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제일 어렵다 - 남에겐 친절하고 나에겐 불친절한 여자들을 위한 심리학
우르술라 누버 지음, 손희주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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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중학교 교사인 친구가 내게 반 학생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우울증에 걸린 것 같다고 말했었다. 우울증이란 말을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가슴이 서늘해지고 덜컥 겁이 났다. 그러나 친구는 웃으면서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앓고 있는 병인만큼 현대인답게 병원에 가서 상담도 받고 필요하면 약도 먹을 것이니 걱정 말라고 말했다. 친구의 마지막 말에 웃음이 나왔다. 현대인답게라니.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시간을 내서 자주 걸었던 남산 길 산책을 시작하자고 약속했다. 친구의 말을 조금 과장하면 현대인들은 감기를 앓듯 우울증에 걸린다. 그것은 건강한 사람이라면 쉽게 털어버리고 다시 일어나 평소 생활대로 살아갈 수 있지만, 면역력이 약하거나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 제때 약을 먹지 못하거나 치료를 받지 않으면 더 큰 병으로 번질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저자가 남자(물론 남자들의 우울증도 중요하다)보다 여자들의 우울증에 관심을 갖고 초점을 맞춘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전시대에 비해 수많은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게 되면서 그들이 짊어져야 하는 사회적 역할은 더욱 늘어나게 되었다. 가정과 출산, 육아를 담당했던 부모세대의 여성들과 달리 이제는 직장인으로서의 역할과 동료, 선배, 후배 그 밖에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까지도 짊어지게 된 것이다. 남성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일들이 여성들에게는 고민과 갈등 이후에 선택하고 감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많은 에너지가 소비된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크게 진보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구시대적 여성성을 당연시하거나 여성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하고, 성차별과 편견을 내세워 실력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런 가운데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여성들 스스로 가면을 쓰고, 자신을 지키고 살아남기 위해 무척 애를 쓰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바라고 원하는 것을 충족시키는 데만 몰두하지, 실제로 이것을 할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 흥미가 있는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근심과 피로 그리고 종종 몰려오는 좌절감은, 능력과 완벽함이라는 가면 뒤에 숨긴 채 말이다.

p.28

 

  그러다 보니 아무도 보지 않는 밤에 가면을 벗고, 잃어버린 모습과 힘들었던 관계,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우는 일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불행하게도 많은 여성들이 이것을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바로 그런 여성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 말을 건넨다. 울지만 말고 일어나 앉아 자신과의 대화를 시작하라고 말이다. 내 우울의 정체를 파악하고, 몸을 움직여 변신할 준비를 하며, 주위에 도움도 청하라고. 또한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친절하라고 가르쳐준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여성을 너무 한쪽으로 몰아가는 것 같아 저자의 의견에 공감하기 어려웠다. 소수의 사례를 일반화 시키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부정적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소수의 여성이 겪는 어려움은 언젠가 전체 여성의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회는 고리처럼 연결되어 있는 집합체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망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개인에게 벌어지는 일들은 곧 공동체의 문제로 번지게 되어 있다. 여성들이 행복하지 못한 사회에서는 남성들도 행복하게 살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이 먼저 스스로 행복해지고 가면을 벗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가면을 벗고 싶은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자. 우울 안에 갇힌 내가 벗어나기 위해 손을 내밀면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걸어줄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자. 그리고 그 첫 번째 친구가 바로 자기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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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 마스다 미리 여자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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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 미리씨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

<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

 

  안녕하세요, 마스다 미리씨.

  저는 이제부터 당신에게 세 통의 편지를 보내게 될 것입니다. 지금 쓰는 편지는 <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이란 책을 읽고 도서관에서 쓰고 있답니다. 아마 두 번째 편지는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를 읽고 제 방 책상에 앉아 쓰게 될 것 같고요, 세 번째 편지는 <주말엔 숲으로>를 읽고 드디어 3년 만에 제주도에 둥지를 튼 친구 집에서 쓰게 될 것 같습니다.

