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쇼크 - 스태그플레이션의 대공습에 대비하라!
비얼리.샹용이 지음, 차혜정 옮김 / 프롬북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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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The Great Stagflation이란 원제를 가진 이책의 제목이 달러 쇼크라 달린 것은 이유가 있다.

저자들은 이번 금융위기로 풀린 돈들이 불황 속에 인플레라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그것도 거대한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나타날 것이라 생각한다.

저자들은 자신들의 논거를 역사에서 찾는다. 이번에 돈을 풀어 위기를 잠재우려는 것이 역사적으로 인플레가 유발된 원인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인플레란 화폐현상일 뿐이라는 프리드먼의 입장을 역사적으로 검증하는데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한다.

인플레의 역사는 돈의 역사와 같았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플라톤이 주석으로 만든 싸구려 화폐를 발행해 재정을 감당할 것을 주장했던 때까지 올라간다. 정부가 화폐주조권을 장악한 이래 화폐의 역사는 인플레의 역사였다는 것이다.

불황인데도 물가가 오르던 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의 원인을 당시 정치가들은 탐욕스런 기업가, 강성인 노조, 돈독이 오른 중동정부들에 돌렸다. 그러나 프리드먼은 그런 식으로 오르는 물가는 전체 물가수준을 올릴 수 없다고 반박하면서 당시의 스태그플레이션은 정부가 돈을 마구 찍어 풀어댔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인플레는 화폐현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저자들은 프리드먼의 논지를 역사적으로 검증해본다. 저자들은 그리스, 로마, 송, 금, 원, 명 그리고 중화민국, 스페인 제국, 미국, 그리고 세계경제의 황금기였던 50-60년대 미국과 유럽의 인플레 역사를 개관하면서 프리드먼의 단순한 논지가 모든 인플레 현상을 설명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플레의 역사를 개관한 후 저자들은 이번의 금융위기로 풀린 막대한 돈이 70년대와 마찬가지로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나타날 것이라 전망하는 것으로 이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상이 이책의 내용이다. 사실 별스러울 것도 없다. 게다가  경제전문가들을 설득할 수 있을 정도로 이책의 논의가 수준이 높은 것도 아니며 저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한 데이터를 동원해 독자를 압도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저자들은 역사적으로 이러이러했었다. 지금이 경제사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라는 정황증거를 제시하고 있는데 불과하다.

물론 저자들이 스태그플레이션이 올 것이라는 전망이 비현실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넘치도록 현실적이다. 그러나 저자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이책의 논증방식은 그리 설득력이 충분하지 않다.

그러나 이책은 전문가를 위한 책이 아니다. 일반인을 위해 쓰여진 이책에서 전문가들을 설득하기 위한 데이터 동원과 수식을 쏟아붙는 논증방식이 동원된다면 경제전공이 아닌 사람은 읽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오히려 보통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논증으로는 저자들이 하듯이 역사적 정황증거를 제시하는 방법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그리고 저자들의 결론을 떠나서 이책은 경제사로 읽어도 꽤 쓸만하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미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 가령 16세기 유럽의 가격혁명이나 18세기 프랑스의 미시시피 버블같은 경우 이책의 설명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중국의 역대왕조의 인플레와 중화민국의 결정적인 패망원인으로 인플레를 설명하는 부분은 모르던 부분이었고 배운 것도 많았다.

이책의 장점은 제목과는 오히려 저자들이 논증의 수단으로 쓰고 있는 역사적 사실들이 더 유용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경제적 지식이 별로 없어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쓰여졌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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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최후의 20년 - 유랑하는 군자에 대하여
왕건문 지음, 이재훈.은미영 옮김, 김갑수 감수 / 글항아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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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코뿔소도 호랑이도 아닌데 왜 광야를 떠돌아야 합니까?"

광 땅에 포위되어 굶주릴 때 자로의 울부짓음이었다.

학이시습지로 시작하는 논어의 첫장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해 하지 않으니 우리는 군자다!'라는 구절로 끝난다.

공자와 그의 제자들은 천하에 도가 있기를 바랐다. 그들이 바랐던 도는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왕은 왕다울 수 있고 신하는 신하다울 수 있으며 아버지는 아버지다울 수 있고 아들은 아들다울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이 무엇이 특별하며 그런 세상을 바라는 것이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상식이 통하는 세상. 공자의 '소박한' 꿈이었다. 그리고 공자의 꿈은 과거에 있었던 현실이었다. 공자가 述而不作이라 한 것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이 주공이 다스리던 천하를 다시 세우려는 것일 뿐이기에 새로운 무엇을 말하는 것이 하려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자의 시절은 그에게 가혹했다. 그의 소박한 꿈은 꿈일 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하려는 것은 세상을 대단한 유토피아로 바꾸려는 것도 아니고 우리 자신의 영달을 위한 것도 아닌 그저 누구나 상식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은 세상으로 만들려는 뿐인데 왜 우리는 이렇게 알아주는 이 하나 없이 천하를 떠돌아야 되는가라고 자로는 울부짓은 것이다.

