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다시 찾은 진실
스티브 비덜프 지음, 박미낭 옮김 / 푸른길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나는 어른이란 말을 좋아해” 1학년 아무 것도 모르던 시절 선배가 한 말이다.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인 그 선배는 그런 성격에도 (아니면 그런 성격 때문인지) 존재감이 있던 선배엿다. 말이 없는 사람이라 그 말이 그 선배에게 어떤 의미엿는지는 모른다. 그리고 지금도 그 말이 선배에게 의미가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때는 그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몰랐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안다고 말할 자신은 없다. 지금 나는 어른인가? 이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질문이다. 이책은 그 질문의 의미를 말한다.



“나는 좋은 남자를 딱 두 단어로 요약한다. 좋은 남자란 척추와 심장을 가진 사람이다. 척추는 확고하며 참을성이 있고 자신이 한 말은 반드시 지키며, 때로 아주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에 자신의 안전이나 이익을 맨 나중에 놓는 그런 능력을 말한다. 따라서 척추를 가진 남자라면 신뢰할 수 있는 남자이다.”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를 떠올리면 된다. 그런 남자는 의지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이해하거나 가까이하기는 어렵다.



“새로운 남자, 즉 베트남 전쟁 이후의 시대에 당시 남자들이 갖게 된 것이 바로 심장이었다. 이전의 남자들에게도 심장은 물론 있었다. 그러나 이 시절에야 남자에게도 심장이 잇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시대에 들어서서야 사적이거나 공적인 삶 속에서 가족들에 대한 사랑과 슬픔, 염려, 자비 등의 감정을 드러내는 남자들이 등장햇다. 그 새로운 남자는 말을 걸어도 되는 남자엿다.”



그러나 문제는 그 새로운 남자에게는 척추가 없다는 것이다. “이 남자는 종종 믿을 수 없고 약속을 잘 저버리고 나르시시즘이 심했다. ‘섬세한 신세대 남자’는 교통사고나 산불이 났을 때 혹은 힘든 결혼 생활 중에 의지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은 아니엇다.” 신세대는 척추를 잃어버렷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저자는 어른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라 말한다.



“소년의 심리에 대해 긍정적인 점도 많지만 일반적으로 자기중심적이고 성급하며 즉각적인 만족을 구하는 경향이 있다. 모든 것이 ‘나’ 중심이다. 그런 소년이 남자가 되려면 그에게서 자기중심성을 몰아낼 수 있는 일이 일어나야 한다. 과거의 모든 공동체는 그런 사실을 알랐고 그런 부분을 공동체 전체가 합심해서 다루었다. 이 과정이 성인식이다. 성인식은 소년들에게 때로는 강제적으로 그러나 절대로 친절함을 잃지 않고 세상에는 스스로를 기브게 하는 일 말고도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줌으로써 그들을 소년에서 남자로 바꾸고 다른 이들을 돌보고 보호하는 즉 공동의 이익을 위한 삶을 사는 남자로 개종시키는 의식이었다.”



그러나 성인식은 더 이상 없다. 성인식에서 전수되던 교훈은 소년들 스스로 알아서, 자기 힘으로 세상과 부딫히며 배우도록 방치되었다.



“과거에는 올바른 도움과 지식이 결합된 다양하면서도 충격적인 경험을 통해 성인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었는데 현재는 그것을 운에만 맡긴다. 아주 신중하게 계획된 과정 없이 삶의 경험이 성인식을 대신하게 한다면 그들은 너무 험난한 과정을 겪어야 한다. 과거의 성인식도 거칠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언제 어떻게 닥칠지 아무도 모르는 파괴적인 현실과 마주친다. 그리고 아무런 도움 없이 그런 황폐한 현실을 뚫고 나가야 한다. 오늘날 정말로 생기있고 성숙한 사람들이 아주 드문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그러면 성인식에서 가르치던 교훈은 무엇인가? 저자는 5가지를 말한다.



1. 당신은 죽을 것이다. 2. 삶은 힘들다. 3. 당신은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 4. 당신의 삶은 당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5. 결과는 당신 손에 달려 있지 않다.



간단히 말하자면 겸손이다. 이 우주에서 ‘나’란 존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그리고 그 주어진 작은 것조차 언젠가 끝난다는 사실. 그것을 아는가의 차이가 소년과 남자의 차이라 저자는 말한다.



