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의 미궁호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6
야자키 아리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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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돼지 씨 귀엽다. 사랑스럽다. 처음엔 단순히 하나의 별명인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다. “손끝과 발끝에 귓속과 똑같은 진분홍색 헝겊을 댔고, 꼬리는 매듭을 지었다.”는 묘사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돼지 인형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단순히 조그마한 돼지 인형의 모습만 가진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보인다. 이런 그의 모습은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어떤 사람에게는 환각처럼, 또 다른 사람에겐 무시무시한 괴물처럼, 아니면 그냥 돼지인형으로.

각각 독립적인 이야기지만 다섯 편의 이야기가 하나로 이어져있다. 봄에서 시작하여 한 계절이 돈 후 다시 봄에서 마무리된다. 다시 온 봄 이야기에서 앞에 나온 이야기들이 하나씩 정리되고, 고민이나 갈등이 해결된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첫 이야기에 나온 셰익스피어의 <오셀로> 연극을 통해 각각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풀어놓으면서 웃고 울게 만든다는 점이다. 거기에 악당 이아고 역을 귀여운 돼지돼지 씨가 맡았다는 점은 뭔가 섬뜩한 분위기를 제공한다. 귀엽고 순진한 표정 뒤에 숨겨진 잔혹하고 무시무시한 계략이 이것을 더 부채질한다. 

실제 개별적인 이야기로 읽을 수 있는 것은 여름부터 겨울까지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은 처음엔 이야기의 문을 열고, 다음 봄에 겨울동안 얼어붙어 있던 관계들이 녹으면서 새롭게 되살아난다. 그 사이에 있는 세 계절은 한 쌍의 연인이 겪는 한여름 밤의 꿈같은 시간과 오랫동안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있던 부녀 사이를 떨어지는 낙엽처럼 보여주고, 마지막 겨울은 호러작가를 등장시켜 자신이 만든 허상에 매몰되면서 일어나는 으스스한 에피소드를 다룬다. 이 세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돼지돼지 씨는 그 어떤 특별한 능력을 보여주지 않는데 그를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따라 각각 다르게 다가온다. 만약에 지금 내가 돼지돼지 씨를 호텔에서 본다면 어떤 반응을 할까 생각해본다. 

각 단편들이 모두 따스한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한 작품만 으스스하다. 겨울 이야기를 다룬 표제작인 <앨리스의 미궁호텔>이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단편 다음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으스스하다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사실 독자 입장에서는 전혀 으스스하지 않다. 오히려 코믹하다. 단지 화자로 나온 호러 작가 구마노이의 시선과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다. 돼지돼지 씨의 정체를 알고 있는 독자 입장에서 구마노이의 이런 착각이 허둥지둥하고 오버하는 것처럼 느껴지면서 색다른 재미를 준다. 오해와 공포로 인해 만들어진 허상이 힘을 발휘할 때 그는 두려워하지만 독자는 웃는다. 또 그가 두려워하면서도 돼지돼지 씨의 외모 때문에 좀처럼 강력하게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 것을 보면서 그가 느끼는 두 감정의 괴리감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책 뒷면을 보면 야마자키 돼지돼지 씨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40대 남자라지만 핑크빛 봉제인형의 외양을 가진 그를 그렇게 생각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예쁜 아내와 두 딸이 있다고 했는데 아직 그들을 만나지 못했다. 실제 이 작품이 시리즈 중간쯤에 위치한다고 하는데 다른 작품에서 그녀들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10년 이상 장수한 시리즈라고 하니 말이다. 그리고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을 하니 <크리스마스의 돼지 돼지>란 제목으로 번역된 책이 있다. 읽고 싶다. 올 겨울에 인연이 닿는다면 산타로 변신한 돼지돼지 씨의 이야기를 읽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돼지돼지 씨, 기분 좋은 재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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