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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강의 - 묵점 기세춘 선생과 함께 하는
기세춘 지음 / 바이북스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노자를 읽는 방법은 두가지이다. 무정부주의 아니면 파시즘.
“약하게 하고 싶으면 반드시 강하게 해주어라.
무너트리고 싶으면 반드시 흥하게 해주어라.
뺐고 싶으면 반드시 주어라.”
36장이다. 주자는 장자는 좋아했지만 노자는 싫어햇다. 권모술수라는 이유엿다. 36장은 법가류의 말로 밖에 읽히지 않는다.
그러나 “무력으로 천하를 강하게 하지 마라(不以兵强天下)”는 문구나 국가권력을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소국과민(小國寡民)과 같은 내용은 법가적인 사상가라면 절대 하지 않을 말이다.
책 한권을 놓고 양극단으로 읽을 수 있는 경우는 노자 이외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왜 그런 것일까? 그 이유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그 해답은 땅 속에서 나왔다. 중국에서 백서본에 이어 죽간본이 나오면서 왜 그런 양극단의 해석이 가능한지 밝혀진 것이다. 통용본인 왕필본과 대동소이한 백서본과 달리 죽서본은 통용본과 아주 다른 텍스트였다.
그렇다면 이런 결론이 나온다. 노자란 책의 저자는 한 사람 이상이다. 학계에선 적어도 두 사람 이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고 그렇다면 노자란 한권의 책에 두가지 이상의 사상이 담겨졋다고 놀랄 이유는 없는 것이다.
한 사람은 논어에도 여러 번 나오는 원시도가류의 은자일 것이고 한 사람은 전국시대가 한창일 때 법가류의 사상가일 것이다.
저자도 복수의 저자가 노자를 썼을 것이라는데 동의한다. 그러나 노자를 두가지로 읽는데는 반대한다. 그것이 노자를 읽는데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노자라는 책은 어느 무명인의 저작으로 시작하여 여러 사람이 첨삭 개작해 왔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장 적실한 것같다.” 그러나 문제는 “오늘날까지 2천년 동안 읽어온 ‘노자의 원본은 죽간본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노장사상은 이 백서본에 근거한 것이다. 예컨데 조선의 ‘춘향전’이 어느 무명인의 저작으로 시작하여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이 첨학 개작하여 내려오다가 탁월한 어느 한 사람에 의해 정형화된 사례와 비슷할 것이다.”
춘향전의 원본이 우리가 아는 춘향전과 다르다고 원본을 쫓아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그렇다면 노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저자는 우리가 노자에서 읽어야 할 것은 긴 세월동안 사람들이 읽어온 노자가 무엇인가라고 말한다.
저자는 노자를 집단창작으로 본다. 그리고 노자를 읽는 방향은 그 집단의 성격이 무엇이냐가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그 집단의 성격은 황건적이 노자를 성전으로 읽은 것을 보면 분명해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황건적이 읽은 노자는 무정부주의의 노자엿다. 그러나 모든 종교가 그렇듯이 반체제로 시작한 황건적 역시 체제에 편입되면서 변질되고 도교로 발전한다. 그 첫걸음은 조조가 내디뎠다.
“조조는 한말 도교 세력이 주축이 된 농민 반란군인 황건적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두각을 나타내 천하를 차지한 사람이다. 도교 세력이 위력을 잘 아는 조조는 정권을 잡은 이후 노장의 반체제적 민중성과 반문명적 저항성을 제거하려 햇다.”
조조는 도교의 성전인 노자가 읽히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엇다. 그 작업에 나선 사람이 왕필이었다. 왕필의 해석은 노자의 저항성은 허무주의로 바꾸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대표적인 해석이 1장의 해석일 것이다. 1장의 ‘無名天地之始’의 주어를 왕필은 무명이 아니라 무로 읽었다. 그러면 무는 천지의 시작을 이른다가 된다. 왕필은 무를 독립된 존재론적 개념으로 만들어 노자의 정치성을 무력한 고담준론으로 표백햇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무가 주어가 아니라 무명이 주어여야 한다고 말한다. 무명의 명은 분명하게 정치적 대상을 가리키기 때문이라 저자는 말한다.
고대중국에서 명(名)이란 명분을 말한다. 공자의 ‘君君臣臣父父子子’란 정명론에서 알 수 있듯이 이름은 그 이름이 속한 시스템의 질서 위에서 의미를 갖는다. 1장은 그 질서에 대한 부정을 선언하는 것이라 저자는 말한다.
1장이 도의 부정으로 시작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부정되는 것은 성인 즉 당시 용어로는 지배자의 도를 말하며 공자의 유가가 말하는 도를 말한다.
