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강의 - 묵점 기세춘 선생과 함께 하는
기세춘 지음 / 바이북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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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노자를 읽는 방법은 두가지이다. 무정부주의 아니면 파시즘.

“약하게 하고 싶으면 반드시 강하게 해주어라.
무너트리고 싶으면 반드시 흥하게 해주어라.
뺐고 싶으면 반드시 주어라.”

36장이다. 주자는 장자는 좋아했지만 노자는 싫어햇다. 권모술수라는 이유엿다. 36장은 법가류의 말로 밖에 읽히지 않는다.

그러나 “무력으로 천하를 강하게 하지 마라(不以兵强天下)”는 문구나 국가권력을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소국과민(小國寡民)과 같은 내용은 법가적인 사상가라면 절대 하지 않을 말이다.

책 한권을 놓고 양극단으로 읽을 수 있는 경우는 노자 이외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왜 그런 것일까? 그 이유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그 해답은 땅 속에서 나왔다. 중국에서 백서본에 이어 죽간본이 나오면서 왜 그런 양극단의 해석이 가능한지 밝혀진 것이다. 통용본인 왕필본과 대동소이한 백서본과 달리 죽서본은 통용본과 아주 다른 텍스트였다.

그렇다면 이런 결론이 나온다. 노자란 책의 저자는 한 사람 이상이다. 학계에선 적어도 두 사람 이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고 그렇다면 노자란 한권의 책에 두가지 이상의 사상이 담겨졋다고 놀랄 이유는 없는 것이다.

한 사람은 논어에도 여러 번 나오는 원시도가류의 은자일 것이고 한 사람은 전국시대가 한창일 때 법가류의 사상가일 것이다.

저자도 복수의 저자가 노자를 썼을 것이라는데 동의한다. 그러나 노자를 두가지로 읽는데는 반대한다. 그것이 노자를 읽는데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노자라는 책은 어느 무명인의 저작으로 시작하여 여러 사람이 첨삭 개작해 왔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장 적실한 것같다.” 그러나 문제는 “오늘날까지 2천년 동안 읽어온 ‘노자의 원본은 죽간본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노장사상은 이 백서본에 근거한 것이다. 예컨데 조선의 ‘춘향전’이 어느 무명인의 저작으로 시작하여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이 첨학 개작하여 내려오다가 탁월한 어느 한 사람에 의해 정형화된 사례와 비슷할 것이다.”

춘향전의 원본이 우리가 아는 춘향전과 다르다고 원본을 쫓아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그렇다면 노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저자는 우리가 노자에서 읽어야 할 것은 긴 세월동안 사람들이 읽어온 노자가 무엇인가라고 말한다.

저자는 노자를 집단창작으로 본다. 그리고 노자를 읽는 방향은 그 집단의 성격이 무엇이냐가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그 집단의 성격은 황건적이 노자를 성전으로 읽은 것을 보면 분명해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황건적이 읽은 노자는 무정부주의의 노자엿다. 그러나 모든 종교가 그렇듯이 반체제로 시작한 황건적 역시 체제에 편입되면서 변질되고 도교로 발전한다. 그 첫걸음은 조조가 내디뎠다.

“조조는 한말 도교 세력이 주축이 된 농민 반란군인 황건적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두각을 나타내 천하를 차지한 사람이다. 도교 세력이 위력을 잘 아는 조조는 정권을 잡은 이후 노장의 반체제적 민중성과 반문명적 저항성을 제거하려 햇다.”

조조는 도교의 성전인 노자가 읽히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엇다. 그 작업에 나선 사람이 왕필이었다. 왕필의 해석은 노자의 저항성은 허무주의로 바꾸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대표적인 해석이 1장의 해석일 것이다. 1장의 ‘無名天地之始’의 주어를 왕필은 무명이 아니라 무로 읽었다. 그러면 무는 천지의 시작을 이른다가 된다. 왕필은 무를 독립된 존재론적 개념으로 만들어 노자의 정치성을 무력한 고담준론으로 표백햇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무가 주어가 아니라 무명이 주어여야 한다고 말한다. 무명의 명은 분명하게 정치적 대상을 가리키기 때문이라 저자는 말한다.

고대중국에서 명(名)이란 명분을 말한다. 공자의 ‘君君臣臣父父子子’란 정명론에서 알 수 있듯이 이름은 그 이름이 속한 시스템의 질서 위에서 의미를 갖는다. 1장은 그 질서에 대한 부정을 선언하는 것이라 저자는 말한다.

1장이 도의 부정으로 시작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부정되는 것은 성인 즉 당시 용어로는 지배자의 도를 말하며 공자의 유가가 말하는 도를 말한다.

“항상 경전의 제1장은 그 경전의 이미지를 결정한다. 노자 첫장을 다시 읽어보라. 그것이 처세술인가? 레지스탕스인가? 논어의 첫 장은 학이시습지로 시작한다. 이것은 글쟁이 선비를 찬미하는 말이고 성왕의 말씀을 열심히 읽고 익히라는 권고다. 그런데 노자 첫장은 옛 성황들이 말한 도는 도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것은 글쟁이들의 말이 아니고 민중의 말이다. 민중 세력은 스스로 지배 세력이 될 수는 없지만 지배 세력을 교체할 수는 있다. 그들은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식이다. 그놈이 그놈이지만 갈아보자는 것이다. 이것은 부정이며 불가지론이다. 민중들은 ‘지금의 도는 도가 아니다’라고 외친다. ‘오늘날 너의 덕은 덕이 아니라 위선이다’(덕경 첫장인 38장)라고 외친다. 바로 무지한 자들의 혁명 선언이다. 그래서 노자는 황건의 난의 성전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노자를 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길래 그런 저항을 외친 것인가? “공자는 귀족을, 묵자는 노동자를, 노자는 몰락한 귀족을, 순자는 신흥 관료와 자본가를 대변했다고 말한다.” 그럼 구체적으로 몰락한 귀족의 어떤 사람일까? 알 수 없다. 그러나 아마도 논어 미자편의 5장에서 7장까지 나오는 은자들이 그런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충고했다. “탁한 물이 도처에 도도하게 범람하는데 누가 바꿀 수 있겠는가? 그대는 나쁜 사람을 피하는 사람을 따르는 것보다 세상을 피하는 사람을 따르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하려고 하는’ 사람이란 은자들의 조롱에 대해 공자는 이렇게 자신을 변호햇다. “벼슬하지 않는 것은 도리가 없는 것이다. 어른과 어린이의 질서를 폐기할 수 없는데 군주와 신하의 관계를 어떻게 폐기할 수 있겠는가? 자기 한 몸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중요한 사회관계를 파괴한 것이다. 군자가 벼슬하는 것은 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것이다. 도의가 행해질 수 없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었다.”

공자는 사회의 근간인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군주와 신하는 오늘날 상급자와 하급자라는 직무상의 관계이고 그 원칙은 의(義), 즉 공평하고 정직하며 공적인 일을 받들고 법을 지키며 편을 들어 사사로움을 도모하지 않으며 윗사람을 속이거나 아랫사람을 억누르지 안는 것이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구별이 있다는 것은 가정 중심의 가치관이다. 사랑에 그치지 않고 은혜를 베풀어서 피차에 언제나 돕고 이끌어주며 고나용하고 양해라며 어른을 높이고 어린이를 어루만져주는 것” (리쩌허우) 공자가 하려한 것은 그런 당연한 도리가 천하에 행해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자와 그를 조롱한 은자들이 살던 시대는 그것이 당연할 수 없는 시대엿고 시대가 그렇다는데 공자와 은자들은 이견이 없었고 논어에서 공자는 자신을 조롱하는 은자들을 존경했다.

그러나 그들의 차이는 세상이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엿다. “새나 짐승과 함께 살 수 없지 않느냐? 사람의 무리가 아니면 누구와 함께 하겠느냐? 천하가 태평하다면 내가 바꾸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기에 인간으로서 신념을 지키기 위해 현실에 굴복하지 않는 의지를 말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말에서 공자 자신이 항상 말한 사람에 대한 사랑 또는 사람다움이란 뜻인 인(仁)의 의미가 드러난다. 그러나 은자들은 동의할 수 없었을 것이다.

“노담의 제자 백구가 제나라에 도착하자 형벌을 받아 기시된 시체를 보았다. 시체를 밀어 바로 누이고 조복을 벗어 덮어주엇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곡하며 말했다.

