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행관람차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7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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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권의 책 <고백>으로 작년 한국을 뒤흔들었다. 그런데 한국보다 일본이 더한 모양이다. 300만 부라는 어마어마한 판매고를 올렸다니 말이다. 이 작품에 대한 감흥이 아직 남아 있다. 그리고 이번 작품이 나오기 전 다른 작품이 몇 권 더 번역 출간되었는데 <고백>을 넘지 못한다는 평이 대세였다. 그래서인지 사놓고 읽지 않은 책도 있다. 이런 걱정을 뒤로 하고 이 책을 선택한 것은 회사 직원 중 한 명이 책을 사서 읽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괜한 호승심이랄까. 그리고 조금은 무거운 책 읽기에 지친 나에게 주는 조그마한 선물이기도 하다.

피곤한 몸 상태와 멍한 정신에도 불구하고 잘 읽혔다. 역시 전작보다 뛰어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마 앞으로 <고백>을 뛰어넘는다는 느낌을 주는 작품을 만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사전에 머릿속에서 그런 가능성을 지워놓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작품과 비교하게 된다. 좀더 냉정하게 판단을 해야 하는데 아직 그 영향력 아래 놓여 있는 모양이다. 뭐 책을 잘 읽지 않는 동료에게 <고백>이 내가 빌려준 책 중 최고였다는 평을 얻었을 정도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작품도 만만치 않은 재미와 무게로 다가온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말과 함께.

구성은 세 집안의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다. 엔도 가족, 다카하시 가족, 고지마 사토코 순이다. 이 반복을 통해 각각의 집안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노출시킨다. 엔도 가족의 문제는 딸 아야카다. 아야카의 문제는 부모에게 히스테리를 끊임없이 부린다는 것이다. 부자 동네로 이사 오고 사립중학교 입시에 실패한 후부터 히스테리는 시작되었다. 역자의 말처럼 그녀의 행동을 보면 정말 다리를 똑 부러트리고 싶을 정도다. 청소년기의 일시적인 반항이나 히스테리로 분류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그 정도가 심하다. 그녀의 심리 깊은 곳으로 다가가면 그녀가 느끼는 불안감이 느껴지지만 말이다.

다카하시 가족은 남들이 볼 때 평온하고 멋지고 화목하다. 그런데 진짜 무서운 일이 벌어진 곳은 바로 이 집이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죽인 것이다. 큰 아들은 의대에 다니고, 둘째 딸은 사립고등학교에 들어가 대학까지 걱정 없다. 막내아들은 뛰어난 외모에 사립중학교에 다니며 농구도 잘한다. 아무 걱정도 없을 것 같은데 사건이 발생했다. 보통의 작가라면 왜 이런 사건이 벌어졌는지 깊숙하게 파고들었을 텐데 미나토 가나에는 다른 방식을 택한다. 단순히 살인사건에 집중하기보다 두 집안 사람들에게 더 초점을 맞춘다. 이 방식을 통해 현대 가족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노출시키고,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만든다. 어떻게 보면 강렬함이 부족할지 모르지만 사고와 인식의 폭과 깊이를 더 넓혔다.

한 가족이 삐걱될 때 그것을 바로 잡기는 쉽지 않다. 교과서적인 방법을 통해, 다른 사람의 조언을 통하면 쉬울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아야카의 고민과 불안은 자신의 의지를 넘어선다. 그녀의 히스테리에 엄마인 마유미가 잠시 정신을 놓을 정도로까지 발전한 것은 수동적으로 받기만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남편 게이스케의 비겁한 도망은 그것을 더욱 부채질한다. 이 가정은 현대 핵가족이 지닌 문제와 입시경쟁과 왕따와 추악한 인터넷 댓글 같은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자기 안에 쌓인 스트레스를 남탓으로 돌리고, 집안과 밖의 삶을 분리시켜 그 정도를 더 심화시킨다.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순간적인 폭발은 다른 사람의 제지가 없다면 다카하시 가족 같은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 이성의 벽은 언제나 감정의 파도에 너무 쉽게 무너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다카하시 가족의 세 남매는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남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런데 이 사건을 통해 다른 시선을 받게 되었다. 언제나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집안 식구들 모두를 매도하는 경향이 있는데 볼 때마다 안타깝다. 특히 이번처럼 가족 내 살인인 경우라면 더욱 더. 그리고 왜 어머니가 아버지를 죽였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혹시 다른 범인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반전을 기대한다. 하지만 없다. 작가가 말하고자하는 것이 누가 범인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각각의 가족 구성원들의 이야기에 집중하면서 숨겨진 속내를 드러내려고 한다. 이 속내가 밖으로 드러나면서 왜라는 이유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엔도 가족에게도 일어날 수 있었던 그런 일이다.

좋은 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것을 실패한 삶으로 인식하고, 좋은 동네에서 그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대화를 통한 소통보다 일방적인 감정의 전달만이 이 소설 속에 넘쳐난다. 하나의 꿈을 이룬 것에 만족하지만 다른 문제가 생길 때 참기만 하고, 직접 부딪혀 해결하기보다 도망가기를 더 선호한다. 자꾸 자신을 남과 비교하고, 자신의 영역만 고수하면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안으로만 파고든다. 삶에 여유는 사라지고 하루하루가 위태롭다. 이 두 가족과 한 명의 할머니를 통해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문제임을 깨닫는다. 사는 곳과 다니는 학교와 직장으로 사람을 구분하고 평가하고 만나는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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