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달러의 기적 - 마케팅 천재 래리 라이트의 맥도날드 회생 스토리
래리 라이트 & 조안 키든 지음, 임지은 옮김 / 길벗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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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책은 원서의 제목대로 무너져가는 브랜드를 재생하는 전략에 관한 책이다.

이책이 대상으로 하는 맥도널드는 2000년대 초반 죽어가는 브랜드였다. 대외적으로 패스트푸드의 대명사인 맥도널드는 아동비만의 원인으로 지탄받고 있었다. 그 비난의 정도는 거의 담배회사에 대한 공격과 맞먹었다. 대내적으로 전략도 잘못되어 있었다. 패스트푸드 시장은 성숙기를 지나 포화상태였다. 성장이 멈춘 시장에서 맥도널드는 점포수를 늘리고 맥도널드 브랜드와는 관련성이 없는 브랜드들을 사들이는 전략으로 성장을 추구했다. 그러나 그 전략은 실패였다. 점포수가 느는 만큼 성장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기존 점포의 고객을 나눠먹는 방법일 뿐이라는 것이 드러났고 점포당 매출은 감소했다. 핵심부문과 무관한 확장은 거의 성공하지 못했다.

이책의 저자는 맥도널드가 안과 밖에서 무너져가는 시기에 브랜드를 회생시키는 전략을 담당해 성공시킨다. 그리고 이책은 그가 맥도널드라는 브랜드를 어떻게 회생시키기 위해 어떤 전략을 세웠고 어떻게 실행했는가에 관한 보고서이다.

저자는 우선 맥도널드의 비전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맥도널드의 창업자가 가지고 있던 비전은 단순한 것이었다. 합리적인 가격에 맛있고 질좋은 음식을 빠르게 제공하고 친절한 서비스와 쾌적하고 기분좋은 매장분위기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맥도널드의 창업자 레이 크룩의 비전은 이후 패스트 푸드 시장의 표준이 된다.

그러나 50여년이 지나면서 맥도널드의 시장은 일용품화(commodity)되었다는 것이다. 경쟁의 초점은 질이 아니라 가격이 되었다. 그 결과 맥도널드는 비용절감에 매진해왔다. 비용 마인드가 회사를 지배하면서 합리적인 가격은 싼 가격으로 타락했다. 그리고 맥도널드란 브랜드의 가치는 차별성이 없게 되었고 싸구려라는 이미지가 붙게 되었다.

브랜드의 가치=약속된 경험/비용

저자는 이 공식에 따라 브랜드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고객에게 브랜드의 가치는 그 브랜드가 약속하는 경험을 얻기 위해 들이는 비용으로 나눈 것이다. 그러나 맥도널드는 비용을 줄이는 것에만 초점을 맞춰 경험의 질을 떨어트려왔다는 것이다. 이책은 저자가 맥도널드에서 어떻게 경험의 질을 높였는가에 관한 책이다. 구체적으로 그 내용은 마케팅의 기초인 4P를 확장한 5P의 개선으로 요약될 수 있다. Product, Price, Place, Promotion에 People(직원)을 더한 것이다.

이상이 이책에서 기대할 수 있는 내용이다. 매력적인 내용이다. 그리고 저자는 그 내용을 맥도널드에만 한정하지 않는다. 자신의 전략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마케팅 교과서처럼 이책을 썼다. 다양한 케이스를 인용하면서 자신의 전략의 의미를 설명하고 그 전략이 맥도널드에서 어떻게 실행되었는가를 설명한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이다. 이책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보고서에 가깝다. 컨퍼런스에서 접할 수 있는 보고서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책은 매우 체계적이지만 그만큼 형식적이다. 저자가 어떤 전략을 가지고 있었는가는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전략이 어떻게 실행되었는가 하는 구체성은 이책에는 결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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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미러클 - 부를 찾아 떠난 아시아 국가들의 대서사시
마이클 슈만 지음, 김필규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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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제목인 미러클은 아시아의 경제 기적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그 기적의 당사자인 우리로선 너무나 많이 들어온 말이라 이제는 식상한 말에 불과하다. 수십년 동안 같은 말을 들으면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질리게 마련이다. 더군다나 기적을 이루었다는 우리 자신은 10여년동안 경제성장의 둔화와 양극화를 겪으면서 경제의 성장동력이 사라진 것은 아닌지 이렇게 이번 세기는 지나가는 것이 아닌지 두려움에 떨고 있으니 그 기적이라는 말은 외국인의 인사치례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적 부흥은 기적이란 말이 지나치지 않은 놀라운 이벤트였다. 2차대전 이후 막 식민지에서 벗어난 이 나라들이 지금과 같이 성장할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시아에는 경제성장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어떤 것도 없었다. 오히려 그런 여건은 아프리카가 더 많이 가지고 있었고 당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은 아프리카보다 못사는 절망의 땅일 뿐이었다. 그러나 한세기가 지난 지금 처지는 바뀌어 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것이 기적이라면 아시아의 드라마는 기적이었다.