오 그대여! 천하에는 피살자가 많은데 그대가 먼저 당했구려! 말끝마다 도둑질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하지만 영욕으로 핍박하니 이런 병통이 나타났고 재화가 한곳으로 모이니 이런 쟁투가 나타났다. 지금은 사람을 몰아 세워 병들게 하고 사람을 모아 싸우게 하고 사람의 몸을 곤궁하게 하여 한시도 쉬지 못하게 하니 이런 지경에 이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재물을 위해 간계를 부리고 지혜롭지 못하면 어리석다 하고 어려운 일을 시키고 감내하지 못하면 죄를 주고 무거운 임무를 맡기고 다하지 못하면 벌을 주고 먼 길을 가게 하고 이르지 못하면 죽인다. 그러므로 부득이 민(民)은 지혜와 힘을 다해 꾀로 죄를 모면하려 한다. 무릇 힘이 부치면 꾀를 쓰고 지혜가 부족하면 도둑질을 하는 것이다. 도둑이 횡행하는 것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옳은가?” (장자 잡편 칙양)

이런 세상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공자는 성인의 질서로 돌아가자(복례 復禮)를 말하면 지배층의 질서를 바로잡아 천하를 바로잡으려 했다. 그러나 은자들은 그런 공자를 조롱하며 공자가 되돌아가자는 성인의 질서(예)를 조롱했다. 그들은 전쟁과 살육, 착취와 억압은 권력의 본성이라 생각했다. 그들은 권력이란 것 자체가 없는 세상을 꿈꾸었다.

꿈이라고? 꿈이 아니다. 그런 시절이 있었지 않은가? 수렵채집사회에선 모두 평등했다. 누가 누구를 착취할 수 있는 힘 있는 자가 없던 시절이다. 있었던 시절로 돌아가자는 것뿐이다. 그것이 불가능한가? 노자가 말하는 무위(無爲)는 무치(無治) 즉 무정부주의이다.

“그들이 동경한 것은 자연의 자유인이다. 그 자연은 왕도 군주도 없고 인간의 조작과 다스림과 속박이 없는 때 묻지 않은 천연 그대로인 자연이다. 그러므로 무위는 자연을 설명한 말일 뿐 그 자체가 도이거나 목적은 아니다.”

노자는 다스림이란 자체, 정치권력이란 자체 그리고 그 위에서 만들어진 문명 자체가 하늘의 순리를 거스른 인위(人爲) 즉 위(僞) 즉 하늘의 순리인 도를 거스른 ‘거짓’이라 보며 인위를 거둬내고 순리를 따르는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성인과 지혜를 버려라’ ‘배움을 끊어라’와 같은 말은 인위적인 질서를 천명이라 주장하는 지배자들에게 침묵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도덕이라 하면 국민 또는 공민으로서 품성을 닦고 사회의 질서를 잘 지키라는 기율로 인식되고 도덕률이라고 통칭된다. 그러므로 도덕은 국가나 지배자나 사회를 위한 것이고 개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 도덕률은 천명이라는 신성한 권위와 권력을 가진다. 그러므로 도덕률의 생산자는 천자 또는 왕 또는 성인으로 불린다.

그러나 노자의 도덕은 자연의 도와 생명의 덕을 뜻한다. 이것은 지배자나 사회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 군주 지배가 없는 자연의 자유로운 생명을 살리고 발현케 하려는 것이다ㅓ. 그러므로 공자의 도덕은 천명인데 반해 노장의 도덕은 무치의 자연이다.”

1장의 ‘도가도 비상도’는 그 지배자들이 선포하는 도에 대한 거부이다. 너희들이 말하는 도는 가짜인 인위 노자식으로는 유위(有爲) 라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도인가? 노자는 그에 대한 답으로 그들이 말하는 도는 거짓이며 진정한 자연의 도는 다르다 말하는 선언이다. 무위자연의 도에 대한 노자의 형이상학은 그 도가 어떤 것인가 그리고 그 도는 어떻게 알 수 잇는가를 파고드는 것이다.

치도(治道)만 말하는 “공맹의 도와는 달리 노자의 도는 주역에서 말한 음양의 운동법칙과 같은 의미의 자연법을 의미한다. 이처럼 주역과 노자에서 비로소 도의 범주는 신을 대신하여 우주의 본원이란 개념으로 확장되고 정립된다. 그러나 형이상학적인 의미의 도는 노자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노자가 말하는 “도는 시대와 필요에 따라 변하는 성왕의 법이 아니라 항상 변하지 않는 자연의 법을 말하는 것이므로 상자연(常自然)이라고 표기한다. 그리고 장자에 이르러 도는 이(理)로 해석되기 시작한다.” 저자는 노자의 도 개념은 후에 성리학의 ‘태극이무극(太極而無極)’이란 테제로 이어져 이기론으로 확장되엇다고 말한다.

노자의 무정부주의는 문명 자체에 대한 거부로 확장된다. “노장이 활동하던 기원전 4세기는 철기를 발명함으로써 자연을 개발의 대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제2차 문명혁신 시기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노장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반문명 복자연(復自然)의 테제는 이러한 반자연의 제2차 문명혁신을 거부하는 것이엇다. 왜 그들은 철기문명을 거부했을까? 그것은 철기문명이 가져온 계급과 국가의 탄생을 반대하고 지배 복종의 차별과 억압에 저항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저항적인 노장의 원시 회귀 사상은 ‘기계 거부운동’으로 표현된다. 이것은 마치 18세기에 증기기관과 방적기를 발명함으로써 촉발된 제3차 문명혁신인 산업혁명이 일어나자 이에 항거하여 일어난 19세기 초의 이른바 러다이트와 같은 맥락이다.”

그러므로 대교약졸(大巧若拙)이란 노자의 말은 말 기술이 뛰어나면 졸렬해보인다는 반어가 아니라 말 그대로 기술에 대한 거부라는 장자의 해석을 따라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노자의 문명의 거부, 소국과민은 불가능한 유토피아가 아닌가? “노장의 무위자연설은 ‘자연은 낙권이며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반면 순자는 노장과는 반대로 자연을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의 불행한 것으로 보았고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자연으로 돌아가 소박한 본성을 회복하자는 노장의 무위론은 강자가 약자를 살육하는 정글로 돌아가자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러므로 순자는 노장과는 정반대로 ‘위(僞)’만이 악한 성을 선하게 할 수 잇다고 주장했다. 순자의 위(僞)는 문명을 말하고 노장의 무위는 자연을 말하는 것이므로 순자와 노장의 대립은 문명과 자연의 대결이다.’ 역사는 순자의 손을 들어주는 것같다.

“좋았던 시절의 삶이여! 그러나 정말 그랬을까? 수렵채집인의 에덴동산에는 뱀이 있었다. 어쨌든 휴일의 캠핑 같은 삶이 평생 지속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폭력의 위험이 만성적이고 상시적으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햇다. 인류에게는 포식자가 없는 상황에서 기근이 발생하지 않을 정도로 인구밀도가 낮게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전쟁 덕분이엇기 때문이다. 플라우투스는 말햇다. ‘인간은 인간에 대해 늑대다.’ 수렵채집인의 신체가 건강하고 유연했다면 그것은 살찌고 둔한 사람들이 새벽에 화살이나 창을 맞고 모두 죽었기 때문이ㅏㄷ.

현대 수렵채집인 중 2/3는 거의 항시적인 부족 전쟁 상태에 있는 것으로 확인되엇다. 87%는 연례적으로 부족 전쟁 상태에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전쟁’이라고 하지만 새벽의 습격이나 우발적인 접전, 수많은 가식적 위협 등을 표현할 뿐이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너무나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사망률은 높다, 통상 성인 남성 중 305는 살해당한다.” (매트 리들리)

문제는 그런 역사적 인류학적 근거만이 아니다. “그렇다면 군주의 노예가 되는 것을 거부하는 길은 무엇인가? 혹자는 당시 성인이라고 불린 군왕과 지배자들을 뒤엎는 민주혁명만이 해결책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2400년전 노예제 사회에서는 그런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잇는 이른바 시민계ㅔ급이 잇지도 않앗다. 그렇다면 방법은 무엇인가?

