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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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숨이란 하찮게 중단되게 마련이고 죽고 나면 사람의 일생이란 그뿐, 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인간이란 덧없고 하찮지만, 그 때문에 사랑스럽다고 말한다.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고, 즐거워하거나 슬퍼하거나 하며, 버텨가고 있다고 말이다.(p.227) 소라, 나나, 나기의 삶이 황정은 작가의 건조하고 차가운 문체 속에서 한 송이 꽃처럼 피어난다.

 

 남편의 죽음으로 삶을 포기한 엄마 애자씨, 그녀의 방치로 인해 시들어버릴 줄 알았던 소라와 나나는 도깨비집 나기의 엄마인 순자씨의 밥을 먹으며 다시 피어난다. 소라, 소라는 하나뿐인 부족의 하나뿐인 족장이다. 그래서 아버지 금주씨가 세상을 떠나고, 엄마 애자씨가 자신과 동생 나나를 돌보지 않아도 혼자서 자신의 부족을 잘 이끌어 나간다. 그런 소라가 동맹을 맺고 연합을 이루는 부족은 동생 나나와 친구 나기이다. 그들과의 소통이 소라의 세상이다. 소라는 소라로 일생을 끝낼 작정이었다. 멸종해 버릴 부족으로 말이다. 그런 소라에게 순자씨는 먹이고 삶을 나누어 주었다.

 

도시락이되 웬만해서는 어김없는 도시락.

그것을 맛본 경험이, 그런 것을 꾸준하게 맛볼 기회가 나나와 내게 있었다는 것을 나는 요즘도 골똘하게 생각해볼 때가 있다. 그게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렇게 가정하고 생각해보는 것은 조금 두렵다. 순자씨는 그 도시락으로 나나와 내 뼈를 키웠으니까. 그게 빠져나간 뼈란 보잘것없을 것이다. 구조적으로도 심정적으로도 허전하고 보잘것없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대단하지 않아? 보잘것없을 게 뻔한 것을 보잘것없지는 않도록 길러낸 것(p.44)

 

멸종 위기의 부족, 소라를 지켜준 것은 사람을 먹이고 키워보았던 그녀의 손맛이었다.

 

 나나는 앞으로도 뒤로도 아름답다는 이름을 가졌다. 언니 소라는 애자씨가 되지 않기 위해 엄마가 되는 것을 포기했지만, 나나는 평범한 집안의 평범한 모세씨의 아기를 가졌다. 그러나 타인 중 순자씨와 나기 오라버니에게만 열어 주었던 자신의 우주를 끝내 모세씨와 공유할 수 없어 그와 헤어지려 한다. 아기와 함께 그를 따라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그리웠던 순자씨와 소라, 나기 오라버니가 있는 세상으로 돌아온것이다. 그립고 즐겁고 애틋하고 두렵고 외롭고 미안하고 기쁜 마음이 뒤섞여 엉망진창인 세계로 말이다.

 

 나기는 소라와 나나의 다른 모습이다. 또 끈질기고 집요하게 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나기는 소라와 나나,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해 부정하지 않게 소중한 것을 볼 수 있도록 해 준 인물이다. 고등학교 시절 폭력을 당하고 친한 친구에게 배신을 당해도 자신만의 사람을 간직하며 살아간다.

 

 소라와 나나, 나기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던 애자씨와 금주씨, 순자씨 모두의 삶을 돌아보면 시시하고 초라하고 무의미했다. 그런 그들이 사라지지 않고 끝까지 버티면서 계속 살아가고 있다. 사람을 견디게 해주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닌 공감해주고 손잡아 주는 체온이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하찮다고 여기며 살아갈지라도 사소한 일상을 함께 나누며 버티게 해 주는 다른 사람들로 인해 삶은 계속 이어진다.

 

 물기를 쏙 빼버린 건조한 문장 속에서 고리처럼 이어져 있는 사람들 사이의 우주를 보았다. 그 속에서 부유하며 길을 잃고 방황해도 다시 돌아올 곳이 있어서 안심했다. 작가의 숨결이 느껴지는 소재이다.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에 사랑으로 살아간다고 말했다. 작가 황정은은 하찮음으로 살아간다고 했다. 하나의 질문과 하나의 단어, 도시락이나 만두 등과 같은 평범하지만 결코 삶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음식을 적절하게 배치하여 소설을 이어간 작가의 저력이 돋보인다. 소설을 읽으면서 하찮은 삶일지라도 우리는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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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
김숨 지음 / 창비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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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지금은 반죽의 시간입니다. 분분 흩날리는 밀가루에 물을 한모금 두어모금 서너모금 부어가면서 개어 한덩어리로 뭉쳐야하는 시간인 것입니다. 부르튼 발뒤꿈치 같을 덩어리가 밀크로션을 바른 아이의 얼굴처럼 매끈해질 때까지 이기고 치대야 하는 시간이지요. 여무지게 주물러야 하는……

