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컨대 나는 너무 진지한 여자었던 것이다.
생각나는 에피소드 하나.
어느 여름날, 당시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까지 다녀온 소위 취업 준비생이었다.
관습대로 다른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스터디를 꾸려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 팀에는 나와 동기인 사회학과 출신의 A가 있었는데, 내 맘에 좀 들었던 모양이다. 관심이 갔으니 말이다. 지금과 달리 그때는 원하는 곳은 아니어도 마음만 먹으면 대개는 취직이 되었던 시절이었다. 다만, 우리들은 좀더 그럴듯한 곳에 그럴듯한 일을 하는, 좀더 속물적으로 풀어보면 사회적 영향력도 있고 돈도 많이 버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바른 일을 할 수 있는 곳에 취직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세상일이 다 그렇듯 이 모든 것을 갖춘 직장이란 게 어디 있을까. 그땐 뭐든 되는 줄 알았다.
우리의 지향과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했던 곳이 언론사와 방송사였다. 유학에서 돌아온지 1년이 채 안지난 시점이어서 나는 그저 어영부영 공부도 감을 잡는 중이었는데 시험일정이 공고되기 시작했다. A에게 호감이 있었던 표시가 난 모양인지 스터디 그룹의 다른 이들이 우리 둘을 놀리고 괜시리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둘을 엮는 일도 많았다. 그런 엮음 덕에 우리는 어찌어찌하여 신문사에 원서를 내러 함께 가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학교 깊숙한 대학본부까지 52-2인가 52-1인가 하는 좌석버스가 들어왔다. 그 버스를 타고 시내 중심까지 원서를 내러 옆자리에 나란히 앉아 갔는데, A도 그게 싫지 않은 눈치였다.
아무튼, 결론은 그 뒤 아무일도 없었다는 것(너무 바빠 자세히 못 쓰겠음).
거의 서울 중심까지 유람을 하고 온 뒤, A가 한말, " 엄청 재미있는 앤 줄 알았는데..전혀 아니네!'
남자들은 진지한 여자보다는 재미있는 여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내가 깨닫지 못한 것이다.
타고나기를 진지한 걸 어쩌라고, 내 유전자가 그렇게 생겨먹은 걸 어쩌라고...
오늘 페이스북의 친구 1명이 쓴 글을 읽으며,아 이 사람은 참으로 유쾌한 사람이구나 싶은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동시에 아주 오래 전 A가 내뱉었던 나에 대한 한마디를 떠올렸다.
난 내추럴 본 진지인걸.......어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