이때 노자는 노예 됨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쳤다. 문명을 거부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면 지배자들의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 잇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면 산속에 숨어 고사리나 뜯어 먹고 풀뿌리나 캐 먹고 살라는 말인가?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노자는 슬프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들의 초상화를 그린다면 공자는 뿔 관에 고나복을 입고 근엄한 고관대작의 모습일 것이며 묵자는 검은 노동복을 입고 민중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혁명가의 모습일 것이며 노자는 거지 옷을 입고 자연에 숨어 사는 은자의 모습일 것이다. 이처럼 노자의 사상적 특징은 겉모습으로만 보면 염세, 탈속, 은둔이다. 그러나 그 곳 모습은 절망과 저항이다. 이러한 노자의 양면성은 대체로 염세적인 열자와 저항적인 장자로 이어진다.

이러한 허무와 저항의 양면성은 약자와 패자의 생존 방식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승자는 몇 사람뿐이요 대다수는 패자다. 그러므로 허무와 저항은 다수 민중의 생존방식이다.’

노자는 난세에 민중들의 소망을 담아 약자와 약소국의 생존방식을 은유적이며 절망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절망에 빠진 민중들이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소망한 것은 당시 삶을 도륙하는 거짓되고 포악한 지배 ‘문명’에 대한 거부였다.

노자의 사상은 절망에서 도피하기 위해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철학인지도 모른다. 그러기 위해서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을 거부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려 했을 것이다.이러한 문명과 자연의 대칭 구조는 노자의 기본 골격이다. 강함보다 부드러우을, 밝음보다 어둠을 봉우리보다 계곡을 남성보다 여성을 선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노자에게 강함은 죽음이요 약함은 삶이다.” 그러나 노자의 사상은 사회에서의 소외를 자연과의 일체를 통해 위안받으려는 것은 소극적이지만 사회에 대한 거부와 저항을 내포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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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연재 2011-07-06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느랴고 고생했는데, 노자의 도가 '자연'의 도인가? 노자의 기초도 모르면서 구라만.....
이 책의 번역자는 노자의 기초를 모르는 사람이다. 그 이전에 우선 이 사람은 태도가 문제가. 자기가 번역을 했으면 그냥 겸손하게 남의 비판을 기다릴 것이지 지 번역이 제일 옳다.
노자사상은 '자연'하고 아무상관이 없다. 절대.

Lulu 2011-07-06 14:01   좋아요 0 | URL
책은 읽어보고 하시는 말인지요? 책은 읽지 않았다 해도 리뷰도 안 읽으셨군요. 자연의 도란 해석을 부정하는 책입니다만? 노자가 자연의 도이건 아니건 무슨 상관인지 또 노자를 그렇게 읽건 아니건 왜 문제인지 알수가 없군요. 그렇게 뼈다귀나 만지는 태도 때문에 철학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학문이 된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이성적 낙관주의자 - 번영은 어떻게 진화하는가?
매트 리들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인식 해제 / 김영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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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저자의 분노와 짜증 때문에 쓰여졋다.

“1970년대 나는 영국의 10대였다. 내가 읽는 모든 신문은 석유가 고갈되고 화학물질로 인한 암이 대규모로 퍼지고 식량은 부족해지고 빙하시대가 다시 도래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영국 경제가 상대적으로 침체하는 것은 불가피하며 절대적인 침체에 빠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햇다.

그러나 1980년대와 1990년대 영국은 갑작스러운 호황과 경제성장을 누렷다. 건강, 수명, 환경이 좋아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 모든 현상은 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스물한 살 때 나는 깨달았다. 인류의 미래에 대해 뭔가 낙관적인 것을 말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을. 나는 화가 났다. 세상이 훨씬 나아질 수 있다고 가르치거나 말해준 사람은 어째서 아무도 없었는가. 웬일인지 나는 낙담하라는 충고만 들었다.” 그런데 더 화가 나는 것은 “오늘날 내 아이들도 그렇다”는 것이다.

저자를 화나게 하고 짜증나게 하는 허튼 소리들은 죽지도 않고 오고 또 온다. 한가지가 헛소리로 들통나면 또 다른 헛소리가 옷만 바꿔 또 나타난다. 그 많은 헛소리 중에 저자를 정말 화나게 한 것은 ‘바이오 디젤’이다.

“만일 미국이 모든 수송기관의 연료를 바이오연료로 대체하려 든다면? 현재 식량생산에 사용되는 농경지의 1.3배에 해당하는 땅이 필요하게 된다. 그러면 식량은 어디서 생산한단 말인가?

재생가능 에너지 시설은 엄청난 면적의 땅을 훼손하는 괴물이다. 여기에 ‘그린’이니 ‘청정’이니 하는 라벨을 붙이는 것이 나에게는 무척 기괴하게 비친다.

‘그릇된 잡신을 신성시하는 일은 이제 그만두자.’ 에너지 전문가 제시 오서벨의 말이다. ‘그,리고 이단의 성가를 부르자. 재생 가능 에너지는 청정하지 않다.’”

바이오 디젤로 대체한다고 탄소배출이 줄어드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바이오 연료를 재배하기 위해 드는 비료와 경작에 쓰는 에너지, 수송에 들어가는 에너지 때문에 더 많은 탄소가 배출된다. 문제는 그것 뿐이 아니다. 바이오 연료를 만들자고 하는 바람에 식량가격이 폭등하여 멕시코와 인도네시아에선 폭동이 일어났었다.

저자가 보기에 그린피스를 비롯한 ‘직업적’ 환경운동가들은 제정신이 아니다. 그들의 근거없는 헛짓은 그것 뿐만이 아니다. GMO를 반대한다고 지구촌을 들었다 놨다 했지만 아무 근거도 찾을 수 없으니 이제 새로운 이슈를 찾아 바이오 연료다!

그 이전엔 원전 반대를 외쳤다. 그럼 원전 말고 뭘로 전기를 만들지? 독일의 녹색당은 전기를 수입하면 된다고 했다. 그럼 어디서? 프랑스에서. 프랑스에선 원자력발전으로 전기를 만든다.

저자가 보기에 이들은 제정신이 아니다. 지구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밥벌이에 불과한 헛짓들이다.

저자가 예로 드는 환경론자들의 배부른 소리는 이외에도 여러가지이다. 저자는 그 모든 헛짓들의 근거가 되는 문명비관론을 뿌리 뽑기 위해 이책을 썼다. 그렇다고 도대체 어떻게?

저자의 논리는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니다. 19세기 풍의 진보론이니까. 저자가 이 두꺼운 책으로 보여주려는 것은 19세기식의 진보론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이며 시도 때도 없이 우리를 겁주고 피곤하게 만들며 피해를 주는 헛소리들을 날려버리기에 충분한 파워가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궁극적인 논지는 인간의 미래는 밝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래를 아무리 이야기해봤자 믿어줄 사람은 없다. 저자도 자신이 점쟁이라 주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미래가 어떠할 것이라는 어떤 구체적인 주장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저자는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지금 현재의 문명이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었는지를 보면 인간의 미래는 밝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낙관론의 근거를 애덤 스미스의 이론, 그중에서도 노동분업이란 개념에 올려놓는다. 인간이란 종의 역사는 번영을 향한 역사였으며 번영의 기초는 노동분업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인간이란 종은 번영을 누릴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시간, 그것이 핵심이다. 달러나 금은 잊어버리자. 어떤 것의 가치를 재는 진정한 척도는 그것을 얻기 위해 소비해야 하는 시간이다. 동일한 양의 노동을 통해 번 돈으로 얻을 수 있는 재화와 용역이 늘어나는 것이 바로 번영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부유함의 척도는 시간이라 말한다.

“그것은 교환과 전문화, 그리고 그 결과인 노동의 분업에서 온다. 사슴은 먹을거리를 스스로 구해야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다른 사람에게 먹을거리를 구하게 하고 자신은 그 사람을 위해 무언가 다른 일을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두 사람 다 시간을 절약한다.” 번영이란 부란 여가시간의 증대를 말한다. 그리고 빈곤이란 교환 또는 분업을 하지 않는 것 즉 자급자족이다.

“스스로에게 기초적으로 필요한 서비스를 살 수 있을 만큼의 가격에 자신의 시간을 팔 수 없다면 바로 그만큼 당신은 빈곤한 것이다. 번영 즉 성장이라는 말은 자급자족에서 상호의존으로 이행하는 것과 동의어이다.”

교환, 분업은 단순히 쓸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가 많아진다는 것만 의미하는게 아니다. “당신은 타인의 노동과 자원만 소비하고 있는게 아니다. 타인의 발명도 소비하고 잇다. 루이 14세에게는 없었던 수많은 하인이 당신에게는 있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전화), 존 로지 베어드(TV), 팀 버너스-리 경(웹), 토머스 크래퍼(수세식 변기), 조너스 소크(소아마비 백신)를 비롯한 수많은 발명가가 당신을 위해 일하고 있다.”