이책의 저자는 어떻게 기적이 가능했는가란 질문으로 이책을 써내려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자는 그것은 사람의 기적이었다고 말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대륙인만큼 아시아라는 말로 불리는 대륙에는 다양한 나라들이 있고 그들이 경제성장의 방법론으로 택한 길 역시 다양했다.

일본의 국가주도형 성장모델(이책에선 아시아 모델이라 부른다)을 선택한 한국과 대만같은 나라들이 있는가 하면 외국자본에 나라를 개방하는 전략을 취한 싱가포르, 말레이지아 같은 나라도 있었고 영미식의 자유방임정책을 취한 홍콩, 국가의 과도한 간섭을 풀어버리는 것으로 성장괘도로 올라선 중국과 인도가 있었다.

아시아 국가들이 기적을 이룬 방법론은 하나가 아니었고 그들이 괘도에 오르기 시작한 시기도 달랐다. 그들의 공통점은 단지 그들이 기적을 이루는데 성공했다는 것 이외에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저자는 그들의 기적은 인간의 기적이었다고 말한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지긋지긋한 가난과 무기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지가 그들을 기적으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이책에서 아시아 모델이라 부르는 일본식 국가주도형 전략을 보자. 그 전략을 그대로 복사해 경제성장에 성공한 한국으로선 낯설지 않은 매우 친숙한 전략이다. 일본에서도 그랬고 한국에서도 그랬듯이 국가가 경제에 개입해 성장을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은 경제학에선 이단적인 사고방식이었다. 적어도 경제학의 주류가 만들어진 영국과 미국에서는 말이다.

일본과 한국에서 이단을 키운 뿌리는 민족주의였다. 일본의 예를 들어보자. 강제로 개항된 후 일본은 온 세상에 자신 빼고는 모두 적 뿐인 약육강식의 적자생존의 세계를 보았을 뿐이다. 그런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힘을 키워야 했다. 부국강병. 오직 돈과 총만이 자신을 지켜줄 수 있었다. 경제를 키우는 것은 생존의 수단이었다.

그리고 태평양전쟁에서 진 후 부국강병에서 강병은 불가능한 명제가 되었다. 그러나 일본이 보는 세계는 여전히 전쟁전과 별 다를 것이 없는 약육강식의 강자존의 세상이었다. 이 세계에서도 생존은 힘에 달린 문제였다.

한국에서도 별 다를 것은 없었다. 힘이 없어 식민지가 되엇고 힘이 없어 남의 손에 나라가 두쪽이 났고 두쪽 난 동족이 싸워야 했으며 잿더미에서 굶주려야 했다. 지긋지긋한 단군 이래의 족쇄에서 벗어나려면 힘이 있어야 했다.

기적의 대열에 참여한 다른나라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택한 전략은 일본과 한국과는 달랐더라도 그들의 동기는 같았다.

