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제일 어렵다 - 남에겐 친절하고 나에겐 불친절한 여자들을 위한 심리학
우르술라 누버 지음, 손희주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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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중학교 교사인 친구가 내게 반 학생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우울증에 걸린 것 같다고 말했었다. 우울증이란 말을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가슴이 서늘해지고 덜컥 겁이 났다. 그러나 친구는 웃으면서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앓고 있는 병인만큼 현대인답게 병원에 가서 상담도 받고 필요하면 약도 먹을 것이니 걱정 말라고 말했다. 친구의 마지막 말에 웃음이 나왔다. 현대인답게라니.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시간을 내서 자주 걸었던 남산 길 산책을 시작하자고 약속했다. 친구의 말을 조금 과장하면 현대인들은 감기를 앓듯 우울증에 걸린다. 그것은 건강한 사람이라면 쉽게 털어버리고 다시 일어나 평소 생활대로 살아갈 수 있지만, 면역력이 약하거나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 제때 약을 먹지 못하거나 치료를 받지 않으면 더 큰 병으로 번질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저자가 남자(물론 남자들의 우울증도 중요하다)보다 여자들의 우울증에 관심을 갖고 초점을 맞춘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전시대에 비해 수많은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게 되면서 그들이 짊어져야 하는 사회적 역할은 더욱 늘어나게 되었다. 가정과 출산, 육아를 담당했던 부모세대의 여성들과 달리 이제는 직장인으로서의 역할과 동료, 선배, 후배 그 밖에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까지도 짊어지게 된 것이다. 남성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일들이 여성들에게는 고민과 갈등 이후에 선택하고 감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많은 에너지가 소비된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크게 진보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구시대적 여성성을 당연시하거나 여성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하고, 성차별과 편견을 내세워 실력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런 가운데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여성들 스스로 가면을 쓰고, 자신을 지키고 살아남기 위해 무척 애를 쓰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바라고 원하는 것을 충족시키는 데만 몰두하지, 실제로 이것을 할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 흥미가 있는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근심과 피로 그리고 종종 몰려오는 좌절감은, 능력과 완벽함이라는 가면 뒤에 숨긴 채 말이다.

p.28

 

  그러다 보니 아무도 보지 않는 밤에 가면을 벗고, 잃어버린 모습과 힘들었던 관계,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우는 일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불행하게도 많은 여성들이 이것을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바로 그런 여성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 말을 건넨다. 울지만 말고 일어나 앉아 자신과의 대화를 시작하라고 말이다. 내 우울의 정체를 파악하고, 몸을 움직여 변신할 준비를 하며, 주위에 도움도 청하라고. 또한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친절하라고 가르쳐준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여성을 너무 한쪽으로 몰아가는 것 같아 저자의 의견에 공감하기 어려웠다. 소수의 사례를 일반화 시키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부정적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소수의 여성이 겪는 어려움은 언젠가 전체 여성의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회는 고리처럼 연결되어 있는 집합체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망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개인에게 벌어지는 일들은 곧 공동체의 문제로 번지게 되어 있다. 여성들이 행복하지 못한 사회에서는 남성들도 행복하게 살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이 먼저 스스로 행복해지고 가면을 벗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가면을 벗고 싶은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자. 우울 안에 갇힌 내가 벗어나기 위해 손을 내밀면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걸어줄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자. 그리고 그 첫 번째 친구가 바로 자기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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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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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 미리씨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

<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

 

  안녕하세요, 마스다 미리씨.

  저는 이제부터 당신에게 세 통의 편지를 보내게 될 것입니다. 지금 쓰는 편지는 <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이란 책을 읽고 도서관에서 쓰고 있답니다. 아마 두 번째 편지는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를 읽고 제 방 책상에 앉아 쓰게 될 것 같고요, 세 번째 편지는 <주말엔 숲으로>를 읽고 드디어 3년 만에 제주도에 둥지를 튼 친구 집에서 쓰게 될 것 같습니다.

