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조 - 내 안에 잠든 긍정의 추진력
마셜 골드스미스 외 지음, 박세연 옮김 / 리더스북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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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느 책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소설의 주인공인 자신만만한 커리어우먼의 말이다. 예쁜 얼굴이라도 끌리지 않는 사람이 있고 그리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왠지 끌리는 사람이 있다. 그런 매력은 외모와는 상관이 없는 그 사람의 아우라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런 아우라의 이유는 여러가지다. 이책은 그 여러가지 이유 중에서 자신감을 설명하는 책이다.

이책은 모조라는 개념을 설명한다. 모조의 의미는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 하자면 자신감이 가장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자신감이란 말로는 이책이 설명하는 모조의 뜻을 모두 담을 수는 없다.

모조는 자신감처럼 어떤 사람의 개인적인 속성이다. 그러나 자신감과 달리 저자는 모조를 흐름으로 본다. 다시 말해 어느 순간 그 사람이 갖는 아우라이다.

“사실 우리는 모조라는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하다. 대중 앞에서 연설을 해본 경험이 있다면 모조의 순간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여러분의 말에 청중들이 집중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박장대소하고 기립박수를 치도록 만들었다면 여러분은 바로 모조의 순간을 창조한 것이다. 그 순간 여러분 몸속의 모든 엔진들이 힘차게 돌아가고 있으며 ‘동시에’ 청중들도 이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여기서 말하는 모조의 핵심이다.”

그러나 모조는 그런 지나가는 순간에만 머물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모조는 개인적인 성공이라는 모호한 형태로 나타난다. 성공을 거둔 사람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성장하고 발전하고 목표를 달성하고 문제를 홰결하고 경쟁에서 이겨나간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빨라진다. 나중에는 이런 흐름을 즐기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스포츠 경기에서는 이를 ‘in the zone’이라고 부른다. 좀더 일반적인 용어로는 flow라는 말이 있다.”

흐름을 타고 있는 사람, 운을 거머쥐고 있는 사람을 알 것이다. 저자는 그런 사람을 모조의 흐름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모조의 흐름은 운의 문제가 아니라 말한다. 모조는 스스로 만들 수 있다. 어떻게?

저자는 모조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발견하게 되는 행복 그리고 인생의 의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일을 통해 스스로 만족을 얻고 이를 다른 사람들이 분명하게 인식한다”면 그 사람은 모조의 흐름에 있는 것이다.

저자는 행복과 의미란 개념을 이용하여 모조를 다음과 같이 조작적 정의로 규정한다.

“내면에서 우러나와 외부로 드러나는, 바로 지금,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

얼른 머리에 들어오는 정의는 아닐 것이다. 저자가 모조의 반대 개념으로 제시하는 Nojo(no joy)의 정의를 보자. “노조를 가진 사람들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일을 지루하고 못마땅하게 여기며 지금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이 갖고 잇는 불만과 스트레스를 다른 이들에게 거리낌 없이 얘기한다.”

모조가 어떤 의미인지 감이 잡힐 것이다. 그러나 아직 모조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말할 수는없을 것이다. 저자는 모조에 대한 조작적 정의를 4가지 개념으로 분해해 설명한다: 정체성, 성취, 평판, 수용.

지금 자신의 위치와 자신의 정체성이 일치할 때 그리고 지금까지 이루어 온 것들이 그 정체성을 강화할 때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성취를 인정할 때 그리고 그 3가지가 지금 자신의 현실과 일치할 때 모조의 흐름은 만들어진다.

대략 자신감과 비슷하다고 생각될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감과 모조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모조는 주관적인 느낌이 아니며 언제나 현재의 문제이기에 하루에도 여러 번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모조를 말할 때 ‘순간’ 또는 ‘흐름’과 같은 유동적 의미의 말을 함께 쓴다.

모조란 무엇인가는 알았다. 그러면 나도 모조의 흐름을 탈 수 있는가? 저자는 이책에서 모조의 정의를 내리는데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어떻게 모조의 흐름을 만들 수 있는가에 관해 이책의 대부분을 할당하고 잇다. 저자는 앞에서 말한 정체성, 성취, 평판, 수용으로 모조를 조작적으로 정의한 다음 그 4가지 변수의 점수를 올리면 모조의 흐름이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이책은 실제에 있어서는 모조에 관한 책이라기보다는 그 4가지 변수의 점수를 어떻게 높일 수 있는가에 관한 책이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자기계발서와 그리 차이가 없지 않은가? 모조라는 거창한 개념을 말하면서 실제 내용은 뭐 그렇고 그런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틀린 생각은 아니다.