교환이 가능하게 하는 시간의 ‘창조’ 그리고 시간의 창조에 의해 가능해지는 이노베이션 달리 말해 지식이 인류의 핵심 내력이며 인간이 다른 사촌 경쟁자들을 제칠 수 있었던 이유라 저자는 말한다.

“20만년전 이후 인류의 기술은 빠르게 진보해왔다.” 그 이유에 대해 인류학자들은 기후나 유전으로 설명하려 하지만 저자는 ‘핵심은 경제학에 있다’고 주장한다. 교역을 통해 분업이 가능해지고 지식을 축적할 수 있게 되면서 “집단지능을 이루게 되는 무언가를 서로에게 그리고 함께 하기 시작햇다.” 노동분업을 하는 동물은 사람 뿐만이 아니다. 개미도 벌도 늑대도 사회적 동물은 모두 분업을 한다. 그러나 “부부도 아니고 혈연관계도 없는 사람들 간에 사상 처음으로” 분업이 이루어졌다. 그 분업은 교환의 네트웤을 만들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눠갖고 맞바꾸고 물물교환하고 거래한 것이다. 이 때문에 나사리우스 고둥 껍데기가 지중해에서 (아프리카) 내륙까지 이동한 것이다. 교환은 전문화를 촉진했고 전문화는 기술 혁신을 기술 혁신은 더 많은 전문화를 초래햇으며 이것이 또다시 더 많은 교환으로 이어졌다.” 저자는 이런 현상을 하이에크를 따라 카탈락시(catallaxy, 노동의 분업이 진전됨에 따라 탄생한 가능성의 무한한 확장)라고 부른다.

“교환은 발명되어야 햇다. 대부분의 동물에게 이것은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애덤 스미스는 ‘개가 다른 개와 공평하고도 의도적으로 뼈다귀를 교환하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한다.

그러한 교환은 성별 분업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라 저자는 추측한다. ‘남자는 사냥하고 여자와 아이들은 채집한다’는 철칙은 교환을 전제로 한 분업이다. “남녀 사이에 하나의 진화적 계약이 성립된 것으로 볼 수 잇다. 남성은 여성을 성적으로 독점하는 대신 고기를 구해오고 도둑이나 불량배로부터 불을 보호한다. 여성은 자녀 양육에 남성의 도움을 받는 대가로 채소를 구해오고 요리를 대부분 담당한다. 인간이 대형 유인원 중 ‘부부 한 쌍’관계가 오래가는 윺일한 종인 이유를 이로써 설명할 수 잇을지 모른다.’

남녀의 분업이 성립되면서 같은 원리가 다른 사람에게도 확장되었다고 저자는 추측한다. 첫번째 확장은 집단 내의 노동분업이었다. 그리고 그 분업은 교역을 통해 집단 밖으로 확장되었다. 그리고 그 확장 덕분에 우리의 조상들은 ‘먼 친척을 쓸어없애는데 매우 능”할 수 있었다. “사람과에 속하는 그 전의 종들은 하지 못햇던 일이다.”

“우크라이나 메체리히 지역의 18,000년 전 유적에서는 흑해산 조가비와 발트 해 연안산 호박으로 만든 장신구가 발견되었다. 이들 재료가 수백 킬로미터 밖에서부터 이곳까지 교역을 통해 이동했음을 의미한다.

이는 네안데르탈인의 행태와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이들의 석기는 사용장소에서 걸어서 한 시간 이내에 있는 곳의 돌로 만들어졌다.

이것은 내가 보기에 핵심적인 단서다. 아프리카 출신의 경쟁자들이 훨씬 많은 종류의 도구를 만드는 동안 네안데르탈인들은 여전히 (백만년전과 똑 같은 모양, 똑 같은 기술로) 주먹도끼를 만들어 쓴 사실을 설명할 단서 말이다. 교역이 없으면 이노베이션은 정말 일어나지 않는다.

8만-2만년전에 발명된 것이 그 전 100만년 동안의 발명품보다 많다. 당시 이노베이션의 속도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매우 느리지만 직립원인의 기준으로 보면 번개처럼 빨랐다.”

그러면 조상들은 어떻게 왜 교역을 했을까? 저자는 이런 상상을 해본다. “예컨데 풀이 무성한 초원지대에 사는 아담을 상상해보라. 이곳에는 겨울에 순록이 많다. 그런데 여기서 걸어서 며칠 걸리는 곳의 해안에는 여름에 고기가 많다. 그는 겨울에는 사냥을 하고 여름에는 해안으로 이주해 고기를 잡을 수 잇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이동하느라 시간을 낭비할 뿐 아니라 다른 부족의 영역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또한 두가지 다른 기술에 모두 익숙해져야 한다. 그렇다면 대안은? 아담이 사냥을 계속 하면서 해안의 어부인 오즈와 교역을 하면 어떨까?”

교역은 성공적이었다. 아담은 물고기 대신 말린 순록을 주어 위험도 덜고 힘도 덜면서 다양한 식단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다 아담은 깨닫는다. 순록뿔을 그냥 주는 것보다 바늘을 만들면 물고기를 더 많이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오즈는 바늘을 받다 나중에 미늘이 있는 낚시 바늘을 요구한다. 아담은 훈제된 물고기를 요구한다. 그러다 가죽도 무두질해 바꾸게 된다. “이제 아담은 자신이 바늘보다 가죽을 만드는데 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가죽에 전문화한다. 순록 뿔은 자기 부족 내의 누군가에 주고 대신 가죽을 받는 것이다.”

교역은 전문화를 낳았고 전문화는 혁신을 낳았다. 그러면 교역을 하면서도 왜 수만년동안 경제적 진보가 느렸는가? 저자는 인간의 고립주의 또는 집단주의 성향 때문이라 생각한다. 개미가 다른 무리의 개미를 만나면 죽이려 들듯이 조상들도 마찬가지였다.

“일반적으로 집단 내에서 서로 협동을 잘하는 종일수록 집단 간에는 더 심하게 적대한다. 인류는 고도로 집단적인 종으로서 집단 내에서는 서로 돕고 집단 간에는 서로 폭력을 행사하는 버릇을 여전히 가지고 잇다.”

그런 이유로 “뉴기니에는 800개 이상의 언어가 있다. 하지만 이웃 집단의 언어는 영어와 프랑스어만큼이나 서로 알아듣기 어렵다. 지구상에는 여전히 7000개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다. 각각의 언어를 사용하는 집단은 이웃 집단으로부터 용어, 전통, 의례, 취향을 도입하는데 뚜렷한 저항을 보인다. 그럼으로써 전문화와 분업의 효과를 제한해버린다.” 교역이 전문화와 분업의 효과를 보이려면 시장의 규모가 커야 한다.

“당신이 고기잡이 작살을 한 개 만들어야 한다면 작살 만드는 교묘한 도구부터 제작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그러나 어부 다섯 명이 쓸 작살을 만들어야 한다면 작살 제작 도구를 먼저 만드는 것이 합리적으로 시간을 절약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집단주의의 장벽은 시장의 규모를 제한했고 혁신을 제한했다. 시장의 규모를 키우는네트웤이 제한될 때 결과는 정체나 퇴보이다. “현대 수렵채집인들의 경우 인구가 많은 교역 상태게 접근할 기회를 차단당한 지역이 많다. 예컨데 인구밀도가 낮은 호주 그중에서도 태즈메니아 섬과 안다만 제도가 그렇다. 이 경우 이들의 기술적 기교는 정체되어 있으며 네안데르탈인 수준 이상으로 발전한 경우가 거의 없다.” 우리 조상들의 우위를 “만들어낸 것은 그들의 교역 네트워크, 즉 집단지능이다.”

그러나 교역은 인간의 본능에 각인되어 잇다고 저자는 본다. “모든 탐험가는 새로운 부족을 만난 지 몇 시간 또는 며칠 내에 교역을 시작했다. 1834년 티에라 델 푸에[고에서 다윈이라는 젊은 박물학자가가 어떤 수렵채집인들과 얼굴을 맞대게 되었다. ‘일부 원주민은 자신들이 물물교환의 개념을 확실히 알고 잇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었다. 나는 한 원주민에게 대가를 바란다는 어떤 몸짓도 없이 큰 못(가장 귀중한 선물)을 주었다. 그는 즉시 물고기 두 마리를 들더니 창에 꿰어서 나에게 건넸다.’”

