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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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친구는 <수인>을 읽으면서 깔깔깔 웃었다고 했다. 자신이 소설가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곡괭이질을 했는데 정작 소설이 아닌 그 곡괭이질로 주인공이 가고 싶은 나라에 보내지게 되었다는 사살이, 그 풍자가 너무나 슬프면서 웃겼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반대로 엉엉 울고 싶었다. 마치 이 바쁜 세상에 아직도 소설 나부랭이나 읽느냐고 조롱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소설가로 산다는 것이 어쩌면 허상을 쫓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소설이 없는 세상이란 별이 뜨지 않는 밤하늘 같다. 달빛만으로는 밤이 아름다울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저 벽 뒤에 자신의 소설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로선 계속 벽을 파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 제안을 수행한 자의 관성이었다. 아니, 어쩌면 이미 회색 시멘트벽 그 자체가, 그의 존재였고, 그의 실체였는지도 몰랐다. 그는 그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이제 그 자신이 완벽한 연장이 되었다는 것을 …… 연장은 미리 벽 뒤를 내다보지 않는다는 것을 …… 연장은 연장일 뿐.

226.p

 

  그러나 곡괭이와 한 몸이 되어 단단하게 굳어 버린 대형서점의 벽을 뚫는 소설가의 행동이 깊이 잠들어버린 사람들의 생각과 의식에 곡괭이질을 하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매일 곡괭이질을 하는 것이니까. 자신이 쓴 소설이 저기 있다고, 아니 저기 있을 것이라고, 한편으로는 그것이 저기에 없으면 어떻게 하지 고민하면서 그는 끊임없이 곡괭이질을 한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을 소설을 위하여 말이다. 그러나 그는 매일 오로지 하나의 목표를 위해 반복적으로 노동을 했고, 그로 인해 책들의 소리를 들었으며, 그 책과 세상에 새로운 공기를 불어넣어주었다. 매일 반복하는 일을 통해 우리는 성장하고 발전한다. 조금씩 쌓이고 벌어지는 실력이 우리의 인생을 서서히 바꾸어 줄 것이다. 그것이 허상을 쫓는 소설 쓰는 일일지라도 말이다.

 

그가 라이터를 켜면 그곳에 소설이 있었고, 그가 라이터를 끄면 소설은 사라졌다. 그는 반복해서 라이터를 켰다 껐다.

어둠 속, 축구장 크기만한 서점 안에, 수많은 발명품들이 조용히 누워 있었다. 그는 그 앞에 웅크리고 앉았다. 어디선가 낮은 소리가 들려왔다.

232.p

 

  그래서 오늘도 우리의 소설가들은, 우리들은 아무것도 보장되어 있지 않는 세상 속에서 각자의 연장과 한 몸이 되어 끊임없이 곡괭이질을 한다. 돈키호테처럼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팔을 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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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먹다 - 제13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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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3월 초, 악양으로 귀촌한 친구 집에서 3일 동안 머물렀었다. 아내를 위해 목수인 친구 남편이 시골집을 사서 다시 짓고, 따뜻한 황토 방도 만들었다. 우리는 그 방에서 먹고 자고 차 마시기를 반복하다가 심심해지면 대충 운동화를 꾸겨 신고, 평사리 부부송이 한 눈에 들어오는 뒷산 언덕에 올랐다. 머무는 동안 밤새 비가 내리다가 아침이 되면 그치기를 반복했다. 비는 그쳤지만 하늘은 여전히 흐렸고, 물기를 머금은 구름은 천천히 낮게 움직였다. 산에는 매화가 옥수수 알갱이가 하얗게 터지기 전 모습처럼, 아기 병아리 하얀 머리에 솜털이 뽀송 올라오는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친구는 내게 너 서울 가고 나면 활짝 피겠다.”고 말한 뒤 아쉬워했다.

