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그 책 - 추억의 책장을 펼쳐 어린 나와 다시 만나다
곽아람 지음 / 앨리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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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 문학과 그림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2009년 우연히 책 제목에 이끌려 한 권의 도서를 구입했다. 그 책이 바로 곽아람의 <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였다. 작가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무언가에 홀린 듯 책을 읽어가던 순간, 세상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인연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개인적 활동인 독서와 글쓰기가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또 다른 시·공간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으며,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곳곳에 살고 있다는 안도감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순간을 지나는 동안 이번에는 나의 선택이 아닌 타인의 손길을 타고 저자의 책이 찾아왔다.

 

   저자에 따르면 지금의 나를 이루어낸 것은 무엇인가’, ‘내 바닥에는 무엇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현재의 내가 오롯이 로 존재하여 한 사람의 몫을 해내며 살고 있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내어준 아낌없는 사랑과 삶의 지혜 때문이다. <어릴 적 그 책>을 꼼꼼히 읽어가는 동안 작가뿐만 아니라 내 안에도 수많은 세계가 존재했고, 그로 인해 내 자신이 조금씩 단단해져 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이 책을 받자마자 목차에 소개된 작품들을 손가락으로 하나씩 짚어 가며 내가 읽고 좋아했던 작품이 있는 지 찾아보았다. 그리고 그 작품들- 비밀의 화원, 사자왕 형제의 모험, 작은 아씨들, 집 나간 아이, 추위를 싫어한 펭귄, 소공녀-을 찾아낼 때마다 오래전 헤어졌던 친구들을 만나는 것 같아 뭉클해졌고, 책을 읽는 동안 자꾸만 내 유년 시절 모습이 과거에서 튀어나왔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무심코 학급문고에 꽂혀 있던 책을 집어 들고 읽다가 자리에 돌아가지 못하고, 그대로 교실 바닥에 주저앉아 독서 삼매경에 빠졌었다. 새로 부임한 담임선생님은 20대 후반의 돌이 지난 아기를 둔 여자분 이셨는데 내가 없어진 줄 알고 큰소리로 찾는 바람에 놀라서 벌떡 일어났던 일이 떠올랐다. 하굣길에 근무를 끝내고 귀가하시는 선생님을 우연히 만나서 걸어가는 중에 내가 읽었던 책 이야기를 들려주자 너무 재미있다며 다른 책 이야기도 해달라고 조르던 일도 함께 말이다. 그 시간 때문에 나는 선생님이란 단어의 선입관을 갖지 않게 되었고, 그녀도 나처럼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신기하면서도 좋았었다. 또 정기 구독했던 <소년 중앙> 잡지가 집에 배달되어 올 때쯤, 밖에 나가 놀지도 않고 문 앞을 지키고 있다가 책을 받자마자 다락방으로 올라가면서 엄마에게 친구들이 놀자고 찾으면 나 집에 없다고 그래. 라고 말했던 모습도 보였다. 그때 나도 저자처럼 상상과 모험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무엇보다 사라가 상상력과 이야기의 힘에 기대 자신을 지탱한다는 설정에 마음이 끌렸다. 이야기를 잘했던 사라처럼, 나 역시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잘 하는 아이여서 더욱 그랬다. 내향적인 성격의 사람들에겐 상상력과 이야기가 험한 세상을 헤쳐나가는 데 큰 버팀목이 된다는 것을 아마도 나는 사라로부터 배운 것 같다.

p.303

 

 

