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게 살아도 괜찮아 - 독한 세상에서 착하게 살아남는 법
카야마 리카 지음, 김정식 옮김 / 모벤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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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플루엔자 가치들은 전혀 새롭지 않다. 그것들은 사유재산제가 도입된 기원전 1만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근본적으로 변한 것은 1970년대 이래 그런 가치들이 사방에 널리 실재하며 그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영어권 국가 대다수 사람들이 이제 자신의 삶을 소득, 소유, 외모, 명성 등으로 정의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근원적인 욕구를 만족하는데 걸림돌이 되어 오히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

나는 10년전 25세의 미국인이 우울증에 시달릴 가능성이 1998년 당시 1950년보다 세배에서 열배나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1950년대 관점으로 보면 오늘날 평범한 미국 어린이가 느끼는 불안은 병적인 수준이다.

그 이후 많은 미국 작가들 그리고 영국 작가들이 나를 따라 그 분야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이 관심을 갖는 것이 행복이긴 하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우리 시대를 상징하는 현상들, 이를테면 우리가 정서적으로 곤경에 처해 있다거나 절망, 좌절, 분노 등이 우리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그 원인을 분석하기 보다는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 법,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해서만 끊임없이 늘어놓고 있다. 나는 행복이란 즐거움과 유사한 것으로 공상적이며 일시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행복해지려고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다'라는 옛 격언에 동의한다. 행복을 입증하는 증표로 고통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없다. 행복을 들먹이는 거짓 약속 대신 우리가 왜 그렇게 혼란에 빠져있는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간단히 말해 내가 '이기적 자본주의'라 부르는 불쾌한 정치경제학이 어플루엔자 바이러스를 퍼트렸다. 이 바이러스는 1970년대 이후 정서적인 고통의 원인이 되었다. 선진국에서 정서적 고통을 겪는 사람의 비율은 소득 불균형에 비례해 증가하고 있다. 이기적인 자본주의는 선진국에서 불평등의 주원인이다." (올리버 제임스)

소위 자기계발서라는 책들의 주제를 보자. 성공을 말하고 부자를 말하며 행복을 말한다. 간단히 말하면 성공하고 돈을 얻으면 행복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해서 행복할까? 직장에서 정상에 오르고 거대한 부를 이루는 사람들은 특정한 유형이 있다. 그러나 그 유형은 절대 자기계발서에서 말하는 그런 모습이 아니다. 그책들은 현실의 반짝이는 면만 보여주고 정작 그들이 그렇게 된 진짜 원인은 말하지 않는다.

“남편감으로 어떤 사람이 좋으냐는 질문에 대해 여성들은 문화와 관계없이 무엇보다도 친철함과 공감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이와 동시에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능력도 상당히 중시한다. 그러나 친절함과 공감은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능력과 충돌한다. 여성들이 이 두개의 서로 엇갈리는 가치를 어떻게 관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현실적인 문제다. 여성에게 화려한 삶을 가져다줄 수 있는 사람은 그런 삶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대니얼 네틀)

지위와 능력이 있는 사람은 (앤디 그로브 식으로 말하면) '미친' 놈이다. 'Only the paranoids suvive' 어느 분야든 정상에 남는 자는 그 목표에 미쳐야 한다. 그 목표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가 충분한 사람만 정상에 오른다. 맑스의 신조처럼 “남이 뭐라 건 네 갈길을 가라.” 그런 각오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착함'과는 거리가 멀다. 주변을 돌아볼 여유는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희생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억만장자들의 기본적인 특징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부의 추구를 즐긴다는 것이다. 상을 받는 것보다 이겼다는 만족감 그 자체가 그들을 보통의 슈퍼리치의 대열로 이끈 원동력이다. 자수성가한 억만장자들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에 무관심하다. 그들 중 많은 사람은 사는 모습이 소박하다. 샘 월튼과 워렌 버핏은 자신들의 막대한 재력으로 사치스러운 토지를 사들이는 것을 거절한 사람들이다. 로스 페로와 필 얀슈츠는 그리 비싸지 않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만족했으며 해마다 최신 모델을 찾지도 않는다. 다른 슈퍼리치들도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면서 그들의 물질적 욕망을 쫓기보다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노력햇다." (마틴 프리드슨)

정상에 오른 사람들은 부와 지위 그 자체에 관심이 있었지 그 혜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적다. 돈을 쓰기 위해 버는 것이 아니라 돈 그 자체를 따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당신은 그런 사람인가? 부와 지위를 진심으로 원하는가? 그렇다면 각오를 해야 한다. "(포츈 500 리스트에 오른 거부) 웨인 휘젠거는 하루에 20시간을 그의 독창적인 사업인 쓰레기 수거사업에 투자한 사람이다. 세월이 지난 후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내 아이들이 야구를 하며 노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딱 한 번 딸아이가 연극하는 것을 봤을 뿐이다. 함께할 수 있는 추억읃 나는 모두 놓쳐버렸다. 거부가 된다는 것은 결코 좋지만은 않다. 만약 누군가 나처럼 모든 것을 팽개치고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면 가족들을 위한 시간을 조금 남겨두라고 충고하고 싶다.' 사실 대부분의 억만장자들은 너무 많은 것을 일에만 쏟아 붓고 그 가족들은 그것을 견뎌내고 있다.' (마틴 프리드슨)

그런 삶을 원하는가?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오랫동안 환자들을 보아온 저자는 그렇게 살 수 없는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 불안해하며 자신을 괴롭혀야 하는지 의아해 한다.

“5살 난 여자아이의 엄마인 그녀는 하루에도 몇번씩 딸에게 ‘착한 해가 돼야지! 이게 뭐니!’라며 소리를 지르게 된다고 하소연이다. ‘말씀하신 그런 ‘착한 아이’란 어떤 아이죠?’ 대학원을 나와 대기업에서 근무한 적도 있다는 그 이지적인 엄마에게 물었다. ‘착한 아이요? 착한 아이가 뭐냐고 하심… 요즘 같은 시대엔 척척 알아서 공부하는 아이, 라이벌에게 지지 않는 아이겠죠, 물론 좋은 대학에도 가고…’ 이것저것 물어보니 아무래도 그 집 딸아이는 소극적이고 조용한 것같았다. 예를 들면 영재교실에서 단체 체조 시간이 시작되면 다른 아이에게 양보하다 보니 꼭 맨 뒷줄에 서버린다. 또 엄마가 영어를 가르쳐 주고 있자면 ‘앵순이 밥 줘야 하는데…’라면서 애완용 잉꼬를 돌보려고 한다. ‘못된 아이에요, 제 딸은…’ ‘음…. 오히려 아주 착한 아이 같은 같은’ 그러자 그녀는 놀란 듯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잠깐 골똘히 생각하던 그녀가 말햇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희 남편도 성격이 워낙 소극적이라 모처럼 좋은 회사로 옮겨도 좀처럼 출세를 못해요. 딸아이가 남편의 나쁜 점만 닮았다고 남편한테 화를 낸 적도 여러 번이에요. 하지만 어떻게 보면 제 남편도 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죠.’”

