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제일 어렵다 - 남에겐 친절하고 나에겐 불친절한 여자들을 위한 심리학
우르술라 누버 지음, 손희주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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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중학교 교사인 친구가 내게 반 학생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우울증에 걸린 것 같다고 말했었다. 우울증이란 말을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가슴이 서늘해지고 덜컥 겁이 났다. 그러나 친구는 웃으면서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앓고 있는 병인만큼 현대인답게 병원에 가서 상담도 받고 필요하면 약도 먹을 것이니 걱정 말라고 말했다. 친구의 마지막 말에 웃음이 나왔다. 현대인답게라니.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시간을 내서 자주 걸었던 남산 길 산책을 시작하자고 약속했다. 친구의 말을 조금 과장하면 현대인들은 감기를 앓듯 우울증에 걸린다. 그것은 건강한 사람이라면 쉽게 털어버리고 다시 일어나 평소 생활대로 살아갈 수 있지만, 면역력이 약하거나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 제때 약을 먹지 못하거나 치료를 받지 않으면 더 큰 병으로 번질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저자가 남자(물론 남자들의 우울증도 중요하다)보다 여자들의 우울증에 관심을 갖고 초점을 맞춘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전시대에 비해 수많은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게 되면서 그들이 짊어져야 하는 사회적 역할은 더욱 늘어나게 되었다. 가정과 출산, 육아를 담당했던 부모세대의 여성들과 달리 이제는 직장인으로서의 역할과 동료, 선배, 후배 그 밖에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까지도 짊어지게 된 것이다. 남성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일들이 여성들에게는 고민과 갈등 이후에 선택하고 감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많은 에너지가 소비된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크게 진보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구시대적 여성성을 당연시하거나 여성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하고, 성차별과 편견을 내세워 실력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런 가운데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여성들 스스로 가면을 쓰고, 자신을 지키고 살아남기 위해 무척 애를 쓰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바라고 원하는 것을 충족시키는 데만 몰두하지, 실제로 이것을 할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 흥미가 있는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근심과 피로 그리고 종종 몰려오는 좌절감은, 능력과 완벽함이라는 가면 뒤에 숨긴 채 말이다.

p.28

 

  그러다 보니 아무도 보지 않는 밤에 가면을 벗고, 잃어버린 모습과 힘들었던 관계,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우는 일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불행하게도 많은 여성들이 이것을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바로 그런 여성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 말을 건넨다. 울지만 말고 일어나 앉아 자신과의 대화를 시작하라고 말이다. 내 우울의 정체를 파악하고, 몸을 움직여 변신할 준비를 하며, 주위에 도움도 청하라고. 또한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친절하라고 가르쳐준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여성을 너무 한쪽으로 몰아가는 것 같아 저자의 의견에 공감하기 어려웠다. 소수의 사례를 일반화 시키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부정적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소수의 여성이 겪는 어려움은 언젠가 전체 여성의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회는 고리처럼 연결되어 있는 집합체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망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개인에게 벌어지는 일들은 곧 공동체의 문제로 번지게 되어 있다. 여성들이 행복하지 못한 사회에서는 남성들도 행복하게 살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이 먼저 스스로 행복해지고 가면을 벗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가면을 벗고 싶은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자. 우울 안에 갇힌 내가 벗어나기 위해 손을 내밀면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걸어줄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자. 그리고 그 첫 번째 친구가 바로 자기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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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 마스다 미리 여자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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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 미리씨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

<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

 

  안녕하세요, 마스다 미리씨.

  저는 이제부터 당신에게 세 통의 편지를 보내게 될 것입니다. 지금 쓰는 편지는 <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이란 책을 읽고 도서관에서 쓰고 있답니다. 아마 두 번째 편지는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를 읽고 제 방 책상에 앉아 쓰게 될 것 같고요, 세 번째 편지는 <주말엔 숲으로>를 읽고 드디어 3년 만에 제주도에 둥지를 튼 친구 집에서 쓰게 될 것 같습니다.

