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세계사 - 거꾸로읽는책 3 거꾸로 읽는 책 3
유시민 지음 / 푸른나무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고등학교 1학년때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그때 읽으면서 매우 놀랐던 기억이 나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행히 졸업 - 소설가 8인의 학교 연대기
장강명 외 지음 / 창비 / 201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제 막 날기를 시작한 너희들을 응원하며

다행히 졸업 - 장강명의 새들은 나는 게 재미있을까

 

1990년대에도 입시경쟁은 치열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아침 자율학습을 하기 위해 720분까지 등교를 하고, 10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가면서 장난 삼아 선생님께 집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했던 적도 있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종종 있지만, 학교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냈던 고등학교 시절로는 가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내게 있어 그 시절은 도시락과 입시를 준비한다는 위세로 가장 배부르고 당당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엄마는 딸에게 따뜻한 밥을 먹이겠다고 3년 내내 4교시가 끝나기 20분 전 똑같은 시간에 경비실에 도시락을 맡겨 놓고 가셨다. 그 속에는 컵라면이나 떡볶이 등을 사먹을 수 있는 1000(그때는 육개장 컵라면이 300, 떡볶이 1인분이 500원이었다.)도 함께 들어 있었다. 도시락을 가지러 갔던 경비실에는 내 도시락뿐 아니라 다른 친구들의 도시락도 키 재기를 하듯 함께 놓여 있었다. 경비 아저씨께 엄마 고생 시키지 말고 네가 아침에 들고 와.” 라는 호통을 3년 동안 들으면서도 당연한 듯 당당하게 먹었던 도시락 때문에 나는 무언가 충만하게 채워진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물론 집과 학교가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나는 그런 도시락을 먹으며  몸도 마음도 함께 성장했고 자기 밥벌이를 감당하는 어른이 되었다.

 

  청소년들에게 밥(급식)은 몸은 물론이고 정서적 성장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세월이 흘러 사람들의 생활은 매우 바빠졌다. 맞벌이 가정이 다수를 이루는 현재 대한민국의 초··고등학교 점심시간은 도시락이 아닌 급식을 먹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른 아침 자녀들의 도시락을 싸지 않는 것만으로도 바쁜 주부들의 일손은 크게 줄어들었고, 학생들은 도시락보다 영양소가 고루 들어있는 급식을 먹으며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장강명의 소설 <새들은 나는 게 재미있을까>는 바로 학교 급식 비리에서부터 시작한다. 서울 변두리에 위치한 사립 인문계 세영고 재단은 18000만원어치의 식비를 빼돌렸다. 그 결과 학생들은 낙후된 급식실에서 턱없이 낮은 질의 급식을 배식 받는다. 그것마저도 재료 부족으로 반찬이 금방 떨어져 뒤에 먹는 학년들은 맨 밥을 먹을 때가 많다. 뿐만 아니라 배식하는 파란 셔츠의 무서운 형들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불만을 표출할 수도 없다. 이때 학교 급식 비리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한 '삐라 삼총사'가 등장한다. 시사토론 동아리 회원인 김기준, 성제문, 우주원 세 명의 학생들은 급식비리에 대한 내용을 담은 전단지를 돌리게 되면서 재단과 교무 교감, 같은 동아리 회원이자 학교 수학선생님의 아들인 호웅이를 대표로 하는 반대 측 사람들과 대립한다. 학생들의 투쟁은 책임자들의 자리만 바뀌는 것으로 끝나고, 사리사욕을 채우기 급급한 재단은 눈속임으로 당장의 문제만 해결할 뿐 여전히 변하지 않는다. 학부모들은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되니까 참고 학교 밖에서 다른 것을 사먹으라며 돈을 더 쥐어주면서 학교 문제에 끼어들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러니 급식을 먹는 당사자인 학생들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다. 밥은 매우 중요하니까. 급식을 먹고 불의한 상황을 견뎌야할 대상은 자신들이며, 그들은 아직 날기를 포기하지 않은 새들이니까

 

  ≪한국이 싫어서, 댓글 부대등 사회성 짙은 소설을 써온 기자출신의 소설가 장강명씨의 새들은 나는 게 재미있을까는 취재를 통해 보여준 우리 교육현장의 모습과 작가적 상상이 잘 어우러져있다. 내용의 흐름이 건조한 부분에서는 주원이의 족보 없는 희한한 욕이 웃음을 주고, 자칫 작위적으로 흐를 수 있는 부분에서는 기준이의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행동이, 제문이의 갈등과 성장, 호웅이의 변명과 눈물이 독자로 하여금 함께 반성하고 고민하게 만든다.

