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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
김숨 지음 / 창비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그래요, 지금은 반죽의 시간입니다. 분분 흩날리는 밀가루에 물을 한모금 두어모금 서너모금 부어가면서 개어 한덩어리로 뭉쳐야하는 시간인 것입니다. 부르튼 발뒤꿈치 같을 덩어리가 밀크로션을 바른 아이의 얼굴처럼 매끈해질 때까지 이기고 치대야 하는 시간이지요. 여무지게 주물러야 하는……’
p. p.49
현재축은 국수를 끓이고 있는 지금이다. 김숨의 소설은 전반적으로 현재축이 짧다. 며느리의 부고 소식을 듣고 서울로 올라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진행되는 노부부이야기(막차), 노모의 시신을 모시고 구급차로 내려가는 두 자매이야기(옥천 가는 길) 등 짧은 현재축과 한정된 공간에서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밀도있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힘이 있다. 소설<국수> 또한 고향집에 내려와 새어머니에게 국수를 만들어주는 하루 동안에 일어난 이야기다. 거기에 인물과 얽힌 음식인 국수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연결시키는 구성을 선택했다.
- ‘국숫발 삶는 냄새 …… 그 냄새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밀가루로만 반죽해 뽑아낸 국숫발들이 삶아지면서 풍기는 그 냄새를 말이에요. 담담 심심한 듯 은근히 구수한, 잊고 있던 허기를 슬그머니 흔들어 깨우는 그 냄새를……’
p.52
그만큼 국수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묘사와 비유, 감각적인 표현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으면서도 소설의 건조함을 계속 유지한다. 소설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는 건조함이다. 하얀 밀가루가 폴폴 날리고, 반죽덩어리를 밀어내는 과정 속에서 아기를 낳을 수 없어 자신의 집으로 재가를 한 새어머니와 여러 번 유산을 하고, 다시 인공수정을 해야 하는 ‘나’가 국수 가락 같은 인연의 끈을 이어간다. 국수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으며, 하나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개인사가 국수라는 소재와 만나 절제된 문장으로 전달되고 있다.
- 싹둑 잘려버려 가지를 뻗을 수 없으니, 더는 잎도 꽃도 못 피우고 열매 또한 당연히 맺지 못하는 나무 밑동이 나비 떼를 날려보내는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지요. 구름이 바위처럼 무거워지고 바람이 성난 염소처럼 사납게 휘몰아치는 밤새, 수천마리의 나비를 제 안에 꼭 품고 있다가 날려보내던 그 장면이 말이이에요. 만약에요……그 나무가 온전한 나무였다면, 그나마 남은 밑동 속이 동굴처럼 비어 있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 많은 나비를 품을 수 있었겠어요. 그러고 보면 당신은 우리에게 밑동만 남은 나무가 아니었을까요, 박쥐가 드글대는 혼돈의 밤, 기꺼이 우리를 품어주었던……우리가 아무리 발광을 쳐대도 뿌리를 땅속에 단단히 내릴고 흔들리지 않던……나무 밑동에서 날아오른 나비들은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코발트빛 여명속으로 흩어졌지요.
p. 78
나비떼를 품은 속이 빈 나무와 그녀를 일치시키고 있는 이 장면은 하늘로 날아가는 나비떼가 눈에 보이는 듯 선명하게 그려진다. 김숨의 소설에는 한 장면씩 머릿속에 선명한 이미지를 남게 만드는 묘사가 있다. 그것이 김숨이라는 작가의 단편소설을 기억하게 만든다. 그러나 아기를 낳지 못한 여인의 시간, 고통을 담은 소재는 낡았다는 생각이 든다. 국수라는 음식 또한 한몫 더해준다. <국수>를 읽는 동안 김숨이란 작가의 섬세함을 느낄 수 있었으나 소재면에서는 한계를 느꼈다.