  저는 당신을 크게 성공한 작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속에는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의 삶을 쫓아가는 평범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 동시대를 살아가며 같이 나이 들어갈 수 있는 좋은 작가를 만났다는 것이 반갑고 좋았습니다. 당신은 대부분의 일에 크게 흥미를 갖지 못하지만 일단 선택하고 도전합니다. 그리고 곧 흥미를 잃거나 귀찮아합니다. 그래도 가봅니다. 그곳에 당신이 찾고 있었던 무언가가 있을 지도 모르니까요. 저도 그런 적이 많이 있습니다.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무언가를 선택하지만, 막상 그 일을 시작하거나 특정 장소에 가기 전에 귀찮아지거나 괜히 선택한 건 아닌가 하는 후회를 할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616일부터 714일까지 5주 동안 남산도서관에서 열리는 남산 목요 인문학 세계 문학 고전읽기에 수강 신청을 한 일입니다. 매주 목요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두 시간 동안 강의를 들어야 하는데 친구들이 만나자고 보낸 문자 한 통에 금방 괜히 신청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시간이면 집에 가서 편히 쉬거나 지인들과 약속도 많이 잡히는 편인데, 책을 읽고 강의를 들으러 가다니 정말 내가 잠깐 어떻게 되었던 것 아닌가 하고 후회했었거든요. 그래도 저는 이번 주에 강의를 들으러 갔습니다. 제가 찾고 싶은 무언가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서요. 당신이 화려하다고 다 독버섯은 아닙니다.라는 말을 만난 것처럼 저는 그곳에서 햄릿은 복수극인가 복수지연극인가라는 질문을 만났습니다. 찾고 있는 무언가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기뻤습니다. 당신이 쌍둥이 바람꽃은 5월이 되면 싹 사라집니다.라는 마음 설레는 말을 들었던 것처럼 to be or not to be, 선택지가 있다는 것은 내면을 갖고 있다는 증거다.라는 말에 저도 설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많은 일에 흥미는 없지만 계속 가보기로 했습니다. 당신도 그럴 테지요.

 

  사람들은 보통 꿈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그러면 대부분 자신들이 하고 싶은 직업을 이야기합니다. 저도 제 꿈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제 꿈은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정말입니다. 물론 지금 당장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정말 그렇게 살고 싶었고, 언젠가 그 꿈이 이루어지기를 지금도 바랍니다. 딱히 남들보다 뛰어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나게 잘 하는 것도 없는 것 같기도 해서 무섭게 살지 않고 슬슬 살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스피치 학원에 다니다가 그만두고 했던 말들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 사람에게는 못하는 일이 있어도 되는 것 아닌가. 못하는 일과 하고 싶지 않은 일, 하려고 했다가 실패한 일, 그것도 역시 그 사람을 만드는 거죠. 잘하는 일만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에요.

                                                                                                                                                                                                                               p. 99~100

 

 그리고 이 말도 함께요.

 

-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자신을 스스로 지키세요.

p. 112

 저도 세상에 단 하나뿐인 제 자신을 지키고 싶습니다. 어떤 목적을 갖고 높이높이 올라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말입니다. 그리고 저는 특별히 뛰어난 재주가 있거나 잘 하는 것이 없어서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다보니 제가 세상에 대해 모르는 일, 가보지 못했던 곳, 겪어보지 못한 사건, 사고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계속 책을 읽으며 글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못하는 일이 있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올 봄에 한 작가 선생님으로부터 당신이 아직 등단하지 않았어도 꾸준히 작품을 쓰고 있다면 이미 작가이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무언가 찾고 있던 것을 만난 봄날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만약이란 나라에 살면서 이상적인 자신을 상상하고 노트에 그림을 그리고 구체적으로 그렸던 것처럼 저는 제 마음을 기도공책에 적고 또 적으면서 기도합니다. 그리고 조금씩 노력하고 변해가는 제 모습을 보면서 기뻐합니다. 조금씩 달라지는 제 모습을 기대합니다. 앞으로도 쭉~ 제 자신을 응원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도 응원하겠습니다. 평범하고 느긋한 작가생활에 박수를 보냅니다. 우리는 이미 자신만의 인생 속에서 창조적 삶을 살아가는 작가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겁니다. 평범한 우리의 느긋한 작가생활을 위해 아자아자 파이팅을 외쳐봅니다. 마스다 미리씨 <평범한 나의 작가생활>을 써주어서 고맙습니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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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30만부 기념 거울 에디션)
김지혜 지음 / 창비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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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하다선량은 착하고 어진 성품이란 뜻이다. 그에 비해 차별은 둘 이상의 대상을 각각 등급이나 수준 따위의 차이를 두어서 구별하고 나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어질고 착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등급이나 수준에 따라 나누고 구별한다는 것인데 이것이 성립될 수 있는 말일까? 그러나 역설적으로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 제목만큼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는 말은 없을 것이다.