 

새들은 나는 게 재미있을까?’

그 최초의 토론으로부터 팔 개월이 흘러, 지금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게 새들에게 일상적인 일은 아닐 거라고. 비행에 최적화된 기관이 있다고 해서, 또 자주 날아다닌다고 해서, 새들이 비행에 별 감흥을 못 느낄 거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나는 외려 새들이 날 때 상당한 기쁨을 맛볼지도 모른다고 추측한다. 너무 어린 새나 늙은 새, 다친 새는 날 수 없다. 많은 새들이 날 수 있는 힘이 있지만, 실제로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때는 한정되어 있다. 놓칠 수도 있었던 잠재력을 깨닫고 목적에 걸맞게 쓴다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 아닐까?

그것은 사람의 잠재력과 관련이 있다. 사람은 대부분 옳고 그름을 분간하고, 그른 것을 옳게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 능력을 실제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행정실장과 학생교감은 날지 않은 새들 같았다. 마지막으로 날아 본 적이 언제일지도 모를 비둘기들이었다.

 

46~47

 

  학생들의 꾸준한 노력에도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들의 행동이 날기를 원하는 새의 날갯짓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제문이의 내적 성장은 가장 중요한 변화였다. 제문이가 날기를 잊었거나 한 번도 날아본 적이 없는 비둘기라고 말했던 행정실장과 학생교감, 재단 사람들을 내 식으로 말한다면 학창시절 부모님이 싸주신 따뜻했던 도시락을 먹어보지 못했거나 그 온기를 잊은 가장 불쌍한 사람들일 것이다

 

  돌이켜 보면 청소년시절은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항상 무언가에 굶주려 있었던 시기였다. 청소년들은 커다란 허기를 수많은 것들로 채우면서 기성세대가 되었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현재의 청소년들도 무언가를 채우면서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어른들이 될 것이다. 삐라 삼총사들이, 학교 밖으로 나가 음식을 사먹겠다는 친구들에게 보건실 뒤에 있는 담으로 가면 수학선생님이 잡지 않는 다고 말한 뒤 울음을 터트리는 호웅이가, 없어서 못 먹지 무엇이든지 먹을 수 있다는 모든 학생들이 훨훨 잘 날 수 있도록 어른들의 부끄러운 이기심을 지우고, 최고로 좋은 양질의 따뜻한 밥을 먹일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고 정착시켜야 할 때이다. 그렇지 않으면 살만 뒤룩뒤룩 찐 비둘기들로 가득 찬 세상이 될테니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레이몬드 카버 지음, 정영문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원본과 그 이후 다시 다듬어진 소설을 비교해보며 읽는 재미가 괜찮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 - 2015 제15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강 외 지음 / 문예중앙 / 2015년 11월
평점 :
품절


그가 나에게 온 것은 자정 무렵이었다.’

 

  제 15회 황순원문학상을 받은 한강의 <눈 한 송이가 녹는 시간>은 첫 문장부터 눈길을 끈다. 자정 무렵 나를 찾아온 그는 3년 전 죽은 예전 직장 동료였던 임 선배의 혼이다. 작품의 현재축은 매우 짧다. 자정 무렵부터 새벽 어느 시점까지이며, ‘를 찾아온 임 선배의 혼과 현재 쓰다가 멈춘 광대극 노힐부득달달박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차를 대접해야 할까? 하지만 죽은 사람이 차를 마시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차를 끓이는 동안 그를 혼자 두는 것도 옳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팔짱을 끼고 서서 잠자코 그의 얼굴을 건너다 봤다. 어쩐 일이세요, 라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뭐든 이유가 있겠지, 죽은 지 삼 년이 지난 뒤 누군가에게 올 때에는. 기다려보기로 했다.’

                                                                                                                                                            p.11

 

 

  작가는 처음부터 그가 죽은 영혼임을 밝히며 시간과 상황을 초월하여 소설을 진행시킨다. 그런데도 혼란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워 읽는 이도 쉽게 몰입하게 된다. 우리 또한 그럴 수도 있다는 것처럼. ‘임 선배’, ‘경주언니는 감포 바닷가의 콘도로 떠난 회사 수련회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부당하게 퇴사한 동료의 문제를 놓고 싸우고 있었다. 경주 언니가 던진 맥주를 온 몸에 뒤집어 쓴 채 움직이지 않았던 두 사람 사이로 신입이었던 가 마치 증인처럼 끼어서 

끝까지 함께 있게 된다.

