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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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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끼의 소설을 읽으면 냉정하지만 따뜻한, 혹은 외로움을 감추고 있는 냉소적인 주인공들을 만나게 된다. 상처받았지만 받지 않은 듯 혼자만의 껍질을 두르고 사는,  그렇지만 자꾸 눈길이 가는 사람들. 하루끼의 10번째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서도 또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한 여자를 깊이 사랑하고, 그후 그녀가 어딘가로 사라지면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잘 아시다시피) 그녀를 데려가는 것은 간교함에 도가 튼 선원들이다. 그들은 능수능란한 말솜씨로 여자들을 꼬여내, 마르세유에인지 상아해안인지 하는 곳으로 잽싸게 데려간다. 그런 때 우리가 손쓸 도리는 거의 없다. 혹 그녀들은 선원들과 상관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지 모른다. 그런 때도 우리가 손쓸 도리는 거의 없다. 선원들조차 손쓸 도리가 없다."

 

                                                                                            여자 없는 남자들, p.330

 

 하루끼 열 번째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 수록된 7편의 소설 모두 여자 없는, 혹은 떠나보낸 남자들이 등장한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주인공 가후쿠는 아내가 자궁암으로 세상을을 떠난 후 혼자 살아가는 중년의 연극배우이고, <예스터데이>의 기타루와 다니무라는 에리카를 좋아하지만 끝까지 다가가지 못한다. 한 번에 여러 여자들(유부녀 가리지 않고)을 동시에 사귀며 가볍고 깊지 않은 교제를 추구하던 성형외과 의사 도카이<독립기관>이는  16세 연하의 유부녀를 사랑하게 되면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뒤, 결국 음식을 거절한 채 죽어간다. <셰에라자드>의 하바라는 정기적으로 자신을 찾아오는 셰에라자드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기노>의 주인공 기노는 부인과 회사동료의 정사장면을 목격하고 그대로 집을 나와 혼자 술집을 운영하며 살아간다. 모두가 한 명의 여자를 사랑했고, 그녀로 인해 자신의 존재를 되짚어 보며, 삶의 의미를 찾으려 했으나 그녀들이 떠나간 후 외로움과 상처를 안고 묵묵히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살아간다. 그래서 여자 없는 남자들은 어딘가 춥고 외롭고 무심해 보인다. 그러면서 우리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한 사람의 세계는 또다른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넓어지고 깊어진다. 하나의 세계가 다른 세계와 합쳐지면서 더 커지게 되는 만큼 그 사람이 떠나거나 사라졌을 때의 공간은 더 커지는 법이며, 그 만큼 홀로 남겨진 사람은 그곳을 무엇으로 메어야할 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같이 길을 잃거나 방황할 수 밖에 없다. 자신을 타인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상대방에게 이해받지 못했다는 상처를 안고 말이다. 하루끼 소설 속 주인공들은 그것을 잘 보여준다. 그런 점을 주인공들이 깨닫지 못한다해도 말이다. 바로 이것이 하루끼 소설속 인물들의 특징이자, 그만의 독자층을 확보할 수 있는 주요 매력이기도 하다.

 

 또한 하루끼의 소설을 읽다보면 젊은 지난 날들을 되돌아 보게 한다. 40대,  50대, 60대에게도 10대, 20대 시절의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그때의 우리가 느꼈던 고통과 상처, 시간이 흘러 그것이 각자에게 어떤 모습으로 남았는지 잊고 있었던 모습을 찾아보게 한다. 60을 넘긴 작가가 스무 살 시절을 어제의 일처럼 되살려내는 것이 놀랍고, 냉정하지만 따듯한 외로움을 불러일으키는 인물들의 이미지와 상황도 읽는 이들에게 공감을 준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다 해도 사람은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은 자기 자신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지 않은가? 그러나 이해받지 못했다해서 혹은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사랑하기를 포기할 수는 없다. 그것마저 없다면 우리의 삶은 너무나 공허하고 춥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표지에 그려진 차가운 얼음달처럼 말이다. 겨울을 견딜 수 있는 힘은 봄이 오고 있다는 희망때문일 것이다.