  저는 당신을 크게 성공한 작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속에는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의 삶을 쫓아가는 평범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 동시대를 살아가며 같이 나이 들어갈 수 있는 좋은 작가를 만났다는 것이 반갑고 좋았습니다. 당신은 대부분의 일에 크게 흥미를 갖지 못하지만 일단 선택하고 도전합니다. 그리고 곧 흥미를 잃거나 귀찮아합니다. 그래도 가봅니다. 그곳에 당신이 찾고 있었던 무언가가 있을 지도 모르니까요. 저도 그런 적이 많이 있습니다.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무언가를 선택하지만, 막상 그 일을 시작하거나 특정 장소에 가기 전에 귀찮아지거나 괜히 선택한 건 아닌가 하는 후회를 할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616일부터 714일까지 5주 동안 남산도서관에서 열리는 남산 목요 인문학 세계 문학 고전읽기에 수강 신청을 한 일입니다. 매주 목요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두 시간 동안 강의를 들어야 하는데 친구들이 만나자고 보낸 문자 한 통에 금방 괜히 신청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시간이면 집에 가서 편히 쉬거나 지인들과 약속도 많이 잡히는 편인데, 책을 읽고 강의를 들으러 가다니 정말 내가 잠깐 어떻게 되었던 것 아닌가 하고 후회했었거든요. 그래도 저는 이번 주에 강의를 들으러 갔습니다. 제가 찾고 싶은 무언가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서요. 당신이 화려하다고 다 독버섯은 아닙니다.라는 말을 만난 것처럼 저는 그곳에서 햄릿은 복수극인가 복수지연극인가라는 질문을 만났습니다. 찾고 있는 무언가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기뻤습니다. 당신이 쌍둥이 바람꽃은 5월이 되면 싹 사라집니다.라는 마음 설레는 말을 들었던 것처럼 to be or not to be, 선택지가 있다는 것은 내면을 갖고 있다는 증거다.라는 말에 저도 설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많은 일에 흥미는 없지만 계속 가보기로 했습니다. 당신도 그럴 테지요.

 

  사람들은 보통 꿈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그러면 대부분 자신들이 하고 싶은 직업을 이야기합니다. 저도 제 꿈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제 꿈은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정말입니다. 물론 지금 당장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정말 그렇게 살고 싶었고, 언젠가 그 꿈이 이루어지기를 지금도 바랍니다. 딱히 남들보다 뛰어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나게 잘 하는 것도 없는 것 같기도 해서 무섭게 살지 않고 슬슬 살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스피치 학원에 다니다가 그만두고 했던 말들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 사람에게는 못하는 일이 있어도 되는 것 아닌가. 못하는 일과 하고 싶지 않은 일, 하려고 했다가 실패한 일, 그것도 역시 그 사람을 만드는 거죠. 잘하는 일만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에요.

                                                                                                                                                                                                                               p. 99~100

 

 그리고 이 말도 함께요.

 

-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자신을 스스로 지키세요.