이책에서 4가지 변수를 높이는 방법으로 소개되는 것은 이책에서만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체계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4가지 변수라는 큰 틀이 있다는 점에서만 체계가 잇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선 용두사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저자가 제시하는 방법들은 상당히 유용하고 재미있다. 저자의 이전 저서인 ‘일 잘하는당신이 성공을 못하는 20가지 비밀’을 보앗다면 저자가 어떤 식으로 쓰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기업의 간부들을 상대로 개인 컨설팅을 하는 사람이다. 저자의 직업이 그렇기 때문에 저자가 동원할 수 있는 경험은 무궁무진하며 구체적이고 재미있다.

그렇지만 저자가 제시하는 처방들을 하나로 모아주는 프레임은 그리 만족스럽지 않다. 단지 4가지 변수라는 큰 틀만 있고 그 밑에 이런저런 처방을 나열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러나 세상사가 원래 그런 것을 어쩌겠는가? 이책의 구성이 나열식에 가까운 이유는 세상사가 원래 그렇기 때문이라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이책은 위에서 지적한 문제가 분명히 있다. 다시 말하자면 4가지 변수의 큰틀과 저자의 구체적 처방 사이의 중간을 이어주는 프레임이 비어있다. 그러나 그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제시하는 처방의 구체성과 유용성, 그리고 4가지 변수라는 큰틀로 자신의 삶을 보는 관점을 얻는다는 것만으로도 이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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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브레인 - 디지털 테크놀로지 시대에 진화하는 현대인의 뇌
개리 스몰 & 지지 보건 지음, 조창연 옮김 / 지와사랑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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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타는 저녁식사 후 이메일을 보내고 저녁 뉴스를 보면 쉬고 있었다. 아나운서가 뉴스를 전달하는 동안, 화면 아래 자막 뉴스를 따라 읽고 있었다. 정신이 산란하여 자막뉴스가 그 시간대의 헤드라인보다 더 중요한 것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없었다. 잠시 후 프라임 시간대에는 화면 아래 귀퉁이에 드라마 정보를 알려주는 팝업광고가 떴다. 정보가 너무 많아서 두통이 날 지경이다.

TV 시청이 끝나고 리타는 13살짜리 딸의 숙제를 챙겨주고 있었다. 그녀는 딸아이의 방을 조종실이라고 부르는데 컴퓨터 장비와 책으로 둘러싸여 있는 책상 앞에서 무르ㅠ에 키보드를 얹고 헤드폰으로 아이팟의 음악을 들으며 틴구들과 화상채팅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게 요즘 아이들의 공부 방식이란다. 위키피디아에서 공부할 내용을 찾으면서 동시에 마이스페이스에 새로운 사진을 올린다. 리타가 역사 숙제는 어떻게 되어가냐고 묻자 화상채팅을 함녀서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린다.”

이책이 설명하려는 상황이다. 밀레니얼 세대, 81년 이후 태어난 세대를 말한다. 자랄 때부터 컴퓨터를 끼고 살았고 컴퓨터 없는 생활은 겪어본 일이 없는 세대. 이책은 그들 세대가 이전 세대와 어떻게 다른가를 뇌구조에서 찾는다.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은 위의 상황에서 잘 설명된다. 이들의 특징으로 흔히 멀티태스킹을 든다. 그러나 그들의 부모 세대는 그런 그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는데 그렇게 직접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상상도 안되는 것이다.

이책은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어릴 때부터 디지털 원주민으로서 그런 환경에서 자라면서 뇌구조가 멀티태스킹에 적응했기 때문이며 그런 기술적 환경을 즐기기 때문이라 말한다.

“디지털 원주민은 여러 일을 동시에 작업하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으며 시청각 자극에 즉각적으로 만족감을 느끼도록 이들의 뇌가 변화하고 잇다. 이들은 디지털 자극의 영향으로 좀 더 빠르게 반응하며 구세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코딩한다.”

이들은 빠르게 모니터를 스쳐가는 정보들을 처리하는데 능숙하다. 구글 검색을 했다고 하자. 검색결과를 일일히 확인하고 원하는 것을 얻는데는 빠른 정보처리능력이 필요하다. 이들은 “뇌가 무의식적 차원에서 정보를 분석하고 행동을 진행할 지 여부를 동시적로 결정한다.”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는데 능숙하기에 이들은 컴퓨터의 CPU가 시분할로 명령어들에 처리시간을 할당하듯이 검색을 하면서 검색결과를 판단하고 동시에 채팅을 하고 헤드라인 뉴스 자막을 확인하는 등 멀티태스킹에 능하다.

