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너 비숍 Werner Bischof 열화당 사진문고 7
클로드 쿡맨 지음, 이영준 옮김, 베르너 비숍 사진 / 열화당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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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너 비숍의 삶은 우연이 지배했다. 사진하게 된 것도 사진작가에서 기자가 된 것도 모두 우연이었다.

 

유복하고 지적인 분위기에서 자란 베르너 비숍은 어릴 적부터 미술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재정적으로 안정된 직업을 가지길 원하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화가가 아닌 산업디자인을 선택해 1933년 취리히 응용미술학교(the School for Arts and Crafts)에 들어간다. 그러나 응용미술학교에서 상업미술 수업은 이미 자리가 찼기 때문에 사진을 하기로 했다. 카메라라는 새로운 매체의 끝없는 가능성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가 사진을 선택한 1930년대는 모더니즘의 시대였고 파리와 함께 유럽 사진의 중심지인 베를린에선 사진 역시 그 영향을 받은 뉴 비전 운동(참고: http://www.metmuseum.org/toah/hd/nvis/hd_nvis.htm) 이 한창이었다. 뉴 비전이란 말을 만든 모홀리 나기는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뉴 비전)로 사진을 정의했다. “낡은 비전은 1890년대에서 1910년대까지 꽃을 피웠던 픽토리얼리즘이었다. 모더니스트 사진가들은 회화주의자들의 부드러운 초점과 톤의 효과를 거부햇다. 그들은 다른 예술을 흉내내는 대신, 매체 자체의 독특한 능력을 탐색하면서 순수성을 고집했다. 모홀리 나기는 스스로 빛을 그리는 화가라 말했다.”

 

30년대 비숍의 사진은 뉴 비전 운동의 일부였다. “초기 십 년간의 사진에 대해 회상하면서 비숍은 나는(계란, 식물 등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법을 배웠다.’고 썼다.” 졸업 후 그의 작품들은 있는 그대로 보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그 당시 비숍의 작업태도를 완벽주의라 말한다. “한 예로 조개껍질은 비숍이 광고사진 일을 하던 시절 계속 나타나던 소재였다. Argonauta(취리히, 1941)란 사진은 자연에서 발견한 바닷가 풍경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의 장면을 연출하는데 비숍이 얼마나 극도의 완벅주의를 추구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일 뿐이다. 스튜디오에서 직은 이 정물사진은 조개의 뿔들이 배경에 비해 희게 보이고, 앞쪽에서 떨어진 그림자는 모래에 비해 검게 보이도록 세심하게 배치되고 조명된 것이다. 그런 효과를 얻기 위해 비숍은 수도 없이 많은 시간을 조개껍질을 자르고 사포질하고 윤을 내는 데 썼다.” 있는 그대로의 사물은 사진에 그려진 사물이어야 한다. 사진이 실제보다 더 실제같이 보이도록 하가 위해선 사물 자체의 모습이 아니라 매체의 성격에 맞는 것이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된다.

 

사물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인간이 피사체가 될 때 역시 마찬가지이다. '뒷 모습 누드' (취리히, 1937)는 실제보다 더 실제같은 사진을 찍는 비숍의 능력을 잘 보여준다. "비숍은 모델의 등을 톤에 대한 연구로 바꿀 정도로 빛을 아주 잘 다뤘다. 진한 검은색의 넓은 영역과 좁지만 강한 하이라이트 사이에 잘 조절된 회색의 영역이 있다. 비숍은 또한 일반적인 기대와는 다르게 보이는 공간적 깊이를 만들어내고 있다. 배경으로 보여야 할 왼쪽의 검은 부분은 모델의 앞에 있는 평면처럼 보여서 마치 모델이 오른쪽의 검은 평면 앞쪽에 떠 있는 듯이 보인다."

 

역사적인 사건만 아니었다면 베르너 비숍은 독창적인 빛의 작용과 형식에 대한 순수한 연구를 통해 예술계에 뛰어난 사진작업을 가져다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2차대전은 비숍이 모더니즘의 형식주의를 떠나게 만든다.

 

사건이란 2차세계대전과 그 후유증으로 나타난 유럽의 황폐, 식민주의ㅏ의 해체와 냉전이었다. 격동의 세계를 맞아 비숍은 예술 사진가로 남아 있을 수 없엇다. 그는 인간과 그 문제에 대한 열렬한 증언자로 변신했다.” 덩굴, 민들레 씨앗, 누드, 레이스를 대신해 그의 사진에는 갑자기 사람의 얼굴이 나타났다.

 

비숍은 스위스의 노동자들, 맹아학교, 이탈리아의 티치노에 있는 난민수용소, 그리고 스위스의 이탈리아어 사용지역을 찎었다. 평화주의자 로맹 롤랑의 열렬한 독자인 그는 이 사진들과 이후 작업들에서 휴머니즘과 사회주의를 받아들인다.

 

”티치노의 수용소에서 찍은 이 사진은 텅 빈 시선이 깊은 심리적 상처를 암시하는 난민 어린이를 보여준다. 비숍은 전쟁이 그의 '상아탑'을 파괴해버렸다고 썼다. 그리고 '그 후로 나의 관심은 고통받는 인간의 얼굴에 집중되었다. 집에서는 전쟁 전에 찍은 섬세한 사진들을 생각에 잠긴 채 연구했다. 그것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은 찬사를 받은 사진들이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나는 나날의 공포로 감각이 마비되고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수십만의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전후 6년간 유럽 가로지르며 그가 많은 "사진들이 불에 타 버린 독일 국회의사당 건물에서부터 수많은 도시의 벽돌과 돌무더기들까지 물리적인 폐허를 강조하고 있다. 어떤 사진들은 상징적인데, 구멍나고 짖어진 병사의 철모가 폭격 맞은 독일 국회의사당 앞 물웅덩이에 놓여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국회의사당' 베를린, 1946) 불에 타 버린 차와 트럭의 잔해가 독일 국회의사당을 감싸고 있다. 돔은 부서졌지만 건물의 독특한 외양은 알아 볼 수 있다." 비숍은 폐허의 도시적인 스케일을 배경으로 인간의 스케일을 사진의 전경에 배치한다. 그러나 그 역시 도시의 폐허와 마찬가지로 "파편들이 뚫고 지나간 철모가 물웅덩이에 녹슬어가는, 폐허"로 상징할 뿐이다.

