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왕 궁전의 코네티컷 양키 세계문학의 숲 7
마크 트웨인 지음, 김영선 옮김 / 시공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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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마크 트웨인의 소설을 제대로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어릴 때 <톰 소여의 모험>을 소년 문고판으로 읽은 적은 있지만 그것은 축약본이다. 그 당시 애니로도 제작되었는데 개인적으로 톰 소여에게 상당히 감정 이입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반면에 허클베리 핀은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런데 마크 트웨인의 대표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말하고 있다. 물론 이 책도 사놓았다. 그런데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하겠다. 그러다 시공사에서 세계문학의 숲이란 구성으로 나온 이 책을 발견했다. 이전에 한 번 번역되어 나왔는데 절판이 되었던 책이다. 알게 모르게 이 책을 구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주저 없이 선택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 상당히 두툼한 분량에 약간은 주저함이 있었다. 혹시 지루하지는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한 것이다. 가끔 과도한 칭찬을 받는 책을 읽으면서 그 난해함과 지루함으로 고생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걱정은 정말 불필요한 것이었다. 손에 들고 읽으면서 정신없이 아서 왕 시대로 온 양키의 이야기에 빠져든 것이다. 처음에 풍자문학이란 단어에 고개를 갸웃했지만 읽을수록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가지고 있지만 읽지 않은 트웨인의 다른 책들에게 관심이 옮겨가기 시작했다. 뭐 당장 찾아서 읽을 것은 아니지만.

1889년에 출간된 작품이다. 왜 출간연도를 말하느냐면 이 소설의 기본 설정 중 하나가 현대의 인물이 타임슬립해서 과거로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런 설정은 상당히 낯익다. 요즘은 잘 읽지 않지만 한국 판타지 소설에서 이런 설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너무 자주 흔하게 보아서인지 개인적으로 약간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설정을 1889년에 했다면 어떨까? 그 진부함이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온다. 거기에 다른 시공간 속으로 들어간 인물이 뛰어난 과학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면 어떨까? 

아서 왕을 생각하면 항상 두 가지가 먼저 떠오른다. 하나는 신검 엑스칼리버고, 다른 하나는 원탁의 기사다. 그런데 이 소설에선 그 둘이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6세기 과거로 이동한 인물이 중심에서 이야기를 풀어내고, 현대와 너무나도 다른 과거의 삶을 그 속에서 재현하기 때문이다. 물론 몇몇 설정에선 세심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책 중간에 현대 미국영어에 대한 부분이 나오는데 너무 쉽게 양키가 6세기 인물들과 대화를 하는 것이나 그가 영향력을 발휘해 개혁을 시도한 부분이 너무 빨리 변화하는 부분이다. 뭐 이런 설정 또한 풍자와 비판을 위한 하나의 장치로 받아들이면 상관없이 흘러가지만 말이다.

19세기 미국 대장장이가 6세기 영국으로 옮겨가게 만든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먼저 대장장이를 보낸 것은 그가 과거 속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학자나 경제학자나 경찰을 보낼 경우 그 파급 효과가 그렇게 커거나 빠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장장이라면 그 시대 사람들이 만들지 못하거나 생각하지 못한 것을 만들 수 있다. 거기에 그가 과학 지식이 풍부하고 손재주가 좋다면 어떨까? 그가 과학의 힘을 발휘해서 그 시대 최고 마법사인 멀린을 물리친 것도 바로 이런 설정의 힘이다. 뒤로 가면서 약간은 만능인 듯한 느낌을 주지만 과학에 무지한 과거 인물들에게 과학이 만들어내는 힘은 그 어떤 마법보다 위력적이다.