이책의 저자는 그들의 성공에서 공통점을 한가지로 요약한다. 세계화의 흐름에 거스르지 않고 흐름을 탔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성공하려면 당연한 말이 아닌가? 그러나 그들이 국가의 생존을 위해 경제에 목을 맬 당시 세계시장에 참여한다는 것은 이단아의 생각이었다. 당시 분위기를 대표하는 이론이 종속이론이다. 세계시장에 참여한다는 것은 다시 제국주의의 마수에 기어들어간다는 말이었고 그 마수에 벗어나는 길은 자립경제를 만드는 것이었다. 크게 보면 중국과 인도의 폐쇄적인 경제정책은 그런 이론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과 한국을 비롯한 수출주도형 전략으로 세계시장에 참여하는 전략을 택한 나라들의 성공은 종속이론을 폐기하는 증거가 되었다. 세계경제는 늦게 뛰어도 앞설 수 있는 경기장이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이상이 이책의 저자가 가지고 있는 이론적 프레임을 요약해 본 것이다. 그리 새로울 것은 없는 입장이다. 학창시절 개발론 수업에서 들었던 내용과 그리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이책의 장점은 어떤 새로운 이론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다.

 이책의 저자는 학자가 아니라 기자이다. 이책의 두번째 장은 한국에 관한 챕터이다. 그 챕터는 외환위기 당시 월스트리트 저널의 서울 주재기자였던 저자가 안기부 직원의 전화를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런 장면들처럼 아시아 각지를 기자로서 직접 발로 뛰어다녔던 저자는 이책의 상당부분을 자신이 직접 인터뷰한 내용을 기초로 써내려간다. 저자가 이책에서 쓰려는 것은 어떤 이론을 세우려는 것도 아니고 이론을 증명하려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일본에서 시작해 한국, 싱가포르, 홍콩, 대만,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중국, 인도의 경제성장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 당시 기적이 태어나던 순간으로 올라가 당시 그 기적을 시작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그 나라들의 기적이 어떻게 가능했던 가를 보여주려 한다.

이책은 얇은 책이 아니다. 두껍다. 그러나 이책이 대상으로 하는 나라의 수와 기간을 생각하면 오히려 이책의 분량은 한 없이 얇다. 그 분량에 저자가 보여주려는 것은 위에서 요약한 것과 같이 그 당시 기적을 만들었던 사람들이 어떻게 현실을 보았고 그 현실을 어떻게 바꾸려 했는가라는 인간의 드라마이다. 그리고 그런 드라마가 이책의 목적이라면 이책은 목적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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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강의
야오간밍 지음, 손성하 옮김 / 김영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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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her Mary comes to me speaking words of the wisdom 'let it be'"

비틀즈의 'Let it be'에 나오는 말이다. '그대로 놔둬라'로 해석할 수 있는 이 노래의 제목은 당시 베트남 전에 반대하는 말이었다. 힘으로 이치를 거스르지 말라는 말이다.

그러나 성모 마리아가 말해주었다는 그 지혜의 말은 노자가 출전이다. 노자가 말한 自然이란 말을 번역한 것이다.

Nature를 번역하기 위해 일본인들이 가져다 쓴 자연이란 말은 출전이 노자였다. 노자에서 그 의미는 nature가 아니라 말 그대로 '스스로 그러하다' 즉 있는 그대로의 이치란 말이며 노자의 근본개념인 道의 상태를 말한다.

'도에 관심있으십니까?'란 말을 길거리에서 너무 많이 들어 그런지 '도'란 말에 대한 우리의 이미지는 그리 좋지 않다.

그러나 노자가 말하는 도란 그렇게 거창한 것도 더더군다나 이상한 것도 아니다. 그가 말하는 도는 세상 돌아가는 이치(주자학의 용어로는 理)일 뿐이다. 이치를 거스르면 망하고 이치를 따르면 흥한다. 이치를 거스르지 않고 따르는 것을 노자는 無爲라 했다.

그러나 세상의 이치란 누구나 아는 것같으면서 모르는 것이다. 이치를 아는 것을 지혜라 한다. 지혜는 세상을 겪으면서 배우고 느끼고 행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혜는 노력으로 얻어지며 시간과 함게 얻어지는 것이다. 공자가 말하는 배움(學)의 대상은 특별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간을 보내면서 알게 되는 세상의 이치, 지혜를 말한다.