어릴 때부터 다양한 자극에 노출되면서 그들의 뇌구조가 멀티태스킹에 적합하도록 구조화되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자연스럽게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멀티태스킹은 디지털 원주민들이 즉각적인 만족감을 느끼게 해줌으로써 장기적인 목표 설정에 무관심하게 만든다. 또한 동시에 작업을 경쟁적으로 하는 경우에는 심층적이기보다는 피상적으로 정보를 이해하기 쉽다. 교육자들은 멀티태스킹 작업을 하는 젊은이들의 학업 방식이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지속적이고 지나친 멀티태스킹 작업은 전두엽의 정상적인 발달을 저해하여 추상적인 사고에 지장을 주어 통합적인 사고를 하거나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데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이들이 메신저나 게임 등에서 얻어지는 즉각적인 만족에 빠져서 이를 위한 방법이나 요령 터득에만 몰두한다면 일시적인 충동에 대한 만족을 참아가면서 지루하고 재미없는 프로젝트나 작업을 완성하는 법을 터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저자는 멀티태스킹의 부작용으로 주의력 결핍증(ADD)이 급증하는 것으로 우려한다. 부작용은 그뿐 만이 아니다.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나타난 게임중독증, 인터넷 쇼핑중독증, 인터넷 도박 중독증, 인터넷 포르노 중독증 등도 문제이다.

그러나 저자는 가장 심각한 것은 공감능력에 바탕한 사회적 능력의 퇴보를 지적한다. 그런 극단적인 예로 저자는 인디고 아이들을 든다.

“이 아이들은 뛰어난 창조성과 심령능력, 치료 능력을 가졌다ㅣ고 알려졌으며 영재들의 전형적인 특징인 뛰어난 지능, 성숙함, 직관, 창조성 등을 갖는다. 그러나 학습장애나 ADHD, 자폐증, 아스퍼거 증후군 등의 다른 특징들은 ADHD 증상과 매우 흡사하다. 인디고 아이들은 ADHD 증상을 가진 높은 지능의 아이들이라고 볼 수 잇다.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가진 이 아이들은 종종 제도권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다. 이들은 학교에 가는 것을 따분해하고 느리게 진행되는 교과 과정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빠른 자극에 길들여진 디지털 원주민의 특징이 잘 나타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 집이나 학교에서 멍하게 있기도 하고 간혹 적대적이고 논쟁적으로 행동하기도 한다. 이들 중에 많은 아이들은 능력에 비해 성적이 낮으며 전형적인 ADHD 증상 즉 충동적이고 안절부절 못하고 정리에 서툴고 멍하니 있고 세세한 것에 집중하지 못한다.

오늘날의 아이들은 생애 초기부터 디지털 기술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뇌신경회로가 변형되었고 그로 인해 주의력 결핍 문제가 생겼을 뿐만 아니라 창조성과 통찰력을 높이는 결과를 낳을 수 있었다는 관점에서 인디고 현상을 설명해볼 수 있다.”

문제는 인디고 아이들이 주의력 결핍 뿐 아니라 사회적 능력이 결여된 자폐증에 가까운 특징이다. “뇌의 진화방향이 새로운 기술로 서서히 옮겨가면서 대화시 상대의 표정을 읽거나 섬세한 제스처를 통해 감정적 맥락을 파악하는 등 기본적인 사회성 기술은 뇌에서 멀어지고 잇다. 우리가 컴퓨터를 1시간 사용할 때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전통적인 대면 시간이 30분 정도 감소한다. 그 결과 사람과의 접촉을 관할하는 뇌신경망이 감소하여 사회적 상호작용을 서투르게 한다.”

저자는 밀레니얼 세대의 가장 큰 문제점을 사회적 기술의 부족이라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어릴 때 부족했던 능력은 성인이 된 후에도 배울 수 있고 우리의 뇌는 그에 따라 재조직화될 수 있다고 말한다. 문제는 그들이 부족한 것을 알게 하고 그 부족한 것을 채우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디지털 기술의 미래를 어둡게만 보지는 않는다. “현재의 테크놀로지는 뇌의 각 영역들을 개별적으로 자극하는 수준이지만 테크놀로지가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제하는 복잡한 신경망을 강화해준다는 새로운 과학적 증거들이 나오고 잇다. 다른 게임자들과 함게 인터랙티브한 게임을 할 때의 뇌를 조사했는데 게임이 사회성 기술을 통제하는 뇌 영역들을 활성화하고 있음이 밝혀졋다. 이 연구결과로 인간의 대면적인 상호작용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대인관계 기술 프로그램의 개발이 가능하게 되었다. 미래의 뇌가 수십년 안에 구체적으로 드러나겠지만 그것은 다름 아닌 현재의 우리 뇌가 진화한 결과인 것이다.”