남에게 양보하고 애완동물을 사랑하는 아이가 착한 아이가 될 수 없는 세상는 어떤 곳일까? 저자는 뭔가 잘못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마음씨 곱고 배려심 깊고 경쟁 상대를 밀어내는 것이 서투른” 그런 사람은 착해빠진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이런 세상은 어떤 곳일까? 그 세상이 이상화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자.

남의 사정을 배려하는 마음 때문에 망설이고 주저하는 우유부단한 사람은 쓸모없고 단칼에 무 자르듯 ‘결단력’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가? 그러나 “망설이는 사람, 결정 못하는 사람은 미성숙한 것이 아니다. 그만큼 생각의 깊이가 풍부하다.

자기주장이 없고 남의 말을 자르면서까지 할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면 줏대없는 쓸모없는 사람인가? 그러나 자기주장이란 “감정을 억제한 객관적, 이론적 말하기가 기본이다. 하지만 그런 기술을 몸에 익힌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다보니 자기주장이란 “무턱대고 비판적이 되거나 타인의 이야기를 듣지 않아 오로지 자기주장만 하는 격이 되어버린다.” 적극적이니 자기주장이니 하지만 과연 그 ‘하고 싶은 말은 어쨌든 말하”는 사람만 제대로 된 사람인가?

세상은 그 세상에 사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해야 한다. 그러나 성공만 말하고 부자만 말하고 출세만 말하는 세상에 사는 사람은 오직 한 유형만 말한다. 그러나 ‘이기적 자본주의’에 맞는 사람의 진짜 모습은 어떤 것일까?

“병원에 오자마자 무조건 ‘어쨌든 빨리 해줘요!’라고 요구하던 여성 환자가 있었다. 요즘은 별 요구없이 자신의 순번대로 기다려 진료를 받는 그녀를 보고 “예전에는 왜 그렇게 서두르셨습니까?’라 물었다. 그러자 광고대행사에 다니는 그녀는 이렇게 말햇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초조해 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어쨌든 저희 회사는 개인의 실적에 따라 업무고과가 매겨지는 곳이라 직원 모두 밥 먹을 새도 없이 시간에 쫓겨 가며 조금이라도 더 실적을 올리려 열심입니다. 그런 상황에 내몰리다보니 저도 우울증에 걸린 거겠지만요. 병원에 와서 30분 이상 기다리고 있으면 지금쯤 회사에서는 모두들 열심히 일을 하고 있을텐데란 생각이 들면서 초조해지는 겁니다. 그러면 갑자기 기다리고 있는 시간이 너무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고 지금 이 순ㄱ5ㅏㄴ에 나만 혼자 도태되는 건 아닌가 불안해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얼른 사무실로 들어가야 할 것만 같은 생각에 빠지게 되곤 했죠…’ 결국 그녀는 우울증이 회복되어 감에 따라 ‘나 먼저’에서 ‘먼저 하시죠’로 바뀌어갔습니다. 아마도 그녀는 직장에서 ‘나 먼저’ 타입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마치 눈감으면 코 베어갈 듯한 일상 가운데에서 어쨌든 ‘경쟁에서 이기고 싶다. 주변 사람들보다 먼저 나아가지 못하면 패배다’라고 생각하며 일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밀어내기 경쟁, 앞질러 따돌리기 경쟁’이 마음에 결코 좋은 영향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은 그녀가 심각한 우울증에 걸린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우울증이라도 걸리지 않는 이상 ‘먼저 가시죠’라고 말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던 것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나 염려가 가능한 ‘먼저 가세요’ 주의의 사람들은 어린애 같은 자기애를 졸업하고 성숙한 인격을 획득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분별력 있는 사람’ ‘마음씨가 착한 사람’으로 주변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전체적으로 ‘미성숙한 어린아이 사회’라고 일컬어진다. ‘눈에 띄는 게 이기는 것’이라는 어린애 같은 자기애적 가치관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절반쯤은 병적인 자기애적 인간이 위세 등등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나 먼저’라는 자기애가 강한 사람은 사실은 미숙하고 연약한 사람이다. 그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불안, 자신 없음이 가득하면 할수록 더욱 ‘내가 말한 것은 옳아’ ‘모두가 내 의견을 따르는게 당연해’하며 계속 허세를 부린다.

자기애적 인간에게는 큰 문제점이 있다. 그것은 스스로의 요구에 긑이 없다는 점이다. 그들의 ‘좀 더 이기고 싶다. 좀 더 눈에 띄고 싶다는 욕구에는 이걸로 만족이라는 종결점이 없다. 무언가 이루었어도 다음엔 이거라고 다음 욕망이 치밀어 오른다. 물론 언젠가는 바란다 해도 실현 불가능한 한계 중의 한계가 찾아오지만 그때 그들은 커다란 실망, 좌절, 분노를 한꺼번에 느끼게 되어 허탈감이나 우울증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이기적 자본주의의 인간형은 저자가 보기에 아무리 봐도 미숙함 이상이 아니다. 착한 사람은 무시당하고 이용당할 뿐이라며 착한 아이를 못된 아이로 보도록 엄마를 몰아세우는 세상. 뭔가 잘못 돌아가는 세상이라 저자는 본다. 배려, 용서, 관용 등 오랜 역사에서 인격의 성숙으로 보아온 가치들은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세상. 이런 세상이 얼마나 갈까?

성공과 출세라는 가치 하나로 온 세상을 재며 그 당근을 내세워 결과만, 효율만, 성과만 외치는 세상에서 사람은 쉽게 지쳐버린다. 그 세상이 쓸모없다고 말하는 “것을 줄이고 합리화, 삭감을 극한까지 몰아붙이면 인간의 마음에는 반드시 무리가 생긴다. 본래 가장 오래 무리없이 일하는 것은 오히려 언뜻 봐 효율이 나쁘거나 쓸데없는 시간을 빈둥빈둥 보내며 생활하는 사람 쪽이 아닐까. 또 이런 사람은 본인이 계속 해나갈 수 있을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기분을 누그러들게 하는 힘도 갖고 있다.”

