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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게 살아도 괜찮아 - 독한 세상에서 착하게 살아남는 법
카야마 리카 지음, 김정식 옮김 / 모벤스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어플루엔자 가치들은 전혀 새롭지 않다. 그것들은 사유재산제가 도입된 기원전 1만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근본적으로 변한 것은 1970년대 이래 그런 가치들이 사방에 널리 실재하며 그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영어권 국가 대다수 사람들이 이제 자신의 삶을 소득, 소유, 외모, 명성 등으로 정의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근원적인 욕구를 만족하는데 걸림돌이 되어 오히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
나는 10년전 25세의 미국인이 우울증에 시달릴 가능성이 1998년 당시 1950년보다 세배에서 열배나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1950년대 관점으로 보면 오늘날 평범한 미국 어린이가 느끼는 불안은 병적인 수준이다.
그 이후 많은 미국 작가들 그리고 영국 작가들이 나를 따라 그 분야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이 관심을 갖는 것이 행복이긴 하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우리 시대를 상징하는 현상들, 이를테면 우리가 정서적으로 곤경에 처해 있다거나 절망, 좌절, 분노 등이 우리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그 원인을 분석하기 보다는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 법,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해서만 끊임없이 늘어놓고 있다. 나는 행복이란 즐거움과 유사한 것으로 공상적이며 일시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행복해지려고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다'라는 옛 격언에 동의한다. 행복을 입증하는 증표로 고통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없다. 행복을 들먹이는 거짓 약속 대신 우리가 왜 그렇게 혼란에 빠져있는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간단히 말해 내가 '이기적 자본주의'라 부르는 불쾌한 정치경제학이 어플루엔자 바이러스를 퍼트렸다. 이 바이러스는 1970년대 이후 정서적인 고통의 원인이 되었다. 선진국에서 정서적 고통을 겪는 사람의 비율은 소득 불균형에 비례해 증가하고 있다. 이기적인 자본주의는 선진국에서 불평등의 주원인이다." (올리버 제임스)
소위 자기계발서라는 책들의 주제를 보자. 성공을 말하고 부자를 말하며 행복을 말한다. 간단히 말하면 성공하고 돈을 얻으면 행복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해서 행복할까? 직장에서 정상에 오르고 거대한 부를 이루는 사람들은 특정한 유형이 있다. 그러나 그 유형은 절대 자기계발서에서 말하는 그런 모습이 아니다. 그책들은 현실의 반짝이는 면만 보여주고 정작 그들이 그렇게 된 진짜 원인은 말하지 않는다.
“남편감으로 어떤 사람이 좋으냐는 질문에 대해 여성들은 문화와 관계없이 무엇보다도 친철함과 공감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이와 동시에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능력도 상당히 중시한다. 그러나 친절함과 공감은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능력과 충돌한다. 여성들이 이 두개의 서로 엇갈리는 가치를 어떻게 관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현실적인 문제다. 여성에게 화려한 삶을 가져다줄 수 있는 사람은 그런 삶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대니얼 네틀)
지위와 능력이 있는 사람은 (앤디 그로브 식으로 말하면) '미친' 놈이다. 'Only the paranoids suvive' 어느 분야든 정상에 남는 자는 그 목표에 미쳐야 한다. 그 목표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가 충분한 사람만 정상에 오른다. 맑스의 신조처럼 “남이 뭐라 건 네 갈길을 가라.” 그런 각오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착함'과는 거리가 멀다. 주변을 돌아볼 여유는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희생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억만장자들의 기본적인 특징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부의 추구를 즐긴다는 것이다. 상을 받는 것보다 이겼다는 만족감 그 자체가 그들을 보통의 슈퍼리치의 대열로 이끈 원동력이다. 자수성가한 억만장자들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에 무관심하다. 그들 중 많은 사람은 사는 모습이 소박하다. 샘 월튼과 워렌 버핏은 자신들의 막대한 재력으로 사치스러운 토지를 사들이는 것을 거절한 사람들이다. 로스 페로와 필 얀슈츠는 그리 비싸지 않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만족했으며 해마다 최신 모델을 찾지도 않는다. 다른 슈퍼리치들도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면서 그들의 물질적 욕망을 쫓기보다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노력햇다." (마틴 프리드슨)
정상에 오른 사람들은 부와 지위 그 자체에 관심이 있었지 그 혜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적다. 돈을 쓰기 위해 버는 것이 아니라 돈 그 자체를 따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당신은 그런 사람인가? 부와 지위를 진심으로 원하는가? 그렇다면 각오를 해야 한다. "(포츈 500 리스트에 오른 거부) 웨인 휘젠거는 하루에 20시간을 그의 독창적인 사업인 쓰레기 수거사업에 투자한 사람이다. 세월이 지난 후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내 아이들이 야구를 하며 노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딱 한 번 딸아이가 연극하는 것을 봤을 뿐이다. 함께할 수 있는 추억읃 나는 모두 놓쳐버렸다. 거부가 된다는 것은 결코 좋지만은 않다. 만약 누군가 나처럼 모든 것을 팽개치고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면 가족들을 위한 시간을 조금 남겨두라고 충고하고 싶다.' 사실 대부분의 억만장자들은 너무 많은 것을 일에만 쏟아 붓고 그 가족들은 그것을 견뎌내고 있다.' (마틴 프리드슨)
그런 삶을 원하는가?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오랫동안 환자들을 보아온 저자는 그렇게 살 수 없는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 불안해하며 자신을 괴롭혀야 하는지 의아해 한다.