그러면 미래의 뇌는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까? 저자는 미래의 뇌를 이렇게 예상하며 이책을 끝낸다. “이래에는 새로운 능력을 갖춘 뇌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 미래의 뇌는 기술적으로 잘 적응되어 있고 새로운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고 멀티태스킹 뿐만 아니라 집중능력도 뛰어나며 언어적 기술과 비언어적 기술을 세심하게 다룰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뇌는 스스로를 주장하는 방법을 알 뿐만 아니라 공감능력을 갖고 뛰어난 인간관계 기술로 스스로 창조성을 증진하는 능력도 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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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쿠바 - 시네아스트 송일곤의 감성 스토리
송일곤 글.사진 / 살림Life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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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쿠바란 단어에서 떠올리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이책의 제목처럼 ‘낭만’일 것이다. 최고의 시거라는 궐련의 향기처럼, 아바네라, 맘보, 살사, 손, 룸바, 구아히라, 구아라자, 파창가, 등등 쿠바에서 만들어진 리듬들 처럼 아니면, 체 게바라의 빛 바랜 사진처럼 무언가 일상의 것이 아닌 이미지.

그런 이미지가 실제의 쿠바와 다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낭만의 이미지는 쿠바라는 동전의 한면일 뿐이다.

“한 때 쿠바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부자였다. 스페인의 영향을 받은 건물이 올드 아바나에 가득하다.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다. 화려한 조각들로 수을 놓은 문양들이 과거의 영화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창을 보라. 유리를 끼울 돈이 없어 낡은 합판으로 덧대어 햇빛을 막고 비가 새는 것을 막기 위해 슬레이트판을 얼기설기 얹어 놓았다. 회벽의 페인트는 벗겨지고 부식되어 폐허 직전의 색을 드러내고 잇다. 그러나 여전히 쿠바의 슬픈 건축은 쿠바다. 아무리 가난해도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다. 건물들은 기묘하게 어울리고 칠이 벗겨지고 나무로 덧댄 창들 또한 하나의 질서처럼 정연하다. 그래서 올드 아바나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으리라. 과거의 영화를 고스란히 견뎌낸 이 공간.”

이 책은 쿠바에 대한 안내서가 아니다. 이책은 저자가 영화를 찍기 위해 쿠바를 찾았을 때 찍은 사진들을 모은 사진집이다.

저자가 보여주는 사진을 보다보면 세피아 톤이란 말이 떠오른다. 흑백의 투톤을 갈색톤으로 처리하는 기법 말이다. 저자가 본 올드 아바나처럼 쿠바는 열대의 섬답게 화려한 색채를 자랑하는, 우리가 쿠바란 말에 떠올리는 ‘낭만’이란 말에 어울리는 땅이엇다.

그러나 가난에 허덕이는 오늘의 쿠바는 예전의 색채를 잃어버렸고 과거의 영광은 흔적만이 남았다. 그러나 그 흔적은 묘하게 과거의 영광을 떠올리게 한다. 시간이 박제된 오래된 사진처럼 시간의 벽을 넘어 과거를 엿보는 느낌이다.

“이 나라의 경제는 최악이기 때문에 이 아름다운 건축물들으ㅢ 색칠과 보수를 하지 못하고잇지만 20세기 초반에는 아메리카에서 두 번째로 잘 사는 나라였다는 것을 믿게 만든다.”

그 모순의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의 쿠바 자체가 모순이긴 하다. “ 쿠바 수입의 절반이 관광산업이다.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는 혁명 성공 후 사회주의 체제로 전환하며 자봊주의 탐욕을 통렬히 비판했다. 그러나 쿠바는 점점 가난해졌고 외국의 자본이 없으면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햇다. 자본과의 타협만이 생존이라는 답을 내렸다. 쿠바인 모두의 것인 바라데로 해안 중 가장 아름다운 곳에 유럽인의 돈으로 만들어진 리조트와 호텔이 들어섰고 그곳에서 쿠바인들이 유럽인과 캐나다인을 위해 침대의 시트를 갈고 청소를 하고 경비를 허며 노래를 불러주고 춤을 춘다. 기막힌 아이러니가 천국과 닮은 해안에서 차차차처럼 벌어지고 잇다.”

