류의 활약은 낯설지만 재미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흰머리독수리를 둘러싼 이야기는 흥미롭고 실소를 자아내게 만든다.

동물과 식물 간의 상호작용은 난초 이야기로 시작한다. 난초를 제대로 키워본 적도 없고, 그 차이도 모르는데 엄청나게 다양한 난초들이 생존과 번영을 위해 펼치는 유혹은 치명적이다. 이후 개미를 비롯한 다양한 사례에서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얻게 된다. 이런 정보들은 가벼운 책읽기를 기대한 나에게 백과사전 같은 느낌으로 다가와 어느 순간에 조금 힘들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은 것은 마지막 장이다. 곰팡이, 세균과의 상호작용을 다룬 이야기다. 잘 알려진 이야기가 나오면서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다른 장들과 달리 이야기의 구성이 단순하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많은 정보보다 알고 있거나 새로운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사실 이 책은 쉬운 책이 아니다. 아니 차분하게 조금씩 읽는다면 예상외의 소득이 많을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단숨에 읽으려고 하면 약간은 전문적이고 낯선 이름 때문에 힘겨울 수도 있다. 이야기로 풀어내어 읽기 무난한 편이지만 역시 너무 많은 동식물이 다루어지면서 한꺼번에 소화하기가 쉽지 않다. 소화를 위해 방귀를 뿡뿡 끼듯이 누군가 이 책을 제대로 소화시키기 위한 방귀를 내 머릿속에 끼게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지금은 제대로 이 책의 맛을 음미하지 못했지만 다음엔 편한 곳을 펼치고 조금씩 다양한 동식물의 신기하고 일상적인 세계에 빠져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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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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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퓰리처상 수상작이다. 최근에 퓰리처상 수상작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 예전에 이 상을 받은 책을 아주 지겹게 읽은 기억이 있는데 지루함이 가신 것을 보면 나의 내공이 조금 쌓인 모양이다. 이 소설은 미국 메인 주의 작은 마을 크로스비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열세 편의 단편들 속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그 속내를 잘 드러내거나 숨기면서 살아간다. 그들의 삶을 보다 보면 나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 그리고 한국 문학에서 자주 만나곤 했던 삶들이 다른 지역과 사람들에게서 다시 드러난다. 물론 그 지역의 특성이나 문화의 차이는 있지만 그들도 긴 삶을 힘겹게 즐겁게 살아가는 것은 분명하다.

소설의 중심에 올리브 키터리지가 있다. 그녀는 키와 덩치가 크고, 사과를 할 줄 모르고, 고집이 세다. 모든 단편 속에 등장하지만 그냥 스쳐지나가는 순간도 많다. 하지만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올리브는 그 마을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영향을 미치고, 관계를 맺고 있다. 몇몇 단편에선 그녀가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감정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때 드러나는 행동과 감정들은 어떻게 보면 유치하고 아이 같다. 하지만 그 솔직한 감정과 행동은 그녀와 관련된 사람들의 관계를 통해 아주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한 마을을 배경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공간적으로 동일한 곳을 공유하지만 시간의 흐름을 따라 이야기가 진행된다. 덕분에 앞에 나온 사람들의 미래가 궁금할 때 그것이 자연스럽게 해결되기도 한다. 시간의 연속성 속에 사람들은 나아가고 성장한다. 그것은 나이와 상관이 없다. 60대도 70대도 모두 조금씩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앞으로 나아간다. 어느 순간은 잔잔하게 흘러가고, 어떤 순간은 격렬하다. 다른 사람이 평생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할 순간을 마주하기도 하고, 현실의 테두리에서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살아가기도 한다. 

첫 단편인 <약국>에선 올리브의 남편 헨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굉장히 고요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시작하는데 그 속에 담긴 이야기는 감정의 절제가 돋보인다. 여직원 데니즈와의 감정교류가 어느 정도 불안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시대 그 마을에서 이런 일탈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자신의 감정을 행동으로 표현하기에 용기가 없었는지 모른다. 너무 예의바르고 선량하고 보수적이라 불륜을 저지르지 못한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올리브에게도 해당되는 사항인지도 모른다.