“우울증에 걸린 그 비즈니스맨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저는 지금까지 사내에서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으며 동기들 가운데서도 확실히 가장 일을 잘 해냈습니다. 야근을 밥먹듯이 하며 그만큼 다른 사람들의 몇배나 일을 해치웠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동안 아무리 많은 일을 처리했다 해도 2년이나 직장을 쉬어버려서는 뭘 위해 일을 했는지 알 수가 없네요. 분명 지금 다시 복직한다 해도 저보다 무능한 사원을 없을 테니 곧 해고 대상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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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파산하는 날 - 서구의 몰락과 신흥국의 반격
담비사 모요 지음, 김종수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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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으로 세계는 다음과 같은 상황이다. 미국과 대부분의 서구국가들은 자본이 바닥나고 있고 인구가 고령화되고 학력수준이 떨어짐에 따라 노동의 역동성은 손상됐으며 기술의 독점에 대한 장악력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중국을 필두로 떠오르는 신흥세계는 은행에 자금을 충분히 갖고 있고 우월한 노동력을 갖고 있으며 기술적 우위를 차지하겠다는 욕구가 있다.

그렇다면 30년 후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만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성장과 경제구조의 변화추세가 현재의 경로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미국과 대부분의 유럽 경제권은 21세기 말까지 아주 망하지는 않겠지만 아주 느릿하게 굴러가다 잘해야 2류 경제가 될 것이 확실하다.”

이책의 요지이다. 요지 자체는 그리 새로울 것이 없다. 이책의 가치는 그 요지의 근거를 어떻게 제시하는가에 달렷다 하겠다.

저자의 논거는 단순하다. 경제성장은 노동과 자본, 그리고 생산성(TFP)의 함수이다. 저자는 이 세가지 변수 모두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우선 자본부터 보자. “서구의 흥망사는 서구가 자본을 어떻게 모았고 어떻게 축적했으며 어떻게 낭비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지난 50년간 서구가 보여준 형태는 흡사 수 세기에 걸쳐 모은 집안의 재산을 탕진한 탕자의 모습을 방불케 한다. 서구는 어렵사리 축적한 부를 무분멸한 방종과 그릇된 투자로 날려버렸다.” 이번 금융위기는 바로 자본배분의 왜곡이 갈 데까지 간 최;종결과라고 저자는 말한다. 자본이 수익을 낳는 생산적 자산에 투자되지 않고 주식과 부동산 같은 비생산적 자산에 투자되면서 자본이 낭비되었고 최종적으로 거품이 터지면서 그 자본은 증발해 버렷다.

새삼스러울 것 없는 지적이다. 이책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왜 그런 투기가 일어났는가를 미시경제적 모델로 설명하는 부분이다.

기업가치(EV) = 주식 기대가치(EQ) + 부채 기대가치 (ED)

회계의 기초공식이다. 기업이 이익을 내면 주주와 채권자는 그 이익에 대한 청구권을 갖는다. 문제는 주주와 채권자의 입장이 다르다는데서 시작된다. 기업이 아무리 많은 이익을 올려도 채권자가 가져갈 것은 정해져 있다. 그러나 주주는 이익이 많으면 많을수록 가져갈 것이 많다.

채권자는 빌려준 돈을 돌려받는 것이 우선이므로 기업의 경영이 리스크를 덜 떠안기를 바란다. 보수적인 입장이란 말이다. 그러나 주주는 안정성보다 변동성을 선호한다.

예를 들어 리스크를 선호하는 주주의 입장에선 부채를 늘려 레버리지를 올리는 것이 유리하다. 더 많은 자본을 동원하면 당연히 수익이 높아질 가능성이 커지고 자기자본 비율은 줄어들므로 자기자본 당 수익률은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채권자의 입장에선 부채가 늘어나면 부채상환 가능성은 낮아지므로 당연히 부채증가를 반대한다.

기업의 경영은 주주와 채권자의 입장이 서로 견제할 때 건전할 수 있다. “주식청구권자의 대리인으로서 경영진은 기본적으로 부채청구권자의 이익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이는 주식청구권자와 그 대리인인 경영진이 선을 넘지 않도록 감시하는 것이 부채청구권자의 핵심적인 의무인 이유다. 사실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견제와 균형의 관계다. “

그러나 70년대 이후 월스트리트의 논리가 미국경제를 지배하면서 그 균형은 깨지고 기업의 주인은 주주란 논리가 성립된다. 이제 “위험 추구는 경영진이 그 대가로 보수를 받는 이유이자 더 많은 위험을 무릅쓰는 경영진에게 성과급이 주어지는 이유다. 위험은 경영진의 존재이유인 것이다.” 소위 주주자본주의의 정의이다. 문제는 주주자본주의의 논리는 레버리지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월스트리트의 논리라는 것이다.

“주주가치는 1980년대에 선진국들에서 탄생한 세계화의 두번째 구성요소이다. 이러한 금융의 득세는 세계화에 의해 가능해졌다. 주주가치는 지난 영광의 30년 시기에 확립되었던 금융과 경제의 관계 즉 금융이 경제에 봉사하는 관계를 전복했다. 주주가치는 자본축적이 금융수익률 요구에 복종하게 만들었고 이 때문에 기업들과 경제 전체에 불균형을 조장하는 행동들이 유발되었다.

이 (주주가치와 신흥국 성장체제의 변형과 그 과정에서 이 나라들이 미국의 채권국이 된) 두 구성요소의 결합은 소득과 부의 분배에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했다. 신흥국들이 경쟁에 뛰어들면서 재화시장과 노동시장에서의 가격형성 방식에 변화가 일어났다. 기업들이 생산물 시장에서 가격 결정력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주주가치는 기업들에게 자본 수익률을 제고하라는 압력을 행사했고 바로 이 때문에 기업을은 노동시장을 통해 임금비용에 가혹한 공격을 가하게 되었다. 이렇게 주주가치는 경제 전체에 자신의 논리를 관철시켰다. 또한 주주가치는 기업 지배구조에서 세력관계를 역전시킴으로써 위험의 분담도 역전시켰다. 이윤은 경기변동에 따라 변동하는 소득으로 방치되는 반면에 주주의 소득은 보호받는다. 리스크는 생산성과 임금의 연동관계의 단절, 실업 및 고용 불안정을 통해 임노동자들에게 전가되었다.” (미셸 아글리에타, 로랑 베레비)

그뿐만 아니다. 주주가치, 또는 월스트리트의 헤게모니는 이윤의 배분을 왜곡하면서 주식이나 부동산의 투자와 동일한 논리를 기업의 경영에 강요했다. 자산투자의 논리인 레버리지를 경영에 적용하는 것은 기업 자체가 주식이나 부동산과 같은 투기의 대상이 된 것이라 봐야 한다.