그러면 그 리조트와 호텔을 찾는 사람이 찾는 낭만의 이유는 무엇인가? 이책의 사진들이 보여주는 세피아 톤의 쿠바에서 무엇을 느끼는 것일까? 그것은 시에스타의 거리가 아닐까? 모두가 쉬어야 하는 시에스타의 시간, 태양을 견지지 못해 모든 것이 비어버린 거리의 풍경에서, 그늘 밖의 뜨거움을 피해 즐기는 죽음처럼 달콤한 낮잠의 시간 같은 나른함. 포기의 나른함. 이책의 사진들이 보여주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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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투자는 두뇌게임이다 - 세계 최강의 승부사 이태혁의
이태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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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인가? 투기인가? 주식시장에 돈을 넣는 것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 ‘현명한 투자자’ 같은 교과서들은 투자라 말한다. 그러나 교과서들도 말하듯이 투기와 투자의 경계는 애매모호하다.

본질적으로 투자와 투기는 구분되지 않는다. 교과서들이 둘을 가르는 기준은 벤저민 그레이엄의 말마따나 ‘현명한가(intelligent)’ 어리석은가일 뿐이다.

주식 교과서를 보면 주식을 사는 것은 회사를 사는 것이라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것이 주식의 정의이니까. 그러나 실제 시장에서도 과연 그럴까? 경영권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주식투자란 본질적으로 돈 놓고 돈 먹기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도박과 구분되지 않는다.

이책의 저자는 프로 겜블러이다. 저자는 근본적으로 주식투자와 도박이 동일한 논리로 움직인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껏해야 수백년의 역사에 불과한 주식시장보다 수천년 어쩌면 그 이상의 역사를 가진 도박판의 역사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본다.

주식투자 교과서를 섭렵했다면 이책의 내용은 별 것이 없다. 교과서들이 다 그렇듯이 투자의 원칙을 말하는 이책의 내용도 그게 그것이다. 어차피 어느 판이든 기본은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이다. 기본에서 벗어난 내용이 나온다면 그것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책의 내용이 뻔한 것은 의외의 뻔함이다. 저자는 주식투자의 원칙들을 말하면서 그 원칙들을 주식시장의 경험을 통해 말하고 그 경험을 다시 겜블러로서 자신의 경험에 비춰 다시 설명한다. 저자가 보여주는 주식판과 도박판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주식투자 교과서들을 보아왔다면 이책의 내용은 새로울 것이 없다. 어느 책에서나 볼 수 있는 원칙들을 나열할 뿐이다. 게다가 화려한 통계로 장식된 미국 교과서들 같은 증명과정도 없다.

그러나 이책은 다른 어떤 책들과도 다르다. 주식판과 도박판 두 곳을 동시에 경험한 저자만 쓸 수 있는 내용은 다른 책들에서 볼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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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아의 나라 - 몽족 아이, 미국인 의사들 그리고 두 문화의 충돌
앤 패디먼 지음, 이한중 옮김 / 윌북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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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두 문화가 충돌할 때의 비극을 이야기한다.



비극의 주인공은 몽족이며 몽족의 한 가족이다. 몽족이라 하면 무엇을 말하는지 알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묘족이라면 알 사람이 꽤 될 것이다. 묘족은 중국인들이 몽족을 가리키는 말이다.



묘족 또는 몽족은 중국의 황제들에게 악몽이었다. 이들은 죽을지언정 굽히지 않는 종족이었기 때문이다. 묘족의 역사는 중국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그들은 양자강 이남의 땅에 살면서 중국의 역대 왕조들이 영토를 넓힐 때마다 부딪힐 수 밖에 없었다.



몽족은 중국의 지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존심 강한 몽족은 자신들 위에 지배자를 인정하지 않았고 중국어도 중국의 뛰어난 문명도 거부했으며 어디에 있던 자신들의 문화를 자신들의 정체성을 고집했다. 한족과 몽족은 공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몽족도 농민이었다. 푸아는 내게 그녀가 살던 마을에서는 모두가 같은 일을 했기 때문에 누구도 남들보다 특별히 귀할 게 없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계급제도도 없었다.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누구도 글을 몰라 박탈감이나 불편함을 느끼는 일도 없었다. 다음 세대가 알아야 할 것은 전부 구전이나 행동으로 전해졌다. 이를테면 조상을 공경하는 일도 켕을 연주하는 법도 장례를 치르는 법도 청혼을 하나느법도 사슴을 뒤쫓는 법도, 집을 짓는 법도, 치마에 수놓는 법도, 돼지를 잡는 법도, 낱알 터는 법도.”



결국 그들은 힘에 밀려 조금씩 조금씩 남쪽으로 산으로 밀려났고 지금은 운남성의 고산지대로 밀려났다. 그래서 몽족 속담은 이렇게 말한다. “물고기는 물에서 헤엄치고 새는 하늘을 날고 몽족은 산에 산다.”