 

 "... 나는 대체 무엇인가, 요즘 들어 자꾸 그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것도 상당히 진지하게 말이죠. 내게서 성형외과 의사의 능력이나 경력을 걷어낸다면, 지금 누리고 있는 쾌적한 생활환경을 잃는다면, 그리고 아무 설명도 없이 한낱 맨몸뚱이 인간으로 세상에 툭 내던져진다면, 그때 나는 대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독립기관, 140.p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존재인지 근원적인 질문에 맞닥뜨리게 되는 순간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혹은 사랑받게 될 때 찾아온다. 사람은 무엇보다  나 아닌 타인을 사랑하게 될 때 진심으로 자신의 모습과 대면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이해받으며 사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하며 살아가는 존재인 것이다. 그 사랑을 잃어버리면 결국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곧 남자 없는 여자들이 되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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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새로 나온 `메시지-시가서`를 읽으며,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창작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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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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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글을 읽으면서 문학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아'하고 소설을 쓰면 나도 '아'하고 그 글을 무조건 좋아하게 된다.
자신이 좋아하는 소설가, 그 소설가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는 그런 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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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논어 - 시대를 초월한 삶의 교과서를 한글로 만나다 한글 사서 시리즈
신창호 지음 / 판미동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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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란 무엇인가? 공자와 제자들이 서로 묻고 대답하면서 실천했던 것들을 기록한 것으로 집단 지성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유교를 숭상한 조선시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렀기에 <논어>에 익숙하고 아직도 그 영향력 아래에 있지만, 제대로 <논어>를 읽고 그 의미를 생각해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또한 물론이고 말이다. 그런데 얼마 전 방영된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을 통해 <논어>가 어떤 책인지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논어>는 공자의 어록이다. 드라마속에서 스승은 논어제 수업시간, 성균관 유생들에게 이를 더 쉽게 말해 준다. “공부란, 고지식한 늙은이와 똑똑한 제자들이 모여서 어떠한 세상을 만들 것인가 박터지 게 싸운 기록이다.”라고 말이다. 그동안 우리가 해온 공부와는 차원이 다른 정의이다. 스승과 제자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박터지게 싸우는 공부는 생각만 해도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그래서 더욱 《한글 논어》를 읽고 싶어졌다. 짧은 순간 드라마를 통해 배운 논어에 대해 책을 통해 깊이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글 논어》는 한문으로 되어 있어 <논어>라는 책을 읽고 싶어도 쉽게 다가가지 못했거나 읽으려고 마음먹었다가도 속도가 나가지 않아 힘들었던 독자들에게 매우 유익하다. 물론 <논어>에 담겨 있는 뜻도 쉽게 헤아려 볼 수 있다. 이는 작가의 마음이 그런 독자들의 생각과 일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글로 문명을 일구어 가는 사람들은 한글을 통해 그 문명을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한문으로 저술된 모든 동양 고전은 한글로 재탄생되어야 한다. 아울러 우리 문화를 그 속에 녹여 넣는 일도 필요하다. 이런 작업은 번역을 통해 이루어질 수도, 일정한 시각으로 독해하면서 이루어질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시대정신을 담은 의미 전달이며 독자들의 가독성을 고려하여 고전을 다시 쓰는 일이다.’

                                                                                          9p.1부 공자, 그 삶의 희로애락

  이러한 작가의 생각에 동의한다. 아무리 훌륭한 텍스트가 있다고 해도 그것을 읽어낼 수 없다면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한자를 사용하는 중국인들도 <논어>를 현대 중국어로 다시 번역하여 읽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글 문명권에 살고 있으면서 한글로 모든 것을 많은 사람들이 향유하지 못한다면 <논어>와 같은 수많은 고전들은 예전처럼 일부 지식층들만 누리게 될 것이고, 그것은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원했던 공자와 수많은 성현들의 생각에 반하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한글 논어》는 크게 1부 공자, 그 삶의 희로애락과 2부 『논어』의 한글 독해로 이루어져 있다. 1부를 읽다보면 사람들을 속이고 죽이며, 또 복수하는 것이 다반사였던 그 당시, 인과 예를 중시했던 공자의 의지와 원칙과 엄격함으로 제자를 가르치는 스승 공자를 보게 된다. 그런가 하면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없고, 뛰어난 재능을 펼칠 곳이 없어서 괴로워했던 공자도 만날 수 있다.