“항상 경전의 제1장은 그 경전의 이미지를 결정한다. 노자 첫장을 다시 읽어보라. 그것이 처세술인가? 레지스탕스인가? 논어의 첫 장은 학이시습지로 시작한다. 이것은 글쟁이 선비를 찬미하는 말이고 성왕의 말씀을 열심히 읽고 익히라는 권고다. 그런데 노자 첫장은 옛 성황들이 말한 도는 도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것은 글쟁이들의 말이 아니고 민중의 말이다. 민중 세력은 스스로 지배 세력이 될 수는 없지만 지배 세력을 교체할 수는 있다. 그들은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식이다. 그놈이 그놈이지만 갈아보자는 것이다. 이것은 부정이며 불가지론이다. 민중들은 ‘지금의 도는 도가 아니다’라고 외친다. ‘오늘날 너의 덕은 덕이 아니라 위선이다’(덕경 첫장인 38장)라고 외친다. 바로 무지한 자들의 혁명 선언이다. 그래서 노자는 황건의 난의 성전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노자를 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길래 그런 저항을 외친 것인가? “공자는 귀족을, 묵자는 노동자를, 노자는 몰락한 귀족을, 순자는 신흥 관료와 자본가를 대변했다고 말한다.” 그럼 구체적으로 몰락한 귀족의 어떤 사람일까? 알 수 없다. 그러나 아마도 논어 미자편의 5장에서 7장까지 나오는 은자들이 그런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충고했다. “탁한 물이 도처에 도도하게 범람하는데 누가 바꿀 수 있겠는가? 그대는 나쁜 사람을 피하는 사람을 따르는 것보다 세상을 피하는 사람을 따르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하려고 하는’ 사람이란 은자들의 조롱에 대해 공자는 이렇게 자신을 변호햇다. “벼슬하지 않는 것은 도리가 없는 것이다. 어른과 어린이의 질서를 폐기할 수 없는데 군주와 신하의 관계를 어떻게 폐기할 수 있겠는가? 자기 한 몸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중요한 사회관계를 파괴한 것이다. 군자가 벼슬하는 것은 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것이다. 도의가 행해질 수 없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었다.”
공자는 사회의 근간인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군주와 신하는 오늘날 상급자와 하급자라는 직무상의 관계이고 그 원칙은 의(義), 즉 공평하고 정직하며 공적인 일을 받들고 법을 지키며 편을 들어 사사로움을 도모하지 않으며 윗사람을 속이거나 아랫사람을 억누르지 안는 것이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구별이 있다는 것은 가정 중심의 가치관이다. 사랑에 그치지 않고 은혜를 베풀어서 피차에 언제나 돕고 이끌어주며 고나용하고 양해라며 어른을 높이고 어린이를 어루만져주는 것” (리쩌허우) 공자가 하려한 것은 그런 당연한 도리가 천하에 행해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자와 그를 조롱한 은자들이 살던 시대는 그것이 당연할 수 없는 시대엿고 시대가 그렇다는데 공자와 은자들은 이견이 없었고 논어에서 공자는 자신을 조롱하는 은자들을 존경했다.
그러나 그들의 차이는 세상이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엿다. “새나 짐승과 함께 살 수 없지 않느냐? 사람의 무리가 아니면 누구와 함께 하겠느냐? 천하가 태평하다면 내가 바꾸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기에 인간으로서 신념을 지키기 위해 현실에 굴복하지 않는 의지를 말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말에서 공자 자신이 항상 말한 사람에 대한 사랑 또는 사람다움이란 뜻인 인(仁)의 의미가 드러난다. 그러나 은자들은 동의할 수 없었을 것이다.
“노담의 제자 백구가 제나라에 도착하자 형벌을 받아 기시된 시체를 보았다. 시체를 밀어 바로 누이고 조복을 벗어 덮어주엇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곡하며 말했다.
오 그대여! 천하에는 피살자가 많은데 그대가 먼저 당했구려! 말끝마다 도둑질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하지만 영욕으로 핍박하니 이런 병통이 나타났고 재화가 한곳으로 모이니 이런 쟁투가 나타났다. 지금은 사람을 몰아 세워 병들게 하고 사람을 모아 싸우게 하고 사람의 몸을 곤궁하게 하여 한시도 쉬지 못하게 하니 이런 지경에 이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재물을 위해 간계를 부리고 지혜롭지 못하면 어리석다 하고 어려운 일을 시키고 감내하지 못하면 죄를 주고 무거운 임무를 맡기고 다하지 못하면 벌을 주고 먼 길을 가게 하고 이르지 못하면 죽인다. 그러므로 부득이 민(民)은 지혜와 힘을 다해 꾀로 죄를 모면하려 한다. 무릇 힘이 부치면 꾀를 쓰고 지혜가 부족하면 도둑질을 하는 것이다. 도둑이 횡행하는 것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옳은가?” (장자 잡편 칙양)
이런 세상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공자는 성인의 질서로 돌아가자(복례 復禮)를 말하면 지배층의 질서를 바로잡아 천하를 바로잡으려 했다. 그러나 은자들은 그런 공자를 조롱하며 공자가 되돌아가자는 성인의 질서(예)를 조롱했다. 그들은 전쟁과 살육, 착취와 억압은 권력의 본성이라 생각했다. 그들은 권력이란 것 자체가 없는 세상을 꿈꾸었다.