“특별한 사람들이 있다. 세상을 살다보면 어떤 조직이나 단체, 이웃, 혹은 당신 자신의 삶 속에서 우리는 그런 사람들과 마주친다. 남자든 여자든 이들은 삶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인격, 온기, 헌신, 그리고 이상 등으로 주변 사람들을 이끈다. 그들은 생명으로 가득하고 세상을 편안하게 느낀다. 마치 우주의 흐름 중 일부 같다. 버락 오바마나 마틴 루터 킹간츤 이들에데고 이런 자질들이 있었다. 미얀마의 정치가 아웅 산 추지, 넬슨 만델라 등도 그런 사람이다. 물론 특별한 사람들 중에는 잘 알려지지 않는 오직 주변의 친구와 동료들에게만 알려진 경우도 많다.



이런 사람들은 갑자기 부상했는가? 아니면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위대한 인물이었는가? 그들의 삶은 늘 그렇게 순조로웠는가? 그래서 그들의 삶은 항상 성공적이엇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실제로 이와는 완전히 반대이다. 이들의 위대함은 거의 예외 없이 고통 속에서 탄생햇다. 어떤 일들은 삶이 산산조각 나버릴 만큼 힘들었지만 그들은 그 고통스러운 일에 무너지는 대신 그 일을 변화의 계기로 삼았다.” 그 고통은 그들에게 삶의 현실에서 치룬 성인식이었다. 그 고통은 그들에게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쳤고 ‘나’를 넘어선 나보다 더 큰 것이 있다는 것을 가르쳤다.



과거의 성인식에선 소년은 죽어 다른 존재로 태어난다고 말해졋다. 자기중심적인 소년은 죽고 더큰 세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다른 존재가 되기 때문이엇다. “성인식의 목적은 젊은 남자나 여자를 성인의 세계로 데리고 가는데 있다. 그리고 성인식의 과정은 언젠가 당신이 원로가 될 때까지 공동체가 힘을 합쳐 강력하며 평생 지속되는 네트웤으로 당신을 지지할 것이라는 사실을 내포한다. 성인식은 당신을 사랑하고 가치 있게 여기며 평생 동안 지지해줄 성인의 세계로 들어오는 것에 대한 환영의식이다. 다섯 가지의 이 어려운 메시지를 견딜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바로 이것 때문이다.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단계이다. 공동체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없다면 젊은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서 어른의 세계로 건너뛰는 모험을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삶은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거기에는 고통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죽을 것이다! 이 얼마나 즐거운 메시지인가!”



문제는 그런 공동체가 무너졌다는 것이다. 공동체가 사라지면서 ‘아버지’는 더 이상 남자란 무엇인지 가르쳐주지 않는다. ‘사라진 것은 아버지만이 아니다. 전 시대에 있었던 이웃이나 마을의 어른들, 삼촌들, 멘토들도 덩달아 그림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오늘날 운동을 잘하거나 보이스카우트에 들거나 우자 특별한 교사를 만나지 않는 한 남자아이가 다른 성인 남자를 자세히 알 기회란 거의 없다. 바로 이 점이 자라나는 소년에게 거대한 진공 상태를 초래한다. 남자들이 ‘연극’을 하는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 진정한 남자들의 내적 세계를 모르는 소년들로서는 자아 이미지를 형성할 때 tv,나 영화, 친구같이 외부에서 주어들은 빈약한 이미지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런 다음 그들은 자신도 남자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배운 이미지를 행동으로 옮긴다.”



선천적으로 친밀감을 키우는데 뛰어난 여자들은 다르다. 여자들끼리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여자들은 ‘자기들 위에 걸어 둘만한 수호전사를 갖게 되고 평생 의지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든다.



“소년들 각자가 가면에 의존해 최선을 다해 보지만 그 자아는 친구와의 우정, 여자들과의 관계, 자녀들을 기르는 일 등 삶의 개인적인 영역들 중 그 어느 공에서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렇게 자라 아버지가 된 소년들은 당연히 자기 아버지처럼 될 수 밖에 없고 이 피해는 고스란히 그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이책은 우리가 배웠어야 하지만 배울 수 없었던 것에 관해 말한다. 물론 말로 가르칠 수 잇는 내용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아들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직업인으로서 남자가 되어 알아야할 것들이 무엇인지 방향은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이책의 목적이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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