자로의 울부짓음은 이책의 저자가 그리는 말년의 공자의 모습이기도 하다.

공자는 오십에 자신의 사명을 알았다(知天命). 비천하게 태어나 내세울 것 하나없던 공자가 이름을 날리게 된 것은 그의 학식 때문이었다. 비천한 자신이 그런 배움을 얻고 천하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하늘이 자신에게 시킬 일이 있기에 그러했을 것이라 공자는 생각했을 것이다. 50대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정치가로 활동할 때 공자는 자신의 사명을 느꼈고 그 사명을 실천하려 했다.

그러나 그는 처참하게 실패했다. 그리고 그 이후 그의 삶은 비참한 패배자의 삶일 뿐이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천명을 실현하기 위해 '상가집 개'같이 천하를 떠돌면서 뭐같지도 않은 한심한 작자들에게 벼슬을 구걸했지만 공자에게 다시는 기회가 돌아오지 않았다.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 바란 것은 옳은 것이었고 그들은 스스로 그 꿈을 실현할 능력이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천하의 누구도 그들을 알아주지 않았다. 그럴 때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세상은 우리를 알아주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군자다. 우리는 분명히 군자다. 그러나 그런 말은 점점 한심한 자위에 불과하게 된다.

저자는 14년 동안 천하를 상가집 개처럼 떠돌면서 공자의 심경이 어떻게 바뀌어 가는가를 보여준다. 노나라에서 3년간 사실상 수상으로 지낼 때 그리고 그 자리를 박차고 다른 기회를 찾아 세상을 떠돌던 처음 몇년간 공자는 하늘이 자신에게 준 사명을 믿으며 확신에 차있었고 자신감에 차있었다.

그러나 하늘은 자신을 알아줘도 세상은 자신을 알아주지 않았다. 공자는 점점 지쳐갔다. 그의 확신은 닳아갔다. 자로가 울부짓을 때 공자 역시 같이 울부짓고 싶었을 것이다.

현실에 부딪혀 철저하게 패배하고 좌절한 자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가지였다.

자로가 울부짓은 다음 자공은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의 도는 너무도 커서 천하에 담을 수 없습니다. 왜 천하에 받아들여 질 수 있도록 도를 조금이라도 낮추지 않으십니까?"

이후 제자들의 노선이 그러했다. 그리고 제자백가의 노선이 그러햇다. 이상은 현실과 만나야만 한다. 현실과 떨어진 이상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헛소리일 뿐이다. 그러나 이상이 현실과 만나려면 현실에 이상을 맞춰야 하지 않겠는가?

노나라에 돌아간 이후 공자의 제자들은 현실정치에 뛰어들었고 요직을 차지하면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제자들은 공자의 도를 현실정치에서 말하지 않게 되엇다. 공자의 도와 현실의 거리는 너무나 멀었던 것이다. 제자들을 보면서 공자는 다시 한번 좌절한다. 

현실과 꿈이 같아질 수 없을 때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자로와 자공에 이어 안연은 이렇게 말한다. "도가 받아들여 지지 않는다고 걱정할 것이 무엇입니까?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군자의 참모습이 드러날 것입니다. 군자는 도를 연마할 뿐. 도를 갖춘 인재를 쓰이지 않는 것은 군자의 치욕이 아니라 받아들이지 않는 위정자의 치욕입니다."

안연은 자유인이었다. 그러나 공자는 안연과 같이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는 끊임없이 기다리고 초조해하고 희망하며 좌절했다.

그리고 도를 실현할 기회를 잡은 제자들까지 현실의 무게에 눌려 그의 꿈을 저버렸을 때 공자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리고 공자는 마지막 선택을 한다. 지금 그의 꿈이 실현될 수 없다면 미래에 기대를 거는 것이었다. 노나라에 돌아온 마지막 4년동안 공자는 다시 제자들을 키운다.

그리고 저자는 그 어린 제자들이 미래로 가져간 것이  공자의 꿈이 현실이 되도록 했다고 말한다.