 상상을 통해 이루어진 환상의 세계는 허구처럼 보이나 현실을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공기 같은 것이다. 환상의 세계가 무너지고 점점 빈약해질수록 현실 세계는 피폐해지고 서서히 무너지게 된다.  그래서 각자가 읽은 책은 다를지라도 유년 시절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고, 어른이 되었을 때도 힘을 주는 독서의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읽은 책의 내용을 신나게 이야기해주는 아이들은 자기가 가진 꿈과 경험을 공유하고 나누어주는 법을 아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독서의 시간이 요즘 학생들에게 의무처럼 주어지거나, 아예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또래 아이를 무참하게 폭행한 청소년들의 기사를 접했을 때, 많은 이유가 있었겠지만, 혹시 그들이 유년 시절 모험의 세계를 마음껏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지는 않았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소중했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것 같은 독서의 세계가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어른으로서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워졌던 것도 이같은 경험을 소유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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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제일 어렵다 - 남에겐 친절하고 나에겐 불친절한 여자들을 위한 심리학
우르술라 누버 지음, 손희주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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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중학교 교사인 친구가 내게 반 학생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우울증에 걸린 것 같다고 말했었다. 우울증이란 말을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가슴이 서늘해지고 덜컥 겁이 났다. 그러나 친구는 웃으면서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앓고 있는 병인만큼 현대인답게 병원에 가서 상담도 받고 필요하면 약도 먹을 것이니 걱정 말라고 말했다. 친구의 마지막 말에 웃음이 나왔다. 현대인답게라니.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시간을 내서 자주 걸었던 남산 길 산책을 시작하자고 약속했다. 친구의 말을 조금 과장하면 현대인들은 감기를 앓듯 우울증에 걸린다. 그것은 건강한 사람이라면 쉽게 털어버리고 다시 일어나 평소 생활대로 살아갈 수 있지만, 면역력이 약하거나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 제때 약을 먹지 못하거나 치료를 받지 않으면 더 큰 병으로 번질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저자가 남자(물론 남자들의 우울증도 중요하다)보다 여자들의 우울증에 관심을 갖고 초점을 맞춘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전시대에 비해 수많은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게 되면서 그들이 짊어져야 하는 사회적 역할은 더욱 늘어나게 되었다. 가정과 출산, 육아를 담당했던 부모세대의 여성들과 달리 이제는 직장인으로서의 역할과 동료, 선배, 후배 그 밖에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까지도 짊어지게 된 것이다. 남성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일들이 여성들에게는 고민과 갈등 이후에 선택하고 감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많은 에너지가 소비된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크게 진보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구시대적 여성성을 당연시하거나 여성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하고, 성차별과 편견을 내세워 실력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런 가운데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여성들 스스로 가면을 쓰고, 자신을 지키고 살아남기 위해 무척 애를 쓰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바라고 원하는 것을 충족시키는 데만 몰두하지, 실제로 이것을 할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 흥미가 있는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근심과 피로 그리고 종종 몰려오는 좌절감은, 능력과 완벽함이라는 가면 뒤에 숨긴 채 말이다.

p.28

 

  그러다 보니 아무도 보지 않는 밤에 가면을 벗고, 잃어버린 모습과 힘들었던 관계,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우는 일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불행하게도 많은 여성들이 이것을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바로 그런 여성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 말을 건넨다. 울지만 말고 일어나 앉아 자신과의 대화를 시작하라고 말이다. 내 우울의 정체를 파악하고, 몸을 움직여 변신할 준비를 하며, 주위에 도움도 청하라고. 또한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친절하라고 가르쳐준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여성을 너무 한쪽으로 몰아가는 것 같아 저자의 의견에 공감하기 어려웠다. 소수의 사례를 일반화 시키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부정적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소수의 여성이 겪는 어려움은 언젠가 전체 여성의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회는 고리처럼 연결되어 있는 집합체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망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개인에게 벌어지는 일들은 곧 공동체의 문제로 번지게 되어 있다. 여성들이 행복하지 못한 사회에서는 남성들도 행복하게 살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이 먼저 스스로 행복해지고 가면을 벗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가면을 벗고 싶은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자. 우울 안에 갇힌 내가 벗어나기 위해 손을 내밀면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걸어줄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자. 그리고 그 첫 번째 친구가 바로 자기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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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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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 눈으로 하나의 삶이 다른 삶을 바라보는 얼굴이 그려졌다. 그 순간 남편이 무얼 할 수 있었을까......어쩌면 그날, 그 시간, 그곳에선 ‘삶‘이 ‘죽음‘에 뛰어든 게 아니라,
‘삶‘이 ‘삶‘에 뛰어든 게 아니었을까.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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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의 시간 - 인생을 생각하는 시간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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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너무나 싱그럽고,
그리고 즐거워 보여서
평화란 이런 것이구나.
새삼스럽게 생각했습니다.
평범한 차의 시간 따뜻한 한 잔의 커피를
이 아이들의 일상에서 빼앗는 일이 없기를

-차의 시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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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마스다미리 베스트 5종 세트 (文庫) - す-ちゃんの決心
益田 ミリ / 幻冬舍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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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팍팍한 일상에서 마스다 미리의 만화를 읽는다는 것은

마스다 미리의 <아무래도 싫은 사람> ·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팍팍한 일상에서 마스다 미리의 만화를 읽는다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위로해 줄줄 안다는 것이다. 해결책을 제시해주거나 큰 기쁨과 위로를 주는 것은 아니지만, 타자의 눈으로 자신을 볼 수 있게 해주고 우리 모두 고민과 한숨 속에 눈물 흘리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해 단 10분만이라도 생각하고 돌아보게 된다면 현재보다 훨씬 더 힘을 내며 살 수 있으니까 말이다.