나에게도 이러한 경험이 있다. 20대때 집 근처 복지관에서 꽃꽂이 강습을 받았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꽃을 손질하고 아름답게 꾸미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순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날은 졸업 시즌이라 장미꽃 스무 송이를 빨간 종이 상자에 담아 포장하는 패키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때 수업 내내 창밖에서 우리가 꽃을 다듬고 포장하는 것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수업이 끝나고 바쁜 일이 있어서 제일 먼저 밖으로 나왔는데 우리 수업을 지켜보던 그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휠체어를 탄 젊은 남성이었는데 나를 보자 다가오더니 꽃다발 상자를 볼 수 있냐고 물었다. 문제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나의 반응이었다. 나는 그 순간 꺄악!” 소리를 지르며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 나는 왜 놀라서 소리를 질렀을까? 지금 같았으면 오히려 그에게 꽃이 담긴 상자를 기꺼운 마음으로 내어줄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아마 그 사람의 눈빛보다 그가 타고 있는 커다란 휠체어와 성별이 내게 먼저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나의 행동에 대해 지금까지 후회하고 있다. 분명히 그렇게 소리를 지를 마음은 아니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차별을 받으면 받았지, 내가 누군가나 어떤 집단을 차별하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차별은 나쁜 것이고, 그것은 힘이 있고, 권력을 가진 집단이나 사람들이 하는 행동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현재 편안하게 누리고 있는 권리에 대하여 특권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너무나 당연해서 누구나 누리고 있으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게으르거나 무지하다고 함부로 판단했다.



장애인이 버스를 타면 시간이 더 걸리니까 돈을 더 많이 내야 하는 것 아닐까요? 26.p

라고 말한 학생과 생각이 조금 다르지만, 시간이 촉박할 때 마침 휠체어를 탄 사람이 버스를 탔던 적이 있었는데 시간을 끄는 상황에 짜증이 났던 일이 있었다. 나처럼 비장애인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게 된 것 이면에는 그들에게 유리한 속도를 외면하고 효율성을 기준으로 삼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혹 누군가는 차별하는 것이 왜 나쁘냐고 반감을 나타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민주주의 사회와 그 제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질문일 수 없다. 우리는 과거 귀족과 평민, 노비에 따른 신분 차별과 성별, 피부색 등으로 평가하는 야만적인 사회의 제도와 관념을 깨고, 현재 민주주의 사회로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받았던 혜택과 자유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평소에 책 읽기를 매우 좋아하는 데 집 가까이 걸어서 갈 수 있는 도서관이 많이 있고, 상호대차 서비스까지 받을 수 있어 편하게 독서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편리한 서비스가 대한민국 전 지역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울과 경기도만 해도 그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전체적으로 범주화하고, 단순화시키면 한 지역이나 도시에 몰려있는 서비스가 숫자상으로는 전체가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판단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좀 더 객관적이고 면밀하게 이 사회를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차별은 어떻게 시작되는 것일까? 인간은 예전부터 기준을 정해놓고 타인들을 구분하거나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신분에 따라 옷의 색깔과 길이, 장식의 제약을 두고 어기는 사람에게는 큰 불이익을 주었으며, 글을 아는 사람들만이 수많은 정보와 기회를 선점했다. 그것이 점점 쌓이다 보면 나와 네가 다르다는 인식이 저절로 싹틀 수밖에 없다. 과거 남아공에서는 굳이 백인과 흑인 아이가 같이 노는 것을 강제로 억누르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흑인 구역에는 하수도 시설과 화장실을 만들어주지 않았다. 흑인 구역 아이들은 지저분하고 역한 냄새가 났을 것이다. 백인 아이들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아서 그들과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도 이런 차별적인 행동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도 임대와 일반아파트를 구분하고,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빈부와 성적으로 나누는 차별은 더욱 견고해지고, 그대로 발현되고 있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내 안에도 차별적인 시선과 가치관이 나도 모르는 채 내재화 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생각과 행동으로 수없이 차별적 행동을 했었던 것을 인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상황이 역전되고 자리가 바뀌게 되면 그때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배려와 당연히 행해져야 할 일들이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나는 산에서 넘어져 발목에 골절 사고를 당하여 수술한 경험이 있다. 수술 후 다시 예전 상태로 돌아오기까지 6개월 정도 걸렸는데 목발을 하고 밖에 나갔다가 작은 턱도 넘지 못하여 힘들어했던 일이 생생하다. 우리 사회가 소수자와 약자에 대하여 배려하지 않았다는 것을 몸을 느낄 수 있었다.