깊은 생각에 빠졌구먼!

경을 연주하는 사람이여!

세상에 자기를 알아주는 이 없으면

그것으로 그만 아닌가!

- 지나가는 나그네도 공자의 마음을 읽었던가! 혼탁한 세상을 구제해 보려던 공자의 정치적 욕망은 그렇게 속으로 들끓다가 사그라지곤 하면서 생각의 깊이를 더해 갔다.

                                                                                          45p.1부 공자, 그 삶의 희로애락 

위대한 정신과 사상, 철학과 학문을 성립하고 위대한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공자이나 그도 나약하고 외로워했던 인간이었음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이어서 2부,『논어』‘한글 독해’편은 모두 20편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편마다 제목과 내용, 몇 개의 장으로 되어 있는지 짧게 설명되어 있어서 다소 많은 분량의 내용을 쉽게 읽어내려 가는데 도움을 준다. 특히『논어』라는 책이 한 번에 다 읽어내는 책이 아니기에 제1편 ‘학이’에서 제20편 ‘요왈’까지 읽을 분량을 정해놓고 반복하여 읽으면서 그 뜻을 새길 수 있도록 편집되어 있어 좋다. 각 편의 제목은 맨 앞의 두세 글자를 따서 만든 것이다.

『논어』의 핵심은 ‘배움’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배움’으로 시작하여 ‘배움’으로 끝난다. 《한글 논어》 제1편 학이편을 보면 다음과 같은 제일 먼저 나온다.

“삶에 필요한 기예를 배우고 익혀라. 그것만큼 기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논어』가 배움으로 일관하는 저작임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배움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술과 도덕, 즉 삶의 테크네이다. 유학에서는 그것을 크게 여섯 가지로 분류하여 설명하는데, 이른바 ‘육예’이다. 육예는 나 자신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친구나 이웃들과 나누어야 하며,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공동체의 덕목이자 가치 체계로 작용한다. 자기 최선, 벗과의 만남과 교류, 소통, 내면화, 이런 삶의 의지와 희망, 열정의 텍스트 가운데 모든 사람은 각자의 위치에서 충실해야 한다.

                  

                                                                            81-82p. 제1편 「학이」, 1절 

  이 배움을 통해 우리는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좀더 인격적으로도 성숙해지고, 학문이나 기술적인 면에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진정한 ‘배움’은 자신의 부족함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고 날마다 노력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기도 한다.『논어』는 이런 사람이 되기 위해,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실천 방법을 세세히 알려 주고 있다. 그런 면에서 유학은 객관적이고 증거와 근거를 바탕으로 한 사실을 중요시 하는 사상이며, 현재 사회와도 밀접하다. 왜 《한글 논어》가 출판되고, 공자의 어록이 이 시대에 계속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한글 논어》는 예나 지금이나 지도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읽어야 하는 책이다.

제6편 ‘옹야편’을 보면

“사람들을 잘살게 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선조의 신령이나 산천의 신을 공손하게 모시 되 적절한 거리를두어야 한다. 그래야 정치가로서 지혜롭다고 할 수 있다.”

  번지가 다시 사람들에게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자 공자가 일러 주었다.

  “사람들에게 열린 마음이란, 어려운 일을 남보다 먼저 하고 거둬들이는 것은 나중에 하는 것이다. 그러면 열린 마음을 지닌 사람답다고 할 수 있으리라."

