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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데이
데이비드 리바이선 지음, 서창렬 옮김 / 민음사 / 2015년 8월
평점 :
나는 나이지만 내가 아니다
‘에브리데이’를 읽고
‘나는 매일매일 다른 사람이 된다. 나는 나이지만 -- 나는 내가 나라는 것을 안다. -- 또한 다른 사람이기도 하다.
늘 그래왔다.’
9.p
1. A
나는 매일 같은 사람이자 다른 사람이다. 매일 아침 다른 사람의 몸에서 깨어나 그에게 하루라는 시간을 빌려서 살아간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는 순간이자 영원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현재만 존재한다. 과거나 미래는 나에게 허락된 시간이 아니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나의 시간은 남에게 빌린 하루가 시작이자 마지막이다. 이미 그런 삶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주어진 운명에 크게 낙담하지 않고 그럭저럭 잘 살아간다. 그런데 리애넌을 만나면서 모든 것이 변하고 말았다. 리애넌을 사랑하게 되면서 나에게 주어진 하루라는 시간이 계속 되길 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어졌다. 그것이 리애넌을 계속 만나고 그 사랑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풀 목사가 달콤한 제안을 해왔을 때 선뜻 그것을 뿌리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사람의 인생을 훔치는 일이다. ‘살인’이다. 다른 사람을 죽이고 리애넌과 행복하게 살아갈 자신이 없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나에게 자신의 몸을 빌려준 모든 사람에 대한 예의이자 내가 베풀 수 있는 선의이다. 욕심을 부리는 순간 나는 아마 괴물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지만 리애넌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세상이 텅 빈 느낌이다. 시간을 벗어나 생명을 가진 존재는 아무도 없는 우주 공간에 혼자 떠다니는 느낌이다. 영원히 세상 밖으로 쫓겨나 돌아올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외롭다. 힘들다. 억울하다, 숨이 막히고 고통스럽다. 그래도 한 사람 안에 머물 수 없다. 그래서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에브리데이’를 읽으면서 A마음으로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육체와 영혼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타인과 관계를 맺고 계속해서 유지해 가기 위해서는 영혼뿐 아니라 육체 또한 중요하다.
‘늘 그래 왔다’
A는 늘 그렇게 다른 사람의 몸을 빌려 ‘하루’라는 삶을 살아왔다. 영혼은 같으나 육체가 매일 바뀌는 삶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16년을 살아온 것이다. 그리고 5994일, ‘저스틴’의 육체에서 깨어난 날, 늘 그래 왔던 삶의 방식에 제동이 걸렸다. 바로 저스틴의 애인인 리애넌 때문이다. 리애넌을 사랑하게 된 순간부터 A는 소원이 생긴다.
‘나는 남아 있고 싶다.
남아 있게 해 달라고 빈다.
남아 있기를 바라며 눈을 감는다.’
매일 아침 깨어나게 된 인물 속에서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으며, 조심스럽게 살아가던 A의 삶은 진짜 삶이 아니었다. 그가 하루만 살아서가 아니다. 타인의 삶을 하루 도둑질해서도 아니다. 타인의 삶을 관찰만 할 뿐 온전히 자신이 살고 싶은 세계로 뛰어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애넌을 사랑하고 난 후의 A는 진짜 자신의 삶을 산다. 육체는 잠시 빌린 것뿐이다. A는 리애넌을 만나기 위해 자신이 누구인지 계속해서 표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학교 결석을 하거나 가족끼리 떠나기로 했던 하와이 여행을 포기하기도 한다. 마리화나 중독자의 몸에서 깨어났을 땐 몸에게 지지 않기 위해 처절한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그리고 결국 리애넌의 이해와 사랑을 얻게 된다.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게 되면 ‘나’는 ‘나’가 아니고, 사랑에 빠진 상대방이 된다. 사랑은 그렇게 예전의 내 모습을 버리고 타인이 되게 하는 힘이 있다. A가 리애넌을 사랑하게 된 후에는 그의 시간과 공간의 모든 기준이 ‘리애넌’이 되어 버렸다. 모든 것이 그녀 중심으로 돌아간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 중심으로 지구가 도는 것이다.
2. 리애넌- ‘리애넌’이 A를 만나게 된 후
나는 어제와 오늘이 완전히 달라져 있는 저스틴 때문에 혼란스럽다. 그런 내 앞에 낯선 사람이 한 명씩 다가온다. 처음에는 전학생인줄 알았고, 그다음에는 친구의 게이 사촌인줄 알았다. 길을 묻는 남학생인줄 알았고, 농구를 좋아하는 평범한 남학생인 줄 알았다. 그러다가 그 모두가 A라는 것을 알았을 때 혼란에 빠졌다. 저스틴이었던 A가 자신의 존재와 마음을 고백한 후 나는 모습이 다른 그러나 분명 A인 섹시한 흑인 여학생, 힙합에 빠진 남학생, 뚱뚱한 남학생, 쌍둥이 농구선수 등과 사랑을 나누고, 그를 인정하게 된다. 과연 나는 그런 A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A가 멋지고 잘 생긴, 아닌 평범한 또래 남자의 모습으로 등장했을 때는 마음을 열 수 있을 것 같다. 호감을 갖고 다가가 친구에서 연인으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자아이로 나타나 사랑을 갈구하거나 받아들이기 힘든 실망스러운 모습의 A를 만났을 때는 솔직히 전과 같은 상황을 유지하기 힘들다. 흔히 진짜 사랑은 외모가 아닌 내면을 통해야 한다고 하지만, 모두가 나를 사랑하는 A라는 것도 인정하지만, 첫 눈에 들어오는 모습에 따라 마음이 달라지는 것을 나도 어쩔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외모에 따른 결정이 아닌 지속가능한 관계 속에서 사랑을 이루어 가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마음이 A를 알아보고, 받아들이고, 좋아하게 되었다고 해도 그 관계를 끝까지 유지할 자신이 없다. 그래서 난 진짜 A를 좋아 하면서도 보낼 수밖에 없었다.
A만큼 힘들고 괴로웠던 인물은 바로 리애넌이다. A 때문에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고, 세상에 대한 편견을 깰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애넌이 감당해야 할 고통의 무게도 만만치 않다. 세상이 가르쳐 주지 않은 다른 존재와 삶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A를 만나 점점 성숙해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깊어진다. 사랑은 A뿐만 아니라 리애넌도 바꿔놓았다.
매일 다른 사람의 몸에서 깨어나는 A의 이야기가 신선했다. 만약 내가 매일 다른 사람의 몸으로 깨어난다면 어떤 기분이 들지 상상해 보았다. 오늘 내가 살아낸 하루가 그저 그렇게 많은 날 중에 하나가 아니라 누군가가 살짝 들어와 살다간 날이었다니 두렵고 아찔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육체와 영혼이 분리된 채로는 완전한 삶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흘려보낸 시간일지라도 오롯이 내 몸과 마음이 함께 견디어 낸 하루여야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