  저는 당신을 크게 성공한 작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속에는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의 삶을 쫓아가는 평범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 동시대를 살아가며 같이 나이 들어갈 수 있는 좋은 작가를 만났다는 것이 반갑고 좋았습니다. 당신은 대부분의 일에 크게 흥미를 갖지 못하지만 일단 선택하고 도전합니다. 그리고 곧 흥미를 잃거나 귀찮아합니다. 그래도 가봅니다. 그곳에 당신이 찾고 있었던 무언가가 있을 지도 모르니까요. 저도 그런 적이 많이 있습니다.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무언가를 선택하지만, 막상 그 일을 시작하거나 특정 장소에 가기 전에 귀찮아지거나 괜히 선택한 건 아닌가 하는 후회를 할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616일부터 714일까지 5주 동안 남산도서관에서 열리는 남산 목요 인문학 세계 문학 고전읽기에 수강 신청을 한 일입니다. 매주 목요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두 시간 동안 강의를 들어야 하는데 친구들이 만나자고 보낸 문자 한 통에 금방 괜히 신청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시간이면 집에 가서 편히 쉬거나 지인들과 약속도 많이 잡히는 편인데, 책을 읽고 강의를 들으러 가다니 정말 내가 잠깐 어떻게 되었던 것 아닌가 하고 후회했었거든요. 그래도 저는 이번 주에 강의를 들으러 갔습니다. 제가 찾고 싶은 무언가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서요. 당신이 화려하다고 다 독버섯은 아닙니다.라는 말을 만난 것처럼 저는 그곳에서 햄릿은 복수극인가 복수지연극인가라는 질문을 만났습니다. 찾고 있는 무언가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기뻤습니다. 당신이 쌍둥이 바람꽃은 5월이 되면 싹 사라집니다.라는 마음 설레는 말을 들었던 것처럼 to be or not to be, 선택지가 있다는 것은 내면을 갖고 있다는 증거다.라는 말에 저도 설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많은 일에 흥미는 없지만 계속 가보기로 했습니다. 당신도 그럴 테지요.

 

  사람들은 보통 꿈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그러면 대부분 자신들이 하고 싶은 직업을 이야기합니다. 저도 제 꿈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제 꿈은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정말입니다. 물론 지금 당장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정말 그렇게 살고 싶었고, 언젠가 그 꿈이 이루어지기를 지금도 바랍니다. 딱히 남들보다 뛰어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나게 잘 하는 것도 없는 것 같기도 해서 무섭게 살지 않고 슬슬 살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스피치 학원에 다니다가 그만두고 했던 말들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 사람에게는 못하는 일이 있어도 되는 것 아닌가. 못하는 일과 하고 싶지 않은 일, 하려고 했다가 실패한 일, 그것도 역시 그 사람을 만드는 거죠. 잘하는 일만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에요.

                                                                                                                                                                                                                               p. 99~100

 

 그리고 이 말도 함께요.

 

-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자신을 스스로 지키세요.

p. 112

 저도 세상에 단 하나뿐인 제 자신을 지키고 싶습니다. 어떤 목적을 갖고 높이높이 올라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말입니다. 그리고 저는 특별히 뛰어난 재주가 있거나 잘 하는 것이 없어서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다보니 제가 세상에 대해 모르는 일, 가보지 못했던 곳, 겪어보지 못한 사건, 사고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계속 책을 읽으며 글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못하는 일이 있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올 봄에 한 작가 선생님으로부터 당신이 아직 등단하지 않았어도 꾸준히 작품을 쓰고 있다면 이미 작가이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무언가 찾고 있던 것을 만난 봄날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만약이란 나라에 살면서 이상적인 자신을 상상하고 노트에 그림을 그리고 구체적으로 그렸던 것처럼 저는 제 마음을 기도공책에 적고 또 적으면서 기도합니다. 그리고 조금씩 노력하고 변해가는 제 모습을 보면서 기뻐합니다. 조금씩 달라지는 제 모습을 기대합니다. 앞으로도 쭉~ 제 자신을 응원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도 응원하겠습니다. 평범하고 느긋한 작가생활에 박수를 보냅니다. 우리는 이미 자신만의 인생 속에서 창조적 삶을 살아가는 작가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겁니다. 평범한 우리의 느긋한 작가생활을 위해 아자아자 파이팅을 외쳐봅니다. 마스다 미리씨 <평범한 나의 작가생활>을 써주어서 고맙습니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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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산책 연습
박솔뫼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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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걷는 우리들