"춘추는 천자의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가 나를 알아주는 자도 춘추뿐이고 내게 벌을 내리는 자도 춘추뿐이다고 말했다" 맹자의 말이다. 공자는 춘추를 쓰면서 천자의 일을 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도와 현실이 영원히 함께 할 수 없을 때 공자는 역사를 쓰면서 상상의 왕국을 세웠고 그 안에서 도를 행했다는 것이다. 현실의 불의를 역사라는 법정에서 바로잡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공자는 책이란 상상의 왕국에서 현실에선 이루어질 수 없는 도를 기록하고 제자들은 그 도를 전하면서 공자의 꿈이 이루어질 가능성을 미래로 가져갔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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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원의 기적 - 한 신경과학자가 안내하는 3D세계로의 특별한 여행
수전 배리 지음, 김미선 옮김 / 초록물고기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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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저자는 학부시절 전공강의를 들으면서 자신이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세계를 본다는 것을 알게 된 것으로 이책을 시작한다.

저자는 보통 사팔뜨기라고도 부르는 사시이다. 솔직히 이책을 읽기 전에는 사팔뜨기가 뭔지 알지 못했다. 사르트르의 사진을 보면서 거 재수 없게 생겼네 눈이 저 모양이니 이상한 관념론이나 떠드는 거지, 하는 정도가 사팔뜨기에 대한 생각의 전부였다.

그러나 이책을 읽으면서 사시라는 것이 심각한 시각장애로 여겨져야 하며 이해해주어야 할 결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시의 가장 큰 문제는 깊이를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깊이를 인식하는 것은 두눈이 있기 때문이다. 뇌는 두눈에서 들어온 이미지의 차이를 계산해 깊이를 인식하고 하나의 이미지로 재조합해낸다.

뇌에서 조합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두눈에서 들어오는 이미지의 차이가 크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사시는 두눈이 협력할 수 없다. 두눈이 따로 놀기 때문에 두눈에서 들어오는 정보의 차이는 크고 뇌가 하나의 이미지로 통합할 수 없을 정도가 된다.

뇌는 결국 한 쪽 눈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무시하는 전략을 취하게 되고 깊이에 대한 정보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깊이를 알 수 없는데서 일어나는 문제는 여러가지이다. 공간상에서 사물의 위치를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에 굼뜬 아이로 여겨지게 된다. 위치 감각이 없다는 것은 자신의 위치도 잘 알 수 없게 된다는 의미이다. 공간 상에서 자신의 상대적인 위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운동감각도 결여된다.

저자의 경우는 운전을 기피하게 되었다. 공간감각이 결여되었기 때문에 표지판을 제대로 읽을 수 없고 도로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없기 때문에 사고가 나기 쉽다.

공간감각의 결여는 읽는 능력에도 영향을 준다. 두눈의 협동이 저해되기 때문에 글자가 종이 위에 고정되지 않고 멋대로 돌아다니게 된다. 특히 글씨가 작을 때 문제는 더 심하다. 결국 주의력 결핍이나 지능결여로 오해받게 된다.

저자와 같은 사시인 사람이 어떤 세상에서 살아가는지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마치 저자가 대학에서 자신이 대다수의 사람들과는 다른 세계를 본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여러 유형의 사시인 사람들이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저자가 보여주는 세상을 보면서 정상으로 태어났다는 것이 행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자는 자세한 설명을 통해 정상인 사람은 상상할 수 없었던 비정상인 사람의 세계를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이책은 단지 그런 세상을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는다. 저자가 이책을 썼을 때는 저자는 정상인 사람들이 보는 세계에서 살고 있었다. 저자는 선천적인 장애를 훈련을 통해 극복할 수 있었다. 사시에 적응한 뇌의 습관을 조정해 깊이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더 이상 저자의 세계는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2차원의 세계가 아니었다.

이책의 전반은 저자와 저자와 비슷한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어떤 세상을 보는가를 자세하게 그리고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그리고 이책의 후반은 고정된 뇌의 습관을 교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뇌는 늙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어릴 때 또는 성장기에 뇌는 고정되지 않고 언제나 다시 프로그래밍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저자가 3차원을 시야를 갖게 된 것은 50살이 다 되어 가던 때이다.

