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끝나는 날은 나도 홀가분하다.

그동안 발디딜 곳 없이 늘어놓은 딸아이 방을 보고도 마구 다그치지도 못했다. 오늘은 좀 치워줘도 별 말 없을꺼야^^

뒹굴어다니는 옷가지를 정리하고 책상위에 널려있는 책이며 프린트물 온갖 펜들을 정리한다.

시험 마지막 날이면 딸애 친구들이 올지도 모르는데 이렇게라도 대충 치워줘야 한다. 안그러면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잠깐만을 외치며 총알같이 방으로 튀어들어가 대충 치운다음에야 자기 방에 친구들을 들인다. 그 모습이 얼마나 웃긴지.

친구들도 익숙하다. 평소 학교에서의 모습도 다르지 않으니까.

 

엄마, 친구들 왔어....하고 들어오는데 오늘은 못 보던 아이가 보인다.

커다란 비닐 봉지를 들고오는 게 아무래도 우리집에서 뭘 해먹기로 한 모양.

꺼내놓은 걸 보니,

오징어, 새우, 밀가루, 부추, 깻잎, 버섯, 청양고추, 자두, 과자, 음료, 양파. 대충 이정도.

요리하기 좋아하는 **의 지시하에 야채를 다듬거나 씻거나 다진다.

평소에 예뻐라 하는 아이들이다. 가끔씩 우리집에 와서 떡볶이도 해 먹고 볶음밥도 해 먹고 쿠키도 만들던. 얼마나 잘하는지 칼질이 예사 솜씨가 아니다. 또 쿠키를 만들 때도 따로 계량하지도 않고 툭툭 털어넣는데 그 맛이 기가 막히다. 그래서 엄마가 음식 잘하냐고 물었더랬다. 역시....

그리고 또 역시....그래서 울 딸도 내 솜씨를 물려 받았나보다. 급 좌절이다.

청양 고추가 얼마나 매운지 콜록콜록. 다른 아이들은 칼질도 서툴고 야채를 다듬는 것도 처음이라 급기야 내가 나섰다.

다진 야채와 밀가루와 계란을 커다란 양푼에 넣으니 굉장한 양이 된다.

언제 다 부칠래....

거실 탁자 위에서 하겠단다.

울 딸은 젓가락만 들고 얼른 구워지기를 기다린다. 다른 몇몇 아이들도 후라이팬을 중심으로 둥글게 모여 앉아있다. 이쁜 것들.^^

드뎌, 짜짠~~

 

그렇게 먹더니 좀 있다가 보니 조용~ 다들 여기저기서 잔다. 쇼파에서 한 명, 책상 위에 엎드려 있는 아이, 바닥에 누워 자는 아이....

일주일간 시험보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겠지.

깰까봐 치우지도 못하고 나도 안방에서 나도 한 잠.

좀있으려니 두 아이가 먼저 간다고 인사. 그리고 또 좀 있으니 세 녀석이 웃으며 간다고 인사를 한다.

울딸은 언제 침대위로 올라갔는지 제 방에서 잔다.

 

부디 이 아이들이 이 여름 지치지 않게 끝까지 최선을 다하기를....

오늘 하루라도 셤끝났으니 홀가분하기를~

 

고3의 아이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늘 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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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2-07-06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엔박이에요^^
너그러우시다. 희망님 다시 봤어요.저는 누가 내 살림 만지는 거 싫어하는데,,,딱 질색이에요.
울 아들은 시험 끝나면 친구집에 놀러가 라면 끓어먹고 왔다고 해서 제가 뭐라고 했는데, 그 엄마가 좋아하겠냐고 그랬더니 엄마가 맞벌이라 집에 안 계시대요. 그래서 더 뭐라고 했다는.
난 음식 솜씨 제로잖아요.애아빠가 불쌍할 때가 있어요. 시모도 음식 솜씨 별로인데, 부인까지 그러니....^^

희망으로 2012-07-06 20:46   좋아요 0 | URL
애들이 무지 착하고 예뻐서 용서가 되요~
딸애 친구들도 조심해주고요, 어머니 냉장고 열어도 되요? 하고 묻고 꺼낼 거 있음 울 딸한테 시키구요. 정리를 안하고 깔끔하지 못하니까 창피하기는 하죠.
저도 살림엔 취미없어요. 어젯밤 딸애한테 엄마가 살림에 취미좀 붙여볼까 했더니, 그건 일이잖아! 하던데요^^
그러면서 요리에 취미가지래요.ㅋㅋ
전 맛은 떨어져도 사먹는 것 보다 건강하고 깨끗하다는 걸 강력이 주장합니다.

울보 2012-07-06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3,,
참 힘든 시간이지요,
그래도 이리 옆에서 챙겨주는 엄마가 있어서 얼마나 좋을까요,
사촌 오빠아들이 올해 고3인데 얼마전에 만났는데 그아이는 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더라구요 엄마 아빠는 오이농사며 농사를 지으시는데,,공부잘하는 아들이 집에 와도 밥도 제대로 못해주는것 같더라구요, 농사일에 바빠서,,
그래도 정말 공부잘하는 그녀석이 참 대견해 보였습니다,
춘고에서 전교3등이라면 얼마나 노력을 한것일까 철원정말 산골에서 고등학교에 와서 정말 열심히 노력했을 그아이를 보니 괜실히 내마음이 짠해지더라구요,,
그런데 이렇게 딸의 마음을 이해하고 챙겨주는 엄마가 있어서 따님은 참 좋겠어요,
저도 같은 마음으로 바랍니다, 고3학생들 모두가 올 여름 지치지 않고 잘 견디어주기를,,,

희망으로 2012-07-06 20:50   좋아요 0 | URL
울보 님 반갑습니다.^^
고3이라지만 그동안 공부에 올인했던 아이가 아닌지라 이제야 후회하더라구요. 저도 다그치지 않았고요. 그래서 스트레스 안주는데 고3되니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더라구요. 챙겨주는 건 하나도 없어요.
남의 애라도 정말 대견해요. 얼마나 노력했을까요. 내자식이든 남의 자식이든 짠한 고3이예요. 대한민국에서 고3으로 살기 정말 힘든 것 같아요.
염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