<<미래 산책 연습>>/ 박솔뫼



미래를 사는 것은 어떤 것일까. 우리는 저마다 소망하는 것을 말하고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도 진짜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의심한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나의 지나간 과거가, 현재의 삶이 지난 시간 우리의 미래였음을 깨닫게 된다. <<미래 산책 연습>>을 처음 읽었을 때는 조금 헷갈렸다. 갑자기 일본 호텔에서 부산으로, 주인공 수미는 과거, 현재, 미래 중 언제의 수미일까. 그러다 마지막 일본 호텔에서 다시 윤미언니를 만나고, 언니가 떠난 뒤 정승을 만나면서 우리의 삶이 결코 단편적이지 않다는 것을, 각자의 삶과 시간이 서로의 시간에 기대고 얽히면서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 과거가 곧 미래이고 현재이며, 미래가 또 우리의 과거가 되는 것이겠지.



원하는 미래를 그리고 손으로 만져보기 위해 어떤 시간을 반복해야 할까. 나는 그것을 우선 어딘가에 써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18.p



나는 작가가 어딘가에 써두어야겠다고 생각한 미래를 한 장씩 읽는 것에 몰두할 수 있었다. 물고기 뱃속에서 함께 살던 친구들을 우연히 길에서 마주치고, 서로를 알아보고, 다시 서서히 물고기로 변했다가 다시 젖은 물방울이 되어 길 위에서 사라지는 수미와 동생을 위해 기도하는 윤미언니, 모욕을 모욕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최명환 등을 만났다. 수미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기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곳에 가서 살고 있을까. 서울에서 전세로 빌라에 살고 있는 수미는 부산에서 월세로 오래된 아파트를 얻은 뒤, 두 도시를 오가는 삶을 살아낸다. 그의 즉흥적인 행동과 추진력이 부러웠다. 자신을 아는 사람이 없을 것 같은 부산에서 그녀는 또다시 사람들을 만나고 인연을 맺었지만 말이다. 나또한 원하는 미래를 손으로 만지고 통과하기 위해 어떤 시간을 쌓고 밀도를 더해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수미가 부산에서 처음 만나 인연을 맺은 사람은 ‘최명환’이다. 남자 이름이라고 선입견을 갖게 했지만 그는 여자이고, 먹을 것을 챙겨주는 성녀라는 뜻의 ‘마르타’라는 세례명을 갖고 있다. 그래서인지 최선생을 만나거나 그녀의 집에 가면 다양한 음식을 대접받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위로와 쉼을 얻는다.



많은 사람의 이름은 생각해보면 누군가 위에서 높은 곳에서 미리 정해준 것처럼 꼭 맞고 어울렸다. 우리가 이름과 사람을 함께 만나기 때문일까 나는 최명환과 그의 이름이 무척 잘 어울린다고 이유는 설명하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생각했다. 60.p



우리는 어떤 이름을 갖고 있는가. 또 어떤 이름을 갖고 싶을까. 누군가 지어준 이름이 아닌 나 스스로가 갖고 싶은 이름은 무엇일까. 그러면서 나는 이름에 맞게 살고 있는지, 혹은 살고 싶은지도 생각하게 된다.



-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줘.

- 한다. 하지.

- 뭐라고 하는데?

- 바르고 이웃을 생각하는 어른이 되게 도와달라고 한다.

- 더 멋있는 거 없나?

- 그리고 어.

- 뭐?

- 많은 것을 배우는 어른이 되게 도움을 달라고 한다.