왜 6세기 영국일까? 그리고 왜 미국 양키가 주인공일까? 이 설정은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계급과 관습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세계 속에서 그 시대 최고 민주국가였던 미국인을 등장시킴으로서 두 체제의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6세기 속에서 19세기의 사회와 문화를 위한 혁명을 꿈꾸기 위해서다. 주인공이 이를 위해 만든 조직과 사람들이 이야기 곳곳에 등장하여 재미난 에피소드를 만드는데 그와 동시에 시대의 함정에서 결코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등장시켜 굳어진 사고 체계를 바꾸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말하고 있다. 지금 우리사회도 과거의 계급관이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풍자와 탁월한 상상력과 유머와 날카로운 비판이 담겨 있지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역시 재미다. 현대의 인물이 과거로 가서 무용담을 펼치는 그 과정 한 편 한 편이 멋진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과거를 비판하고 풍자적으로 풀어내는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바로 이런 과정과 재미가 책에서 눈을 떼기 힘들게 만든다. 재미난 캐릭터와 시대의 충돌이 만들어내는 불협화음이 멋진 장면들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가끔 의아한 생각이 들게 하는 장면도 나오지만 보스를 통해 들려오는 수많은 이야기들은 그 상황에 맞게 혹은 극적으로 펼쳐지면서 몰입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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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욘더 - Good-bye Yonder, 제4회 대한민국 뉴웨이브 문학상 수상작
김장환 지음 / 김영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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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사랑하는 아내를 암으로 잃는다. 그 상실감이 너무나도 거대해서 2년 간 술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다시 인터뷰어였던 자신의 길을 가게 되는데 한 통의 메일이 삶을 뒤흔든다. 그것은 죽었던 아내 이후에게서 온 것이다. 누가 이런 나쁜 장난을 하나 하고 위문을 품고 지우려고 한다. 아직도 그리움이 남아 있는 그다. 메일을 연다. 아내가 나온다. 그녀가 죽기 전 바이앤바이란 회사를 통해 자신을 기억을 남겨놓은 것이다. 이렇게 그는 다시 아내를 만나러 가게 된다. 현실의 세계가 아닌 아바타로 다시 태어난 그녀를 말이다.

이 설정을 읽다보면 단순한 사랑 이야기다. 아내의 죽음으로 괴로워하는 남편, 다시 가상세계에 나타난 아내. 이 둘의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낼 이야기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다. 하지만 작가는 단순하게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는다. 욘더라는 가상공간을 등장시켜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현실의 삶과 사후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거기에 현재 과학기술이 발전할 경우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그 사이사이에 널어놓으면서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 중 많은 수가 이미 언론을 통해 실현 가능성을 말한 것이고, 혹은 sf영화나 소설 등을 통해 이미 본 적이 있는 것들이다.

시간적 배경은 통일된 한국의 30년 뒤다. 유비쿼터스가 일상화된 사회다. 작가는 이 사회의 모습을 자세하게 그려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부분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을 통해 전체의 일부나마 알 수 있다. 특히 사람들이 칩을 신경에 박아넣고, 자신의 신체 일부를 기계로 대체하는 모습은 이미 십 수 년 전 sf영화나 애니 등에서 본 것이라 낯익은 풍경이다. 우범지역이 점점 확대되고 있는 것 같고, 만남은 실제 공간보다 사이버 공간을 더 선호한다. 장례는 더욱 간단한 절차를 통해 이루어지고, 추모도 사이버공간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렇게 사이버세계가 발전한 곳에서 인간들의 감성은 변함이 없다. 바로 이 변함없는 곳에서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주인공이 아내를 잃고 괴로워한다면 피처를 통해 만난 사람들도 모두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다. 사이버세상이 싫어 과거 기술로 돌아가 살다 화재로 아내와 아이들을 죽게 만들거나 태어난 자식을 잊지 못하는 엄마 등이 바로 그들이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이들이 죽은 사람을 추모하는 방식도 조금씩 바뀐다. 아픔은 변함이 없는데 말이다. 그 방식 중 하나가 죽은 사람의 기억을 사이버 공간에 올려놓고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그들을 사이버공간에서 현실처럼 움직이고 성장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놀라운 기술 덕분에 그들은 언제나 죽은 이들을 살아있는 것처럼 만날 수 있고, 아픔을 조금씩 치유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치유가 완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욘더라는 곳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가까운 미래의 사이버세계를 배경으로 결국 펼쳐지는 것은 사랑이야기다. 사랑, 그리움, 상실, 아픔, 외로움 등을 다루면서 행복이 무엇인지, 삶이 무엇인지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읽는 동안 과연 나라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욘더로 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던지게 한다. 다시 이것은 이승과 저승이라는 다른 두 세계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진다. 과연 그들을 만나기 위해 현실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아니면 죽음이 두려워 죽지 않는 것이 단순히 나의 두려움과 욕심 때문이 아닌지. 