p. 112

 저도 세상에 단 하나뿐인 제 자신을 지키고 싶습니다. 어떤 목적을 갖고 높이높이 올라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말입니다. 그리고 저는 특별히 뛰어난 재주가 있거나 잘 하는 것이 없어서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다보니 제가 세상에 대해 모르는 일, 가보지 못했던 곳, 겪어보지 못한 사건, 사고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계속 책을 읽으며 글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못하는 일이 있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올 봄에 한 작가 선생님으로부터 당신이 아직 등단하지 않았어도 꾸준히 작품을 쓰고 있다면 이미 작가이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무언가 찾고 있던 것을 만난 봄날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만약이란 나라에 살면서 이상적인 자신을 상상하고 노트에 그림을 그리고 구체적으로 그렸던 것처럼 저는 제 마음을 기도공책에 적고 또 적으면서 기도합니다. 그리고 조금씩 노력하고 변해가는 제 모습을 보면서 기뻐합니다. 조금씩 달라지는 제 모습을 기대합니다. 앞으로도 쭉~ 제 자신을 응원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도 응원하겠습니다. 평범하고 느긋한 작가생활에 박수를 보냅니다. 우리는 이미 자신만의 인생 속에서 창조적 삶을 살아가는 작가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겁니다. 평범한 우리의 느긋한 작가생활을 위해 아자아자 파이팅을 외쳐봅니다. 마스다 미리씨 <평범한 나의 작가생활>을 써주어서 고맙습니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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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반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1
김은국 지음, 도정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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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에 드는 시집은 여러 번 반복해서 읽을 수 있지만, 소설은 여간해서 반복하여 읽기가 힘들다. 대신 기억에 남는 장면과 문장, 이야기가 주는 매력과 위로로 작품을 기억한다. 그런데 김은국의 <<순교자>>는 장편소설이지만 예외였다. 이 소설은 대학시절 갓 입학한 신입생인 나와 친구들에게 교수님이 내준 과제였다. 지금은 절판된 을유 출판사에 나온 회색 바탕의 <순교자>, 소설을 읽고 그 내용과 감상을 오픈 북 테스트로 중간고사를 보았었다. 당시 스무 살도 채 안 된 나는 시험 보기 직전까지 조바심 내며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내 답안지에는 신과 성도들을 배신한 12명의 목사들은 순교자의 영광을 얻고, 끝까지 자신의 신앙을 지킨 두 명의 목사들은 배신자로 낙인찍힌 채 살아가는 기독교 소설이다가 주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 시험을 끝내고 나오면서 무언가에 끌린 듯 다시 시간을 갖고 깊이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책보다 재미있고 짜릿했던 대학 생활에 그 호기심은 금세 잊혀 졌었다.

 

  그러다 20년도 훌쩍 넘어버린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새롭게 디자인 되어 나온 세계문학전집 중에서 <<순교자>>를 만났다. 한국 작가가 쓴 글이 세계문학 속에 들어있다는 것과 김은국이란 작가의 이름이 아주 옛날 기억을 소환했고, 2019년 가을, 책상에 앉아 시험을 공부를 하듯 탐독한 <<순교자>>는 내가 기억하는 소설과 전혀 다른 작품이었다. 그 시절 나는 무엇을 읽었던 걸까? 세월이 흐르면서 사유의 능력은 조금씩 변하고 성숙해졌다. 그동안 꾸준한 독서가 이해와 감동의 폭을 넓혀 주기도 했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낮아진 마음과 독서에 대한 애정이 읽게 되는 작품들과 그것을 쓴 작가에게 존경심을 갖게 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기독교 소설이란 좁은 카테고리 속에 가둘 수 없었다. 기독교와 전쟁을 의지하고 있지만 오히려 인간에 의한, 인간에 대한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혹은 신을 가진 인간과 이성을 의지하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까. 또한 진실을 밝히려는 자와 감추려는 자에 대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쪽으로 선택하고 해석하든 전쟁이란 고통의 역사 속에서 신음하고 고통당하나 쉽게 전멸하지 않는 인간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대학에서 인류문명사를 강의했던 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육군 대위가 되어 평양으로 파견된다. 그가 평양에 도착하여 처음 본 광경은 전쟁으로 파괴되고 부서진 장로교 평양 중앙교회였다. ‘와 대학에서 함께 근무한 박 중위의 아버지가 시무했던 교회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기독교 역사 속에서 평양은 한때 동양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리던 곳이었다. 뜨겁게 타오르는 신앙의 열기는 북쪽 사람들의 마음을 새롭게 달구었고, 평양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지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그런 땅에 아이러니하게도 공산정권이 들어섰고 식민지시대와 견주어도 나을 것 없는 심한 박해를 받게 된다. 그런 평양에서 는 장 대령의 명령으로 공산군에게 순교당한 12명의 목사들에 대하여 자세히 조사한 뒤 마무리 짓는 일을 맡게 된다

 

  순교당한 12명의 목사들과 살아서 돌아온 2, 바로 신 목사한 목사이다. 그 중 순교당한 박 목사를 아버지처럼 믿고 따랐던 젊은 한 목사는 무엇 때문인지 정신적 충격을 입고 폐허가 된 교회에서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알 수 없는 기도를 하다가 사라지곤 한다. 그런 한 목사를 마주 했을 때, 이 대위는 북진 초기에 후퇴하던 공산주의자들의 만행을 목격하고, 그 현장에서 경험했던 어떤 분노를 떠올리며 힘겨워한다. 시체와 배설물 속에서 끌어낸 한 사람, 꺼져가는 목숨을 부여잡고 힘겹게 의식을 잃어가는 그에게 수없이 많은 플래시가 터지는 순간이었다.