그리고 운남성에서조차 살 수 없다고 느낀 몽족의 일부는 인도차이나로 떠났다. 이책의 주인공인 몽족은 19세기 라오스의 고산지대에 정착한 사람들이다. 몽족 속담대로 ‘산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그들은 라오스의 산에서도 쫓겨나야 했다.



베트남전쟁에 휘말린 라오스에도 이념전쟁이 일어났다. 몽족은 라오스 국왕과 미국의 편을 들었다. 공산주의보다 자본주의가 좋아서가 아니었다. 몽족에겐 그런 것은 상관이 없었다. 단지 공산주의자들이 몽족을 그들끼리 살던 대로 살도록 내벌려두지 않을 것같았기 때문이다. 프랑스도 건드리지 못했던 그들의 자치를 허용하지 않을 것 같았고 농지개혁을 주장하는 공산주의자들이 몽족의 화전농업을 봐줄 것 같지도 않았다.



몽족은 미국의 용병이 되었고 미국은 그 전쟁을 ‘조용한 전쟁’이라 불렀다. 그러나 그 전쟁은 몽족에겐 조용한 전쟁일 수 없었다. “몽족은 자기 뜻대로 전사가 된 게 아니었다. 라오스 북부를 향한 폭격 때문에 농사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고 다른 일자리도 구할 수 엇ㅂ는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라오스에 투하된 폭탄은 200만톤이 넘고 대부분 미군 비행기가 몽족 거주지에 있는 인민군 부대를 공격하면서 퍼부은 것이었다. 9년 동안 8분에 한 번꼴로 폭격을 위한 출격이 있었다. 1968년부터 1972년 사이 단지 평원 한 곳에 투하된 폭탄 통수가 2차 대전 동안 미군이 유럽과 태평양에 퍼부은 양보다 많았다.”



전쟁의 결과는 참혹했다. “며칠 전 장교들과 있는데 (몽족) 신병 300명을 막 데려오더군요. 그 아이들 중 30%는 열네 살이 안 됐고 여남은 명은 열 살밖에 안 됐어요. 다른 30%는 열대여섯 살이었고요. 나머지는 서른다섯 살 이상이었어요. 그렇다면 그 중간은 어디 있을까요? 답을 말씀드리죠. 전부 죽었습니다.”



1960년 라오스에 거주하는 몽족 인구는 30만에서 40만 사이였다. 그중 전쟁으로 죽은 수가 얼마인지는 추정치에 따라 10%에서 50%까지 편차가 크다. 그러나 1970년 인구의 1/3은 내국 난민이 되었다. 그리고 난민이 된 그들은 라오스 인민 민주주의 공화국이 들어서면서 를 “메오는 종족의 뿌리를 아예 뽑아버려야 한다”는 공산주의자들에게 쫓겨 태국으로 그리고 미국으로 떠밀려가야 했다.



미국은 몽족에게 의리를 지켰다. 그러나 미국은 몽족의 긍지를 지켜주지는 않앗다. 몽족들은 라오스에서처럼 농사를 지을 땅을 달라고 했다. 그러나 미국정부는 그들을 도시로 흩어놓았다. 말도 통하지 않는 도시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옮겨가는 새로운 산마다 살 만했던 것은 옛날 일이었다.”



“미국에 온 뒤로 이 부부는 ‘너희는 하찮다’고 느끼게 만드는 미국인들만 만나온 것이다. 두 사람이 받은 교육 때문인지 영어 실력 때문인지, 상대적으로 권위가 떨어질 수 밖에 없어서인지 분명치 않았다.



“내가 참 바보지.”

무슨 말이냐고 했더니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선 아무 것도 모르잖아요. 미국 말도 모르고. 하루 종일 TV를 봐도 하나도 모르겠어요. 전화도 못 걸어요. 숫자를 모르니까. 애들이 가르쳐 주는 데 바로 잊어버려요. 먹을 건 애들이 가게에서 가서 사와요. 난 가봤자 뭐 안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니까. 슬픈 일도 너무 많고 해서 머리가 이상해졌나봐요.



라오스에선 쉬웠어요. 난 농사만 알면 됐으니까. 벼가 자라는 철에는 첫닭이 울 때 일어나요. 다른 철엔 두 번째나 세 번째 울 때 일어나면 되고 세번 째 울 때도 아직 동이 안 터서 캄캄해요. 그래서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등불 켜는 거지. 등불은 이런 거였어요.”



푸아가 라오스에서 하던 ‘쉬운’ 일 수십 가지를 얘기해주는 동안 나는 그녀가 자신을 바보라고 했을 때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전에 할 줄 알았던 것들을 미국에서는 전혀 써먹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아닌가 생각했다. 남은 아이 아홉에게 너무나 훌륭한 엄마가 되어주는 것 말고는 말이다. 그런데 그녀는 마지막 남은 그 능력마저 미국 정부로부터 정식으로 부정당했다.