이상이 이책에서 볼 수 있는 내용이다. 이책은 앞에서 요약했듯이 다른 세계에서 사는 사람을 느끼게 해준다는 것, 그리고 운명이라 생각할 수 있는 것조차 다시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 이 2가지를 현실감있게 보여주고 설득한다는 점은 이책만이 줄 수 있는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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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수전 배리가 안내하는 3차원 세계로의 특별한 여행
    from The nGelmaum Notes 2010-07-12 07:39 
    오늘 여러분께 소개할 책은 「수전 배리」교수님께서 쓴 『3차원의 기적』입니다. 도서의 기본적인 내용은 다음 절에서 소개하겠습니다. 이 책은 2009년 아마존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기분 좋은 서적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눈이 일반 사람하고 다르게 보고 있다면 어떤 느낌이 들 것 같으세요? 심지어 본인은 그것을 알지도 못했다면? 저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위와 같은 생각을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도시와 인간 - 중세부터 현대까지 서양도시문화사
마크 기로워드 지음, 민유기 옮김 / 책과함께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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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책은 서양의 도시가 중세에서 현대까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살펴보는 도시문화사의 개론서로 쓰여진 책이다. 그러나 학술서도 아니고 교과서로 쓰인 것도 아닌 이책은 일반인을 위한 교양서로 쓰여졌고 전문적인 서적들이 그렇듯이 기존의 학술이론을 요약하거나 이런 저런 이설이 있다는 등의 주석도 없다. 이책을 읽는데는 어떤 전문적 지식도 필요없다. 그리고 재미있다. 중세부터 현대까지 누구나 알고 잇는 런던 파리, 로마, 베를린, 빈이 어떻게 건설되었고 어떻게 바뀌어 왔으며 왜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는가를 역사를 따라 보여주는 이책은 재미있다.

그리고 이책의 재미는 이책의 서술방식에 잇다. 도시와 인간이란 이책의 제목이 말하듯이 이책은 도시의 건물들과 외양이 언제 누구 만들었는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왜’ 만들어졌는가를 따진다.

이책의 구성은 3부로 되어 있다. ‘도시의 부활’ ‘도시의 성장’ 도시의 확장’으로 나뉘는 이책은 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농촌화되어 버린 유럽에서 어떻게 도시가 부활했는가부터 시작한다. 유럽에서 도시의 부활은 영주의 성 밖에 정기시(fair)가 서면서부터였다. 유럽에 안정이 찾아오면서 농촌에서 물자가 집산하기 시작햇고 물자의 집산지로 시장이 열리는 도시가 부활했다. 이 도시들의 네트웍이 만들어지고 이 네크웤이 당시 동로마의 콘스탄티노플과 연결되면서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이 성립한다. 이책의 1부는 중세말부터 르네상스까지 교역 네트웤을 따라 도시들이 어떻게 부활하는 모습과 그 도시의 권력을 쥔 상인귀족들이 어떻게 도시를 만들어갔는가를 다룬다. 여기서 다루어지는 것은 주로 이탈리아와 북유럽의 교역도시들이다.

이책의 2부는 절대왕정시대로 옳아가 도시의 모습을 결정하는 왕과 귀족, 또는 부르주아들이 도시의 모습을 어떻게 바꾸어갔는가를 다룬다. 여기서 다루는 것은 로마, 파리, 런던, 빈등이다.

3부에서는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산업이 어떻게 대도시의 모습을 바꾸어갔는가를 다룬다. 맨체스터, 런던, 파리, 뉴욕, 시카고 등 당시 산업의 중심지들이 다루어진다.

이렇게 볼 때 이책은 어떤 줄거리가 없는 책이다. 중세말부터 현대까지의 역사를 따라가면서 이책이 다루는 도시들은 지배층들도 달랐고 그 지배층이 다른 것 이사으로 도시의 외양도 달랐다. 그러나 이책은 역사를 따라가면서 도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다. 즉 도시의 외양이 결정되는 것은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어떤 것을 필요로 했고 공간을 그들의 필요와 생각에 따라 조직해가는 과정이 도시의 역사라는 것이다. 저자에게 도시의 역사는 그렇게 사람들의 역사인 것이다.

이상이 이책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나저나 정말 오래 걸렸다. 이책을 읽는데 3달이 걸렸다. 대학노트만한 판형에 색인과 레퍼런스를 빼고 본문만 610페이지에 이르고 작은 활자로 인쇄된 이책의 분량은 300여장의 컬러 도판들도 있지만 신국판의 보통 책의 판형으로 따지면 1000페이지가 넘어가는 분량이다.