 

그때 나는 어떤 이상하고도 강렬한 부끄러움에 휩싸였다. 나는 카메라 뒤의 무관심하고 차가운 눈초리들로부터 한 인간이 지닌 고난의 말없는 위엄을 내 온몸으로 지켜주기라도 할 듯 이, 남자의 몸 위로 상체를 구부리고 연옥과도 같은 그의 납빛 눈 속을 들여다보았다. 36.p

 

  인간이란 어떤 존재일까? 비참하게 죽어가는 같은 종족을 향해 세상 어느 생물이 카메라를 누르며 보도를 하고 기록을 남기려고 혈안이 될 수 있는지,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냉정하게 생각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을 향해 이 대위는 부끄러움을 느꼈고, 울부짖으며 카메라를 부수었다. 이 대위가 느낀 부끄러움은 애도 받지 못한 인간에 대한, 나아가 생명에 대한 존엄함이 무시당하는데서 오는 수치심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나또한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나 존엄함을 지니고 있는지, 슬픔과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부조리한 세상에 분노하기보다 그런 상황에 처하지 않기 위해 애써 외면하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아마 그 누구도 이런 의구심 앞에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적당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으로 세상을 움직이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의 모습이 신의 침묵을 가져왔는지 아니면 내려진 신의 대답을 못 듣게 한 것은 아닌지 짐작해 볼 뿐이다. 그때와 비슷한 부끄러움을 느낀 이 대위는 비틀거리다 쓰러진 한 목사를 부축하여 돌아가는 신 목사에게 질문한다.

 

목사님의 신그는 자기 백성들이 당하고 있는 이 고난을 알고 있을까요?” 37.p

 

  신을 섬기는 목사는 어떤 답을 할 수 있을까?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대답할 수가 없다. 목사 또한 신이 가르쳐주지 않는 이상 알 수가 없다. 고난은 고스란히 인간의 몫이고 그 순간 할 수 있는 일이란 고통 중에서 견디는 것뿐이니까. 어쩌면 고난 속에서 답을 찾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박해와 억압에 눌려있던 성도들은 광적인 모습으로 순교한 12명의 목사들을 추앙하고, 비겁하게 살아남은 두 사람을 죄인으로 몰아간다. 무언가 비밀을 감춘 채 동료 목사들을 잃고, 정신이 나간 젊은 후배를 돌보며 간신히 버티고 있는 신 목사 또한 고난에 대해 대답해 줄 수가 없다. 그는 자신이 당하고 있는 고통을 호소하기보다 모든 것을 떠안고 죄인이라 고백한다. 그런 신 목사에게 진실을 알려달라고 이 대위는 끈질기게 매달린다. 진실이란 과연 무엇일까? 장 대령 또한 굳이 진실을 밝힐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전쟁이 나기 전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오게 된 고 군목 또한 집요하게 진실을 캐고 다니는 이 대위에게 그 젊음과 열정이 부럽다고 말 할 뿐 그가 알고자 하는 진실에 대해서는 답해 주지 않는다.

 

…… 진실을 타협해버릴 순 없어. 진실은 숨겨둘 수 없는 거야. 어쩌면 이렇게 뼈아픈 진실이 교인들에게 찾아온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인지도 몰라.”