 

"그러나 비숍이 전후에 찍은 대부분의 사진은 첫번째 여행에서 발견한 주제를 나타낸다. 그것은 인간의 불굴의 용기이다. 몬테 카시노에서는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이 새집을 짓기 위해 큰 돌 두개를 머리에 이고 간다. 그리스의 지로스에서는 넝마 같은 바지를 걸친 사람들이 전쟁고아를 위한 시설물의 뼈대를 올린다. 비숍의 어린이 사진도 그것들만큼이나 복합적이다. 그는 천장도 없는 교회에서 줄넘기를 하는 여자 아이, 그리고 폐허 속에서 게임을 하는 아이들의 사진을 통해 그들의 활기를 찬양했다. 그러나 그들의 텅빈 시선과 말 없는 눈물에서 그들이 받았을 상처를 회상하기도 했다."

 

포토저널리즘으로 전향한 비숍은 '초기의 심미주의와는 분명히 단절을 했다. 에든버러의 성당을 찍고는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이 죽은 것을 찍으려고 몇 시간 동안 조명과 삼각대와 씨름하는 일은 이제 정말 매력 없다. 차라리 사람들이 오가는 혼잡한 철도역에 서 있는 것이 낫겠다.' 그는 곧 훨씬 더 생생한 곳을 경험하게 된다. 1951년 2월 그는 인도로 갔고 극동에서 거의 이 년을 있었다. 거기서 그의 이후 사진 경력을 채워 줄 자신만의 주제를 개발해낸다. 서구화가 옛날의 식민지였던 나라들을 휩쓸었을 때 비숍은 보통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압력을 느꼈다. 그는 현대의 경제적인 힘의 공세에 대항해 전통문화를 지키려는 그들의 투쟁을 기록하고 싶어했다. 인도, 일본, 한국, 홍콩, 인도차이나, 멕시코, 페루 등지에서 그는 도시를 벗어나 모더니즘의 침범에 해를 입지 않은 마을들을 찾아 다녔다."

 

'어머니와 아이' (비하르 주 인도, 1951)는 그의 전후 유럽을 다룬 사진들과 연속선 상에 있다. 인도를 덮친 대기근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사진이라 할 만한 이 장면에서 비숍은 낮은 앵글을 써 도움을 청하는 이 바싹 마른 여인을 기념비처럼 보여준다. 아이도 어머니의 제스처를 흉내내고 있는데 마치 가난과 배고픔이 미래의 세대에게도 되풀이될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비숍이 찍은 인도의 대기근 사진들은 미국의회가 인도원조안을 통과하는데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그의 제3세계 사진들 역시 그의 전후 유럽 사진들처럼 복합적이다. 한국전쟁, 베트남전을 다룬 사진들처럼 전쟁의 파괴를 다루기도 했지만 그런 폐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의지와 삶의 진정성을 보여준다.

 

그가 본 제3세계는 그가 겪은 뉴욕의 대립항이었다. "그는 뉴욕의 멈출 줄 모른 에너지를 '요부같이 흥분되고 매력적'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그는 또한 뉴욕의 '일상의 공허함과 메마른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강한 느낌을 받앗다. 맨해튼의 거리를 메운 얼굴들의 홍수 속에서 그는 '성공한 사람들, 환멸을 느낀 사람들, 살려고 버둥거리는 사람들, 생기를 잃은 사람들, 포기햇지만 아직 불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떠나고 싶지만 떠날 수 없는 사람들, 크고 멋지지만 차갑고 무자비한 달러의 세계에서 서서히 쇠퇴해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의 사진에서 뉴욕이란 도시는 억압적이고 비개성적으로 느껴진다. 사람들은 익명적이고 눅눅한 길거리를 서둘러 걷고 있거나 가게 진열장 속에 희미하게 모습을 보이며 걸설용 철근 더미 속에 갇혀있기도 하다."



어쩌면 오리엔탈리즘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는 제3세계에 자신의 환상을 그리는 대신 제3세계를 있는 그대로 사진에 담으려 노력했다. 가령 '바닷가에서 (트리반드룸, 인도, 1951)'에서 '소년들이 바다와 모래의 경계에서 발가벗고 뛰놀고 있다. 인도에서 많은 서구 사진가들이 그랬듯이 대상을 이국적으로 보이게 하기보다 오히려 비숍은 자유와 즐거움이라는 보편적인 순간을 포착했다."



그가 제3세계에서 보려 했던 것은 그의 대표작이며 이책의 표지로 쓰인 '쿠스코로 가는 길' (페루, 1954)에 잘 나타난다. "피리를 불며 홀로 걸어가는 이 소년은 또 다른 인간적 보편성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바로 음악을 만들려는 충동이다. 자기가 만든 구조물에 갇혀버린 뉴욕의 노동자와는 달리 이 이미지는 사람들이 그들의 자연환경에 맞추어 편안하게 살아가는 곳에서 볼 수 잇느,ㄴ 전통문화의 인간적 진정성을 찬양하고 있다."



그 사진을 찍고 얼마 후 비숍은 페루의 어느 계곡에 차가 추락해 죽는다. "아흐레 후 비숍의 동료인 로버트 카파는 인도차이나의 프랑스 군인들을 찍다 지회를 밟아 죽게된다."



