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경이었을 것이다.
어느 비오는 날이어도 좋고, 아니면 화창한 늦봄이어도 좋다. 산책하기 그럴듯한 날이었다면, 그 어떤 날이라도 괜찮다.
내가 첫 직장을 삼았던 곳은 강남구 신사동의 깨끗하고 단정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던 곳에 있었다.
나는 외로웠던 것일까? 점심을 먹고 나면 근처 sk가 운영하는 레코드가게-어쩌면 씨디 가게-나 맞은편 대로가에 있던 책방-이름은 전혀 기억이 안난다-을 넘나들었다.
그래 외로웠던 탓이다. 외롭지 않고서 어떻게 책과, 음악을 찾아 들었겠는가.
여행으로의 초대, 당신을 닮은 나라라는 보드레르(?)의 구절들을 읽었던 곳도, 그리고 크렌베리를 알게 되었던 곳도.
언젠가 때가 되면,아일랜드로 가서 크렌베리의 공연을 보리라. 돌로레스의 그 특이한 창법을 미친듯이 따라하면서 몸을 흔들어도 보리라.
조르쥬 페릭스의 "인생사용법"을 "사물들"을 다시 보아야 겠단 생각을 한다. 이재룡교수가 다시 번역하였다고 하네. 이재룡 교수의 <외로운 남자>도 다시 생각난다. 외젠느 이오네스코도. 이 외젠느란 이름에서 나는 다시 북호텔의 왼젠느 다비를 발견하게 되었지. 그리고 2002년 가을, 프랑스 파리의 북호텔 로비에 서 있게 되었지. 그때 나의 옆엔 누군가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니도 마음도 머리도 멍한 이 계절의 한 귀퉁이가 불안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요 두 서너달 동안 읽은 책도 없고, 멍때리고 살았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싶은데, 잘 모르겠다. 허기가 자주 지고, 뒤늦게 지난 드라마를 몰아본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이건 무슨 신호일까? 머리카락을 자르러 갔더니, 헤어디자이너가 성의없이 싹뚝 잘라버려, 앞머리는 몽실이가 되었다.
팔뚝에 레이저로 지진 자국에서 핏물이 뚝뚝 흘러 흰색 진바지를 사지 않을 도리가 없게 되어 버렸다. 바지 잘 입지도 않는데.
아무튼 돈도 깨지고, 마음도 깨지고, 이상한 날들이다.
쓰지 않으니 반성이 없다. 반성이 없으니 삶이 없다. 삶이 없으니 나도 없다. 없는 것 투성이다. 결핍의 비극. 어제 김어준의 색다른 상담소 나상담에서 김현철 박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시기란 자신의 결함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상대방을 파괴하여 자신을 살리려는 반응이라고.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