“아시아 국가들과의 경쟁이 판매가격에 가하는 인하 압박과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시장의 긴장이 임금에 가하는 인상 압박 사이에 끼어 있던 미국 기업들은 일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수익률이 현저하게 하락했다. 1993년 이해 높은 생산성 이득 덕분에 놀라운 속도로 상승했던 단위당 마진율이 아시아 위기가 발발했던 1997년부터 정체하기 시작했다.

미국 기업들은 수익성 하락이 자기자본 수익률에 주는 영향을 줄이거나 또는 감추기 위해 레버리지 효과를 더 많이 활용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자사주의 환수, 배당금의 증가, 외적 성장 방식의 시행을 위해 차입을 크게 늘리기 시작했는데 이것을은 자기자본 수익률을 제고하고 (월스트리트의 주주들을 위해) 주가를 상승시킬 수 잇는 유일한 수단들이다. 당연히 이때부터 이국 기업들의 자금사정이 그 수익률 못지 않게 급속하게 악화되기 시작했다.” (아를리에타, 베레비)

이책의 저자는 시몬스의 사례를 든다. 133년 역사의 시몬스는 2009년까지 5년동안 주인이 다섯번 바뀌었다. 80년대 기업사냥꾼들이 그러했듯이 주인이 바뀔 때마다 인수자의 빚은 늘어갔다. “부채를 통한 자금조달 비용이 낮아지고 주가가 치솟게 되자 회사의 소유자는 사업자금의 부채의존 비율을 더욱 높이는 한편 현금을 빼내 자신에게 두둑한 배당금을 지급할 수 있엇다. 그 사이 1991년 1억 6,400만 달러였던 회사의 부채는 2009년 13억 달러로 불었다.” 레버리지의 증가로 자산가치가 계속 올랐기에 “시몬스를 소유한 사모펀드가 현금을 챙길 수 있었고 그 다음에 회사를 인수한 기업들이 부채를 더 늘릴 수 있었다. 많은 사람이 이 거래를 통해 거액을 챙긴 반면 회사의 장기적인 가치에 대해선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의 헤게모니는 점점 더 많은 이윤이 실물경제에서 금융으로 이전되도록 강요했고 자본배분을 왜곡했다. 그리고 실물을 떠난 돈놀이의 무한순환이 폭발한 것이 이번 금융위기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의 가계와 기업, 개인들의 재무구조는 지속적으로 현금흐름을 낳는 자산이 많은 포지티브 캐리에서 네거티브로 바뀌었다. 여기서 네거티브 캐리는 서비스나 주택처럼 현금흐름을 낳지 않거나 무형의 편의성만을 낳는 자산이 많은 상태를 말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미국 사회 전반에서 대차대조표상의 자산구성이 포지티브 캐리에서 네거티브 캐리로 조직적으로 변경되었다. 포지티브 개리인 대차대조표에서는 자산에 의해 창출된 현금흐름이 부채에 대한 이자지급에 필요한 금액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이고 누적으로 발생하는 이익이 시간이 가면서 지속적으로 대차대조표상의 자기자본으로 축적된다. 반면에 네거티브 캐리의 대차대조표에서는 부채에 대한 이자지급을 위해 필요한 현금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자산을 매각해서 생긴 자본이득이 있어야 하고 이 수익이 부채의 원리금 상환에 스인다. 물론 매각할 수 있는 자산의 가격이 떨어져서 최초의 취득가격보다 낮아지면 심가한 문제가 생긴다. 불가피하게 버블이 생길 수 밖에 없다면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 발생한 (닷컴버블 같은 ) 생산적인 버블이 그나마 최선이다. 최악의 버블은 은행에서 자금을 조달해 발생하는 자산버블이다. 1986년부터 90년까지 일본의 부동산 버블이 바로 그러한 예이다. 그리고 2008년 주책 위기는 대공황 이후 최악의 버블이다.”

자본 배분만 왜곡된 것이 아니다. 노동의 배분 역시 심각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생산적인 산업보다 서비스 부분에 더 유리한 방향으로 사회적 이동이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운동선수나 CEO, 헤지펀드 매니저 등 사회적 편익이 비교적 협소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터무니없이 많은 연봉과 보상이 돌아간 반면 의사나 간호사 교사와 같이 사회적 이득이 넓게 퍼지는 부문에는 덜 돌아갔다. 이처럼 노동 가격의 신호가 왜곡되면서 인력의 이동이 일어난 것이다.”

노동시장의 가격이 왜곡되면서 노동의 흐름은 이렇게 왜곡되어 왔다. “서구에서 공학은 이제 구식이 되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만 해도 미국에서 가장 뛰어나고 촉망받는 인재들은 대부분 물건을 만들어내는 거칠고 험한 일을 마다하지 않았고 무언가를 발명하는 현장에서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1990년대에는 상위 10%의 인재ㅑ들이 모두 서비스 산업 특히 선망되는 금융업과 컨설팅업에 몰려들었다. 과거에 대학졸업자들은 1950년대와 1960ㄴ연대 석유회사의 엔지니어나 국무부의 외교관처럼 무언가 실절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석유화사나 IBM같은 기술기업에서 관리자가 되엇다. 대졸자들은 1990년대와 200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투자은행가나 경영 컨설턴트처럼 ‘떠드는 사람’이 되더니 급기야 헤지펀드나 사모펀트의 투기꾼이 됐다.”

“중국이 영국보다 15배나 많은 엔지니어를 양산해 낸다는 사실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중국은 전 세계 연구자의 15%를 차지하고 미국은 약 23%를 점한다.” 그 격차는 점점 좁혀져 왔고 지금의 추세라면 추월하는데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다. “한 나라의 과핮가와 기술자, 기능공의 양성과 그 나라의 경제성장 사이에는 강한 상관고나계가 있다는 견해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감안할 때 이러한 토ㅓㅇ계수치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경제가 고도화될수록 1차에서 2차, 2차에서 3차로 경제의 중심이 옮겨간다고 말한다. 그러나 제조업을 내준 것처럼 서비스 산업도 내줄 운명이라 저자는 본다. 인도로 아웃소싱되는 일자리들을 보라. ‘그렇다면 서구는 그 대신 어디에 관심을 가졌어야 했을가? 그것은 서구가 과거에도 확실한 비교우위를 갖고 있었고 지금도 상당부분 우위를 가지고 있는 R&D 분야다. 물론 서구가 R&D 분야에 혁신을 원했다 하더라도 이러한 전략을 실현하는데 필요한 과학, 기술 분야의 고등교육을 소홀히 했다는 문제가 있다. 그 바람에 이 분야의 전문성이 필요한 순간에 그 일을 할 만한 전문가가 부족했다.” 그 대신 ‘서구사회는 지난 30년간 가장 우수하고 총명한 인재들을 컨설팅과 금융서비스, 은행업으로 글어들엿다. 그런데 바로 그 산업이 2008년 금융위기로 몰락햇다.”