“5살 난 여자아이의 엄마인 그녀는 하루에도 몇번씩 딸에게 ‘착한 해가 돼야지! 이게 뭐니!’라며 소리를 지르게 된다고 하소연이다. ‘말씀하신 그런 ‘착한 아이’란 어떤 아이죠?’ 대학원을 나와 대기업에서 근무한 적도 있다는 그 이지적인 엄마에게 물었다. ‘착한 아이요? 착한 아이가 뭐냐고 하심… 요즘 같은 시대엔 척척 알아서 공부하는 아이, 라이벌에게 지지 않는 아이겠죠, 물론 좋은 대학에도 가고…’ 이것저것 물어보니 아무래도 그 집 딸아이는 소극적이고 조용한 것같았다. 예를 들면 영재교실에서 단체 체조 시간이 시작되면 다른 아이에게 양보하다 보니 꼭 맨 뒷줄에 서버린다. 또 엄마가 영어를 가르쳐 주고 있자면 ‘앵순이 밥 줘야 하는데…’라면서 애완용 잉꼬를 돌보려고 한다. ‘못된 아이에요, 제 딸은…’ ‘음…. 오히려 아주 착한 아이 같은 같은’ 그러자 그녀는 놀란 듯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잠깐 골똘히 생각하던 그녀가 말햇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희 남편도 성격이 워낙 소극적이라 모처럼 좋은 회사로 옮겨도 좀처럼 출세를 못해요. 딸아이가 남편의 나쁜 점만 닮았다고 남편한테 화를 낸 적도 여러 번이에요. 하지만 어떻게 보면 제 남편도 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죠.’”
남에게 양보하고 애완동물을 사랑하는 아이가 착한 아이가 될 수 없는 세상는 어떤 곳일까? 저자는 뭔가 잘못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마음씨 곱고 배려심 깊고 경쟁 상대를 밀어내는 것이 서투른” 그런 사람은 착해빠진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이런 세상은 어떤 곳일까? 그 세상이 이상화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자.
남의 사정을 배려하는 마음 때문에 망설이고 주저하는 우유부단한 사람은 쓸모없고 단칼에 무 자르듯 ‘결단력’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가? 그러나 “망설이는 사람, 결정 못하는 사람은 미성숙한 것이 아니다. 그만큼 생각의 깊이가 풍부하다.
자기주장이 없고 남의 말을 자르면서까지 할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면 줏대없는 쓸모없는 사람인가? 그러나 자기주장이란 “감정을 억제한 객관적, 이론적 말하기가 기본이다. 하지만 그런 기술을 몸에 익힌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다보니 자기주장이란 “무턱대고 비판적이 되거나 타인의 이야기를 듣지 않아 오로지 자기주장만 하는 격이 되어버린다.” 적극적이니 자기주장이니 하지만 과연 그 ‘하고 싶은 말은 어쨌든 말하”는 사람만 제대로 된 사람인가?
세상은 그 세상에 사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해야 한다. 그러나 성공만 말하고 부자만 말하고 출세만 말하는 세상에 사는 사람은 오직 한 유형만 말한다. 그러나 ‘이기적 자본주의’에 맞는 사람의 진짜 모습은 어떤 것일까?