 

  차들이 다니는 길 위로 매화나무 가지가 부러져 있는 것을 주워와 꽃병에 꽂았다. 친구는 세 모금 정도 마실 수 있는 작은 찻잔에 매화 두 송이 동동 띄운 매화차를 내주었다. 차를 마시기 위해 잔을 들었을 때 나는 향기에 놀라 몸을 움칫했다. 가까이 다가서지 않으면 맡을 수 없지만, 한 번 맡으면 평생 잊을 수 없는 은은하면서도 품위 있는 향기가 퍼지고 있었다. 김진규 소설 <달을 먹다>를 읽어 가는 동안 내내 그 향기가 떠올랐다. 오랜만에 읽는 장편소설이라 시간이 오래 걸릴까 걱정했는데 무색하게도 한숨에 읽어 내려갔다. 다 읽고 나자 하루가 기울고 있었다. 살아간다는 것은 무수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다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사랑과 미움, 아픔과 상처 입기를 반복한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하나의 단어로 묶는다면 사랑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죄이지 사랑하는 것은 어쩔 수 없으나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미움과 고통, 아픔이 시작되기에 우리의 삶은 고달프다.

 

  소설의 구성도 삶과 닿아있다. ‘이른 아침, 겨울’, 묘연의 첫 번째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깊은 밤, ’, ‘한낮, 여름’, ‘다시 밤, 가을기현의 여덟 번째 이야기로 끝난다. 침묵을 숙명처럼 안고 살아간 묘연을 중심으로 남편 태겸, 아들 희우, 향이를 사랑한 여문과 향이, 향이의 엄마이자 묘연의 지기인 하연과 희우가 사랑한 누이동생 난이, 아버지 류호 등의 사랑과 무심함이 피었다가 지기를 반복한다. 작가는 고요한 침묵을 품고 앉아 단단히 꼬여 버린, 눈에 보이지 않는 인연의 끈을 묵묵히 풀어내고 있다. 끈이 하나씩 풀릴 때마다 인물들의 힘겨운 사랑이 피었다가 졌고, 그러면 그 자리에 죽음과 후회, 자책과 고통이 다시 피었다가 졌다.

 

  한편 조선 영·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가의 선택은 탁월하다. 왜란과 호란을 겪은 이후, 신분질서는 붕괴되고 이미 맛보아 알게 된 자본의 힘과 개혁군주 시대의 희망이 바탕을 이루는 가운데 슬슬 시작되는 세도정치와 전통, 체면, 가문을 중시하는 인간들의 군상이 더욱 돋보이는 구조이다. 예의와 법도, 멋과 효의 가면을 썼지만 그 안으로 거스를 수 없는 인간 본성을 보여주고 있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우리는 누구나 외롭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미워하며 살아간다. 작가는 사랑하면서도 외로움에 힘겨워하는 인간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소설을 읽는 동안 문학이란 먼저, 작가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신의 선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작가를 따라 곧 독자도 그 속에서 외로움을 달래고, 숨기도 하다가 다시 힘을 얻어 세상으로 나아가는 땅과 하늘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계 같은 곳 말이다. <달을 먹다>를 읽는 동안 가을 하늘처럼 푸르고 높고 깊고 넓은 곳에서 난이가 키운 꽃차를 마시는 것 같아 좋았다. 지금은 봄과 여름도 지나고 가을 한 가운데 있으니 매화차가 아닌 노랗게 우러나오는 국화차 한 잔 마시고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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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살인 청춘문고 10
우세계 지음 / 디자인이음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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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히 지나치는 순간을 포착하여
작가만의 ‘일상의 살인‘이란 표현으로 담아냈다.
그래서 신선하다.
글쓰기란 낯설게 보기라는 것을 알려주는 책이다.
우리가 매일 반복하고 있는 일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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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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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간을 태우다>를 다 읽고 후배에게 읽어보라고 권해주었다. 유아인이 현재 찍고 있는 영화의 원작이라는 말과 함께.

단편이라 그런지 한 시간 동안 소설에 푹 빠져 읽어 내려간 후배는 내게 소설이 너무 어렵다고 말했다.


"소설이 너무 어려워요. 결국 그 사람의 헛간이 여자였나요?"

"글쎄?"


