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나는 내가 제일 어렵다 - 남에겐 친절하고 나에겐 불친절한 여자들을 위한 심리학
우르술라 누버 지음, 손희주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며칠 전 중학교 교사인 친구가 내게 반 학생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우울증에 걸린 것 같다고 말했었다. 우울증이란 말을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가슴이 서늘해지고 덜컥 겁이 났다. 그러나 친구는 웃으면서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앓고 있는 병인만큼 현대인답게 병원에 가서 상담도 받고 필요하면 약도 먹을 것이니 걱정 말라고 말했다. 친구의 마지막 말에 웃음이 나왔다. 현대인답게라니.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시간을 내서 자주 걸었던 남산 길 산책을 시작하자고 약속했다. 친구의 말을 조금 과장하면 현대인들은 감기를 앓듯 우울증에 걸린다. 그것은 건강한 사람이라면 쉽게 털어버리고 다시 일어나 평소 생활대로 살아갈 수 있지만, 면역력이 약하거나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 제때 약을 먹지 못하거나 치료를 받지 않으면 더 큰 병으로 번질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저자가 남자(물론 남자들의 우울증도 중요하다)보다 여자들의 우울증에 관심을 갖고 초점을 맞춘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전시대에 비해 수많은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게 되면서 그들이 짊어져야 하는 사회적 역할은 더욱 늘어나게 되었다. 가정과 출산, 육아를 담당했던 부모세대의 여성들과 달리 이제는 직장인으로서의 역할과 동료, 선배, 후배 그 밖에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까지도 짊어지게 된 것이다. 남성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일들이 여성들에게는 고민과 갈등 이후에 선택하고 감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많은 에너지가 소비된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크게 진보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구시대적 여성성을 당연시하거나 여성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하고, 성차별과 편견을 내세워 실력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런 가운데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여성들 스스로 가면을 쓰고, 자신을 지키고 살아남기 위해 무척 애를 쓰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바라고 원하는 것을 충족시키는 데만 몰두하지, 실제로 이것을 할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 흥미가 있는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근심과 피로 그리고 종종 몰려오는 좌절감은, 능력과 완벽함이라는 가면 뒤에 숨긴 채 말이다.

p.28

 

  그러다 보니 아무도 보지 않는 밤에 가면을 벗고, 잃어버린 모습과 힘들었던 관계,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우는 일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불행하게도 많은 여성들이 이것을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바로 그런 여성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 말을 건넨다. 울지만 말고 일어나 앉아 자신과의 대화를 시작하라고 말이다. 내 우울의 정체를 파악하고, 몸을 움직여 변신할 준비를 하며, 주위에 도움도 청하라고. 또한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친절하라고 가르쳐준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여성을 너무 한쪽으로 몰아가는 것 같아 저자의 의견에 공감하기 어려웠다. 소수의 사례를 일반화 시키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부정적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소수의 여성이 겪는 어려움은 언젠가 전체 여성의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회는 고리처럼 연결되어 있는 집합체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망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개인에게 벌어지는 일들은 곧 공동체의 문제로 번지게 되어 있다. 여성들이 행복하지 못한 사회에서는 남성들도 행복하게 살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이 먼저 스스로 행복해지고 가면을 벗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가면을 벗고 싶은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자. 우울 안에 갇힌 내가 벗어나기 위해 손을 내밀면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걸어줄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자. 그리고 그 첫 번째 친구가 바로 자기 자신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선량한 차별주의자 (30만부 기념 거울 에디션)
김지혜 지음 / 창비 / 2024년 12월
평점 :
품절


 

선량하다선량은 착하고 어진 성품이란 뜻이다. 그에 비해 차별은 둘 이상의 대상을 각각 등급이나 수준 따위의 차이를 두어서 구별하고 나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어질고 착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등급이나 수준에 따라 나누고 구별한다는 것인데 이것이 성립될 수 있는 말일까? 그러나 역설적으로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 제목만큼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는 말은 없을 것이다.