- 그래. 그거 괜찮네. 103.p



나는 많은 것을 배우고 배를 타고 먼 곳으로 가는 어른이 될 것이라고 다짐하는 수미가 좋았다. 살아오면서 올렸던 나의 기도는 어떤 기도였을까. 나는 내가 드린 기도에 맞는 어른이 되었는지도 궁금하다. 어른은 되었지만 많은 것을 배우고, 좋은 어른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 품고 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오면 수미는 머무르는 동안 대부분 먹고 걷는 일을 했다. 아파트 주변을 걷고 부산타워에 올라갔다가 그 주변을 또 걷고 시장을 걷고, 미문화원 주위를 걸었다. 다른 동네와 성당을 찾아 걷고 또 걷다가 커피와 빵을 먹고, 술을 마신다. 옆집에서 가져다 준 떡을 먹고, 차이나타운의 식당에서 데운 두유와 튀긴 빵을 먹는다. 통닭을 먹고, 감기에 걸리자 함께 감기에 걸린 최선생 집에 가서 죽과 생강차와 소고기뭇국을 먹는다. 소설을 읽다보면 먹고 기도하고 걷는 주인공이 보인다. 무엇이 먼저인지 알 수 없지만 수미가 살아가는 일상 곳곳에 걷고 기도하고 먹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최선생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기도하나 잠시 생각했고 또다시 조용히 자리를 잡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의식하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나는 겸손한 마음으로 천국의 시간을 반복해보고 그 막연한 시간은 미래임에도 미래처럼 여겨지지 않았고 마치 슬픈 과거 같았다. 140.p



생명을 가진 존재들에게 그것만큼 강력한 일이 또 있을까 생각했다. 걷기 위해서는 먹어야 하고 먹기 위해서는 살아가야 하며, 영혼이 있기에 자신과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살아가는 것이 그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된다. 생명력 가득한 행위를 통해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다.

며칠 전, 전두환씨가 사망했다. 그 순간 내게 현실과 소설이 하나가 되어 눈앞에 펼쳐졌다. 그에게 전 대통령이라는 말을 해야할지 아니면 군부 독재자라는 표현을 써야 할지 아니면 전 대통령으로서 군부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한 도시의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인물이라고 써야할지, 모두 사실이고, 그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입으로 꺼내고 글로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그의 집권으로 수많은 누군가가 엄청난 고통과 아픔을 겪으며 죽었고, 과거와 현재, 미래에도 그것은 계속 되고 있다. 그는 자신이 90세의 이런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 알고 있었을까. 죽어서도 사과하지 않고, 죽어서도 영원히 많은 사람들에게 미움과 증오를 품게 한다는 것을 알았을까. 하필 그는 2021년 11월, 내가 이 작품을 읽고 있을 때 죽어서 1982년의 광주를 찾아보고 생각하게 만들었을까. 그러니 미래는 과거이고 현재이며 다시 현재와 과거와 미래가 되는 것이다.



무섭고 괴롭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날들이 이어졌는데 그래도 시간은 흘렀고 그럼에도 즐거운 날들이 있었다. 204.p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몇 년 전부터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에 대해 소설로 쓰고 싶었다고 했다. 쓰고 싶은 것을 가슴에 품고 끝까지 써내려간 작가의 시간과 그녀가 만들어낸 주인공을 따라 함께 걷고 먹고 기도했던 나의 시간을 생각했다. 작가와 독자는 현재에 살아서 현재의 시간에 작품을 통해 만났고, 또다시 각자의 삶을 살아가며 서로 다른 미래를 만들어 가게 되겠지. 내가 원하고 바라며 기도하는 나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나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반복해야 할 시간에 대하여 생각하고 써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말하고 쓰는 행위에 힘이 있다는 것을 믿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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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문진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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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의 입장에 서본 사람은 그 과정의 고단함과 치열함을 알기 때문에 함부로 혹평을 할 수가 없다. 아마추어 소설가의 소설 속에도 마음에 남아서 맴도는 문장이 있기에 나는 독서를 할 때는 형광펜이나 플래그 등을 준비한다. 스치고 지나가는 문장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2021년 김승옥 문학상 수상작품집에도 꽤 많은 색깔의 플래그가 붙여졌다. 반은 작품 속 문장이었고, 나머지는 작가노트에 적힌 작가의 고백이었다.

