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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평점 :
목숨이란 하찮게 중단되게 마련이고 죽고 나면 사람의 일생이란 그뿐, 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인간이란 덧없고 하찮지만, 그 때문에 사랑스럽다고 말한다.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고, 즐거워하거나 슬퍼하거나 하며, 버텨가고 있다고 말이다.(p.227) 소라, 나나, 나기의 삶이 황정은 작가의 건조하고 차가운 문체 속에서 한 송이 꽃처럼 피어난다.
남편의 죽음으로 삶을 포기한 엄마 애자씨, 그녀의 방치로 인해 시들어버릴 줄 알았던 소라와 나나는 도깨비집 나기의 엄마인 순자씨의 밥을 먹으며 다시 피어난다. 소라, 소라는 하나뿐인 부족의 하나뿐인 족장이다. 그래서 아버지 금주씨가 세상을 떠나고, 엄마 애자씨가 자신과 동생 나나를 돌보지 않아도 혼자서 자신의 부족을 잘 이끌어 나간다. 그런 소라가 동맹을 맺고 연합을 이루는 부족은 동생 나나와 친구 나기이다. 그들과의 소통이 소라의 세상이다. 소라는 소라로 일생을 끝낼 작정이었다. 멸종해 버릴 부족으로 말이다. 그런 소라에게 순자씨는 먹이고 삶을 나누어 주었다.
도시락이되 웬만해서는 어김없는 도시락.
그것을 맛본 경험이, 그런 것을 꾸준하게 맛볼 기회가 나나와 내게 있었다는 것을 나는 요즘도 골똘하게 생각해볼 때가 있다. 그게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렇게 가정하고 생각해보는 것은 조금 두렵다. 순자씨는 그 도시락으로 나나와 내 뼈를 키웠으니까. 그게 빠져나간 뼈란 보잘것없을 것이다. 구조적으로도 심정적으로도 허전하고 보잘것없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대단하지 않아? 보잘것없을 게 뻔한 것을 보잘것없지는 않도록 길러낸 것. (p.44)
멸종 위기의 부족, 소라를 지켜준 것은 사람을 먹이고 키워보았던 그녀의 손맛이었다.
나나는 앞으로도 뒤로도 아름답다는 이름을 가졌다. 언니 소라는 애자씨가 되지 않기 위해 엄마가 되는 것을 포기했지만, 나나는 평범한 집안의 평범한 모세씨의 아기를 가졌다. 그러나 타인 중 순자씨와 나기 오라버니에게만 열어 주었던 자신의 우주를 끝내 모세씨와 공유할 수 없어 그와 헤어지려 한다. 아기와 함께 그를 따라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그리웠던 순자씨와 소라, 나기 오라버니가 있는 세상으로 돌아온것이다. 그립고 즐겁고 애틋하고 두렵고 외롭고 미안하고 기쁜 마음이 뒤섞여 엉망진창인 세계로 말이다.
나기는 소라와 나나의 다른 모습이다. 또 끈질기고 집요하게 ‘너’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나기는 소라와 나나,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해 부정하지 않게 소중한 것을 볼 수 있도록 해 준 인물이다. 고등학교 시절 폭력을 당하고 친한 친구에게 배신을 당해도 자신만의 사람을 간직하며 살아간다.
소라와 나나, 나기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던 애자씨와 금주씨, 순자씨 모두의 삶을 돌아보면 시시하고 초라하고 무의미했다. 그런 그들이 사라지지 않고 끝까지 버티면서 계속 살아가고 있다. 사람을 견디게 해주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닌 공감해주고 손잡아 주는 체온이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하찮다고 여기며 살아갈지라도 사소한 일상을 함께 나누며 버티게 해 주는 다른 사람들로 인해 삶은 계속 이어진다.
물기를 쏙 빼버린 건조한 문장 속에서 고리처럼 이어져 있는 사람들 사이의 우주를 보았다. 그 속에서 부유하며 길을 잃고 방황해도 다시 돌아올 곳이 있어서 안심했다. 작가의 숨결이 느껴지는 소재이다.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에 ‘사랑으로 살아간다’고 말했다. 작가 황정은은 ‘하찮음’으로 살아간다고 했다. 하나의 질문과 하나의 단어, 도시락이나 만두 등과 같은 평범하지만 결코 삶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음식을 적절하게 배치하여 소설을 이어간 작가의 저력이 돋보인다. 소설을 읽으면서 하찮은 삶일지라도 우리는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