베르너 비숍의 유산은 그 아름다움과 인간적 상황에 공감하는 묘사로 돋보이는 사진 수백 점을 포함한다. 인간의 슬픔을 담은 얼굴에서 활력있는 인간의 정신까지, 전쟁과 기아의 상흔에서 전통문호의 단순한 진정성까지 비숍은 그의 시대를 용기와 사랑으로 찍었다. 비숍은 자신의 예술적 감수성과 참여하는 증언자로서의 유럽적 저널리즘의 전통을 결합하여 사진의 명확한 기준을 표현했는데 그것은 자신의 이미지에서 이루고 잇는 것이었다. '깊이있게, 전적으로 자신을 헌신하고, 온 마음으로 싸워 얻어낸 작업만이 어떤 가치를 가질 수 있다.'"

 

매그넘 갤러리:

http://www.magnumphotos.com/C.aspx?VP=XSpecific_MAG.PhotographerDetail_VPage&l1=0&pid=2K7O3R14WSNQ&nm=Werner%20Bisch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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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다시 찾은 진실
스티브 비덜프 지음, 박미낭 옮김 / 푸른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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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른이란 말을 좋아해” 1학년 아무 것도 모르던 시절 선배가 한 말이다.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인 그 선배는 그런 성격에도 (아니면 그런 성격 때문인지) 존재감이 있던 선배엿다. 말이 없는 사람이라 그 말이 그 선배에게 어떤 의미엿는지는 모른다. 그리고 지금도 그 말이 선배에게 의미가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때는 그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몰랐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안다고 말할 자신은 없다. 지금 나는 어른인가? 이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질문이다. 이책은 그 질문의 의미를 말한다.



“나는 좋은 남자를 딱 두 단어로 요약한다. 좋은 남자란 척추와 심장을 가진 사람이다. 척추는 확고하며 참을성이 있고 자신이 한 말은 반드시 지키며, 때로 아주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에 자신의 안전이나 이익을 맨 나중에 놓는 그런 능력을 말한다. 따라서 척추를 가진 남자라면 신뢰할 수 있는 남자이다.”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를 떠올리면 된다. 그런 남자는 의지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이해하거나 가까이하기는 어렵다.



“새로운 남자, 즉 베트남 전쟁 이후의 시대에 당시 남자들이 갖게 된 것이 바로 심장이었다. 이전의 남자들에게도 심장은 물론 있었다. 그러나 이 시절에야 남자에게도 심장이 잇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시대에 들어서서야 사적이거나 공적인 삶 속에서 가족들에 대한 사랑과 슬픔, 염려, 자비 등의 감정을 드러내는 남자들이 등장햇다. 그 새로운 남자는 말을 걸어도 되는 남자엿다.”



그러나 문제는 그 새로운 남자에게는 척추가 없다는 것이다. “이 남자는 종종 믿을 수 없고 약속을 잘 저버리고 나르시시즘이 심했다. ‘섬세한 신세대 남자’는 교통사고나 산불이 났을 때 혹은 힘든 결혼 생활 중에 의지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은 아니엇다.” 신세대는 척추를 잃어버렷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저자는 어른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라 말한다.



“소년의 심리에 대해 긍정적인 점도 많지만 일반적으로 자기중심적이고 성급하며 즉각적인 만족을 구하는 경향이 있다. 모든 것이 ‘나’ 중심이다. 그런 소년이 남자가 되려면 그에게서 자기중심성을 몰아낼 수 있는 일이 일어나야 한다. 과거의 모든 공동체는 그런 사실을 알랐고 그런 부분을 공동체 전체가 합심해서 다루었다. 이 과정이 성인식이다. 성인식은 소년들에게 때로는 강제적으로 그러나 절대로 친절함을 잃지 않고 세상에는 스스로를 기브게 하는 일 말고도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줌으로써 그들을 소년에서 남자로 바꾸고 다른 이들을 돌보고 보호하는 즉 공동의 이익을 위한 삶을 사는 남자로 개종시키는 의식이었다.”



그러나 성인식은 더 이상 없다. 성인식에서 전수되던 교훈은 소년들 스스로 알아서, 자기 힘으로 세상과 부딫히며 배우도록 방치되었다.



“과거에는 올바른 도움과 지식이 결합된 다양하면서도 충격적인 경험을 통해 성인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었는데 현재는 그것을 운에만 맡긴다. 아주 신중하게 계획된 과정 없이 삶의 경험이 성인식을 대신하게 한다면 그들은 너무 험난한 과정을 겪어야 한다. 과거의 성인식도 거칠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언제 어떻게 닥칠지 아무도 모르는 파괴적인 현실과 마주친다. 그리고 아무런 도움 없이 그런 황폐한 현실을 뚫고 나가야 한다. 오늘날 정말로 생기있고 성숙한 사람들이 아주 드문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그러면 성인식에서 가르치던 교훈은 무엇인가? 저자는 5가지를 말한다.



1. 당신은 죽을 것이다. 2. 삶은 힘들다. 3. 당신은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 4. 당신의 삶은 당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5. 결과는 당신 손에 달려 있지 않다.



간단히 말하자면 겸손이다. 이 우주에서 ‘나’란 존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그리고 그 주어진 작은 것조차 언젠가 끝난다는 사실. 그것을 아는가의 차이가 소년과 남자의 차이라 저자는 말한다.



“특별한 사람들이 있다. 세상을 살다보면 어떤 조직이나 단체, 이웃, 혹은 당신 자신의 삶 속에서 우리는 그런 사람들과 마주친다. 남자든 여자든 이들은 삶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인격, 온기, 헌신, 그리고 이상 등으로 주변 사람들을 이끈다. 그들은 생명으로 가득하고 세상을 편안하게 느낀다. 마치 우주의 흐름 중 일부 같다. 버락 오바마나 마틴 루터 킹간츤 이들에데고 이런 자질들이 있었다. 미얀마의 정치가 아웅 산 추지, 넬슨 만델라 등도 그런 사람이다. 물론 특별한 사람들 중에는 잘 알려지지 않는 오직 주변의 친구와 동료들에게만 알려진 경우도 많다.