화장실은 그 사회의 평등 수준을 가늠하게 하는 꽤 훌륭한 척도다.’ 172.p

나는 평소에 우리나라 공공화장실의 시설과 청결 상태를 높이 평가했었다. 이것 또한 다수가 사용하는 화장실에 국한된 평가라는 것을 깨닫고 나의 시선의 한계를 느꼈다. 동성애자나 게이, 레즈비언 등을 나는 한 명의 존재자로 바라보았는가. 아마 생각에서 아예 배제하고 남자와 여자, 어린아이와 성인으로만 구분하였던 것같다. 그들도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권리를 누릴 수 있는 높은 인식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람이 화장실을 이용하는 일에 있어서 불편과 수치심을 느낀다면 그것은 개조하고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그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이자 당연한 절차이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으나 나를 포함하여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 아니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에 대하여 깊이 이해하며, 객관적 시선을 유지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의 가치관과 타인을 대하는 태도, 사회를 향했던 나의 시선 등을 다시 되돌아볼 수 있었다. 저자의 연구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적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 같아 놀랐다.



차별에 민감하거나 둔감할 수 있는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며, 너무나도 익숙한 어떤 발연, 행동, 제도가 차별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가? 내가 보지 못한 차별을 누군가가 지적했을 때 방어하고 부인하기보다 겸허한 마음으로 경청하고 성찰할 수 있는가?’ 189.p

다양하게 제시된 사례와 질문 앞에서 나는 잠시 책 읽기를 멈추고 고민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도 차분하게 사유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 또한 대한민국의 기독교인으로서 차별금지법에 대하여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무례하게 굴었던 일부 보수 기독교계로 인해 상처받은 소수자들에게 사과하고 싶었다. 또 짧은 뉴스 기사나 SNS를 통해 단편적으로 접했던 사회 문제를 긴 호흡으로 읽고 들여다보며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기도 했다.



앞으로 내가 지녀야 할 태도는 어떤 것인가? 그리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에 대하여 나는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인지 여전히 과제와 고민이 가득하다. 앞으로 모든 분야에서 사회적 담론과 상황에 따른 깊은 사유와 공부, 연대가 필요할 것이다. 물론 고민하고 목소리를 높인다고 해도 한국 사회가 빠르게 변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함께 고민하고 목소리를 내며 부딪치면서 해법을 찾아 나갈 것이라 믿는다. 우리는 언제나 차별하는 자에서 차별당하는 자로 자리를 바꾸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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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25-02-10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미나 벌레나 지렁이를 보며 징그럽다고 소리치는 사람이 많고, 파리나 모기를 보며 싫다고 여겨 바로 때려죽이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거미와 벌레와 지렁이가 없으면, 사람은 밥을 아예 못 먹습니다. 파리와 모기가 없으면, 사람은 쓰레기밭에 파묻혀 죽습니다. 다름(차이·차별)을 자꾸 작은이(소수자) 쪽으로만 몰아가려는 ‘진보’가 넘치는데, 여태 어느 ‘진보’도 ‘시골에서 자가용 없이 군내버스 타는 작은이 권리’를 말한 적이 없습니다. 어느 ‘진보’도 ‘시골에서 농약·농기계·비료·비닐 없이 논밭을 돌보는 작은이 인권’을 말한 적마저 없어요. 예부터 ‘깍두기’라고 해서 모든 쪽에 어울리며 같이 노는 살림살이로 ‘다름’을 품었습니다. 틀에 박는 ‘인권·태도’가 아닌, 너랑 내가 다르기에 다른 만큼 새롭게 어울리는 사랑을 바라볼 때라야 모든 실마리를 푼다고 느낍니다.

hope&joy 2025-02-13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바라보지 못한 곳에 차별이 매우 많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고맙습니다.
 