꿈이라고? 꿈이 아니다. 그런 시절이 있었지 않은가? 수렵채집사회에선 모두 평등했다. 누가 누구를 착취할 수 있는 힘 있는 자가 없던 시절이다. 있었던 시절로 돌아가자는 것뿐이다. 그것이 불가능한가? 노자가 말하는 무위(無爲)는 무치(無治) 즉 무정부주의이다.
“그들이 동경한 것은 자연의 자유인이다. 그 자연은 왕도 군주도 없고 인간의 조작과 다스림과 속박이 없는 때 묻지 않은 천연 그대로인 자연이다. 그러므로 무위는 자연을 설명한 말일 뿐 그 자체가 도이거나 목적은 아니다.”
노자는 다스림이란 자체, 정치권력이란 자체 그리고 그 위에서 만들어진 문명 자체가 하늘의 순리를 거스른 인위(人爲) 즉 위(僞) 즉 하늘의 순리인 도를 거스른 ‘거짓’이라 보며 인위를 거둬내고 순리를 따르는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성인과 지혜를 버려라’ ‘배움을 끊어라’와 같은 말은 인위적인 질서를 천명이라 주장하는 지배자들에게 침묵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도덕이라 하면 국민 또는 공민으로서 품성을 닦고 사회의 질서를 잘 지키라는 기율로 인식되고 도덕률이라고 통칭된다. 그러므로 도덕은 국가나 지배자나 사회를 위한 것이고 개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 도덕률은 천명이라는 신성한 권위와 권력을 가진다. 그러므로 도덕률의 생산자는 천자 또는 왕 또는 성인으로 불린다.
그러나 노자의 도덕은 자연의 도와 생명의 덕을 뜻한다. 이것은 지배자나 사회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 군주 지배가 없는 자연의 자유로운 생명을 살리고 발현케 하려는 것이다ㅓ. 그러므로 공자의 도덕은 천명인데 반해 노장의 도덕은 무치의 자연이다.”
1장의 ‘도가도 비상도’는 그 지배자들이 선포하는 도에 대한 거부이다. 너희들이 말하는 도는 가짜인 인위 노자식으로는 유위(有爲) 라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도인가? 노자는 그에 대한 답으로 그들이 말하는 도는 거짓이며 진정한 자연의 도는 다르다 말하는 선언이다. 무위자연의 도에 대한 노자의 형이상학은 그 도가 어떤 것인가 그리고 그 도는 어떻게 알 수 잇는가를 파고드는 것이다.
치도(治道)만 말하는 “공맹의 도와는 달리 노자의 도는 주역에서 말한 음양의 운동법칙과 같은 의미의 자연법을 의미한다. 이처럼 주역과 노자에서 비로소 도의 범주는 신을 대신하여 우주의 본원이란 개념으로 확장되고 정립된다. 그러나 형이상학적인 의미의 도는 노자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노자가 말하는 “도는 시대와 필요에 따라 변하는 성왕의 법이 아니라 항상 변하지 않는 자연의 법을 말하는 것이므로 상자연(常自然)이라고 표기한다. 그리고 장자에 이르러 도는 이(理)로 해석되기 시작한다.” 저자는 노자의 도 개념은 후에 성리학의 ‘태극이무극(太極而無極)’이란 테제로 이어져 이기론으로 확장되엇다고 말한다.
노자의 무정부주의는 문명 자체에 대한 거부로 확장된다. “노장이 활동하던 기원전 4세기는 철기를 발명함으로써 자연을 개발의 대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제2차 문명혁신 시기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노장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반문명 복자연(復自然)의 테제는 이러한 반자연의 제2차 문명혁신을 거부하는 것이엇다. 왜 그들은 철기문명을 거부했을까? 그것은 철기문명이 가져온 계급과 국가의 탄생을 반대하고 지배 복종의 차별과 억압에 저항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저항적인 노장의 원시 회귀 사상은 ‘기계 거부운동’으로 표현된다. 이것은 마치 18세기에 증기기관과 방적기를 발명함으로써 촉발된 제3차 문명혁신인 산업혁명이 일어나자 이에 항거하여 일어난 19세기 초의 이른바 러다이트와 같은 맥락이다.”
