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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MBTI - 명작 속에서 나를 발견하다
임수현 지음, 이슬아 그림 / 디페랑스 / 2023년 3월
평점 :
다 해도 되는데, 진짜 좋은 소설 속 인물은 안 건드렸으면 참 좋겠는 게...
소설 속 인물은 소설이란 바다에서 사는 물고기와 비슷하지 않을까.
그들은 소설 속에서만 숨 쉴 수 있다.
밖으로 나오면 숨을 못 쉰다. 죽을 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의학적/사회학적/심리학적/사회심리학적 등등의 시도로
뫼르소는 감정이 거세된 사이코패스,
라스콜리니코프는 충동조절장애,
보봐리 부인은 연극성성격장애
바틀비는 사회성 제로의 아스퍼거...
이런 식으로 하는 규정의 시도가 소설 인물을 밖으로 끌고 나오는 행위에 속한다.
'이방인'을 끝까지 읽어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도무지 이해 안 가는 뫼르소지만 한 자락, 우리와 겹치는 빗금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소설 밖으로 나오는 순간, 뫼르소에 붙게 될 라벨은 수두룩하다.
뫼르소는 소설 속에서만 뫼르소다.
소설 밖에서 그는 대번에 환자요, 살인범일 뿐이다.
소설 밖은 그런 곳이다.
상식과 비상식만 존재하는 곳.
그 사이의 분명한 선을 목숨을 지키려 하는 곳.
그 사이 모래알처럼 많은 가능성에 관해서는 관심도 없는 곳.
소설 속에서 인물이 자유로운 이유는
그 사이를 유영하기 때문이다.
위대한 작가들의 살과 뼈를 깎아낸 노역 덕에...
MBTI라...
소설 속 인물에 그걸 매겨 뭘 어쩌자는 걸까.
'나'와 비슷하니 그 인물의 행위를 생활 속에서 참고하자는 걸까.
소설 속 인물은 그런 거 모른다.
그들에겐 획일화된 성격이란 없다(전근대 소설이라면 모르지만).
소설 속 인물에 우리가 감동하는 이유는 그들이 변하기 때문이다.
변형(transform)되기 때문이다.
소설 처음의 인물은 결말의 인물과 다르다.
방 안에서 아무 짓도 안했다 하더라도 그는 예전의 그가 아닌 것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자.
소설의 처음과 끝만큼의 시간 동안, 소설 밖의 당신이여.
그리 변한 적이 있던가.
변해 낸 적이 있던가 말이다.
소설 속...
특히 명작소설 속 인물은 제발 뭘로 좀, 뭘로도 규정하지 말고 내버려 두길.
감동에....명작에서 얻는 드문 감동에
방해받는단 말이다.
뭐, 흥미를 끌 수는 있겠다.
재미도 느낄 수 있겠다.
그러나 그걸 감동과는 결코 바꾸고 싶진 않단 말이다.
(정말이지, 목차만 읽는데도 가슴 한쪽 감동저장고에 구멍난 느낌...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