나는 푸아에게 라오스가 그립냐고 물어보았다. 대나무 의자에 앉아 있던 그녀는 잠시 말 없이 몸을 앞뒤로 흔들흔들했다.



“먹을 게 모자라고 지저분하고 다 떨어진 옷을 떠올리면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요. 여긴 대단한 나라예요. 살기 편하고 먹을 것도 많지요. 하지만 말을 못하잖아요. 나ㅣㅁ한테 기대서 살아야 하고. 복지 수당을 안 주면 굶어죽어야 할거고요. 라오스가 그리운 건 마음 편하고 자유로운 거지요. 원하는 대로 할 수 잇고. 자기 땅 있겠다. 자기 쌀 있겠다. 자기 채소 있겠다. 정말 내 것이 있던 게 그립지요.”



자부심 강하고 독립적인 그들이 땅을 잃고 복지수당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무력한 난민에 불과하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들을 ‘석시시대에서 우주시대로 온 사람들’이라 부르며 그들의 비참함을 그들 탓으로 돌렸다. 베트남 전쟁으로 몽족만 미국으로 온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몽족은 ‘가장 성공을 못한 난민’이라는 말을 든곤 한다.



그 이유는 그들은 미국인이 되기 위해 미국에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지 전쟁과 학살을 피할 곳을 찾은 것 뿐이엇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들은 몽족으로 남길 원했다.



“17년이 지난 지금 지금 푸아와 나오 키오는 미국의 가전제품들은 사용하지만 여전히 몽족 말을 쓰고 몽족 명절을 지내고 몽족 신앙을 믿고 몽족 음식을 해먹고 몽족 노래를 부르고 몽족 악기를 다루고 몽족 전래 이야기를 하고 정치에 대해선 미국보다 라오스와 태국 사정에 훨씬 밝다.”



“유럽 이민자들이 미국에 온 것은 미국의 주류 사회에 동화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몽족이 미국에 온 것은 19세기 중국을 떠난 것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즉 ‘동화’에 저항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몽족은 ‘비자발적 이주민’인 것이다.”



그런 그들이니 모든 것과 충돌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그 충돌이 심했던 곳이 병원이엇다.



“치 넹은 아픈 사람의 집에 찾아와 8시간 동안 있기도 했다. 그러나 서양 의사는 호나자가 아무리 아파도 병원으로 오도록 했고 병상 곁에 기껏하애 20분 머물러 있을 뿐이었다. 치 넹은 정중하고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그러나 의사는 환자의 생활에 대한 온갖 무례하고 은밀한 것들, 심지어 성적 습관이나 배변 습관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치 넹은 즉각적인 진단을 내릴 수 있었다. 의사는 흔히 혈액 샘플을 요구하거나 엑스레이를 찍었고 결과가 오기까지 며칠을 기다리곤 했다. 치 넹은 사람 몸을 치유하면서 혼을 다루지 않는다는 게 명백히 어리석은 행위임을 알았다. 의사는 혼에 대해선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혼은 그 사람의 그림자 같은 거에요. 때로는 나비처럼 밖으로 떠도는데 그럴 때 그 사람이 슬퍼지거나 아파지는 거에요. 그러다 혼이 다시 돌아오면 다시 기분이 좋아지고 몸도 낫게 되지요. 이따금 혼이 다른 데로 가버리는데 의사들은 그걸 믿질 않지요. 의사들은 몸이나 피 때문에 아픈 병을 고치는데 우리 몽족은 혼 때문에 아픈 경우가 있고 그럴 땐 영적인 게 필요해요. 리아의 경우엔 약도 좀 쓰고 넹도 좀 하는 게 좋았어요. 하지만 약을 너무 많이 쓰면 넹이 효과가 없어져 버려요. 둘 다 적당히 할 때는 애가 별로 아프지 않았어요. 그런데 의사들은 약을 조금만 주도록 놔두지 않았어요. 혼을 이해하질 못하니까요.”



몽족만 의사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니었다. 몽족이 의사를 이해할 수 없다면 의사 역시 몽족을 이해할 수 없었다.



“초등학생인 아들의 가슴에 부항 자국을 본 학교 선생이 신고를 했다. 몽족 아빠는 감방에서 목을 맸다.” 이런 경우는 물론 극단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몽족이 가는 병원이면 어디서나 “통역자가 없으면 의사와 환자 모두 안개 속에서 마구 비틀거렷다. 그러나 ‘언어 장벽은 가장 분명한 문제이긴 해도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어요. 제일 큰 문제는 문화 장벽이었으니까요.’”