그러므로 대교약졸(大巧若拙)이란 노자의 말은 말 기술이 뛰어나면 졸렬해보인다는 반어가 아니라 말 그대로 기술에 대한 거부라는 장자의 해석을 따라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노자의 문명의 거부, 소국과민은 불가능한 유토피아가 아닌가? “노장의 무위자연설은 ‘자연은 낙권이며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반면 순자는 노장과는 반대로 자연을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의 불행한 것으로 보았고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자연으로 돌아가 소박한 본성을 회복하자는 노장의 무위론은 강자가 약자를 살육하는 정글로 돌아가자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러므로 순자는 노장과는 정반대로 ‘위(僞)’만이 악한 성을 선하게 할 수 잇다고 주장했다. 순자의 위(僞)는 문명을 말하고 노장의 무위는 자연을 말하는 것이므로 순자와 노장의 대립은 문명과 자연의 대결이다.’ 역사는 순자의 손을 들어주는 것같다.
“좋았던 시절의 삶이여! 그러나 정말 그랬을까? 수렵채집인의 에덴동산에는 뱀이 있었다. 어쨌든 휴일의 캠핑 같은 삶이 평생 지속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폭력의 위험이 만성적이고 상시적으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햇다. 인류에게는 포식자가 없는 상황에서 기근이 발생하지 않을 정도로 인구밀도가 낮게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전쟁 덕분이엇기 때문이다. 플라우투스는 말햇다. ‘인간은 인간에 대해 늑대다.’ 수렵채집인의 신체가 건강하고 유연했다면 그것은 살찌고 둔한 사람들이 새벽에 화살이나 창을 맞고 모두 죽었기 때문이ㅏㄷ.
현대 수렵채집인 중 2/3는 거의 항시적인 부족 전쟁 상태에 있는 것으로 확인되엇다. 87%는 연례적으로 부족 전쟁 상태에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전쟁’이라고 하지만 새벽의 습격이나 우발적인 접전, 수많은 가식적 위협 등을 표현할 뿐이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너무나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사망률은 높다, 통상 성인 남성 중 305는 살해당한다.” (매트 리들리)
문제는 그런 역사적 인류학적 근거만이 아니다. “그렇다면 군주의 노예가 되는 것을 거부하는 길은 무엇인가? 혹자는 당시 성인이라고 불린 군왕과 지배자들을 뒤엎는 민주혁명만이 해결책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2400년전 노예제 사회에서는 그런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잇는 이른바 시민계ㅔ급이 잇지도 않앗다. 그렇다면 방법은 무엇인가?
이때 노자는 노예 됨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쳤다. 문명을 거부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면 지배자들의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 잇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면 산속에 숨어 고사리나 뜯어 먹고 풀뿌리나 캐 먹고 살라는 말인가?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노자는 슬프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들의 초상화를 그린다면 공자는 뿔 관에 고나복을 입고 근엄한 고관대작의 모습일 것이며 묵자는 검은 노동복을 입고 민중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혁명가의 모습일 것이며 노자는 거지 옷을 입고 자연에 숨어 사는 은자의 모습일 것이다. 이처럼 노자의 사상적 특징은 겉모습으로만 보면 염세, 탈속, 은둔이다. 그러나 그 곳 모습은 절망과 저항이다. 이러한 노자의 양면성은 대체로 염세적인 열자와 저항적인 장자로 이어진다.
이러한 허무와 저항의 양면성은 약자와 패자의 생존 방식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승자는 몇 사람뿐이요 대다수는 패자다. 그러므로 허무와 저항은 다수 민중의 생존방식이다.’
노자는 난세에 민중들의 소망을 담아 약자와 약소국의 생존방식을 은유적이며 절망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절망에 빠진 민중들이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소망한 것은 당시 삶을 도륙하는 거짓되고 포악한 지배 ‘문명’에 대한 거부였다.
노자의 사상은 절망에서 도피하기 위해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철학인지도 모른다. 그러기 위해서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을 거부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려 했을 것이다.이러한 문명과 자연의 대칭 구조는 노자의 기본 골격이다. 강함보다 부드러우을, 밝음보다 어둠을 봉우리보다 계곡을 남성보다 여성을 선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노자에게 강함은 죽음이요 약함은 삶이다.” 그러나 노자의 사상은 사회에서의 소외를 자연과의 일체를 통해 위안받으려는 것은 소극적이지만 사회에 대한 거부와 저항을 내포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평점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