나에게도 이러한 경험이 있다. 20대때 집 근처 복지관에서 꽃꽂이 강습을 받았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꽃을 손질하고 아름답게 꾸미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순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날은 졸업 시즌이라 장미꽃 스무 송이를 빨간 종이 상자에 담아 포장하는 패키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때 수업 내내 창밖에서 우리가 꽃을 다듬고 포장하는 것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수업이 끝나고 바쁜 일이 있어서 제일 먼저 밖으로 나왔는데 우리 수업을 지켜보던 그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휠체어를 탄 젊은 남성이었는데 나를 보자 다가오더니 꽃다발 상자를 볼 수 있냐고 물었다. 문제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나의 반응이었다. 나는 그 순간 꺄악!” 소리를 지르며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 나는 왜 놀라서 소리를 질렀을까? 지금 같았으면 오히려 그에게 꽃이 담긴 상자를 기꺼운 마음으로 내어줄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아마 그 사람의 눈빛보다 그가 타고 있는 커다란 휠체어와 성별이 내게 먼저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나의 행동에 대해 지금까지 후회하고 있다. 분명히 그렇게 소리를 지를 마음은 아니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차별을 받으면 받았지, 내가 누군가나 어떤 집단을 차별하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차별은 나쁜 것이고, 그것은 힘이 있고, 권력을 가진 집단이나 사람들이 하는 행동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현재 편안하게 누리고 있는 권리에 대하여 특권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너무나 당연해서 누구나 누리고 있으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게으르거나 무지하다고 함부로 판단했다.



장애인이 버스를 타면 시간이 더 걸리니까 돈을 더 많이 내야 하는 것 아닐까요? 26.p

라고 말한 학생과 생각이 조금 다르지만, 시간이 촉박할 때 마침 휠체어를 탄 사람이 버스를 탔던 적이 있었는데 시간을 끄는 상황에 짜증이 났던 일이 있었다. 나처럼 비장애인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게 된 것 이면에는 그들에게 유리한 속도를 외면하고 효율성을 기준으로 삼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혹 누군가는 차별하는 것이 왜 나쁘냐고 반감을 나타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민주주의 사회와 그 제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질문일 수 없다. 우리는 과거 귀족과 평민, 노비에 따른 신분 차별과 성별, 피부색 등으로 평가하는 야만적인 사회의 제도와 관념을 깨고, 현재 민주주의 사회로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받았던 혜택과 자유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평소에 책 읽기를 매우 좋아하는 데 집 가까이 걸어서 갈 수 있는 도서관이 많이 있고, 상호대차 서비스까지 받을 수 있어 편하게 독서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편리한 서비스가 대한민국 전 지역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울과 경기도만 해도 그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전체적으로 범주화하고, 단순화시키면 한 지역이나 도시에 몰려있는 서비스가 숫자상으로는 전체가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판단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좀 더 객관적이고 면밀하게 이 사회를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차별은 어떻게 시작되는 것일까? 인간은 예전부터 기준을 정해놓고 타인들을 구분하거나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신분에 따라 옷의 색깔과 길이, 장식의 제약을 두고 어기는 사람에게는 큰 불이익을 주었으며, 글을 아는 사람들만이 수많은 정보와 기회를 선점했다. 그것이 점점 쌓이다 보면 나와 네가 다르다는 인식이 저절로 싹틀 수밖에 없다. 과거 남아공에서는 굳이 백인과 흑인 아이가 같이 노는 것을 강제로 억누르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흑인 구역에는 하수도 시설과 화장실을 만들어주지 않았다. 흑인 구역 아이들은 지저분하고 역한 냄새가 났을 것이다. 백인 아이들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아서 그들과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도 이런 차별적인 행동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도 임대와 일반아파트를 구분하고,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빈부와 성적으로 나누는 차별은 더욱 견고해지고, 그대로 발현되고 있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내 안에도 차별적인 시선과 가치관이 나도 모르는 채 내재화 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생각과 행동으로 수없이 차별적 행동을 했었던 것을 인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상황이 역전되고 자리가 바뀌게 되면 그때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배려와 당연히 행해져야 할 일들이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나는 산에서 넘어져 발목에 골절 사고를 당하여 수술한 경험이 있다. 수술 후 다시 예전 상태로 돌아오기까지 6개월 정도 걸렸는데 목발을 하고 밖에 나갔다가 작은 턱도 넘지 못하여 힘들어했던 일이 생생하다. 우리 사회가 소수자와 약자에 대하여 배려하지 않았다는 것을 몸을 느낄 수 있었다.



