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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는 기술 - 읽히는 이야기는 어떻게 써야 하는가
이디스 워튼 지음, 박경선 옮김 / 젤리클 / 2023년 3월
평점 :
이디스 워튼의 '이선 프롬'을 읽고 한동안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내겐, 결말이 식스센스급 핵반전이었다.
적어도 식스센스가 끝나고는 그렇게 슬프지는 않았으니까.
알고보니, 첫대목에서 등장한 '등굽은 암말'이 괜히 등이 굽은 게 아니었던 거.
'징구'에서는 또 얼마나 고급지게 위트 넘치는가.
'로마의 열병'은 또 얼마나 능청스러운가.
두 친구의 인생이 걸렸을, 엄청나게 큰 일을
대단히 별일 아닌 걸로 천연덕스레 눙치는 기술.
이 얇은 작법서에 담긴 이디스 워튼의 소설 쓰기에 대한 생각.
19세기 사람답게, 사용한 단어가 단어가 19세기적이라 원서로 읽기에 애먹던 참에,
번역서가 나왔다.
그것도 두 권씩이나.
박경선 역자본은 '습니다'체로,
최현지 역자본은 '하다'체를 채택했다.
고민없이 박경선 역자본으로 구입했다.
'미리보기'로 비교한 결과, 조근조근 들려주는 식이 어쩐지 더 19세기다워서.
그리고 이디스 워튼의 작법서이 부제가 'The Classic Guide to the Art of the Short Story and the Novel'인데 '도롱뇽'은 좀 '클래식'해 보이지가 않아서.
이디스 워튼의 작법서는 첫 대목에서 이 소설을 이야기한다.
소설의 인물이 거리에서 영혼으로 극적인 공간 이동을 이룬 작품의 효시가 이 책이라며.
신화 및 영웅담 위주의 로망스에서 드디어 '소설'로 옮아간
지금의 소설은 '돈키호테'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소설의 인물은 '클레브 공작부인'을 기해, '영혼'을 입는다.
외형의 가없는 언저리를 맴돌던 소설이
드디어 비가시적인 내면을 파고들기 시작한 것이다.
'형'으로서 존재하던 소설의 인물에 '격'이 부여된 것이다.
졸지에 클레브 공작부인까지 읽어냈다.
하도 구석에 꽂혀 있어 찾기도 힘들었다는.
아무튼 뒤쪽을 못 읽어서 다 읽고 자세한 리뷰를 하기로.
이디스 워튼의 사후 70년이 지났다.
고로, 그녀의 작품은 저작권이 뻥 뚫렸다.
아무나 번역해도 되고 아무나 출간해도 된다.
그래서일 것이다.
번역판본이 동시에 두 버전이 나온 것은.
아마 앞으로 이디스 워튼의 번역작들이 쏟아지지 않을까.
좋은 일이다.
우리집에서 한 시간 정도 가면 있는 이디스 워튼의 생전 자택.
직접 디자인해서 직접 건축했다는 집이다.
그 앞쪽으로 산책길이 예술이다.
이런 곳에 살면서 소설 쓰면 나도 좋은 작품 쓸 것 같다.....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3초 정도 했다.
5초 정도 안 한 건, 동행자의 한 마디가 도움이 됐다.
"이런 데 살면 안 심심하나?"
소설은 심심해야 잘 써질까, 안 심심해야 잘 써질까?
그나저나, 이사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