우리의 사촌들과 달리 조상들이 집단주의의 장벽을 넘을 수 있었던 것은 낯선 사람을 ‘명예 친구’로 받아들이는 능력 덕분이었다. 처음 보는 ‘타인을 신뢰할 줄 아는 인간의 재능 덕분이다. 모르는 사람을 처음 대할 때 당신이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은 무엇인가? 아마도 미소를 짓는 경우가 제일 흔할 것이다. 신뢰를 나타내는 작고 본능적인 제스처 말이다. 현대 사회에서 놀라운 점은 당신과 서로 모르는 가게 주인이 서로를 믿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신뢰는 후퇴하는 일도 자주 있었지만 대체로 점진적이고 발전적으로 성장하고 넓어지고 깊어졋다. 이는 교환 덕분이다. 교환은 신뢰를 낳으며 그 역도 똑 같은 정도로 진이다. 당신은 의심스럽고 부정직한 사회에 살고 잇다고 스스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는 막대한 신뢰의 수혜자다. 신뢰가 없었다면 사람들을 잘살게 만드는 노동의 작은 조각들의 교환은 결코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저자는 수렵채집과 같은 단순한 경제에서 사용하는 기술조차도 교역을 통한 전문화 없이는 유지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인류학자들은 교환할 잉여를 생산할 수 있는 농업이 상업을 낳았을 것이라 추정하지만 저자는 그 이전 구석기 시대부터 교역이 있었고 교역 없이는 수렵채집 경제의 단순한 생활방식조차 유지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농업 자체가 가능했던 이유를 교역 때문이라 저자는 말한다. “농업에 전문화하고 잉여 식량을 생산할 인센티브가” 교역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최초의 농업 정착지들과 관련해 흥미로운 점 가운데 하나는 이들 지역이 교역 타운이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농업을 발명하게 만든 압력 중 하나는 부유한 상인들에게 식량을 대고 취할 수 있는 이익으로부터 나왔다고 추측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 목적은 흑요석이나 조개껍데기 혹은 기타 좀 더 잘 부서지거나 썩기 쉬운 물건으로 교환할 수 있는 잉여물을 창출하는 데 있었을 것이다. 교역이 농업보다 먼저 있었다. 농업은 교역의 또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았다. 농업이 작동하는 것은 교역망 속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다 복잡한 경제인 농업 자체가 저자에 따르면 인간 이외의 “다른 종을 포함시키기 위해 전문화와 교환을 확장한 것이다.” 그리고 농업으로 자본의 축적을 가능해졌고 “자본이 등장하자 혁신의 속도가 곧바로 빨라졌다. 초기 수익이 전혀 없는 프로젝트에 시간과 자산을 투입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농업의 등장으로 변한 또 다른 것은 인구밀도의 폭증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구밀도가 높아지면 교역 네트웤의 밀도도 높아지고 네트웤의 밀도가 높아지면 축적된 자본과 함께 혁신의 속도도 높아진다.

저자는 교역의 확장은 인간의 도덕도 혁신햇다고 말한다. “상업화 이전의 세계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잔인한 일이 통상 일어나는 곳이었다.” 그러나 산업혁명을 전후해 “비로소 노예제도, 아동노동, 여우튕기기나 투계 같은 여흥이 용납되지 않게 되엇다. 지난 20세기는 생활이 더욱 많이 상업화된 시대였다.” 그러므로 “시장 시스템은 악덕이기는커녕 이기주의를 완전히 고결한 어떤 것으로 바꾸어놓는 무엇이다. 사람이 살해될 확률은 17세기 이후 모든 유럽 국가에서 지속적으로 떨어졋다. 이 또한 교역에 몰두한 네델란드와 잉글랜드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엇다.” 그러므로 환경운동가들의 낭만주의와 같이 “경제적 변화는 포용하면서 그 사회적 결과는 혐오하는 보수주의 운동, 사회적 결과는 사랑함녀서 이를 발생시킨 경제적 원천은 미워하는 자유주의 운동은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자본주의는 노예제를 끝장냈고 자본주의와 함께 빈곤도 감소했다. 17세기 영국인의 “절반이 비참한 가난 속에서 살았다. 이들은 자선 구호를 받지 못하면 굶어죽곤 했다. 산업혁명기에도 가난한 사람은 많았지만 이런 규모는 아니었고 정도가 이렇게 심하지도 않았다.

불평등 문제도 그렇다. 신장과 생존 자녀수를 보면 최상류층과 극빈층간의 차이는 산업혁명기에 줄어들었다. 산업혁명 초기의 빈곤이 우리에게 그렇게 심하게 느껴지는 것은 작가와 정치인들이 처음으로 눈길을 돌리고 문제로 삼았기 때문이지 전에 없던 빈곤이 새로 생겼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자본주의는 번영을 가져왔다. “자본가의 위업은 실크 스타킹을 여왕들에게 더 많이 공급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여공들도 어렵지 않게 구매할 수 있게 만드는데 있다. 자본가는 스타킹 살 돈을 벌기 위해 여공들이 해야 하는 일의 양을 꾸준히 줄여준다.” 슘페터의 말이다.

그러나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비관적으로 ‘성장의 종말’을 예보했다. 스미스의 ‘보이지 앙않는 손’이 완전한 정보를 가진 무한한 수의 시장 참가자들을 이윤 제로의 균형점과 수익 제로 상태로 이끌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완전경쟁 시장이라는 개념은 그저 추상화에 불과할 뿐이 아니다. 완전한 바보짓이다. 책에서 균형이라는 단어를 보면 앙 지워버려라.” 시장의 확대로 만들어지는 혁신, “신지식의 가능성이 정체상태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어딘가의 누군가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낸다. 발명의 목적은 시장에 불완전성을 만들어내고 이를 이용하려는 것이다.” 경제학이 가정하듯 완전정보는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하이에크가 주장햇듯, 지식은 사회전체에 퍼져 있으며 이는 각자가 나름의 특수한 관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식은 결코 한 장소에 집결될 수 없다. 지식은 개인적이 아니라 집단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저자는 시장에 의해 가능한 집단지성을 이노베이션 영구기관이라 부른다. “현대 세계에서 혁신을 지속적으로 확대시키는 것은 아이디어 교환의 지속적인 확대이다. 지난 2세기 동안 경제가 급속히 성장한 것은 그 전의 어느 시대보다도 아이디어들이 서로 잘 섞였기 때문이다. 발견은 고속 증식하는 연쇄반응이고 혁신은 피드백 루프이며 발명은 자기 충족적 예언이다. 나라에서 나라로 산업에서 산업으로 쉽게 옮겨다닐 수 있다는 전제만 충족된다면 말이다. 그러므로 자유교환 경제 하에서 균형과 침체는 피할 수 있는 것일 뿐 아니라 애초에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들리는 것은 종말론자들의 북소리라고 저자는 한탄한다. “20세기 후반의 특징은 절망적 예언이 봇물을 이뤘다는 것이다. 그 규모는 전례 없는 것이었다. 파멸이 잇따라 예고됐다. 핵전쟁, 오염, 인구 과잉, 기근, 질병, 폭력, 기술의 복수…” 그러나 어느 것도 틀리지 않은 것이 없었다.

왜 그랬을까? “인류는 집단적인 문제 해결 기계가 되었으며 이 기계는 수단을 변경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한다. 이제 세상은 네트웤으로 연결되었고 아이디어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문란하게 서로 섹스를 나누고 잇다. 그러니 혁신솓도는 배가도리 것이다. 경제적 진화 덕분에 21세기의 생활수준은 과거 상상도 못했던 수준으로 높아질 것이고 심지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조자 생존적 필요만이 아니라 욕구를 충족시킬 여윺를 갖게 될 것이다.

물론 고통받고 허덕이는 사람들의 수는 인간이라면 당연히 바랄 수준보다 아직도 훨씬 많다. 활발한(‘행동하는’이 맞을 듯. active가 원어로 보이는데 오역으로 보임) 낙관주의를 갖는 것이 도덕적 의무인 것은 정확히 이 때문이다.”

빈곤의 미래는 밝을 것이고 밝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는 것이다. 우리에겐 이미 의무를 행할 수단이 주어져 있다. 그리고 그 수단과 의무는 환경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저자는 말한다.