노자를 지혜의 책이라 한다. 그 지혜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것이지만 누구나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노력과 시간으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자의 지혜를 풀어서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책의 저자는 노자를 강의할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책의 구성은 특이하다. 이책은 노자에 대한 학술적이고 전문적인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이책에는 식생활, 건강, 성공, 연애, 결혼생활, 인간관계 등 자기계발서에 흔히 나오는 주제들이 다루어질 뿐이다. 실제 이책은 노자의 이름을 빌린 자기계발서라고도 할 수 있다. 이책의 서술방식도 노자의 문구를 해석한 다음 생활주변의 예나 중국의 역사에서 빌려온 고사들을 들어 그 문구의 뜻을 밝히는 형식이다. 전체적인 느낌은 노자를 빌린 자기계발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책은 노자에 대한 책이 맞다. 단지 저자는 사람이면 누구나 관심이 있는 주제들을 빌려 노자를 해설하는 것이다.

저자는 노자에 관한 권위자라 한다. 그러나 일반인을 대상으로한 방송강의 원고인 이책은 저자의 동료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자는 다른 세상사는 이치에 대해 평범한 이야기를 할 뿐이다. 저자의 말은 쉽다. 누구나 궁금해하고 누구나 자신의 생각이 있는 주제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쉽기 때문에 아무나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강단에서 하듯이 노자를 전문용어를 구사하면서 학자들만 알아듣게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몇년 학위과정을 밟고 평균의 재능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노자가 원래 말하려고 한 것처럼 세상사는 이치를 누구나 알아듣게 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노자를 오래동안 읽으면서 노자가 말한 의미를 삶의 시간에서 찾아내고 느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연륜의 문제이다.

개인적으로 이책에서 말하는 세상사는 이치는 그리 새롭게 다가오지 않았다. 왠만한 자기계발서면 다 다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저자가 삶의 구체적인 의미로 노자의 구절을 재해석하는 것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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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적 충동 - 인간의 비이성적 심리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조지 애커로프, 로버트 J. 쉴러 지음, 김태훈 옮김, 장보형 감수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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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과학계는 맑스주의의 가짜비급을 익히다 주화입마에 빠졌다." 어느 정치학자의 글에 나오는 말이다.

가짜비급이었는지 여부를 떠나 정치학자의 말대로 주화입마에 빠졌던 것은 사실이었다. 왜 그랬을까? 맑스주의의 저항할 수 없는 매력때문이었다.

다양한 분파가 있고 다양한 접근이 있기 때문에 뭉뜽그려 말할 수는 없지만 맑스주의의 기본논리는 '바보야 경제가 문제야'로 요약된다. 경제적 소유에 따른 계급이란 개념으로 사회의 모든 문제가 설명된다는 환원론 내지는 결정론이다.

오만잡다하고 복잡하기 이를 데없는 문제를 변수 하나로 설명이 가능하다니 이 아니 기쁠 수 없다. 문제는 세상일이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맑스주의의 한계는 바로 그 매력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치명적 유혹에 넘어간 한국의 사회과학계는 주화입마에 빠져 현실을 보는 눈이 멀어버렸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맑스주의가 속류 또는 부르조아들의 가짜 학문이라 부르며 증오해마지 않는 주류경제학 역시 마찬가지 논리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 'Economics as Religion'이란 제목의 책이 기억난다. 밀튼 프리드먼의 시카고 학파를 공격하는 이책은 주류경제학을 과학이 아니라 종교라 비판했다. 왜 그런지 이유를 알기 위해 번역되지도 않은 그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 '야성적 충동'이란 케인즈의 말을 제목으로 삼은 이책 역시 마찬가지 내용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은 사회과학의 여왕이다. 경제학은 학문으로서도 졸업생의 취직에서도 여왕의 자리를 굳히고 있다. 경제학이 그런 지위를 차지한 이유는 사람들이 바라마지 않는 돈에 관한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학이 학계에서도 여왕인 이유는 방법론에 있다.