“서구의 우위와 탁월한 업적은 대부분 발명에서 비롯된 것이엇다. 그러나 서구가 한때 누렸던 과학과 기술의 독점적 지위는 이제 완전히 무너졌다. 최근까지도 새로운 기술은 거의 모두 미국에서 나온 것이 사실이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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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의 세기 - 20세기는 왜 피로 물들었는가
니얼 퍼거슨 지음, 이현주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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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4월 4일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가 암살당했다. 아이오와의 초등학교 교사인 제인 엘리엇은 학생들에게 그의 암살 사건에 대해 설명해주고 싶었다. ‘나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할 때가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는 학교에 입학한 첫날부터 줄곧 인종차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달 전 ‘이달의 영웅’으로 뽑횐 킹 목사의 암살 사건을 학생들에게 설명하기란 너무 어려웠다.’

다음날 그녀는 학생들이 편견에 대해 확실히 실감하길 원했다. 그녀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을 두 집단으로 분류했다. 갈색 눈의 아이들과 푸른 눈의 아이들이었다. 그런 다음 엘리엇은 아이들에게 충격적인 선을 했다. 갈색 눈을 가진 아이들이 푸른 눈을 가진 아이들보다 훨씬 우수하다고.

두 집단은 분리되었다. 푸른 눈의 학생들은 교실 뒤쪽에 모여 앉아야 했고 갈색눈의 학생들은 푸른 눈의 아이들보다 더 똑똑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쉬는 시간을 추가로 더 길게 즐 길 수 있었다. 푸른 눈의 학생들은 멀리서도 눈 색깔을 구분할 수 있도록 목에 특별한 칼라를 달았다. 두 집단은 쉬는 시간에 함게 어울리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엘리엇은 학생3들의 급격한 변화를 목격하고 엄청난 충격을 바ㅏㄷ았다. “아이들은 갑자기 심술궂어졌고 친구들을 차별하고 못되게 굴었다. 정말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다. 갈색 눈의 아이들이 푸른눈의 친구들을 놀리고 경멸하기 시작하면서 우정이 급속도로 파괴되었다.”

다음날 엘리엇은 교실에 들어가 자신이 틀렸다고 말했다. 사실은 갈색 눈이 더 열등하다는 것이엇다. 푸른 눈의 아이들은 환호했고 갈색눈의 아이들에게 달려들어 목에 달았던 칼라를 붙여주었다.

열등한 집단에 속하게 된 학생들은 스스로에 대해 슬프고 나쁘고 심술궂고 멍청하다고 묘사했다. 한 소년은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나쁜 쪽에 속해 있을 때는 나한테 세상 나쁜일이란 나쁜 일은 다 일어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우수한 집단에 속하게 되자 학생들은 즐겁고 착하고 독똑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엘리엇의 실험은 학생들에게 편견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체험하게 해주었다. 잔인할 정도로 구체적으로. 학교를 졸업한 지 15년 후 엘리엇의 학생들은 그때의 경험이 얼마나 깊은 영향을 주었는지 털어놓았다. 단 하룻밤 사이에 자신의 사고방식이 어떻게 변했는지 생생히 기억하는 레이 한센은 ‘그것은 내 일생을 통틀어 가장 심오한 경험이었다’라고 말했다. 수 긴더 롤랜드는 ‘때로 나는 편견에 사로잡히게 되면 잠시 생각을 멈추고 3학년 때를 떠올린다. 그러면 차별을 당한다는 게 어떤 기분이지 깨닫게 된다.’” (칩 하스, 댄 하스)


차별은,,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란 것을 엘리엇의 학생들은 깨달았다. 특별할 것 없는 초등학생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아우슈비츠에서 보스니아와 르완다에서 그리고 고대 그리스와 중국에서 인간이 해왔던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이웃을 ‘어버버’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라 경멸하는 의미로 바바리안이라 불렀다. 그리스어를 하지 못하는 사람은 열등한 인간이었다. 그 이웃은 그리스인들이 야만을 헤맬 때 인류 최초의 문명을 만든 사람들인데 말이다.

아우슈비츠에서 ‘쓰레기’들을 청소한 사람들은 엘리엇의 학생들과 다를 것 없는 보통 사람들이었다. 한나 아렌트가 말했듯이 아우슈비츠에서도 르완다와 보스니아에서도 악은 평범했다. “대량학살과 거기에 비교할만한 집단 폭력에서 우리는 광기와 사악함을 보고 이런 일을 어떤 사람들(‘피에 굶주린 세르비아인’)이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나 라트코 믈라디치처럼 미친 사람 또는 그 집단의 비정상적인 성격 탓으로 돌리고 싶어한다. 이런 설명들은 대량 살상이 인간 세계의 ‘정상적인’ 작동이 아니라 돌발적인 지진이나 화산폭발처럼 비정상적인 것이라 생각하면서 안심시키는 힘이 잇다. 그러나 우리가 바람직한 사회적 결과를 인간 본성의 자연스러운 산물로 보면서 동일환 인간 본성이 만드는 어두운 면을 외면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역사를 돌아볼 때 인간이 가진 증오와 폭력의 능력도 분명히 우정과 협력의 능력과 똑같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협력을 통해 힘든 추수를 해 냈고 적을 방어했고 땅과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여 이웃 집단을 살육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개인이 가진 이타적인 본성은 역설적으로 집단으로 인해 생겨난다. 개인이 개인을 돕는 행위로만 보아서는 이타주의를 설명할 수 없다. 개인들이 뭉쳐서 사회를 이루고 집단 단위로 경쟁한 결과로만 이타주의를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집단에 대한 가장 명백한 사실 하나는 그것을 저으이하고 특징을 부여하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집단의 구성원은 뭔가를 공유하는데 이것은 국적일 수도 있고 피부색 복장 나이 거주지역 말투 등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특정집단을 싫어핟나는 공통점만으로ㅓ도 집단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이러한 표지들은 심리적인 힘을 행사해 많은 사람들은 원천적으로 차별하며 피부색이나 종교., 옷 따위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게 만든다. 민족주의적 증오, 인종주의적 혐오, 또는 다른 문화에 대한 증오는 사회적 역설이다. 사람들을 불화하게 하는 이런 힘이 협력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마크 뷰캐넌)

물론 보스니아와 같은 일이 언제나 어디서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 사이를 정의하던 질서가 무너질 때, 그 질서를 재규정해야 할 무질서가 떠오를 때, 무질서가 흩어놓은 집단의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할 때 보스니아와 같은 일은 일어난다.

