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마의 수도원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8
스탕달 지음, 원윤수.임미경 옮김 / 민음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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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아녜스 생각을 했다. 

아녜스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파르마의 수도원에 은둔하기를 바랐으니까. 

나는 아녜스, 그녀를 닮고 싶어했으므로 자연 파르마의 수도원이 궁금했다. 

적과 흑에서 쥘리엥 소렐에 대해 강렬한 그 무엇을 받았으므로, 이 소설에서도 어떤 기대감이 있었다. 

여하튼, 어제밤에 2권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사랑, 열정, 행복은 무엇일까..생각해 보았다. 

답은 시원찮았고, 명료하지도 않았다. 

그 와중에 라디오에서 최백호의 '그쟈'가 들려왔다.  

나는 한 남자를 생각했다. 좁은 승용차안에서 나즈막하게 그 노래를 부르던 그 남자, 

그것은 사랑받고 싶은 여인에게서 사랑받고 있다는 남자의 충만감에서 비롯된, 그 무엇이었을까? 

아니면, 자기만의 공간에서 갑자기 솟구치는 어떤 감정에의 자연스런 반응이었을까? 

너무 오래 전이라, 나는 그저 이런 정도의 기억밖에 상상할 수 없다.  

아녜스, 다시 아녜스를 생각했다. 조그만 손짓으로 쿤데라를 매혹시켰던 그 여인말이다. 

열정이 노동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암시를 준, 책의 제목도 떠오른다.  

지도에서 파르마를 찾아보아야겠다. 

돈과 사랑에 열정적인 이탈리아 인들의 삶과 , 그 삶의 가장 격정적 일면을 소설로 옮겨 놓은, 스탕달에 대한 존경이 어우러져. 나는 약간 감상적이 되었다. 그래 꿈에, 한 때 혼자 노래를 흥얼거리던 남자와  만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다. 

열정은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 

여인에 대한 사랑 혹은 남성에 대한 사랑은 얼마나 한 인간을 격정적으로 만드는가?  

그게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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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2021-05-06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 이상 이런 감상문을 쓸 수가 없다..이제 나는 노회하고, 감정은 말라간다. 감정은 맥락적이며 구성된다는 책을 현재 읽고 있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이람. 나는 조금씩 시들고 있고, 나에게서 중요한 그 모든 즙들이 조금씩 빠져나가버린 느낌이다...인생이란...무엇일까.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 씨
커트 보네거트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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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좀 겁이 났다. 난 전작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떤 작가의 작품 모두가 다 만족스러울 것이란 기대는 애초에 기적을 바라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짓이란 걸, 태생적으로 논리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문득 깨달은 이후로 말이다. 

커트 보네거트 역시 그럴 것이라는. 사실 타임스퀘어는 지루했다. 

헌데 역시, 보네거트답다. 

나는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를 마더 나이트 만큼이나, 사랑하게 되었다. 재밌고, 눈물나고, 서글프다. 

어쩌면 서글프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기분 탓일 수도, 지금 나의 정서일 수도 있고, 

어쨌든, 이미 60년대에 커트 보네거트는 세계의 부가 어떻게 이루어졌고, 돈이 어떻게 미국을 지배하는지를 꿰뚫고 있었다.  

나는 엘리엇에 대해 생각한다. 

그의 고귀한 유전자, 반항하는 유전자 그래서 고독한 유전자를 말이다. 

그의 시도는 한낱 우스꽝스럽고 독특한 기행에 불과할지 모르지만,일찍이 톨스토이도 그런 길을 걸었더랬다. 

모든 재산을 농노들에게 나누어준. 

그가 삼신 할머니의 랜덤 덕에 부모 잘 만나 입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던 자각이야말로, 이 이야기의 시발점이다.   

하지만 자본의 논리는 돈의 위력은 이미 거역할 수 없는 하나의 시스템이 되었다.우리는 그 시스템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 보인다. 