……

대령님, 진실은 그것이 그저 진실이기 때문에 밝혀지고 발표되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진실은 묻어두어도 여전히 진실이야. 그걸 꼭 까발리고 떠들어야 하나?” 152~153.p

 

  진실을 감추고 죄인의 길로 들어가 기꺼이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려고 하는 신 목사와 열 두 명의 순교자들을 빨갱이들에 대한 정신적 승리의 상징으로 둔갑시키려고 하는 장 대령이나 이 대위에게는 진실을 왜곡하는 사람들이다. 과연 진실은 밝혀지고 발표되어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그 진실의 무게를 견디고 이겨낼 수 있는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반면에 진실은 묻어 두어도 여전히 진실이기에 까발리고 떠들어 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면 거짓에 짓눌려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영원히 외면하며 살 수 있을지 묻고 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이 대위는 군인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인류문명사를 가르치는 교수로서 역사 속 사건들을 연구하며 인간의 고통에 대해 추상적으로 해석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이론을 세워 나갔을 것이다. 열 네 명의 목사들 또한 신에 대한 믿음을 지키며 자신들의 신앙을 살아가며 그들이 밝히거나 숨겨야 할 진실은 또 다른 곳에서 맞닥뜨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 속에서 만약이란 것은 가정할 수 없다고 한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있고 그것을 맞이하는 인간은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고통은 잔인하지만 인간이 인간일수 있는 이유를 알게 해주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애써 감추려고 했던 진실은 언젠가 드러나게 되어 있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일 수도 있고, 아니면 아주 우연한 기회에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순식간에 튀어 나올 수도 있다. 상황이 수없이 바뀌면서 각 진영에 유리한 쪽으로 왜곡될 수 있지만, 해석하는 데 차이가 있을 뿐이지 벌어진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평양을 점령했던 국군이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상황은 또 바뀌게 된다. 국군은 서울을 버리고 피란을 갔던 것처럼 또 평양을 떠난다. 수많은 사람들은 그 뒤를 따라 고향을 버리고 살고자 남으로 내려온다. 살아온 터전을 버리고 기약할 수 없는 곳으로 떠나가는 동안 사람들은 또 많은 고난을 겪게 될 것이다. 굶주림과 추위에 떨다가 죽어갈 수 도 있을 것이고, 인간이 아닌 짐승처럼 본능만 남은 사람들에게 여자들은 강간을 당하며 공포와 수치심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 누구도 전쟁을 원하지 않았지만 한 번 전쟁 속에 내버려진 인간은 싸우고 견디며 살 수 밖에 없다. 결국 고통은 인간의 몫이지만 그것을 통해 인간은 자신들의 존재를 재확인하게 된다.

 

  어쩌면 인간이 살고 있는 곳곳이 전쟁터일지 모른다. 물리적으로 일어나는 전쟁이 아닐지라도 살고 버티기 위해 매일을 바동거리며 살아야 하는 삶에 진정한 평화가 자리하기란 쉽지 않을 테니까. 마음속에서도 수많은 갈등과 잔인함이 도사리고 싸우기를 반복한다. 그럼에도 인간의 삶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삶의 한순간, 반짝거리며 빛나게 해 주는 환희의 순간을 경험하기 위해서일지 모른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알 수 없으나 한번쯤 주어진 인생 속에 느끼고 나서야 떠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는 그것을 절망에 대한 희망이라고 말 할 수 있고, 또 누군가는 죽음 속에서도 다시 태어나는 생명이라고 할 것이다. 아니면 사랑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확실한 것은 그것은 오로지 한계가 있고 유한한 인간에게만 주어진 것이다. 천사도 악마도 그것은 누릴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은 그 짜릿한 순간을 온 몸으로 체험하고 느끼기 위해 수많은 고통의 시간을 견뎌왔다고 말하고 싶다.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의 삶은 너무 슬프고 무의미하다.

 

신 목사가 다시 소곤거리듯 말했다. “인간을 사랑하시오. 대위, 그들을 사랑해주시오! 용기를 갖고 십자가를 지시오. 절망과 싸우고 인간을 사랑하고 이 유한한 인간을 동정해줄 용기를 가지시오.” 283.p

 

신 목사의 당부 속에서 이성적이던 이 대위도 흔들리게 된다. 당신의 백성들이 고통당하는 것을 신은 알고 있는지 여전히 의문을 떨칠 수 없으나 고통 중에서 힘겹게 버티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는 또 다른 질문을 만들고 애정을 느낀다.