 

                                                                             186p. 제6편 「옹야」,20절 

  ‘옹야편’뿐만 아니라 모든 부분에서 정치하는 자의 자세에 대해 묻고 답하는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이렇게 《한글 논어》를 읽다보면 조선시대 성균관을 배경으로 했던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논어제’ 수업이 저절로 떠오른다. 스승은 성균관 유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은 국록을 받는 유생들이다. 백성의 고혈로 얻어낸 학문의 기회이다. 부지런히 배워서 갚아라. 이땅 백성들의 더 나은 내일과 새로운 조선을 위해 꿈꾸는 것은 제군들의 의무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한 곳에서라도 지도력을 발휘할 때가 있다. 그리고 자신 혼자만의 힘으로 현재에 이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군가의 고혈로 지식을 쌓고, 완성되어 가고 있는 인격체로서《한글 논어》는 그래서 모든 사람이 읽어야 할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공자의 가르침은 분명 정의롭고 윤리적이며, 개인의 성숙과 도를 이루기에 적합하지만, 가르침을 실천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가르침을 실천하다가 그에 이르지 못할 때의 좌절감은 더욱 클 수 있다. 인간은 한계가 있고, 각자에게 맞는 능력이 있기에 공자의 가르침대로 행동하기를 강요받거나 억지로 따라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위선적으로 행동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공자의 가르침이 필요한 것은 ‘배움’은 완성이 아니라 ‘과정’이기 때문이다. 논어 제6편 ‘옹야편’이 말을 건넨다.

  “힘이 모자라는 사람은 중도에 그만두기 마련이지. 자네는 지금 미리 할 수 없다고 스스로 한계를 그어 놓고 실천을 하지 않고 있어.”

-‘……능력의 부족을 앞세우지 마라! 누구나 자신의 삶을 가꿀 권리와 의무가 있다!’

                                                                                              181p. 제6편 「옹야」.10절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이나 여러 가지 상황을 핑계 삼아 자신의 삶을 가꾸지 않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것이고, 의무를 져버리는 행동이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한글 논어》를 통해 죽어 있던 공자와 인간적으로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논어』는 고리타분한 옛날 학문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움직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제는 《한글 논어》를 통해 더 쉽게 사람들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책내용과 상관없이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다. 책을 읽는 동안 표지의 초록 잉크가 계속 손에 묻어 곤란한 적이 있었다. 표지를 벗기면 괜찮을까 하였지만 마찬가지였다. 또 오타부분(p.122, 밑에서 세 번째줄 ‘이는 것을 안다고…’, p.448, 밑에서 네 번째줄 ‘폭넒은 공부를…)을 발견했는데 제목이《한글 논어》인 만큼 자칫 신뢰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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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천연균과 마르크스에서 찾은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정문주 옮김 / 더숲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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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친구와 이태원에서 만나 리움 미술관 쪽으로 올라가는 데 재미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정오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라 근처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점심식사를 하러 나왔는데 저마다 손에 하얀 봉지를 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올라가다 보니 어느 빵가게 앞에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고 빵을 사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손에 들고 있었던 하얀 봉지는 바로 이 집에서 산 빵이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함께 걷던 친구가 우리도 얼른 줄을 서자며 내 손을 잡아 끌었다. 바로 그 가게가 국산밀가루와 물, 소금, 천연 발효종을 이용하여 빵을 만드는 작지만 유명한 '*** *빵집'이었다. 그래서 나도 그 집 빵을 맛볼 수 있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너무 맛있었다. 일반 제과점에서 사 먹은 빵과 비교해 본다면 단맛이 적고, 고소한 맛이 더했다. 전자가 화려한 장식과 다양한 종류로 소비자들을 공략한다면 후자는 빵맛 하나로 진검승부를 건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후자가 압승일 것이다. 아마 그 날 그 빵집 앞을 지나가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 빵맛과 재료, 만드는 과정과 유통에 대해 아무런 생각없이 프렌차이즈 빵맛에 길들여져 살았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연히도 그 시기에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라는 책이 나왔고, 내 손에까지 오게 되었다. 그리고 빵을 통해 내가 살고 있는 사회의 작은 부조리한 단면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펼쳤을 때, 프롤로그의 첫문장인 '혁명은 변두리에서 시작된다.'라는 말이 마음에 와서 박혀 버렸다. 빵을 굽는 일이 혁명이라는 말과 함께 쓸 정도로 거창한 것인가 라는 생각이 잠시 스쳐갔지만 '썩는다' '부패한다'라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빵을 만들고, 순환하는 경제를 실천하고자 애쓰는 저자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어졌다.