내일의 연인들
정영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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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 가던 11월 늦은 밤, 첫눈이 펑펑 내렸다. 눈은 습기를 머금은 채 3일 내내 너무나 많이 내렸고, 애꿎은 나뭇가지를 뚝뚝 부러뜨리기도 했다. 나는 갑상선에 이상이 생겨 입원한 동생과 함께 병원에서 4박 5일을 보냈다. 병원에서의 하루는 단조롭고 규칙적이어서 가지고 있던 정영수 작가의 <<내일의 연인들>>을 꾸준히 다 읽을 수 있었다. 눈 내리던 첫째 날은 일찍 병실 불을 끈 후 복도로 나가 자리를 잡고 앉아 <우리들>과 <내일의 연인들>을 읽었고, 다음 날 수술 직후 약 기운에 취해 깊이 잠든 동생 옆에서 <더 인간적인 말>과 <무사하고 안녕한 현대에서의 삶>, <기적의 시대>를 읽었다. 동생은 수술 후 바로 거동이 자유로웠기에 보호자로서 해줄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 동생에게 무언가를 해주기보다는 함께 있어 주는 것이 중요했다. 옆에 있으면서 나는 나대로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필요했고, 그것이 소설을 읽는 일이었다. 나에게는 모처럼 휴식처럼 찾아온 조용한 시간이기도 했다.    

  

 무언가를 특별히 해주지 않아도 옆에 함께 있어 주는 것은 서로에게 위로와 힘을 준다. 특히 타인과 타인이 만나서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은 연인이라면 그 애틋함은 더할 것이다. 점과 점이 만나서 선이 되고, 선이 된 두 사람은 자기들만의 독특한 도형을 만들어 나간다. 비슷해 보이면서도 각기 다른 모습들, 그렇지만 또 뻔한 우리 사랑의 모습들. 이런 설레면서도 뻔한 사랑 이야기에 계속 마음이 가는 것은 모두의 연애가 그 안에서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사랑과 연애의 담론이자 다양한 연인들의 삶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데, 거창하기보다 오히려 궁상맞고 초라한 군상들의 모습이 밉지 않게 다가온다. 아니 안타깝고 안쓰럽다.     


 우리 매년 여름마다 여기 올까?”

 우리가 단 한 번도 이야기해 본 적 없는 다음 여름에 대해 이야기할 만큼 현수는 그곳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우리가 단 한 번도 이야기해 본 적 없는 다음의 다음또 다음의 여름에 대해 이야기할 만큼 현수는그리고 우리는 그날의 분위기가 좋았던 것이다그 이후 잠시 동안결코 길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분명하게 정적이 흘렀다매해 여름이란이런 아름다운 계절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이 지속될 여름이란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아득하고 눈부신 말이었다

<우리들>, 35.p     


 깨어질 사랑을 붙잡고 영원을 이야기하는 생명체가 인간 말고 또 있을까.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사랑은 깨지고 공허함만 남겠지만, 누군가는 슬픈 소망을 갖게 될 것이다. 혼자 남은 외로움 속에서도 지나간 나의 사랑은 어떠했는지 복기하고 기록하면서 사랑했던 나를 존재하게 할 테니까. 그러니 너무 아파하지도 후회하지도 말고, 상처를 준 이들에게는 조금 미안해하면서 살아가기를.      