다른 일도 봐야 하고 이책만 읽는 것도 아니니 3달이나 걸린 것이다. 그러나 이책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재미있다. 그리고 파리 유학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처음 이책을 보았다는 번역자의 말대로 ‘도서관에 돌려주기 싫을 정도’로 갖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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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발명
린 헌트 지음, 전진성 옮김 / 돌베개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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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이란 자유와 평등의 다른 이름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모두는 평등하며 나와 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나와 같은 권리를 갖는다는 말이다. 다른 사람이 나와 같이 평등하다면 나와 대등한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갖는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이 당연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유럽에서 자유와 평등이라는 개념의 시초는 기독교로 올라갈 것이다. 인간은 신 앞에서 평등하다면 신의 창조물로서 인간은 평등할 수 밖에 없고 대등한 인격체로서 대등한 권리를 갖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그러나 인간은 모두 동등하다는 생각이 보편적이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개념이 오늘날과 비슷한 모양으로서 등장한 것은 계몽주의와 함께 였다. 그러나 학자들의 주장을 넘어 사람들의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이책의 저자는 계몽주의자들의 주장이 보편적이 된 것은 두가지 계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이책에서 주장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첫번째 계기는 서간문학작품들이엇다. 편지의 형식으로 기술되는 서간문학은 1인칭 시점으로 기술될 수 밖에 없다. 작가의 시점이 아니라 주인공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풀어지는 서간문학은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의 내면을 더 실감나게 하는 특징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이 주인공과 자신을 더 쉽게 동일시하게 하는 ‘공감’의 힘이 더 강했다.

이책에선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 이전 수십년동안 유행했던 서간문학작품이 어떻게 수용되었는가를 분석하면서 자유와 평등이란 개념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실체로서 이해되게 되었는가를 보여준다.

당시 인기를 끈 서간문학작품 중 저자가 분석하는 3편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다. 하녀, 하급귀족의 딸을 다루는 3작품은 남성독자들에게 계급과 성의 차이를 떠나 그녀들도 자신과 같이 생각하고 느끼는 자율성을 가진 인간이라는 것을 느끼게 했다는 것이다. 인간을 나누는 차이를 넘어 그들도 자신과 평등한 인간이며 자신과 같이 스스로 삶을 결정할 권리를 가진 인간이라는 것을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게 한 것은 당시 유행한 문학의 힘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는 서간문학이 혁명 직전에 대대적으로 유행한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저자가 드는 다른 계기는 고문이다. 당시 형법에서 고문은 수사과정은 물론 집행과정에서 합법이엇다. 그러나 계몽주의가 득세하던 당시에 고문은 문제가 되었고 형법개정운동으로 발전한다. 저자는 고문에 대한 반대가 여론의 힘을 얻게 된 것이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이성이 아니라 감성으로 이해해가던 당시의 지적조류와 연결시킨다. 고통받는 타인에게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사회적으로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18세기 말 두개의 혁명이 일어나고 두 혁명에서 인권선언이 채택될 수 있었던 것을 이러한 공감의 능력이 고조되었던 사회적 분위기에서 찾는다.

이상이 이책에서 읽어야 할 내용이다. 이책의 후반은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 이후에도 인권은 보편적으로 적용되지 않았던 것을 자세하게 지적한다. 특히 프랑스혁명을 자세하게 분석하면서 구교도에 대해 신교도도 마찬가지로 시민권과 정치적 권리를 가지는가? 그러면 유대인은? 그리고 여자는? 노예는? 이런 식으로 인권의 의미에 대한 의문이 커가는 과정을 그린다. 그러나 인권이 보편적으로 생각되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논리적으로 도출되는 과정이 아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났을 때 영국의 버크는 사회적으로 집단의 정체성과 연결되지 않는 인권이란 추상적 원리는 비현실적일 수 밖에 없으며 그런 추상적 원리가 현실이 되려면 폭력으로 현실에 자신을 강요할 수 밖에 없다고 예언했다.

프랑스혁명의 무질서와 폭력은 실제 그러했다. 저자는 이후 인권의 역사는 버크가 지적한 추상적 원리가 가져야 할 현실적 토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고 지적한다. 처음에 그 토대가 된 것은 민족주의였다. 우리 민족은 다른 민족보다 더 평등하다. 그러한 주장은 인종주의와 성차별로 이어졌다. 저자는 19세기 이후 UN의 인권선언이 공표되기까지 인권의 역사를 그러한 현실화의 과정으로서 폭력의 과정으로서 그려나간다.

이상이 이책의 내용의 간추려 본 것이다. 이책은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인권이란 추상적 개념이 현실적으로 힘으로 어떻게 바뀌었는가를 ‘공감’이란 개념을 통해 매우 설득력 있게 그리고 잇다. 그러나 문제는 공감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인권이란 개념을 퍼트렸는가를 말하면서 이책의 반 이상에서 말해지는 혁명과 민족주의, 인종차별, 성차별의 역사와 같은 거시적 맥락을 공감이란 미시적 토대에서 재구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책은 17세기 인권이란 추상적 개념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힘을 얻게 되는가를 묘사하는 앞부분만으로도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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