                                                                                                                                                                                                                              p.  p.49

 

 

  현재축은 국수를 끓이고 있는 지금이다. 김숨의 소설은 전반적으로 현재축이 짧다. 며느리의 부고 소식을 듣고 서울로 올라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진행되는 노부부이야기(막차), 노모의 시신을 모시고 구급차로 내려가는 두 자매이야기(옥천 가는 길) 등 짧은 현재축과 한정된 공간에서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밀도있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힘이 있다. 소설<국수> 또한 고향집에 내려와 새어머니에게 국수를 만들어주는 하루 동안에 일어난 이야기다. 거기에 인물과 얽힌 음식인 국수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연결시키는 구성을 선택했다.

 

- ‘국숫발 삶는 냄새 …… 그 냄새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밀가루로만 반죽해 뽑아낸 국숫발들이 삶아지면서 풍기는 그 냄새를 말이에요. 담담 심심한 듯 은근히 구수한, 잊고 있던 허기를 슬그머니 흔들어 깨우는 그 냄새를……

p.52

 

 

 그만큼 국수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묘사와 비유, 감각적인 표현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으면서도 소설의 건조함을 계속 유지한다. 소설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는 건조함이다. 하얀 밀가루가 폴폴 날리고, 반죽덩어리를 밀어내는 과정 속에서 아기를 낳을 수 없어 자신의 집으로 재가를 한 새어머니와 여러 번 유산을 하고, 다시 인공수정을 해야 하는 가 국수 가락 같은 인연의 끈을 이어간다. 국수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으며, 하나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개인사가 국수라는 소재와 만나 절제된 문장으로 전달되고 있다.

 

 

- 싹둑 잘려버려 가지를 뻗을 수 없으니, 더는 잎도 꽃도 못 피우고 열매 또한 당연히 맺지 못하는 나무 밑동이 나비 떼를 날려보내는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지요. 구름이 바위처럼 무거워지고 바람이 성난 염소처럼 사납게 휘몰아치는 밤새, 수천마리의 나비를 제 안에 꼭 품고 있다가 날려보내던 그 장면이 말이이에요. 만약에요……그 나무가 온전한 나무였다면, 그나마 남은 밑동 속이 동굴처럼 비어 있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 많은 나비를 품을 수 있었겠어요. 그러고 보면 당신은 우리에게 밑동만 남은 나무가 아니었을까요, 박쥐가 드글대는 혼돈의 밤, 기꺼이 우리를 품어주었던……우리가 아무리 발광을 쳐대도 뿌리를 땅속에 단단히 내릴고 흔들리지 않던……나무 밑동에서 날아오른 나비들은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코발트빛 여명속으로 흩어졌지요.

p. 78

 

 

 나비떼를 품은 속이 빈 나무와 그녀를 일치시키고 있는 이 장면은 하늘로 날아가는 나비떼가 눈에 보이는 듯 선명하게 그려진다. 김숨의 소설에는 한 장면씩 머릿속에 선명한 이미지를 남게 만드는 묘사가 있다. 그것이 김숨이라는 작가의 단편소설을 기억하게 만든다. 그러나 아기를 낳지 못한 여인의 시간, 고통을 담은 소재는 낡았다는 생각이 든다. 국수라는 음식 또한 한몫 더해준다. <국수>를 읽는 동안 김숨이란 작가의 섬세함을 느낄 수 있었으나 소재면에서는 한계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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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왕.안티고네.엘렉트라 내 인생을 위한 세계문학
소포클레스 지음, 이미경 옮김 / 심야책방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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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포클레스의 <엘렉트라>와 에우리피데스의 <엘렉트라>

 

 

1. 소포클레스의 <엘렉트라>

 