 뜨거운 열정을 가진 임원이 있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사적인 시간까지 쏟아 부우며 많은 일을 감당했고, 희생했으며, 주위 사람들이 그런 자신을 인정해 주고 따라와 주길 원했다. 그러나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지쳐갔고, 상처받았다. 그 사람의 뜨거운 열정이 나를 포함하여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까맣게 태우고 있었다. 마음이 까맣게 타버린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나갔다. 끝까지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나는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그곳을 나왔다. 그 시절 나와 다수의 사람들은 한 사람 때문에 참 많이 힘들었다. 시간이 더 흐른 뒤 그 사람도 다른 곳으로 떠났다. 자신의 열정을 알아주지 않고 사사건건 부딪치게 된다는 새 사람이 들어오면서 말이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싫은 사람이야. 싫다는 건, 그것을 보거나 듣거나 상대하는 것이 불쾌하다. …… 이것은 무척이나 사소한 일입니다. 하지만, 사소한 것도 계속 쌓이다보면 묵직해집니다.        

                                                                                                                           -<아무래도 싫은 사람> -

 살면서 나를 좋아하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만나고 살 수는 없다. 하지만 철저하게 무시당하며 자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공허감에 빠지게 만드는 사람과 거의 매일 만나야 한다면 얼마나 괴로운 삶인가. 수짱의 말대로 싫은 사람들 때문에 자신이 싫어지고 자괴감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에 그곳에서 그와 함께 해결해 나갈 방법을 찾지 못했다면 자기 자신부터 살릴 수 있는 길을 찾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그것도 여의치 않는 사람이라면 어쩌면 좋을까.

 

싫어하는 사람의 장점을 찾기도 하고 싫어하는 사람을 좋아하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그러다 그것이 안 되면 자신이 나쁜 사람 같아서 다시 괴로워져. 도망갈 곳이 없다면 그곳에 있어서는 안 된다.

                                                                                                                                                                                                  - <아무래도 싫은 사람> -

 

 앞으로 내 인생은 어떻게 될까, 아니 앞으로 무엇을 하며 먹고 살아야할까 고민한 적이 있었다. 막연히 10년 뒤, 20년 뒤를 생각하며 경제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안정되지 못하고 힘든 삶을 살게 되면 어떻게 하지 걱정하면서 힘들어 했는데 그 주 예배 때 목사님이 이런 설교를 했다. “여러분들 미래가 두렵고,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고민되죠? 저도 걱정됩니다. 그러나 미래의 내가 더 잘 살기 원한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열심히 하세요. 열심히 하고 있다면 더 열심히 하세요.” 우리는 막연한 미래를 걱정하느라 지금 현재의 삶과, 내 옆에 있는 좋은 것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누리지 못할 때가 많다.

미래의 일을 꿈꾸는 건 자유지만 지금 일도 제대로 했으면 좋겠어. 미래의 자신이 진짜고, 지금은 임시라고 생각하는 거네. 지금 이곳에 있는 나는 진짜? 진짜의 나와 진짜가 아닌 나. 그게 뭐야.

                                                                                                                                                                                    -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

 

 나는 간사하게도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확인하고 마음이 편해졌다. 마치 대학입시를 놓고 다 같이 고민했던 고3때처럼 말이다.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하는 고민이라는 것이 위로가 되었다. 내 자신이 이렇게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이 싫지 않았다.

 

사람은 변할 수 있을까? 사람은, 변하는 것이 가능할까? 지금 이대로의 모습도 싫지만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지도 잘 모르겠다. 변하고 싶다. 나는 지금의 내가 변했으면 한다. 어떤 식으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

 

  내가 점점 변하든 그렇지 않든, 기도를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일을 하고, 잘 웃고, 잘못했을 때 사과하고, 맛있는 음식을 보면 가족과 지인들에게도 사주고 싶은 나만의 좋은 모습들은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나는 지금의 내가 좋다.

다른 누군가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건, 기분 좋아. ‘라서 좋아. 나라서 좋다고 할까. 나도 나쁘지 않다는 느낌.

                                                                                                                                                                                    -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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