 

사람들은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하고 나는 생각에 잠겼다. 사람들은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그들을 향해 들려오는 두 개의 목소리하나는 역사의 안에서, 또 하나는 역사의 건너편 저 멀리에서 각기 구원과 정의를 약속하며 각각 자기 쪽에 충성해줄 것을 요구하는 그 두 개의 목소리를 듣고 있을 것인가? 310.p

 

신은 끊임없이 인간에게 질문할 것이고, 인간은 그 속에서 방황하며 답을 찾으려고 애쓰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신을 믿지 않는 인간도 고통 속에서 무언가 찾기 위해 발버둥치고, 각자의 진실을 찾기 위해 애쓰며 살아갈 것이다. 생명은 살아가라는 명령이니까. 산다는 것은 역시 무언가를 계속 하는 것일 테니까. 살아가는 한 아무리 죽음과 썩은 배설물 같은 땅을 헤맬지라도 각자에게 주어진 반짝거리는 고유한 순간을 찾으려고 노력할 것을 믿기 때문이다. 인간은 태초에 창조되던 순간 신이 불어넣은 생령을 가진 존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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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렌드 동백꽃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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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에서 나는 꽃향기 궁금합니다. 눈속을 뚫고 올라오는 힘차면서 은은한 향기가 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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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 이야기 1
김은성 지음 / 애니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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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은색 판화로 그려진 만화가 왜 이렇게 아름답고 눈물이 나는 걸까? 아마 작가의 엄마와 그 엄마의 엄마 목소리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함경도 북청 사투리에 담겨 전해졌기 때문인가 보다. 80대 엄마의 이야기를 40대 딸인 작가가 10년 걸쳐 만화로 만들어냈다니 그 자체가 위대한 역사가 된다. 이제 작가의 엄마는 90대가 되었고, 이야기를 끌어낸 작가는 50대가 되었겠지. 호호할머니가 된 엄마도 아기였고, 부끄럼 많은 소녀였던 적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자주 잊어버리곤 한다.

 

 

새집에 다시 고양이가 살기 시작한 것처럼 엄마와 나도 다시 힘을 내서 살아보기로 했다. 이제 엄마는 엄마 일, 나는 내 일을 하면 된다. 엄마는 1927년생으로 팔십 년의 삶을 되짚어보고 있고, 나는 그런 엄마를 만화로 그리기 시작했다. 엄마의 고향은 물장수로 유명한 함경남도 북청이다. 38.p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어른들은 아이들을 아주 많이 낳았다. 우리 부모님의 형제도 양쪽 모두 8남매이다. 삼촌, 고모, 이모가 골고루 있다. 우리 엄마는 나를 포함해서 네 명의 딸을 낳았다. 장남인 아빠와 큰딸이었던 엄마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은 지방에서 올라온 친척들이 머물다 떠나갔다. 가깝고 길게는 삼촌들과 이모들, 멀고 짧게는 아빠의 사돈의 팔촌의 동생 등등 까지 말이다. 우리의 할머니들과 엄마들은 이 많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사랑을 나누어 주었을까. 어렸을 때는 우리 가족만 오붓하게 사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어느 덧 시집 간 언니들과 돌아가신 아빠를 빼고 엄마와 나, 동생, 이렇게 세 식구만 남게 되었다.

 

 

  이제 나와 우리 엄마도 작가가 이야기를 시작한 때와 같이 80대와 40대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아주 어렸을 적, 천안이 고향이었던 외갓집 식구들과 전주가 고향인 친가 쪽 삼촌들이 우리 집에서 천안 북일고와 군산상고의 고교야구를 보며 싸우던 모습이 떠올랐다. 둘째 언니 출생신고가 다르게 되어 있어 학교 들어갈 때, 아빠가 동사무소 직원들에게 얼마를 주고 칼로 긁어 고쳤다는 것과 월남전에 가 있는 셋째 외삼촌에게 또 입영통지서가 나왔다는 엄마 얘기는 항상 쌍으로 등장했다. 나이가 들어 좋은 점은 어른들의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낄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 노인 한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진 것과 같다고 했지만, 도서관은 너무 작다. 하나의 세상이 사라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만화 곳곳에서 웃음과 눈물이 나지만 내 마음속에 깊은 감동을 준 곳을 꼽으라면 세 장면을 들 수 있다. 제일 먼저 대마씨를 갈아서 만든 국수를 먹고 온 가족이 두둥실 떠오른 장면이다. 부모님과 놋새, 숙자, , 강아지, 삽과 죽부인까지 모든 것이 하늘 높이 둥실 떠서 웃고 있다.