화장실은 그 사회의 평등 수준을 가늠하게 하는 꽤 훌륭한 척도다.’ 172.p

나는 평소에 우리나라 공공화장실의 시설과 청결 상태를 높이 평가했었다. 이것 또한 다수가 사용하는 화장실에 국한된 평가라는 것을 깨닫고 나의 시선의 한계를 느꼈다. 동성애자나 게이, 레즈비언 등을 나는 한 명의 존재자로 바라보았는가. 아마 생각에서 아예 배제하고 남자와 여자, 어린아이와 성인으로만 구분하였던 것같다. 그들도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권리를 누릴 수 있는 높은 인식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람이 화장실을 이용하는 일에 있어서 불편과 수치심을 느낀다면 그것은 개조하고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그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이자 당연한 절차이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으나 나를 포함하여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 아니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에 대하여 깊이 이해하며, 객관적 시선을 유지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의 가치관과 타인을 대하는 태도, 사회를 향했던 나의 시선 등을 다시 되돌아볼 수 있었다. 저자의 연구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적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 같아 놀랐다.



차별에 민감하거나 둔감할 수 있는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며, 너무나도 익숙한 어떤 발연, 행동, 제도가 차별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가? 내가 보지 못한 차별을 누군가가 지적했을 때 방어하고 부인하기보다 겸허한 마음으로 경청하고 성찰할 수 있는가?’ 189.p

다양하게 제시된 사례와 질문 앞에서 나는 잠시 책 읽기를 멈추고 고민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도 차분하게 사유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 또한 대한민국의 기독교인으로서 차별금지법에 대하여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무례하게 굴었던 일부 보수 기독교계로 인해 상처받은 소수자들에게 사과하고 싶었다. 또 짧은 뉴스 기사나 SNS를 통해 단편적으로 접했던 사회 문제를 긴 호흡으로 읽고 들여다보며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기도 했다.



앞으로 내가 지녀야 할 태도는 어떤 것인가? 그리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에 대하여 나는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인지 여전히 과제와 고민이 가득하다. 앞으로 모든 분야에서 사회적 담론과 상황에 따른 깊은 사유와 공부, 연대가 필요할 것이다. 물론 고민하고 목소리를 높인다고 해도 한국 사회가 빠르게 변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함께 고민하고 목소리를 내며 부딪치면서 해법을 찾아 나갈 것이라 믿는다. 우리는 언제나 차별하는 자에서 차별당하는 자로 자리를 바꾸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란놀 2025-02-10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미나 벌레나 지렁이를 보며 징그럽다고 소리치는 사람이 많고, 파리나 모기를 보며 싫다고 여겨 바로 때려죽이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거미와 벌레와 지렁이가 없으면, 사람은 밥을 아예 못 먹습니다. 파리와 모기가 없으면, 사람은 쓰레기밭에 파묻혀 죽습니다. 다름(차이·차별)을 자꾸 작은이(소수자) 쪽으로만 몰아가려는 ‘진보’가 넘치는데, 여태 어느 ‘진보’도 ‘시골에서 자가용 없이 군내버스 타는 작은이 권리’를 말한 적이 없습니다. 어느 ‘진보’도 ‘시골에서 농약·농기계·비료·비닐 없이 논밭을 돌보는 작은이 인권’을 말한 적마저 없어요. 예부터 ‘깍두기’라고 해서 모든 쪽에 어울리며 같이 노는 살림살이로 ‘다름’을 품었습니다. 틀에 박는 ‘인권·태도’가 아닌, 너랑 내가 다르기에 다른 만큼 새롭게 어울리는 사랑을 바라볼 때라야 모든 실마리를 푼다고 느낍니다.

hope&joy 2025-02-13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바라보지 못한 곳에 차별이 매우 많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고맙습니다.
 