“환경 재앙이 어렴풋이 다가오고 있으니 절망하라고 충고하거나 성장을 늦추하고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세상을 개선하기 위해 인류가 해야 할 일은 아직도 너무나 많이 남아 있다./ 이런 사람들이 실제로나 도덕적 관점에서나 잘못을 저지르고 있을지 모른다고 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기술발전이 전혀 없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 미래를 예측하고 그것이 끔찍하리라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흔한 수법이다. 이것은 틀렸다는 얘기가 아니다. 만일 발명과 발견이 계속 이어지지 않는다면 미래는 정말 끔찍할 것이다.

인간이 교환과 전문화를 번창시킬 수 있는 지역이 어딘가에 있는 한, 지도자들이 이를 돕든 방해하든 문화는 진화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번영이 확산되고 기술이 진보하고 빈곤이 줄어들며 질병이 후퇴하고 출산율이 떨어지며 행복이 증가하고 폭력이 축소되며 환경이 개선되고 자연보전 지역이 확대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21세기는 살기에 아주 근사한 시대가 될 것이다. 우리 모두 거리낌 없이 낙관주의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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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호의 대한민국 기업흥망사 - 실패의 역사에서 배우는 100년 기업의 조건
공병호 지음 / 해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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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 쌍방울, 우성, 새한, 뉴코아, 대농, 한일, 갑일, 쌍용, 해태, 한보, 극동, 동아 그리고 대우.

이 이름들의 공통점은 외환위기와 함께 사라져간 재벌들이란 것이다. 외환위기는 재벌의 위기였다. 그러나 그 위기는 2류 재벌의 위기였다. (다음은 외환위기에 대해 썼던 글을 재활용한 것이다. 외환위기에 대해 새로 쓰기엔 게으름을 이길 수 없었다.)

“외환위기는 공식적으로 1997년 11월 7일 환율절하와 함께 시작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위기는 1996년부터 시작되었다. 1995년부터 수출이 줄면서 내수가 위축되었고 1996년 이틀에 하나씩 189개 건설회사가 파산했다(그 중 대다수는 대형건설사들이었다). 건설업이 무너지면서 철강수요가 줄어든데다 자동차, 기계, 전자, 조선업 등 수출부문의 수요감소가 겹치면서 1993-95년 반도체 호황으로 내수경기가 좋을 때 시설을 확장한 한보, 삼미, 기아가 차례로 무너졌고 역시 호경기 때 사세를 확장했던 해태, 뉴코아, 대농, 진로, 한신 등 내수부문의 재벌들이 무너졌다. 1999년 5대 재벌 중 대우가 파산할 때까지 25개 재벌이(이중 40%는 외환위기 직전에) 빚의 무게에 압사당하면서 외환위기는 막을 내린다.

그러나 정작 수출을 주도하던 삼성, LG, 현대, 대우는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았다. 대우의 파산은 자동차 산업에 무모한 투자를 한 것이 원인이지 전자산업과는 무관하다. 1995년 주력인 반도체 부문의 수익이 감소하자 삼성전자는 TV, 냉장고, 핸드폰 등의 마케팅에 주력했다. 1996년 반도체 판매가 17% 감소했지만 비 반도체부문 매출이 31% 증가하여 삼성전자의 1996년 매출은 1995년을 상회한다.

‘계란은 한 바구니에 담는 것이 아니다’는 속담처럼 다각화는 리스크를 분산하기 위한 전략이다. 그러나 2류 재벌들은 그러한 전략을 구사하기엔 너무 작았다. 리스크를 분산하지 못하고 대부분의 매출을 자동차, 철강, 건설, 유통 등 특정 시장에 의존하던 한보, 삼미, 기아. 해태는 파산할 수 밖에 없었다. 2류 재벌들이 무너지면서 상위재벌들의 경제지배력은 더욱 강화된다. 1996년에서 1999년 30대 그룹 중 4대 그룹의 자산은 전체의 48%에서 58%로 증가하였다.

경제의 집중도가 높으면 기업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어떤 중간재를 만들던 그룹 안에서 대량으로 소화할 수 있으므로 다양한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 합리적이며 경제전체로 볼 때 제품의 다양성이 줄어든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을 내부에서 해결하는 수직계열화는 거대한 고정비용을 만든다. 부품과 원료를 내부에서 조달한다면 중간재를 공급하는 자회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동일한 투자로 되도록 더 적은 품목에 더 많은 물량을 만들어야 비용을 낮출 수 있고 그룹 전체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러므로 재벌은 소수의 산업에서 적은 품목의 제품을 만들게 되었고 철강, 자동차, 전자제품, 반도체 등 규모가 클수록 유리한 시장에서 세계적인 기업이 되기 위해 노력했으며 이윤율보다는 규모와 시장점유율을 우선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시장구조에서 재벌이 만드는 제품의 다양성은 줄어들었고 반도체 등 재벌의 주력시장이 침체된 것이 외환위기의 원인이 된 것처럼 해당 시장의 주기에 따라 재벌에 의존하는 한국경제 역시 번지점프를 하면서 외적 충격에 취약한 경제구조를 갖게 되었다.

외환위기 이전 한국과 (경제집중도가 낮은) 대만의 반도체 산업을 비교하면 한국은 시장규모가 큰 메모리에 특화되어 있었고 대만은 특수한 목적에 맞춘 소량, 다품종 생산에 특화되어 있었다. 물론 장난감 강아지가 ‘왈왈’ 짖는 소리를 내는데 쓰이는, 주문자의 필요에 맞추는 칩들이 반도체 시장의 꽃이라 할 수는 없고 그러한 차이는 수출규모의 차이로 나타났다. 반도체뿐 아니라 상위 재벌들이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등에 특화한 것 역시 동일한 전략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리스크가 크게 마련이다. DRAM 가격이 오르면서 공급이 늘었고 공급이 늘면서 1995년 $54이던 16M DRAM의 가격은 1996년 $13, 1997년 $3로 폭락한다. 메모리 가격이 떨어지면서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 대만은 다른 제품을 팔아 충격을 비껴갔지만 수출의 12%를 메모리에 의존하던 한국은 충격을 완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외환위기를 겪게 된다.

1995년 30%에 달하던 수출증가율은 1996년 마이너스로 돌아선다. 반도체뿐 아니라 1996년 한국의 주력시장인 석유화학, 철강, 전자 시장에서 평균수출가격은 1995-96년 6%, 1996-97년 15% 떨어진다. 그러나 다양한 제품을 수출하는 대만의 수출단가는 같은 기간 한국의 반정도 떨어지는데 그쳤다.

그러나 수출이 어려워지면서 파산한 것은 수출기업이 아니라 건설, 철강, 유통 등 내수업종에 종사하는 2류 재벌들이었다. 충분히 다각화되어 있는 상위재벌들은 리스크를 회피하기에 충분히 다양한 제품군을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상위재벌들에게 자원이 집중된 결과 경제 전체로는 다양성이 작아질 수 밖에 없었고 이는 외부충격에 취약한 경제구조로 나타났으며 그 극적인 결과가 외환위기였다.

철강, 건설업종의 과잉투자를 외환위기의 원인이라 말한다. 상위재벌이 지배하는 전자, 자동차 등과 달리 철강, 건설업은 진입장벽이 낮은 업종이었다. 외환위기로 무너진 2류 재벌들은 5대재벌의 지배력이 덜한 업종에 진출할 수 밖에 없었다. 수출수요가 갑작스럽게 감소하면서 경제전체가 충격을 받았을 때 5대재벌에선 1/5이 2류 재벌에선 반이 3류 재벌은 1/3이 무너져 2류 재벌이 가장 심한 타격을 받았다.”

외환위기 이후 경제력은 더욱 집중되었고 경제의 활력은 집중도와 반비례해 줄어들었다. 저성장, 양극화는 집중도 증가의 결과이다. 오늘날 한국경제를 먹여살리는 산업은 전자, 자동차, 석유화학, 철강 등이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은 70년대에 씨가 뿌려진 산업들이라는 것이다. 그 이후 한국경제의 역동성은 사라졌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한때 벤처붐이 한번 있었다. 경제력 집중이 완화되고 경제의 성장동력이 만들어질 것이라는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잊혀진 꿈에 불과하다. 외환위기로 그 많은 2류들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그들의 생존은 87년에 결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책에서 다루어지는 사라진 재벌들의 대다수는 다각화에 실패해 무너졋다. 다각화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다각화는 분명 필요햇다. 주력업종이 사양길을 걷고 있거나 더 이상 성장을 기대할 수 없거나 업종 자체의 성격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변덕이 심한 널뛰기를 하거나 이책에서 다루어지는 2류들이 다각화를 한 이유는 여러가지이다. 대부분은 87년을 전후한 충격에 대한 대응이었다고 볼 수 있다. 몇 년만에 임금이 3배가 오르면서 사업성이 없어진 섬유업종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이책은 2류 재벌들이 직면했던 구조적인 문제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언제 사업이 어렵지 않은 때가 있었는가? 언제 어디서나 어려움은 차고 넘친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문제를 인식하고 해법을 내놓는 사람이 문제이다. 저자의 관점은 그런 것같다.