 무엇이라고 콕 집어 이야기 해 줄 수 없지만 나는 <헛간을 태우다>를  읽고나서 남자가 태우고 싶다는 헛간이 무엇인지 알것 같았다. 나만의 해석일 수 있겠지만,  지워버리고 싶은 순간, 하지 말았어야 했던 말과 행동들, 할 수만 있다면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서 없애버리고 싶은 모든 일들이 우리에게는 너무 많다. 그것이 태우고 싶은 헛간이 아니었을까. 너무나 가까이 있고, 깊이 숨겨져 있는 나만의 헛간들 말이다,


 '마지막 헛간은 건널목 옆에 있었다. 약 6킬로미터 지점이다. 정말이지 완전히 버려진 헛간이다. 선로를 향해 펩시콜라의 양철 간판이 걸려 있다. 건물은 - 그런 것을 건물이라고 불러야 할지 자신이 없지만 - 거의 무너져가고 있었다. 그것은 확실히 그가 말한 대로, 누군가 태워주기를 가만히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75.P)


 때로는 내 의지가 아닌 타인에 의해 불태워지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가끔은 누군가 내게 먼저 다가와 손 내밀어 주기를 바라게 된다. 누군가 나의 의지를 꺾고 내 안의 나를 꺼내주기를 바랄 때가 있다. 나만의어두운 헛간을 태워주기를 말이다.


 그건 그렇고 정말 그 남자의 헛간이 바로 그 여자였을까?

 그 여자는 어디로 갔을까?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려 생각해보니 섬뜩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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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루시 바턴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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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을 살아가다보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잠시 멈추어야 할 때가 있다. 시기만 다를 뿐이지 그 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그러면 그때서야 우리는 지난 삶을 돌아보기도 하고, 옆에서 함께 걸어준 사람들을 생각하게 된다. <내 이름은 루시 바턴> 또한 9주 가까이 병원에 입원하게 된 주인공이 병원에 누워있으면서 기억을 통해 소환해 낸 어린 시절과 가족 이야기로 진행된다.

 

이제는 꽤 지난 일이 되었지만, 내가 구 주 가까이 병원에 입원해야 했던 때가 있었다.’

 

  첫 문장 때문에 나는 이 책을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이 갖는 일종의 동질감과 힘내라고 격려해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나는 퇴원하면 보도를 걸을 때 나도 그렇게 걷는 사람 중 한 명이라는 사실에 감사하는 마음을 절대 잊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고, 여러 해 동안 정말로 잊지 않았다. ―― 병실 창문에서 내려다보았던 풍경을 떠올리며 내가 그 보도를 걷고 있음을 다행으로 여겼다.’ 10,p

 

  나도 골절 사고로 2주 동안 병원에 입원하고, 집에서 쉬는 동안 가을이 지나갔었다. 그때 처음으로 햇빛이 기우는 방향을 따라 책을 읽기도 했고, 가족과 친한 지인들은 물론이고, 생각지도 못했던 분들에게 위로와 힘을 얻었다. 그로 인해 나는 작은 일에도 고마워하고, 감동하며,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일에도 자연스러워졌다. 돌아보면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다. 그것을 인식하든 그렇지 않든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중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고, 그래서 더 잊을 수 없는 것은 유년시절 가족일 것이다. 주인공 또한 멀리서 자신을 위해 찾아온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지난날을 되돌아본다.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나, 비참했던 어린 시절이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 어제 일처럼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숨기고 싶은 아픈 기억과 가족들, 부끄럽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고, 앞으로도 변화 시킬 수 없는 내 모습이 과거와 오늘, 내일의 나에게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지금은 나는 그동안 살아온 내가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니까. 무엇보다 지난 날 아프고 힘들고 창피했던 모든 일들이 현재의 자신을 만들어낸 요소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된 지금, 지식을 쌓고 경제적으로 좋아졌지만, 여전히 헤매고 좌절하고, 외로움에 허우적거리거나 슬퍼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겠지만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만 있다면 우리는 각자의 삶의 꽃이 될 것이다. 빛깔과 향기, 모습은 다르겠지만 가슴속에서 싹을 틔워 손과 발 위에서 꽃을 피우는 아름다운 삶 말이다. 루시 바턴이 어린 시절 외로움과 가난 속을 걸어온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때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고,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해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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