이런 사람들은 갑자기 부상했는가? 아니면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위대한 인물이었는가? 그들의 삶은 늘 그렇게 순조로웠는가? 그래서 그들의 삶은 항상 성공적이엇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실제로 이와는 완전히 반대이다. 이들의 위대함은 거의 예외 없이 고통 속에서 탄생햇다. 어떤 일들은 삶이 산산조각 나버릴 만큼 힘들었지만 그들은 그 고통스러운 일에 무너지는 대신 그 일을 변화의 계기로 삼았다.” 그 고통은 그들에게 삶의 현실에서 치룬 성인식이었다. 그 고통은 그들에게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쳤고 ‘나’를 넘어선 나보다 더 큰 것이 있다는 것을 가르쳤다.



과거의 성인식에선 소년은 죽어 다른 존재로 태어난다고 말해졋다. 자기중심적인 소년은 죽고 더큰 세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다른 존재가 되기 때문이엇다. “성인식의 목적은 젊은 남자나 여자를 성인의 세계로 데리고 가는데 있다. 그리고 성인식의 과정은 언젠가 당신이 원로가 될 때까지 공동체가 힘을 합쳐 강력하며 평생 지속되는 네트웤으로 당신을 지지할 것이라는 사실을 내포한다. 성인식은 당신을 사랑하고 가치 있게 여기며 평생 동안 지지해줄 성인의 세계로 들어오는 것에 대한 환영의식이다. 다섯 가지의 이 어려운 메시지를 견딜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바로 이것 때문이다.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단계이다. 공동체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없다면 젊은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서 어른의 세계로 건너뛰는 모험을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삶은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거기에는 고통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죽을 것이다! 이 얼마나 즐거운 메시지인가!”



문제는 그런 공동체가 무너졌다는 것이다. 공동체가 사라지면서 ‘아버지’는 더 이상 남자란 무엇인지 가르쳐주지 않는다. ‘사라진 것은 아버지만이 아니다. 전 시대에 있었던 이웃이나 마을의 어른들, 삼촌들, 멘토들도 덩달아 그림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오늘날 운동을 잘하거나 보이스카우트에 들거나 우자 특별한 교사를 만나지 않는 한 남자아이가 다른 성인 남자를 자세히 알 기회란 거의 없다. 바로 이 점이 자라나는 소년에게 거대한 진공 상태를 초래한다. 남자들이 ‘연극’을 하는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 진정한 남자들의 내적 세계를 모르는 소년들로서는 자아 이미지를 형성할 때 tv,나 영화, 친구같이 외부에서 주어들은 빈약한 이미지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런 다음 그들은 자신도 남자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배운 이미지를 행동으로 옮긴다.”



선천적으로 친밀감을 키우는데 뛰어난 여자들은 다르다. 여자들끼리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여자들은 ‘자기들 위에 걸어 둘만한 수호전사를 갖게 되고 평생 의지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든다.



“소년들 각자가 가면에 의존해 최선을 다해 보지만 그 자아는 친구와의 우정, 여자들과의 관계, 자녀들을 기르는 일 등 삶의 개인적인 영역들 중 그 어느 공에서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렇게 자라 아버지가 된 소년들은 당연히 자기 아버지처럼 될 수 밖에 없고 이 피해는 고스란히 그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이책은 우리가 배웠어야 하지만 배울 수 없었던 것에 관해 말한다. 물론 말로 가르칠 수 잇는 내용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아들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직업인으로서 남자가 되어 알아야할 것들이 무엇인지 방향은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이책의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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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없는 세계 - 중국, 경제, 환경의 불협화음에 관한 8년의 기록
조나단 와츠 지음, 윤태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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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이 정착하기 시작햇을 때 아이슬란드는 1/4이 숲이엇다. 정착자들은 나무를 베고 초지를 만들었고 나무들을 땔감과 목재와 숯으로 사용했다. 정착하고 수십년 만에 삼림의 80%가 사라졌고 연재는 96%가 사라졌다. 나무가 사라지고 양들이 풀을 뜯었다. 그리고 정착 초기에 돼지들이 뿌리까지 캐먹었다. 카펫처럼 얄팍하게 흙을 덮은 풀이 사라지자 바람이 싣고 온 화산재에 불과하던 흙들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바람에 날리기 시작햇다. 결국 바이킹들이 정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슬란드의 토양이 고지대에서 저지대, 심지어 바다까지 밀려내려갔다. 그러자 고원지대에서 풀은 물론이고 흙조차 볼 수 없었다. 전에는 푸른 초원이었던 곳이 인간, 혹은 양 때문에 사막으로 변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아이슬란드의 사막화처럼 매년 중국의 황토고원에서 불어오는 황사는 人災이다. 사람이 황토고원은 울창한 숲이엇다. 그러나 사람이 정착하고 나무를 베어내면서 황토가 비바람에 노출되었다. 황토는 수백만년동안 바람이 쌓아올린 먼지이다. 그 먼지를 가려주던 나무가 없어지면서 황토를 쌓았던 바람은 다시 황토를 실어나르게 되었다. 황사는 자연현상이라기 보다는 사람 때문에 일어난 인재이다. 황사가 그런 것처럼 중국의 역사는 자연파괴의 역사라고 저자는 말한다.

서구인들은 중국이나 인도를 생각하면 자연과 더불어 사는 생태주의를 떠올리고는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물론 서구인들의 환상이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고대 중국의 예술과 문학에는 자연을 찬미한 작품이 많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숲과 강, 늪을 보존할 수 없는 자는 왕이 될 수 없다’는 격언이 있었다.. 그러나 중국인들의 가치관은 점차 자연을 개발하는 쪽으로 기울어졋다. 유교에는 자연과 인간이 하나라는 ‘천지합일’ 사상이 잇다. 그러나 유학자들은 자연보다 사회에 중점을 두엇다.” 숲으로 뒤덮였던 유럽의 역사가 그러했던 것처럼 인도도 중국도 결국 문명, 농업문명이었고 농업은 숲과 공존할 수없다.