욘더가 보여주는 천국의 모습은 우리가 상상하는 천국과 다르다. 주인공이 이후와 만나서 살아가는 동안 보여주는 영원한 삶의 정체는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후가 진정으로 바란 것을 말할 때 서로가 생각하는 천국이 결코 같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나에게 천국이 다른 사람에겐 지옥일 수도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생각하면 말이다. 욘더를 둘러싼 미스터리나 진행이 조금 작위적이고 너무 급하게 마무리한 듯한 느낌이 있지만 그 어떤 기술도 인간의 감성과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기는 아직 무리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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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사냥꾼을 위한 안내서>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 - 제2회 중앙 장편문학상 수상작
오수완 지음 / 뿔(웅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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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책>에 대한 이야기로 먼저 시선을 끈다. 그 앞에 시간과 공간에 대한 문장으로 문을 열지만 중요한 이야기의 시작은 알 모히드 바함의 <세계의 책>이다. 세계의 모든 책들이 결국 <세계의 책>의 주석서란 말로 사람을 현혹시킨다. 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이야기에 혹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책이길래 이런 표현을 할까 하고.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역사를 한 권의 책으로 만들려고 한 아랍 현자 이야기가 떠올랐다. 수 만 권의 책으로 역사를 기록했다가 왕이 더 간단히 줄여라는 말에 ‘사람은 태어나서 살다 죽는다’와 같은 간결한 문장으로 마무리했다는 이야기 말이다. 혹시 <세계의 책>도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품었지만 그 답은 알 수 없다.

이렇게 의문을 품게 만들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한다.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전직 책 사냥꾼 반디에게 어느 날 책 사냥꾼들의 중앙인 비밀조직 미도당의 총수로부터 한 권의 책을 찾아달라는 의뢰는 받는다. 그 책의 제목은 <베니의 모험>이다. 이 책은 책 사냥꾼들 사이에 전설인 <세계의 책>을 찾는 단서를 품고 있다. 하지만 그가 다시 책 사냥꾼의 길로 나선 것은 책에 대한 호기심도 있지만 그가 사랑했던 여자 소리의 안전을 위해서다. 이 부분은 은퇴한 고수나 킬러를 다시 현장으로 불러올 때 사용하는 전형적인 수법과 비슷하다. 그리고 펼쳐지는 반디의 활약은 잠시도 눈을 떼기 힘들 정도로 매력적인 설정으로 이어진다.

한 권의 책을 찾는 모험이라는 설정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 작가는 책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소설 속에 나오는 수많은 가상의 책들은 그런 점에서 아주 성공적이다. 분명히 가상의 책이라는 것을 알고 읽지만 그 요약된 내용에 나도 모르게 찾아서 읽고 싶은 마음이 불끈 생기기 때문이다. 뭐 이런 경험을 한두 번 한 것이 아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런 경험은 더 많아진다. 작가들이 풀어내는 책 속의 책 이야기가 알을 까고 까면서 호기심과 궁금점을 점점 고조시키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읽고나면 약간 허탈해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 충동을 좀처럼 억누르기는 쉽지 않다. 그 때문에 지출한 돈이 적지 않은데 지금도 멈춰지지 않고 있다. 

한 권의 책을 쫓는 설정이지만 그 속에 음모와 배반이 중첩적으로 펼쳐진다. 책을 쫓는 모험은 어느 순간 반전을 펼치는 미스터리와 같은 전개를 보여주고, 그 사이사이에 나오는 책에 관한 수많은 목록과 가정과 설명은 환상과 현실이 교차하면서 점점 사람을 매혹시킨다. 사실 이 소설의 진정한 매력은 바로 이런 환상과 현실이 교차하면서 만들어내는 책 이야기다. 반전과 배신은 사실 작위적인 부분이 너무 많아 약간의 반감을 사지만 책 이야기는 나의 한계를 넘어 충동과 호기심을 자극한다. 문득 모든 것을 집어치우고 나도 책 사냥꾼으로 나서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생긴다.

한 권의 책에서 시작하여 다음 책으로 이어지고 이를 쫓는 과정은 모험이자 현실에 대한 풍자이기도 하다. 방치된 공간에서 발견하는 책이나 문을 닫는 동네서점의 현실은 너무나도 낯익다. 한 해 동안 출판되는 수많은 책들이 독자들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폐지공장으로 사라지는 현실을 알기에 이 또한 가슴 아프다. 그러다가 한 사람의 서평에 의해 잊혀졌던 책이 관심을 받고 희귀본으로 변해 수집의 대상으로 변하는 현실을 보면 반가우면서도 아쉬움이 생긴다. 왜 그 당시에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했나 하고 말이다. 그리고 나중에 금서목록을 지정했다는 설정은 얼마 전 국방부의 금서 에피소드를 떠올려주고, 책을 태우는 행동은 <화씨 451>의 미래를 잠시나마 보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만들었다.