실패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은 배우기 위해서다. 성공사례를 보아 봤자. 배울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의 성공이 그때 그 사람에게 특수한 상황이고 행운인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누구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해서 성공할 확률은 0.3%이다. 어떤 새로운 기술을 기초로 제품을 만들려는 회사를 차린다고 하자. 회사가 성공하려면 자금, 사람, 설비, 고객 등 10가지 요소가 필요하고 이 모든 것이 맞아떨어질 뿐더러 서로 상승작용을 해야 성공을 한다. 드물 수 밖에 없다.” (‘실패학의 법칙’ 리뷰에서)

실패도 성공만큼이나 드물다.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산업재해보험사의 조사관이었던 하인리히는 하나의 사고가 나기 전엔 29건의 사소한 사고가 있었고 300건의 아차할 뻔한 불발사고가 있었다고 말한다. 사고 즉 실패가 나올 확율은 0.3% 이하이다.

그러나 실패는 성공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사고를 막으려면 28건과 300건의 불발사고가 났을 때 메커니즘을 고치면 실패를 막을 수 잇다. 성공처럼 10박자가 맞아떨어져야하는 어처구니없는 수준의 확률을 다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류 재벌들의 실패를 돌아보는 것은 87년을 전후해 한국경제의 체질변화란 도전이 무엇이엇는가보다 그 도전에 응전하는데 왜 실패했는가 그들의 대응에서 어떤 메커니즘이 잘못되었는가를 돌아보는 것이다. 저자는 무너져간 2류들이 왜 망했는가를 더듬으면서 많은 경우 피할 수 있는 인간적인 이유들이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여러가지 이유를 들고 있지만 과욕, 과신, 과속의 3과로 요약한다.

대우의 예를 들어보자. “나는 일을 벌이기를 좋아한다. 도대체 가만히 잇지를 못하는 편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움직여야 한다.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자꾸만 일을 만들어내게 된다.” 김우중 전회장의 말이다.

저자는 대우의 성공과 실패가 모두 이말에 있었다고 말한다. 많고 세계는 넓다는 ‘세계경영’은 일 벌이기 좋아하는 김우중 철학의 궁극이엇다. 그러나 “전선은 엄청나게 넓어졋지만 실질적인 경영은 현장의 전문경영인이 아니라 여전히 김우중 회장 혼자서 진두지휘하는 형식이엇다. ‘대우그룹이 그처럼 전선을 넓히는 세계경영을 뒷받침할 수 있는 시스템적 노하우를 갖고 잇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러나 대우그룹의 기업 확장전략에서는 시스템적인 접근보다는 김 회장의 개인적인 판단에 따라 이루어진 부분이 많았다. 대우그룹의 문제는 기업 규모가 재계 3위로 커졌는데도 김회장이 혼자 끌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한 점이었다. 과감한 도전 정신이 무모함으로 연결되지 않기 위해서는 체계화된 과정을 통해서 육성되는 실질적인 경영자 풀이 존재해야 했다. 그리고 회장은 자신의 능력을 과도하게 신뢰하지 않고 권한위임으로 각자가 자기 역할 이상을 맡도록 독려해야 햇다.” 그러나 일 벌이기 좋아하는 부지런한 오너는 권한을 위임하지 않았다. 사람을 키우지 못했고 주변 사람들을 거수기로 만들었으며 시스템도 갖춰지지 않았다. “제대로 사람 움직이기가 사업의 핵심이라면 김우중회장은 매우 중요한 조직관리 부분에서 실패를 보이고 말앗다.”

지금 와서 대우와 함께 죽어간 기업들에게 이책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의 죽음이란 수업료를 내고 가르쳐준 교훈은 기억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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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바로 일하라 - 성과는 일벌레를 좋아하지 않는다
제이슨 프라이드 & 데이비드 하이네마이어 핸슨 지음, 정성묵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이책은 별거 아니다. 흔하디 흔한 경영 에세이다. 어떤 한가지 뚜렷한 주제를 놓고 그 주제를 논하는 책이 아니라 회사를 경영하면서 느낀 것 경험한 것을 두서 없이 이것 저것 늘어놓았다는 말이다. 이책은 저자들이 직원들을 상대로 회사 블로그에 포스팅햇던 것들이고 책으로 낼 생각은 없던 것이다. 그때 그때 생각나는대로 필요에 따라 쓴 것들을 편집한 것이니 이책에서 어떤 체계를 기대할 수는 없다.

물론 이책의 내용은 주제 별로 분류되어 있다. 그러니 체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이책은 처음부터 읽어나갈 필요 없이 아무데나 어디 부분을 읽어도 되니 체계가 있다고 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체계가 없다는 것은 이책의 장점이기도 하다. 체계를 위해 내용을 잘라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책을 읽다보면 저자들이 회사를 어떻게 경영하는지가 그려진다. 따끈한 생생함이 그대로 책에 담아졌다는 말이다.

이책의 내용은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다른 책에도 다 나오는 것들이다. 계획, 회의, 사훈(또는 비전), 자금조달, 인력채용, 성장이냐 이익이냐, 핵심역량, 등등. 그리고 그런 주제들에 대한 내용도 새롭지는 않다.

그렇다면 이책은 읽을 가치가 있는가? 결론을 말하자면, 있다. 현장의 생생함 때문이다.

“일을 할 때는 그 일을 하는 이유를 늘 잊지 말아야 한다. 위대한 기업에는 위대한 제품이나 서비스만이 아니라 위대한 가치관이 있다. 우리도 소신이 있어야 한다. 무엇을 위해 싸우려는지 알아야 한다. 그런 뒤에는 세상을 향해 그 소신을 펼쳐야 한다.

강한 소신은 열혈팬을 끌어들인다. 굳이 광고를 내지 않아도 입소문만으로 인기가 훨씬 더 빠르고도 멀리까지 퍼져나간다.”

쉽고 간결하다는 것 외에는 새로울 것이 없다. ‘Built to Last’와 ‘Good to Great’ 이후 상식이 된 견해를 저자 나름의 말로 풀어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강한 소신에는 대가가 따른다. 적잖은 사람이 등을 돌릴 것이다. 오만하고 고집스럽다는 비난이 날아올 것이다. 이것이 인생이다.” 이런 말을 해주는 책은 정말 정말 드물다. 좋은 가치의 장점만 말하지 그 난점은 빠진 경우가 경영서적의 약점이다. 이유야 여러가지이겠지만 실제 현장의 목소리가 아니기 때문이라 짐작된다. 그러나 이책은 경영의 상식을 현장의 관점에서 쉽고 간결하게 말한다는 장점이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책은 현장의 실무에서만 알 수 있는 내용들로 채워진다.

“결정을 미루면 미해결 문제가 쌓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렇게 쌓인 문제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거나 성급하게 처리된다. 그 결과 미해결 문제는 언제까지고 미해결 상태로 남는다. ‘생각해보자.’ 이말보다는 ‘결정을 내리자’가 낫다. 완벽한 해법을 기다리면 끝이 없다. 결정을 내리고 속히 진행해라. 이왕이면 결정의 흐름을 타는 게 좋다.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 일사천리로 결정을 내리면 일의 진행에 탄력이 붙고 사기가 올라간다. 당신이 내린 결정 하나하나는 기초가 쌓이는 벽돌이다.”