“환경사학자 마크 엘빈은 중국인의 자연관을 이렇게 정리했다. ‘전통적으로 중국인들은 숲을 좋아하는 동시에 적대했다.’ 그는 ‘코끼리의 후퇴’란 책에서 지난 3000년간 중국인들이 숲과 야생동물, 소수민족을 평야에서 산악지대로 내몬 과정을 추적했다. 3000년 전 중국에는 숲과 야생동물이 풍부해 베이징에서도 코끼리를 볼 수 있었지만 한족 왕조가 들어서면서 남쪽과 서쪽으로 국가 팽창함에 따라 무자비한 삼림파괴가 자행되었다.”

저자가 보기에 서구인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중국인 역시 자연을 정복하고 이용해야 할 대상으로 보았을 뿐이다. 그런 중국인의 자연관은 마오쩌둥과 함께 새로운 단계에 올랐다고 저자는 말한다.

“지난 60년간 중국 공산당은 마오쩌둥의 뜻을 이었다. 정치인들은 중국을 강한 국가로 만들고 인민을 전통 관습과 외세의 위협에서 해방하고자 마오가 계획한대로 자연을 개조했다. 이런 중국 공산당의 사고방식은 (장자의) ‘쓸모없는 나무’ 밑에서 졸고 있는 철학자의 생각과는 매우 다르다. 인간의 의지로 산을 옮기겠다는 (우공이산) 생각은 곧 사회의 주류가 되었다. 중국은 지구에서 가장 개척하기 어려운 티벳 고원까지도 개척했다.”

마오쩌둥의 사상은 아편전쟁 이후 중국인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부국강병. 서구의 충격 이후 중국 엘리트들의 머리 속에는 그 네글자 이외에는 다른 것이 없었다. 그 목적을 위해 무슨 수단이든 정당화되었다. 산업화 과정에서 서구인들이 그랫듯이 마오에게 자연이란 자원과 동의어일 뿐이었다. 그러나 마오는 어설펐다. 과학적 사회주의를 말햇지만 과학은 없고 이념만 떠든 어설픔이 대약진운동 같은 재앙을 낳았고 문화혁명 같은 역사의 코미디를 낳았다. 문화혁명 이후 마오는 화석일 뿐이다. 사진틀에 걸려 모셔놓으면 되는 무의미한 뒷방 귀신이 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마오의 자연관은 그대로 이어졌다. 중국 엘리트의 목표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국강병을 위해선 자원일 뿐인 자연을 이용해야 했다.

그 결과는 인상적이다. “내가 중국에 이사온지 1년 만에 중국의 GDP는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따라잡았다. 그리고 다시 1년이 자니자 영국을 따라잡았다. 대약진 운동 시기에 마오쩌둥이 목표했던 일을 50년 만에 해낸 것이다.”

그러나 그 대가 역시 막대했다. “베이징은 도시의 공기가 너무 나쁜 날이면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쉬는 시간에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을 정도였다 나는 두 딸이 걱정되었고 내 폐도 걱정되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계속 조깅을 해왔지만 베이징에서 몇 년 살다보니 짧은 거리를 뛰어도 숨을 헐ㄸ거이곤 했다. 집집마다 석탄 난방을 하는 겨울이 되면 목이 아플 정도로 기핌을 햇고 이사 온 뒤로 두번이나 폐렴에 걸려 생전 처음으로 흡입약을 처방 받은 적도 있었다. 베이징은 숨이 막히는 도시였고 나도 숨이 막혓다. 7년간 베이징에 머물면서 나는 영국이 200년간 겪은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을 빠르게 돌려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중국이 세계 환경문제의 핵심지역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경제성장이 환경에 준 피해를 GDP에 반영한 그린 GDP로 계산하면 지난 한 세대동안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잘해야 0이거나 마이너스이다. 물론 중국 엘리트들도 할 말은 많다. 우선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 환경은 그 다음.

“지금까지 경제성장은 대가를 치러야 햇다. 현대화는 여러 부작용을 낳았다. 영국에서 시작되어 유럽, 북미, 일본으로 이어진 경제발전모델은 우선 경제를 개발하고 나중에 부작용을 해결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그 방식이라는 것이 문제를 남에게 떠넘기는 것이니 문제다. 어느 정도 살만하다 싶으면 이제 공해를 만들고 환경을 파괴하는 산업을 다른 못사는 나라에 떠 넘기고 자신의 땅만 깨끗하게 만드는 방식이었다. 일본이, 한국이 경제성장을 한 이유가 유럽과 미국이 더 이상 하려 하지 않는 더럽고 돈 안되는 산업을 하기 시작하면서였고 중국이 경제성장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현상은 어떤 면에서는 성장통이라 할 수잇다. 낙관론자들은 중국이 순조럽게 경제성장 단계를 밟아나가 결국에는 공해산업에서 벗어날 것이라 전망한다. 일본과 한국이 극복한 환경문제를 중국이라고 극복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자는 회의적이다. “중국은 산업화에 늦게 뛰어든 탓에 다른 나라로 폐기물을 버리기도 힘들다. 그래서 중국은 공해 산업을 외국으로 이전하는 대신 간쑤 성, 닝샤후이족 자치구, 네이멍구 자치구 같은 서부지역으로 이전할 수 밖에 없다.” ‘세계경제의 하수처리장’이 된 중국으로 흘러든 하수는 중국 밖으로 흘러갈 곳이 더 이상 없다. 중국의 문제는 중국 안에서 처리되어야 한다. 그러나 과연 방법이 잇는가?