<밀물>에서 올리브가 나와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자살을 준비하는 그의 제자와 함께 하는데 마지막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고 삶의 의지로 가득하다. <피아노 연주자>에 남편과 잠시 등장하지만 본격적으로 전면에 나온 것은 <작은 기쁨>이다. 아들 크리스토퍼의 결혼식을 배경으로 그녀가 느끼는 감정과 질투가 잘 묘사되어 있다. 앞에서 어느 정도 그녀의 성격 중 일부를 짐작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였지만 그녀의 작은 기쁨이 되는 행동은 낯설다. 이 낯설음은 뒤로 가면서 점점 사라진다. 그것은 그녀가 등장하는 부분이 많아지면서 그녀의 삶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되면서부터다.

올리브와 남편과의 결혼생활은 어떨까? 그들은 싸우고, 화해하는 일반 부부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둘 모두에게 위기는 있었지만 일탈을 시도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는 것이 더 정확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둘은 한 사건을 통해 갈등이 고조된다. <다른 길>에서 마주한 소년 범죄자들과의 만남은 긴 결혼생활 속에 곪아있던 상처가 터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뇌졸중으로 헨리가 쓰러지면서 그녀의 삶은 점점 비루해지고 움츠려들게 된다. 이 불행은 아들의 첫 이혼과 맞물려 있고, 아들의 재혼과 초대로 이어질 듯한 모자 관계가 다시 그녀의 고집과 아들의 무관심으로 충돌하면서 고착되어버린다. 

올리브의 삶이 노년 속에서 과거의 아름다움을 회상하고 일탈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면 현실에서 과부인 상태가 외로움과 허전함을 전해준다. 이 때문에 그녀가 생각지도 못한 남자 잭과 만나게 되는데 나이와 상관없이 그들도 젊은이들처럼 사랑을 갈구한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삶은 하루하루를 낭비하기엔 너무 짧다. 이 순간 그녀는 죽음을 끝없이 생각하고 고민하던 것에서 삶에 대한 의욕으로 변한다. 이것은 그녀의 성장이자 삶과 세상과의 소통이 이루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올리브가 강한 개성으로 중심을 잡아준다면 다른 주인공들은 삶의 다양성과 풍부함을 보여준다. 가끔 긴 호흡의 잘 다듬어진 문장은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잘 표현해주고,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든다. 올리브, 그녀는 놀랍도록 개성적이고 생동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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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명 앗아가주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6
앙헬레스 마스트레타 지음, 강성식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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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의 한 소녀의 긴 이야기다. 그 이야기 속엔 평범한 여자의 삶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풍경과 사람들의 삶도 같이 담겨 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영상들과 사실들이 낯선 시대의 모습을 하나씩 재현하게 만든다. 이 모습들은 현재 멕시코를 배경으로 구성된 것들을 뒤집어 놓고, 해방 후 우리의 정국을 잠시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낯선 역사와 사람들은 강한 몰입을 방해하고 살짝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열다섯의 카탈리나는 서른이 넘은 남자의 구애를 받고 결혼한다. 지금 같으면 말도 탈도 많은 결혼일 텐데 그 시절엔 조금 다른 모양이다. 그리고 그 남자 안드레스가 권력을 쥐고 있는 장군인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어린 처녀가 어른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했지만 그녀는 세상에 대해 무지하다. 결혼 얼마 후 남편이 잡혀가도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을 정도로 말이다. 다행히 금방 남편이 돌아오지만 어린 신부가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이것은 그녀가 나이 먹고, 남편이 주지사가 되어 세상으로 나가면서 조금씩 바뀌게 된다. 

성공한 남편을 둔 아내지만 남편이 벌이는 놀랍고 무시무시한 사건들이나 사고들을 무시할 정도는 아니다. 세상에 대해 무지하고, 정치라고는 아내나 딸의 관점 등에 머물 정도로 평범한 수준이지만 일반 상식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아이를 낳고 키우고, 남편의 다른 정부들에게서 난 아이들도 돌보면서 그녀는 점점 자라고 목소리를 높이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집밖에서 힘을 발휘할 정도는 못된다. 안드레스가 그녀의 요구 조건을 일축하고, 무시하고, 자기 뜻대로 처리하기 때문이다.