클뤼타임네스트라는 악몽을 꾸고는 딸 크뤼소테미스를 보내 아가멤논의 무덤에 제주를 바치게 하지만 아버지를 애도하는 엘렉트라가 그 제물들을 내다버리라고 한다. 크뤼소테미스는 언니 엘렉트라에게 강자에게 굴복하는 지혜를 가지라고 충고하지만, 엘렉트라는 아버지의 원수인 어머니와 아이기스토스를 저주한다. 이때 클뤼타임네스트라가 나타나 엘렉트라를 꾸짖자 모녀 사이에 격렬한 언쟁이 벌어진다. 한편 오레스테스는 델포이의 신탁이 지시한 대로 죽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친구 퓔라데스와 어릴 적 가정교사와 함께 뮈케나이에 도착한다. 가정교사가 먼저 나타나 클뤼타임네스트라에게 오레스테스가 죽었다는 말을 하자 그녀는 안심하고 퇴장한다. 엘렉트라는 절망에 빠지고 혼자서라도 어머니와 아이기스토스를 죽이기로 결심할 때 오레스테스와 퓔라테스가 나타나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그리고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궁전 안으로 들어가 클뤼타임네스트라를 죽이고, 이어서 아이기스토스는 아가멤논이 살해되었던 방에서 살해되게 된다.

 

- 소포클레스의 많은 작품들처럼 <엘렉트라> 또한 위대한 인간이 가혹한 운명과 씨름하며 어 떻게 자신의 주장을 어떻게 펼쳐나가는지 보여주고 있다. 엘렉트라에게 닥친 운명은 먼저, 아버지를 죽이고 다른 남자와 동침한 어머니의 부정이다. 그로인해 자신은 학대를 받으며, 결혼도 하지 못하고 점점 쇠약해 간다. 그러면서도 위험에 빠진 남동생 오레스테스가 외국으 로 도망갈 수 있게 도와주며, 복수를 꿈꾼다. 한편 그런 엘렉트라에게 동생 크뤼소테미스는 살기위해 옳을 것을 따지지 말라고 말한다.

 

크뤼소테미스: ……옳은 것을 따지자면, 내 말이 아니라 언니의 선택이 옳아요. 하지만 자유롭 게 살자면 매사에 통치자들의 말을 들어야 해요.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모두 부재하고 위험에 처할 수도 있지만, 엘렉트라는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자신이 도망치도록 도와준 오레스테스가 죽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흔들리지 않고, 혼자서 어머니를 단죄하겠다는 엘렉트라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이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외롭지만 의연한 인간의 의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2. 에우리피데스의 <엘렉트라>

 

아이기스토스는 자신에게 해가 될까봐 엘렉트라를 귀족이 아닌 늙은 농부에게 시집보낸다. 그러나 농부는 귀족의 여자에게 손을 대지 않고 정중하게 대해준다. 엘렉트라는 시골 산속에서 물을 길러 나왔다가 동생 오레스테스와 필라데스를 만나게 되고, 그가 곧 동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리타이메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에게 복수할 결심을 한다. 마침 님프 여신에게 제사를 올리기 위해 종들을 데리고 나온 아이기스트스에게 접근하여 그를 죽이게 된다. 그의 시체를 갖고 엘렉트라의 오두막으로 오게 된 오레스테스는 엘렉트라가 아들을 낳았다고 거짓말을 하여 오게 된 어머니 또한 죽이게 된다. 그리고 이때 디오스크로이 형제가 나타나 엘렉트라를 필라데스에게 주어 그의 집으로 데리고 가게 한 다음, 오이스테스는 팔라스 아테나의 성스러운 도시로 가서 판결을 받고 살아가게 한다.

 

에우리피데스의 <엘렉트라>에서는 왕비 리타이메스트라가 왜 아가멤논을 죽여야 했는지에 대한 사연이 소개된다. 복수와 살인은 그냥 일어난 것이 아니며, 그에 따른 이유가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러나 엘렉트라는 어머니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딸을 위해 남편을 죽인 것이 정당하다면 아버지를 위해 어머니를 죽이는 것도 정당하다는 말로 맞선다. 그리고 어머니를 죽이는 것에 대해 고뇌하는 동생 오레스테스를 질타하며 결국 어머니를 죽이게 한다.