이 책은 총 2부로 되어 있다. 제 1부는 '부패하지 않는 경제'라는 제목 아래 저자가 천연균을 이용하여 일본주종빵을 만들게 된 사연과 시골빵집의 마르크스 <자본론> 강의가 쉽게 소개 되어 있다. 제 2부는 '부패하지 않는 경제'로 '와타나베 이타루'씨가 천연균을 이용하여 빵을 만들어 온 과정과 그 시간을 통해 배운 천연균에 대한 지식, 삶의 철학과 자본주의 사회에 맞서 자신의 기술과 인생을 지켜내고 풍요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자세히 알려 주고 있다. 1부를 통해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이해해 나갈 수 있다면, 2부를 통해 천연균을 이용한 이타루씨의 빵과 삶, 우리의 먹거리와 현재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다. 다소 딱딱할 것 같은 자본론, 마르크스, 주종빵, 천연균, 부패와 발효, 순환 등에 관한 소재들을 경제학자나 전문가가 아닌 동네 빵집 아저씨가 우리들의 언어로 쉽고 재미있게 들려 주는 이야기 같아서 중고등학생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서른이란 나이에 대학을 졸업하고 작은 유기농산물 도매회사에 들어간 '와타나베 이타루'씨는 농부가 되고 싶다는 꿈과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 직장에서 불합리한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원산지 허위 표시', '뒷돈 챙기기' 등이 가볍게 행해지고, 불합리한 구조와 편법을 당연하게 수긍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모습에 저항하면서도 회사를 나가지 못하는 자신에게 실망하고 괴로워한다. 무엇보다도 그는 생산물에 대한 경의감은 사라지고, 오로지 상품으로만 그것을 평가하고 대하게 되는 사람들의 태도에 충격을 받는다.

- 그런가 하면 "매입자가 없어서 토마토는 3톤이나 또 썩고 있네요."같은 이야기를 직원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생산자에 대한 경의, 생명이 있는 것을 다룬다는 자각, 자연의 결실을 고마워하는 마음,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짓밟아버린 데 대한 자책은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p.19

매일 해야 하는 하는 업무가 사람들로 하여금 농산물속에 들어있는 하늘과 땅과 사람을 잊어버리게 만들고, 농산물을 오직 상품의 질과 판매량으로만 평가하게 만들었으며, 그것은 곧 우리의 생각 또한 둔해지거나 변하게 만드는 것이 되었다.

저자는 직장 생활 속에서 매일 자신의 양심과 갈등하고 고민했다. 그러면서도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자신때문에 더 힘들어 했다. 그럴수록 자기 자신을 향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고 또 던지게 된다. 그토록 치열하게 온몸으로 고민했던 시간을 통해 '빵'을 만들어야 겠다는 확신을 갖게 되면서 직장을 미련없이 나올수 있었다. 저자가 직장속에서 했던 고민들은 현재 자본주의 체제 아래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의 고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민해봤자 답은 없다며 아예 생각하기를 멈추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나 끝까지 모순덩어리인 이 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만들어 가고 싶다면 멈추지 않고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물론 그 과정이 매우 힘들겠지만 그래서 마지막에 많은 사람들이 후회하고 어려워할 때 진짜 웃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손을 내밀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확률도 높다. 끈질기게 고민하고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과정속에서 무언가 한 개의 힌트를 얻게 된다면 자신이 선택한 길을 기쁘게 걸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와타나베 이타루씨는 그것을 실천했고 우리에게 그 기뿜을 알게 해 주었다.