시종일관 카탈리나의 시각에서 진행된다. 멕시코 혁명 시기의 혼돈 상황을 남편 안드레스의 행위를 통해 알 수 있는데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최근에 외신을 통해 들어오는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의 현실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권력과 자산을 위해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살인하고, 상대를 협박한다. 어느 날 사라진 사람이 토막이 나서 어느 집 앞에 버려지는 사태도 발생하고, 범죄자로 감옥에 갇힌 권력의 하수인은 탈옥하여 미국에서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낸다. 이런 사실을 보면서 왠지 우리의 과거와 현재가 떠오른 것은 비약일까? 

지루하고 재미없고 남편의 목적에 이끌려 다니는 그녀에게 위대한 모성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그녀가 자신의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사랑에 빠졌을 때 그녀가 연인에게 하는 말을 보면 자신이 우선이고 가족들은 부차적이다. 남편을 처음 사랑했을 때 같은 불같은 열정은 어느 듯 사라지고 눈앞에 나타난 멋진 남자는 몸과 마음을 달뜨게 만든다. 정적이나 방해자를 죽이는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는 남편을 생각하면 그녀의 이런 마음이나 행동은 너무나도 위험하다. 위험이 클수록 사랑은 더 정열적으로 바뀌는 것일까? 아니면 너무 사랑하기에 그 위험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일까? 