고등학생 시절 경제학과를 갈까 생각하다 다른 과를 택했었다. 이유는 수학을 못했기 때문이다. 수학자보다 수학을 더 잘한다는 말을 듣는 경제학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경제학 논문을 보면 왠만한 수학지식으로는 이해는 고사하고 읽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러나 경제학이 원래 그랬던 것은 아니다.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경제학 논문은 다른 사회과학과 마찬가지로 '썰'로 승부하는 학문이었다. 그러나 한계효용이론과 함께 경제학이 수학화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한계효용이론은 경제학의 혁명이라 할 수 있었다. 한계효용이론과 함께 경제학이 수학화되면서 경제학은 인문학이 꿈에도 바라마지 않는 '과학'의 지위를 갖게 되었고 인간사회를 자연세계처럼 수학적으로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경제학의 수학화가 가능했던 것은 한계효용이론의 인간에 대한 가정 때문이다. 적어도 시장에서는 인간행위가 특정한 형식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시장에서 인간은 자신의 행위가 가져올 손익의 결과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인간은 최소한 시장에서 거래할 때의 인간은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손익의 결과에 따라 설명할 수 있다.

문제는 인간은 시장에서 조차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은 이기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아무리 이기적인 인간이라도 계산기처럼 손익관계만 생각하고 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아무리 경제학자라 해도 인간의 모든 동기가 수학으로 표현할 수 있는 손익계산만 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 시장에선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책의 저자들은 시장에서조차 인간은 손익계산의 기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새삼스러울 것 없지 않은가? 경제학에 대한 다른 사회과학자들의 공격은 항상 그런 전제를 깔고 있었고 경제학 내에서도 행동경제학은 그런 문제의식에서 태어난 접근법이다. 이미 번역된 행동경제학 서적만도 많고 많다. 그러면 이책을 읽을 가치가 있는가?

결론만 말한다면 가치가 있다. 이제까지 나온 행동경제학 서적들은 미시경제학의 영역을 건드렸다. 그러나 행동경제학이 그다지 신통한 설명력을 갖는다고 보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뭐 말은 맞겠지 그래서 뭔데(So what?)

이책은 바로 그 문제를 커버하려는 시도로서 미시경제학의 영역을 넘어 거시경제학으로 설명의 영역을 넓히려 한다. 그리고 저자들이 준거점으로 삼는 것은 거시경제학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케인즈이다.

케인즈 이래 거시경제학의 핵심주제는 경기순환이다. 대공황이라는 재앙에서 태어난 거시경제학은 왜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가 그리고 그 사이클의 진폭을 줄일 수 있는가에 집중해왔다.

경기순환을 일으키는 팩터는 다양하다. 그러나 경기순환을 GDP의 증감으로 생각해보면 변수를 2가지로 줄일 수 있다. (기업의) 투자와 소비이다. 투자와 소비가 늘어나면 경제가 팽창하고 반대면 경제는 수축하면서 사이클을 만든다. 대공황이 일어난 이후 왜 공황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설명으로 당시 경제학자들은 케인즈의 승수개념을 받아들였다(수수효과에 대해선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니 여기선 설명 생략).

그러나 이책의 저자들은 승수효과의 이론적 근거가 되는 케인즈의 다른 핵심개념은 버려졌다고 지적한다. 바로 이책의 제목인 야성적 충동이다.

야성적 충동이란 개념이 버려진 것은 그것이 경제학의 합리성 개념과 대치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저자들은 케인즈의 진정한 공헌은 승수효과보다 인간의 경제적 행위에 비합리적인 동기가 있다는 것을, 그 동기를 경제학의 설명 프레임에 넣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들은 이책에서 케인즈가 원래 의도했던 대로 야성적 충동이란 개념을 사용해 어떻게 경제를, 특히 거시경제를 설명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려 한다.

경기순환의 예를 들어보자. 호황기에는 투자와 소비가 늘어난다. 투자를 하면 투자 원금을 회수하는 이상으로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며 미래에 더 많은 소득을 올릴 것 또는 적어도 지금처럼 소득을 올릴 것이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에 소비 역시 늘어난다.