  

 내가 한때 머물렀던 남현동 산자락의 조용하고 아늑한 빌라의 소유주는 선애 누나와 그녀의 남편으로두 사람은 그곳에서 오 년 정도 결혼생활을 한 뒤 파경을 맞이했다

 - <내일의 연인들> 45.p     


 ‘내가 한때 머물렀던 남현동 산자락으로…’로 시작하는 <내일의 연인들>은 그러니까 한때 누군가의 사랑이 시작되고 끝난 곳에서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연인이 살을 비비고, “넌 정말 대단해.”라는 말로 서로를 구원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그 공간을 통해 사랑의 기대와 소멸을 지켜보며 자신의 존재를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지인의 조카가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구하면서 엄청난 부동산 시세를 알게 되었고, 청년주택이나 신혼부부 임대주택 등을 알아보다가 어느새 흐지부지되더니 연인과도 헤어졌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렇다고 연애나 결혼을 포기한 건 아니지만, 마음 놓고 두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연인들에게는 얼마나 매혹적이고 필요한 것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공간에서도 연인은, 부부는 헤어진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정말 어쩌다 헤어졌을까?”     

 창가에서 들여오는 풀벌레 소리가 점점 아득해졌고나는 문득 끝나지 않을 시간에 갇혀서 텅 빈 공간을 떠다니고 있는 사람이 된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왠지 그 밤은 영영 지나가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그것은 내게 앞을 다가오거나 다가오지 않을 무수히 많은 행복한 시간들과 외로운 시간들의 징후처럼 느껴졌다나는 비스듬히 누운 채 아직 잠들지 않았을 지원의 윤곽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었다우리는 어쩌면 그들의 유령들이 아닐까생각하면서.

 - <내일의 연인들> 72.p     


 그래도 세상 모든 연인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시간이 그들을 잡아먹기 전에. 사랑이 변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하겠지만, 나는 사랑이 변한다기보다 시간을 통과한 연인이 변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세상에 영원한 것이 있을까. 그래도 많이 사랑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지나간 나의 청춘 한때도 그러했었을 것이며, 앞으로의 삶 또한 별반 다르지 않겠지만, 우리가 사랑했던 순간만은 황홀하고 아름다웠을 테니까. 그 뒤 그리움이나 혹은 후회와 상처가 남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또 어떤가. 인간은 사랑하고 아파하며 살아가는 존재인 것을. 노래 가사처럼 사랑을 많이 한 사람이나 한 번도 사랑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이나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는 한때를 함께 보냈던 존재에 대하여 미소 짓는 순간이 있을 것이며, 또 이미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할 테니. 그러니 지금 사랑할 수 있을 때, 마음껏 사랑하길. 그렇지 않다면 사랑하기를 꿈꾸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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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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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사소한 것이 있을까? 사소한 게 있다면 어떤 것이 사소한 것일까? 사소한 일들은 외면하고 무시하면서 살아가도 되는 것일까? 돌이켜보면 내가 눈에 띄는 성장을 이루고 무언가를 쌓아 올리면서 결과물을 만들어 내며 뿌듯함을 느끼게 해주었던 일들은 모두 각각의 사소한 일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들이었다. 그리고 나 혼자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치열했던 20~30대 좀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일을 마치고 학원으로 달려가 외국어와 다양한 기술 등을 배우려고 노력했었다. 그때의 짧은 시간과 아무것도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하루가 쌓여서 지금의 내가 되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주인공 펄롱또한 사소해 보이는 일상에서 가정을 이루며, 아내와 힘을 합쳐 다섯 명의 딸을 키우고 이만하면 행복한 삶이라고 자기 자신에게 말한다. 그는 아버지 없이 가사 일꾼으로 일하던 열여섯 살의 어린 엄마에게 태어났지만, 개신교도로 큰집에 혼자 살면서 일꾼 네드와 펄롱의 엄마, 그리고 펄롱에게 따뜻한 집과 음식, 일 등을 제공한 미시즈 윌슨의 도움으로 자기의 가정을 꾸리고 지켜나갈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의 어린 시절은 평범한 아이들보다 못한 가난하고 힘겨운 일, 무시 당하는 삶의 연속이었지만, 미시즈 윌슨의 도움으로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어린 펄롱은 누구나 어휘를 갖춰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 미시즈 윌슨 덕분에 맞춤법 대회에서 1등을 하였고, 자기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라고 칭찬해준 그녀로 인해 마음과 정신이 성장할 수 있었다. 사람이 태어나 오롯이 존재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수많은 사람에게 도움과 가르침을 받게 된다. 누구나 좋은 어른을 만날 수 있어야 하며 그들로 인해 어려움을 해결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신도 도움을 베풀 수 있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 없이 태어난 펄롱이 교육을 받고 일을 하며, 가정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어른들이 옆에서 함께 해주었기 때문이다.


