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공 시모다
리처드 바크 지음, 박중서 옮김 / 북스토리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학창시절 <갈매기의 꿈>은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주인공이 사람이 아니고 갈매기라는 이유만으로 읽지 않았는데 그 책을 펴는 순간 정신없이 읽었다. 갈매기 조나단의 말과 행동과 도전과 용기는 가슴 한 곳을 뭉클하게 만들고 감동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 후 늘 그렇듯이 그의 책은 나의 필독서 목록에 올라갔고, 여기저기에서 구해 읽고는 했다. 하지만 처음 받은 감동을 지속적으로 받기는 쉽지 않았다. 아마 그런 시기에 이 소설도 읽은 듯한데 지금 그 책을 찾을 수 없어 정확하게 비교할 수 없다. 물론 다른 제목으로 나온 것 말이다.

사실 이 책을 나는 착각했다. 최근에 나온 신간으로 말이다. 그런데 1977년 작품이다. 분명히 90년대에 읽은 듯한데 최근작으로 착각하면서 읽게 되었다. 화려한 광고 글은 엄청나게 매력적이고, 예전에 좋아했던 작가의 최고 작품 중 하나라는 말에 그냥 넘어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다시 읽었다는 것이 아니다. 그 당시 분명히 이 작품을 읽으면서 느끼지 못한 재미를 지금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학창시절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던 시모다의 말을 지금은 조금씩 혹은 완전히 공감한다. 이런 변화는 좀더 삶을 살면서 경험했던 것들이 문장 속에서 화학반응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것도 좋은 쪽으로.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감동적인 대목은 필기체로 나오는 앞부분이다. 사실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 대부분이 여기에 나온다. 그 후에 나오는 것은 실용편 혹은 해설서에 더 가깝다. 그리고 이 부분은 왜 기계공 시모다가 자신을 메시아로 떠받드는 사람들을 떠나 사람과 기계로 이루어진 일상 세계로 오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말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이 행한 기적에만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부에서 행복을 찾기보다 시모다를 떠받들면서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주의 명령이라면 지옥불의 고난도 충분히 기쁘게 감당하겠다고 말할 때 나는 사라지고 광신만 남는데 아주 간결하게 이 상황을 보여준다. 

많은 분량의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문장을 곱씹으면 다르다.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고 불가의 일체유심조와 맞닿아 있으며 다중우주론을 기본으로 깔아놓고 있다. 아마 예전에 읽을 때는 이것을 제대로 알지 못했거나 너무 이야기에 집중했을 것이다. 현실과 환상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 우리가 사는 세계가 환상이 아닌지, 내가 바라는 바를 구체적으로 그려낼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 답한다. 사실 이 부분으로 넘어오면 다시 한 번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그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해야할지 말이다.

한때 화두로 삼고 있던 것이 ‘일체유심조’였다. 지금은 약간 퇴색했지만 이 말을 가슴속에서 외우고 외우고 또 외웠다. 내가 읽은 몇 권 되지 않는 자기계발서에서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것도 바로 이 단어로 집약할 수 있었다. 아마 이 소설도 이 단어 하나면 많은 것을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또 메시아를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그의 말이 아니라 기적에 관심을 가진다는 이야기는 중국 선종의 고사가 떠올랐다. 한 고승이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자 사람들이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았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런 해석은 “이 책에 나와 있는 모든 것은 틀릴 수도 있다.”(227쪽)는 문장처럼 틀린 해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해석으로 나아가게 만들고, 되짚어보게 한다면 다음에 읽을 때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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