 

  

 

 

! 냉국이 있다! 촌에서는 삼을 키우잖아. 삼씨가 맺히도록 뒀다가 그걸 베어 도리깨질을 해. 그러면 삼씨가 녹두알만한 기 나오거덩. 그걸 볶아서 디딜방아로 찧어. 그걸 첼루 치면 가루가 나와. 그 삼가루를 새암물 질어온 디다 옇고, (오이)를 썰어 옇고 소금 간을 해서 냉국을 풀어. 그걸 먹으면 속이 이상하게 시원해. 삼씨라는 기 먹어서는 아이 될 물건이야. 그걸 먹고 나면 심이 나고, 속이 편안하고 화다분한 기 기분이 얼매나 좋은지 몰라. 123.p

 

 

  이 장면을 읽으며 혼자 깔깔 거리며 웃었다. ‘삼씨라는 기 먹어서는 아이 될 물건이야.’ 정확한 말이다. 가난하고 힘든 그 당시 삶에서 한 번 웃고 넘어갈 수 있는 해프닝이었지만, 먹거리가 부족한 그때, 모든 것이 음식이 되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 너무나 힘든 삶을 살아야 했던 우리 민족의 아픔을 노래한 시인 이용악의 <<그리움>>이란 시와 함께 눈이 내리고 기차가 달리는 장면이다. 그 기차가 달리게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 땅의 사람들이 혹독한 노동에 시달렸을까.

 

 

느릿느릿 밤새워 달리는/ 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달린 산과 산 사이/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 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174.p

 

 

  눈이 내리고 기차는 달려가고 작가인 나는 글을 쓰고, 그 시대를 온 몸으로 통과해 온 엄마는 아무것도 모른 척 원래 그랬던 것처럼 자를자를 재봉틀만 돌린다. 교과서에서 배운 몇 줄의 시와 역사는 엄마의 재봉틀 박는 소리로 인해 살아난다. 참 힘든 시간을 살아온 우리의 엄마들은 그렇게 역사가 되고, 자식들을 든든히 떠받치고 있는 사랑이 된다.

 

 

죽을 뻔한 엄마가 다 낫자 너무 좋아서. 동네마다 새로 사논 밭을 엄마 손을 꼭 잡고 도던 기억이 나. 그렇기 좋아하던 엄마였는데222.p

 

  <<내 어머니 이야기>>1권의 맨 마지막 문장이다. 그리고 그림의 두 모녀는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누고 끝이 난다. “엄마!!”, “엄마가 그렇게 좋니야? 결혼하면 신랑이 더 좋아. 우리 놋새도 이제 시잡갈 때가 됐구나이.” 그렇게 두 사람이 멀어지고 작가와 놋새였던 엄마가 똑같은 대사를 나눈다. 엄마는 부르는 것만으로도 참 좋고, 그리운 존재이다. 놋새는 그렇게 좋아하는 엄마를 똥개 같은 전쟁 때문에 하루 아침에 잃게 된다. 똥개 같은 전쟁!!

 

 

  1권만 읽었는데 2~4권에서 놋새가 겪어야만 할 아픔과 고통이 저절로 떠올랐다. 살아가다 보면 똥개 같은 일들이 너무 많다. 그래도 엄마는 그 똥개 같은 일들에 지지 않고 살아간다. 그리움은 가슴에 묻고 계속 살아간다. “나 같은 사람을 그린 것도 만화가 되냐?”고 말한 어머니들의 삶은 계속 이어지고, 이 땅의 역사가 되고, 사랑이 되어 그게 뭔지도 모른 나 같은 사람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정말 아름답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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