한 여자의 성장과 사랑만 다루었다면 지극히 통속적인 로맨스 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멕시코 혁명의 혼란기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그 목소리는 그녀의 것인 동시에 그 시대 여성들의 목소리다. 남편에 대한 엄청나고 끔찍한 소문을 친구의 입을 통해 듣고, 그 소문에 의문을 가지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녀는 약하게 부정하거나 무시한다. 이런 현상은 그 시대 사람들의 삶 속에 그대로 녹아 있는 것이다. 사회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통제되어 있고, 그 통로가 대부분 남편의 소리를 통해 얻게 되는 그녀가 제대로 된 역사 인식을 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현실을 그대로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충실한 역사의 기록자다. 비록 여성들의 시각이 강하게 담겨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단숨에 읽으려고 마음먹었는데 생각보다 진도가 더디게 나갔다. 몸 상태 탓도 있지만 낯선 이름들과 시대 상황이 몰입을 살짝 방해했다. 그리고 카탈리나의 목소리를 통해 듣는 멕시코 혁명기의 삶과 모습들이 너무 낯설었다. 중반 이후 그녀의 아슬아슬한 사랑 이야기를 읽을 때는 깊은 몰입을 했다. 이 사랑은 또한 그녀의 남은 삶을 좌우할 정도의 변화를 가져오고, 세상을 좀더 대담하게 보고 다가가게 만드는 힘을 줬다. 마지막에 권력을 잃은 남자의 초라한 여생을 보면서 권력은 마약 같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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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전쟁 2 - 금권천하 화폐전쟁 2
쑹훙빙 지음, 홍순도 옮김, 박한진 감수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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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전쟁 1권을 읽지 않았다. 1권이 상당히 많이 팔린 것으로 아는데 왠지 손이 가지 않았다. 빌려 읽을 기회도 있었고, 살 기회도 있었는데 후배의 한 마디 때문에 그만두었다. 그 한 마디는 <황금>을 읽고 난 후 그 내용을 이야기하니 읽지 않아도 되겠다는 말이었다. 그때만 해도 사실 이런 두꺼운 경제서적을 잘 읽지 않을 때고(지금도 마찬가지다) 책 내용에 대해 몰랐을 때였다. 하지만 2권 금권천하가 나오고, 목차를 읽게 되면서 관심이 부쩍 많아졌다. 베스트셀러에 대한 호기심도 물론 작용을 하였지만 말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300년간 세계를 지배해온 17개 금융가문 인맥 대해부’란 소개글이다. 이전에 음모론이나 반세계화 등을 다룬 책에서 로스차일드 가문이나 록펠러 가문 등에 대한 실상을 어느 정도 읽은 적이 있지만 다른 가문에 대해서는 아주 단편적인 지식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지식이란 것도 음모론의 시각이 강하여 그 기원이나 성장이나 영향력 등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그래서 그 정도들이 과장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강했다. 이것은 주류 경제학을 전공한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이번 책에선 다른 금융가문들도 다루면서 그들이 어떻게 성장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들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2권을 모두 읽은 후 1권의 목차를 보니 로스차일드 가문이 중심에 있다. 이번 책에서도 역시 로스차일드 가문은 그 중심에서 다른 가문들과 협력과 대립을 반복한다. 전작을 보지 않은 상태라 어떤 내용들이 나왔는지 모르지만 새롭게 다루어진 가문들을 보면서 그들의 힘과 영향력이 어떻게 흘러갔는지와 그들이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물론 이 과정에 사실뿐만 아니라 저자의 추리에 의해 메워진 부분도 상당하다. 하지만 그가 풀어내는 논리는 분명하다. 이 금융가문들이 추구하는 것은 금권 즉 돈이란 것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많은 부분이 음모론의 시각을 지니고 있다. 주류경제학에서 벗어난 해석도 많은데 읽다보면 고개를 저절로 끄덕이는 대목도 상당하다. 이런 대목들을 만나면 그 뒤에 숨겨진 진면목을 보게 되는데 약간의 과장이 있을지 모르지만 다양한 채널에서 이미 본 것이라 무리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역사를 바탕으로 그 가문의 성장과 세계사를 연결하고 해석하였기에 흥미롭고 재미있으면서 새로운 시각도 많이 만나게 된다. 그리고 너무나도 유명한 몇 가문을 제외하고 다른 가문들을 새롭게 만날 때는 세계의 숨겨진 실세를 마주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전쟁을 다루면서 국제 은행 가문에 대한 의문을 드러낸다. 이 도입부는 역사와 음모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단숨에 끌어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독일을 국제 은행 가문들의 발원지라고 말하고, 영국을 통한 금권 고지 선정을 보여주면서 프랑스의 혁명 등에 그들이 끼친 영향과 금권의 진화 과정을 설명한다. 이것은 다시 새롭게 부상하던 미국으로 넘어가게 되고, 전쟁 등으로 혼돈에 빠진 유럽의 역사를 국제 금융을 중심으로 풀어낸다. 특히 히틀러를 국제 금융 가문과 연결해서 분석한 부분은 악마 같은 히틀러의 이미지 넘어 존재하는 냉철하고 뛰어난 정치인의 모습을 부각시켜준다. 이것은 또 어떻게 히틀러가 정권을 잡았고, 전쟁을 하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개인적으로 최근에 알게 된 히틀러 정권과 관련된 사실들이 이것으로 많이 해결되어 좋았다.

유대계 국제 금융가문을 다루다보니 이스라엘 건국이 빠질 수 없다. 어느 정도 유대계가 힘을 발휘했을 것이란 것을 알았지만 어떤 식으로 행사했는지는 구체적이지 못했다. 물론 저자의 주장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영향력이 결코 적지 않았고, 이 영향력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비유대계 국제 금융가문을 다루게 되고, 이 둘의 대결과 협력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세계 금융시장에서는 신용과 자본 흐름의 채널을 장악한 자가 게임 룰을 정한다는 사실이다!”(226쪽) 표현에서 이들이 어떤 힘을 발휘했는지 알 수 있다. 