중국 정부도 바보가 아니니 문제를 잘 알고 방법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중국 자체의 규모가 문제다. 환경문제란 결국 경제성장을 지속할 자원이 바닥난다는 뜻이다. 지금의 경제성장방식은 국내의 자원이 바닥나거나 더 이상 뽑아내기 힘들어지면 밖에서 들여오는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일본과 한국은 유럽이 그렇게 했던 것처럼 자국의 숲을 열성적으로 보호한다. 그러면서 필요한 목재는 다른 곳에서 수입한다. 중국의 문제는 중국 자체의 덩치 때문에 그렇게 자신의 문제를 전가할 곳이 없다는 것이다.

“상하이의 화려한 외관은 자원을 제공해주고 쓰레기를 대신 처리해주는 다른 지역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부유한 대도시들이 그렇듯, 상하이의 고단백, 고칼로리 식생활은 다른 지역의 환경을 파괴한다.” 그러나 중국인의 생활방식이 상하이를 닮아가면 갈수록 중국 내에서 희생이 되어줄 지역은 사라지고 중국 밖에서 그런 지역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지구는 중국의 규모로 커진 서구식 라이프스타일을 감당할 수 없다.

“1949년: 사회주의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었다
1979년: 자본주의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었다.
1989년: 중국만이 사회주의를 구할 수 잇었다.
2009년: 중국만이 자본주의를 구할 수 있었다.”

저자가 인용한 베이징에서 유행한 농담이다. 미래에도 중국이 세계를 구할 것인가? 저자는 그래야만 한다고 본다. 영국에서 시작된 경제성장모델이 중국에서 그 한계에 이르럿고 중국이 그 한계를 넘지 못한다면 중국과 함께 세계는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정부는 “세계 역사상 어느 국가도 이루지 못한 일을” 해야 하고 하려고 한다. 2세기 넘게 바뀌지 않은 경제모델을 중국은 바꾸어야 하고 바꾸려고 한다. 저자는 이책을 쓰기 위해 중국 전역을 돌아보면서 환경파괴의 참상을 너무도 많이 보았다. 그러나 희망도 보았다. 그러나 과연 중국이 할 수 있을지 저자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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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완성 - 하버드대학교 ‘인생성장 보고서’ 그 두 번째 이야기
조지 베일런트 지음, 김한영 옮김 / 흐름출판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1950년대 초, 네브라스카 대학에서 심리학을 가르치던 나의 할아버지 도널드 클리프턴 박사는 연구 도중 매우 김각한 문제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거의 모든 심리학 분야들이 사람들의 ‘부정적인 면’만을 다룬다는 사실이엇다.

사람들의 ‘긍정적인 면’을 연구하는 것이 그보다 중요하다고 믿던 할아버지는 지난 50년간 인간이 가진 긍정적인 면에 중점을 두고 동료들과 함께 수백만 번의 인터뷰를 실행해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할아버지가 40여년 째 연구를 진행오던 1990년대에 새롭게 떠오른 심리학 분야가 바로 인간의 긍정적인 면을 연구하는 긍정심리학이다.” (도널드 클리프턴, 톰 래스)

긍정심리학의 시조로 불리는 도널드 클리프턴의 이론은 ‘물통과 국자 이론’으로 요약된다: “우리는 모두 보이지 않는 물통을 가지고 있다. 그 물통은 주변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에 따라 지속적으로 채워지거나 비워진다. 물통이 가득 차 있을 대 우리는 행복을 느끼고 비어 있을 때 우리는 고통을 느낀다. 우리는 또한 보이지 않는 국자를 가지고 있다. 그 국자로 타인의 물통을 채워줄 때 즉 긍정적인 감정을 이끈 ㄴ말이나 행동을 할 때 우리의 물통도 채워진다. 그러나 국자로 타인의 물통에서 물을 퍼낸다면 즉 긍정적인 감정을 줄어들게 만드는 말이나 행동을 한다면 우리의 물통에서도 물이 빠져나가게 된다.” (도널드 클리프턴, 톰 래스)

긍정심리학의 논리는 반세기가 훨씬 넘었지만 그리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물통에 담긴 물의 정체는 세월과 함께 바뀌어갔다. 초창기 긍정심리학의 내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이다. 위에서 인용한 물통과 국자 이론을 소개한 책에서도 첫번째 사례로 드는 것이 칭찬의 효과를 보여주는 피그말리온 효과였다.

이후 긍정심리학의 논리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 미국식 성공학의 학술 버전에 불과하게 되었다.원하면 못 이룰 것이 없다는 ‘시크릿’류의 자기계발서와 다를 것이 없게 되었다. 긍정심리학에서 ‘긍정’의 기초가 잘못되었다는 말이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실험적으로 증명된 가설이다. 그러나 칭찬을 아무리 해도 백치가 전교 수석이 되고 하버드에 들어갈 수 없고 아무리 나는 할 수 있다는 정신으로 무장해봐야 청소부가 대기업 CEO의 역할을 해낼 수는 없다.  

 이책은 긍정의 개념화가 잘못되었다는 반성에서 시작한다. 저자는 긍정의 기초를 새로 놓기 위해지난 10년동안 진화심리학과 생리심리학(보통 뇌과학이라 알려진)의 성과를 원용한다.

두 분야의 가장 두드러진 성과라면 그동안 심리학에서 무시되어온 감정의 메커니즘을 튼튼한 생물학적 토대 위에 올려놓았다는 점이다.

분노, 두려움, 짜증과 같은 스트레스성의 부정적 감정이 왜 진화했으며 어떤 메커니즘에 기초하고 있는가를 밝혔듯이 사랑, 기쁨, 관용과 같은 긍정적 감정이 어떻게 진화했고 어떤 메커니즘인지를 진화심리학과 생리심리학은 분명한 논리로 설명한다.