- 어쩌면 어떤 찰나들은 너무도 결정적인 동시에 사소해서, 눈치 채지도 못한 사이 내 안쪽 어딘가에 박혀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다는 것. 우리는 이런 우리가 되었다는 것. 혹은 되어버렸다는 것. 내가 그 찰나들을 붙잡아 기록해둔다면. 나의 소설쓰기가 그런 작업이 된다면 어떨까 생각했다. 33.p

문학상 수상작품을 읽을 때는 작품뿐만 아니라 작가의 말을 눈여겨본다. 문진영 작가의 고백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마음에 남았다. 얼마나 많은 경험들이 내 마음속에 숨어있을까. 나도 찰나의 선택 때문에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잊혀 지지 않는 친구가 있다. 그때 나는 스무 살이었기 때문에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보다 나의 자존심을 더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 나의 솔직한 마음을 전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설을 쓰고 읽는 것인지도 모른다.

<두 개의 방>을 읽으면서 중학교 1학년 때, 은미처럼 늦잠을 자다가 1교시가 지나고 등교를 해서 반 전체를 즐겁게 해주었던 친구가 생각났다. 호텔지배인이 되어 있는 멋진 내 친구는 지금도 잠이 많아 출근할 때 늘 힘들어 한다. 작품 속 한 문장만으로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를 소환해낼 수 있다니. 그뿐만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걸어가며 이야기를 나누는 종로와 북아현동, 광화문과 신촌 거리 곳곳에는 나와 친구들의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그들의 발길이 닿는 곳의 골목들과 카페, 상점 거리 곳곳이 앞에서 보는 듯 눈에 선하다. <두 개의 방>을 읽으며 잊고 있었던 지난날의 추억을 떠올리고 많이 웃었다. 소설이 있음직한 이야기라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이야기 위에 나의 이야기를 덧씌울 수 있기 때문인가 보다.

솔직한 심정을 말한다면 수상작보다 내게 더 와 닿은 작품은 정용준의 <미스터 심플>과 손흥규의 <지루한 소설만 읽는 삼촌>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저녁에 무엇을 먹을까 함께 고민하던 연인이 곧이어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되고, 어학연수를 떠난 부인과 아들에게 이별을 통보받고 외면당한 뒤, 주어진 시간을 혼자 통과해야 하는 사람은 그 상황 속에서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소설은 질문을 던지고 해결책을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정답은 없지만, 각자만의 해답이 있는 것처럼.

- 자기 연민에 빠진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상처받은 이의 얼굴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할 일을 할 것이고, 잘 자고, 잘 먹고, 잘 지낼 것이다. 215.p <정용준/미스터 심플 중>

그래서 자기의 일상을 지키고 삶의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두 사람이 보였다.

<지루한 소설만 읽는 삼촌>의 아버지는 가족의 안위와 생계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그 시절 가장들은 가족을 희생시키면서까지 가정을 지키려는 모순을 안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살았다. 그래서 나는 삼촌보다 오로지 먹고 사는 것과 가족의 생계밖에 모르는 아버지의 시간 속에 남겨져 있는 어린 시절 에피소드가 참 좋았다. 그런 형에게도 집나간 이복동생을 찾아 헤매는 순수한 모습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해주니까. 지금 우리가 바라보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그것이 전부라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윤대녕의 <시계입구가게앞검문소>는 읽는 동안 내내 반가웠다. 대화부분에서 젊은 사람들의 대화가 맞나 하고 의아해했지만, 젊은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애써 문장을 다듬는 작가의 노력이 느껴졌다.