 

에우리피데스는 고뇌하는 엘렉트라를 더욱 가엾게 여긴다. 어머니로부터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의 정부에 의해 목숨의 위협을 받았으며, 그로 인해 늙은 농부에게 억지로 시집가게 된 엘렉트라에게 좀더 많은 애정을 갖고 있다. 그런 그녀를 동생 오이스테스를 도와준 절친한 친구 필라데스와 결혼하게 해 주면서 그동안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보상받게 해주며, 그녀를 존중해준 농부에게도 보상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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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리스도인 되기 - 새로운 수도원 운동이 찾은 그리스도인 본연의 삶
조너선 윌슨하트그로브 지음, 손승우 옮김 / 비아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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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실컷 욕을 먹는 요즘이다.
그러나, 그래서, 더욱더 다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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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
윌리엄 세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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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햄릿>은 아버지 햄릿 왕의 죽음을 애도하는 덴마크의 왕자 햄릿의 비통한 모습부터 보여 준다. 햄릿 왕은 궁궐 정원에서 잠을 자다 독사에 물려 죽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왕이 서거한 지 채 두 달도 지나지 않아 삼촌 클로디어스와 햄릿의 어머니 거트루드 왕비가 혼례를 치르게 된다. 어머니와 함께왕의 자리도 삼촌의 손아귀에 들어가 버렸다. 이렇게 이중의 고통을 겪게 된 햄릿은 삶의 의욕을 잃고 크게 상심한 채 방황한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면서 어머니를 저주하게 된다.

 

햄릿 오, 너무나 더럽고 더러운 이 육신이

허물어져 녹아내려 이슬로 화하거나,

영원하신 주님께서 자살금지 법칙을

굳혀놓지 않았으며, 오 하느님! 하느님!

이 세상 만사가 내게는 얼마나 지겹고,

맥빠지고, 단조롭고, 쓸데없이 보이는가!

역겹다, 아 역겨워, 세상은 잡초투성이

퇴락하는 정원, 본성이 조잡한 것들이

꽉 채우고 있구나. 이 지경에 이르다니!

 

……

 

쓰라려 불그레한 그녀의 눈에서

가장 부정한 눈물의 소금기가 가시기도 전에

결혼했어 - 오 최악의 속도로다!

그렇게 민첩하게 상피붙을 이불 속에 뛰어들어!

이건 좋지 않고, 좋게 될 수도 없는 일.

허나 가슴아 터져라, 입은 닫아야 하니까.

                                                                                                                 p.24~25

 

 이처럼 아버지의 죽음, 삼촌과 어머니의 죽음은 젊은 햄릿 왕자에게 부정적 영향을 주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햄릿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술 마시고, 괴로워하며 어머니와 삼촌을 저주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유령이 햄릿 왕자의 친구 허레이쇼 앞에 나타나 죽음에 관한 비밀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 유령은 곧 햄릿에게도 찾아온다. 햄릿은 아버지 유령을 만난다. 클로디어스가 자신을 살해했다고 고해바친 유령은 햄릿왕자에게 자기를 복수하라 명한다. 피 끓는 분노를 느낀 햄릿 왕자는 처음엔 순순히 복수를 다짐한다. 하지만 이내 그 유령이 진정 아버지의 혼령인지, 아니면 자기를 악의 구렁텅이로 유혹하려고 나타난 지옥의 사자인지 의심한다. 그럴수록 햄릿의 괴로움은 커지고, 그 안에서 갈등은 더욱 깊어진다.

 

햄릿 있음이냐 없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느 게 더 고귀한가. 난폭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맞는 건가, 아니면

무기 들고 고해와 대항하여 싸우다가

끝장을 내는 건가. 죽는 가--자는 것뿐일지니,

잠 한번에 육신이 물려받은 가슴앓이와

수천 가지 타고난 갈등이 끝난다 말하면,

그건 간절히 바라야 할 결말이다.

죽는 건, 자는 것, 자는 건

꿈꾸는 것일지도 -- , 그게 걸림돌이다.

왜냐하면 죽음의 잠 속에서 무슨 꿈이,

우리가 이 삶의 뒤엉킴을 떨쳤을 때

찾아올지 생각하면, 우린 멈출 수밖에--

그게 바로 불행이 오래오래 살아남는 이유로다.

 

……

 

                                                                                                                  p.94~95

 

  햄릿은 비밀을 알아버린 자였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고 있는 자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짐은 더욱 무겁고, 갈등은 배가 되었다. 고심 끝에 왕자는 클로디어스가 저지른 살인을 똑같이 재현하는 연극을 왕과 왕비 앞에서 상연하기로 결심한다. 클로디어스의 반응으로 유무죄를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햄릿은 이 연극 안의 연극쥐덫이라는 제목을 붙인다. 연극을 보고 간담이 서늘해진 클로디어스는 공연장을 황급히 떠나 버리고, 이를 본 햄릿 왕자는 그의 유죄를 확신한다. 곧이어 햄릿은 홀로 성당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는 클로디어스를 발견한다. 하늘이 준 기회였지만 햄릿은 클로디어스를 죽이지 않는다. 기도하다 클로디어스가 죽으면 그 영혼이 곧바로 천국으로 갈 것이 걱정되었던 것이다.