마지막에 가면 2024년 단일화페의 등장을 예언하는데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최근에 알게 되었다. 예전에 마냥 단일화폐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면에 있는 의도가 무엇인지 알고, 이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도 알게 되면서 마냥 찬성할 수 없다. 이것은 이번 그리스 사태 등과 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분명히 존재하는 각 나라간의 경제력 격차 등이 하나의 단일 통화로 인해 조정될 여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 달러를 다룬 부분에서 금괴를 사놓아야 하나? 하는 의문이 생긴다. 역사 속에서 단 하나의 요인만이 전쟁 등의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일어난다. 하지만 그 중에서 돈은 가장 강력한 요인 중 하나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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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행록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2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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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안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아니 그 사람을 제대로 아는 것이 가능할까? 흔히 드라마 등에서 몇 십 년을 같이 살았는데 부부가 서로를 모른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처럼 누군가를 완전히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한 사람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과 관계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시선이 필요하다. 물론 그것조차도 그 사람을 알기 힘든 경우가 허다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조금 더 그 실체에 다가가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통곡> 이후 오랜만에 누쿠이 도쿠로의 소설을 읽었다. 처녀작인 <통곡>을 단숨에 읽은 것처럼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처녀작이 아이들의 연쇄 유아 유괴살인사건을 다루면서 각 방면의 풍경과 반응을 잘 표현하였다면 이번에도 역시 한 가족의 살인 사건을 다양한 사람들의 시선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이번엔 한 여자의 독백을 집어넣어서 범인을 앞으로 드러내었다. 그녀의 독백은 왜 그녀가 그런 참혹한 살인을 일으켰는지 독자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동시에 그녀의 인생역정이 얼마나 불쌍하고 참혹했는지 알 수 있다. 

한 남자가 일가족 살인사건을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 사이에 한 여자의 독백이 맞물려 돌아간다. 피해가족을 둘러싼 주변사람들의 인터뷰 형식인데 그들의 말을 통해 그 부부의 과거와 현재가 재현되고 분석된다. 하나의 사건을 둘러싸고 다양한 사람들의 시선을 그려낸 소설로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가 먼저 생각난 것도 이런 형식 때문이다. <이유>가 좀더 방대하면서 사회적 비극임을 잘 드러낸 반면에 이 소설은 사회로 확장시키기보다 개인 영역으로 축소시킨다. 그래서 함축적인 부분은 더 강하지만 압도적인 느낌은 조금 덜하다.

좋은 회사에서 높은 연봉을 받는 남편과 좋은 대학을 나온 아름다운 아내와 그들의 예쁜 남매가 모두 살해당한 사건을 다룬다. ‘왜 이들이 죽은 것일까?’ 하는 것과 ‘누가 죽인 것일까?’ 가 가장 큰 의문이다. 사실 누가 죽였는가는 독백을 하는 여자임을 암시한다. 단지 그녀가 누군지 의문스러운데 이것도 중반에 드러난다. 그녀의 독백으로 드러나는 삶은 피해자 부부의 삶과 분명히 차별된다. 이것은 그녀의 불쌍하고 처참한 삶을 동정하게 만들지만 독자가 그 행동에 동의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뒤에 나오는 몇 가지 반전 같은 상황 중 한둘은 너무 과도한 설정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누가? 보다 왜? 라는 의문이 더 강한데 작가는 왜? 에 바로 들어가지 않고 이 완벽해 보이는 부부의 과거와 현재를 그들의 이웃과 친구들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이 시선은 당연히 보는 사람의 감정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 이런 감정들은 피해자들의 삶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들의 삶도 같이 보여준다. 이런 설정과 전개는 탁월하다고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시선들이 하나씩 모여 단편적이었던 그들의 삶이 하나의 윤곽을 만들기 시작한다. 이때 드러나는 그들의 삶은 너무나도 다르고, 그들의 기억에 의해 윤색되거나 퇴색되어 있다. 그것은 그들의 현재 삶과 추억 때문이다. 

여섯 명의 증언 속에 드러나는 그들의 삶은 뒤로 가면서 점점 과거로 간다. 현실의 아름답고 완벽해 보이는 삶이 과거 속에선 치기와 자신감과 실수와 오만 등으로 가득하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형식인데 과거의 한 시점과 현재의 사건을 연결시키기 위한 하나의 설정이 아닌가 생각한다. 덕분에 드러나는 그들의 과거는 살인자의 독백과 정교하게 맞물리며 왜? 에 대한 답을 말해준다. 하지만 역시 그 왜? 라는 답에 만족하기는 쉽지 않다. 독백과 과거가 과연 그런 일가족 살인사건으로 이어질 만한 것인가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 반전으로 깔아놓은 설정이 더 많은 의문을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끼고 읽는 재미를 누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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