“강한 민족적 증오의 주요 원인은 같은 공동체에 속한 다른 민족들이 어떤 이유로 사업이나 거래를 하지 못하게 되면서 민족 간의 사회적 연결이 무너져 통상적인 사회역학이 붕괴하기 때문이다. 경제가 혼란스럽거나 내전이나 혁명이 일어나 건전한 사회적 상호작용이 무너지면 사람들은 신뢰할만한 사람들을 구별하기 위해 원시적인 메커니즘에 매달리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성격과 평판을 알아보기 위해 정교한 판단의 근거를 찾으려는 노력은 무력해지고 조악한 인상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국외자와 외국인, 다른 인종의 사람들이 갑자기 위험 인물들로 보인다.” (마크 뷰캐넌)

이책은 홀로코스트와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은 전간기의 특수한 조건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오늘날 경제의 낙관주의자들은 ‘지구가 평평하다’라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있다. 100년전에도 상품과 자본, 노동이 영국으로부터 지구 끝까지 자유로이 이동하는 비슷한 방식의 세계화가 찬양받았다. 그러나 1914년 세계화의 첫 시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이슬람 지역에서 세르비아인의 과격한 테러로 깜짝 놀랄 충격을 안기며 끝났다.” 1차대전이 끝나고 전전의 질서로 돌아가려 안간힘을 썼지만 불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벨르 에포크라 불리며 세계의 질서를 규정했던 세계화는 위태로웠으며 1차대전과 함께 사라진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 그리고 오스만 제국의 폐허는 질서의 진공 상태에서 회복되지 않았다.

2차대전은 제국이 사라진 진공지대를 채울 공기, 질서를 만들려는 시도 때문에 일어났다. 그러나 그 질서는 다민족이 공존했던 과거의 제국일 수 없었다. 제국이 무너진 폐허에 세울 질서는 이질성의 조화가 아닌 동질성의 통합이 선호되었다.

“세계대전은 경제적 변동성에 의해 촉발되었다. 세계경제가 30년 동안 대변동을 겪은 이유는 1차대전에 의해 세계화가 방해받았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디플레이션 호황, 불황, 이 모든 경제적 변동은 유럽과 동아시아의 불안을 가중시켯고 기존 제국들을 약화시켰다. 그리고 새로 들어선 민주주의 국가들을 위협했고 인종 간의 반감을 고조시켰다. 또한 터키, 러시아, 일본 독일 같은 제국 국가의 등장에 길을 열어주었는데 각국은 민족 동질성과 위계질서를 병적일 정도로 갈망했다.”

나치의 인종청소와 스탈란의 테러는 그러한 동질성과 위계질서의 프로젝트였다. 좌든 우든 유럽이든 아시아든 파시즘이 불관용의 폭력을 휘두른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그 폭력이 인종(또는 민족)을 청소한 덕분에 “20세기 전반의 주요 전장이었던 유라시아 동서 분쟁지에서 민족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줄어들었다. 2차대전 당시와 그 이후 인종 청소로 소수 민족 수가 크게 줄면서 과거 어느 때보다 사회가 동질화되었다.”

그러나 그 폭력의 무자비함과 불관용 때문에 대동아공영권과 제3제국은 무너질 수 밖에 없었다. 역사상 성공한 제국은 모두 관용(또는 포용) 위에 세워졌다. 제국은 타자의 협력 위에서만 성공한다. 그러나 자기 집단만의 이기심 외에는 타자가 들어설 여지가 없었던 독일과 일본의 파시즘은 타자의 협력을 원천봉쇄해버렸다.

1942년까지 독일과 일본의 제국은 세계를 지배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들의 적은 그들과는 원래부터 ‘체급’이 달랐다. 인구와 경제규모에서 추축국의 몇배를 가볍게 넘기는 세 제국의 체급은 두 신생제국이 애초부터 상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승승장구할 때만 해도 잔인함과 오만함에도 불구하고 힘에 이끌린 기회주의자들의 협력을 얻을 수 있었지만 물량전에 밀리기 시작하자 협력은 배척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들의 몰락과 함께 ‘제국의 시대’는 황혼을 맞았다.

“100년전 서양은 세계를 지배햇다. 100년 동안 유럽 제국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거듭한 뒤, 서양은 더 이상 세계를 지배하지 못하게 되었다. 100년전 서양과 동양의 경계선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근방에 위치했다. 이제 그 경계선은 유럽의 모든 도시를 관통하는 듯하다(저자는 이슬람 이민자를 말하고 있다). 이는 이 새로운 단층선을 따라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만약 ㅜ20세기의 역사가 지침이라면 서로 다른 민족 집단이 같은 종교, 같은 유전자는 아닐지라도 같은 언어를 공유하며 상당히 잘 통합되어 있는 곳에서도 이 연약한 문명 체계가 급속히 무너질 수 잇다는 얘기다. 또한 20세기는 경제적 불안정이 그러한 반발의 발생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도 증명했는데 20세기 전반기에 등장한 새로운 복지 국가에서 특히 그러하다. 그 이유는 살아가기 어렵거나 빈부의 차가 커지면 소수 민족 집단들을 적대적으로 바라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20세기 중반 최악의 학살이 폴란드 우크라이나 발칸 반도, 만주 같은 곳에서 발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편 20세기 후반에 발생한 과격한 폭력 사태는 더 다양한 지역으로 옮겨 갔는데 과테말라에서 캄보디아까지 앙골라에서 방글라데시까지 보스니아에서 르완다까지 그,리고 최근에는 수단의 다르푸르까지 확산되었다. 제국이 쇠퇴하면서 분쟁이 일어난 곳이나 힘의 공백 지대에서 대량 학살을 자행하는 정권이 기회를 잡을 가능성이 커졌다. 민족 통합과 경제적 변동성, 쇠퇴하는 제국, 이 세 요인은 치명적ㄹ인 공식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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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후 미래 - 세계 경제의 운명을 바꿀 12가지 트렌드
다니엘 앨트먼 지음, 고영태 옮김 / 청림출판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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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번역 제목처럼 10년후에 어떨 것이라는 예측을 하지는 않지만 단기나 장기가 아니라 중기적으로 세계경제의 변화방향을 예측하기 때문에 번역서의 제목이 그리 틀린 것은 아니다.