 소설은 볼품없고 가난한 펄롱이 성장하여 살아가는 일상의 소소한 모습을 물 흐르듯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는 일이 고되지만, 할 일이 없어 새벽부터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자들의 무리에 들지 않는 것에 감사한다. 그는 집안일은 물론 다섯 명의 딸들을 좋은 학교에 보내고자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나가는 부지런하고 다정한 아내가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자기의 몫을 다하며 건강하게 자라나는 딸들을 보면 저 애들이 과연 나의 자녀인지 의심이 갈 때도 있다. 힘들었던 지난 시간을 지나 이제 행복한 날만 기대하며 살아가도 될 것 같은 자신인데 마음은 알 수 없는 것으로 헛헛하고 무력하다. 과연 이런 것을 인생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 이게 다 무엇 때문일까? 펄롱은 생각했다. 일 그리고 끝없는 걱정. …… 똑같은 것을 또다시 마주하는 것. 아무것도 달라지지도 바뀌지도 새로워지지도 않는 걸까? …… 뭐가 중요한 걸까. ……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 같지도 뭔가 발전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때로 이 나날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지을 수가 없었다.

 

…… 똑같은 일이 날이면 날마다 여름 내내 반복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44.p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그리고 무엇으로 살아가는 것일까? 다른 사람들의 삶이 어떠하든 약간의 심리적 동요는 생길 수 있으나 자신과 자기 울타리 안의 사람들이 평안하게 잘 살아간다면 만족과 기쁨을 느끼며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렇게 살아갈 수 없는 것 같다. 어쩌면 나 아닌 타인을 긍휼히 여기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창조 될 때부터 인간 유전자 안에 심어져 있는 것처럼. 펄롱 또한 실체를 맞닥뜨리기 전까지 자신을 둘러싸고 엄습해 오는 불안과 무기력한 마음을 파악하기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 선한 목자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갔다가 방치된 채 노동에 시달리는 소녀들의 모습을 목격하게 되고, 그것을 방관했다는 것을 깨닫고 괴로워한다. 그리고 다시 아기를 빼앗기고 차가운 마룻바닥에서 울며 고통스러워하는 소녀를 마주하게 되고, 자신의 아기를 찾아 달라며 펄롱에게 도움을 구하는 소녀의 말에 괴로워한다. 가난하고 힘없는 어린 소녀의 아픔은 이제 그에게 넘어왔다. 소녀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 잘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자신에게 돌아올 수많은 불이익을 감수하며 그 소녀를 도와줄 것인가 선택해야 한다. 물론 소녀를 외면했다고 해서 비난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소녀보다는 조금 나은 환경에 있지만, 펄롱 또한 녹녹지 않은 삶이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는 왜 소녀를 도와주기 위해 결정을 내리고 자기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때까지 힘겨워하고 스스로 수치심까지 느껴야만 했을까? 나는 외면하고 돌아서지도,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나서며 도움을 주지 못하면서도 그저 함께 아파하고 애통해하는 모습을 통해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 마음속에는 사소해 보이지만 타인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 그것이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을 사랑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혼자 서 있을 수 없다. 존재와 존재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신경들로 이어져 있나 보다. 그래서 내가 보고 마주친 사람들이 고통에 처해 있는데 그를 외면하면 나도 아프고 괴로울 수밖에 없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마음을 내어 줄 수 없지만, 내 옆에, 내 눈에 들어온 사람에게 마음 한쪽과 손을 내밀 수 있는 것, 그것이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세상을 지탱하고 계속 살아가게 만들어 주는 힘이 아닐까. 내 옆에 있었고 현재와 앞으로도 존재해줄 그들에게 감사하며, 나 또한 누군가의 천사라는 것을 기억해야겠다. 천사가 뭐 대단한 사람인가. 따뜻한 마음과 손을 내밀어주면 그가 바로 천사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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