해서, 나는 이 작은 소설이 서글프다.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그런 느낌으로, 내 슬픔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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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4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바구니의 금액을 5만원 이상으로 만들려고 헤매다가 이 리뷰를 읽었습니다.
이 리뷰를 읽고 슬퍼졌어요. ㅠ.ㅜ 그리고 장바구니에 이 책은 담겼구요.
반갑습니다. 테레사님~ ^^
 
나라 없는 사람
커트 보니것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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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엔 주로 덕담들을 주고받는 것이 미풍양속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골머리를 싸매어봐도 던져줄 덕담이 떠오르질 않는다. 사실은 그럴 기분이 아니라는 뜻이다. 돌아가는 주변 상황을 보니 외려 감정조절이 잘 안되고 툭하면 목을 넘어 입술근처까지 욕지끼가 차오르는 것을 주체할 수가 없다. 고백하자면, 특정 신문의 헤드라인만 봐도, 머리보다 입이 먼저 움직인다. 눈에는 북극 빙하보다도 더 서늘한 찬바람만, 입에는 도저히 숙녀가 담을 수 없을 험한 단어들이 고인다. 나만 그런가? 뭐 못생긴 OOO여자들은 북으로 가라고 손수 찾아오셔서 갈 바를 일러주신 “어르신”들까지 있는 마당에, 단어나 문장으로 덤비는 조중동쯤이야, 실은 안보면 그만이라고 하실 분도 있을 터. 헌데 화만 내고 팔짝팔짝 뛰기만 하는 쩨쩨하고 소심한 나 같은 사람을 보기 좋게 한방 먹이는 고수가 있었으니. 바로 커트 보네거트다. 그 할아버지는 이미 2009년에 작고하였지만, 그 분이라면 이런 나를 두고 이렇게 기도하라고 일러 줄 것이 틀림없다. “하느님, 저에게 허락하소서. 내가 바꾸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정심과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와 늘 그 둘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제5도살장, 243쪽)

커트 보네거트의 작품으로는 <제5도살장>을 제일로 꼽고 싶다. 결코 “웃어서는 안되는 웃기는 책, 눈물을 흘릴 수 없는 슬픈 책”이라고 소개되어 있는 이 책의 줄거리는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시간으로부터 해방된” 남자 빌리 필그림의 기이한 전쟁체험 정도가 되겠다. 시간에서 해방된이라고 표현한 까닭은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될 것이다. 사실 제목은 좀 살벌하다. 도살장? 아무런 사전 정보없이 제목으로만 친다면 결코 나 같은 요조숙녀(?)가 들춰볼 생각은 못할 것 같다. (이 책을 발견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작가가 풀어놓는 배경 이야기야말로 더 소설적이라는 점도 꼭 집고 넘어가고 싶다. 소설 첫머리에 “이 모든 것은 실제 일어났던 일이다”(10쪽)라는 고백은 혹시 이것은 작가의 고도로 계산된 트릭이 아닐까하는 의심많은 독자의 주의를 살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사실이다. 커트 보네거트는 대학 재학 중에 징집되어 유럽의 전장터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고 유서깊은 독일의 도시 드레스덴이 연합군의 무차별적 폭격에 의해 하루아침에 폐허가 되는 것을, 13만명의 시민들이 몰살당하는 것은 목격한다. 그 후 23년 동안이나 이 이야기로부터 도망치며 살았다. 물론 자신이 본 것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안했을 리 없지만, 그가 이 비극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까지 장작 23년이 필요했던 것이다. 좀더 정직하게 말하면 세상은 아무도 유럽을 독일나치의 만행으로부터 해방시켜준 선한 십자군인 연합군(영국군)이 무고한 드레스덴의 시민 13만 명을 무차별 살해했다는 사실을 고백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보네거트 자신조차 이 참상의 경험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 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허나 그와 함께 드레스덴 참상을 목격했던 전우의 부인이 “그땐 당신들 둘 다 어린애였군요.”(나라없는 사람, 27쪽)라고 일격을 가하고 나서야 “핵심을 깨달은” 그는 “우리는 역사상 최악의 인종인 나치에게 저질렀던 우리 자신의 추악한 행동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28쪽)다고 고백한다. 그가 80살이 넘은 나이에도 이라크 전쟁 반대 시위에 참여하고 부시정부를 맹비난하며 또 반전작가로 평생 살았던 까닭은, 참상의 한복판에 있었고 선과 악이 뒤섞인 “태초의 밤”(마더나이트)을 경험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친 김에 또 다른 그의 걸작을 꼽자면 나는 주저없이 <마더나이트>를 지목하고 싶다. “우리는 가면을 쓴 존재라는 것, 그래서 그 가면이 벗겨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라는 문장에 나는 매혹되었다. 이 소설은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적 독일로 가 희곡작가로 꽤 성공을 거둔 남자가 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독일과 연합국의 이중 스파이 노릇을 한 것에 대해 쓴 회고록이다. 그가 한 일이라곤 나치를 선전하는 라디오프로그램 대본을 읽을 동안 “말버릇, 말 사이의 중단, 강조, 기침, 중요한 문장에서의 말실수”로 정보를 흘리는 것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할 일이 없어진 그의 삶도 별 볼일 없이 흘러가지만 뜻하지 않는 사건들에 휘말리면서 세인의 주목을 받게 된다. 역시 전쟁에 대한 혐오와 어리석은 짓이란 깨달음이 절절히 묻어난다. 허나 그것은 그의 전매특허인 신랄한 풍자와 유머를 통해서다. 결코 흥분하거나 감상과 연민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의 이러한 웃음과 유머는 에세이집 <나라없는 사람>에도 그대로 반복되고 훨씬 더 직접적이다.

