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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시간 - 전 세계를 감동시킨 아론 랠스톤의 위대한 생존 실화
아론 랠스톤 지음, 이순영 옮김 / 한언출판사 / 2011년 1월
평점 :
127시간. 제목만 보아서는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책 소개를 보면 이 시간이 의미하는 바를 알게 된다. 그것은 저자가 오른팔이 돌에 깔린 채 협곡에 갇혀서 보내야 한 시간이다. 거의 6일에 가까운데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직접 돌에 깔린 팔을 절단한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광경이다. 하지만 이 책 속에 담긴 이야기는 끔찍함과는 거리가 있다. 갇히고 절단을 한 후 무사히(?) 돌아온 결과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오히려 갇힌 후 그 극한의 상황을 대처하는 과정과 자신의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는 순간들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차분함과 열정은 냉정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아론은 열정적이고 행동적인 삶을 산다. 어릴 때 그는 겁이 많았다. 스키를 타기 전만해도 그랬다. 하지만 스키를 타고 난 후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는 자신을 보면서 그는 바뀌었다. 새로운 삶이 그 앞에 펼쳐진 것이다. 이 변화는 그를 현실에 편안하게 안주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좋은 직장에 취직한 후에도 그의 삶은 높은 산과 협곡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결국엔 그 직장도 그만두었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다. 대단하다. 경제적인 안정과 부족은 있을지 모르지만 좀더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그 삶의 도중에 사고를 당했고, 그 사고 이후로도 그 삶은 계속되고 있다.
미국 유타주의 말발굽 협곡으로 그는 휴가를 간다. 협곡에 있는 암각화 사진을 찍고, 그곳을 둘러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이 순간만 해도 그냥 보통의 협곡 경험담 정도다. 그 길을 가다 여자들도 만나고, 협곡을 오르내린다. 콩다방이나 영화관 예고편에서 본 암벽 사이를 미끄러져 물에 풍덩 빠지는 장면도 없다. 그냥 평범한 일정이다. 하지만 갑자기 변한다. 그가 떨어진 돌덩이와 협곡 벽 사이 오른 손이 낀 것이다. 이때만 해도 그냥 재수 없는 일 정도다. 그런데 손이 빠지지 않는다. 협곡 사이에 몸을 지탱하면서 손을 빼야만 한다. 쉽지 않다. 이 사고로 그는 127시간 동안 협곡 사이에서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책 구성은 그가 협곡 사이에 낀 하루를 보여주면서 어떻게 이 난관을 돌파할지 고민하고, 그 사이사이에 과거로 옮겨가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현재가 생존을 위한 치열한 투쟁이라면 과거는 살아온 발자취다. 움직이지도 못하는 곳에서 보내는 긴 하루라는 시간이 그에게 삶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일상에 빠져 사는 사람들이라면 하기 쉽지 않은 시간이 생긴 것이다. 그 중 가슴에 와 닿는 것은 “행동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것”(156쪽)에서“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생각이 옮겨간 것이다. 위험을 즐기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성향일 뿐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런데 이 깨달음이 그가 빠진 위험을 구해줄 수는 없다.
협곡 사이에 낀 그가 생존을 위해 가진 도구나 식량이 너무 부족하다. 로프, 칼, 비디오카메라, 500밀리 물, 기타 몇 가지 소품만 있다. 하루 만에 탈출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며칠이 걸릴지 모른다. 그가 간 곳을 사람들이 잘 모르는 상황에서 실종 신고가 언제 들어갈지도 모르고, 어디서 그를 찾을지도 모른다. 최대한 길게 살아남아야만 구조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런 현실 속에서 그의 이성은 경험을 바탕으로 빠르게 돌아간다. 특히 물에 관해서는 더욱 빠르다. 실종 신고와 구조까지 머릿속에서 계산한다. 하지만 너무 부족하다. 결국 자신의 소변을 받아 마실 지경에 이른다. 거기에 허공에 자신을 지탱할 방법을 강구하고, 팔을 빼기위한 방법을 계속 시도한다. 첫날부터 팔을 잘라야 한다는 인식을 가장 먼저 하지만.
극한 상황에 빠진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인 팔을 자르는 것도 그가 가진 조잡한 도구로 하기 쉽지 않다. 실제 그가 어떻게 팔을 절단했는지 묘사한 장면을 읽으면서 그 섬뜩함과 대담함과 용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피부 조직이 완전히 살아있는 팔과는 다르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 힘줄과 신경과 뼈가 남아있다. 읽으면서 나의 신경을 끊임없이 자극했는데 나 자신이 그 아픔의 일부를 느끼는 것 같았다. 다행히 괴사한 조직 덕분에 그가 과다출혈로 바로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보다 더 대단한 것은 한 팔로 협곡을 내려가고, 계속해서 생존을 위해 움직였다는 것이다.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만날 때까지. 헬기로 병원에 옮겨져서도 그는 정신을 잃지 않았는데 정말 놀랍다. 몸의 화학변화가 그런 상황을 이끌어내었는지 모르지만 이성과 용기와 결단력과 실천력이 없었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그의 대단함은 그 상황을 헤치고 나온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 후에도 그는 계속해서 산을 오르고 스키를 탄다. 오른 팔을 자른 후 더 빠르게 산을 탄 것을 두고 두 팔을 자르면 더 빠르겠다고 농담을 할 정도다. 자신이 세운 목표를 향해 신체의 조그마한 불리함을 딛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간다. 그가 겪은 127시간 속에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했다. 특히 다가오지 않을지도 모를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은 힘 빠지게 하고 포기를 생각하게 만들 정도다. 하지만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미래가 현재가 되고 과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