케인즈는 이것을 자신감이라 말한다. 특히 자산시장에서 자신감은 더 중요하다. 자산시장은 가격이 오를 수록 수요가 늘어나는 시장이다. 왜냐하면 미래에 가격이 더오를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에 자산을 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물경제이든 자산시장이든 사람들의 미래에 대한 기대 또는 자신감의 합리적 근거는 없다. 사람들은 막연히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경기가 반전되어 불황이 오면 자신감은 반대방향으로 움직여 실제 펀더멘틀 이상으로 스윙한다. 그런 갑작스런 과잉반응 역시 자신감의 비합리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이야기 역시 자신감을 강화하거나 약화하면서 경기의 진폭을 증폭한다. 닷컴버블이 한창일 때 있었던 뉴이코노미라는 이야기도 그런 것이며 한국인의 부동산 불패신화도 그런 것이다. 그런 이야기들은 사실 근거가 희박한 것이며 그런 이야기를 주고 받는 사람들 역시 근거를 충분히 따지지 않는다. 현실을 그대로 인식하기엔 인간의 능력은 부족하다.

그외에도 임금이나 가격이 결정되는 메커니즘에 대한 설명으로 공정성이란 비합리적 기준이 설명되며 도덕적 해이란 말로 널리 알려졌던 부패에 대한 설명, 그리고 프리드먼이 폐기했던 화폐착각이라는 현상에 대한 설명등이 이책에 등장한다.

이책은 그러한 비합리적인 심리를 근거로 경기순환, 중앙은행, 노동시장, 실업과 인플레, 저축률, 투자의 변동성, 자산시장 등을 설명하면서 주류경제학의 헛점을 어떻게 야성적 충동이란 개념으로 메울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이상이 이책에서 기대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이책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행동경제학의 거시경제학으로의 영역확장을 위한 시도이다. 그러한 시도로서 일단 이책은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책은 시도이다. 이책에서 완전한 설명, 가령 한권의 거시경제학 교과서에서 기대할 수 있는 내용을 바란다면 잘못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행동경제학에 관심이 있다면 그리고 그 접근법이 어떤 가능성이 있는가를 알고 싶다면 읽어볼 가치가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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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전쟁 2 - 금권천하 화폐전쟁 2
쑹훙빙 지음, 홍순도 옮김, 박한진 감수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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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전편을 보완하는 목적에서 쓰여졌다고 볼 수 있다. 전편에서 저자는 로스차일드가의 역사를 중심으로 세계금융 과두가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려 하는가라는 음모론을 보여주고 (사실 새로울 것은 없는 주장이다) 그들의 음모에 희생되지 않으려면 중국이 어떤 전략을 가져야 하는가를 말했다.

이책 역시 전편의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책은 저자가 서문에서  전편보다 10배는 정보량이 많아졌다고 말한다. 어떤 의미에서 10배라고 말하는지는 저자 본인만이 알겠지만 저자가 이책을 쓰기 위해 섭렵한 자료의 양이 10배라는 말로 생각된다. 사실 1권의 경우 재미는 있지만 분석의 깊이에서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저자는 그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많은 자료를 섭렵하고 이책을 쓴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의 의도는 어느 정도 이책에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책의 주장과 구성은 전편과 그리 달라진 것이 없다. 단지 1권에서 저자가 주장한 음모론에 근거가 되는 데이터들이 보다 충실해졌고 음모론 자체도 더 세련되어 진것이 다를 뿐이다.

우선 저자는 자신의 음모론의 주인공을 전편에서는 로스차일드가를 중심으로 그렸다. 그러나 이책에선 유럽에서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등장한 17개 금융가문들이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추적하고 그들간의 경쟁관계와 동맹관계를 자세하게 그리고 있다.

금융사를 주요가문을 중심으로 그리면서 그는 유럽에서 봉건제가 약화되고 자본주의가 확대되면서 어떻게 권력의 중심이 귀족에서 자본가들로 이동했는지 그리고 그 자본가 중에서도 금융가문들로 이동했는지를 추적한다.

저자가 그리는 권력의 이동은 강단에서 가르치는 경제사에서도 다루어지는 것이기에 1권에서처럼 어떤 억지해석이 매우 적게 나타난다. 그러면서도 시간가는 줄 모르게 소설책을 읽듯이 재미있게 써내려가는 필력은 여전하다. 경제사로 읽어도 꽤 쓸만한 부분이다.