커트 보네거트, 당신은 누구인가요? 라고 묻는다면, 그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나라없는 사람”이라고. “한심한 미국이 인간적이고 이성적인 나라로 변할 가능성이 조금도 없다는 것을”(74쪽) 알고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 자식들이 살고 있는 미국을 기꺼이 버린 사람이다. “인간은 권력에 도취된 침팬지”이며 “미국 지도자들이 권력에 취한 침팬지”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알아챈 사람이다. 그는 “네이팜탄은 하버드에서 발명되었다. ‘진리’란 그런 것인가?”라며 영혼없는 지식인들을 가차없이 비난하는 사람이다. 또 그가 버린 나라의 바탕이 된 종교의 예수를 “그의 가르침이 훌륭하고 대부분의 말이 절대적으로 아름답다면 그가 신이든 아니든 무슨 상관이겠는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곧이어 “우리 대통령(부시)이 기독교도였던가? 아돌프 히틀러도 기독교도였다.”(89쪽)고 또 그는 “미치광이 환자들만이 우두머리가 되고자 나선다”(나라없는 사람, 101쪽)고 한탄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휴머니스트이다. 소아과 의사인 아들의 말대로 “그게 무엇이든 우리는 서로 도우면서 살기 위해 존재하는 것” 이며, “현실적으로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추상성(바로 우리 사회)에 최선을 다해 봉사하는 사람”(81쪽)이 휴머니스트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아들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대량 학살에 가담해서는 안되고 적이 대량 학살당했다는 소식에 만족감이나 쾌감을 느껴서도 안된다고, 또한 대량 학살 무기를 만드는 회사의 일은 하지 말라고 그리고 그런 무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경멸감을 표하라고 늘 가르치는 사람, 그가 바로 커트 보네거트이다. 그는 2007년에 세상을 떠났다. 누군가의 표현대로 그의 죽음으로 인해 이 우주의 정신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가는 거지.”(제5도살장, 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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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레지스탕스 - 저항하는 인간, 법체계를 전복하다 레지스탕스 총서 1
박경신 외 지음 / 해피스토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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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설였다. 