그 외 <완전한 사과/ 안보윤>도 기억에 남는다. 타인에게 해를 입힌 나의 가족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지. 나의 가족이라 해서 무조건 잘못을 덮어줄 수 없다는 것. 그뿐 아니라 가족은 보이지 않는 뿌리로 깊이 이어져 있기에 한 사람이 느끼는 고통을 다함께 공유할 수 밖에 없다는 것에도 공감한다. <완전한 사과>를 비롯하여 단편집<<소년7의 고백>>에서 보여주는 안보윤 작가의 세상을 향한 시선과 치열함에 독자로서 존경심을 느낀다.

<나의 사랑스럽고 지긋지긋한 개들>을 읽으며 제목이 우리의 삶을 나타내는 메타포로 다가왔다.

- 우리는 이루는 모든 것들이 여전히, 낯설고 우스꽝스럽다. 낯설고 우스꽝스러워서 곧잘 웃는다. …… 너희는 냄새로 시간의 변화를 알아채는 종족이니 보이지 않는 눈으로도 들리지 않는 귀로도 불편한 다리로도 더 많이 보고 더 많은 것을 듣고 더 먼 곳까지 갈 수 있어. 갈 수 있다. 나는 웃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명체를 주시하면서 기억하면서 길을 간다. 나는 길을 간다. 예정된 상실을 조금씩 미루면서. 나는 길을 간다. 나의 사랑스럽고 지긋지긋한 개들과 함께. 196.p <나의 사랑스럽고 지긋지긋한 개들 중>

<우리집 여기 얼음통에>에서는 가난한 두 젊은 남녀의 일상이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추위와 오래된 집이 두 사람의 현실같았다. '두 사람의 지금 현재의 삶'이 여기 얼음통 속에서 꽁꽁 얼어버렸고, 얼마 안 있으면 곧 터져버릴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다.

- 지난겨울 그토록 춥지만 않았어도 한 시절의 고비를 극복하고자 한 사람을 선택하는 일따윈 하지 않았을 텐데. 그런 식으로 사랑이 줄줄 새도록 내버려두진 않았을 텐데. 273.p <우리집 여기 얼음통에>

지금도 수많은 작가들이 그들만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사람들의 일상과 다양한 경험, 인생 등을 문장 속에 녹이며 계속 쓰고 있을 것이다. 작가의 작업은 오롯이 혼자만의 힘으로 마주한 시간을 통과하며 계속 나아가야 하는 것이기에 쓰는 동안 외롭거나 힘들 수 있다. 그래도 쓰기를 포기할 수 없어 밤새도록 자판을 두들기고 있을 작가들을 응원한다. 무언가를 열심히 쓰는 모든 사람들을 말이다. 소설을 읽으며 우리가 어떤 존재들인지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할 수 있기에. 다음해에도 기꺼이 읽어줄 마음을 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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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11-03 0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읽으면서 인덱스 많이 붙이셨네요.^^
문학상 수상작들은 장편이 적지만 여러 작가의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좋은 것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hope&joy님, 좋은 밤 되세요.^^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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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부디 무탈하시길 빌며, 작별하지 않으며

감사를 담아, " 2021년 가을에 한강

책을 펼치니 강물이 흘러가는 글씨체로 무탈하시길, 작별하지 않기를 바라는 작가의 글씨가 써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한강 작가의 작품을 읽으며 작가란 참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윤동주 시인이 쓴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줄을 알면서도'라는 문장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때때로 작가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 보고 그것을 이야기해 주어야 하는 명을 받은 사람이란 생각을 했다. 주로 책을 읽었던 늦은 밤에서 자정을 넘기고 잠자리에 들면 나도 모르고 등이 시리고 떨려오곤 했다. 그만큼 한강 작가의 문장을 차분하면서도 한기가 서늘한 무언가를 남긴다.

처음 1부를 읽을 때는 끈적끈적한 더위가 온몸을 휘감았다. 땀과 더운 공기 속에서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하지만, 그 차가움은 곧 더위 속으로 끌려가고 또다시 땀범벅 속으로 끌고 간다. 주인공이 그 속에서 숨이 막히고 힘들 때마다 그것을 읽는 독자도 힘들고 숨이 막혔다.