이책이 그리는 미래는 지금과 비슷하기도 다르기도 하다. 우선 저자는 지금까지의 세계화가 더 심화될 것이며그 세계화의 방향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중심으로 미래의 모습을 그린다. 이번 위기로 세계화가 좌초되지 않을까란 우려가 있었다. 19세기의 세계화가 1차대전으로 산산조각나고 대공황으로 사망했듯이 이번 금융위기가 세계화를 죽이지 않을까란 우려였다.

이번 금융위기가 심각했던 이유 중 하나는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묶였기 때문이었으니 그리 큰 비약이랄 수는 없다. 그러나 세계를 움직이는 엘리트들은 세계화의 중단을 원치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중단되지 않을 것이라 저자는 가정한다.

그러나 앞으로의 세계화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양상일 것이라 저자는 가정하며 세계화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가 이책의 내용이다.

우선 저자는 세계시장의 플레이어들 간에 계층화가 뚜렷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 위기로 분명해진 것은 세계경제의 중심이 아시아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G20 내지는 G2란 말은 그러한 권력이동을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앞으로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선 저자는 주요 플레이어들 중 중국과 EU의 몰락을 예측한다.

저자의 입장은 지금까지의 China Bashing가 그리 다르지 않으니 그리 주목할 것은 없다. 그러나 저자의 분석에서 한가지 주목할 것은 딥 팩터란 시각이다.

저자가 말하는 딥 팩터는 언뜻 보면 어려울 것은 없다. 경제성장은 노동투입, 자본투입 그리고 생산성(TFP)의 곱셈이다. 생산성을 보통 주류경제학에선 기술로 설명한다. 같은 노동량과 자본량을 투입하더라도 그 결과는 생산성 즉 노동과 자본을 활용하는 효율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효율의 차이가 왜 나는지 설명하기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기술수준으로만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도학파가 말하는 제도(institution) 개념이 어느 정도 설명력이 있다. 재산권이 확립되어 있는가. 법치주의가 통하는가, 정부는 효율적이고 부패하지 않았는가 등 보통 문화란 말로 설명하던 개념을 시장에 적용한 것이 제도란 개념이다.

저자가 말하는 딥 팩터의 개념은 제도란 개념과 유사하다. 저자는 딥 팩터의 차이가 그 국가의 경쟁력을 결정한다고 본다. “20세기 후반에 일본은 미국과 동일한 수준의 딥 팩터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성장의 벽에 부딪혔다. 시장은 미국만큼 경쟁적이지 못했고 기업환경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관료제도는 일처리 속도가 느리고 민첩하지 못했다. 일본은 미국과 동일한 국가군에 편입되지 못했고 결국 모든 잠재력을 동원해도 미국을 따라잡거나 앞설 수 없었다.”

저자는 중국도 같은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 예측한다. 결국 중국은 2류에 머물 수 밖에 없다고 저자는 본다.

마찬가지 이유 때문에 저자는 EU의 붕괴를 예측한다. EU의 붕괴는 그리 낯선 예측은 아니다. 유로화가 도입되었을 때부터 하나의 유럽이란 이상이 비현실적이란 지적은 자주 나왔고 유로화의 폐지에 대해서도 많은 말들이 있었다. 이번 남유럽 사태는 바로 상징이다. 저자는 EU 회원국간의 딥 팩터의 차이 때문에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충돌할 것이고 EU는 유명무실화될 것이라 예상한다.

중국과 EU를 분석하면서 세계시장에서 플레이어들간의 차이는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이라 저자는 본다. 그런 차이의 심화는 과거의 남북문제를 새로운 차원에서 부활할 것이라 저자는 예측한다. 저자의 용어로 하자면 경제식민주의와 브레인 드레인의 업그레이드이다.

지금까지 세계화는 국가간의 격차는 좁히고 국가내의 격차는 넓히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앞으로의 세계화는 다를 것이라 저자는 본다. 우선 자원부족, 인구학적 재앙 때문에 지난 30년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

자원부족과 노동력의 부족은 경제성장에 치명적이다. 해법은 있다. 자원과 인력이 넘치는 곳에서 가져오면 된다. 중국이 그동안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원을 선점한 것이 그 해법의 한 예이다. 저자는 그런 방법을 경제식민주의라 말한다. 물론 과거 제국주의 시절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 지배에는 아무 관심이 없고 단지 그 나라의 자원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원을 가져오는 대가도 분명 지불한다. 문제는 자원부국인 나라들이 거의 그 돈을 제대로 활용할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결국 그 돈은 낭비될 것이고 그 돈에 중독된 기형적인 구조를 낳을 것이라 저자는 본다. 과거 제국주의 시절과 결과에선 그리 다를 것이 없다고 저자는 예측한다.

자원부국들은 인구부국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인구는 활용되지 않는 잉여노동력일 뿐이다. 고령화 저출산이란 폭탄을 안고 있는 나라들은 그 인력을 수입하기 위해 경쟁할 것이라 저자는 본다. 낯선 것은 아니다. 실리콘밸리의 활력은 인도와 중국 등에서 온 인재들에 힘입었다. 그러나 앞으로 실리콘 밸리와 같은 현상은 세계적 차원에서 강화될 것이라 저자는 본다.

경제식민주의와 브레인 드레인은 딥 팩터에서 우위에 있는 국가가 열위에 있는 국가 위에서 실질적으로 착취하는 결과를 낳는다.

물론 경제식민주의와 브레인 드레인은 세계화의 공식적인 질서가 될 수는 없다. 저자는 공식적인 질서에서도 차이는 노골적이 될 것이라 본다.

세계시장의 공식질서는 WTO이다. 그러나 사실상 도하 라운드의 사망으로 WTO 체제는 뇌사 상태이고 앞으로도 부활할 수는 없을 것이라 저자는 본다. WTO 체제가 정체되면서 나타난 현상은 FTA의 폭증이었다. 앞으로 이런 흐름은 경제블록화로 나타날 것이라 저자는 본다. 경제블록화는 만장일치인 WTO 체제와 달리 실제 경제적 실력이 발언권에 그대로 드러날 것이고 실제 경제적 힘과 이익에 따라 현실의 경제질서가 재편되면서 지금보다는 더 효율적인 시장질서가 만들어질 것으로 저자는 본다. WTO의 이상주의를 벗어던지는 것이 더 현실적이란 말이다.