이런 식의 책들이 주는 편견 같은 게 있지 않은가. 재미는 더럽게 없고, 너무 계몽적이라는. 

해서, 내가 이 책을 샀을 때 과연 끝까지 읽으려나 싶었는데, 

의외로 술술 읽힌다. 아마 판결문을 그대로 옮겨놓거나 어려운 용어를 써가며 해설하는 책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이 책의 중심은 열 세가지 사건이다. 도곡동 타워팰리스 맞은 편 구룡마을이라 불리우는 비닐하우스촌, 남의 땅에 무단점거한 채 살고 있다고 수십년째 주민등록이 없는 사람,현대건설 사내 하청 종업원으로 들어가 정규직과 하나도 다르지 않는 일을 하면서도 월급은 그 반밖에 받지 못하다가 구조조정 칼바람에 제일 먼저 해고된 사람,아이가 유행가 가사를 따라 부른게 귀엽기도 하고 한편으로 걱정이 되어 블로그에 올렸는데 그게 저작권법위반이라며 삭제된 사람, 무엇보다,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가  "허위사실 유포죄'라는 무시무시한 법에 걸려 100일이나 감옥살이를 해야 했던 경제대통령 미네르바 등등. 

 하나같이 억장이 무너질 만큼 말이 안되지만 주위에서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사건이다. 헌데 법원에서는 때로는 억장 무너지는 사람 편에서 때로는 이게 사람을 위한 법인가 싶을 정도로 몰인정하게 다룬다. 물론 여기 열 세편의 사건들은 모두 최종 승소한 사건이다. 다행이다.  

때로는 분노하면서 때로는 감격에 겨워 구절구절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판사가 바로서야 나라가 산다는 말이 허언이 아님을 알겠다. 물론 그 판사를 움직이게 만든 것은 이 사건들에서 결국 승소하도록 애쓴 변호사들일 터다. 

이 책에 들어있는 열 세가지 사건들은 모두 기존의 법해석과 판례에 굴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승리한 사건들이다. 법은 그 특성상 보수적이고 안정 지향적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나 법이 권위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만인에게 공평하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그러한 전제를 부정해 온 측면이 크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나마 변화의 가능성을 본다면, 그 법을 해석하여 적용하는 판사들에게서다. 또한 그 법을 기존의 해석에서 벗어나 보다 인간의 편에서, 보다 정의의 편에서 보게 만드는 것은 변호사들이다. 

이 책은 그런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국사회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우여곡절, 부당함, 분노들을 열 세편이라는 사건들로 나누어서 그 한편 한편의 맥락을  풀고 마침내 법을 어떻게 해석하였는지 풀었다.물론 판례평석 같이 어렵고 딱딱한 문체가 아니라 쉽게 에세이식으로 풀어썼다. 나 같이 법이라면 문턱에도 가 본 적 없는 사람도 술술 읽힌다. 솔직히 나는 이 열 세편의 사건 중에서 , 노회찬떡검사건이 제일 흥미진진했다. 자살한 장자연씨가 남겼다는 리스트에 조선일보의 방모 사장을 비롯하여 내가 한때 괜찮은 사람으로 여겼던 송 모 작곡가(한때 그는 작곡가 였음, 예전에 재밌게 본 그여자-송명길 주연의 미니시리즈였던 기억이 있음)도 포함되어 있어 경악했던 기억을 되새기면서, 읽었다. 진실은 늘 그렇게 드러나는 법이다.  

호모레지스탕스-저항하는 인간이라는 제목에 비해서는 이 책 내용이 좀 온건한 편이다. 왜? 어쨌거나 법의 테두리안에서 저항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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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잡아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0
솔 벨로우 지음, 양현미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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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가로수길>이라니. 얼마나 서정적인가! 먼지가 부옇게 이는 어느 여름날이어도 좋다. 만약 한낮의 지루한 해가 사라진 뒤의 가로수길이라면 열기가 가신 땅거죽으로부터 스멀스멀 어둠은 무한히 피어오를 것이다. 만약 그것이 겨울날 차갑게 식어버린 대지 위라면, 가로수들은 텅빈 주변보다 더 비어버린 제몸의 균형을 맞추며 모질게 서 있을 터이다.