  햄릿이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동안 결국 모든 상황은 비극으로 내닫는다. 왕비 내실 커튼 뒤에서 인기척을 낸 클로디어스는 햄릿의 칼에 맞아 죽고, 옛 연인 오필리어는 물에 빠져 죽고 만다. 오필리어의 오빠 레어티스는 순식간에 가족을 둘이나 잃고 격분하고 시시비비를 제대로 가려 주지 않는 클로디어스에게 반기를 든다. 그러나 클로디어스는 간교한 말로 레어티스를 꾀어 그의 분노와 칼끝이 햄릿을 향하게 한다. 햄릿과 레어티스의 시합 도중 무심결에 아들 햄릿의 음료를 마신 거트루드가 숨을 거둔다. 레어티스와 햄릿은 둘 다 독을 바른 검에 찔려 치명상을 입는다. 시합 동중에 칼이 한 번 바뀌었기 때문이다. 레어티스의 온 몸에도 급속도로 독이 퍼진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야 햄릿은 클로디어스를 죽인다. 영국에서 온 사신이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이 처형되었다는 소식도 전해 준다. 햄릿이 바꿔 친 편지가 효력을 발휘한 것이다. 충직한 허레이쇼는 자결하여 햄릿 왕자의 뒤를 따르려 한다. 그러나 햄릿은 그에게 살아남아 자신의 이야기를 후대에 전해 달란 부탁을 남긴다. 노르웨이의 왕자 포르틴브라스가 왕국의 새로운 영도자가 되어 피로 물든 덴마크의 질서를 바로 세운다. 덴마크는 새로운 왕과 국가의 독립을 맞바꾸었다.

  햄릿의 마지막 결단은 결국 모든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덴마크의 젊은 왕자는 아버지의 죽음, 삼촌과 어머니의 결혼으로 인해 현실에서 살아갈 의지를 잃었다. 비열하고 저속한 삼촌을 미워하면서도 저항할 힘을 기르지 못했다. 그런 햄릿 앞에 아버지의 유령이 나타나 복수를 부탁하고 사라졌다. 이젠 햄릿이 이 모든 상황 앞에서 어떻게 어려움을 떨치고 나가야 할 것인가 고민했어야 했다. 그가 고민한 것은 복수할 것인가 그냥 넘어갈 것인가가 아니었다.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잘못된 비리를 해결하고 아버지의 억울함을 갚을 것인가 새로운 왕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힘을 키워 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아버지의 원수를 갚든 왕이 된 삼촌에 맞설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아버지 유령에서 벗어나 자신의 길을 찾아야만 했다. 그러나 햄릿은 아버지 유령의 말과 자신의 나약함, 갈등속에 갇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죽음으로 몰고 갔다. <햄릿>은 결말은 끔찍한 비극이다. 살아남은 자 없이 모두가 칼에 죽고, 독에 죽고, 물에 빠져 죽는다.

  <아버지의 유령>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햄릿, 즉 젊은 세대는 자신의 길을 갈 수 없다. 아버지가 만들어준 안락한 환경과 지식은 젊은 세대를 편안하고 안전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새로운 길을 닦기 위해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아버지가 쌓아올린 것에서 다시 출발하는 만큼 시행착오도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의 유령도 끌어안고 살아야 한다. 아버지의 시대가 해결하지 못한 악행과 불행이 아들의 목을 잡고 늘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아들과 그 세대를 파멸로 몰고 갈 수도 있다. 고민과 갈등은 이 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아버지의 왕관과 복수를 선택할 것인가, 삼촌을 치고 무너진 자신의 왕국을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인가. 내가 선택한 사랑에 대해 책임을 지고, 앞으로 어떠한 미래를 살아갈 것인가의 고민 말이다. 그리고 선택한 삶에 대해 행동하며 나아가야 한다.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을 감당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아버지 세대의 유령과 마주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삼촌과 어머니의 결혼에 낙담하지 말아야한다. 이 시대의 햄릿은 아버지의 유령에서 벗어나 자신의 길을 나아가야 한다. 새로운 길을 열어나갈 때 그 길에서 만난 우리의 유령과 씨름하고 갈등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렇게 햄릿만의 왕국을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햄릿, 아버지의 유령에서 벗어나 너의 길을 걸어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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