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팔로 하는 포옹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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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힘없이 써내려간 김중혁의 네 번째 소설집 <가짜 팔로 하는 포옹>속에는 사람과 사람이 맺어놓은 관계가 있고, 그들이 사랑에 대하여 말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 살고 있으며 주어진 상황과 시간, 공간이 모두 다를지라도 한 번 맺어진 관계는 서로에게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그것이 사람이나 상황 때문에 더 확장되어지고 깊어진다. 김중혁의 네 번째 소설집이자 첫 번째 연애소설집이라고 말한 이 여덟 편의 소설은 공감과 소통이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이루어지고 또 파괴되는지 3인칭 시점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거리를 두며 관찰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김중혁의 소설이 갖는 매력이다.

 

  사라진 포르노 여배우 송미를 찾아가 진지하게 설득하는 차양준의 모습과 정액을 얼굴에 뒤집어 쓴 뒤 눈물을 감추고 환하게 웃어주는 송미를 통해 사람들이 각자의 상황 속에서 진실한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비율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보았다. 영화 속 상황이든 현실의 상황이든 다를 게 없습니다. 모든 상황엔 일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상황엔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 송미씨와 제가 하는 대화에도 어떤 의미가 있겠죠.” (상황과 비율, p.22) 그 진심이 각자의 삶에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픽포켓>은 실종된 여가수 기민지를 찾아 부산으로 떠난 호준과 우영으로부터 시작된다. 시간차를 두고 등장하는 골목 풍경은 각기 다르게 살아온 기민지-호준과 우영- 송진구를 통해 연결되고 작품에 깊이를 더한다. 우리는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같은 공간속에서 관계를 맺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세상은 사람들이 모르고 맺어 놓은 관계 덩어리이다. 그리고 창문을 통해 우리가 맺어 놓은 관계를 바라보게 만든다. 모든 창문에는 비밀이 있었고, 기민지는 그 비밀이 늘 부러웠다. 비밀을 가질 수만 있다면 누군가 바깥에서 자신의 창문으로 돌을 던져도 상관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벽을 쌓는 것보다 창문을 만들기가 훨씬 어려웠다.(픽포켓, p.87)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은 주로 대사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규호와 정윤이 관객들 앞에서 연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아무런 애정 없이 그냥 한번 안아주기만 해도, 그냥 체온만 나눠줘도 그게 한 사람을 살릴 수도 있대. 나는 그때 날 안아주길 바랐는데, 네 등만 봤다고. 등에는 가시가 잔뜩 돋아 있었고.(가짜 팔로 하는 포옹, p.96) 알콜 중독에 빠진 규호의 말에 외롭고 상처 입은 사람들이 보인다. 따뜻한 품에 안기고 싶으나 안길 수 없는 인생이 서글프다.

 

  그밖에도 <뱀들이 있어><종이 위의 욕조>, <보트가 있는 곳>, <힘과 가속도의 법칙> 속에도 아슬아슬하고 약해 보이는 그래서 더 조심히 다루고 신경 써야할 사람들의 관계와 사랑이 펼쳐진다. 특히 김중혁은 이번 소설집을 통해 다소 남성 중심의 관점이 두드러지기는 하나 남녀의 관계 맺기에 대해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마지막 <요요>는 관계를 부수고, 고리를 끓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차선재와 장수영과의 관계와 시간이 나타난다. 차선재는 자신의 시간을 생각했다. 모든 게 아득했다.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처럼 아깝던 젊은 시절들은 이제 너무 멀어서 흐릿한 윤곽만 보일 뿐이었다. 어떻게 그 시간들을 통과해왔는지, 어떻게 11초를 지나왔는지 놀라웠다. 지나간 시간들이 쌓여 있는 곳이 있다면 그곳에 가서 그 11초가 어떤 의미들이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요요, p.299) 차선재의 시간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에 장수영이 있었다. 또한 그녀는 차선재를 떠나면서 그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자신만의 세계로 들어가게 했다. 그런 두 사람의 시간은 흘러갔고, 20년이 지난 뒤 다시 만나게 된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의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은 이제 더 이상 존재 하지 않는다. 그렇게 다시 시간은 흘러가고 또 흘러 갈 것이다

세상은 사람들이 타인과 맺은 관계와 사랑을 통해 만들어지고 계속되고 있다. 시간이란 배경과 지금 서 있는 공간 속에서 말이다. 달라지는 것 같고 멀리 사라지는 것 같지만 요요처럼 다시 돌아오고 반복된다. 관계를 맺고 사랑을 한다는 것은 그런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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