모스크바는 명료한 도시다. 6월의 모스크바가 건조한 대기와 그것보다는 조금 윤택한 태양이 명랑하게 빛나던 도시라면 모스크바의 12월은 화끈하다. 그 맛은 에스프레소의 그것만큼 따끔하지만 결코 불쾌하지 않다. 검고 가는 자작나무가 늘어서 있는 아파트단지는 또 얼마나 소설적인지. 이즈음 정강이까지 빠지는 희디 흰 눈은 깊이를 척도할 수 없다. 우주의 깊이만큼 심오한 느낌을 준다. 프라스펙트 레닌(레닌대로)은 여전히 길게 죽 뻗어 있을 것이며, 유고자빠드나야역 근처에는 피부색이 짙은 콧수명의 남자들과 코끝이 휜 여인들이 추위도 잊고 바구니를 든 채 혹은 좌판에서 물건 값을 흥정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9세기 러시아의 작가 이반 부닌(1870-1953)의 <어두운 가로수길>은, 딱 이 즈음에 집어들기 좋은 “제목”이다. 순전히 제목에 이끌려 이 책을 집어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사랑 이야기니 술술 읽히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13년에 걸쳐 쓴 단편들은 저마다 사랑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예컨대 표제작인 “어두운 가로수 길”은 “모든 게 사라진다고 잊히지는 않아요”라는 문장으로 압축될 것이다. 이 문장은 가혹하리만치 서글픈 느낌을 준다. 그 느낌은 마치 얼마 전 마종기 시인의 선집에서 발견한 “전화”라는 시에서 받은 느낌과 닮기도 하였다.


당신이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전화를 겁니다./신호가 가는 소리/ 당신 방의 책장을 지금 잘게 흔들고 있을 전화 종소리, 수화기를 오래 귀에 대고 많은 전화소리가 당신 방을 완전히 채울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래서 당신이 외출에서 돌아와 문을 열 때 내가 이 구석에서 보낸 모든 전화소리가 당신에게 쏟아져서 그 입술 근처나 가슴 근처를 비벼대고 은근한 소리의 눈으로 당신을 밤새 지켜볼 수 있도록/다시 전화를 겁니다./신호가 가는 소리.(마종기/ “전화” 전문)


어려운 시어를 쓰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 평이한 언어들이 빚어내는 정서는, 사랑의 어떤 측면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약간 아찔함을 느꼈을 정도였다. <어두운 가로수길>에서 부닌이 보여주는 사랑의 모양들도 제각각 사랑의 한 부분들을 건드린다. 오래된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첫사랑을 다시 만나는 초로의 남자에게 사랑이란, 죽음 뒤에서라도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전쟁터로 떠나는 남자에게 사랑이란, 변심한 애인에게 한발을 날린 사내에게 사랑이란, 연민일 수도 희생일 수도 질투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란 “삶에서 행복은 없지만 그 삶에서 번갯불 같은 순간들이 있고, 그 순간들로 인해 살아”가는 어떤 것이라는 문장에 우리도 함께 공감하게 된다면 “시간에 대한 희망을 제외하고 나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라고 묻는 듯 깨달은 듯 던지는 문장은 이렇게 들릴 수도 있다. “우리는 시간과 함께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 아닌가요?”라고.