이책의 저자는 긍정심리학의 ‘긍정’을 두 분야에서 설명해낸 긍정적 감정으로 재해석한다. 저자가 열거하는 그 감정들은 이렇다: 사랑, 희망, 기쁨, 용서, 연민, 믿음(또는 신뢰). 저자가 이 6가지 감정을 다루는 이유는 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행복’에 결정적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면서 고통은 불가피하다. 저자는 같은 고통을 겪더라도 그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행복이 결정된다고 이전 저서인 ‘행복의 조건’에서 말한다. 같은 고통이라도 누가 더 성숙한가에 따라 행복한가 불행한가 차이를 만들며 그 성숙함이란 6가지 감정을 느끼는 능력이라고 저자는 이책에서 말한다.

저자가 6가지 감정을 선택을 한 이유는 간단하다. 그 감정들이 사회적인 다시 말해 도덕적인 감정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행복의 조건’에서 보여준 것은 도덕적인 능력 또는 사회적인 능력이 높을수록 더 행복한 삶을 산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책에서 저자는 그 능력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말하려 한다. 원론적인 수준에서 감정들로 재정의하고 그 감정들이 어떻게 진화론적으로 형성되었는지 즉 우리의 생존에 어떻게 그 감정들이 유용했는지 다시 말해 그 감정들이 사회적 능력으로서 왜 선택되었는지 그 감정들이 개인의 삶에서 어떤 유용성이 있고 의미가 있는지를 설명한다.

이책은 ‘행복의 조건’의 연장선에서 보아야 그 의의가 제대로 이해된다. 그 책을 읽은 사람에겐 의미 있는 독서가 될 것이다. 그러나 ‘행복의 조건’과 같은 수준의 책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것이다. 이책은 이전 저서와 같이 탄탄한 실제 연구에 기반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책은 어디까지나 시론에 불과하다. 저자가 의지하는 진화심리학과 생리심리학이 저자의 전공이 아니란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이책이 하려는 시도가 현재로선 지나치게 대담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가 말하듯이 긍정적 감정에 대한 논의는 드물었다. 그리고 저자가 의지하는 두 분야의 성과가 쏟아져 나온지도 10년이 조금 넘는다. 아직 기초가 튼튼하지 않은 영역에 대해 이책은 기초를 놓으려는 대담한 시도를 한다.

이책의 논의는 무난하다. 아직 튼튼하지 않은 기초에서 많은 것을 말할 수 없고 저자가 모험을 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만큼 이책의 논의는 무미건조해진다. 현재 학계의 수준에서 긍정적 감정에 대한 종합이 어떤 수준으로 가능한지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이책의 의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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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 경영 - 낭비를 이익으로 변화시키는
왕중추 지음, 허유영 옮김 / 라이온북스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카네기는 몇번 계산기를 두르디러니 ‘4억 8,000만’이ㅏ는 숫자를 갈겨써 건네주었다. 그 쪽지를 본 모건은 한마디로 답했다. ‘받아들이겠다.’ 두 거인은 모건의 요트에서 거래를 마무리했다. 모건은 카네기에게 손을 내밀며 이렇게 말햇다. ‘세계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신 것을 축하합니다.’ 이것으로 철강업계에서 카네기의 역할은 끝났다. 모건은 구상햇던 대로” 철강업계를 재편해 자본금 14억 달러의 US 스틸을 만들어 세계최대의 기업으로 조직했다.

그러나 “모건의 운영 방식은 카네기와는 달랐다. 모건은 혁신보다는 ‘안정’을 선호햇으며 비용을 절감해 시장 점유율을 획득한다는 명쾌하고도 손쉬운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다.” 카네기 시절부터 회사를 운영했던 스왑은 결국 회사를 떠나 베들레햄 스틸을 만든다. 카네기적 발상을 그대로 갖고 떠난 그의 “베들레햄은 5년마다 근로자 수가 두배로 늘었지만 US 스틸의 근로자 수는 감소햇다. 은행가로서 모건은 상상하기 힘든 리스크를 감수하며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혁신가엿다. 그러나 철강제국의 경영자가 된 모건은 카네기의 구조물에 생명을 불어넣은 ‘영혼’을 더 이상 보지 못했다. 그 영혼이란 저렴한 비용으로 보다 나은 결과물을 얻기 위해 기존의 공장과 시스템을 기꺼이 희생하는 의지였다. 모건은 무엇보다 카네기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햇다. ‘비용에 집중하라. 그러면 수익은 저절로 생길 것이다.’” (래리 슈웨이카트, 린 피어슨 도티)

이책이 말하려는 것은 정확히 카네기의 말이다. 요즘같이 치열한 경쟁 때문에 수익이 없다시피한시절엔 비용을 낮추는 것 이상의 뾰족한 수가 없다. 특히 지금 시점의 중국에선 더 절실한 문제라 저자는 말한다.

“지난 30년 동안 수많은 기적이 탄생했다. 개혁개방 추진 직후부터 30년이 ‘확장형 시대’이다. 누구든 상품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을 생산하면 돈을 벌 수 있었다. 또한 수익률도 상당히 높았다. 한 예로 1990년대 중국의 한 판재업체가 한 장을 팔아 남길 수 잇는 순이익이 30위안이었다. 기계 한대를 일분 돌리면 판재 50장이 나왔다. 일분간 무려 1천500위안의 순이익이 쏟아졌다. 사장은 판재생산기계를 ‘지폐인쇄리’라 불렀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판재 한 장을 팔면 1위안도 남지 앟는다. 확장형 시대가 끝나고 집약형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해답은 절약에 있다. 절약이야말로 ‘집약형 시대’에 생존하고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요건이다.”

그러나 카네기와 마찬가지로 이책이 말하는 것은 단순한 저비용 또는 ‘마른 수건도 비틀어 짠다’는 식의 단순한 절약이 아니다. 카네기가 말하는 비용절감은 효율을 말하며 시스템을 말한다.