책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 책은 정말 매력 있다. 작가의 풍부한 책 지식과 상상력은 약간은 진부할 수 있는 설정에 활기를 불어넣어준다. 아마 요즘 유행하는 아이돌 가수 노래에 MR을 제거하듯이 책에 대한 풍부한 이야기를 제거한다면 정말 진부한 3류 모험소설이 나올 것 같다. 하지만 책 속에 나오는 수많은 책 이야기가 한 편의 멋진 환상소설로 변화시켰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책 사냥꾼으로 변신하고 싶은 마음이 아직도 변함없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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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보우의 성
와다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들녘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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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난 소설이다. 그 재미는 약간 엉뚱한 캐릭터에서 비롯한다. 많은 사람들 중에 역시 눈에 확 들어오는 인물은 노보우(얼간이)로 불리는 나리타 나가치카다. 사실 등장 비중을 따지면 그렇게 많지 않다. 오히려 그의 친구이자 멋진 무력을 뽐내는 마사키 단바노카미보다 적다. 하지만 그는 이 소설의 중심에서 멋지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특별히 어떤 일을 하지 않으면서 그 매력을 마구 품어낸다. 

때는 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천하통일을 눈앞에 둔 시기다. 사실 일본 역사를 잘 모르다보니 작가가 비교적 자세하게 이 시기의 역사를 설명해주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오랫동안 읽어온 일본소설 덕분에 귀에 익은 이름들이 나오지만 역시 낯설다. 그래서인지 초반 부분은 진도가 더디게 나갔다. 그 당시 정세와 힘의 균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비슷하고 긴 이름이 금방 익숙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본격적인 전쟁 이야기로 들어가게 되면 바뀐다. 어느 순간 마지막 장을 펼치게 되기 때문이다.

일본 역사에 대해 잘 몰라도 사실 이 소설을 즐기는데 무리는 없다. 단지 앞부분에 나온 이야기가 집중력을 뺏을 뿐이다. 하지만 덤으로 책 속에서도 그 당시 사람들이 원숭이라 부르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새로운 면을 보게 된다. 우리에게 단지 임진왜란의 당사자로 알려졌던 그 말이다. 오다 노부나가의 후계자로 일본을 통일한 그에 대해 단편적인 지식밖에 없었는데 이번 소설에서 그가 보여준 생각과 행동의 크기를 알 수 있었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아닌 에피소드 중심이지만 왜 그가 일본을 통일하게 되었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노보우의 성이라고 제목이 붙었지만 실제 성 이름은 오시 성이다. 군사라고 해봐야 천 명 조금 넘을 정도의 작은 성이다. 그 중 반은 도요토미와 싸우는 호조 가문을 지원하기 위해 떠난다. 나리타 가문 당주는 떠나기 전 가로들에게 미리 도요토미 측과 연락을 해서 항복 의사를 전했다고 한다. 적이 쳐들어오면 성문을 열고 항복만 하면 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사절로 온 마사이에의 오만에 찬 말과 행동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만든다. 바로 여기서부터 노보우의 매력이 발산되고 본격적인 재미가 생기기 시작한다.