부닌은 러시아인으로서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1933) 인물이긴 하지만 그다지 우리나라 독자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나 역시 대학 때 처음 접했던 작가라 거의 잊고 살았다. 비대중적인 비영미권의 작품을 펴낼 생각을 한 출판사(지만지)를 다시 고쳐 보지 않을 수 없다(불행히도 이 책은 현재 인터넷 서점에서 품절이라고 정보가 뜬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 책은 작년에 읽었다가 그다지 깊은 인상을 받지 못해 옆에 밀쳐 둔 책이다. 그러다가 얼마전 다시 펴들게 된 것이다. 그 계기는 뜻밖에도 올 6월 손창섭 작가의 죽음이라고 해야겠다. 어느 신문에서 “스스로를 지운 사람”이라고 명명할 정도로 철저하게 자신을 숨기며 살았다는 이력이 눈길을 끌었던 데다 그가 쓴 그 유명한 “잉여인간”을, 실은 정식으로 읽어보지도 않았다는 일종의 죄책감 비슷한 무엇이 내게 있었던 모양이다. 해서 “잉여인간”이 실린 단편집 <비 오는 날>을 읽어보기로 하였다. 손창섭은 작가가 되기 전 일본으로 건너가 중학을 다니는데 이 때 읽은 작가들 중에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가 있었다. 작가 소개에 따르면 손창섭은 체호프의 작품 중에 “아뉴타”를 가장 좋아했다고 한다. “아뉴쉬까”라니. 아름답지만 서글픈 사랑이야기인 바로 그 “아뉴쉬까”라니 말이다.

줄거리는 대강 이렇다. 모스크바 대학에 다니는 귀족 청년이 방학 때 부모의 영지로 온다. 이 집에는 안나라고 불리는 사랑스런 소녀가 있다. 이 청춘의 귀족 청년은 하녀인 이 소녀에게 마음이 끌리게 된다. 둘은 눈 내리는 언덕에서 함께 썰매를 탄다. 썰매를 타고 언덕을 내려오면서 청년은 소녀의 귀에다 대고 속삭인다. “아뉴쉬까(안나의 애칭)... 아뉴쉬까...”. 방학이 끝날 무렵 청년은 떠난다. 남은 소녀는 생각한다. 청년과 함께 썰매를 타고 언덕을 내려올 때 귓가에 들려오던 그 소리는 사랑의 속삭임이었던가, 바람소리였던가. “안나....아뉴쉬까...아뉴쉬까...사랑해....”.

나에게 “아뉴쉬까”는 이런 줄거리로 남아있다. 혹시 번역이 되어 있나 찾아보았으나 허사였다. 외국어로 읽었고 소련에서 짧은 영화로 만들어진 것을 영어자막과 함께 보았던 기억도 난다. 이렇게 일깨워진 정서는, 한 옆에 밀쳐둔 부닌의 <어두운 가로수 길>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책을 고르는 기준이나 계기는 별의 수만큼이나 다양할 터이지만, 나에게는 신문의 서평일수도, 출판사에서 보내오는 신간알림 메일일수도 또는 술자리에서 옆사람들이 주고받은 한마디 품평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번처럼 한 작가의 죽음과 그 죽음에 연쇄적으로 반응한 일련의 개인적 추억일 수도 있다.

반면 부닌보다 43년 늦게 노벨 문학상을 받은 미국의 작가 솔 벨로의 <오늘을 잡아라>는 한 건방진 남자가 내뱉은 말 때문이다. “솔 벨로 읽어봤어? ...문체란 그런거지.” 영화 <질투는 나의 힘>이란 영화에서 출판사 편집장이란 작자가 부하 직원에게 의기양양하게 한마디 던진다. 특별히 이반 부닌보다 대중적인 면에서 형편이 나아보이진 않는 이 작가는 이렇게 나에게 각인되었다. 문체라..문체라... 영미문학전공자들에게는 익숙할지 모르지만, 그 역시 번역본이 별로 많지 않는 것 같다. 다른 작품이 있을 법하지만, 나에게 그의 책으로는 <오늘을 잡아라>가 처음이었다. 솔직히 제목은 무슨 자기 개발서나 주식 거래 지침서 같다는 느낌을 준다. 예전에 나온 번역서는 “그날을 잡아라”라고 했는데, 좀 뜬금없어 보이기도 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아마 어느 제목이 더 적절한지 나름의 판단이 설 수도 있겠다.