욕실을 나와 젖은 옷을 벗고, 아직 버리지 않은 옷 더미 속에서 쓸 만한 걸 찾아 입었다. 만원권 지페 두 장을 여러 번 접어 호주머니에 넣고 현관을 나섰다. 가까운 전철연 뒤편의 죽집까지 걸어가 가장 부드러워 보이는 잣죽을 시켰다.. 지나치게 뜨거운 그걸 천천히 먹는 동안, 유리문 밖으로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의 육체가 깨어질 듯 연약해 보였다. 생명이 얼마나 약한 것인지 그때 실감했다. 저 살과 장기와 뼈와 목숨 들이 얼마나 쉽게 부서지고 끊어져버릴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 단 한 번의 선택으로.

인생과 화해하지 않았지만 다시 살아야 했다. 15.p

그러다 또다시 친구 인선의 병문안을 가고, 그곳에서 손가락이 절단된 친구의 고통과 3분마다 날카로운 주사바늘이 가느다란 손가락을 찔러야 하는 것을 고스란히 바라본다. 크고 작은 고통이 두 사람 곳곳에 배어 있다. 사람들의 삶을 비집고 자리잡는다.

다시 2부는 제주도의 눈과 바람, 어둠속 공포와 밀려오는 두통 때문에 시공간을 초월하며 지금 경하와 인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마주하게 된다. 경하가 인선의 부탁을 받고 제주 중산간에 위치한 집까지 찾아가는 여정 마저도 독자를 힘들게 한다. 마치 캄캄한 어둠과 추위를 견디며 낯선 제주도 산속을 헤매는 듯한 두려움이 계속 가시질 않았다.

죽으러 왔구나. 열에 들떠 나는 생각한다.

죽으려고 이곳에 왔어.

172.p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일까. 죽이려고 하는 자와 끝까지 살기를 바라는 사람들 사이에 어떤 세계가 존재하는 것인가. 가리려고 하는 사람들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한다. 아무리 정당성있는 폭력이었다고 주장해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그래서 그들의 존재를 알리고, 왜 죽어야 했었는지 말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애도이고 살아있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 중에 하나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나와 상관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몰랐다고 외면하고 그래서 앞으로 잘 처리해 나가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사건이 아니라 사람을 생각하게 된다. 왜 인선의 엄마는 오빠를 잃어야했을까. 그 작은 체구로 어떤 진실을 찾아내려고 애썼는지 같이 들여다 봐야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보낸 시간에 기대어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아주 찰나의 시간일지라도 그것은 나와 내 가족, 친구, 이웃에게 영향을 미치고 나에게 돌아온다. 경하가 잡지사 일을 하다가 인선을 만나 위기의 순간을 넘기고, 손을 다친 인선이 이웃의 할머니 모자의 우연한 방문으로 서울 병원까지 오게 되고, 오전에 서울에서 씨름하던 주인공이 인선의 새를 구하기 위해 한밤중 제주도 숲속을 헤매기까지 우린 모두 알 수 없는 존재와 시간 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살아간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또 살아가지만 영원히 잊을 수도 작별할 수도 없는 이유이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목에 위로를 받는다. 놓아주어야 할 때가 되면 저절로 놓아지겠지. 날아갈 때가 되면 훨훨 날아가겠지. 그때까지 작가와 독자는 아프게 쓰고, 읽으며 힘없이 죽어간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게 될 것이다. 한강의 소설은 거기까지 나아가게 하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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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11-05 16: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당선작 축하드려요!

hope&joy 2021-11-05 16:39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서니데이 2021-11-05 18: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hope&joy 2021-11-05 18:52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책 많이 읽고 리뷰 남기겠습니다.

초딩 2021-11-07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hope&joy 2021-11-07 12:51   좋아요 0 | URL
네ᆢ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즐거운 하루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