경험에서만 얻을 수 잇는 요령 또는 지혜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책의 새삼스럽지 않은 내용이 새삼스러워지는 이유이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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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인간학 - 셰익스피어, 인간의 본성을 그리다
오다시마 유시 지음, 장보은 옮김 / 말글빛냄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브레히트의 무대는 특이하다. 배우가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건다든가, 날카롭고 밝은 조명으로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든가 액션 중간 중간에 노래를 집어넣어 흐름을 끊는다든가 리허설 중에 대본의 말을 삼인칭이나 과거시제로 바꿔 쓴다든가 연출이 배우보다 더 큰 소리로 지시한다든가 등등



브레히트 무대의 이런 특이함은 의도적이다. 브레히트는 예술을 위한 예술에 반대했다. 그는예술은 정치적 행위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술이 정치적이 된다는 것은 현실을 보여주어 관객이 현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연극의 전통은 그런 생각하기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브레히트는 생각했다. 자신과 주인공을 동일시하면서 감정적이 된다. 그래서는 이성적으로 현실을 볼 수 없다.



브레히트는 무대와 관객을 띄워놓기 위해 기괴하달 수 있는 기법들을 개발해야 했다. 그래서 그의 기법을 거리두기 효과(소외효과로 잘못 번역되기도 하지만 거리두기가 맞다)라 한다.



“20세기 후반이 되면 브레히트는 그저 사실적 리얼리즘으로 남는다. 즉 일상생활을 2시간만 잘라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인간과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시점을 가진다. 이때 셰익스피어의 영향을 받는다. 현대극은 바로 거기에서 오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모습을 전부 바라보려는 입장이었다. 인간을 전부 바라보고자 한 시점에서 이미 셰익스피어는 현대적이었다.”



그러면 저자는 셰익스피어의 무엇이 현대적이라는 것인가?



인간을 “한발 물러서서 바라보는” 셰익스피어의 시선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 시선은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눈, 당사자가 아니라 한발 물러서서 바라보는 자유의 눈”이라 저자는 말한다.



샤일록의 말을 들어보자. “유대인은 눈이 없고 손이 없소? 오장육부가, 사지가 감각, 감정, 정열이 없단 말이오? 예수쟁이들하고 뭐가 다르오? 같은 음식을 먹고 칼로 찌르면 상처가 나고 같은 병에 걸리고 같은 약으로 치료하면 낫고 똑같이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운데, 우리는 뭔가를 느끼지도 못한다고 하는 것이오? 찌르면 피 한 방울도 안나고 간질여도 웃지 않고 독약을 먹여도 우린 죽지도 않는 그런 사람들이라는 것이오? 그러니 우리는 아무리 심한 짓을 당해도 복수란 하면 안 된다는 것이오?”



샤일록이 자신의 정당성을 외치는 말이다. ‘베니스의 상인’ 공연을 보면 샤일록 역은 그 극단에서 가장 관록있고 연기력이 뛰어난 사람이 맡는다.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며 극중에서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렵고 비중이 커진 것은 셰익스피어가 극본을 그렇게 썼기 때문이다. 위의 대사처럼 유대인의 진실을 담았기 때문이다. 샤일록이 주인공이라면 ‘베니스의 상인’은 유대인 비극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시대는 반유대주의가 지배하던 시절이었고 셰익스피어 역시 유대인에게 동정적이지 않았다. 그러면 셰익스피어는 왜 그리고 어떻게 위와 같은 대사가 나올 수 있었고 샤일록 같은 캐릭터를 만들 수 있었는가?



“셰익스피어는 한 인물을 표현할 때 그 사람의 입장에 서서 묘사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주인공은 자신의 의견을 대변하는 인물이고 악역은 그 반대이게 마련이다. 그러나 셰익스피어가 인간을 그려내는 방식은 샤일록의 입장에서는 유대인도 기독교인과 다를 바 없지 않느냐고 그의 내면에서 외치는 절규까지 묘사하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무대에선 “그 어떤 조연이건 악역이건 간에 대사를 하고 있을 때는 주인공이라는 의식, 즉 나는 세상의 중심에 있다는 생각을 갖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극작가들은 주연에게만 초점을 맞추지 단역에게까지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는 왕이건 시민이건, 정원사이건 대사를 할 때는 세상의 중심에 잇다.”



그런 셰익스피어의 시선을 저자는 한발 물러서서 보는 눈, “리얼리즘의 눈”이라 말한다. “그 반대는 이상주의이며 인간의 좋은 부분만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셰익스피어는 인간을 있는 그대로 보려 하며 “부정적인 면을 냉정하게 비판하고 없애려 하지 않는다. 그런 면도 포함한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그것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셰익스피어의 사실주의는 그의 작품에 “인간미가 넘치는 따듯함과 재치”를 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리얼리즘과 유머의 일체화는 셰익스피어가 가진 큰 특징 가운데 하나다.”



저자는 ‘헨리 4세’에 나오는 폴스타프를 예로 든다. 헨리 5세가 되기전의 왕자 할의 술친구이다. “나쁜 짓이라면 워든 좋아하는 주제에 한편으로는 겁쟁이다. 그는 반란군과 맞서 싸워야 할 때 ‘술자리에는 가장 먼저 달려가지만 전쟁터에는 가장 마지막에 가지.’라는 대사를 남긴다. 이것이 리얼리즘이다.”



“전쟁터에는 가장 마지막에, 술자리에는 가장 먼저,

이것이 겁쟁이 무사와 식충이를 유지하는 비결이지.”



셰익스피어 당대의 연극을 지배했던 이상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기사에게는 전쟁터에 가장 먼저 달려가는 것이 명예로운 일이다.” 그러나 리얼리즘으로 그려진 기사 폴스타프는 관객의 웃음을 유도한다. “그는 셰익스피어가 만들어낸 인물 중에서도 상당히 인기가 많다. 왜일까. 바로 유머가 있기 때문이다. 하는 말만 들어서는 허황된 소리만 하는 것같지만 그의 전체적인 삶을 보면 바로 같은 면이 많아도 결국엔 사랑스러운 사람이란 걸 알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셰익스피어의 진면목이다. 인간은 이상적인 모습뿐 아니라 어두운 면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스러운 존재이다. 이것이 바로 셰익스피어식의 유머이다. 한발 물러서서 그 모든 걸 바라보면 사람이 다 이런 거지 하고 느낄 수 잇는 따뜻함, 바로 거기에서 유머가 생겨난다.”



저자는 셰익스피어의 리얼리즘은 그의 삶과 그의 시대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셰익스피어의 아버지는 읍장을 지낸 부유한 상인이었다. 그런 아버지를 두었기에 부잣집 도련님으로 유년기를 보낸다. 그러나 소년기에는 아버지의 파산과 함께 모든 것이 달라진다.



“유년기의 셰익스피어가 마을을 걷고 있으면 모든 사람들은 그에게 웃음을 보였다. 사람은 다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소년기가 되어 집안이 몰락하자 갑자기 모든 이들이 외면하고 등을 돌린다. 겉으로는 웃고 잇지만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에 내재된 인생관과 인간관은 ‘인간에게는 행복이 있으면 불행도 있다. 인간에게는 겉모습이 잇으면 속마음도 있다’라는 것이다.” 학자들은 그런 셰익스피어의 인간관을 “겉보기와 진실의 문제’라고 부른다.”



소년기의 경험에서 셰익스피어가 배운 것은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는 교훈이 아니었을까 라고 저자는 생각한다. 그리고 아마도 그런 교훈은 종교개혁으로 신앙이 흔들리던 시절,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이 흔들리더 시절의 분위기로 더 깊어졌을 것이다. 선과 악의 절대기준이란 없고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선과 악이 떠도는 셰익스피어의 무대는 그런 배경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저자는 짐작한다.



그렇기에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 등장인물은 자신이 놓인 구체적 상황 속에서만 생각한다.그것이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을 때의 철칙이다.” 셰익스피어의 무대에선 셰익스피어는 사라진다. 오직 대사를 가진 등장인물만 잇을 뿐이다. 그의 무대에서 작가는 등장인물의 대필자에 불과하다. “셰익스피어는 오피니언 리더도 아니며 새로운 철학을 설명하는 자도 아니다.” 그저 있을 법한 인간을 보여주면서 “공감하기 쉬운 내용으로 ‘나도 그렇다’라고 받아들이게 만든다. 나처럼 슬퍼하고 잇는 사람이 주변에도 많다고 위로를 해준다.”



그리고 셰익스피어는 그런 시선을 가졋었기에 괴테는 “셰익스피어를 연구하면 그가 인간의 본성 전체를 모든 면에서 그리고 모든 깊이와 모든 높이에서 철저히 연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결국 그 이후에 등장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 역시 “그렇게 생각해 극작가가 되기를 포기하고 ‘셰익스피어의 세일즈맨’이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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