“병원에 오자마자 무조건 ‘어쨌든 빨리 해줘요!’라고 요구하던 여성 환자가 있었다. 요즘은 별 요구없이 자신의 순번대로 기다려 진료를 받는 그녀를 보고 “예전에는 왜 그렇게 서두르셨습니까?’라 물었다. 그러자 광고대행사에 다니는 그녀는 이렇게 말햇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초조해 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어쨌든 저희 회사는 개인의 실적에 따라 업무고과가 매겨지는 곳이라 직원 모두 밥 먹을 새도 없이 시간에 쫓겨 가며 조금이라도 더 실적을 올리려 열심입니다. 그런 상황에 내몰리다보니 저도 우울증에 걸린 거겠지만요. 병원에 와서 30분 이상 기다리고 있으면 지금쯤 회사에서는 모두들 열심히 일을 하고 있을텐데란 생각이 들면서 초조해지는 겁니다. 그러면 갑자기 기다리고 있는 시간이 너무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고 지금 이 순ㄱ5ㅏㄴ에 나만 혼자 도태되는 건 아닌가 불안해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얼른 사무실로 들어가야 할 것만 같은 생각에 빠지게 되곤 했죠…’ 결국 그녀는 우울증이 회복되어 감에 따라 ‘나 먼저’에서 ‘먼저 하시죠’로 바뀌어갔습니다. 아마도 그녀는 직장에서 ‘나 먼저’ 타입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마치 눈감으면 코 베어갈 듯한 일상 가운데에서 어쨌든 ‘경쟁에서 이기고 싶다. 주변 사람들보다 먼저 나아가지 못하면 패배다’라고 생각하며 일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밀어내기 경쟁, 앞질러 따돌리기 경쟁’이 마음에 결코 좋은 영향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은 그녀가 심각한 우울증에 걸린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우울증이라도 걸리지 않는 이상 ‘먼저 가시죠’라고 말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던 것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나 염려가 가능한 ‘먼저 가세요’ 주의의 사람들은 어린애 같은 자기애를 졸업하고 성숙한 인격을 획득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분별력 있는 사람’ ‘마음씨가 착한 사람’으로 주변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전체적으로 ‘미성숙한 어린아이 사회’라고 일컬어진다. ‘눈에 띄는 게 이기는 것’이라는 어린애 같은 자기애적 가치관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절반쯤은 병적인 자기애적 인간이 위세 등등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나 먼저’라는 자기애가 강한 사람은 사실은 미숙하고 연약한 사람이다. 그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불안, 자신 없음이 가득하면 할수록 더욱 ‘내가 말한 것은 옳아’ ‘모두가 내 의견을 따르는게 당연해’하며 계속 허세를 부린다.
자기애적 인간에게는 큰 문제점이 있다. 그것은 스스로의 요구에 긑이 없다는 점이다. 그들의 ‘좀 더 이기고 싶다. 좀 더 눈에 띄고 싶다는 욕구에는 이걸로 만족이라는 종결점이 없다. 무언가 이루었어도 다음엔 이거라고 다음 욕망이 치밀어 오른다. 물론 언젠가는 바란다 해도 실현 불가능한 한계 중의 한계가 찾아오지만 그때 그들은 커다란 실망, 좌절, 분노를 한꺼번에 느끼게 되어 허탈감이나 우울증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이기적 자본주의의 인간형은 저자가 보기에 아무리 봐도 미숙함 이상이 아니다. 착한 사람은 무시당하고 이용당할 뿐이라며 착한 아이를 못된 아이로 보도록 엄마를 몰아세우는 세상. 뭔가 잘못 돌아가는 세상이라 저자는 본다. 배려, 용서, 관용 등 오랜 역사에서 인격의 성숙으로 보아온 가치들은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세상. 이런 세상이 얼마나 갈까?
성공과 출세라는 가치 하나로 온 세상을 재며 그 당근을 내세워 결과만, 효율만, 성과만 외치는 세상에서 사람은 쉽게 지쳐버린다. 그 세상이 쓸모없다고 말하는 “것을 줄이고 합리화, 삭감을 극한까지 몰아붙이면 인간의 마음에는 반드시 무리가 생긴다. 본래 가장 오래 무리없이 일하는 것은 오히려 언뜻 봐 효율이 나쁘거나 쓸데없는 시간을 빈둥빈둥 보내며 생활하는 사람 쪽이 아닐까. 또 이런 사람은 본인이 계속 해나갈 수 있을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기분을 누그러들게 하는 힘도 갖고 있다.”
“우울증에 걸린 그 비즈니스맨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저는 지금까지 사내에서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으며 동기들 가운데서도 확실히 가장 일을 잘 해냈습니다. 야근을 밥먹듯이 하며 그만큼 다른 사람들의 몇배나 일을 해치웠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동안 아무리 많은 일을 처리했다 해도 2년이나 직장을 쉬어버려서는 뭘 위해 일을 했는지 알 수가 없네요. 분명 지금 다시 복직한다 해도 저보다 무능한 사원을 없을 테니 곧 해고 대상이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