휴먼 에이지 -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의 지구사용법
다이앤 애커먼 지음, 김명남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계 곳곳에서 지진과 가뭄, 산불이 계속 발생한다. 지구 위에 살았던 수많은 종들이 초단위로 멸종되고, 매년 지구의 온도는 뜨거워진다. 올 여름 7월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각국에서 이상기온이 일어나서 사람들의 삶을 힘들게 했다. 나 또한 햇빛 속에 노출되는 것이 두려워 외출을 꺼렸었다. 나름 지구를 걱정하고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주범이란 인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분리수거에 힘쓰고, 플라스틱이나 비닐 사용을 자제하려고 힘쓰지만 거기까지이다. 솔직하게 내 주위를 둘러싼 변화나 다른 생물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갖거나 좀 더 확실하게 변화를 일으키고 환경을 개선하는 데는 무관심하고 무지하다. 머리로는 심각하다는 것은 알지만 피부에 와 닿는 현실감은 떨어진다.

 

 

  그러나 <<휴먼 에이지>>를 읽으며 나의 생각은 달라졌다. 이 책은 지구 환경의 심각성에 대한 보고서가 아니며, 지구를 살리기 위한 실천 방안을 알려주는 책도 아니다. 어떻게 보면 블랙코미디 같다. ‘돌들의 방언이나 황금 말뚝’, ‘태양의 숨결등 문학적인 비유와 문장들이 끔찍하고 두려운 상황 속에서도 웃음을 터트리게 한다. 지구의 모든 생명은 너무나 가깝게 우리와 연결되어 있었으며, 그 심각성은 상상 이상이지만, 너무나도 다행인 것은 아직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이 무궁무진하다. 어쩌면 이미 우리 자신도 모르게 실천하고 있을지 모른다.

 

 

책을 읽다가 반가운 문장을 마주했다. 눈물 날 정도 반갑고 고마웠다.

 

 

전동차가 휙 지나갈 때는 늘 열풍이 솟구쳐 먼지바람이 일고 신문이 플랫폼에 떨어진다. 이런 바람은 북아프리카, 지중해, 남유럽에도 불고 있을 것이다. ‘이걸로 뭔가 할 수 있겠는데하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가. 그래서 한국의 세 디자이너 홍선혜, 유찬형, 조신형은 전동차가 일으키는 바람으로 도시에 전기를 공급하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그들이 설계한 바람 터널은 지하철의 여러 노선에서 전동차가 지나갈 때 휘날리는 바람을 붙잡은 뒤 터널 벽에 설치된 터빈과 발전기로 보내는 것이다. 146.p

 

 

  이밖에도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구의 환경을 되살리고 에너지를 재사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디자이너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가정에서 작은 텃밭을 기르고 슬로우 푸드를 먹는데 익숙해지는 것 또한 지구를 사랑하는 일이다. 지구의 하늘과 산, 대지, 바다에서 갈취해 우리의 삶을 편안하고 더 편안하게 만드는 일들은 이제 지양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계속해서 도시를 확장시켜 나가다 보면 어느 날 우리 집 화장실에서도 구렁이는 아니라도 커다랗게 진화된 지렁이를 마주하게 될 지도 모르니까.

 

 

  우리는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이미 커다란 대가를 치루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침입종 스스로 또다른 뜨내기를 실어올 때가 있다. 그것이 우리가 면역되지 않은 보균 미생물인 경우도 있다. 최근 샌프란시스코의 한 여성이 기르던 보아뱀 래리가 아팠을 때, 과학자들은 보아뱀의 유전체를 조사하다가 아레나바이러스가 뒤죽박죽 섞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았다. 아레나바이러스는 에볼라, 무균성수막염, 출혈열처럼 악몽 같은 질병들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다. 186.p

 

 

  오늘도 나의 육체와 영혼 속에는 지구에서의 많은 유전자가 새겨졌다. 지구에 내가 존재했다는 흔적을 남겼다. 그 와중에도 책을 읽으며 베란다에 심어둔 식물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다른 종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보다 다른 종들이 우리를 언제까지 봐주고 이해해 줄 수 있을 것인가, 하늘과 산과 물속에서 자유로웠던 창세기의 세계를 너무 추상적으로 이해했던 나에 대해서 생각했다.

