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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도시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12월
평점 :
제목과 달리 어둡고 우울한 이야기다. 아니 역설적인 제목이다. 어쩌면 그 꿈이 악몽일 수도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일본의 현재와 한국의 현재와 미래를 보는 듯했다. 아니라고 조금은 부정하고 싶은데 그 도시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이야기들이 너무나도 가슴에 와 닿는다. 이성적으로 보자고 하지만 곧 이성도 고개를 끄덕인다. 빠르고 재미있게 읽히지만 결코 유쾌하지 않다. <라라리포>에서 받은 느낌보다 세련되었고 깊이는 더 있다. 우리의 삶을 더 많이 더 자세히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다섯 명의 주인공을 내세워 각각 이야기를 풀어낸다. 다른 이야기지만 조각조각이 모이면 하나의 큰 그림이 된다. 이 조각들이 바로 우리의 삶이다. 감사 등을 대비해 생활보조비 수급자를 줄여야 하는 공무원 아이하라 도모노리, 도쿄에서 대학생활을 꿈꾸다 어느 날 납치된 여고생 구보 후미에, 폭주족 출신으로 노인들에게 사치 영업하는 가토 유야, 마트에서 좀도둑을 적발하는 보안요원이자 이혼녀 호리베 다에코, 현의원으로 나아가길 꿈꾸며 지역유지나 토건업자들과 유착된 시의원 야마모토 준이치 등이 바로 이 도시의 삶을 대표적으로 인물들이다.
공무원 아이라하 도모노리를 통해 가장 먼저 보여주는 것은 복지정책의 허점이다. 연금수령자보다 생활보호비가 더 많이 나오고, 고액의 수령자들은 더 이상 구직활동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어떤 대상자는 공무원을 하인 부리듯이 대한다. 그 과정은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신청을 했을 때 너무 쉽게 내준 것이 하나의 이유다. 수령자가 늘어나고 부담이 증가하자 부정수급자를 줄이려고 하지만 쉬울 리가 없다. 도모노리의 열성이 현실의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한다. 그때 우연히 본 유부녀 매춘은 그의 억눌린 욕망을 부채질하고, 사회의 또 다른 모순을 드러내는 계기가 된다.
여고2년생 구보 후미에는 도쿄4년제를 꿈꾸고 있다. 그녀를 통해 가장 먼저 드러나는 것은 졸업 후 진로 문제다. 그녀가 도쿄로 가려고 하는 것도 삶이 정체된 유메노 시에서 어떤 성장과 발전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날 밤에 벌어진 납치는 이런 꿈을 짓밟아버린다. 그리고 그녀를 통해서 일본 공장에서 일하는 브라질 2세나 혼혈 등과의 대립과 문제 등이 밖으로 표출되고, 은둔형 외톨이와 가정 폭력의 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가 납치된 후 황색저널리즘을 걱정하는 모습에선 언론의 문제점이 그래도 드러난다.
가토 유야는 전직 폭주족이다. 그의 선배들처럼 사기영업을 하는 곳에 취직했다. 혼자 사는 노인들을 찾아다니며 누전차단기가 문제 있다고 겁주면서 비싸게 판다. 공포를 이용해 판매에 성공하는 것이다. 회사와 자신이 일정비율로 수익을 나누는 구조다. 자신이 많이 팔수록 떨어지는 이익이 크다. 같은 물건도 얼마에 파느냐에 따라 수입이 변한다. 재미난 것은 이런 조직을 만들어서 돈을 더 버는 사장 같은 인물이 있고, 판매원들이 그에게 충성을 맹세한다는 점이다. 조폭이나 폭주족의 구조가 회사란 외형을 뒤집어 쓴 것이다. 여기에 이혼한 아내가 보낸 이제 갓 돌 지난 아이는 잊고 있던 아버지의 존재를 조금씩 깨닫게 한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현실은 결코 평탄하지 않다.
다에코의 삶은 이혼한 중년 이상 계약직 여성들의 삶을 대변한다. 혼자 살아 몸이 가벼울 것 같지만 적은 수입과 불안정한 고용은 늘 불안에 떨게 만든다. 그녀가 사슈카이란 종교단체에 빠져들게 된 것도 현실의 불안 때문이다. 이 종교를 그녀는 올바른 종교라 부르고 강한 믿음을 보여주는데 이야기 중간중간 나오는 장면들을 보면 사이비종교다. 신앙이란 강한 껍질을 뒤집어 쓴 그녀가 종교의 진면목보다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만 보는 것이다. 그녀의 삶은 노년도 이제 결코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현실과 미래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 유일한 부자이자 시의원인 야마모토 준이치도 결코 쉬운 삶을 살지는 못한다. 경제적으로 풍족함을 누리지만 더 큰 욕심이 자라고 있고, 자신의 자리를 노리는 적들과 자신의 이익을 방해하려는 사람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거기에 조폭형제 중 동생의 사고는 그녀의 삶 전체를 뒤흔들 정도다. 정경유착에 불륜에 살인 등을 저지르는 인물이지만 그 또한 이 사회 시스템이 만들어낸 하나의 인물일 뿐이다. 지역 유지 혹은 권력자였던 그가 변화하는 시대에서 조금씩 무너지는 모습은 구조의 변화라기보다 권력의 이동이라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각각 다른 이 다섯 사람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고 있지만 그들과 함께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이 바로 우리의 현재 모습이다. 뛰어난 이야기꾼의 실력을 발휘해서 어둡게 풀어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이미 현실에서 경험했던 이야기들이 사실적으로 그려지면서 섬뜩함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사람들이 안고 있던 고민을 마지막 장면에서 폭발시켜버린다. 그 결과는 독자의 몫이다. 오랜만에 읽었지만 역시 오쿠다 히데오다. 그러나 다음엔 좀 밝고 유쾌한 소설을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