노보우로 불리는 나가치카는 그 깊이를 제대로 파악하기 힘든 인물이다. 작가가 극적 요소를 집어넣어 더 부풀린 부분이 있겠지만 그는 사람들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단바를 비롯한 사무라이들이 마을에 내려가 농부를 징발할 때 처음에 거부하다가도 노보우의 이름에 고개를 끄덕이는 장면은 개인적으로 가슴이 울컥했다. 소설 앞부분에 그가 친절을 베풀어 농사를 도왔다가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잘 보여줬기에 특히 그랬다. 물론 그 상황이 그를 미워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아니 그 속에 담겨 있는 깊이 있는 감정의 교류가 오히려 잘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그는 마을 사람들과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고 있다. 이 힘은 극적 장면을 연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역사 소설이나 전쟁을 다룬 소설에서 무력이 지닌 매력을 보여주는 인물은 역시 단바다. 그가 보여준 힘은 적에게 공포로 다가간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이성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창을 쥐면 무서운 무사로 변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나가치카를 볼 때 그 깊이와 넓이를 모르겠다고 말한다. 너무 가까이 있다 보니 그런 모양이다. 반면에 노보우와 싸웠던 수장 미쓰나리는 도요토미 같은 천하인을 옆에서 보면서 안목을 키워왔기 때문인지 그의 진면목을 잘 파악한다. 이런 설정과 전개는 현재와 다른 그 시대 전투의 낭만성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참혹하고 잔혹한 전쟁 속에 조금 드러나는 낭만성 말이다.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앍고 읽었기 때문인지 과연 노보우 역을 어떻게 해석했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마을 사람들이 노보우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어떤 식으로 영상으로 표현했을지, 그것이 잘 드러났는지 궁금하다. 사실 감정을 울컥하게 만드는 장면들이 몇 나오는데 나 자신의 것과 어느 부분에서 맞을지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픽 작업으로 웅장하고 멋진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 점점 쉬워지는 요즘 사람의 감정을 제대로 담아내는 것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가 과연 얼마나 잘 노보우와 주변 사람들의 감정 교류를 표현했을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원작이 주는 재미와 상상력이 이런 호기심과 기대를 더욱 부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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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도덕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진환.이수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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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책 중 한 권이 바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였다. 처음에 이 책을 읽기 전에 많이 주저했다. 어려울 것이란 생각과 보수적인 내용으로 진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선입견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개념적으로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의문들을 해소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일독을 권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대박날 것으로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연말에 많은 매체에서 이 책과 함께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같이 다루었다. 그러면서 그들이 말한 내용은 현재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과 왜 이런 책이 많은 지식인들 사이에 화두가 되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사실 나 자신도 결코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닌 이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될 것으로 생각 못했고, 주변에서 그렇게 많은 관심을 가질 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것은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이 책이 번역되어 나왔을 때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다. 제목부터 비슷했고, 전작의 인기에 편승한 졸속 번역의 후속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런데 먼저 읽은 독자들의 평을 보면서 이런 생각은 달아났다. 다만 전작과 달리 어렵다는 말이 많아 고민이 되었다. 특히 파트2의 내용이 어렵고 난해하다는 글이 많아 긴장도 많이 했다. 이런 고민과 긴장감을 가지고 펼쳐든 책은 역시 쉽지 않았다. 파트1이 현실적 문제를 다루면서 쉽게 다가가게 했다면 파트2는 이론과 논쟁 등으로 대충 읽기를 전혀 용납하지 않았다. 덕분에 진도는 더디게 나갔고, 문장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기도 했다. 

모두 3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파트1은 경제, 사회, 교육, 종교, 정치적 도덕의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 이야기를 풀어낸다. 하나의 현실적인 사안을 가지고 도덕적 현안을 다루는데 이것들이 오랜 세월동안 논쟁의 대상이었던 것들이다. 그래서인지 고개를 끄덕이고, 우리의 현실에 대입하려는 노력을 자주하게 된다. “대중에게 비치는 이미지를 개선하는 일에 많은 돈을 쓰는 국가기관들은 자신의 본래 임무를 곧잘 망각한다.”(41쪽)는 문장은 현 정부와 서울시의 과거와 현재가 그대로 겹쳐보이게 만들었다. 이것은 바로 밑의 “국민은 고객이 아니다.”란 문장으로 정치와 사업의 차이를 표현한다.

파트2에 오게 되면 머리에 쥐가 나기 시작한다. 저자의 전공인 롤스의 <정의론>을 바탕으로 도덕적 가치의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정의와 논쟁은 잠시만 집중력을 놓치면 엉뚱한 길로 빠지게 만든다. 솔직히 고백해서 자주 엉뚱한 길로 빠졌고, 제대로 이 책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삶에서 그렇듯 철학에서도 새로운 신념은 머지않아 낡은 통설이 되기 마련이다”(162쪽)란 문장에서 왜 당연한 듯 보이는 이론들을 왜 다시 분석해서 해석해야 하는지 그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유명 철학자들의 명단에서 미국 철학자의 이름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고 말한다. 이 말에 놀라게 되는데 조금만 생각해도 고개들 끄덕이게 된다.

파트3은 자유와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 모두를 위한 경제정책이 무엇인지 묻고, 시장중심주의가 시민의식을 어떻게 왜곡하는지 보여주고, 앞으로 시민의식이 회복하기 위한 과제가 말한다. 그 후 개인주의를 넘어 공동체로 나아갈 것을 요구한다. 이 부분은 어느 정도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도 다루고 주장했던 부분이다. 특히 “최근 자유주의는 공동선의 비전을 제시하는 과제에 실패해 비틀거렸고, 이는 보수주의자들에게 미국 정치의 가장 잠재성 있는 자원을 양보하는 결과를 낳았다.”(318~319쪽)는 주장은 한국의 진보정당들도 각별히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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