그러나 저자가 금융가문의 역사를 추적하는 것은 그의 주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1권에선 로스차일드가만이 다루어졌지만 2권에서는 세계패권의 중심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동하면서 세계경제의 배후조정도 로스차일드가와 록펠러가로 양분되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1권에서처럼 금융과두들이  거대한 부를 형성한 방법을 전쟁 채권과 금융시장 조작을 통해 자산거품을 만들고 거품을 터트려 부를 얻는 방법이었다고 말한다.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19세기 유럽사에서 금융과두들이 정치와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공황 이후 금융자본에 대한 적대감이 높아지면서 역사의 전면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저자는 그들은 여전히 아니 이전보다 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재단에 재산을 돌려놓고 비과세되는 재산을 투자해 얼굴없는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재단에 기부되어 비과세 재산이 미국의 부에서 2/3에 육박하며 이들 재단을 통해 미국의 주요기업들을 지배한다고 말한다.

록펠러가와 로스차일드가는 그런 식으로 여전히 세계를 막후에서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목표는 1권에서 주장한 것처럼 세계화폐와 세계정부를 세워 자신들의 지배력을 완벽하게 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는 세계화폐로 가는 전략에 따라 의도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화폐발행권은 주권의 핵심이다. 화폐를 발행한다는 것은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두 정책이 없다면 국가의 주권은 빈껍데기가 된다.

당연히 화폐발행권을 내놓으려는 국가는 없다. 그러나 위기 앞에선 그런 주장이 먹혀들어간다는 것이다.

FRB가 만들어진 것은 1907년 금융위기 때문이었고 금본위제가 무너진 것은 대공황 때문이었다. 이대로 안된다는 위기의식을 만들 수 있는 사건을 만든다면 세계화폐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밀어붙일 근거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번 위기는 미국의 달러화를 붕괴시키려는 음모라는 것이다. 1959년 이후 달러화의 유통량은 25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달러화의 가치는 계속 낮아진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민간과 공공) 채무는 GDP의 3배가 넘는다.

저자는 역사적으로 제국이 붕괴한 것은 화폐가치의 붕괴와 함께였다고 지적한다.

제국의 지배는 생산력의 증대하면서 부수적으로 오는 것이며 그 생산력의 청구권인 화폐의 유통범위가 넓어지면서 제국의 지배력이 강화되고 판도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국의 지배는 비용이 드는 사업이고 통치기구의 성격상 그 비용은 자동적으로 늘어나지 줄어들지 않는다. 결국 제국의 생산력 이상으로 제국의 지출이 늘어날 때 제국은 돈을 찍어내려는 유혹에 빠지고 화폐가 남발되면서 화폐의 가치가 떨어지고 화폐의 신용이 무너지면서 경제의 목을 졸라 제국의 붕괴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로마제국과 송나라, 금나라, 원나라, 명나라의 멸망이 모두 화폐가치의 붕괴가 원인이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저자는 지금 미국이 과거의 제국들과 같은 길을 가고 있다고 말한다. 달러가 기축통화에서 밀려날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 시기가 언제냐가 문제이다. 저자는 그 시점으로 2024년을 든다. 달러화가 기축통화에서 밀려날 것이라는 것은 음모론이 아니라 함당한 예측이다. 그러나 2024년이란 구체적 시점을 지적하는 것은 저자의 음모론이다.

왜 그때인가에 대해 저자가 드는 논거는 1권에서처럼 주장에 그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그 논리를 여기서 요약하는 것은 지나치게 리뷰가 길어지므로 생략하겠다.

이상이 이책의 내용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책은 전편보다 질이 월등히 좋아졌다. 전편에서처럼 무리하게 사실을 해석해 (재미있기는 하지만) 억지를 부리는 경우는 상당히 줄어들었다. 그리고 억지스럽게 들리더라도 저자가 드는 근거는 나름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장족의 발전이다.

그러나 여전히 1권 리뷰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책은 조심해서 읽어야 한다. 1권에서 처럼 이책 역시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그 해석은 저자의 음모론이란 프리즘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고 저자의 프리즘을 이해하면서 나름대로 소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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