- 비겁한 사회 상황을 향한 슬픔과 분노야말로 마르크스가 생애를 걸고 <자본론>을 쓴 동기였을 것이다. ... 노동자와 서민들에게 강요되는 가혹한 환경은 무엇하나 변하지 않았다. 어째서 우리는 이렇게까지 일을 해야만 하는가? 각자의 머리로 고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p.43

현재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도 실업과 열악한 노동환경, 노동력 착취와 저임금으로 힘겨운 삶을 살고 있다. 150년 전 마르크스가 비참한 사회 상황을 향해 <자본론>을 써내려갔던 시절에 비해 달라진 것이 별로 없는 듯하다. 가혹한 노동환경은 인간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어 버렸다. 인간은 적당한 노동과 쉼을 통해 삶을 이어가고 자기 정체성을 세워 나가야 하는 데 자본은 돈이란 매개체를 내세워 사람들에게 생각하고 여유를 가져야 할 시간을 빼앗았다. 그것은 곧 사람됨을 빼앗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렇다고 공산주의 체제를 선택하는 것은 더욱 어리석은 일이다. 이미 우리는 역사를 통해 그것을 알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우리가 각자 '소상인'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은 생산수단을 가지지 못한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팔 수 밖에 없는 구조에서 발생한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노동자가 모두 생산수단을 공유하는 공산주의(사회주의)를 지향한 것이다. 그런데 미안한 말이지만 그 방법이 잘 돌아갈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이 시대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생산수단을 가지는 길이 효과적인 해결책이 될 거라고 본다. 그 의미를 잘 표현하는 것이 '소상인'이라는 단어다. … 우리 안에 있는 힘, 잠재능력을 살리는 삶과 일이 천연균과 자연재배, 또는 '뺄셈의 빵'이라는 발상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 지금이야말로 소상인의 시대가 아닐까? 교통과 통신 인프라가 정비되어 규모가 작아도 충분히 돌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는 정보의 수집과 발신을 자유롭게 만들었다. 이 얼마나 큰 무기인가?

p.186

저자는 소상인이 되기 위해 아침 7시, 고택에 붙어사는 균과 지역에서 자연재배한 작물을 합작하여 '일본식빵'과 여러 종류의 빵을 판매한다. 그들이 부패하는 경제를 실천하며 자연의 소리를 듣는 자연 중심의 빵을 만들기까지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고통과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그러나 일본의 변두리에서 작은 혁명은 일어났고,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평범한 소시민이 자본주의의 거대한 구조에 맞서 도전한 용기와 마음, 실천력, 먹는 것이 곧 우리의 몸이 되고 삶이 된다는 가치관에 따라 빵을 만든 것에 대해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그가 했다면 우리도 얼마든지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생활방식이 그대로 삶과 생명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진짜 자본주의 구조속에 자신의 인생을 빼앗기고 싶지 않다면 삶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을 각자가 찾아야 한다.

- 최근 워크 라이프 밸런스(work-life balance, 일과 생활의 조화)… 생활 속에 일이 있고, 일 속에 생활이 있는 나날이다. "장인은 월급쟁이가 아니니 생활이 삶이고 삶이 직업이다."라고 한 것 처럼 우리도 삶 그 자체가 직업이다.

p.223

우리가 아무리 수많은 조직 속에서 월급쟁이로 살아간다 하더라도 각자의 삶에서는 자기 자신을 고유하게 만들 수 있는 삶의 장인이 되어야한다. 왜냐 하면 바로 우리 자신이 곧 삶이고, 삶이 자기 자신이 되기 때문이다. 그럴려면 무엇보다도 귀찮고 힘들다는 이유로 그동안 외면해왔던 자기 자신이 보내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적어도 자신만의 진정한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고 싶다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와타나베 이타루씨가 시골빵집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유익하면서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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