“맥앤드류 상사의 아칸소 주머니쥐 스튜드 사의 중역실. 해럴드 홀스테드는 주력 제품인 주머니쥐 파이에 변화를 일으키는 제안에 대해 결정을 내리느라 바빳다. 그는 젊고 뛰어난 요리 연구가 존스에게 이제 막 비용 절감을 위한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들었다. 존스가 뭔가를 기대하며 잠시 말을 멈추었을 때 홀스테드는 자기가 반응을 보여야 할 시간임을 알았다. ‘얼마나 비용이 절감되는 거죠?’ 그는 예의바르게 물었다.

존스는 숫자를 준비하고 있었다. ‘파이당 11/100센트가 절약됩닏. 우리가 일년에 파는 파이가 100억개 정도니까 전체 절감액은 일년에 백만 불이 될겁니다.’

해럴드가 말했다. ‘정말 비용을 많이 절감하는군요. 하지만 친애하는 창립자 맥앤드류 상가에게서 전해 내려오는 ‘신성한 믿음’ 역시 고려해야만 합니다. 여태 우리가 성공하는데 바탕이 된 비법을 바꾸는 것은 아니겠죠? 그렇죠?’
‘절대 아닙니다. 여기 지난 6개월간 시장을 분석한 자료가 있습니다. 이 자료를 보면 제가 제안한 비용절감안을 시행하더라도 파이에 대한 고객의 인식이나 수용에 결코 아무 차이가 없으 것임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현재 방식과 새 방식의 차이를 식별하기 어렵습니다. 맥앤드류 상사 자신이라 해도 잠깐 그의 명복을 빕니다. 아마 차이를 발견할 수 없을 겁니다.’” (제랄드 와인버그)

비용절감안은 채택되었다. 요리 연구가의 말은 사실이었다. 문제는 그 절감안이 합성의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다: “차이없음 더하기 차이없음은 차이없음과 같다는 아이디어의 예이기 때문이다. 존스의 제안이 파이에 들어가는 개러웨이 열매를 100개에서 99개로 줄이는 것이라 하자. 분명 파이를 먹는 사람은 이 작은 변화를 눈치챌 수 없다. 그리고 99개에서 98개로 줄이는 제안을 내더라도 별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큰 조직에서 이런 일은 한 번만 일어나지 ㅇ낳는다. 똑똑한 연구원들이 너무 많고 모두 개러웨이 열매를 하나씩 제거하려고 하고… 순식간에 끝도 없이 줄어든다. 정확히 어느 시점에 맛의 차이가 생길지는 모르지만 100개와 0개 사이 어딘가에서 맥앤드류 상상사의 ‘신성한 믿음’을 저버리게 된다. 여기서는 캐러웨이 열매 몇 개지만 저기서는 소금 조금, 어딘가에서는 연골 1밀리그램, 또 식용유에서 두번째 튀기는 시간의 1/10 등. 결국 차이없음 더하기 차이없음 더하기 차이없음 더하기…는 명백한 차이와 같다.” (제랄드 와인버그)

짐 콜린스 식으로 말하자면 10원 아끼려다 100원을 잃는, 무원칙한 절약의 오류이다. 위의 사례는 물론 가상의 예이다. 이책의 저자가 말하는 오래지 않은 실제 사례를 들어보자.

“대표적인 예가 바로 2008년 중국은 물론 전 세계에 충격을 준 멜라민 분유다. 이 사건은 중국 싼루 분유의 구매담당 직원이 무조건 저렴한 원료 구입에 나서면서 발생했다. 영유아에게 치명적인 멜라민이 섞여 있다는 사실은 간과됐다. 이일로 중국 분유 시장에서 부동의 1위였던 싼루는 치명적 타격을 입고 문을 닫았다. 모든 일이 원료 구매 단계의 부주의로 벌어진 비극이다.

저성장 저수익 시대로 들어서면서 기업들이 경영비용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원자재와 생산설비, 일상적인 업무에 소요되는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과도한 절약은 오히려 낭비를 부른다. 비용절감을 위해 품질이 낮은 원자재를 사용하거나 낡은 생산설비의 교체를 미루거나 직원들에게 사무용품을 과도하게 절약하도록 하는 기업이 있다. 얼핏보면 효율증대와 자원절약을 위한 효과적인 방법같지만 따져보면 득보다 실이 그다. 품질이 낮은 원자재는 생산고하정에서 낮은 가공률 때문에 오히려 원자재 소비가 늘어난다.”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말인가? 절약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효율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자는 말인가? 저자는 일본의 도요타 시스템을 염두에 두는 것 같다.

“일본 기업의 장점은 우수한 연구개발 능력이 아닌 낭비를 억제하는 투철한 절약정신이다. 일본의 고속성장의 비결은 기술이 아닌 원가 통제엿다. 조금의 낭비도 허용하지 않는 절약정신이 수익률 향상과 경쟁력 강화를 실현한 핵심비결이엇다.” 그러나 그 절약정신은 절약을 위한 절약이 아니었다. 그 절약정신의 기본논리를 제공한 것은 미국의 데밍이엇다.

데밍”은 일본 기업들에게 품질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내구성 강하고 믿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햇다. 그는 ‘품질이란 최고로 유용하고 시장성 있는 제품을 가장 경제적인 수단으로 생산하는 것’이라고 한 뒤 ‘제품의 품질을 개선하면 생산효율은 저절로 향상된다.’고 덧부텼다. ‘품질에는 세상을 놀라게 할 획기적인 방법이 필요하지 않다’는 데밍의 말 또한 유명하다.”

저자가 말하는 절약은 효율이다. 그러나 그 효율은 단순히 절약이 아니라 시스템에서 나온다. 도요타 시스템이 그 좋은 예이다. 그러나 데밍의 논리는 어디까지나 방법론이다. 그 방법론은 현장에서 다시 시스템으로 구축되어야 하고 그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현장을 그 논리에 따라 재구축해야 한다. 저자가 이책에서 말하려는 디테일 경영이란 그 방법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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