“서로 세상을 보는 방식이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하며 약간의 경이감을 갖게 됐지요. 전문가의 의견에 단호히 맛설 수 있는 그들의 행동은 저한테는 아주 생소한 것이었어요.”



“그와 페기는 환자 때문에 그만큼 화를 내 본 적이 없었다. ‘제발 이해를 좀 하라며 부모를 마구 흔들고 싶던 기억이 나요. 너무 답답했어요. 벽에다 계속 머리로 들이밀지만 전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기분이엇어요.’ 그만큼 열심히 하고서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감사는 커녕 기껏 애를 써도 매번 원망만 듣기 일쑤였다. 메디캘은 상환율이 낮았기 때문에 그들의 서비스는 사실 자선행위에 가까웠다. 당시 메디캘 환자를 받아주는 소아과 의사는 그들 뿐이었다. 그들이 수입이 제일 적은 가정의학을 택한 것은 대부분 이타적인 동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가장 비협조적인 미국인 환자일지라도 의사에 대해 기본적으로 보이는 공손함을 리 부부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몽족에게 미국인 의사들은 어떤 권위도 가질 수 없었다. 그들이 많이 알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몽족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는 문외한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몽족은 병원을 다른 모든 방법이 실패하고 나서야 마지막으로 찾는 끔찍한 곳으로 여겼다.



그런 몽족이니 의사의 권위를 인정할리도 없었다. 의사의 권위는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부여되는 것이다. 그러나 몽족은 그런 권위를 부여하는 문화를 공유하지 않았고 공유할 생각도 없었다.



“의료계 경력이 얼마 안되는 사람들은 배우는 데 어마어마한 시간과 에너지와 공을 들인데다가 자신들이 의대에서 배운 걸 건강 문제를 다루는 유일하고 적법한 접근법으로 알고 있어요. 제가 보기엔 그래서 아직 어린 의사들이 몽족 환자가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발끈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서구 의학이 할 수 있는 게 대단한 게 아니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니까요.”



그러나 의사들 역시 몽족을 인정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엿다. “그들이 다녔던 의대에선 떠도는 영혼 때문에 병이 날 수 있고 닭의 목을 따서 병을 낫게 할 수 있다는 건 가르쳐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몽족이 이런 금기들을 자기 정체성 심지어 자기 혼을 지켜주는 것으로 여긴다는 것을 알 길이 없었다.”



이책은 몽족과 의사의 신념이 충돌할 때 일어난 비극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쁜 의사들 같으니!’ ‘나쁜 부모들 같으니!’ 간질을 앓는 아이인 리아가 두 문화가 충돌하면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되고 결국은 간질이 악화되어 식물인간이 되는 이야기이다.



“자신이 할 일은 좋은 약을 쓰는 것이고 리아의 부모는 따라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물론의사와 부모가 계속해서 협상을 한다면 서로 의견이 달라도 갈등은 신념 체계의 차이로만 그칠 수 있다. 그러다 경찰이 불려 오고 법원의 명령을 받게 되면 차이는 더 이상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의사는 경찰을 부르고 국가 권력에 접근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지만 몽족에겐 그런 힘이 없다.”



“리아의 케이스는 몽족 사회에는 의료 종사자들에 대한 최악의 편견을 의료계에는 몽족에 대한 최악의 편견을 확실히 심어주었다.”



이 비극에서 누구도 악의는 없었다. 그러나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면 그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저자도 저자가 인터뷰한 의사들은 생각한다.



“캘리포니아의 머세드에 있는 군립병권에 가게 된 것은 그곳에서 몽족 호나자와 의료진들 사이에 이상한 오해가 벌어지고 잇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알고 보니 둘의 만남은 어지럽긴 했어도 정면충돌은 아니었ㄷ가. 그리고 둘 다 상처를 입었으나 양쪽 모두 무엇에 부딪친 것인지 어떻게 충돌을 피할 수 있는지 모르는 듯했다.



머세드 병원 역사상 최악의 분쟁이었던 리 부부의 딸 리아의 사례에 대해 듣고 그 가족과 의사들을 알게 된 후 나는 진심으로 양쪽 모두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책임을 지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깨달았다. 그리고 두 가지 질문을 자주 곱씹어보곤 했다. ‘어떤 의사가 좋은 의사일까?’ ‘어떤 부모가 좋은 부모일까?’



이따금 나는 그 녹음들을 밤늦게 들으며 몽족과 미국 두 문화를 합성할 수 있다면 어떤 소리가 날지 상상해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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