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번째 파도
최은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을 읽는 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 작품을 읽는 내내 생각했던 질문이다. 차를 타고 달려가면 금방 나올 것 같, 바다를 품고 있는 도시 척주’. 그곳에 가면 여전히 보건소에서 일하고 있는 송인화와 그의 동료들을 만날 것 같다. 또 그들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가운데 불쑥 떠오르는 사람들 때문에 아파하는 모습도 떠오른다. 작가의 필력과 끝까지 밀고 나가는 문장의 힘에 의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가 울컥거리며 올라왔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작가가 펼쳐놓은 세계 속으로 들어가 그 속의 인물들과 함께 숨 쉬고 방황하며 같은 체험을 하고 돌아오는 것인가 보다. 왜 공장이나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는 시간이 흘러도 반복되는 것일까? 우리 주변에서 수없이 일어나고 있는 사고들이 소설 속 아버지들의 목숨을 앗아간 시멘트 공장의 사고들과 겹쳐졌다. 그 안을 깊이 파고 들어가 보면 인간의 끊임없는 탐욕과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 소설 속 평안해 보이는 소도시 척주에서도 인간의 탐욕과 사익을 위한 음모와 비밀들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사람들을 덮는다. 탄광과 시멘트 공장이 있었던 마을답게 나이 많은 사람들은 신경통과 알 수 없는 병에 시달린다. 그들에게 남은 것이란 완치될 수 없는 병과 불안한 마음뿐이다.

 

 

-약물 오남용은 듣던 것보다 심각했고 약에 대한 노인들의 집착은 집도 부술 것 같았다. 그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무언가에 서서히 중독되거나 세뇌 당해온 사람들 같았다. -134.p

 

 

- 지병이 없는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몸이 아픈 사람들이 하는 생각은 하나였다. ‘안 아팠으면 좋겠다.’

 

 

-인간을 가장 손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 것도 약이었고 순간적으로 구원할 수 있는 것도 약이었다. 척주 땅에서 시멘트보다 강하고 시멘트보다 독한 것. 완치 가능성 없는 인간들의 비명을 길들일 가장 강력한 진통제. - 274.p

 

 

  이렇게 약해진 사람들의 마음을 이용한 사이비 종교의 교주, 자본가, 정치가의 암약은 척주시의 사람들을 둘로 갈라지게 만든다. 그 중심에 송인화가 있다. 시멘트 회사에 다녔던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녀의 삶은 척주와 멀어졌다가 가까워지기를 반복한다. 육지와 바다사이에서 밀려왔다가 멀어지는 파도처럼 말이다. 그것은 송인화의 옛 연인이었던 윤태진이나 사랑하게 된 공익근무원 서상화도 마찬가지이다. 척주는 그들을 놓아주지 않는다. 묶여있는 매듭을 풀기 전까지. 그들은 척주시를 휘감고 돌아가는 과거와 현재의 정치적 상황과 아픈 가족사를 좇으면서 사랑을 잃고 만나게 된다. 살아가다보면 처연한 아픔과 사랑을 느끼게 된다. 자신들을 향해 무섭게 돌진하고 있는 불행의 파도를 뻔히 바라보면서도 사랑하고, 연약한 어깨를 내어주며, 손잡아 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끝까지 나아가게 된다.

 

 

- 세상은 이런데 마음 기댈 데가 없잖아요. 누가 나만 믿어하고 확 끌어주면 눈물 날 것 같아요. - 175.p

 

 

- “상황이 만만치 않겠지만 마음 약해지지 마.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그 사업이 얼마나 필요한지. 여차하면 내가 보건소장이든 시장이든 찾아가서 드러누울 테니까, 밀고 나가.”

송인화는 은남 바다를 배경으로 앉아 있는 하경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인생의 고비마다 옆에 있어준 사람이었다. 밀고 나라가는 말. 송인화는 하경희한테 그 말을 들으려고 은남에 온 것 같았다. -193.p

 

 

  힘들고 불행한 일이 찾아와도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편이 되어 준다면 힘을 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그 한 사람들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다. 최은미 작가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대해 쓰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진심을 다해 인물들을 사랑할 수 있었고 그들의 고통을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었던 시간에 대해 말했다. 소설의 힘은 지금, 당장,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책을 읽은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요즘 문득 척주시의 사람들과 사건들이 떠오르는 것을 보니 말이다. 나라면 한 직장에서 살갑게 따랐던 동료와 정치적 반대편에 서서 갈등하게 될 때 어떻게 할까. 아무리 애를 써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의 인식과 싸우며, 강도 높은 일과를 감당해야 한다면 어떻게 버티어 낼 수 있을지 자주 생각하게 된다.

 

 

 누구나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아홉 번째 파도를 맞이하게 되겠지. 그전에 짜잘한 파도에 맞서 부딪치고 넘어지며 파도를 타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다. 도망가지 않고 그 파도 위에 올라탈 수 있도록. 파도에 맞서지 않고 그 위에 올라타는 상상만으로 마음이 조금 가벼워 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이 없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딩 2021-08-06 17: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서니데이 2021-08-06 1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hope&joy 2021-08-06 1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