주인공 윌키(토니 윌헬름의 애칭)는, 한마디로 실패한 인간의 조건은 다 갖추었다. 은퇴한 의사 아버지는 소통불능이고, 하나밖에 없는 누나는 소식을 못 듣고 산지 오래되었다. 얼마 전에 직장에서 쫒겨났으며, 이혼은 해주지 않고 별거중인 아내는 늘 돈을 요구하며 괴롭힌다. 이것이 윌키의 외부 조건이라면 그 자신의 내면은 어떤가? 사가꾼 브로커에게 속아 헐리우드에 갔으나 단역배우조차 되지 못한 채 10년을 허비했다. 늘 켤코 선택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일을 최후에는 선택하고 만다. 이제 마흔 줄을 넘긴 윌키는 자신의 실패의 원인이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다.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고 어제는 이미 지나갔으니 오늘을 잡을 밖에 도리가 없다. 허나 이런 처지를 자각한다고 해서 나아질 리가 있는 것인가? 실패를 내정한 어리석은 짓이란 걸 잘 알면서도 사기꾼에게 가진 돈 전부를 맡기는 것이 윌키 같은 나약하고 어리석은 이의 숙명일까? 배반당한 걸 깨닫는 눈간 느닷없이 낯선 사람의 장례식 행렬을 마주친다고 하여 달라질 것이 있던가? 그는 실컷 울었고, 눈물은 또 다른 시작의 전조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무도 모른다. 판도라가 가장 마지막으로 남겨두었다던 희망이 보일지는. 인생은 바닥이고, 바닥에서 솟구치기 위해서는 적어도 발구름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자의식은 우리의 삶을 바닥에서 끄집어 내 주는 실제적 도구는 되지 못하는 듯하다. 다만, 도구를 찾아야 할 구실을 주는 정도는 되겠지만. 종국에는 행동만이 변화로 이끄는 열쇠이리라.

단 하룻동안에도 일생을 산 것 같은 날들이 있는 법이다. 윌키가 단 하루동안 뉴욕 브로드웨이 거리를 걸으면서 겪게 되는 일은 결국 우리의 전생애일 수도 있다. 너무 절망적이라 허무감조차 사치로 느껴지는 어떤 날의 ‘오늘’처럼 말이다. 결국 우리는 지나간 어제를 돌이킬 수 없고, 오지 않은 “내일” 때문에 몸달을 필요가 없다. 다만, 오늘을 잡을 밖에. 하지만 이건 너무 뻔한 교훈 같다. 그래도 어쩌란 말인가, 생각만큼 교훈대로 안되는 것이 인생인 것을. “자네에게 고통과 결혼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 그런 사람들이 좀 있거든. 그들은 고통과 결혼해서 꼭 부부처럼 함께 먹고 자고 하지. 그러다가 즐거움을 알게 되면 자기가 간통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가 된다니까. ?”(167쪽) 다만 이렇게 톡쏘는 구절에서조차 위안을 느낄 수밖에. 이 위안은 보편성을 확인하는 순간에 찾아오는 안도 같은 감정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군 하는. 

 

* 그런데 아뿔사 이를 어쩌나. 손창섭이 깊은 인상을 받은 체홉의 단편은 <아뉴타>라는 제목이었으며 뒤늦게 확인한 바에 따르면 내가 기억하는 그 < 아뉴쉬까>가 아니었다. 진실을 이야기하자면 여전히 그 작품의 정확한 제목을 모르겠다. 눈썰매 였던가...아뉴쉬까 맞았었나...번역이 안되어 있을 뿐 아니라 원본도 아직 찾질 못했다. 강의하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그 역시 정확하게 기억이 안난다고 했다. 난감할 뿐이다. 잘못된 기억에 의존해 책소감을 늘어놓은 나자신이 염치없을 뿐이다. 여기 방문객이 얼마 되지 않지만 그분들께 진심으로 죄송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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