 

 

  아주 오랫동안 우리가 지구의 주인이라는 착각 속에서 살아온 것 같다. 그 착각에서 벗어나되 저질러버린 일들에 대하여 함께 고민하고 각자의 삶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책임져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21-10-08 18: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hope&joy 2021-10-08 1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초딩 2021-10-13 0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선정 축하드려요 ^^
좋은 하루 되세요~

hope&joy 2021-10-13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자화상 그리는 여자들 - 여성 예술가는 자신을 어떻게 보여주는가
프랜시스 보르젤로 지음, 주은정 옮김 / 아트북스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림에 대한 책을 읽으며 감동받은 것이 참 오랫만이다. 미술을 좋아하기 때문에 가볍게 선택했다가 읽는 내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부딪쳤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혜택들이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지금도 '여성'이라는 프레임에서 여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기에 각 분야의 여성들이 어떻게 연대하고 힘겨운 자기만의 싸움을 이어왔는지 되돌아 볼 수 있는 책이었다.


 자화상이란 화가 자신이 스스로 그린 자기의 초상화이다. 타인이 아닌 자신의 얼굴을 그릴 때 작가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그속에 담겨진 수많은 욕망들이 한편의 그림으로 보여지는 것이 신기하다. 자세와 표정, 자신이 들고 있는 도구, 그리고 그림 속 배경을 무기삼아 '나는 이런 사람이다. 이런 삶을 살고 싶고,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여성 화가들의 끊임없는 도전은 시대의 무지와 편견, 체제와 제도를 깨고 계속 발전해 나갔다. 인간의 본성을 권력과 전통이라는 굴레로 막을 수 없는 것이다.

 

 시대와 권력은 여성들의 미술계 진입을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고 입지를 다져갔다. 그것이 개인적인 싸움이었든 아니든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을 것이고, 고정관념을 깨는 발판이 되었을 것이다. 언제나 선구적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에게 바톤을 이어받은 다음 주자들은 그것을 자양분 삼아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유딧 레이스터르의 자화상은 '내게 세상이 무엇이라고 떠들든 나는 내가 원하는 세계를 걸어갈 것이다.'라고 말하며 당당하면서도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좋다. 그녀가 캠퍼스 속에 그린 악공의 그림도 익살스러움과 함께 세상을 비웃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런 여성의 자화상은 단순히 자신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서서 시대를 뛰어넘어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우리가 잘 아는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은 자기 성찰과 공개적인 발언의 자유, 자화상 연작 등을 하나로 묶어서 보여준다. 그녀의 모든 작품은 자화상이자 고통과 열정 가득한 삶의 기록이다.(215.p) 프리다 칼로 이후 아름다운 것만을 그리는 것에서 벗어나 삶을 뒤흔드는 사건들을 자화상으로 표현하며 그것을 극복해 나가려는 의지를 다졌다. 아름다운 것만이 아니라 고통도 자화상의 주제가 되었고, 그것은 여성들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메시지도 되었다.

 


'이 그림은 두려움, 도시의 밤과 관련된 여성의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 그라피티를 연상시키는 채색된 흔적에는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유기된 공공장소에 대한 암시와 더불어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머리 위치의 변화에 의해 야기되는 긴장감과 혼란, 위협은 이 작품을 보다 함축적인 것으로 만든다.'(257.p)


 나는' 수전 힐러의 <한밤중, 유스턴>1983년' 그림을 보는 순간 자연스럽게 '강남역 화장실 사건'을 떠올렸다. 그 당시 많은 남성들이 억지 혹은 우연적 사고에 대한 페미니즘적 대응이라고 말했을 때 느꼈던 공포도 함께 말이다. 그런 여성의 불안 또한 자화상의 주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시민들의 생각을 모으고,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 우리가 살고 싶은 사회는 어떤 곳인지 다시 공론화할 수 있게까지 나아가게 한다. 그것은 예술의 또다른 기능이자 역할일 것이다.


 

 이 글을 옮긴 역자는 '자화상은 왜 그리고 무엇을 위해 그려지는 것일까?', '자신의 얼굴을 선택하고 관찰하고 그림이나 사진, 조각 등으로 해석해 옮기는 행위의 밑바탕에는 어떤 동기가 놓여 있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품고 이 책을 따라갔다고 한다. 나 또한 책을 읽는 내내 그런 물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자신을 보여준다는 것은 내가 말하고 싶은 것, 원하는 것을 말하는 행위의 모습이니까. 끊임없이 내가 누구인지를 묻는 것, 그것이 삶을 살아가는 과정임을 <자화상 그리는 여자들>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잎새버섯치즈빵
시간이 여유로운 날 간편한 마음으로 만들어봅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