저자는 금융시장도 지금과는 달라질 것으로 본다. 이번 금융위기로 지금까지 방임했던 금융시장을 그대로 놔둬서는 안된다는 합의가 이뤄졌다. 문제는 규제시스템이 만들어진다고 시장이 그 규제에 따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법망의 헛점을 찾는 수준에서 벗어나 아예 금유거점을 규제가 허술한 곳으로 옮기는 현상이 강화될 것이라 저자는 본다. 저자는 그것을 금융 암시장이라 부른다.

금융 암시장은 규제에서 벗어난 시장이므로 지금까지보다 더 불안정할 것이다. 그리고 금융 암시장에 방대한 자금이 몰릴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금융 암시장의 영향력은 클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영향력이 큰 만큼 시장붕괴의 악영향도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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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붕괴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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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은 여러가지 이유로 무너진다. 이 책은 그 중에서 한가지, 환경파괴로 무너진 문명만을 다룬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현재 우리의 문명이 무너진다면 환경파괴로 무너질 가능성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이책은 역사서가 아니라 과거를 돌아보며 지금을 생각해보자는 의도로 쓰여졌다.

그러나 그런 주제를 다루는 책은 많다. 그 많은 책 중에서 이책은 시장에서 독보적인 대접을 받는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책의 구성에 있을 것이다. 저자의 전작인 ‘총 균 쇠’처럼 이 책은 간단한 가설을 제시하고 그 가설을 여러 사례에 적용해보면서 그 가설의 의미를 분명히 하고 가설을 증명해나가는 형식이다. 역사학자의 방식이라기 보다는 과학자의 서술이다. 저자가 역사학자가 아닌 생물학자이니 당연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서술방식 덕분에 두꺼운 책이 명료해지고 의미가 분명하기에 재미있어진다.

저자의 가설은 단순하다. “과거 사회의 붕괴는 약간의 차이가 잇지만 큰 줄기에서는 유사한 과정을 밟은 듯하다. 인구 폭발로 관개 시설, 이모작, 계단식 밭 등 농산물 생산을 늘리기 위한 집약적인 수단을 동원해야 했고 처음 선택한 우량한 땅에서 주변의 땅까지 농지를 확대해야 했다. 점점 늘어나는 굶주린 배를 채우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처럼 지속불가능한 수단의 동원으로 환경 피해가 뒤따랐고 그 결과 주변에 개발한 농지가 다시 버려졌다. 식량 부족과 굶주림, 부족한 자원을 두고 다툰 민족들 간의 전쟁, 환멸을 느낀 민중의 모반 등이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결국 기아, 전쟁, 질병 등으로 인구가 줄었다. 대신 사회는 정치, 경제, 문화의 다양성에서 전성기 때의 힘을 상실했다. 소련의 몰락을 생각해보면 충분하다. 과거 사회들은 인구 수와 힘에서 정점에 이른 후 급속히 기울어졌다. 이런 급속한 몰락은 주민들에게 충격이었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죽거나 다른 보금자리를 찾아 떠났다.”

복잡계 이론에 따라 저자의 가설을 다시 설명해보자. 사회를 열린 시스템이라 생각해보자. 사회란 시스템이 유지되려면 외부에서 에너지가 계속 들어와야 한다. 그 에너지의 유입경로를 경제라 부른다. 에너지의 유입량이 늘어나면 시스템이 활성화되고 사회의 규모도 늘어난다. 규모가 늘어나면 에너지는 그만큼 더 필요하다. 문제는 환경이 그 사회가 필요한만큼의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가의 여부이다. 저자는 다양한 과거 사회를 분석하면서 많은 사회들이 환경의 한계 이상으로 에너지를 뽑아내면서 경제가 무너졌고 경제의 붕괴는 사회에 충격을 주고 정치에 충격을 준다. 시스템이 이 충격을 버틸 수 없는 한계에 이르면 갑작스런 파국이 오고 사회는 붕괴하면서 시스템은 카오스로 돌아간다.

시스템에 충격이, 다시 말해 스트래스가 가해진 상태에서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따라 파국은 올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사회의 구성원들이 문제를 인식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대책을 만든다면, 그 대책이 성공한다면 파국은 오지 않는다. 또는 다른 사회와 교역으로 환경이 제공할 수 없는 에너지를 가져올 수 있다면 파국은 오지 않는다.

물론 저자는 복잡계 이론에서 말하는 시스템의 개념으로 사회를 분석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저자의 가설은 위와 같이 재해석해도 무방하다.

저자는 자신의 가설을 다섯가지 변수로 정리한다. 예를 들어 마야의 경우를 보자. “사회적 붕괴 요인으로 제시한 다섯가지 요인 중에서 마야 사회는 네가지 조건을 충족한다. (첫째) 그들은 삼림 파괴와 그에 따른 (토양) 침식으로 환경을 홰손햇다. (둘째) (환경파괴에 더해진) 기후 변화, 즉 가뭄도 마야의 붕괴에 한 몫을 햇다. (셋째) (악화된 자원사정 때문에 일어난) 마야 사회 내에서의 내홍도 큰 역할을 햇다. 끝으로 정치, 문화적 요인 특히 왕과 귀족이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힘쓰지 않고 (악화된 자원사정을 더욱 악화시키면서) 경쟁적으로 전쟁을 치르고 기념물 건립에만 몰두한 것도 마야를 붕괴로 몰고 간 중대한 원인 중 하나였다. 다섯 사지 요인 중 남는 것은 외부 사회와의 우호적인 교역이다. 그러나 이 요인은 마야 사회의 부침에 큰 역할을 하지 못한 듯하다. 흑요석, 옥, 황금, 조개껍질 등을 수입하기는 햇지만 흑요석을 제외한 나머지 셋은 반드시 필요한 수입품이 아니었다.”

이책은 마야와 같은 과거 사회만 다루지는 않는다. 문명의 붕괴를 다룰 때 빠질 수 없는 이스터 섬이나 마야 등을 다루는 부분은 이책의 반 정도에 불과하다. 오히려 르완다 내전이나 아이티, 도미니카 공화국, 호주와 같은 동시대의 사회를 분석하는 지면이 약간 더 많다. 이책의 관심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저자의 분석틀은 과거 사회에도 현재 사회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며 강한 설명력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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