  작가는 임 선배와 경주 언니를 통해 부당해고출근투쟁’, ‘천막농성의 현실 위에 삼국유사에 나오는 설화의 세계를 덧입혔다. 눈보라 치는 밤, 깊은 산속 각자의 암자에서 혼자 살아가는 두 스님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에게 찾아온 젊은 여자. 그녀는 관음보살이었으며, 두 스님은 차례로 황금 부처가 된다는 내용이었지만, ‘는 그것을 이어가지 못하고 광대극을 멈춘 채 글을 쓰지 못한다. 승려들이 황금 부처가 될 것 같지 않고, 길 잃은 여자가 관음보살일 것 같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한강 작가의 이 작품은 <소년이 온다>의 연장선 위에 있다. 5·18 광주, 군인이 휘두른 곤봉에 맞아 죽은 소년의 혼이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풀어나갔다면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에서는 죽은 임 선배의 혼이 직접 찾아와 와 대화를 나누며 진행된다. 한국적인 정서를 잘 녹이면서도 설화의 내용을 작가만의 시점으로 바꾸고 새롭게 재창조해 내는 솜씨가 대단하다. 작품을 쓰면서 고민하고 애쓴 작가만의 치열함이 느껴진다.

 

함께 있어주세요. 소녀가 말한다.

젊은 승려가 멀찍이 떨어져 서서 대답한다.

그건 안 된단다.

제발,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만.

소녀는 나무 욕조의 물속에 들어가 있는데, 이상하게도 그녀의 머리에 쌓인 눈이 녹지 않는 다. 그 눈송이들을 커다랗게 확대한, 눈의 결정 모양을 한 빛무늬가 무대 뒤편 검은 벽에 하 얗게 비쳐 있다.

그 결정들을 홀린 듯 바라보며 승려가 묻는다.

왜 머리 위 눈이 녹지 않을까?

시간이 흐르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우리가 시간 밖에 있으니까요.

                                                                                                                                                 p. 41~42

 

 

  소설 속 는 희곡의 끝을 다르게 바꾸었다. 희곡얘기를 더 해달라는 선배의 말에 쓰다가 멈춘 장면을 말하지 못한다. 왜냐 하면 자신이 고통의 바깥에 있다는 사실을 무섭도록 생생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소녀가 물 밖으로 걸어 나온다. 젖은 옷에서, 팔뚝과 종아리에서 쉬지 않고 물이 흘러내리는데, 머리 위에 쌓인 눈만은 아직도 녹지 않았다. 무대 앞 객석을 향해 한 발씩 다가오며 그녀가 말한다.

 

나는 잠을 잘 수 없어요. 당신은 잠들 수 있어요?

잠깐 잠들어도 꿈을 꿔요. 당신은 꿈을 꾸지 않아요?

 

언제나 같은 꿈이에요.

 

잃어버린 사람들.

 

영영 잃어버린 사람들.

                                                                                                                                                    p. 44~45

 

 

 바로 이 장면이 작품 속 의 고백이자 작가의 고백이다. 그 깨달음과 울림은 이 시대를 살아가며 글을 쓰고 있는 사람들의 고백이며, 우리 모두의 고백이기도 하다. 찰나의 순간 깨달음을 얻고 영원한 극락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황금 부처가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럴 수가 없어 더 참담하다. ‘눈 한 송이가 녹는 시간은 시간 밖의 시간이고, 그 시간을 사는 사람들은 과거의 우리이자 현재의 우리이며, 미래의 또 우리일 수밖에 없다. 그 속에서 과연 평화를 소망하고 그것을 누릴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이제 헤어지려는가, 나는 생각했다. 그는 아직 점퍼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지 않은 채, 마치 검푸른 허공에 멈춰 서려는 듯 느리게 떨어져 내리는 눈송이들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말없이 우리의 눈과 눈이 만났다. 평화를.

                                                                                                                                                         p. 52

 

 

  작가의 말처럼 현실의 삶과 죽음은 간결하고 냉혹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욱 평화와 정의를 갈망하나 그것은 불가능해 보이고, 멀리 있어 보인다. 그리고 작가의 고민처럼 우리도 고통 바깥에 서서 괴로워한다. 우리들의 이 고통은 눈 한 송이가 녹는 시간동안 계속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디무빙 - 소설가 김중혁의 몸 에세이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몸과 마음과 행동은 하나이다.
내 몸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책이다.
다만 보지못한 영화에 대한 설명이 많아 읽다보면 지루하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